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단 군 신 앙/단군신화
단군신화〔개설〕
편집檀君神話〔槪說〕
단군신화는 단군조선의 개국신화로서 고구려의 주몽 신화,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 가야의 김수로 신화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건국신화이지만, 단군신화는 단순한 건국신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라는 점에서 다른 건국신화와는 구별된다. 여기에 단군신화의 특이성이 있다.
신화 형태로 보면, 단군신화는 천손강림형(天孫降臨型)과 웅녀설화형(熊女說話型)의 복합형이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고구려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 권남의 <응제시주(應製詩註)> 등에도 보이지만 가장 오래되고 내용이 풍부한 것은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조의 것이다. 이 고조선조에 실린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천제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천하를 다스릴 뜻이 있음을 안 환인이 하계를 내려다보니, 삼위태백(三危太伯)이 가히 홍익인간할 만한 땅이므로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정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나라를 열고 신시(神市)라 하였다. 바람(風伯)·비(雨師)·구름(雲師)을 부려서 곡식(主穀)·목숨(主命)·병(主病)·형벌(主刑)·선악(主善惡) 등 인간의 360여 사를 주관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이때에 곰과 호랑이가 한굴에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빌기를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그들에게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알을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이를 받아 먹었는데, 곰은 삼칠일(三七日)을 기(忌)하여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기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여자가 된 곰은 혼인할 곳이 없으므로 매양 신단수 아래서 아기 배기를 빌므로, 환웅이 잠시 환생해서 이와 교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하여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당고 즉위 50년 경인(庚寅:당고 즉위 元年은 戊辰이므로, 즉위 후 50년은 丁巳요 경인이 아니다)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弓, 혹은 方)·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1500년 동안 다스리다가 주(周) 호무왕(虎武王) 즉위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고,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산신(山神)이 되니 그 수(樹)가 1,908세였다고 한다."
단군신화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구구하나, 고조선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단군조선의 개국신화라는 점과, 그 시대는 꼬집어 말할 수 없으나 민족의 통일 과정에서 단군을 민족의 공통조상으로 받들어 모시게 되고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시조로 숭앙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수난을 받던 시기에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서 강조되고 숭앙되었다는 것은, 단군신화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 민족이 천손족(天孫族)임을 자부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단군신화가 지니고 있는 민족적인 의의를 엿볼 수 있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태초의 일들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우리 민족의 태초의 역사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신화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상으로 하였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단군신화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민족이념을 찾아볼 수 있다. (1) 우리 민족의 신성성과 시조인 단군이 천제자(天弟子) 환웅의 아들이니 우리 민족은 천손민족이요, 또 단군은 그 탄생과 나라 다스린 기간과 그 향수(享壽)가 신기하고 이상하니 보통 사람과 다른 위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성스러운 천손민족으로서, 어떠한 민족보다도 우월한 민족이라는 자존심이 반영되고 있고 또 우리 민족의 자존성이 나타나 있다. (2) 우리 민족의 역사가 유구하다는 점을 과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단군의 개국은 중국의 성왕인 요제(堯帝)와 동시대이며, 요제가 순제(舜帝)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과 같이 기자(箕子)에게 물려주었으니, 중국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민족의 주체성이 나타나 있으며, 또 정권 교체가 평화적이고 민주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 민족의 민주적인 민족성이 역사적으로 유구한 전통적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3) 광명을 사랑하는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 선인(先人)들의 산악을 숭배하는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지금도 백두산·태백산 등 산악을 숭배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강탄하고 개국한 성스러운 곳이 바로 태백산·백악산·아사달이기 때문이다. 즉, 그곳이 바로 민족의 요람지요 성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산악을 숭배하는 것은 산이 성역인 동시에 높고 크고 밝은 것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악숭배 속에서 우리 민족의 광명을 사랑하는 민족성을 찾아볼 수 있다. (4)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다른 민족의 시조설화나 건국신화에는 정복과 투쟁의 이야기가 그 줄거리를 이루고 있으나, 단군신화에는 농경민족에 고유한 온건하고 유화(柔和)한 성격과 개척정신이 나타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평화적이고 개척적인 건국이념을 볼 수 있다. (5) 평등을 사랑하는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자진해서 다른 민족을 침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온 인간을 한결같이 사랑하고 이롭게 한다는 평등사상에서 온 것이다. (6) 내세적이 아니라 현세적인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에는 전세관념(前世觀念)이나 후세관념이 나타나 있지 않고, 현세적인 관념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공상적이고 의타적이 아닌, 지상천국을 내 힘으로 건설해 보겠다는 현세적이고 개척적인 정신의 발로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는 불교나 그리스도교와 같은 종교가 곧장 민족종교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동학(東學)인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이념을 지닌 신화로서 높이 평가된다.
