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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회 회관을 X X 건축하기 위하여 회원끼리 소인극(素人劇)을 하게 되었다. 문예부(文藝部)에 책임을 지고 있는 나는 이번 연극에도 물론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시골인 만큼 여배우(女俳優)가 끼면 인기를 많이 끌 수가 있다고들 생각한 청년회 간부들은 여자인 내가 연극에 대한 책임을 질 것 같으면 다른 여자들 끌어내기가 편리하다고 기어이 나에게 전 책임을 맡기고야 만다. 그러니 나의 소임은 출연할 여배우를 꾀어 들이는 것이 가장 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트레머리’가 사∙오인에 불과하는 이 시골이라 아무리 끌어 내어도 남자들과 같이 연극을 하기는 죽기보담 더 부끄러워서 못하겠다는 둥, 또는 해도 관계없지만 부모가 야단을 하는 까닭에 못하겠다는 등 온갖 이유가 다 ─ 많아서 결국은 여자라고는 아 ─ 무도 출연(出演)할 사람이 없이 되고 부득이 남자들끼리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밤마다 밤마다 X X 학교 빈 교실을 빌려서 연극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습을 시키고 있는 나는 아직 예전 그대로의 완고한 시골인 만큼 ‘일반에게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여러 가지로 완고한 시골에서 신 여성(新女性)들의 취하기 어려운 행동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른 위원들과 같이 여러 번 토론도 하여 보았으나 내가 없으면 연극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는 다른 위원들의 간청도 있어서 나는 끝까지 주저하면서도 끝까지 일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그 공연(公演)을 이틀 앞둔 날이다. 학교 사무실 시계가 열한 시를 치는 소리를 듣고야 우리는 연습을 그쳤다.

딸자식은 의례히 시집갈 때까지 친정에서 먹여주는 것이 예부터 해오던 습관이라면 나도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머니의 한낱 딸이니 놀고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언마는 오빠 X X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보통 학교 교원으로 있던 내가 여자 청년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일조에 권고사직(勸告辭職)을 당하고 나서는 그대로 할 일이 없으니 부득이 놀 수밖에 없이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먹고는 식구가 단촐한 얼마 안 되는 집안 일이 끝나면 우리 어머니의 말씀마따나 빈둥빈둥 놀아댄다. 어떤 때는 회관에도 나가고 또 어떤 때는 가까운 곳으로 다니며 여성단체(女性團體)를 조직하기에 애를 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또는 밤이 새도록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을 하는 것 뿐이다. 한 푼도 벌어들이지는 못하지마는 어쩐지 나는 나대로 조금도 놀지 않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종종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 어쩌느냐!”

고 벌이 없는 것을 한탄하시기도 한다.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까운 재주가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생각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구 바빠 죽겠는데…….”

하고 딴청을 들이댄다.

“쓸데없이 남의 일만 하고 다니면서 바쁘기는 무엇이 바빠!”

하며 나를 빈정대신다.

내가 밤낮 남의 일만 하고 다니는지 또는 내 할 일을 내가 하고 다니는지 그것은 둘째로 하고라도 나의 거동(擧動)은 언제든지 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오늘은 X X 에서

‘여자X X 회를 발기(發起)하니 와서 도와다오…….’

하니 거절할 수 없고 ─ 또 오늘은 또 X X 가 저의 집이 조용하다니 그곳에도 가서 하려던 얘기를 해 주어야겠고 ─ 오늘은 또 X X 회로 모이는 날이니, 내가 빠지면 아니 될 것 ─ , 동무가 보내준 책이 몇 권이나 있는데 그것도 읽어야겠고 ─ 여러 곳에서 편지가 왔으니 꼭 답을 해 주어야겠고, 이것이 모두 나에게는 못 견딜 만치 바쁘고 모두가 해야만 할 일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남의 눈에는 한 푼도 수입이 없으니 나는 날마다 놀기만 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 어머니 어머니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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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몇 해든지 자꾸 나 혼자만 바쁘고 남의 눈에는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서 먹기가 좀 어색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교원으로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이나마 받아서 꼭꼭 어머니 살림에 보태어 드릴 때는 내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했었고 또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도 그만 참고 있으면 어머니가 척척다 ─ 해 주시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내 마음에 맞도록 해 주시려고 애를 쓰시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의레 해야 할 말도 하기가 미안하고 아무리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불평을 말할 수가 없어졌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도 어디가 아프다는 말조차 하기가 미안하여진다.

