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서재에서 무엇을을 쓰던 최순호는 그 아내 경희의 부르는 소리에 붓을 멈추었다.

“여보세요. 거기 계세요.”

남편의 대답이 늦으니까 재차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으스름한 초승달 빛이 소리 없이 흐르는 뜰을 지나 순호의 서재 방으로 올려 들어오는 그 소리는 몹시 거칠다. 그러자 뒤따라,

“으아 엄마―.”

하는 어린애 울음소리가 처량히 들린다.

“왜 그러우.”

순호는 아내의 소리에 맞장구를 치면서 ‘교의’에서 일어섰다.

“이리 좀 나와요. 누가 애를 버리고 갔어요.”

그 소리는 날카롭게 순호의 신경을 찌르르 울렸다. 순호는 교의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순호는 아주 진중한 태도로 천천히 걸어서 밖으로 나간다.

“할멈.”

경희는 황겁스럽게 할멈을 부르더니,

“이 뒷집 언니 좀 오시래! 큰일났네.”

퍽 황황해 한다.

순호는 마루 아래 내려섰다. 서늘한 초가을의 으스름 달빛은 퍽 처량히 뜰을 엿보고 있다. 뜰에는 어느새 여자의 그림자가 대여섯이나 어른거린다.

“얘, 너 웬 애냐? 응. 울지 말고 이리 오너라.”

순호는 천천히 대문간으로 걸어나간다.

어득시러한 대문 그림자 속에 유령같이 어른거리는 조그마한 그림자는,

“어엉 엄마― 잉잉 흑흑.”

구슬피 부르짖으면서 밖으로 엉금엉금 나간다.

“아이 어서 붙잡아요. 어디로 가리다.”

첨부터 지접을 못하는 경희는 더욱 어쩔 줄을 모른다.

“얘, 울지 마라! 너 웬 애냐? 응. 저리가자.”

순호는 어린것을 안더니 문간 바닥에서 넌짓넌짓 흰 포대기를 집어들고 들어온다.

어린것은 목을 놓아 악을 쓰고 운다. 붉은 몸뚱이에 찬물을 받은 사람같이 흑흑 느껴가면서 엄마를 부르는 그 소리는 차고도 혹독한 세상을 저주하는 듯이 마디마디 설움이 피어서 오장이 스러지는 듯하다.

“그건 뭐라구 거기 놔요. 괜히 더치리다. 우리 집에 애가 없는 줄 알고 길러 줄까 해서 버린 게지?”

어린것을 안아다가 마루에 놓으려는 순호를 보면서 그 아내 경희는 발악하듯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어떡하나 ?”

순호는 어쩔 줄 모르고 주저거린다.

이때 웬 여자의 그림자가 문간에 급히 나타나더니,

“이게 웬일이야.”

하면서 마루칸으로 간다. 그 여인은 유명한 전도 부인이다. 서재 유리창으로 흘러오는 전등불 빛은 뜰 화단을 스쳐서 건너편 마루의 한 귀퉁이를 밝게 비추었다.

“아이 아니에요. 누가 문간에 애를 버리고 갔어요. 저를 어떡해요?”

경희는 큰 짐이나 진 듯이 걱정이 자심하다.

“아이 끔찍해라? 그래 누가 봤나?”

그 여자의 소리는 물에 빠진 사람 같다.

“지금 금방 할멈이 보고 일르기에 뛰어 나오니 참말이겠지 ?”

“그래 할멈, 버리고 가는 사람을 못 봤나?”

획 돌아서서 할멈인지 어둑한 처마 그늘 속에 서 있는 그림자를 본다.

“아 지금 막 나가려는데 문간에서 울음소리가 나갔지요. 그래 뛰어가 보니 웬 애가 포대기 속에 꾸무럭꾸무럭하면서……어찌 무서운지, 누가 두고 갔는지 에구 끔찍두…….”

할멈은 기가 막힌 듯이 서두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엑 망할 연놈들 같으니라구, 제 자식을 버리다니.”

그 여인은 혼잣소리같이 뇌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울기만 하니.”

순호는 마루에 놓고 걱정한다.

“글쎄 저것을 마루에 놓면 어쩐단 말이오?”

경희는 발을 동동 구른다.

“울지 마라!”

