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를 먹다
구름은 차림옷에 놓기 알맞아 보이고
하늘은 받다같이 깊다란하다.
한낮 뙤약볕이 쬐는지도 모르고
온 몸이, 아니 넋조차 깨온 아찔하여지도록
뼈져리는 좋은 맛에 자지러지기는
보기 좋게 잘도 자란 과수원의 목거지다.
배추 속처럼 핏기 없는 얼굴에도
푸른 빛이 비치어 생기를 띠고
더구나 가슴에는 깨끗한 가을 입김을 안은 채
능금을 부수노라 해를 지우나니.
나뭇가지를 더우잡고 발을 뻗기도 하면서
무성한 나뭇잎 속에 숨어 수줍어하는
탐스럽게도 잘도 익은 과일을 찾아
위태로운 이 짓에 가슴을 조이는 이 떄의 마음 저 하늘같이 맑기도 하다.
머리가닥 같은 실바람이 아무리 나부껴도
메밀꽃밭에 춤추던 벌들이 아무리 울어도
지는 날 예쁜이들 그리어 살며시 눈물지는,
그런 생각은 꿈 밖에 꿈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남의 과일밭에 몰래 들어가
험상스런 얼굴과 억센 주먹을 두려워하면서
하나 둘 몰래 훔치던 어릴 적 철없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자
그립고 우습고 죄 없던 그 기쁨이 오늘에도 있다.
부드럽게 쌓여 있는 이랑의 흙은
솥뚜껑을 열고 밥김을 맡는 듯 구수도 하고
나무에 달린 과일――푸른 그릇에 담긴 깍두기같이
입안에 맑은 침을 자아내나니.
첫 가을! 금호강[1] 굽이쳐 흐르고
이 벌판 한가운데 주저앉아서
두 볼이 비자웁게 해 같은 능금을 나는 먹는다.
주석
편집- ↑ 금호강(琴湖江)은 낙동강의 지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