<洪 淳 昶>
환인
편집桓因
단군신화에 있어서의 천신(天神), 즉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하느님에 해당하는 존재.
<삼국유사>에서 환인은 제석(帝錫:釋提桓因陀羅의 약칭으로 제석은 須彌山 산정에 있는 임금으로 善見城에 위치하여 32천을 다스리면서 불법을 보호하고 위덕을 가진 천상의 신)을 일컫는다고 주(註)를 한 까닭에 안정복(安鼎福) 같은 성리학자는 <동사강목>에서 제석은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말이며 나아가서 단군신화 자체는 황탄불경(荒誕不經)한 승려들의 이야기라 논단하여 단군신화의 신화성을 부정했고, 조선초의 관찬물(館纂物)인 <동국통감(東國痛鑑)>·<삼국사절요(三國使節要)>·<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등에서는 아예 환인의 존재를 말살시켜 버렸다.
러나 단군신화의 신화성을 부정하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미 최남선(崔南善)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 김재원(金載元)의 <단군신화의 신연구> 등에 의해 비판되어, 단군신화의 사상적 배경은 충분히 그 원시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한국의 불교 수입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환인도 제석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의 성격이 이해된다. 즉, 환인은 세계 여러 민족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천신(天神)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바라보는 하늘은 인간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지고(至高)하다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초월적이고 강력한 것이며 영원한 것으로 관념지어진다. 나아가서 그 하늘에는 신성한 존재, 초인간적인 존재가 거주할 것이라는 신앙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천신에 대한 신앙이 형성된다.
천상적 존재인 천신에 대한 신앙은 자연적인 하늘 자체에 대한 신앙과는 구별되며, 천신은 어디까지나 절대타자(絶對他者)이며 인격적 존재로서, 우주의 창조자이며 천상의 지배자로 관념지어진다.
천신에 대한 신앙은 마오리족(Maori族)의 이호(Iho)신에 대한 신앙, 악포소 니그로(Akposo Negroes)의 우왈루위(Uwaluwu)신에 대한 신앙과 같이 미개민족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몽고의 텡그리(Tengri)신, 수메리아인(Sumerian人)의 딩기르(Dingir)신에 대한 신앙과 같이, 보다 고등문화의 민족신앙에서도 나타난다.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천신은 창조활동으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인간과는 떨어져 하늘로 후퇴해 버렸고 따라서 인간의 천신에 대한 숭배는 사라졌으며, 그 대신 천신은 그의 자손 혹은 풍요의 신 등을 지상에 내려보내 못다한 창조의 행위를 매듭짓게 한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의 환인은 바로 이 천신에 해당한다. 또한 환인은 전지전능한 천신일 뿐만 아니라 밝은 태양의 인격화(人格化)로서 풍요의 제공자이며 인간 생활의 보호자이다. 우주의 창조자인 환인은 자기의 존재를 하늘에 감추어 인간과의 일정한 간격을 만들고 대신 환웅이라는 자기 아들을 지상에 하강시켜 인간의 창조 후 다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즉 홍익인간의 이념을 지상에 이룩시켜 창조 행위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려 하였다. 환인과 환웅의 관계는 <삼국사기>·<삼국유사>·<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에 나타나는 천제(天帝)와 그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의 관계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늘로 후퇴를 한 까닭에 천신은 그 종교적 유통성을 상실해 버렸지만, 천신은 여전히 인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만약 인간이 신이나 조선(祖先)에게 간청한 기원이 수포로 돌아갈 경우, 인간은 다시 전지전능한 천신에게서 최후의 의지처를 발견한다. 한국에 있어서도 천신신앙의 일반적인 형태는 그대로 적용되어지는 것으로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에 하강했다는 신화의 의미는 천신신앙의 종말과 조상숭배의 대두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신에 대한 숭배의 형태는 현재 국사당(國師堂)신앙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것마저 산신신앙의 한 형태인 서낭당(성황당:城隍堂)에 점차 흡수되어 가고 있다.
단군신화에 있어서의 무구(천부인)
편집檀君神話-巫具(天符印)
전지전능한 천신은 하늘로 후퇴해 버리고 천신의 기능은 분화되어 단군신화에서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로 나타난다. 농경사회에서 비와 바람이 농경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크기 때문에 일찍부터 풍백·우사에 대한 신앙이 존재하여,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입춘 후 축일(丑日)에는 견수문곡(犬首門谷)에서 풍백을 제사하였고, 입하 후 신일(申日)에는 탁저(卓渚)에서 우사를 제사하였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천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인간세계와 관계함에 이르러 일단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려야 했고 환인에게서 받은 무구(巫具)로 간주되는 천부인(天符印) 세 개로써 이들을 통어했다고 추측된다.