병원! 약갑! 이것이 연상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이 오륙인 씩이나 모두 장정의 밥을 먹으면서 일년 내내 한 푼도 벌이라고는 하는 인간이 없구나!”

하며 어머니의 얼굴이 좋지 않아지면 나는 말할 수 없는 미안스러움과 죄송스러운 감정에 북받치고 만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너무 심하게 구시면 어떤 때는

“아이구 어머니도 내가 벌지 않으면 굶어 죽는가베. 아직은 그래도 먹을 것이 있는데!”

하는 야속스런 생각도 난다. 그러나 이 생각도 감옥에 들어 계시는 오빠를 위하여 차입을 한다. 사식을 댄다, 바득바득 애를 쓰는 어머니 모양을 생각하면 그만 가슴이 어두워지고 만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대문이 닫혔으면 어떻게 하나. 어머니가 아직 주무시지 않으시어질까!”

하는 걱정과 함께

“지금 나에게도 무슨 돈이 월급처럼 꼭꼭 나오는 데가 있었으면…….”

하는 엉터리 없는 공상을 하기도 하였다. 가라앉지 않는 뒤숭숭한 가슴으로 조심히 대문을 밀었다. 의외로 대문은 소리 없이 열리었다.

“옳다, 되었다.”

나는 소리 없이 살며시 ─ 대문 안에 들어서서 도적놈처럼 안방 동정을 살피었다. 안방에는 등잔불이 감스릿하게 낮추어 있었다.

“어머니가 벌써 주무시는구나…….”

하는 반갑고 안심되는 생각에 갑자기 가벼워진 몸으로 가만히 대문을 잠그고 들어서려니까 안방 창문에 거무스름한 어머니 그림자가 마치 지나 가는 구름처럼 어른 하더니 재떨이에 담뱃대를 함부로 탁탁 쎄리는 소리와 함께 길 ─ 게 한숨을 하더니

“아이구 얘야, 글쎄 지금이 어느 때냐.”

하는 어머니의 꾸지람이라기보다는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이구 어머니 아직 안 주무셨구나’는 생각이 번뜩하자 나도 떨리는 한숨이 길게 나왔다. 방문 열고 들어서는 한숨이 아직 이불도 펴지 않고 어머니는 밀창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금까지 애꿎은 담배만 피우며 나를 기다리신 모양이다.

무겁던 가슴이 뜨끔 하여졌다 ! . 이러한 경우는 교원을 그만두게 된 후로는 수없이 당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대로 들어가 모르는 척 하고 누워 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가슴에 받치어 그대로 엉엉 마음 풀릴 때까지 울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문턱에 걸치고 들여다보던 반신(半身)을 막 방안에 들여놓으며 어머니 앞에 털컥 주저앉아서 하하 웃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 나는 울고 싶으리만치 괴로웠다. 내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도 침울하였던 까닭이다.

“이런…… 어머니 어디 갔다 오셨어요? 벌써 열 시가 되어 오는데…….”

나는 열두 시가 가까워 오는 것을, 다행히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노기를 덜고자 일부러 열 시라고 했다.

물끄러미 등잔만 쳐다보던 거칠어진 어머니의 얼굴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열 시?”

하며 나에게 반문하였다. 나는 또 가슴이 뜨끔하여졌다.

“열 시? 열 시가 무엇이냐? 열 시? 열 시라니! 열한 시 친지가 언제라고……. 벌써 닭 울 때가 되었단다.”

나직하게 목을 빼어 어안이 막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만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 같더니 그 피가 일제히 머리를 향하여 달음질쳐서 올라오는 것 같아서 진작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글쎄 지금이 어느 때라고! 네가 미쳤니? 지금까지 어디를 갔다 오노 말이다.”

그 말소리는 어머니다운 애정과 애달픔과 노여움이 한데 엉킨 일종 처참한 음조에 떨리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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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광으로 어머니의 노기를 풀려고 하하 웃고 시작한 나는 어머니의 이 말소리에 몸을 어떻게 지탱할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책상에다 머리를 내 어 던지며 주저앉았다.

남 부끄러운 줄도 어쩌면 “ 그렇게도 모르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갔다 오느냐 말이다. 네가 지금 몇 살이니? 응 차라리 나를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 나주든지!”