언니란 여자는 애를 향해서 표독히 소리를 지른다. 어린것은 회피키 어려운 권력 아래서 행여나 구호자를 바라듯이 두리번두리번하면서 폭포같이 쏟쳐나오던 울음을 흑흑 꺽꺽 그친다.

“얘, 네가 이름이 뭐냐, 응?”

최순호는 어린것을 보면서 물었다. 그는 이마를 찡그렸다. 어린애는 무섭다는 듯이 머리를 돌리면서 또 울음을 낸다.

“아앙 엄마― 흑흑.”

“울지 마라. 귀 아프다.”

어린것을 돌아 싼 무리는 위협과 조소와 모욕과 멸시로 그의 울음을―그가 기껏 울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울음까지 구속한다.

“할멈, 애를 업어다가 종로 경찰서로 가져가게, 응!”

할멈은 꼴을 찡기면서 어린것을 업고 나간다.

“엑 끔찍하다! 자식을 버리다니!”

최순호는 혼잣말처럼 뇌이면서 업혀 나가는 어린것의 뒤를 바라본다.

수수하던 마당 안은 잠깐 새에 무거운 침묵에 지배되었다. 달은 어느새 서산에 걸려서 서쪽 집 그림자가 마당을 흐리었다. 마당에 고요히 서서 잠깐 새에 꼼짝하지 않은 사람의 그림자들은 송장을 받치어 세워 논 듯하다.

차고도 혹독한 세상을 마디마디 저주하듯이 할멈에게 업혀 가면서 지르는 그 쥐어짜내는 듯한 어린애 울음소리는 점점 멀리 들리다가 스러졌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눈과 귀에는 그 어린것의 참혹한 형상과 애처로운 소리가 그저 남아 있었다.  

“엄마, 밥 주, 흐흥 흥!”

금년에 네 살 나는 학범이는 또 조르기 시작한다. 벌써 세 끼나 굶은 학범 어미는 배가 고프다 고프다 못해서 이제는 배만 허부러지고 걸으려면 다리가 부들부들 한다.

“밥? 흥, 밥이 웬 밥이냐?”

학범 어미도 처음에는 그 아들의 입술이 마르고 배가 등에 붙은 것을 보든지 그 남편이 빈 지게를 걸머지고 어두워서 추들추들히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긍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소리 없는 설움에 흐르는 줄 모르게 눈물이 때 묻은 옷깃을 적시더니, 그것도 너무 여러 번이니 이제는 시들하다. 시들하다는 것보다 극도의 빈궁으로 일어나는 악이 머리끝까지 바싹 올라서 만사에 화만 부럭부럭 나고 아무것도 귀찮았다.

“으응흥! 엄마― 밥 주어 응, 엄마―.”

그 소리는 억지로 짜내는 소리 같다.

“퍽은 못 견디게 군다. 네 아비더러 달라려무나! 나도 인제는 모르겠다.”

마대 조각을 깔아 놓은 움 속에 드러누웠던 학범 어미는 귀찮은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앉았다. 속이 허영허영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눈앞이 갑자기 까매졌다. 그는 머리를 붙들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앙― 아아 흥 밥을 주어, 흥흥 잉―.”

학범이는 아무 응종 없이 쓰러져 있는 어미를 보더니 더욱 갑갑한지 쥐어짜내는 소리를 더 크게 지르면서 발버둥을 친다.

콧구멍만한 드나들 거적문 하나를 달아 놓은 움 속은 저물어 가는 황혼 빛 속 같다. 모두 빛을 잃어서 그 속에서 움직거리는 사람조차 유령 같은 느낌을 준다.

이슥하더니 학범 어미는 슬그머니 일어난다.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판한 거적문을 내다본다.

학범은 엄마 곁으로 앉은걸음질해 가면서,

“엄마 배고파 응, 엄마 밥 주어!”

“이 자식이 왜 이리 성화냐? 응.”

그는 무릎에 올라앉은 어린것을 사정없이 획 밀쳤다. 어린것은 뒤로 나가자빠져서 머리를 땅바닥에 탕 부딪혔다.

“으아! 엄마―.”

“뼈를 갈아 먹어라. 네 아비 죄지 내 죄냐.”

