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중부지방-남부지방/부산광역시
부산의 관광자원
편집넓은 바다·해수욕장·온천·산·사찰, 대내외 역사적 유적 등으로 인해 관광·휴양자원은 다양하고 풍부하다.해운대·광안리·송정·다대포·송도·신선대 등의 해수욕장, 동래·해운대 등의 온천, 범어사·부산진성·동래성·동래향교·안락서원 등의 역사적 유적, 금정산성·다대포성·자성대·일본성 등의 일본 관계 유적, 이 외에 유엔묘지·태종대·용두산 공원·남포동 거리·수산시장 등 볼 만한 곳들이 많다.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은 유서 깊은 동래온천장, 전국 제일의 해운대 해수욕장, 절벽 및 해안경관이 일품인 태종대, 높은 탑이 있는 용두산 공원, 고찰인 범어사·금정사 등이다. 동북쪽에는 유명한 동래 및 해운대 온천이 있으며 국보와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무형문화재 등이 도처에 있으며 2002년 부산을 찾은 외국 관광객은 연간 200만 439명이다.
부산의 교통
편집수륙의 접합지(接合地)로 수·륙·항공 교통이 모두 발달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1997년 12월 말 현재 차량 총대수는 72만 614대이며 차종별로는 승용차 51만 7,957대, 화물차 14만 4,863대, 승합차 5만 3,317대, 특수차 4,477이다. 대중교통 수단은 시내버스 42개 업체 165개 노선에 2,799대와 일반택시 1만 1,240대, 개인택시 1만 2,028대가 운행되고 있다. 한편 1994년 6월부터 지하철 1호선 노포동
신평동 구간이 운행되고 있으며 양산시 호포
해운대구 좌동간 39.1㎞의 지하철 2호선은 총사업비 2조 2,279억원을 투자, 2002년 2단계 2구간까지 개통했으며, 2012년 3단계 2구간까지 개통할 예정이다. 또 강서구 서연정
반송간 29.5㎞의 3호선 건설도 총사업비 1조 4,429원을 투입, 2007년 완공 예정이다.경부·중앙·경전선 철도가 이곳에서 각각 북·동·서쪽으로 뻗어 있고 특히 서울과는 매 30분마다 특급열차로 연결된다. 또한 이곳으로 기점으로 서울·마산·순천·포항·울산 등을 내왕하는 시외버스 노선도 편리하다.해운업은 전국 주요 15개 항구 중 제1위이다. 부산은 선박의 출입으로 보나 물동량으로 보나 세계항(世界港)에 해당된다. 항구 시설도 현대적이어서 대형선박의 접안도 가능하다. 부산이 이처럼 해운업이 성한 이유로는 ① 부산만과 영도가 바람과 파도를 막을 수 있는 점, ② 간만의 차가 적어서 선박의 접안이 용이한 점 등의 자연적 조건과, ③ 부두시설로 인해 항구 내의 적정한 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점, ④ 인공적이긴 하지만 배후 시가지를 갖고 있는 점, ⑤ 부산의 공업이 활발한 점, ⑥ 배후지 전체 특히 경부간의 지역에 공업성장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점, ⑦ 우리나라와 타국간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점 등의 인문·사회적 조건을 들 수 있다.부산항을 통해서 한국의 전체 수출입품의 약 반이 드나든다. 이 외에 부산∼시모노세키간 정기 여객선, 제주와 여수 등지와의 연안여객선이 연간 약 18만 명의 여객을 운송한다. 항공교통은 김해 국제공항을 기점으로 서울·대구·제주·강릉·후쿠오카·오사카 등 약 5개 노선이 연간 약 130만 명을 수송한다.
부산의 산업
편집농목업
편집농경지가 총면적의 16.5%였으나 1989년 이후부터 점차 감소하고 있다. 금정구, 북구 해운대 일부와 강서구 기장군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농가 인구가 2만 5,231명이며 농가구수는 7,872명이다(2002). 미맥이 주로 생산되지만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교외에서는 소채·과수·원예, 그리고 양돈·양계 등이 성하다. 농경지 면적은 2002년 말 현재 9,704ha이다.
