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고려시대의 미술/고려의 도예

무유흑회색도기와 시유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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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釉黑灰色陶器-施釉陶器고려시대의 미술에서 특히 뛰어난 것은 공예미술인데 그 가운데서도 도자기가 으뜸이다. 고려시대의 도자기는 무유(無釉)와 시유(施釉)의 두 종류로 대별되며 시유도기가 고려자기를 대표한다. 무유도기는 색조나 태토질(胎土質)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외에 근본적으로 신라 도기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기형에서 매병(梅甁) 같은 고려 특유의 것이 나타나고 또 울릉도(鬱陵島)의 천부동 고분에서 나온 것 같은 횡단면 반원형(橫斷面半圓形)의 특이한 병도 있다. 시유 도기는 청자·백자·천목·녹유(綠釉), 기타 잡기(雜器)가 있으며 그 가운데서 청자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발달을 이루어 내외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청자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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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變遷

고려의 청자는 문종(文宗) 전후에 송(宋)의 화남 절강성 월주요(華南浙江省越州窯)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것으로서 그 변천은 청자의 발생에서 쇠퇴까지 각 기간을 3기, 300년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 구분과 해당 기간 중의 청자의 특색과는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다. 초기의 청자는 매우 소박한 데서 출발하여 점차 기술이 숙련됨에 따라 예종(睿宗)·인종(仁宗) 때에 이르러 이른바 비색청자시대(翡色靑磁時代)를 이루며 고려청자의 진면목을 보이는 상감청자를 낳는데 이는 순전히 고려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감청자가 다시 동철기(銅鐵器)에 접목(接木)되어 은동상감기(銀銅象嵌器)를 낳고 고려 말기에 이르러 청자는 실질적으로 쇠퇴하여 속화(俗化)되고 만다.

순청자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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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靑磁時代

고려청자의 변천 과정 중 제1기에 해당하는 1050년-1150년의 시기로 고려청자의 발생기라 할 수 있다. 고려청자의 발생시기를 단적으로 지적할 수는 없으나 송(宋)의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기록한 청자에 관한 글 등으로 미루어 대략 11세기 초엽으로 추측한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비색(秘色=翡色)으로 불리는 순수한 청자색(靑磁色)을 가진 각종 청자(無紋=素紋·陽刻·陰刻·象形·透刻紋)가 제작되었는데 이들 청자의 특색은 두껍고 고르게 발라진 유약(釉약藥) 때문에 발색(發色)이 깊고 은은하고 맑음과 깊이가 느껴진다. 제1기의 대표적인 청자로서는 인종 장릉(仁宗 長陵:1146년)에서 나온 개합(蓋盒) 과형병(瓜形甁)·방형대(方形臺), 사자형유개청자향로·청자어룡형주전자·청자압형연적 그리고 청자칠보투각향로, 청자음각보상화문 병 등이 있다. 무늬는 간단한 '당초(唐草)·앵무(鸚鵡)·연판문(蓮瓣紋)'이 많다.

상감청자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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象嵌靑磁時代