그는 이렇게 혼자 푸닥거리를 놓았다. 그러나 땅바닥에 머리를 내치고 우는 학범이를 볼 때 알 수 없이 가슴이 짜르르 전기를 받는 듯하였다. 그는 잠깐 새에 자기의 배고픈 것까지 잊었다. 그 아들의 주린 울음이 뼈에 짜깃짜깃 사무쳐서 견딜 수 없었다. 피라도 쭉쪽 뽑아서 그 아들의 배를 채워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도 저도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저주와 분원만 가슴에 바싹바싹 치밀어서 이 꼴 저 꼴을 다 안 보도록 깡그리 없애버리고 싶은 심사가 또 치밀었다.

아침에 나간 남편이 해가 저물도록 들어 안 올 적에야 수가 뜨이지 않아서 벌벌 매노라고 그런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살스러웠다.

김철호는 오늘도 새벽에 빈 지게를 등에 붙이고 문안에 들어왔다. 광화문 밖 움집으로 온 후로 이것이 그의 매일 하는 일과이다. 그는 뱃가죽이 착 달라붙은 등에 지게를 얹고 정거장으로, 큼직한 객주집으로, 종로로 짐을 얻을까 해서 싸대었다. 자기는 애달아서 다니건만 한 사람도 알은 척하지 않는다.

굶는 데는 단골이 박이다시피 된 철호였지마는 세 끼나 굶고 싸대일라니 땀만 부직부직 흐르고 등이 구부러서 걸음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도 신수가 궁할까! 호떡값이라두 얻어야 할 텐데!’

야글거리는 가을볕이 서쪽 산 위에 기울어지니 그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였다. 젖도 못 먹는 어린것과 그 에미가 칼칼히 마르는 형상이 눈앞에 선해서 애가 끊는 듯하다.

어느새 장안에는 전등이 눈을 떴다. 종로에는 파란 불빛 아래 야시장꾼이 버글버글 끓는다. 철호는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나오던 그 꼴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버글버글 끓는 야시를 힘없이 헤어 간다. 모든 것이 꿈 속 같다. 인력거에 실려서 지나가는 기생이나 단장을 휘두르면서 배를 내밀고 있는 신사나 요란히 외치는 “싸구려” 소리나 좌우 점방에 늘어놓은 화려한 물품이나 모두 어째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비치는 야시는 아무 의미와 빛 없이 보였다.

어디까지 왔는지 그는 터벅터벅 내려오다가 보니 바른편 말간 불빛 아래 윤기가 번지르르한 밀국수가 그득 놓였다. 그는 갑자기 식욕이 치밀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전부가 밀국수만 보였다. 그는 수난 듯이 팔을 벌리고 허둥허둥 달려들어서 그 국수를 집었다.

“엑 미쳤나 ?”

누가 소리를 치면서 두 눈에서 불이 번쩍나게 뺨을 치는 바람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이놈아, 그 더러운 손으로 이게 뭐냐?”

눈을 똑바로 뜨고 달라붙는 그자의 서슬에 정신 차린 철호는 그만 어청어청 들고뛰었다.

그는 광화문 밖 움집으로 왔다.

짚부스러기 양철 조각 떨어진 거적으로 에인 움집은 황혼 빛 속에 오랜 무덤 같다.

철호는 기침도 못 짓고 문 밖에서 지게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호떡 하나 못 사 들고 세네 끼나 굶은 식구 보기는 참말로 쓰린 일이다.

“날 잡아먹어라. 밥이 무슨 밥이냐?”

“흥! 으응…….”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철호는 귀를 기울였다.

“응 밥 주, 응 엄마―.”

“이 자식아, 왜 이 성화냐? 응. 이 망할 자식 같으니라구.”

여편네는 악을 빡 쓰면서 어린것을 툭탁 쥐어박는 소리가 들렸다.

“아야 아― 에고고…….”

지르는 학범이 소리는 숨이 끊어지는 듯하다. 철호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이 자식아, 귀 아프다. 울음을 안 그칠 테냐?”

또 탁탁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애고고……엄마! 으응아 아.”

철호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떠올랐다. 아니 분노라는 것보다도 저주였다. 그는 거적문을 탁 지르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년! 오라를 질 년 같으니라구.”

그는 두 눈에 불이 헹해서 어둑한 속에서 구물거리는 여편네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왜 남의 머리는 쥐어 응! 왜 남을 못살게 굴어!”

여편네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줄로 쇠를 쓰는 듯이 어둔 공기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년아, 철없는 것을 달래지는 않고 웬 발악이야? 응, 발악이 웬 발악이냐?”