“가기는 어디를 가요? 연극 연습 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거기 갔었어요!”

나의 이 대답에 어머니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입을 벌린 그대로 얼굴이 틀어졌다.

“연극하는 데라니? 아이그 이 애 좀 보게. 그곳이 글쎄 네가 갈 데냐!

아무리 상것의 소생이라도 계집애가 그런 데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니? 모이는 자식들이란 모두 제 아비 제 어미는 모른다 하고 사회니 지랄이니 하고 쫓아다니는 천하 상놈들만 벅적이는데…….”

“어머니 잘못했어요. 남의 말은 하면 무엇해요. 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 주무세요.”

나는 덮어놓고 어머니를 재우려 했다. 나는 어찌하든지 어머니와는 도무지 말다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점점 어머니의 노기만 더할 뿐인 것을 나는 잘 안다. 이따금 어머니가 심심 하실 때에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면 옛 이야기 끝에 성인(聖人)도 시속을 따르란 말이 있지요.”

하며 이야기 꼬리를 멀리 돌려서 나의 입장과 행동을 변명도 하고 될 수 있는 정도까지 어머니를 깨우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그때는 나에게 감복이나 한 듯이

“너는 어떻게 그런 유식한 것을 다 아느냐.”

하고 엄청나게 감복하시며 기특하고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신다. 그때만은 나도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숨을 쉬이는 듯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나면서부터 완고한 옛 도덕과 인습에 푹 싸인 어머니이라 그만 씻어 버린 듯이 잊어버리고 다시 자기의 주관으로 들어간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머니와는 입다툼은 하지 않는다. 억지로 라도 어머니를 누워 재우려고 겨우 책상에서 머리를 들었다.

“아이그 어머니! 글쎄 그만 주무세요. 정 그렇게 제가 잘못했거든 내일 아침이 또 있지 않아요? 그만 주무세요, 네?”

어머니는 홱 돌아 앉아 담배만 자꾸 피우신다. 그 입술은 여전히 노여움에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참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것만 야단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제부터 그리지 말라고 하셨으면 그만이지! 에로나! 주무세요.

왜 저를 사내자식으로 낳으시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잠도 못 주무시고 하실 것이 있습니까?”

억지로 어리광을 피우는 내 눈에는 눈물이 펜 ─ 돌았다. 나는 얼른 닦아 감추려 하였으나 차디찬 널빤지 위에서 끝없이 떨고 있을 오빠의 쓰린 생각이 문득 나며 덩달아 솟아오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참 우스워 죽을 뻔 했어요. 이 주사 아들이 여자가 되어서 꼭 여자처럼 어떻게 잘하는지 우스워서 뱃살이 곧을 뻔 했어요. 모레부터는 돈 받고 연극을 합니다. 그때는 저녁마다 어머니는 공구경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참 잘해요.”

아무리 나는 애를 써도 어머니의 노기는 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점점 노기가 높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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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무릎에 손을 걸었다.

“글쎄 왜 이러느냐 내야 잘 때 되면 어련히 잘라구……. 보기 싫다. 내 눈 앞에서 없어져라. 계집아이가 무슨 이유로 남자들과 같이 야단이냐. 이런 기막힐 창피한 꼴이 또 어디 있어.”

어머니가 어디까든지 늦게 온 나를 이상하게 의심하여 자기 마음대로 기막힌 상상을 하여 가며 나를 더럽게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터져 오르나 그래도 이를 바둑바둑 갈면서

“어머니 잡시다!”

하고 떨치는 손을 다시 어머니의 무릎에 걸었다.

“내 팔자가 사나우려니까 천하 제일이라고 칭찬이 비 오듯 하던 자식들이……. 아이구 내 팔자도…… 너 보는데 좋다 좋다 하니 내내 그러는 줄 아니? 그래도 제 집에 돌아가면 다 욕한단다. 네 오라비도 그렇게 열이 나게 들 쫓아다니고 어쩌고 하더니 한번 잡혀간 뒤로는 그만이더구나. 너도 또 추켜내다가 네 오라비처럼 감옥 속에나 보내지 별 수 있을 줄 아니?”