무구의 종류는 민족 단위에 따라 다양하여 동경(銅鏡)·무고(巫鼓)·무복(巫服)·가면·모자·방울·목제(혹은 철제)의 마장(馬杖) 등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무구 사용의 근본 목적은 정령(精靈)의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풍백·우사·운사는 초지상적(超地上的)인 존재로서, 이들의 지배를 위해서 환웅은 천부인 세 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경우 문헌상으로 천부인 세 개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샤먼(shaman) 의식(儀式)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무고·무복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신단수(단군신화에 나타난 세계축)
편집神壇樹(檀君神話-世界軸)
환인의 재가를 얻어 환웅은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와서 신시(神市)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신단수는 세계축(世界軸)에 해당한다.
종교적인 인간은 우주 공간이 결코 동질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우주 공간에는 성스러운, 그리고 세속적인 두 가지 공간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종교적인 인간은 성스러운 공간을 세계의 중심에도 상정(想定)하고, 그곳에는 성스러운 것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우주의 창조가 세계의 중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은 완전한 조화의 세계라고 생각하여, 가능한 한 이 성스러운 장소에 접근해서 자기들의 거소(居所)를 정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생활근거지는 세계의 중심이라고 굳게 믿는다.
세계의 중심은 천상·지상·지하, 즉 3계(三界)의 교합처이며, 초자연적인 천상계와의 교통이 가능한 곳이다. 그리고 천상과의 교통로로서는 세계축이라고 하는 신성한 기둥이 존재한다. 세계축은 천상·지상·지하의 3계를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축(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상단은 하늘을 지탱시키는 역할을 하며 하단은 지하세계에 뿌리박고 있다.
세계축은 인간의 초보적인 세계의 구조에 대한 사고의 산물로서, 다시 말하면 수직적 세계관에 대한 인간의 사고의 반영인 것이다. 세계축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서남(西南)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일반적인 신앙현상으로 간주되는데, 세계축은 니푸르(Nippur)·라르사(Larsa) 등에서는 '하늘과 땅의 연계(連繫:Dur-an-ki)', 로마에서는 '문두스(mundus)', 바빌로니아에서는 '신에게로 통하는 문' 등으로 이름지었다. 세계축에는 우주산(宇宙山)과 우주수(宇宙樹)가 있다. 우주산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에 위치해 있고,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그 정상에서 천상과 지상이 맞닿아 상호 교통이 용이한 곳이다. 우주수는 우주산과 그 상징적 의미가 대개 일치한다.
우주수는 우주산의 상징의 보조 역할을 한다. 이것의 최상단에는 천신이 살고 있기도 하며,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하면 우주수의 나뭇잎마다에는 인간의 운명이 적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 우주수는 '생명의 나무'가 의미하는 상징성과도 통할 수 있다. 우주수는 세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천상·지상·지하 3계의 교통로이므로, 아룬타족의 전승에 눔바쿨라라는 신은 세계축에 해당하는 카우와 아우와(Kauwa-auwa)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샤머니즘(shamanism) 의식에서 샤먼은 의식의 목적을 천상의 신에게 간청하기 위하여 우주수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환웅은 샤먼과는 달리 우주산(太白山) 산정에 위치한 우주수(신단수)를 타고 지상에 내려왔다. 이것은 우주산과 우주수가 상호 결합하여 환웅이 이용한 세계축의 의미를 훨씬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환웅은 세계축이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에 신시(神市)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신시는 세속적인 공간과는 결코 동질적일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을 의미하며, 성스러운 곳이 아니면 잠시도 생활할 수 없었던 한국의 고대인(종교적 인간)에게 생활의 근거지를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웅녀(熊女)가 잉태를 위해 의식을 행한 장소가 또한 신단수 밑이므로 여기서 지상의 의지를 천상에 전달하는 우주수로서의 신단수의 의미가 더욱 뚜렷이 나타나며, 제의(祭儀) 장소로 사용된 이때의 신단수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제단과도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진한(辰韓)의 6촌장(村長)이 각기 표암봉·명활산·화산·형산·이산·금산에 하강했다고 하는 신화나, 김수로(金首露)를 위시한 가야연맹(伽耶聯盟)의 여섯 왕이 구지봉(龜旨峰)에 하강했다는 신화가 모두 세계축 중 우주산에 하강했음을 설명해주며, 우주수에 대한 신앙도 많은 문헌에서 발견된다.