그는 한 손으로 머리채를 감아들고 한 손으로는 여편네의 등을 사정없이 쾅쾅 때린다.

“애고고 사람 살리우! 절로 못 죽어 하는 것을 어디 실컨 때려라. 야 이놈아, 그러지 말고 뼈를 갈아 먹어라. 응응 흑흑.”

여편네는 발악을 하면서 목을 놓아 통곡을 친다.

“야 이년아! 이 소리를 못 그칠 테냐?”

이번에는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모은다.

“응 끽!”

발길에 가슴을 채인 여편네는 외마디 소리를 치고는 그만 거꾸러져서 잠잠하다.

“망할 년 같으니라구.”

철호는 숨이 차서 어깨를 들썩들썩하면서 쓰러진 여편네를 노려본다. 이제는 집안이 캄캄하여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이 자식, 왜 이리 우니 ?”

어미 아비 싸움에 놀라서 더욱 소리를 지르고 우는 학범이는 그저 어둔 구석에서 쿨쩍쿨쩍 응응 한다.

“못 그칠 테야, 이 자식, 저리 가라, 왜 뒈지지 못하니 ?”

철호는 울음 나는 구석을 향하여 발길을 홱 던졌다. 발길에 채인 학범이는 또,

“애고고…….”

하면서 운다.

철호의 가슴은 뭉클했다. 굶주린 처자를 멋없이 때린 것이 퍽 후회스러웠다. 전신의 피가 다 말라서 백골이 갈리는 소리 같은 학범의 소리는 더욱 들을 수 없다. 차라리 그 소리를 피하여 이 꼴 저 꼴 보지 말고 어디라 없이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편네고 자식이고 어느 굶지 않을 데 보내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 할 수 없이 된 자기 신세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그 자리에서 알 수 없는 커단 검은 그림자에 눌리는 듯하였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 앉아서 무얼 생각하더니,

“학범아, 내게 업자. 호떡 사 주마.”

하고 어둑한 구석을 엿보듯이 본다. 그 소리는 부르르 떨리는 절망자의 소리 같았다.

학범이는 울음을 뚝 끊더니 부시럭부시럭 일어나서 아비 등에 업힌다. 철호는 너저분한 포대기에 싸 업고 집을 나섰다. 그의 가슴은 무슨 큰 불상사를 예기하듯이 울렁거렸다.

철호는 무덤같이 늘어진 움집 사이로 힘없이 걸어나갔다. 쓸쓸한 밤공기 속을 흘러내리는 파란 초승달 빛은 께저분한 냄새가 흐르는 땅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바람결에 문안으로 스쳐 오는 분주잡답한 소리는 꿈속같이 들렸다.

철호는 집을 돌아보고는 한참씩 서서 주저거렸다. 그의 가슴은 뿌지지하면서 울렁거렸다. 천 길이나 되듯이 까맣게 높은 한강철교가 안개 속에 잠긴 듯이 그의 눈앞에 얼푸름히 나타났다. 따라서 졸음이 올 듯이 그물그물 고요히 흐르는 강물도 보였다. 커단 집 대문간도 그의 머리에 언뜻 떠올랐다.

“아이구 학범아!”

거품을 꾸직꾸직 몰고 발악을 쓰면서 날뛰는 아내의 그림자도 보이는 듯하더니 뒤따라,

“엉엉 엄마 애애.”

하면서 개굴창에서 헤매는 학범의 꼴도 뵈는 듯하다. 철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무의식 가운데 등에 업힌 학범이를 만지면서 넘어다보았다. 학범이는 등에 뺨을 붙이고 고요히 엎드렸다.

‘아아, 참말로 못할 노릇이다.’

그는 여러 번 발을 돌쳤다가는 걷고 걷다가는 돌쳐서서 주저거렸다. 망설이던 그는 다시 굳센 결심을 하고 종로에 나서서 빨리빨리 걸었다.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사이를 휘저어 올라오다가 경운동 골목으로 들어서서 한참을 나간다. 한참 올라가다가 창덕궁 나가는 길로 돌아서서 다시 계동 골목으로 올라간다. 대여섯 집을 더 가더니 왼편으로 획 돌아서서 들어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 떡 섰다. 그의 앞에는 커단 대문이 호기롭게 서 있다.

