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술의 종류/공 예/금속공예
금속공예의 특징
편집금속공예
편집金屬工藝
금속을 가공한 공예품, 또는 금속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가공기술을 금속공예라고 한다. 이 소재로서의 금속을 발견하고 또한 그 금속의 특성을 살리는 가공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인류는 수십 만년이나 계속된 석기시대와 작별을 고하고,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었다. 그래서 생활을 위한 용구, 싸움을 위한 무기, 사회나 계층의 심벌, 자기의 장식 등, 금속은 인류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들 금속은 자연금으로서 또는 불에 의한 것으로서, 애당초는 전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 것일 게다. 즉 공기 중에서 화합물이 되기보다는 단체금속(單體金屬)인 편이 안정되어 있는 금이, 그 독특한 황금색의 광휘(光輝)에 의하여 사금 따위와 같은 자연금으로서 발견되었을 것이다.
은은 정련(精練)을 필요로 하고, 정련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고대 이집트 초기에는 금보다도 존중되고 있었다. 또한 오늘날 금속제품으로서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는 알루미늄도 그것은 금속상태로 천연(天然)에 존재하지 않고, 그 제법도 곤란하였으므로, 19세기 중간 무렵까지 발견되지 못하였고, 발견되었던 당시는 금보다도 귀중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불에 의한 금속의 발견은 식사나 제사 등의 모닥불이나 화재 등이 생긴 뒤 흙 고랑에서 변한 형상의 덩어리로서 우연히 발견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특정한 돌을 불 속에 넣음으로써 금속을 계획적으로 채집하는 방법을 알았으며, 채집된 대량의 금속을 재차 용해하고 주형(鑄型) 속에 들어부어서 소용되는 형태를 만들게 되었다. 석기시대 말기에는 이러한 방법에 의하여 동기(銅器)나 청동기가 제작되어서, 청동기시대에는 무기·불상·제기를 비롯하여 장식물·그릇·식기·장신구 등 훌륭한 금속공예품이 수많이 제작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조기술만에 한하지 않고, 금속재료나 금속가공기술에 있어서 불의 개발을 따로 떼어 놓을 수는 없다. 모닥불에서 시작된 화력은 날로나 송풍 따위 관련기술의 개발에 의하여 900
정도로 용해되는 청동품에서 천 수백도가 아니면 용해되지 않는 철 공예품의 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일반적으로 금속을 용해온도 이하의 적당한 온도로 열처리하면, 굳어진 금속을 유연하게 하거나, 금속에 따라서는 부드러운 상태를 경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더욱이 금속의 전연성(展延性)을 열처리와 아울러 이용함으로써 단금(鍛金)·추금(鎚金)·조금(彫金) 따위 가공기술이 발명되었다. 이와 같은 기술에 의하여 금속덩어리에서 판(板)이나 선으로 변형하거나, 복잡한 곡면이나 요철(凹凸)이 있는 무늬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금속을 접합하는 기법 중에서 열을 사용하는 방법은 그 주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가공기술을 통해서 금속은 일반적으로 딱딱하고 튼튼한 성질로 변해간다. 따라서 완성된 금속공예품은 그것이 제작되는 과정보다도 딱딱하고 튼튼해져서 쉽게 변형이나 파괴가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금속공예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많은 우연적인 발명·발견이나, 타국에서의 전파가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훌륭한 금속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데, 옛날에는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 등과 같이 고도의 문명이 일찍부터 열렸던 지역에서 발달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지역에서 발달한 가공기술이 다른 지역에 전파되고, 그 지역에서 특히 좋아하는 금속공예품을 낳거나, 또는 전파된 기술의 일부만이 발전되는 일도 있었다. 오늘날에 전해지는 이와 같은 금속공예품을 통하여 우리들은 그 당시의 지역이나 민족문명의 고저, 세계관, 그리고 생활양식까지도 고찰(推察)할 수가 있다.
