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의 교파
그노시스파
편집Gnosis派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지식에 의하여 파악하려고 한 2세기의 이단자. 그노시스(gnosis)란 그리스어로 '지식'이라는 말로서, 그리스도교의 그노시스는 계시를 받거나 구제되기 위한 지식을 말하므로, '각지(覺知)' 또는 '영지(靈知)'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대표자는 사토르니노스(Satorninos)·바실리데스(Basilides)·발렌티누스(Valentinus). 인간이 구제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갖게 되는 것은 2원론에 의한 광명과 암흑, 정신과 물질의 암흑 또는 물질에 사로잡힌 상태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는 금욕주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며, 이를 방해하는 악마를 극복하기 위하여는 영지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스도를 이해함에 있어서 유태인의 역사와 율법, 신의 입장에 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이방적 2원론적 신화 내지는 철학적 입장에서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적이기보다는 종교적 혼교(混交)에 의하여 발생하는 신비적 의식이 중심을 이루고 미신적인 가르침과 습관이 강했으므로, 아이레나이오스·히폴리투스·유스티노스·테르툴리아누스 같은 교부(敎父)들의 반대를 받아 2세기 후반에는 이단(異端)으로서 교회로부터 배척받게 되었다.
경교
편집景敎
7세기에 중국에 전해진 네스토리우스파(Nestorius派) 의 그리스도교. 638년 페르시아인 아라본(阿羅本)에 의하여 당(唐)나라의 장안(長安)에 전하여진 것.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주교였는데,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한 나머지 431년에 에페서스(Ephesus) 공회의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추방당했다.
그의 동조자들은 우선 시리아로, 나중에는 페르시아로 도망하여 여기에서 발전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처음에 페르시아 경교라 불렸으며, 그 교회는 페르시아절(寺)이라고 하였다. 후에는 이 절을 대진사(大秦寺)라 하고, 각국에 퍼진 페르시아 경교도 대진경교라 부르게 되었으며, 당나라 조정의 보호를 받았다. 781년에는 장안에 대진경교유행 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세워졌으나, 무종(武宗)의 압박에 의하여 쇠퇴되어 교도는 서역으로 도망가서 회교도가 되고, 어떤 사람은 도교(道敎)로 흡수되기도 하였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땅 속에 묻히고 중국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780년 이후 명대(明代)에 비석이 발굴됨으로써 당시의 융성하였던 교세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천주교
편집天主敎
중국의 로마가톨릭교. 중국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였다. 상제(上帝)라고 하면 중국의 전통적인 황천상제(皇天上帝)와 상충되고, 신(神)이라고 하면 선조의 영혼으로 착각될우려가 있었으므로 할 수 없이 라틴어 'Deus(神)'를 그대로 천주(天主)라는 한자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가톨릭을, 천주당(天主堂)은 가톨릭교회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로마가톨릭으로 부르기도 한다.
로마가톨릭
편집Roman Catholic
흔히 가톨릭(카톨릭) 교회를 말하며, 공교회(公敎會)라고도 하는 교회의 공식 명칭. 가톨릭은 그리스어의 'katolou'에서 온 말로, 이는 보편적·공동적·공평적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앞에 '로마'를 붙이는 것은 이 교회의 중심인 성 베드로가 정해준 사교좌(司敎座)가 로마에 있기 때문이며, 라틴 교회 또는 서방(西方)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기 교회의 예루살렘·안티오크·알렉산드리아가 만족(蠻族)의 침입으로 세력을 잃고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만이 남게 되었을 때, 로마제국의 수도이며 사도 베드로·사도 바울 순교한 땅인 로마의 사교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 호칭되고, 차츰 세력을 얻어 지상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여러 교회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그 신도가 세계 그리스도교의 약 반수를 점하고 있는 최대의 교회이다.
예수회
편집Jesus會
반종교개혁운동 결과 생겨난 남자수도회. 스페인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에 의하여 1534년에 창시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로욜라성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어 출정하게 되었는데, 이 때 결심한 바 있어 파리에 유학하고, 자비에르(Fransisco Xavier)와 함께 청빈·독신·교황에의 절대복종을 맹세하고, 1541년 예수회의 초대 총장이 되었다. 예수회는 학문의 연구와 교육·전도를 열심히 하며, 군대와 같은 조직을 가지고 로마교황에 절대복종한다.