단군신화의 제정일치사상
편집檀君神話-祭政一致思想
원시사회에 있어서의 왕은 부족의 지배자일 뿐만 아니라 신의 자손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왕은 신의 자손인 까닭에 초자연계와의 접촉이 가능하고 따라서 모든 제의(祭儀)를 주관한다. 다시 말해서 원시사회의 왕은 정치적 권능과 종교적 권능을 공유한 존재인 것이다.
환웅은 인간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는 정치적 권능을 행사하였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인간의 모든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또 풍백·우사·운사로 표현되는 기상현상도 조절하는 종교적 권능도 행사하였다. 즉, 환웅은 신시의 제왕사제(帝王司祭)였다.
특히 농사의 풍흉(豊凶)이 생활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던 농경사회에 있어서 기상의 조절은 제왕사제의 중요한 기능으로, 부여(夫餘)의 풍속에 천기가 고르지 못하거나 흉년이 찾아들면 그 책임을 왕에게 전가하여 왕을 바꾸거나 죽였다고 한다. 환웅의 환(桓)이 신라 왕호 중 무당을 뜻하는 차차웅(次次雄)과 음이 비슷하다는 사실에서도 환웅이 종교적 권능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환웅의 아들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조선을 건국하여 평양 일대에 군림하였다. 단군왕검이란 칭호 중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며, 단군은 무당을 의미하는 몽고어 텡그리, 한국어 중 무당을 지칭하는 당굴, 마한에서 천신을 제사하였다는 천군(天君) 등과 같은 의미로서 단군의 종교적 권능을 상징한다. 단군왕검도 평양 일대를 다스린 제왕사제였던 것이다. 왕이 초자연적 존재와 관계할 수 있다는 관념은 후대에까지 지속되어 신라 헌강왕(憲康王)은 주위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신의 무용을 혼자서만 볼 수 있었다는 설화에도 반영되고 있다.
단군신화와 터부
편집檀君神話-taboo
곰과 호랑이가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아야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 환웅의 지시는 일종의 터부이다.
금기(禁忌), 즉 터부(taboo)란 용어는 1771년 영국의 제임스 쿠크(J.Cook,1728∼1779)가 폴리네시아 프렌들리 제도(Friendly諸島)에 항해했을 때 통가족(Tonga族)간에 사용되는 것을 발견한 이후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프레이저(J.G. Frazer, 1854∼1941), 프로이트(S.Freud, 1856∼1939) 등에 의해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프레이저는 주문과 같은 것이 주술(呪術)에 있어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반면에, 주술에서 터부가 엄수되지 않으면 주술이 실패하기 때문에 터부란 주술에 있어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프로이트는 터부를 일종의 신경병으로 간주하여 무의식의 작용에 의한 행위의 규제로 보았다.
그러나 터부의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일정한 견해가 없고 다만 터부가 사회적 기능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과, 터부는 인간의 신성에 대한 지나친 접근을 금지하는 동시에 오예(汚穢)한 것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되고 있다.
터부의 위반에 대해서는 결코 인간적이 아닌, 초인간적 혹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응징되는데, 단군신화에서도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터부를 잘 엄수하여 새로운 삶의 획득에 성공하는 반면, 호랑이는 터부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천벌로서 새로운 존재로의 재생(再生)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웅녀설화
편집熊女說話
<삼국유사>와 <제왕운기(帝王韻記)>에 나타나는 단군신화의 내용은 조금 상이하다. <삼국유사>에서는 주술적인 효력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말라는 터부를 지켜 3·7일 만에 인간으로 변했다고 하며, <제왕운기>에서는 단웅(檀雄), 즉 환웅의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신화의 공통적 주제는 변신(變身)이며, 변신의 의미는 원시사회에서 널리 행하여졌던 성년식(成年式)에 투사해봄으로써 이해가 가능하다.
성년식
편집成年式
성년식은 출생·결혼·죽음같이 인간 누구나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通過儀禮)의 하나로서, 미성년 집단에서 성년 집단으로의 이행(移行)을 의미한다.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미성년은 이 의식을 성공리에 수행함으로써 완전한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받게 되고 사회에 대한 종교적·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또한 성년식은 유교의식 중 관례(冠禮)와 같이 결혼의식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므로, 성년의식은 근본적으로 미혼계층에서 기혼계층에로의 이행(移行)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며, 소멸되어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보다 나은 존재로 재생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며, 현재의 불완전한 자아(自我)를 제거하고 초인간적인 자아를 정립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현재의 세속적이며 정돈되지 못한 자아를 제거함으로써 성화(聖化)된 새로운 자아의 재생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러한 사고(思考)는 성년식 과정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일정한 연령에 달한 미성년은 자기의 가족과 격리되어 일정 기간 동안 숲에서 은거생활을 한다. 숲은 햇빛이 잘 통하지 않는 어두운 장소로서 저승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숲속에 격리된 미성년은 제의적(祭儀的)인 죽음을 상징하고 또한 모태에 다시 들어가 재생을 기다리는 '배(胚)의 상태'로 환원된 존재를 상징한다.