수산업
편집부산은 무역·공업도시인 동시에 수산 도시이기도 하다. 전국 제1의 근해 및 원양어업 근거지로 수산업이 매우 성하다. 특히 최근에 양식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수산인구 중 어로 인구가 51%를 점하고 양식업 종사자는 불과 7% 내외이다.최근 한일어업협상으로 출어 해역이 대폭 줄어들어 부산의 수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현재 어항시설은 1종어항 2개소, 2종어항 14개소, 소규모 어항 35개소이며, 수산 제조허가 업체는 101개소이다. 냉장보관 능력은 94만 15,403톤이다.
공업
편집제조업체 수로나 종업원 수로 보아 전국 제2위이며 경남 임해공업지역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8·15 전에는 섬유·도자기·법랑기·전구·조선·제망·고무·통조림·양조 등의 공업이 성하였다. 8·15 광복 후는 섬유·식품·화학·제재 및 목제품(합판)·토석·금속·기계·전기기기·기타 각종 공업이 급속히 발달하여 공업도시를 이루었다. 부산 공업의 특성 중 하나는 한국 공업이 경공업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부산은 화학·기계공업 부문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해항지로서 양항을 끼고 있어 물자의 수출입이 편한 지리적 조건으로 기계·화학·섬유·식품·목재가공·기타 각종 공업이 균형적으로 발달하였다. 종업원도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생산 실적도 성장하고 있는데, 특히 화학공업이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01년 12월 말 현재 공장수는 9,818개 업체이고 종업원수는 18만 3,560명이다. 연간 총생산액 20조 9,749억원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산업단지는 284만 6,000㎡의 신평·장림산업단지가 있으며, 여기에 646개 업체가 입주해 2만 1,248명이 일하고 있다.공장 분포는 부산진구, 동래구 순으로 많다. 전자에는 기계·섬유·화학공업이 특히 우월하다. 영동구 해안에는 조선공업이 성하며, 또한 공업단지인 사상지구에 많은 공장이 들어서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부산의 지위 향상에 공헌하고 있는 공업은 제강·조선·합판·섬유·자동차·섬유가공·전자 등의 공업이다.우리나라 전체 공업에 비추어 볼 때 선진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중소공업이 절대 우세하다.부산 공업은 생사·고령토와 같은 남부지방산을 원료로 하는 원료공급지 공업·소비지 공업·수출지 공업·조선공업 등의 해항지 공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출지 공업으로 중요한 것은 합판·아연도철판·견직물·수산물 냉동·정제당·전기기구 등 공업을 들 수 있다. 업종별 공업을 보면 섬유공업이 전체 종업원 33%, 총 제조업체의 33.4%를 차지하여 제3위로 되어 있다. 섬유공업은 면사·방모사(紡毛絲)·면직물·인견직물·모직물·나일론직물을 주축으로 피복류의 보세가공이 발달되어 있다.식품공업은 제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분·제당과 한천·통조림 등 수산 가공업이 중요하다. 화학공업은 제3위의 공업이며 비누·도료 등 유지공업과 제약 등을 중심으로 한다. 제재 및 목제품 공업 중 가장 근대화한 것은 합판 제조인데 수출 산업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합판 제조는 부산이 전국에서 수위를 차지한다.고무공업은 자전거 및 자동차의 타이어·벨트·신발 제조가 주이며 이것도 전국 제1위이다. 기계공업은 발동기·전동기·농기구·양수기·방직기 등 일반 기계와 선박·자동차 등의 운수기계공업이 중요하다. 특히 운수기계공업은 우리나라에서는 부산에 집중되고 있으며, 그 중 철강·선박 제조 능력은 전국의 80%를 차지하고 있다.자동차 공업은 일찍부터 발달하여 전국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기계공업은 TV·냉동기·전동기·통신기계를 주로 하며 수출산업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다. 금속 및 금속제품 공업은 강괴(鋼塊)·강봉(鋼棒)·아연도철판·알루미늄 제품 등이 중요하다.유리 토석공업은 도자기·내화연와(耐火煉瓦)·병 등을 주로 하며, 그 중 도자기 공업은 수출산업으로서 광복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제지공업도 성한데 원료자원의 결핍으로 화학·펄프공업은 구포공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수입 펄프에 의존하고 있다.부산의 공업 분포는 동북쪽 부산진·동래방면과 남쪽 영도 방면에 집중되어 있다. 양지구는 용수 관계로 각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즉 동북부는 수영강·낙동강 유역의 평야지대로서 공업용수가 풍부하여 섬유공업을 비롯해서 각종 공업이 일어나 부산공업의 핵심지구를 이루고 있다.영도지구는 선박의 출입은 편하나 공업용수가 풍부하지 못하여 다량의 용수를 요하지 않는 조선·제강·도자기·전구·주물 등 공업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동래구의 사직동·연산동·안락동에서 송정동 해안에 걸친 일대와 구포 부근의 낙동강 연안 일대에도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며 임해공업지로서 가장 유리한 지위에 있다. 기존의 도심지 공장들이 80년대 들어 양산·창원·김해 등지로 이전했다.