서양의 금속공예
편집西洋-金屬工藝
금속이 실용화된 것은 기원전 5000년경의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다. 그리고 기원전 3000년경에는 이집트를 비롯하여 메소포타미아나 에트루리아에서 뛰어난 금속공예품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금속공예품을 보면, 오늘날의 금속가공의 기본원리가 완전히 획득되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출토된 금투구는 단금·추금의 기술에 의하여 넓적한 판에서 투구의 형으로 만들고 그것도 조금의 기법에 의하여 머리카락의 형까지 무늬로서 두들겨 만들었다. 또한 우르의 여왕 슈브아드의 무덤에서 출토된 헤어액세서리나 네클릿은 금의 얇은 판이나 가는 선이나 알갱이를 사용한 입금세공(粒金細工)으로서 그 뛰어난 기술과 작품의 화려함은 경탄할 만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주조에 의한 청동의 장식품이나 무기등이 많이 만들어진 외에 금 따위 귀금속에 의한 장신구나 호부(護符)가 투탕카멘왕(王)의 분묘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러한 유물을 통해 순금의 정교한 기술을 엿볼 수가 있다. 그것들에는 이집트 특유의 사자·독수리·뱀·갑충(甲蟲) 등의 동물 무늬나 로터스(lotus)·파피루스(Papyrus) 등의 식물 무늬가 기하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 중부에서 정교한 입급세공의 기교를 구사하여 수많은 아름다운 귀금속 공예품을 남긴 에트루리아인은 금속이 산출되는 곳을 찾아서 이주하였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를 거쳐 에트루리아에 전해진 입금세공이나 금은의 세선(細線)에 의한 장식품의 정교함은 에트루리아인에 의하여 완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그와 같은 장식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에게 문명의 금속공예품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비하여 소박하고, 뒤에서 가볍게 두들겨낸 무늬도 다른 공예품과 마찬가지로 바다 동물이나 들의 화초를 모티프로 한 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 시대가 되자 금은 따위 귀금속은 제구(祭具), 장신구(裝身具), 사치스러운 기구(器具)에 한정된 반면, 청동은 넓은 분야에서 이용되고, 이들 금공품은 다른 공예품과 마찬가지로 아칸서스(acanthus) 등의 우아한 무늬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나 에트루니아가 멸망하고 로마시대가 되자 섬세, 우아와는 대칭적인 로마의 독특한 심플하고, 힘찬 금속제품이 만들어졌다. 세선세공(細線細工)은 쇠퇴하고 때려 만들거나 주조에 의한 부조도 두께가 높은 힘찬 것으로 변하였다. 또한 금제품 외에 철제품이 널리 일반화된 것도 시대사상과 아울러 당시의 공학기술의 발달에 뒷받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세는 문화의 암흑시대를 거쳐서 그리스도교 중심으로 변하여 갔다. 그 사이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이 그리스, 로마 문화를 전승하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의 고명(古名)을 딴 이 비잔틴 문화는 동양과 직접으로 교류하여 모자이크의 이름으로 알려진 것처럼, 공예분야에 있어서는 단순한 전승 이상의 것이 있었다. 금은 보석을 위시하여 칠보(七寶)나 상감(象嵌) 따위 기술이 장식이나 장신구 분야에서 특히 발달하고, 색채 풍부한 화려함을 탄생시켰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전부흥, 인간종중의 사상을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의 형식을 받아들인 조각적인 메탈, 교회용구, 일용품 등 청동에 의한 주조품을 많이 남겼다.
다음의 바로크 시대는 르네상스 공예가 대담한 동세(動勢)와 색채가 풍부한 호화로움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하겠다. 바로크란 본디 변형진주(變形眞珠)를 뜻하였는데, 이 변형진주를 사용한 액세서리의 요란할 정도의 움직임이나 사물의 기능을 무시한 장식품의 형태가 당시의 공예 전반의 경향이 되어 있었다. 로코크 시대가 되자 바로크식의 동시대 무렵부터 행하여진 단철(鍛鐵)에 의한 문짝 따위 장식금구도 섬세한 풀무늬로 변화되었다. 그 뒤 고전취미가 생기거나 기계에 의한 조악(粗惡)한 양산품이 퍼지게 되었다. 라스킨이나 모리스는 그와 같은 조악품에 대하여 새로운 공예운동을 일으키고, 그것을 계기로 공예품의 용도나 기능이 문제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바우하우스는 아르누보나 시세션(secession) 등의 조형 실험적인 운동을 넘어서 양산공예의 근대적인 가치를 실천을 통하여 굳혀 나갔다.