프란체스코회
편집Francesco會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de Assisi)에 의하여 1209년에 창설된 수도회. 그는 아시시의 돈 많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22세 때 종교에 뜻을 두어 청빈을 내걸고 독신·복종을 준수하며 동지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청빈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최초에는 개인적으로나 단체로나 일체의 소유권을 버리고 신도의 회사에 의존하여 생활하였으므로, 이들을 '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 혹은 '거지교단'이라고 불렀다. 다른 수도회와 같이 속세를 떠나지 않고, 수도원 밖에서 전도·교육사회복지 등에 종사, 봉사 생활을 하는 활동수도회이다.
아우그스티누스회
편집Augustinus會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의 계율에 따라 1256년에 창설된 수도회. 목회(牧會)·전도·교육에 종사한다. 정식 명칭은 아우구스티노 은사회(隱士會:Ordo Fratrum Eremitarum S.Augustini).
도미니크회
편집Dominic會
성 도미니쿠스에 의하여 1216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탁발수도회. '설교와 영혼의 구제'를 중시하고 명상생활과 활동생활을 겸하며, 신학·철학·교육학 방면에 아퀴나스(T.Aquinas)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그리스 정교
편집Greece正敎
정통신앙을 주장하는 교회. 예루살렘·안티오크·알렉산드리아의 여러 교회가 멸망한 뒤, 로마 제국의 동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만이 남게 되었다. 1054년에는 서부에 있는 로마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로마 교회는 그리스 교회를 서로 파문하였다. 그 뒤 러시아를 비롯하여 동유럽 제국에 퍼져나갔다. 이들 교회는 각각 독자적인 교회정치를 갖고 상호간에 교류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 총주교는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의 점령 아래 있을 때 이를 대신하여 정교회의 중심이 되었으나, 혁명에 의하여 탄압을 받게 되자 세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차츰 그 세력을 회복해 가고 있다. 각국 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해 있다.
콥트 교회
편집Copt敎會
이집트인의 교회를 말한다. 콥트라 함은 아라비아어 'qubt'로서 토착 크리스찬을 가리킨다.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그리스도교(敎)가 전해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번성을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신성(神性)에 흡수되어 인간의 육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성설(單性說)을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코로스가 제4회 교회회의(451년)에서 이설이 부정(否定)되자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고, 후에 페르시아와 아랍에 정복당한 뒤에는 박해를 받게 되었다. 신도수 약 85만명. 현재에는 다른 그리스도 교회와 교류관계를 갖게 되었다.
영국 국교회
편집英國國敎會
영국에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것은 180년경이라고 하며, 314년의 교회회의에 영국인 주교가 참석하게 되었다. 559년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캔터베리를 중심으로 앵글로-색슨인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로마 교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534년, 국왕 헨리 8세의 이혼문제를 발단으로 로마로부터 독립하여 국교회가 되었다. 영국 국왕은 신앙의 보호자로서 각 주교를 임명한다.
성공회
편집聖公會
사도들로부터의 신앙과 전통을 이어받은 세계 유일의 성스러운 공동 교회라는 뜻. 로마가톨릭 교회·그리스 정교회·영국 국교회 등이 성공회라고 칭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성공회라 함은 영국 국교회를 가리킨다.
에피스코팔리안파
편집Episcopalian派
감독제도를 갖는 교회라는 뜻. 미국에서는 성공회가 에피스코팔 교회(프로테스탄트)라고 칭해지므로 그 약칭이며, '에피스코포스(episkopos)'는 '감독'을 지칭하는 그리스어이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 성공회의 전도지가 되었으나, 합중국의 독립과 더불어 교회 또한 영국 성공회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시베리를 영국에 보내어 주교(감독)의 안수를 받게 하려고 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안수를 받지 못하고, 1748년 스코틀랜드에서 주교 안수를 받고 귀국하여 미국 성공회의 최초 주교가 되었다. 1785년에 다시 세 사람이 영국으로 건너가 캔터베리와 요크의 2대 주교로부터 안수를 받고 귀국하여, 미국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성공회로부터 사도 계승의 주교직을 이어받게 되었다.
고교회
편집高敎會
프로테스탄트 각파 중에서 가톨릭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종파, 전통을 존중하고 의식을 중히 여긴다.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복음주의가 강조된 데 반대하여, 뉴먼(J.H.Newman)·퓨지(E.Pusey)·케블(J.Keble) 등이 1833년 팜플렛을 발행하여 옥스퍼드 운동을 일으켜서 영국 국교회의 프로테스탄트화를 방지하고 동시에 교황주의와 비국교주의에 반대하였다.