고려청자의 최성기인 제2기 1150년-1250년이며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으로 미루어 상감청자의 발생은 대체로 의종대(毅宗代 1147-1170년)일 것으로 추측된다. 상감법이란 자기를 완전히 건조시키기에 앞서 무늬를 음각하거나 새김판으로 찍고 그 자국에 백토(白土) 혹은 적토(赤土)를 메워 일단 초벌구이(豫磻)한 후 청자유를 발라 굽는 것인데 백토는 순백, 적토는 흑색으로 발색하여 무늬가 나타난다. 이러한 방법은 나전칠기(螺鈿漆器)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며 동제용기의 입사법도 같은 시기에 유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감청자에 나타나는 무늬로는 '운학(雲鶴)·양류(楊柳)·보상화(寶相花)·국화(菊花)·당초(唐草)·석류' 등 다양한데 특히 운학문과 국화문이 가장 많이 쓰였고 국화문은 조선시대 초기까지 쓰이고 있다. 제2기의 삼강청자의 특색은 상감무늬를 전면적으로 쓸 경우에는 배경으로서의 여백을 남길 여유를 보일 만큼 충분한 공간이 설정되고 있는 점과, 무늬가 단일무늬의 기계적인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성격이 다른 몇 가지 무늬를 통일적으로 배열하여 화폭(畵幅)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 점이다. 이 시기에는 상감청자 외에 무문청자(無文靑磁)나 잡유기(雜釉器)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제1기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유색(釉色)이 엷고 얕아진 것이 특색인데 이는 상감청자의 발명에 따라 표면의 장식효과에 관심을 두고 배면(背面)을 등한히 여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2기의 상감청자로 연대가 확실한 작품은 명종 지릉(明宗 智陵, 1197년)에서 나온 청자상감석류문완·청자상감국화문혈이 있고 문씨묘(文氏墓, 1159년沒)에서 나온 청자상감 국화문혈·청자상감보상화문완 등이 있다. 한편 회화적인 성격이 뚜렷한 상감청자로는 청자상감죽문병(靑磁象嵌竹紋甁 梨大所藏)과 청자상감모란문병이 있고 역시 형태나 시문이 뚜렷한 청자상감운학무늬매병 등을 들 수 있다.

쇠퇴기의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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衰退期-靑磁

고려청자가 쇠퇴하는 제3기 (1250년-1350년)로서 그 기간은 1세기로 보나 몽고가 침입한 14세기 후반부터 시작한다면 실제로는 1세기 반이나 된다. 이른바 국가의 말기적인 증상이 미술에도 반영되어 청자기의 퇴조를 보이는데 중국 자체도 원(元)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정통적인 청자가 소멸되며 그러한 변화는 고려청자에도 미친다. 청자의 표면이 황록색조를 띠거나 비색(翡色)을 잃으면서 상감의 무늬도 산만하고 조잡해지며 같은 무늬를 반복 사용하는 등 무의미한 도안으로 바뀐다. 기형은 매병(梅甁)이 줄어드는 대신 접시류가 늘고 대접은 안이 깊어지고 측면이 평평한 광구대(廣口臺), 바닥이 좁아진 변형된 매병 등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진사(辰砂)·화청자(畵靑磁) 같은 특수한 상감청자가 만들어지는 외에 철재자기(鐵彩磁器)가 등장하기도 한다. 무늬는 시대가 내려갈수록 간화(簡化)되고 조야(粗野)해지면서 조선시대 초기의 분청사기 및 철화백자와 연결된다.

청자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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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種類

청자의 종류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뉜다. ① 순청자(純靑磁) - 청자 일색의 무문·양각·음각·상형·투각문 등의 청자로서 상감이나 화문청자는 제외된다. ② 상감청자(象嵌靑磁) - 그릇이 마르기 전 무늬를 선각(線刻)하고 백토나 흑토로 메워 초벌구이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구운 것인데 간혹 진사(辰砂=酸化銅)를 섞어서 밝은 홍색을 내게 한 것도 있다. 또 흑토상감(黑土象嵌)의 배경 위에 넓은 화판(花瓣)의 백토상감(白土象嵌)을 한 모란·보상화문을 두어 흑백의 윤곽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킨 것도 있고 필요한 무늬는 청자색으로 그냥 두고 배경만 깎아 백토로 메워 무늬를 노출시키는 박지문(剝地紋)이라고 불리는 역상감법도 있다. ③ 화청자(畵靑磁)--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굽는 유리화(釉裏畵) 유표면 즉 광택 위에 무늬를 집어넣는 유표화(釉表畵)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백토나 흑토 또는 철사(鐵砂)·진사로 태토 위에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유약을 바르는 유리화가 태반을 이루며 이것은 중국의 도기요(宋:修武窯, 元:磁州窯) 등에서 받은 영향으로 믿어진다. 또 백토나 흑토로 그렸을 경우 그 채료(彩料)를 붓에 듬뿍 묻혀 무늬가 두드러지게 한 것은 퇴화문(堆花紋)이라고 한다. 때로는 태토 전면에 자토를 발라 배경을 흑일색으로 하고 그 위에 무늬를 백토로 그리고 청자유를 씌운 철채자기(鐵彩磁器)가 말기에 와서 생산되었는데 이것은 고식(古式)의 흑백역상감을 화문으로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나온 듯하다. 유표화에 있어서는 금니(金泥)로 그릇 표면에 화문을 그리는 것인데 이는 실요기라기보다 사치를 목적으로 한 특수기로 쓰여졌고 수량도 적다.

