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한국의 정치/한국의 정치제도/한국의 정치제도〔서설〕
韓國-政治制度〔序說〕 사회의 제도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규범(norm), 재가(sanctions) 그리고 조직(organization) 등이 굳혀졌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넓게 본다면 한 나라의 정치제도는 그 나라의 정치문화가 정향(定向) 속에서 특정 형태로 결정(結晶)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정치제도를 이해하려고 할 때, 한국의 정치제도를 풀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몇몇 이론가의 견해가 있다. 즉, 카를 비트호겔은 그의 저서 {동양적 전제론}에서 '수리전제(水利專制)' 이론을 앞세워 동양의 정치사회에 군림하는 권력은 전제주의적이고, 제도는 중앙집권적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집중적으로 한국의 정치에 관심을 둔 바 있는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라는 저서에서 카를 비트호겔과 거의 같은 견해를 펴고 있다. 더욱 한국의 헌정질서에 언급한 카를 뢰벤슈타인은 한국의 권력적인 정치제도의 성격을 '신대통령제'라고 규정하여 그 특징을 지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비교정치방법을 따르고 있는 학자나 이론가들도 한국의 정치현상이나 제도에 언급할 때는 위에서 인용한 기본적인 성격을 벗어나서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즉, 한국의 정치사회를 밑받침하고 있는 정치문화는 같은 민주정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권력이나 제도가 다원화되어 있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개개인을 정치의 기본 요인이나 단위로 삼는 정치적 제도 행위라기보다는 더 집중적이고 공동적이며 집약적인 집단의 규범에서 정치의 이념을 찾아내려는 경향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집중적이고 공동적인 통치이념이 공동사회적인 민주정치의 제도로 발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권력을 중앙집권적인 제도로 굳히는 정치문화를 이룩하는 경향을 지니는 것은 전통적인 민주정치 의식의 미개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동양적 전제주의를 벗어나 현대적인 정치제도에로 발전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민족국가나 민족주의에 의하여 구조화된 정치제도를 통한 정치훈련을 받지 못한 정치사회 구조의 취약성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정치사를 통해 보더라도 그러한 성격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우리의 헌정사(憲政史)에는 9번(1990년 현재) 개헌이 있었다(학자에 따라 좀 다르게 보는 견해도 있다). 그 9번의 개헌 중 7번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집권화(集權化)하기 위한 개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7번의 개헌 중 2번이 대통령의 중임제를 폐기하기 위한 개헌이었다. 이러한 예증은 개헌 자체에 대한 좋고 나쁘고의 가치판단과는 관계없이 집중적인 대통령의 권한강화를 불가피하게 한 정치문화의 구조적인 특색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제도는 헌법상의 기본질서에서는 분권에 의한 제도의 집중을 막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채택되고 있으면서도 실제상으로는 그것을 실행하기가 어려운 제도적인 불안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분권화된 각 정치제도는 헌정질서의 근본 이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대개의 경우 종속적이었다. 그러한 권력구조의 특징은 일반적인 정치과정이나 사회과정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즉 일반사회의 경우를 보더라도 권력과 권력과의 상호기능이 횡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종적으로만 조직화되어 왔다. 정당조직이 그러했고, 노동단체가 그러했으며, 심지어는 정치권력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결사체마저도 권력지향적인 권력집단의 탈을 써야만 비로소 사회적으로 존립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관념 등은 그 두드러진 양상의 하나이다. 결국은 한국의 정치문화가 4반세기 동안 독자적으로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독자적인 정치문화에 부응하는 정체제도를 마련하지 못하고 제도적인 불안정 상태를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불안정 상태를 이끌어 온 이유를 몇 가지 골라본다면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건국 초기부터 정치사회(政治社會)의 구조를 융합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지나친 제도의 모방성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건국 초기부터 몇 번에 걸친 정치적인 불안과 정변 때문에 욕구불만적인 정치문화가 제도적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대중적인 정치문화와 지속적인 갈등 상태에 있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치제도는 정치권력과 관료제도의 중간에서 균형적인 입장에 있을 때는 제도적인 안정을 다소라도 유지할 수 있으나, 그 균형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때는 제도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정치공식(政治公式)의 영향 밑에 있어 온 것이다. <李 延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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