저교회
편집低敎會
프로테스탄트 각파 중에서 복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 의식과 전통보다는 전도를 중시한다. 영국에서는 18세기 후반에 국교회의 침체상태를 회복시켰다고 한다. 이 사람들에 의하여 영국 국교회전도협회가 결성되었다.
프로테스탄트
편집Protestant
16세기 로마가톨릭 교회에 프로테스트(protest:항의)하고 분리된 그리스도교 각파.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루터와 캘빈에 의하여 이루어진 종교개혁을 따르고 있으며, 현재 북부 유럽·영국 및 북미 등지에 세력을 떨치고 있다. 루터파·개혁파·영국 국교회 등과 이들로부터 분리된 장로파·회중파(會衆派)·뱁티스트파·프렌드파·메소디스트파·유니테리언파와 각국의 자유교회 등을 총칭한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무시하고 성서의 권위를 중시하며, 인간이 구제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이라고 주장한다. 성직의 위계제(位階制)에도 반대하여 만민은 모두 제사(祭司)임을 주장하고, 성직자와 신도의 신분상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국 국교회는, 로마가톨릭 교회에 항의한 점에서는 프로테스탄트이지만, 교리와 전통은 이어받고 있다.
퓨리턴
편집Puritan
청교도. 영국 국교회의 가톨릭적 성격에 불만을 품고, 캘빈주의에 의한 철저한 개혁을 하고자 하였던 사람들과 이러한 유파를 따르는 영국 국교회 이외의 사람들을 말한다. 영국 국교회의 종교개혁은 로마의 교회권에 반대하여 일어난 것이지만, 역사적 가톨릭 성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즉 로마와 제네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중간 입장을 취하려 하였던 것이지만, 여왕 메어리 1세는 가톨릭 교도로서 프로테스탄트를 박해하였으므로, 신대륙에 난을 피하여 건너간 사람들이 캘빈주의의 영향을 받아, 1558년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와 더불어 다시 귀국해서 영국 국교회를 철저히 개혁하려고 청교도운동을 일으켰다. 또 설교로써 일상생활의 개혁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엄격한 윤리적 지도를 행하였다.
1620년 청교도로부터 분리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는 아메리카대륙에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이주하였다. 1642∼1649년의 청교도혁명과, 1650∼1660년 크롬웰의 공화정 때에 있어서 청교도운동은 활발하였다.
위그노
편집Huguenots
프랑스의 캘빈파 프로테스탄트. 프랑스에서는 16세기 초엽부터 인문주의자들 간에 종교개혁의 싹이 트게 되었고, 이것이 캘빈에 의하여 한층 더 발전되었으며, 1559년에는 파리에 개혁파 교회가 생겨났다. 그 뒤 박해를 받아, 1572년에 위그노전쟁이 일어났고, 1598년에 낭트칙령(勅令)에 의하여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게 되었다. 그러나 1685년에는 그 자유가 다시 박탈되어, 1789년의 인권선언이 있을 때까지 탄압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 동안에 있어서 위그노들은 국외로 도망하거나 비밀로 신앙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1802년에는 겨우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존재가 인정되고 루터교회와 더불어 국가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되었다.
펀더멘탈리스트
편집Fundamentalist
근본주의자(根本主義者). 미국 교계(敎界) 안에서 일어난 보수주의자들로서 성서의 무류성(無謬性), 동정녀 잉태(童貞女孕胎), 그리스도의 속죄적 희생,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초자연적 능력 따위를 근본적 교리로 주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 교계에 영향을 미치자 사회를 개인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복음운동이 성행하게 되어 종교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성서의 고등비평, 진화론, 근대주의가 성행되는 것에 반대하여, 성서의 말씀은 한 자 한 구절이 하느님의 영감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므로 절대로 오류라고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지나친 자유주의에 흐르려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애나뱁티스트파
편집Anabaptist派
재세례를 한다는 그리스어 'anabaptismos'에서 나온 말. 종교개혁 전에는 유아(幼兒)에게도 양친의 신앙에 따라 세례를 해 주었으나, 지각이 나지 않은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비성서적(非聖書的)이므로 진실된 세례가 될 수 없다면서 본인이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한 세례야말로 유효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도 재세례를 하게 한 것으로부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이러한 생각이 강하게 일어나서 메노나이트파(Menonite派)·뱁티스트파 등이 일어나 유럽과 미국에 번지게 되었다. 로마가톨릭 교회는 물론 종교개혁자인 루터·츠빙글리·캘빈 등으로부터도 비난과 박해를 크게 받았다.