청자칠보 투각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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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七寶透刻香爐

고려청자의 제1기인 순청자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청자의 하나. 칠보(七寶)라는 덩굴이 서로 얽혀 원(圓)을 겹친 듯한 무늬를 투각한 구형(球形)의 뚜껑을 가졌고 양각연화문으로 전신을 둘러싼 신부와 그 아래 세모화반(三稜花盤)을 토끼 모양의 세 다리로 받들고 있다. 높이 15.5cm, 화반 직경이 9.9cm이며 전라도 지역의 요(窯)에서 구어진 것으로 추측된다.(덕수궁미술관 소장)

사자형 유개청자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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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에 동식물이나 신수(神獸)의 형상을 집어넣는 방법은 대개 인종(仁宗;1123-1146년) 때를 전후하여 성행했다고 하며 이 청자도 역시 이 시대위 특색을 보이는 순청자이다. 사자형의 뚜껑을 가진 향로의 신부는 수두형(獸頭形)의 세발로 지탱된다. 속이 빈(中空) 사자의 몸 안으로부터 열려진 사자의 입으로 향연(香煙)이 발산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자의 위치가 뚜껑 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어 변화있는 조형효과를 보인다. 높이 21.2cm, 직경 16.1cm로 인종(仁宗)의 장릉(長陵)에서 발견되었다.(국립박물관 소장)

청자어룡형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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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魚龍形酒煎子

순청자 시대에 만들어진 용두어신(龍頭魚身)의 기발한 형상을 가진 상형청자(象形靑磁)의 하나이다. 우람찬 모습의 용머리는 귓대부리로 쓰게 되어 있고 비약하듯 펼쳐진 고기 꼬리(翼足)는 주전자 뚜껑으로, 손잡이는 연경(蓮莖)을 꼬아 붙였는데 그 끝이 꽃봉오리와 잎을 이룬다. 날개와 꼬리 끝 등 부분부분의 백성점(白星点)과 백퇴선문(白堆線紋) 장식이 주목되며 의장의 기발함과 긴장한 비룡(飛龍)의 동세는 볼륨과 박력을 느끼게 한다. 용과 물고기와 연꽃 등 성격이 다른 소재를 융합 조화시켜 환상적인 조형양식을 이룬 우수한 작품이다. 높이 24.4cm. (澗松 미술관 소장)

청자압형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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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鴨形硯滴

순청자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 중에서 조형적인 기술로나 섬세한 감각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 오리 모양의 연적(硯滴)으로서 고려시대 상류사회에서 쓰여졌던 용기의 하나이다. 담록색의 유약으로 전신을 둘렀고 오리 날개의 깃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연꽃띠(蓮花帶)를 꼬아 입에 문 오리의 등 뒤에는 연꽃잎과 봉오리가 장식되고 부리 부근에 따로 먹물을 따르는 구멍이 있다. 높이 8cm, 길이 12.5cm로 우아함과 정교함이 혼유일체가 되는 작품이다.(澗松 미술관 소장)

청자음각 보상화문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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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陰刻寶相畵紋梅甁