상업·무역
편집최대 무역항으로 발달된 해운업과 공업을 바탕으로 상업과 무역이 모두 성하다. 광복동 일대의 국제 시장 및 고급 상가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서면의 부산진 시장 일대도 상업지구로서의 세력이 크다. 마산-밀양-울산선 이내의 지역을 직접적인 상권(도매권)으로 갖고 있다.부산의 무역은 1883년 개항 이전에 벌써 초량의 왜관개시(倭館開市)에서 일본과의 거래가 있었다. 개항 당시의 무역도 대부분이 일본과의 거래였으며 국내 항구 중에서 부산항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산항은 개항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국 제1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부산의 무역은 대체로 1930년 이전까지는 저조했으나 2차대전 당시 수출입 무역이 활발해졌다. 한국전쟁 때 임시 수도로 되고 상공업의 중심지로 되자 민간무역이 급증하고, 또한 전시 요청에 의한 군수물자·구호물자의 수입 등으로 부산 무역은 거의 전국 무역을 독점하여 무역도시로 되었다. 부산시는 지난 1999년 2월 말 46억 5,345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수출품은 공산품이 41억 7,400만 달러로 제일 많고 다음이 수산물이다. 한때 부산항의
입항 선박 척수는 전국의 45∼50%를 차지하였으나 최근에는 다른 항구의 무역 발전에 따라 상대적으로 감소되었다. 그 중 한국선이 37%이고 외국선은 42%를 차지하고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다양한 품목에 걸쳐 교역이 행해지고 있다.
부산의 상징물
편집부산시를 상징하는 꽃은 동백꽃, 나무는 동백나무, 새는 갈매기이다.
부산의 시황
편집부산은 해발 300∼600m의 구릉성 산지를 등지고 바다에 임해 있는데 시가지는 금정산에서 복병산을 지나 용두공원에 이르는 구릉지가 있어 크게 동서 2개 지역으로 갈라진다. 구릉지가 많으나 동북부의 수영강 연안과 서북부 낙동강 좌안에는 평야가 널리 발달되어 있으며 최근 시가지는 이 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부산항은 다시 영도로서 동항과 서항으로 갈라지는데, 동항 즉 내항은 대외무역항으로 이용되고 서항 즉 외항은 어항으로 이용되고 있다.부산은 조선시대에는 부산포라 하였는데, 1883년 개항되고 경부·경의 양선이 개통된 후 일본과의 연락지점으로 급속히 발전하기 사작하였다. 1925년 진주에서 도청이 이전된 후부터 경상남도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되고, 더욱이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로 된 동안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1963년 경남에서 분리하여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다. 시세(市勢)의 팽창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을 확장시키고 7개 구를 두고 있다. 1905년 일제가 경부선을 부설함과 동시에 제1부두를 축조하였다.또 이를 전후하여 중앙동·초량동·부산진 일대의 확장, 만내의 준설, 방파제의 축조도 하였다. 1934년에 영도와의 사이 도진(渡津)에 도개식 부산대교를 가설함으로써 영도를 육계도화하여 시가지를 영도에까지 연장시켰다. 1936년에는 외방파제를 축조하고 1966년부터 항만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또다시 축항공사를 했다.부산의 중심이 조선시대에는 초량 부근이었는데 일제 때는 중앙동·동광동·광복동 일대로 옮겨졌고 8·15 광복 후는 해외에서의 귀환동포, 한국전쟁 때 피난민의 집중과 임시 수도로, 그리고 휴전 후 공업의 발전 등으로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고등교육기관으로는 부산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경성대학교, 부산공업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동아대학교, 부산수산대학교, 동의대학교, 동서공과대학교, 부산가톨릭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고신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와 전문대학 등 모두 25개 교가 있다. 공공도서관은 시민도서관·부전도서관 등 17개가 있다. 박물관은 시립박물관과 각 대학의 박물관을 합해 11개가 있다. 체육 시설로는 구덕경기장, 사직동에 부산종합운동장, 거제동에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등이 있다. 그 밖에 수영·요트 경기장, 영도승마장, 영도사격장과 용두산공원, 부산어린이대공원, 금정공원 등 공원이 20여 개가 있다.