리바이벌
편집Revival
신흥부흥이라는 뜻. 성령의 작용에 의하여 신앙에 게으른 자가 각성을 하고, 신앙을 갖지 않았던 사람이 인도를 받아 귀의(歸依)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13세기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에 의한 운동과, 18세기의 웨슬리(J.Weseley)에 의한 메소디스트 운동 등이 이에 관한 신앙부흥운동이다. 근세에 들어와서 1874년에는 무디(D.L.Moody)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었으며, 오늘 날에 있어서도 성결파 사람들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홀리네스파
편집Holiness派
J.웨슬리의 '기독자(基督者)의 완전론'에 입각한 성결파의 여러 교회. 자유 메소디스트 교회·나자렌 교회·동맹기독교단 등의 성결파이다.
루터파
편집Luther派
종교개혁자 루터(M.Luther)에 의하여1517년에 생긴 프로테스탄트 교파. 세가지의 기본 신조와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동(同) 변증론·대소(大小) 교리문답·슈말칼트(Schmalcald) 신조·화협신조(和協信條)를 채용하고, 사람은 신앙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며 성서야말로 신앙과 행위의 완전한 규범으로서, 모든 교리는 성서에 기초를 둔다는 것과 만인제사(萬人祭司)를 주장한다. 세계 프로테스탄트 신도의 약 3분의 1을 점하고 있으며, 독일 및 북구 제국에서는 이 파가 국교 또는 준국교로 되어 있고, 소(小)교리문답에 의한 교육을 중시한다.
캘빈파
편집Calvin派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캘빈(J.Calvin)에 의하여 시작된 개혁파교회 또는 장로교회라고 불리는 것((장로파). 그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교회의 조직을 구성하고, 목사와 신자의 대표격인 장로가 같은 입장에 서서 교회 내의 운영과 교육을 행하도록 하였다. 성서에 충실하여 에배는 예전을 떠나 설교를 중시하고 설교는 성서 강의를 주로 하였다.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 요강>은 성서와 교부문서(敎父文書)의 인용이 많고, 조직화된 그의 신학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유럽 각국의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에 성행되어, 후자로부터는 퓨리턴을 발생케 하고, 이것이 미국에 건너가 복미에 1500이란 신도수를 갖게 되었다.
장로파
편집長老派 츠빙글리로부터 캘빈에 계승된 교파로서 캘빈파 또는 개혁파라고 부른다. 장로제에 의한 교회운영을 하므로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이 파는 교회에 목사장로와 신도의 지도훈련을 맡는 신도장로가 있으며, 이들에 의하여 조직된 임원회의가 교회의 운영에 임한다.
또한 신앙고백을 같이 하는 일정 지역내의 몇군데 교회는, 목사와 각각의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들로 장로회를 조직하여 교회의 건설, 목사의 임면, 신앙고백의 변경 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기도 하며, 각 지방교회가 통합하여 공동교회가 된다. 이 장로회의 활동을 돕기 위하여 몇 개의 장로회로 된 총회가 있으며, 각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에 의하여 구성된다(( 캘빈파).
회중파
편집會衆派
조합파(組合派)라고도 하며, 1550년경에 영국 국교회로부터 이탈한 자들이 모여 설교하고 의식을 집행하였는데 이들 중에 엘리자베스 1세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가담하여, 당시 브라운(R.Brown)이 참다운 교회는 자발적으로 회개를 한 사람들에 의하여 된 것이어야 하고, 이렇게 해서 된 교회는 하느님과의 계약과 사람들 상호간의 계약에 의하여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 보고, 교회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며, 개개의 교회야말로 참다운 교회이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참다운 우두머리로서 성서에 보인 바와 같이 목사·교사·장로·집사를 뽑아야 할 것, 각 교회는 상호간에 협력하여야 할 것, 어떤 교회가 다른 교회에 대하여 어떤 권위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여 회중파로서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필그림 파더스도 이 회중파의 원리에 입각한 청교도였다.