철호는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기웃거리다가 슬그머니 문간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바람에 팔에 닿쳐서 문소리가 삐걱 할 때 그의 가슴은 덜컥하였다. 그는 무서운 동굴에 들어선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엿들었다. 안에서는 청랑한 여자들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는 한숨을 화아 쉬면서 학범이를 싸업은 포대기 끈을 끌렀다. 그는 무엇을 채 가지고 뛰는 도적놈 모양으로 자는 학범이를 포대기째 문간에 내려놓고 문 밖에 뛰어나왔다. 무엇이 두 발을 꽉 잡는 것 같아서 자빠질 듯하였다. 문 위의 환한 전등은 노염이 그득한 눈을 부릅뜨고 꾸중을 내리는 듯하였다.

철호는 허둥지둥 계동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바―.”

피 터지게 부르는 학범의 소리가 귀에 들리고 낯이 파랗게 질린 학범의 꼴이 뵈는 듯해서 그는 앞이 캄캄하였다.

더구나,

“아이구 내 학범아! 학범아! 에구 하느님 맙소사! 내 학범이를 내놔라.”

하고 미쳐 뛰는 아내의 그림자를 상상할 때 온몸의 피가 막 끓어오르고 오장이 빠직빠직 끊겨서 그의 발이 차마 집을 향하고 걸어지지 않았다.

처음 학범을 업고 집을 나설 때에는 학범을 한강에 집어넣으려고 하였다. 기구한 자기 앞에서 굶주리는 것보다 어서 없어져서 후생에나 잘살게 되면 하는 마음으로 그리었으나 어린 그 목숨을 끊기는 철호의 양심이 아직도 허락치 않았다.

‘응 됐다. 어느 잘살고 애 없는 집에다가 버렸으면 거둬 주겠지.’

돌이켜 생각하고 그는 계동으로 온 것이다. 그 집은 인후하기로 유명한 xx학교장 최순호의 집이다. 철호는 이 집 짐을 여러 번 져서 그 집에 애 없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네 살이 다 먹도록 기른 자식을 버리고 나오게 되니, 디디는 자국자국에 학범의 원한의 눈물이 괴는 듯해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놈, 짐승도 자식을 사랑하는데…… 이 도적 같은 놈아.’

머리 위에서 무엇이 꾸짖으면서 벼락을 내리는 듯할 때, 그는 알 수 없이 부르르 떨면서 발을 돌렸다.

그러나 학범을 찾아가자니 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호떡을 사 주마 하고 업고 온 학범을 다시 그 무덤 속 같은 데 데리고 가서 굶길 일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난다. 벌고 벌고 뼈가 빠지도록 고생하여도 열흘이면 절반을 더 굶는 자기 앞에서 굶겨 죽이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믿었다. 점잖은 집이요 자식 없는 집이니 길러 줄 줄 믿었다. 철호는 재동 파출소 앞을 나오다가 파출소에 달아 놓은 밝은 현등을 볼 때 가슴이 섬뜩하여서 발을 돌려 창덕궁을 향하고 걸었다.

아까까지 철호에게 화려하고 부럽게 보이던 만호장안은 갑자기 변하여 복마전(伏魔殿)같이 보였다. 철호는 눈을 들어 모든 것을 두리번두리번 보았다. 크고 작은 건물들은 녹슨 백골을 저장한 마굴 같다. 총총한 전등은 유령의 험한 눈초리 같다. 들리는 소리 보이는 빛이 모두 도깨비판 같다. 그는 우뚝 서서 눈을 딱 감고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였다.

일 주일 뒤였다.

출출 내리는 가을비는 황혼에도 멎지 않았다. 땅은 질척질척하다. 수정알을 이어 논 듯한 빗발 속에 꿈같이 보이는 전등불은 물 괸 땅에 어른히 비치었다. 종로에는 야시꾼이 없어서 고요한데 벌건 전차의 내왕하는 소리만 처량하다.

밤은 깊었다.

무겁게 나직이 드리운 잿빛 구름은 그저 비를 쏟고 있다.

전등은 의연히 편히 눈을 뜨고 있다.

이때 사람의 자취가 끊긴 어둑한 계동골로 들어가는 그림자가 있다. 출출 내리는 빗속을 우비도 없이 걸어가는 그림자는 쓰러질 듯 흥덩흥덩 하다가는 겨우 무거운 몸을 지탱해 가지고 비틀비틀 걸어간다.