부산의 연혁
편집부산은 삼한시대에 가락국과의 접경지대였다. 신라시대에는 동래의 일부였고, 고려시대에는 양주의 일부였다. 조선시대에는 다시 동래(동래군, 동래현, 동래도호부)의 일부가 되어 내려왔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동래 부산포(富山浦)로 불리어 오면서, 태종 때는 내이포(웅천)·염포(울산)와 함께 대일본 무역항으로 지정되었다. 세종 때는 부산포(釜山浦)로 개칭되었고, 삼항(三港:부산포·염포·제포)의 하나로 재정비·개항되었다. 고종 때(1876)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으로 근대적인 항구로 개항되자, 새로운 면모로써 발전되어 통상·무역상의 지위가 급상승되었다. 1904년에 경부선 철도가 준공, 다음 해부터 운행되고, 1908년에는 부산∼신의주간 직통열차가 운행됨으로써 일본∼한반도 내륙간의 교통 요지가 되면서 발전을 더하게 되었다.1914년에는 일제에 의해서 부제(府制)가 실시되어 비로소 동래군으로부터 독립, 부산부(釜山府)가 되었다. 1925년에는 경상남도 도청이 진주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행정·경제·문화·교통의 발전이 급진전하게 되었다. 그후 1934년 영도대교의 준공, 1936년 1차 시역(市域) 확대(동래군 서면·암남리 편입), 1942년 2차 시역확대(옛 동래읍·사하면 편입) 등을 통하여 이곳의 시세 및 시역은 더욱 확대되었다.정부수립(1948) 후 부산시(市)로 되어 내려오다가, 한국전쟁 당시인 1950∼1953년간 임시수도가 되었다. 이때 인구의 급팽창으로, 일약 거대도시(100만 이상 도시)가 되었다. 1963년에 경상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고 1978년 김해군 일부를 편입했다. 1983년 사하출장소가 구청으로 승격되고, 1989년 김해군의 가락·녹산·천자면 등 3개면을 편입하여 강서출장소가 구청으로 승격되었다.1995년 3월 양산시 장안읍·기장읍·정관면·일광면·철마면과 진해시 용봉2동 일부를 병합, 광역시로 되었다. 이와 함께 동래구가 동래구와 연제구로, 남구가 남구와 수영구로, 북구가 북구와 사상구로 분구되었다.
부산의 인구
편집분포
편집면적은 758.21㎢, 인구는 381만 7,270명(2000.1)이며, 인구밀도 5,083이다. 15개 구 중 부산진구에 가장 많고 중구가 가장 적다. 밀도로는 중구에 집중률이 가장 높고, 사하구에 가장 낮다. 전체적으로는 남부민동-범일동-서면-동래 구읍-장전동을 연결하는 남부 중앙선을 인구축(人口軸)으로 하여 집중이 뚜렷하다.
이동
편집시내 일간 이동은 광복동·중앙동·서면 등의 중심지와 주변지간에 나타나는 남북이동(가장 뚜렷), 구포동과 해운대간의 동서이동이 뚜렷하다. 타지방으로부터의 인구유입은 주로 인접지역이 아닌 부산에서 조금 떨어진 함안·산청·거창·진양·합천 등 서부 경남으로부터이다.