메소디스트파
편집Methodist派
웨슬리 형제가 영국 국교회 안에서 시작한 신앙각성운동이 미국에 건너가 교회로 조직된 것. 그들이 방법적으로 신앙생활에 힘썼기 때문에 메소디스트라고 불려졌다. J.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사제로서, 자기의 믿는 바에 따라 복음을 전하는 데 전념하였는데, 각지의 국교회로부터 반대를 받아 할 수 없이 야외설교를 시작하여, 1739년에 브리스틀에 메소디스트회를 위한 건물을 짓게 되었다. 그는 미국에 코크(T.Coke)를 보내기 위하여 안수례(按手禮)를 해주었으나, 국내에서는 전도자들에게 예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죽을 때까지 영국 국교회와의 분리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 메소디스트 교회가 성립된 것은 1795년이었다. 캘빈주의를 배격하고, 성령의 감화에 의한 신앙경험을 중시하며, 설교와 조직에 의하여 미국·유럽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뱁티스트파
편집Baptist派
침례교회라고도 한다. 자발적인 신앙고백을 갖지 않은 유아의 뱁티즘(세례)을 인정하지 않고, 뱁티즘은 반드시 전신을 물에 담그는 침례를 주장하는 교파이다. 특색으로는 신앙과 생활의 규범은 오직 성서의 가르침에 따를 것, 자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자만이 신도 자격이 있으며 뱁티즘은 침례에 의할것, 교직자는 만인제사설(萬人祭司說)에 따라 영적 내림을 받은 자라야 할 것 등이다. 각 교회는 독립되어 그 연합체인 조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고, 속죄의 결정은 신앙고백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예전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국국 교회의 사제 스미스(J.Smyth)가 교회의 압박을 피하여 네덜란드로 피신, 1608년에 재세례를 받고 1812년에 런던에 돌아와 교회를 조직한 것이 그 시초이다. 미국에서는 초대 교파로서, 남미 뱁티스트는 펀더멘탈적인 경향이 강하고, 북미 뱁티스트는 자유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퀘이커파
편집Quaker派
그리스도 친우회(Society of Friends)가 정식 명칭이다. 이 집회에서는 전원이 침묵을 지키고 영감(靈感)을 얻은 자가 큰 소리로 몸을 떨면서 기도를 시작하는 데서 퀘이커(몸을 떠는 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1847년 영국의 폭스(G.Fox)가 '심령 속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확신하고 시작한 운동을 19세기에 들어와서 그리스도 친우회라고 칭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표현된 하느님은 오늘날도 여전히 만인의 가슴속에 살아 있으며,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 주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여 끊임없이 하느님의 새로운 가르침 속에 살고자 한다. 무목(無牧)·무신조·침묵의 예배, 오로지 성령만에 의한 새크라멘트 등을 원칙으로 삼는다. 개인생활은 검소와 성실, 사회적으로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형제애, 비전평화주의(非戰平和主義)에 따라 더욱 좋은 사회 건설을 강조한다. 주로 미국 동부지방과 영국에 약 20만의 신도가 있다.
구세군
편집救世軍(Salvation Army)
군대조직으로 된 프로테스탄트의 일파. 메소디스트파의 목사 부스(W.Booth) 부처가 런던기독교전도회를 1878년에 구세군으로 개편한 것으로서, 처음 가입한 자를 준병사, 신도를 병사, 신도 중의 봉사자를 하사관, 사관학교 교육을 받은 전임자를 사관이라 부른다. 런던에 만국병영(萬國兵營)을 두고 각국에 군국본영(軍國本營)을 두며, 전체의 통솔자는 대장, 각군 지도자를 사령관, 교회를 소대, 교구를 연대라고 하는 것과 같이 군대조직과 똑같고 군기(軍旗)·제복·계급제도를 갖는다. '피와 불'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으며, 생활의 규율은 엄격하고 의식은 없다. 구제와 성결을 교리로 하고, 야전(野戰)이라고 칭하는 가두선전을 행한다. 빈곤·매춘·음주 등 사회악의 근절을 목표로 사회의 압력과도 싸우고 있다.
세븐스데이파
편집Seventh-day派
한 주일의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교파. 우리나라에서는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 부르고 있다. 신앙에 의한 구제와 그리스도의 재림, 안식일의 엄수, 전신의 뱁티즘(Baptism), 십일조 헌금을 강조한다. 1845년 미국에서 윌리엄 밀러에 의해 재림운동이 일어난 다음 조셉 베스, 제임스 화이트 부처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며, 화이트 부인을 예언자로 삼고 있다.