죽음의 상징은 성년이 될 후보가 성년식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일련의 고행(苦行)에서도 나타난다. 후보자는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재자에 의해 손가락이 절단되기도 하고 이를 빼기도 하는 등 가혹한 고행을 행하며, 심한 경우에는 할례(割禮)까지 감수한다. 이러한 일련의 죽음의 상징을 통하여 후보자는 과거의 자아와 관계를 끊고 새로운 자아의 획득에 성공하여 개인적으로 존재의 리얼리티(reality)를 확보하고 사회적으로 사회 성원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시련·상징적 죽음·재생이라는 성년식 과정의 내용은 신이나 문화영웅 혹은 신화시대의 조상들이 가르쳐준 것으로, 성년식 수행 과정에서 미성년은 성년식 주재자로부터 초인간적 존재의 행위를 반복해야 함을 배우고 종족의 신성한 전승(傳承)을 전수받는다.
단군신화가 전하는 성년식은 소녀성년식의 일종으로 곰(熊)은 미성년의 여성을 상징하고 있다. 곰으로 표상되는 미성년의 소녀는 호랑이라 상징되는 또 다른 미성년과 함께 제왕사제(帝王司祭)로서 성년식의 주재자 역할까지 담당했던 환웅에게 성년식에 참가해서 성년이 될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고, 환웅은 이들에게 성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방법이란 터부의 엄수와 금식(禁食)이었으므로 이것도 일종의 고행이다. 햇빛을 100일간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태초의 혼돈으로 회귀함을 의미하며, 죽음을 상징하는 저승세계로의 격리를 의미한다. 곰으로 표상되는 미성년의 소녀는 환웅의 지시대로 혼돈과 어둠 속에서 터부를 지키며 고행을 감수하여 21일 만에 성년식 과정을 끝내고 완전한 한 여성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다시 말하면 미성년은 곰이란 동물적 차원에서 죽음과 재생을 반복함으로써 완전한 인간적 차원으로 승화된다. 완전한 여성으로 공인된 웅녀는 자기의 배우자를 구하기 위한 제의를 행할 수 있는 권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제왕운기>에 나타나는 변신도 결혼을 전제로 한 변신이므로, <삼국유사>·<제왕운기> 양자에 나타난 변신의 의미는 성년식의 재생(再生)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 단군이 아사달(阿斯達)에서 산신이 되었다는 것도 재생을 통한 더 높은 존재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성결혼
편집神聖結婚
인간의 결혼은 하늘과 땅의 신성한 결합을 제의적(祭儀的)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와의 결혼은 하늘과 땅의 신성한 결합을 의미하며, 모든 인간 결혼의 원형(原形)을 제공한다. 신성결혼은 그 결과로서 인간세상에 다산(多産)과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인간은 혁거세와 알영(閼英)의 결혼(신라), 김수로와 허황옥(許黃玉)의 결혼(가야), 해모수(解慕漱)와 유화(柳花)의 결혼(고구려)에서 환웅과 웅녀와의 신성결혼을 반복케 한다. <제왕운기>에 나타나는 단수신(檀樹神)과 환웅의 딸과의 결혼도 근본적으로 신성결혼을 의미하는데, 이것은<삼국유사> 소인(所印)의 환웅과 웅녀와의 신성결혼신화와 동일하다.
한편 토템에는 집단토템과 개인토템과 선토템이 있는데, 이 중 집단적 토템은 씨족원 상호의 혈연관계를 상징해 주는 하나의 자연물(自然物)이며 환웅은 하나의 태양토템을 상징하는 것이고 곰은 다른 한쪽의 토템이므로 환웅과 웅녀와의 결혼은 두 집단토템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곰(熊)에 대해서는, 그것이 달의 재생력을 함께한 달동물로도 설명할 수 있고 또한 동명왕(東明王) 신화의 유화(柳化)처럼 일종의 '대지(大地)의 여신'일 수도 있다. 대지의 여신과 달동물은 양자 모두 여성과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