구조
편집2000년 1월 현재 가구수는 약 118만 7,703가구이며, 성별로는 남자가 191만 2,452명, 여자가 190만 4,818명 선으로 남자가 약간 많은 편이다.
연령계급별로는 20
24세가 가장 많고 다음이 25
29세이다. 산업별로는 전 취업인구 중 농수산업 약 3%, 광공업·서비스 및 기타 산업이 약 97%이다. 이 중에서도 공업 종사자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상업 종사자가 많다.
추이
편집제3차 시역확대가 이루어진 1963년부터 1975년까지의 연평균 증가율은 5.1%이다. 1968년부터 증가율은 더욱 높아 그 해에 6.1%, 1969년 8.0%, 1970년 12.0%를 나타냈다. 그 다음부터는 크게 줄어들었고 1974년에는 또 다시 11.3%의 고율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1995년 말에는 전년대비 증가율 0.5%를 나타냈다.
부산의 자연
편집한국 제1의 무역항이며 제2의 도시로 수리상으로 동경 129 12 38 128 57 25 , 북위 35 1 43 35 18 36 간에 위치한다. 총면적 758.21㎢ 로서 자연 지리적으로는 한반도 남동단에 위치하며, 남해에 접하고 있고, 북서방 450km에 서울이, 남동방 120해리에 일본의 시모노세키가 있다. 울산광역시·김해시·양산시·진해시가 각각 동·북·서쪽에 인접해 있다.
지질
편집지층은 대개 상부 쥐라기(Jura 紀)와 백악기에 걸쳐서 생성된 것으로서 화성암(火成岩)이 대부분이다. 북부에는 화강암(불국사통, 대표지:북부 금정산맥)과 안산암(신라통, 대표지:불태령 일대), 남부에는 분암(신라통, 대표지:남부 금정산맥·황령산 일대)과 반암(불국사통, 대표지:고갈산 일대), 해안에는 수성암(水成岩, 신라통, 대표지:태종대·송도 일대)이 우세하다. 시가지는 충적층(沖積層)으로 덮여 있다.
지형
편집크게 보아 ① 서부 금정산맥, ② 중앙 북부간의 동래분지, ③ 남부 해안으로 나뉜다. 서부 금정산맥에는 금정산(796m)·상계봉(638m)·백양산(642m)·고원견산(517m)·구덕산(562m)·천마산(324m) 등이 북에서부터 연봉을 이루어 부산의 병풍 구실을 한다. 동래 분지는 최대의 평야지대로서 그 안에는 200m 이하의 잔구가 산포되어 있다. 남부해안에는 송정만·해운대만·수영만·부산만·감천만·다대만과 우암반도·장군반도·다대반도·영도 등이 교대로 자리잡고 있다. 이 중 부산만은 항구로 개발된 곳이고, 여기에 우암반도와 영도가 좋은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장산(634m)·황령산(427m)·고원견산·고갈산(394m)·천마산 등의 지맥이 바다에까지 면하고 있어서, 해안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다. 하천으로는 낙동강이 서쪽의 김해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남해로 유입하고, 수영강이 회동(오륜대) 수원지를 거쳐 동부 일대를 종관하여 수영만으로 유입한다.
기후
편집순수한 해양성 기후지역이다. 연평균 기온 13
14
, 가장 추운 1월 평균 2
내외, 가장 더운 8월 평균 25
26
이다. 겨울에 눈을 거의 볼 수 없다. 연평균 강수량 1350
1450mm이고 우기는 6
9월인데, 이 기간 중 약 800
850mm의 비가 내린다. 여름비가 많은 것은 양쯔강 유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것이 장마전선을 탄다), 태풍의 이동, 부산의 지형 등 때문이다. 9월에도 비가 많은 것(8월보다 많다)이 특징이다. 바람은 겨울에 북서풍(연중 가장 많음), 여름에는 남서풍이 많이 분다. 여름 남동풍은 있음직하나 아주 미미하다.
