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최남선)
나는 女子[여자]를 사랑하엿다.
그 女子[여자]의 일홈은 蕙玉[혜옥]이다. 나는 蕙玉[혜옥]이를 生覺[생각] 한 적도 업시 不知中[부지중]에 사랑하엿다.
엇지해서 사랑하는지?
이것은 永遠[영원]한 生涯[생애]에 지나지 아니한 實在[실재]를 사랑하며, 女子[여자]의 精神[정신]과 思想[사상]을 사랑하며,
女子[여자]의 愛情[애정]을 사랑하며, 女子[여자]의 붉은 입살 에셔 나오는 말…… 即[즉] 女子[여자]의 深妙[심묘]한 靈魂[영혼]에 서 물과 갓치 임업시 흘너 나오는 모든 말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다만 사랑하는 것 하나이다. 나는 蕙玉[혜옥]이를 맛나서 사랑하는 것 하 나이다. 나는 一年間[일년간] 蕙玉[혜옥]의 愛情[애정], 蕙玉[혜옥]의 팔, 蕙玉[혜옥]의 눈, 蕙玉[혜옥]의 衣服[의복], 蕙玉[혜옥]의 말을 사랑하 야 낫과 밤을 헤아리지 안코, 日氣[일기]가 좃튼지 凶[흉]하든지 상관할 것 업시 갓치 지냇다.
그러치만 지금은 蕙玉[혜옥]이가 죽엇다. 엇덧케 하나? 나는 알 수 업 다……나는 무엇이든지 알 수 업다.
蕙玉[혜옥]이 어느 비오는 날 밤에, 비를 맛고 도라와서 그 잇튼날붓터 咳 嗽[해수]를 始作[시작]하더니, 그 咳嗽[해수]가 一週日[일주일]이나 繼續 [계속]하야, 畢竟[필경] 床[상]에 눕게 되엿다. 엇더케 하면 이러날가?…… 나는 엇절줄을 모르겟다.
醫師[의사]는 와서 疹察[진찰]하며 看護婦[간호부]는 蕙玉[혜옥]의게 藥 [약]을 먹인다.
蕙玉[혜옥]의 손은 더웁고 머리는 불갓치 겁고 眼色[안색]은 푸르다. 나 는 무서워 말할 수 업다.
나는 벌셔 모든 일을 이졋다. 모든 일을! 모든 일을 다!
蕙玉[혜옥]이는 죽엇다.
나는 蕙玉[혜옥]이가 저녁밥 조금 먹든 일을 記憶[기억]할 이다. 슬프 다! 蕙玉[혜옥]의 져녁밥……蕙玉[혜옥]이 이 世上[세상]에셔 먹은 最後[최 후]의…….
看護婦[간호부]가 猝地[졸지]에「악!」소리를 지른다. 아랏다. 나는 벌셔 아랏다. 이 瞬間[순간]에는 조곰 前[전] 일도 말할 수 업스며, 무엇이든지 할 수 업섯다.
나는 牧師[목사]를 보앗다. 이 牧師[목사]는 非常[비상]히 親切[친절]한 사람이다. 牧師[목사]가 蕙玉[혜옥]의 일에 對[대]하야 말할 , 나는 無心 中[무심중]에 울엇다.
여러 사람들이 蕙玉[혜옥]의 葬式[장식]에 關係[관계]잇는 일을 내게 와서 議論[의논]하나, 나는 아모 말도 무엇이라고 對答[대답]지 못하얏다. 蕙玉 [혜옥]이를 棺[관] 속에 넛코 방망이로 隱釘[은정]박는 소리가 分明[분명] 히 들닌다.
아 ─ 하나님이여!
蕙玉[혜옥]이를 무덧다! 蕙玉[혜옥]이를! 속에! 會葬[회장] 보라 온 모 든 女子[여자]들은 운다. 이 사람들은 蕙玉[혜옥]의 親舊[친구]들이다. 나 는 逃亡[도망]해 와서 길노 한참 도라다니다가 집에 도라왓다.