한국의 금속공예
편집韓國-金屬工藝
남러시아에서 코카서스 방면의 기마민족이었던 스키타이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독특한 금속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스키타이는 토나카이(tonakai 馴鹿)·말 따위 동물 모티프를 금, 은, 청동 따위 재료로 주금하거나 조금하고, 복합적인 수형(獸形)의 도문(圖紋)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이것들도 멀리 앗시리아나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은주시대(殷周時代)에 이미 고도의 청동기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을 전승한 전국(戰國)이나 한(漢)의 금속문화는 페르시아나 그리스와 교류를 하여 조금씩 변질되어 갔다. 그러한 영향은 한국에도 미치게 마련이었다.
금속공예의 재료와 기술
편집금속공예의 재료
편집金屬工藝-材料 금속원소의 수는 약 60종인데 금속공예의 재료로서 주로 사용되는 원소는 백금·금·은·구리·쇠·주석·납·아연·알미늄 등 십 수종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단금속의 일반적인 성질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빛(光)의 불투명체로서 금속광택이 있다. (2) 열·전기의 양도체(良導體)이다. (3) 일반적으로 상온에서는 고체이고 비중은 크다. (4) 가열하면 연화(軟化)하고 고온에서 용해한다. (5) 전성(展性)·연성(延性)이 있다. 금속은 단금속인 채로 사용될 경우도 있으나, 금속재료의 기계적인 성질을 높이거나 미적인 효과를 낼 목적으로 합금될 경우가 많다. 합금은 일종의 금속과 일종 또는 수종의 금속 또는 비금속이 서로 융화 혼합된 것으로서, 그것도 금속으로서의 여러 성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합금의 공통성은 부가원소(付加元素)의 종류나 비율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단금속에 비하여 전연성(展延性)이 감소되어 무르게 되는 반면 경도(硬度)나 강도(强度)가 증가한다. 그리고 용융점(熔融點)이 저하하고 용융금속의 유동성을 증가시키므로 주조성이 양호하게 된다. 또한 금의 황금색이나 구리의 담적색(淡赤色) 이외의 빛깔을 합금에 의하여 낼 수가 있다.금은 단금속으로서 산출되고 화학적으로 지극히 안정되어 있다. 더욱이 전성·연성은 금속 중 으뜸이고 추금 따위에 적합하다. K24를 순금으로 하고 금을 18 함유한 합금을 18금이라고 한다. 일반 가공용으로는 K20,18,14 등이 사용된다. 은은 황화물(黃化物)에 닿으면 흑변(黑變)한다. 철은 정련(精練)이 용이하고 값이 싸며 철매장량도 많다. 그리고 강철이나 주철(鑄鐵)을 비롯하여 각종 철합금은 열처리를 함으로써 여러 가지 특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다.구리는 은에 버금하여 전기 전도도가 높고, 은보다 값이 싸고 풍부하게 산출되므로 전기기구에 사용된다. 또한 부드럽고 연전성(延展性)이 풍부하므로, 단금이나 조금 따위 장식용 재료로서도 중요하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을 놋쇠(黃銅)이라고 하는데 아연의 혼합비율에 따라 동청색에서 담황색까지의 다른 빛깔의 합금이 된다. 구리와 주석과의 합금을 청동이라 하고 주조성이 대단히 양호하므로 옛부터 미술공예의 주조재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알루미늄은 알마이드법(陽極酸化處理法)에 의하여 표면에 산화피막(酸化皮膜)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염색이 가능하다. 더욱이 가볍고 부드러우며 오늘날에는 값싸게 양산되므로 식기, 장식품, 건축기구, 수송기구 등 매우 넓은 분야에서 이용되게끔 되었다.주석, 납, 아연 등 비교적으로 저온에서 용해되는 금속의 합금을 저융합금(低融合金)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접착용 납땜을 위시하여, 장난감, 장식품, 소화기, 활자금(活字金)등 넓은 범위에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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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의 기술
편집金屬工藝-技術
금속에 이용되는 주된 기술은 금속을 열로 용해하고 그것을 구하는 형의 반대의 자형(雌型=鑄型)에 들어붓고, 냉각시켜 형의 역형(逆形)으로 굳히는 주조와 금속의 전연성(展延性)을 이용하여서, 쇠망치로 때려 늘리거나 구부려 성형하는 단금, 추금과, 금속의 표면을 쇠끌로 새기거나, 구멍을 뚫거나, 요철을 만들거나, 또는 오목한 부분에 다른 금속을 상감(象嵌)하는 따위 표면장식적인 조금(彫金)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 밖에 어느 기술에서도 공통되는 절단, 접합, 완성법 등의 기본기술이 있다. 그러나 금속공예품은 여기에 분류된 단일한 기술만으로 제작되는 일은 드물고 실제로는 몇몇 기술이 복합되어 있다.