“으응 엑.”

그 그림자는 대여섯 집 올라가서 왼편으로 돌아지더니 막다른 골목으로 기울어져서 커단 대문 앞에 우뚝 서서 흔들흔들하면서 문 위에 달아 놓은 전등불을 물끄러미 본다. 낯빛은 벌겋게 되고 두 눈에서는 술이 줄줄 흘러나오도록 취하였다. 불빛을 받은 전신은 비에 후줄근히 젖어서 물에 빠진 쥐같이 되었다. 어깨며 궁둥이에는 꺼먼 흙이 철썩철썩 묻었다.

“어어, 저놈이 나를 봐?”

그는 전등을 뚝 부릅뜨고 보면서 혀가 굽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사면은 고요하다.

“이놈아, 보면 어쩔 테야? 엑 에헤헤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흥글벙글하다가 대문에 가서 탁 쓰러지면서,

“학범아, 어! 학범아.”

고함을 친다. 그 소리는 송아지 부르는 암소 소리같이 흐리고 애처로웠다.

“어, 이놈의 문이 정 이 모양이야?”

그는 어정어정 문을 잡고 일어서서는 쿵쿵 때리면서,

“학범아! 내가 왔다. 너가 보구퍼 내가…… 으응.”

말끝은 울음에 젖었다.

“이거 누가 이 야단이오?”

안으로 톡 쏘는 듯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나왔다.

“무……무……문 좀 열어 주. 이잉 흑흑, 학범이 보러 왔소.”

안에는 얼른 열지 못하고 방문 소리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가 분주히 나더니,

“누구요 ?”

노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나면서 문을 덜컥 열었다. 문에 기대어 있던 그자는 문 열리는 바람에 문턱에 다리를 걸고 안으로 쓰러졌다. 문간 전등불 아래 몸집이 뚱뚱하고 수염이 너슬너슬한 주인 최순호의 그림자가 언뜻 하다가 그자의 쓰러지는 바람에 다시 주춤 문간에 들어선다.

“이거 누구요 ?”

“네― 어……나리마님…… 나……나리마님, 학범이 보러 왔어요. 후우 네편네도 달아나구…….”

그자는 엉금엉금 일어나더니 합장하고 허리가 부러지게 절을 한다.

“누구에요 ?”

안으로서 찡찡한 여성의 말소리가 들렸다.

“웬 거진지 미치광이인지 알 수 없소.”

최순호는 대답하며 그를 물끄러미 보고 이마를 찡긴다.

“나리마님……이제는 네편네까지……죽어두 안고 죽을 것을 제 제 제가 못된 놈이 돼서 자식을 버……버려 버리……고 그래서 네편네까지 도망치고, 아이구 으응응……흑흑, 끽끽.”

그자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엉엉 운다.

“허허허, 이거 왜 이래, 어서 가― 허허허.”

최순호는 벙긋벙긋 웃으면서 가라고 호령을 친다.

“나나……나리마님……제발 한 번만 보여줍쇼. 에구, 내 학범을 제발 한 번만…….”

그자는 또 합장을 하고 허리가 부러지게 절한다.

“보여 주긴 무얼 보여 주어! 어서 가.”

“그건 무얼 그러고 있어요. 밀어내지 않구…….”

안으로서 종알종알 지껄이는 여자는 화가 나는지 안대문을 달각 열고 방긋이 내다본다.

“밀어내요. 할멈. 이리 오게…….”

최순호와 할멈은 그 주정꾼을 끌어서 질척한 대문 밖에 내놓고는 털컥 문을 잠근다.

“에구, 내 학범아, 네 엄마는 갔다. 어구구, 휘 나리마님, 학범을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엉엉.”

전신에 흙투성이가 된 그자는 또 벌컥 일어나더니 대문을 탁 밀친다.

“에그머니!”

잠그려는 대문이 탁 열리는 바람에 안에 섰던 여자는 주춤한다.

“하 학범아! 내가 왔다. 학범이 좀 보여주어! 응 내 학범이!”

그자는 주인 내외와 할멈이 쥐어박고 내밀치는 것도 상관치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에그, 저를 어째 ?”

“웬 주정꾼이 저 야단이야!”

마당으로 뛰어들어가는 그자의 억센 팔에 밀치어서 뒤로 물러서는 주인 내외는 난리나 만난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1925.7 작(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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