나의 유년 시절

5세에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일곱 살에 고향인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생계가 곤란하시므로 더구나 장차 의지할 아들도 없고 다만 딸자식인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살아가실 수 없는 고로 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의붓아버지에게는 남매가 있었으니 남아는 16,7세 가량이었으며 계집애는 내 한 살 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 지 이틀도 지나기 전에 벌써 우리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속상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붓아버지까지라도 적지 않게 실망을 하여 나중에는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까지 한 기억이 아직껏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싸움을 하고 울 때마다 어머니는 너무 속상해서 우시면서,

“경애야 너 싸우지 마라. 너 정말 늘 그러면 난 이렇게 눈 감고 죽고 말겠다.”

하시는 것이 거의 날마다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철없는 나이라 죽는다는 말에는 그만 겁이 나서 그렇게 북받치는 울음도 마음껏 내 울지 못하고 어머니 일하는 곁에 성명 없이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돌아가시는 것을 본 까닭으로.

그러나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어머니를 빼놓고 그 집안 식구는 나를 몹시도 미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잠시만 빨래 같은 것을 하시게 되어 집에 안 계시면 의붓아버지까지라도 한목이 되어 나에게 그 무서운 눈을 흘기며 조금만 잘못하면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반길에 가까워 오는 저이건만 아직까지도 그 눈 흘기는 기억이 문득 문득 생각 키울 때가 많습니다.

제가 바로 열 살 나던 때의 봄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적으니까 그때에는 모두가 날 보고 도토리알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지는 엉뚱나게 발달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벌써 『조웅전』이며 『숙향전』 할 것 없이 내 눈에 띄인 소설책이라고는 기어코 독파하고야 견디었습니다.

봄! 우리집 뒷산에는 살구꽃 앵두꽃 복숭아꽃 피어오르는 솜뭉치같이 아주 온 산을 푹 덮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각시를 만들어 가질 달래 풀까지 길이길이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날도 빨래를 가시며 싸움하지 말고 잘 놀아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시며 누룽지를 두 아이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시고 가셨습니다. 우리들은 누룽지를 먹으며 소꿉질을 하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서 산으로 기어올라 달래 풀을 뜯기 시작하였습니다.

큰년이는 몸이 비둔하여 빨랑빨랑치를 못함으로 언제나 산에 오르게 되면 내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내가 먼저 뜯은 나무지에 손을 대었습니다. 역시 그날도 그러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경애야 경애야, 이리 오라우, 여기 달래풀 많아”

큰년이가 부름에 생각 없이 깡충깡충 뛰어갔더니 덮어놓고 내 치마앞을 헤치고 들여다보며 그 중 좋은 것으로 움켜 쥐었습니다. 불의지변을 당한 나는 그만 너무 분하여서 큰년의 손을 쥐며 뿌리치니 그는 담박에 달려들어 나의 머리를 잡아 숙치며 꼬집어 당겼습니다. 그의 힘을 잘 아는 나는 어쩌는 수 없이 힘껏 뿌리치고 도망쳤습니다. 그는 씩씩하며 무섭게 따라왔습니다.

집으로 내려가려니 어머니가 아직도 안 오셨을 터이고 그래서 산 위로 도망질치다가 내가 매일 잘 오르는 살구나무를 타고 잔나비 모양으로 발발 기어올랐습니다. 그가 나무를 타지 못하는 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큰년이는 살구나무 아래에까지 와서는 나무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으니 마치 겨울에 눈 내리는 것처럼 꽃송이가 펄펄 날아 내 머리와 옷이며 그 애에게까지 빨갛고 희게 떨어집니다.

한참이나 흔들던 그는 싫증이 났던지 뭐라고 욕을 퍼부으며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나는 적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어서 바삐 어머니가 오시기를 눈이 아물아물하도록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내 눈이 뚫어지도록 바라보던 어머니가 오실 그 길! 이 봄을 맞는 나에게 아직까지 그 길이 아득하게 나타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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