나는 그만 도로 책상에 엎드렸다. 자신의 편함과 혈육(血肉)을 사랑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모르고 도덕과 인습에 사무친 저 어머니의 자기의 생명 같이 키워 놓은 단 두 오누이(男妹[남매])로 말미암아 오늘에 받는 그 고통을 생각할 때 나는 가슴이 다시금 찌들하고 쓰려졌다.

“저 어머니가 무엇을 알리? 차라리 꾸지람이라도 실컷 들어두자.”

하는 가엾은 생각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방안에 공기가 쌀쌀하게도 움직이더니 납을 녹여 붓듯이 무겁게 가라 앉는다.

“이애 밥 안 먹겠니?”

어머니의 노기는 한없이 올라가다가도 풀리기도 잘한다. 그것은 마음이 약하신 어머니는 모든 짜증과 괴롬에 문득 속이 상하시다가도 그 속풀이를 하는 곳이 언제든지 얼토당토 않은데 마주치고 만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 곧 눈물로 변해서 사라지고 만다.

언제든지 밤참을 꼭꼭 잡수시는 어머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지금까지 잡숫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가슴이 차게 놀랐다. 갑자기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안 먹겠어요.”

연극연습을 하던 때는 어느 정도까지 시장함을 느꼈었으나 지금은 모가지 까지 무엇이 꼭 찬 것 같았다. 뒤미쳐

“먹지 않어? 왜 안 먹어!”

어머니는 조금 불쾌한 어조로 다시 권하셨다. 잇따라 숟가락이 놋쇠 그릇에 칼칼스럽게 마주치는 소리가 났다. 얼마 후에 또다시

“이애 밥 먹어라. 네 오라비는 저렇게 떨고 있으련마는 그래도 나는 이렇게, 나는 먹는다. 저 나오는 것을 보고 죽을려고…….”

목 메인 한숨과 함께 숟가락을 집어 던진다. 나는 지금까지 참았던 울음이 와락 치받쳐 전신이 흔들렸다.

이윽고 다시 담배를 넣기 시작하시던 어머니가 지금까지의 것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은 부드러운 말소리로 다시 권하셨다.

“배고프지! 좀 먹으렴.”

나는 감격에 받쳐 다시 가슴 찌르르 하여졌다. 나 까닭에 썩는 속을 오빠를 생각하여 눌러버리고 오빠를 생각하여 애끊는 장을 그나마 조금 편히 곁에 앉힌 나를 위하여 억제하려는 가슴은,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가슴을 잘 안다. 그 괴로움을 숨쉴 때마다 느낀다.

기어이 몸은 일으켜 다만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보이고 싶으리만치 내 감정은 서글펐다.

천천히 마루로 나가시는 어머니가 얼마 후에 손에 식혜 한 그릇을 떠 가지고 들어오셔서 내 옆에 갖다 놓으시며

“밥 먹기 싫거든 이거나 좀 먹어라.”

나는 가슴이 터져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가엾은 어머니! 가엾은 딸! 담배 한 대를 또 피우고 난 어머니는 허리를 재이며 자리로 누우셨다 . 내가 이 식혜를 먹지 않으면 어머니 속이 얼마나 아프시랴! 오빠 생각에 넘어가지 않는 음식이라 또 내가 먹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많이 먹는 척 하시는 가엾은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나는 한 입에다 그 감주를 죄다 삼켜 버리고 크게 웃어서 어머니를 안심하시게 하고 싶은 감정에 꽉 찼으나 전신은 물과 같이 여물어졌다.

석유(石油)가 닳을까 하여 잔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이웃집 시계가 새로 한 시를 땡! 쳤다.

어머니가 후 ─ 한숨을 쉬셨다.

“아! 어머니! 가엾은 어머니. 어머니의 속을 알지 못하고 야속한 어머니로 만 여기는 줄 아시고 그다지 괴로워하십니까. 이 몸을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김(金)가에게 바치어 기뻐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잠시라도 보고싶을 만치 이 딸의 가슴은 죄송함에 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 에서 어머니를 마음 편케 모실 수가 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장래 나의 남편이 되기를 어머니 모르게 허락한 X X ─ . 그도 나와 같은 울음을 우는 불행과 저주에 헤매는 가난한 신세이외다. 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어머니를 편케 할까요! 그러나 나의 어머니여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가에게도 이 몸을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내일 밤도 빠지지 않고 가야 합니다.

“가엾은 나의 어머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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