주조
편집鑄造
주조는 열로 금속을 용해하고 그것을 형(型)에 들어붓는 기법인데, 이 주형의 재료나 열처리나 용해금속 주입(注入)의 방식에 따라서 분류된다. 주형의 재료로서 옛날에는 흙이 주된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흙 외에 석고나 금속도 사용하게 되었다. 흙으로는 형을 800℃ 정도로 장시간 굽는 소형(燒型)이나 건조시키는 건조형, 날것인 채의 생형(生型) 등이 있고, 소형은 미술품에, 건조형은 철병(鐵甁) 등에, 생형은 기계주물에 쓰이고 있다.
원형의 재료로는 나무, 금속, 석고 외에 납(蠟)도 사용된다. 납을 사용함으로써 복잡한 동일형상의 것을 다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으로 최근에는 모스트왁스법(法)이 개발되어 왔다. 용해금속의 주입방법으로서는 옛날에는 용해금속의 무게에 의뢰할 뿐이었으나, 최근에는 압축력을 사용하는 압박주조나 회전의 원심력을 이용하면 제품의 재질이 치밀해져서 튼튼하게 되고, 또한 뒤틀림도 적어서 형이 비교적 정확하게 된다. 자형(雌型=수틀)에 금속을 사용하여 이와 같은 강한 압력을 가하여 주조하는 다이캐스트(dye-cast)법은 근년 급속한 진보를 하고 있다. 더욱이 주조의 일반적인 특성은 단금이나 추금으로서는 제작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상의 것이라도 제작할 수 있으며, 크기도 대불(大佛)에서 반지 따위 소형의 액세서리까지 자유롭다. 다만 같은 크기일 경우에는 단금이나 추금 제품에 비하여 수배의 무게나 되어 충격을 받으면 무르고 파괴되기 쉬운 결정이 있다.
단금·추금
편집鍛金·鎚金 단금은 단조(鍛造)라 하며 주로 철에 사용되었다. 철은 적렬(赤熱)한 두 조각을 쇠망치로 치면 결합하고, 반복하여서 때리면 단련되어서 강인하게 되는 성질이 있다. 도검(刀劍)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형단조(型鍛造)등 기계화 되어 있다. 추금(鎚金)은 금, 은, 구리, 쇠 따위 연전성이 큰 소재(素材)의 판을 당금(當金=앰빌-받치는 금속덩어리) 위에 놓고, 쇠망치로 때리면서 늘리거나 짜거나 해서 성형하는 기술이다. 무기를 비롯하여 종교용구나 그릇 따위 일상용구에 널리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웅형(雄型)과 자형(雌型) 사이에 판금(板金)을 넣고 압력을 가하면서 가공하는 프레스나, 회전축에 부착시킨 판금을 회전시키면서 변형시키는 스피닝 등의 양산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자동차의 보디, 그릇, 조명기구 등 최근의 금속제품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단금이라고 말할 경우 여기서의 단금과 추금 양쪽을 포함시키는 일이 많다.