가덕도 종합개발
편집加德島綜合開發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사업비 7조 780억원(신항만 5조 5,898억원, 배후도시 1조 4,882억원) 총 551만 평(신항만 257만 평, 배후도시 294만 평)의 규모로 신항만, 국제업무, 물류기지, 배후수송망 등을 개발 21세기 새부산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
편집古里原子力發電所
장안읍 고리에 건설된 이 발전소는 1972년 3월에 1호기(58만 7,000kW)를 기공하여 1977년에 준공했고 2호기(65만kW)와 5호기(95만kW)를 1977년과 1978년에 기공하여 1983년 12월과 1984년 9월에 준공하여 218만 7,000kW의 시설을 갖추었다. 그리고 1985년 9월에 6호기(95만kW)의 완공으로 총시설 용량 313만 7,000kW가 되었다.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석탄에도 한계가 있고, 특히 한 방울의 석유도 산출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이 발전소가 가지는 의의가 매우 크다.고리는 지질이 원자로를 설치하기에 좋은 암반이 있고 냉각수 사용이 쉽고 기상 조건과 상수원이 좋기 때문에 적지로 선정되었다. 원자력 발전소의 응용원리는 화력발전소와 다를 바 없고, 다만 연료가 다르다. 원자력은 우라늄 235를 분열시켜 열을 얻고 그 열로 증기를 만들어 터빈발전기를 돌리는데 화력은 석탄이나 기름을 사용한다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연료인 농축 우라늄은 원자력 발전소의 열쇠이다.
남항대교 건설
편집南港大橋建設
기존 영도대교 노후에 따른 대체 교량의 건설이 필요하고 영도 동삼지구 택지개발 및 항만확충에 따른 물동량 처리를 위해 영도구 영선동에서 서구 암남동을 연결하는 남항대교는 교량 길이 1,925m, 폭 25.6m(6차선) 교량으로 총사업비 3,350억원을 2002년 완공 목표로 추진중이다.
동래온천
편집東萊溫泉
부산에서 동북 13km 지점, 태백산맥 중의 금정산맥(金井山脈) 동쪽의 급사면과 그 동쪽 평야와의 회합점에 위치하는 전국 유수의 온천이다. 천온 55
의 알칼리성 식염천이다. 이미 신라 때부터 알려졌으나 1883년 개항 당시부터 일본인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후 전차·버스가 운행됨에 따라 많은 관광휴양객이 모여들어 드디어 온천도시로 발전되었다가 8·15 광복 후 부산지역에 편입되고 지금은 연속된 시가지가 되어 관광객이 연중 끊임 없다.
동래충렬사
편집東萊忠烈祠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송상현(宋象賢)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송상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東萊城)과 운명을 같이한 당시의 동래부사이다. 1605년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처음으로 건립하였고, 1624년(인조 2) 사액되었다.그 뒤 임진왜란 때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로 부산진성싸움에서 전사한 정발(鄭撥)이 배향되었으며, 1709년(숙종 35)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별사(別祠)를 건립하였다. 1735년(영조 11)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여러 사람을 모셔다가 합향(合享)하였으며, 또한 임진왜란 때 순사한 다대첨사(多大僉使) 윤흥신(尹興信)을 추배하였다.
동래향교
편집東萊鄕校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향교로서 1605년(선조 3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705년(숙종 31)에 부(府) 동쪽 관노산(官奴山) 아래로 옮겼다가, 1745년(영조 21)에 동문 밖으로 다시 이건하였다. 그 뒤 1785년(정조 9)에 내곡동으로 이건하였으며, 1812년(순조 1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반화루·내삼문·외삼문·동무(東?)·서무(西?)·동재(東齋)·서재(西齋)·좌우협문 등이 있다. 대성 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범어사
편집금정구 청룡동 금정산(金井山)에 있는 유서깊은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삼국유사'의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250호), 당간지주(幢竿支柱), 일주문(一柱門), 석등(石燈), 동·서 3층석탑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으며, 이 밖에 많은 전각(殿閣)·요사·암자·누(樓)·문 등이 있다. 옛날부터 많은 고승들이 이 곳을 거쳤으며, 중요한 인물만도 의상을 비롯하여 그의 고제(高弟)·표훈(表訓) 낙안(樂安)·영원(靈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