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몽금포

언제나 여행하기까지 한가로움을 갖지 못한 나는 이때까지 여행한 일이 극히 적다 몇 번 고향을 . 다녀온 것뿐 외에 전무하다고 해도 옳을 게다. 허나 구태여 쓰라니 고향의 접근지인 몽금포 이야기나 또 끌어내볼까 한다.

“에크! 또 나온다. 또 숨는다. 그 빛이 왜 저리도 푸를까. 심심산곡에서 별만 보고 자랐음인지 그 빛이 별인 양 속기 쉽고, 푸른 하늘을 그리워 애를 태울꼬. 그 머리 다소곳 숙이고 수심(愁心) 빛이네.”

2년 전에 내가 귀향했을 때 몽금포를 찾아가는 길에 송림 틈에 겸손스레 피어 있는 도라지꽃을 보고 전속력을 다하여 닫는 자동차에서 즉흥으로 그린 글의 한 폭이거니와 지금도 내 머리에 그 도라지꽃이 파르스름히 남아 있다.

하늘도 보이지 않도록 첩첩히 얽힌 송림, 마치 구름인 양 피어서 뜨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파닥거려 날 때, 묵은 솔잎은 봄비소리를 내고 떨어지오.

그곳에 송진내 향불인 듯 거룩하오. 다방솔 포기 뒤에 숨어 갸웃이 내다보는 도라지꽃, 내 치마빛보다 더 푸른걸.

“내 비록 몸은 조그마나 맘이야 저 바다에 뒤지랴!”

섬몽금이 바위 위에 서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읊었던 글이다. 내 지금 붓을 들고 종이를 대하니 서해가 암암(暗暗)히 떠오른다. 세속에 물들었던 내 가슴이 탁 터져버리고 하늘에 닿을 듯한 그 수평선이 이 내 가슴에 힘있게 좍 건너가던 그 찰나가 지금 이런 듯 가슴에 출렁거린다.

수평선 위에 깨울히 걸려 있는 저 흰 돛폭, 예전 보름 지난 쪽달 같으이.

밤하늘에 별과 달이 빛난다면 저 바다엔 어선의 돛폭일지니, 망망한 바다에 저것이 있길래 내 집안같이 아늑해 보이고 친하고 싶은 맘에 사람들의 가슴은 들먹이오.

손을 내밀어 오요요 부르고 싶어지는 까만 섬들, 꼭 강아지 같애. 아직 채 자라지 못한 강아지가 어미개 궁둥이만 쪼르르 미쳐 다니는 듯한 저들. 바다 품에 꼭 안겨 있어 머리 숙여 가만히 들으니 섬기슭을 찰싹찰싹 스치는 파도소리가 내 어머님의 입 속 노래보다 더 부드러우이.

뫼를 이루고 재를 이루어서까지 바다를 따라나온 사장(沙場) 아가씨, 그 몸의 소복(素服)이 아담하오. 거룩하오. 옛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녹기금(綠綺琴) 소리에 탁문군 (卓文君)의 그 뜻이 움직였다 하거니와 그대 또한 탁문군의 넋이 들어 이에 나왔노. 파도소리에 그 맘이 진실로 움직임이었누.

오늘도 사장 을 치는 (沙場) 파도소리 여전하오리. 그 적은 모래알이 하나하나 파도에 적시우리로다. 그곳에 금실 같은 별이 웃고 모래가 화하여 된 듯한 게들이 그 빛을 잔등에 떠메고 바람같이 나부낄 테지. 바다 비린내 나오.

눈같이 희고도 부드러운 모래 위에 떨기떨기 엎드려 있는 해당화, 그 붉은 꽃송이는 필경 바다를 향한 사장 아가씨의 일편단심이리로다. 바다가 아니면 따르지 않는 그대, 같은 맘 언제나 한가지리니, 올해도 불이 붙는 듯 피어 있으리. 피를 뿌린 듯이 피어 있사오리.

쏵 내밀치는 파도소리 내 붓끝에 적시울 듯. 문득 나는 붓을 입에 물고 망연히 저 하늘을 바라보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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