조금
편집彫金 조금은 주금이나 단금 따위에서 성형된 것이나 작은 장식품 따위의 표면장식을 하는 기술이다. 눅히면 연해지고 점착성이 생기는 야니 위에 금속판을 부착시키고 식었을 때에, 쇠끌과 쇠망치로 표면을 장식한다. 때려 만들기는 금속의 전성(展性)을 이용하여 판을 요철로 하고 부조를 만드는 기법이다. 파기(彫)는 쇠끌로 선이나 면을 파고 표면에 무늬를 만드는 기법이다. 에트루리아나 한국의 주조경(鑄造鏡) 뒤에 남겨진 조각 등은 유명하다. 상감(象嵌)은 금속 표면에 오목한 고랑을 파고 그 고랑에 다른 금속을 끼워넣는 기법으로서 금속에 무늬와 색채를 넣고 싶을 때에 사용된다.
방금
편집조금에 가까운 기법이다. 방금은 철사 알갱이·엷은 판 등을 납으로 붙여서 성형하는 철사세공이나 입금세공(粒金細工)이 주된 것으로서 에트루리아나 한국의 낙랑시대에 이미 발달하고 있었다.
칠보
편집七寶
칠보는 도기와 마찬가지로 장석(長石)을 주성분으로 하는 유약(釉藥)을 금속에 구워 붙이는 기법으로서 금공기법(金工技法) 그것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금속제품에 풍부한 색채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금속공예품 속에서 이따금 사용된 기법이다. 보석의 대용으로서 또는 조각된 지금(地金)에 색채효과를 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등 그 표현방법은 다채롭다. 생지(生地)로서 일반적으로 금, 은, 동, 탄파카(놋쇠의 일종)가 쓰이는데 쇠, 놋쇠, 알루미늄에도 칠보가 입혀진다. 최근에는 칠보에 의한 그릇이나 장식품 외에 같은 기법에 의한 각종 법랑(班瑯=enamel) 철기(鐵器)가 생산되고 있다.
그 밖에 금속의 공통적인 기법으로서 도검이나 쇠끌 따위 공구를 경화시키는 소입(燒入), 표면을 반들하게 하는 스크레이퍼, 바프, 전해연마(電解硏磨) 완성용 기구, 배 바탕 모양으로 윤택을 없애는 파라치기나 호닝, 금속에 빛깔을 띠게 하는 착색이나 도금가공, 금속접합의 납 붙이기 용접이나 병체법 그 밖에 금속의 부식법(腐植法)이나 방수법(防銹法) 등 대단히 많다. 그리고 좋은 금공품은 목적에 따라서 적절한 재료와 기법이 통합되어서 종합적인 효과를 낳는다.
금속공예 작품
편집메스카람두크의 투구
편집미국, 영국의 공동조사단이 1920년대에 남메소포타미아의 우르를 조사하였을 때, '왕가의 묘지'에서 수많은 금은재보와 함께 메스카람두크의 금 투구를 발굴하였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성립된 수메르의 도시국가에서는 왕, 신관(神官), 군인 등 소수의 지배계급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하(兩河) 하류의 비옥한 농업수익이나 주위 국가와의 중계무역에 의한 이익을 제마음대로 얻고 있었다. 피지배계급의 평민이나 노예는 이 왕후 귀족을 위하여 사치스러운 장신구(裝身具), 일상생활 도구, 무기 등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 순금 투구는 머리에 꼭 맞도록 단금·추금의 기법으로 제작되어서, 연속된 한 장 판(板)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면의 머리카락의 무늬는 얼킴이 없는 조금기법에 의하여 장식화되어 있다.
금수문주구동기
편집禽獸紋注口銅器
기원전 2000년경 이미 중국의 은에서는 다른 나라가 흉내낼 수 없는 고도의 주조기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금수문의 주구용기(注口容器)(257면 참조)를 위시하여 각종 그릇이나 이기류(利器類)에는 초현실적인 괴수문(怪獸紋)이 장식으로서 전면에 넣어져, 일상적인 실용품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것들은 조묘(祖廟)를 제사지내거나 부장(副葬)하기 위한 명기(明器)로 제작된 것으로서, 은왕의 고분발굴에 의하면 이들 부장 이외에 실로 처참한 인마(人馬) 따위 순장(殉葬)의 풍속과 당시 금공기술의 척도, 은왕의 강대한 권력이나 재력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