나는 蕙玉[혜옥]이가 全[전] 生涯[생애]의 남져지를 버리고 死亡[사망]한 後[후], 내 집에 잇는 寢室[침실], 寢床[침상], 其他[기타] 모든 日用[일 용] 諸具[제구]를 無意識中[무의식중]에 도라보앗다. 나는 激烈[격렬]한 悲 哀[비애]와 愁心[수심]에 잡혀 문을 열고 로 나가랴고 할 지즘에, 蕙玉 [혜옥]이를 保護[보호]하고 蕙玉[혜옥]이를 에워쌋든 房[방]에 잇는 모든 物件[물건]과 갓치 살 수 업슬 것갓치 生覺[생각]이 낫다. 이 모든 物件[물 건]은 蕙玉[혜옥]이의 肉體[육체]와 呼吸[호흡]의 一部分[일부분]에 屬[속] 하얏든, 만흔 分子[분자]이든 것임으로, 無形中[무형중]에셔 모든 過去[과 거]의 일을 말하는 것 갓다.
내가 門[문]압헤 잇는 帽子[모자]를 여 쓰고 나가랴고 할, 房[방]에 걸닌 큰 體鏡[체경] 압흘 지나게 되엿다. 이 體鏡[체경]은 蕙玉[혜옥]이 出 入[출입]할 마다, 머리에서 발지 맵시를 보든 것이다. 果然[과연] 이 體鏡[체경]은 蕙玉[혜옥]이의 風采[풍채]와 맵시를 자조자조 反射[반사]하 든 거울이다.
나는 한참 셔서 거울을 보앗다. 平面[평면], 廣濶[광활], 空虛[공허]한 거 울을 보앗다. 이 거울은 蕙玉[혜옥]이의 몸 全體[전체]를 容納[용납]하얏든 것이다. 아! 나는 참 感激[감격]한 눈으로 蕙玉[혜옥]이를 본 거와 갓치 記 憶[기억]이 된다.
아! 記憶[기억]이여! 이 거울을 生覺[생각]하게 한 記憶[기억]이여,
이 거울은 悲哀[비애]의 苦悶[고민]을 堪耐[감내]하는 것갓다. 맘이 거울 과 갓치 모든 物件[물건]에 反射[반사]하다가 사라진다. 아! 참 愛情[애정] 과 사랑 가운데 늘 잇는 사람은 幸福[행복]스러운 人生[인생]이다. 나의 苦 痛[고통]은 엇지하야 이럿케 激烈[격렬]한지!
나는 누가 미는 것갓치 집밧게 나와 生覺[생각]도 업시, 計劃[계획]도 업시, 蕙玉[혜옥]의 무덤 잇는 便[편]으로 발을 옴겻다.
나는 蕙玉[혜옥]이의 무덤을 보앗다……極[극]히 簡單[간단]한 한 무덤은 사랑으로 덥흔 것갓치 뵈인다. 大理石碑[대리석비]에 이 아래 말을 삭여 세 웟다.
「蕙玉[혜옥]은 사랑하엿다 사랑하다 죽엇다」
蕙玉[혜옥]이는 벌서 썩어셔 땅 아래, 가로 두러 누엇슬 터이니, 참 말할 수 업는 慘酷[참혹]한 일이다. 나는 에 머리틀 대이고, 突然[돌연]히 한 참 우는 동안에 黃昏[황혼]이 되엇스니, 참 理性[이성]이 업는 熱望[열망] 을 가졋다. 나는 所望[소망]이 업는 愛[애]의 影[영]을 熱望[열망]한 것이 다.
蕙玉[혜옥]이와 지내는 最後[최후]의 밤 일을 生覺[생각]햇다. 最後[최후] 의 밤!
나는 蕙玉[혜옥]이 무덤 압헤셔 울엇다. 한참 보다가 이리져리 아모 할 일 업시 도라다녓다.
왜 이럿케 하엿는지?
죽엄은 人生[인생]의 지나가는 楷梯[해제]다. 우리가 이 죽엄에 達[달]할 에는 참 아모것도 업다. 田畓[전답], 金錢[금전], 富貴[부귀], 名譽[명 예], 榮華[영화]…… 다 所用[소용]이 업다. 蕙玉[혜옥]의 무덤은 이 事實 [사실]을 證明[증명]한다. 나는 무덤압헤셔 물러나온다…… 永遠[영원]히 葬事[장사]지낸 屍體[시체]는 흙에 한데 셕겨, 十字碑[십자비]와 갓치 썩고 말 것이다. 나는 홀노 되엿다. 참 홀노 되엿다. 綠蔭[녹음]진 축축한 나무 아래 고개를 숙이고 홀노 안졋다. 한참 잇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밤이 아조 되여 四面[사면]이 다 캄캄하다. 나는 묵어운 몸을 動[동]하야 안졋든 곳을 나셔 천천히 발을 이리 저리 놋는다.