메노나이트파
편집Mennonite派
16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애나뱁티즘(Anabaptism) 운동의 한 파로서 메노 시몬스에 의하여 지도되고 조직되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본래는 애나뱁티스트파 가운데 무저항주의·절대평화·비전주의(非戰主義)를 강조한 스위스 형제단(兄弟團)에 의하여 시작되어, 뒤에는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로마가톨릭 교회의 사제(司祭)였던 메노 시몬스의 지도를 받아 애나뱁티스트파의 광신적으로 되기 쉬운 악폐를 배격하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아세례 거부, 병역 거부, 교회 자치, 정교(政敎) 분리, 무저항주의를 내세웠다. 속세와의 타협을 완고하게 거부하였기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되고 유럽으로부터 미국에 건너가서는 교세의 확장을 보아서, 현재 신도수 50만에 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양심적인 반전론자(反戰論者)'로서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
파수대
편집把守臺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적인 조직으로서 '파수대책자협회(把守臺冊字協會)'라 칭하고 잡지 <파수대(Watch Tower)>에 의한 문서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1870년경 C.T. 러셀에 의하여 창설된 일단의 성서 연구단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이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천년지복설(千年至福說=Millennium)을 신봉한다.
모르몬교
편집Mormon敎
정식 명칭은 말일성도(末日聖徒) 예수그리스도 교회라 하고 그들의 경전을 모르몬경이라 한다. 1830년 조셉 스미스가 뉴욕주 숲속에서 어떤 환상을 보게 된 체험으로부터 발생된 것인데, 처음에는 심한 박해를 받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일리노이주에서 폭도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현재는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市)에 본부가 있고, 신도수는 100만명에 달한다. 성서와 함께 스미스가 뉴욕주에서 발견했다고 하는 미국 고대인의 기록인 예언자 모르몬의 교서(敎書)라고 하는 '모르몬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이언(異言)·예언·계시·환각·신유(神癒)를 신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
유니테리안파
편집Unitarian派
그리스도교의 정통신학인 삼위일체설을 반대하고 단성설(單性說)을 주장하는 교파.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예수는 인간 중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주장을 편다. 따라서 동정녀잉태(童貞女孕胎)·기적·부활·재림·속죄 따위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예수의 사랑만을 강조한다. 종교개혁 후에 일어나서 19세기에 들어와 유럽과 영국·미국 등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합리주의적 신학사상은 정통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찬 사이언스
편집Christian Science
그리스도교 과학(科學)이라고 칭하는 미국의 신유주의 단체(神癒主義團體). 1866년 미국의 메리·베이커·에디 부인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그녀는 최면술사였던 남편이 죽은 뒤 성경을 읽다가 예수가 병자를 치유하는 법칙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고 '과학과 건강-성서의 열쇠'라는 것을 1875년에 발표하였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가까이 하며 그 인도에 따를 때 모든 병은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실재하는 것은 다만 정신과 영혼뿐이고 물질은 모두 환영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고뇌와 질병을 환상으로 보고 건강은 의학적인 치료에서가 아니라 진실된 존재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올바른 사고에 의하여 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1878년 미국 보스턴에 크리스찬 사이언스 제일교회를 건설하고 일간신문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를 발행하고 있다.
M.R.A.
편집Moral ReArmament
도덕재무장이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도덕적 재생을 실천하는 단체. 미국의 루터파 교회 목사인 부크만이 영국의 케딕크 집회에 참석, 영적인 체험을 얻고 귀국하여 학생전도에 전심, 1921년에는 해외전도로서 옥스퍼드의 학생집회에서 큰 감명을 주게 되었던 탓으로 옥스퍼드 그룹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절대정직(絶對正直)·절대순결(絶對純潔)·절대무사(絶對無私)·절대애(絶對愛)를 목표로 몇 사람이 한 조(組)가 되어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증언함으로써 도덕적인 재생을 이룩하자는 것. 이러한 운동은 구미제국(歐美諸國)의 그리스도 교계에 널리 퍼지게 되어 처음에는 개인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이던 것이 1938년에는 M.R.A.로 개칭하고 사회적·정치적인 면에도 운동을 확대해 나갔다.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매년 이곳에서 세계대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