순청자시대에 만들어진 각선화문(刻線畵紋)의 매병(梅甁)이며 완상용으로 뿐만 아니고 실기(實器)로도 쓰여졌다. 병 주둥이로부터 어깨를 거쳐 아래로 곡선이 흐르는 가운데, 전면에는 굵은 보상화문이 음각되어 있고 신부 아래 끝머리에는 굵은 보상화문이 음각되어 있고 신부 아래 끝머리에는 뇌문(雷紋)이 둘러져 있다. 신부의 곳곳에 식은테(釉氷裂)가 나타났고 높이 43.9cm, 몸통 둘레 26cm의 큼직한 크기를 가진 독특한 멋을 보이는 청자이다. 제작 장소는 전라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덕수궁 미술관 소장)

청자상감 진사모란문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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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象嵌辰砂牡丹紋梅甁

고려청자의 변천 제2기인 상감청자시대에 만들어진 매병이며 회화적인 성격이 뚜렷한 점에서 다른 청자와 구별된다. 유색(釉色)이 선려하고 무늬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전개되는데 특히 모란의 화판(花瓣)에 진사(辰砂)를 주입하고 어깨부분에서 사방으로 늘어진 영락문(瓔珞紋)과 그 아래의 연화문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고려자기의 여러 종류 가운데 백미(白眉)로서 높이는 34.5cm이다.(덕수궁 미술관 소장)

청자상감 운학문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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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象嵌雲鶴紋梅甁

상감청자시대 성기의 대표적인 매병의 하나로서 회청색(灰靑色)의 고조된 유약과 흑색상감으로 구성된 청자기이다. 전면을 식은테(氷裂)의 작은 망상(網狀)으로 감싸고 있으며 구각(口角)이 곱게 다물어진 작은 입과 넓고 부드러운 어깨로부터 신부를 기품있게 흐르는 선이 풍만하나 섬세하게 처리되었다. 경변(頸邊)에는 간략한 백색상감으로 된 여의두문(如意頭紋)을 두르고 밑변에는 흑백등행선(黑白等行線)으로 상감한 연판대문(蓮瓣帶紋)을 받쳤다. 신부에는 6개의 층급으로 엇갈리게 흰색의 운학문(雲鶴紋)을 그려넣은 환문군(丸紋群)을 배열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날아가는 운학을 빈틈없이 상감했다. 전체의 높이 41.6cm, 구경(口徑)6.1cm나 되는 큰 작품이다.(澗松 미술관 소장)

청자상감 운학모란문표형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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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象嵌雲鶴牡丹紋瓢形水甁상감청자시대에 만들어진 청자의 하나. 조롱박모양(瓢形)의 날씬한 신부(身部)에 귓대부리가 기품있게 곡선을 그으며 돋아 있다. 손잡이는 자연스럽게 조롱박의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여 역시 곡선을 그었고, 주둥이에는 작은 마개가 얹혀 있다. 신부의 전신에 화사한 간지백상감(間地白象嵌)으로 모란무늬가 전개되어 윗부분에는 날아가는 운학이 양쪽에 한 마리씩 상감되어 있다. 이 병이 가지는 정제(整齊)된 미끄러운 곡선과 청정(淸淨)한 하늘색 유색(釉色)의 화사한 품위는 고려 귀족사회의 유연하고 유창(悠暢)하던 생활풍조를 보는 듯하다. 귓대의 복부(腹部)에 백성점(白星点)이 한 줄로 장식되었고 고대(高臺)는 약간 정제를 잃고 있다. 높이 34.6cm.(국립박물관 소장)

청자상감 모란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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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象嵌牡丹紋缸

청자상감시대 성기의 작품. 고려청자로는 보기 드문 안정된 형태 위에 호굉(豪宏)한 단일모란무늬가 양쪽 면에 하나씩 흑백으로 뚜렷하게 상감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사자수면(獅子獸面)의 손잡이가 붙어 있다. 비취(翡翠)빛 유색도 좋은 발색을 보이며 일견 건강하고 정연한 느낌을 주는 청자이다. 높이 17.7cm, 구경 34.5cm (덕수궁 미술관 소장)

청자상감 어문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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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象嵌魚紋梅甁