다시 蕙玉[혜옥]이를 만날 수 업다. 손으로 무덤을 두다리면서 아모리 울 지라도 만날 수 업다. 나는 空然[공연]히 무엇을 찻는 것쳐럼 도라다녓다. 盲人[맹인]이 自己[자기]의 가는 길을 더듬는 모양으로 손으로 더듬더듬 찻 고 도라다녓다. 나의 손에는 石[석], 鐵柵[철책], 花環[화환], 다 말은 묵금이 부듸친다. 참 어둔 밤이다.
달도 업다! 참 어둔 밤이다.! 나는 두 줄노 나라니 잇는 무덤 새이의 좁은 길을 지날 에 무셔운 生覺[생각]이 난다. 무덤! 무덤! 무덤! 다 무덤이 다! 나의 前[전], 後[후], 左[좌], 右[우] 모든 周圍[주위]에 이곳 져곳이 다 무덤이다! 나는 더 오래 걸을 수가 업셔, 한 무덤 우에 거러안졋다. 내 다리는 하게 구든 것 갓다. 나는 내 心臟[심장]이 鼓動[고동]되는 소리를 드를 수 잇다. 안졋는 近處[근처]가 두런두런하면서 다른 소리도 들 닌다. 말도 아니오, 그 소리는 무엇인가? 어둔 밤에 드러가 볼 수도 업는 神秘的[신비적]인 地下[지하]에서, 만흔 사람들의 死骸[사해]가 뭇친 地下 [지하]에서 이 소리가 나오나?
나의 腦[뇌]는 어지럽다.
그 곳에 멧時間[시간] 동안 셧셧는지! 나는 猝地[졸지]에 急[급]한 苦悶 [고민]의 부르지지는 소리에 놀나서 어리둥절하얏다.
내가 거러안졋든 大理石[대리석]의 石板[석판]이 動[동]하는 것갓치 보인 다. 實際[실제] 이것을 누가 흔드는 것갓치 動[동]한다. 나는 무덤 틈으로 어가 숨어셔 내다본다. 그 돌은 이 셧고, 骸骨[해골]만 남은 屍體[시 체]가 무덤에셔 나와, 그 돌에 가 기대고 셧다. 限[한]업시 어둔 밤이지마 는, 나는 分明[분명]히 엇던 무덤에 잇는 十字碑[십자비] 우에 삭인 글자를 닑을 만하다.
「吳熙鳳[오희봉] 享年[향년] 五一歲[오일세]이다. 그는 家族[가족]을 사랑하얏스며 親切[친절]한 善人[선인]으로, 神[신]의 御前[어전]에 平安[평안]히 간 故[고]로 이에 記[기]하노라」
지금 그 骸骨[해골]만 남은 屍體[시체]는 十字碑[십자비] 우에 삭인 글을 익더니, 에 뭇친 족한 小石[소석] 한개를 파서, 碑[비]에 삭인 글을 긁 어 업새고 ― 손구락 으로, 이 아래 쓴 글을 썻다. 그 글자는 아 희들이 셕냥을 방 벽에 건 흔젹과 갓치 뵈인다.
「吳熙鳳[오희봉]은 享年[향년] 五一歲[오일세]이다. 제 父母[부모]를 虐 待[학대]하고 家督相續[가독상속]할 일만 熱望[열망]하얏스며, 안해를 苦生 [고생]식혓스며, 子女[자녀]들을 酷毒[혹독]하게 렷스며, 親舊[친구]를 속이고 盜賊[도적]질하다가 慘酷[참혹]한 죽엄을 하엿나니라」
그 屍體[시체]는 제가 쓴 글을 한참 본다. 내가 다시 도라다본즉 아모것도 업다.
나는 무셔운 줄도 모르고, 半[반] 열닌 棺[관] 속에 잇는 蕙玉[혜옥]의 屍體[시체]에 달녀드러 보앗다.
얼골은 壽衣[수의]에 싸여 뵈이지 아니하지만은, 나는 멀니 蕙玉[혜옥]의 몸을 보앗다.
나는 大理石[대리석] 十字碑[십자비]에 삭인「蕙玉[혜옥]이는 사랑 하엿다 사랑하다 죽엇다」라고 한 碑文[비문]을 보앗다.
이것을 事實[사실]과 갓치 生覺[생각]할 에 해는 東便[동편]에셔 오르 고, 나는 無意識[무의식]하게 자리에 누엇다.
<一九二一年[일구이일년]靑年[청년] 七․ 八月號[칠 팔월호] 第一卷 [제일권]第五號[제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