고려청자의 변천 제3기인 쇠퇴기의 양식을 보이는 작품. 유채는 산화염(酸化焰)에 의해 약간의 변조(變調)를 보이나 기형은 정제되었다. 몸통에 그려진 4개의 원형 개창(開窓) 속에 각각 생동하는 쌍어문(雙魚紋)을 흰색으로 상감했으며 개창 사이 바닥에는 비운문(飛雲紋)이 퇴화된 것으로 보여지는 점문(点紋)을 빈틈없이 상감한 속에 네 마리의 백학(白鶴)을 상감했다. 구변(口邊)과 각부(脚部)에는 연판(蓮瓣)으로 보여지는 조야한 무늬가 백토(白土)로 상감되었고 포류문(蒲柳紋)으로 보여지는 양식화된 도안무늬가 하반부의 테두리 안에 흑백으로 상감되어 있어 대체로 청자가 분청사기(粉靑沙器)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높이 29.2cm. (덕수궁미술관 소장)

화청자 양류문통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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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靑磁楊柳紋筒刑甁

상감청자가 차차 소멸됨에 따라 새로 등장하는 것이 화청자(畵靑磁)이다. 화청자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자기는 신부에 유려하게 늘어진 버드나무를 집어넣었는데 기형은 전체적으로 장통(長筒) 모양이 주둥이가 뾰족하게 모난 것과는 달리 양 어깨는 완만하게 모죽임(抹角)을 했다. 회록색(灰緣色) 유약이 군데군데 산화(酸化)되어 황갈색(黃褐色)으로 변조를 보인다. 전라북도 부안요(扶安窯)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높이 31.5cm, 구경 5.5cm의 작은 병이다.(국립박물관 소장)

고려의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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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白磁

고려의 백자는 12세기경에 푸른색이 도는 중국백자(華南 景德鎭窯産)의 영향을 받고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태토(胎土)도 흰색의 고령토(高嶺土)이며 기벽(器壁)이 엷고 고대(高臺) 바닥에는 시유(施釉)하지 않은 것이며 기형이나 무늬에 있어서도 송(宋)·원(元)의 백자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말기에 와서는 기벽이 두꺼워지고 유약의 빛깔도 송의 정요풍(定窯風)을 닮은 독특한 백색으로 바뀌면서 조선시대 초기의 백자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인다. 시문(施紋)에 있어서는 음각·양각뿐만 아니라 흑토(黑土)나 진사(辰砂)로 상감한 것이 있고 기형은 수병(水甁)·완·합자(合子)·유호(油壺)·향로(香爐)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

백자상감 유로모란문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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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磁象嵌柳鷺牡丹紋梅甁

고려시대 백자로서는 희귀한 양식을 보이는데 기복(器腹)에 청자태토로 긴 능화형(菱花形)을 세로로 상감하고 그 안에는 흑·백·진사를 상감했다. 높이 28.8cm. (덕수궁미술관 소장)

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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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目

일종의 철유(鐵釉)로서 일본어의 덴모쿠(天目)가 보편어로 쓰이면서 생긴 이름이다. 도자기에 철분(鐵分)이 포화상태인 유약을 발라 황갈색 기조로 발색하는 방법이며 유약이 두꺼워질수록 검정색 기운이 많이 나타난다. 이 천목의 유약은 암석의 철분이 물에 녹아 흐르다가 다시 침전된 갈철광(褐鐵鑛)을 그대로 쓰는 것이며 고려시대의 천목은 송자기(宋磁器)의 천목을 모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천목에는 무늬를 백토로 상감하거나 조각한 것이 있고 특히 상감의 예에서 보면 검정 바탕에 백토가 효과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천목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고려자기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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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磁器-

고려자기의 무늬는 그 양식이 도안화된 것, 즉 추상적인 무늬로부터 시작하여 회화적인 것, 즉 사실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양식을 보이며 무늬의 소재도 동물·식물·인물·문자·자연물·기상(氣象) 등 다양하다. 그 종류는 대략 아래와 같다.

동자(童子) · 선인·원(猿)·원앙(鴛鴦)·소·말·쌍어(雙魚)·물새·용·봉황·학·기러기·오리·해오라기·공작·거북이·사지·개·귀면(鬼面)·운학(雲鶴)·노루·땅버들·송죽·인동(忍冬)·보상화(寶相花)·연화·모란·국화·매화·복숭아·유자·석류·포도·접시꽃·원추리·조롱박·오이·비운(飛雲)·뇌문(雷紋)·파문(波紋)·옥문(玉紋)·칠보문(七寶紋)·우점문(羽点紋)·문자문(文字紋)·당초문(唐草紋).

고려자기의 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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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磁器-器形

고려자기의 기형은 대체로 신라의 토기와 연결되지 않고 중국의 기형을 전수한 것이 많은데 송(宋)이나 원(元)뿐만이 아니고 당대(唐代)의 기형을 따르고 있는 것도 있어서 주목이 된다. 그 종류로는 매병(梅甁)·목항아리·정병(淨甁)·주잔자·대접·완·받침잔·다종(茶鍾)·접시·수반(水盤)·유호(油壺)·합자·향로·도침(陶枕)·편호(扁壺) 등인데 송·원 계통의 기형으로는 매병·주전자·대접·합자·향로이며 당의 기형으로는 능화형 연대접(稜花形 緣大接)·정병·퇴주기(退酒器) 및 고려 초기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말기까지 대(代)를 잇고 있는 광구세경병(廣口細頸甁)이 있다. 정병(淨甁)은 원래 인도의 쿤디카(Kundika)라는 불기(佛紀)로 출발하여 고려시대에는 일반 물병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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窯址

고려시대의 요지로 종래에 알려진 곳은 전라남도 강진군 일대, 전라북도 부안군·진안군의 요지 등 70여 개소이며 근래에 전라남도 광산 무등산(無等山), 전라북도 정읍 산내면,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충청남도 천원군 대천면, 공주군 사곡면, 서울 우이동 등에서 새로운 청자요지가 발견되었다. 이 간운데 특히 중요한 요지로서는 강진과 부안의 두 중심지라 할 수 있겠는데 이들 지역은 화목(火木)·도토(陶土)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수운(水運)에 의한 교통이 발달하여 초기부터 말기까지 최적(最適)의 도기생산지로 남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의 여러 요지는 초기의 것이며 동 사당리(沙堂里)의 요지군(群)은 최성기의 것임이 파편으로 알 수 있고 음각 양각의 최상급 청자로부터 상감청자·화청자도 생산되었다.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의 요에서는 1938년 조사시에 순청자·상감청자와 함께 백자·상감백자의 파편들이 처음으로 채굴되어 고려에서의 백자 생산이 확증되고 또 성기(盛期) 청자 조각과 함께 진사(辰砂)를 입힌 청자병의 파편이 나와 고려 진사자기의 가장 오래된 예로 주목을 끌었다. 중부 이북의 요지로서 고양시 원당 원흥리의 요지는 회록색(灰綠色), 띠 황록색(帶黃綠色)의 조질(粗質) 청자기이며 고대(高臺)의 눈도 고식(古式)의 차돌 조각이 아니고 모래·진흙을 쓰고 있다.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주촌의 요지도 이와 흡사한 말기의 청자를 보이며 고려 요지의 중심권에서 벗어난 지방요임을 알 수 있다.

청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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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磁瓦

고려시대의 청자와는 하나의 기와이기 이전에 완전한 미술품이며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으로 미루어 의종(毅宗) 때에 비로소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의종이 청기와로 덮었다는 양이정(養怡亭)의 기록이 보인다. 유품으로 발굴된 예는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에서 볼 수 있는데 청자의 파편 속에 여러 조각의 와편(瓦片)·와당편(瓦當片)이 나왔다. 그 형태는 수막새는 보상화에 주문띠(珠紋帶)를 돌렸고 암막새는 모두 초문을 양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