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예술·스포츠·취미/영화/영화의 감상/프랑스영화의 감상

프랑스영화의 감상〔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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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映畵-鑑賞〔槪說〕프랑스는 원래 영화의 발명국으로서뿐만 아니라, 그 후의 프랑스 영화의 전통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느낌이 있다. 이것은 프랑스 예술 전반에 걸친 찬란한 전통으로 보아 한결 그 깊이를 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알기 쉽게 프랑스 영화를 말할 때 대개 다음과 같은 5기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 1895-1920년까지의 초기 프랑스영화

( 1920-1930년까지의 전위 영화 중심의 경향

( 1930-1940년까지의 전전(戰前) 프랑스영화

( 1940-1955년까지의 전후(戰後) 프랑스영화

( 1955-1975년까지의 근래의 프랑스 영화

초기 프랑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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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期France映畵

루이 뤼미에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시네마토그래프가 발명된 것은 1895년의 일이다. 그 후 프랑스 영화는 조르주 멜리에스에 의해 초기의 영화제작이 개척되어 재빨리 무성영화 초기의 정착을 성공시켰다. 파테나 고몽 같은 영화제작회사는 이후 1910년대를 전후해서 <지고마> <판토마> <프로테아>같은 범죄를 다룬 연속활극으로 전세계의 관객을 휩쓸었다. 물론 오락영화였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지고마>는 파리의 일간신문인 <르마탕>지에 실린 레옹 사지의 원작을 영화화한 범죄심리극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활동사진 초기에 상연되어 큰 인기를 모았으나 마침내 제3편에 이르러 상연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프랑스영화에는 일찍부터 범죄 암흑영화의 전통이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위영화 중심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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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衛映畵中心-作品-

프랑스영화에 예술성을 찾아준 것은 1910년대의 필름 다르 운동과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이었다. 특히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은 영화예술의 본질(本質)을 찾는 전위영화의 운동으로 루이 델뤼크, 제르메느 뒬라크, 장 에프스탕, 아벨 강스, 르네 클레르 등 뛰어난 영화작가와 이 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독특한 예술성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순수영화(純粹映畵)·절대영화(絶對映畵)·초현실주의영화(超現實主義映畵) 등 새로운 영화미학(映畵美學)이 작품을 통해서 나타났다. 여기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이러한 전위적인 영화작가들이 극영화에도 손대어 프랑스영화사상에 남는 명작들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아벨 강스는 <철로(鐵路)의 백장미>를 발표했고, 연대는 바뀌지만 장 콕토는 <미녀와 야수>를 장 에프스탕은 <아서가(家)의 후예(後裔)>, 르네 클레르는 <파리의 지붕 밑> <침묵은 금(金)>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전전의 프랑스영화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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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前-France映畵全盛時代한참 뻗어나가던 프랑스영화계에 일시적으로 침체를 가져오게 한 것이 30년대 초의 전세계적인 경제공황이었다. 이로 인해서 파테나 고몽 같은 명문이 문을 닫는 비운을 맞보았으며 한동안의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33년경부터는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어, 다시 전전황금기(戰前黃金期)를 맞이했다. 자크 베켈의 <행복의 설계>, 앙리 칼레프의 <밀회>, 장 르느와르의 <수인(獸人)>, 앙드레 위느벨의 <하루만의 천국(天國)>, 자크 페데의 <망향> 등 수없는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보면 프랑스의 전전파(戰前派) 거장들이 한참 피크를 이루었던 전성기(全盛期)가 바로 이 무렵인 것 같다. 프랑스문학에서 완숙했던 낭만주의의 전통이 영화 속에 한껏 되살아나는가 하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했던 휴머니즘이 아름답게 찬미되었고, 프랑스 서민층의 독특한 낙관적이며 유머러스한 기질이 그대로 스크린 속에 살아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프랑스영화가 1940년대를 맞이하자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되며, 독일의 점령하에서 점령군의 감시와 검열 속에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전후의 프랑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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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後-France映畵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가 종전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전의 프랑스영화와는 많은 변모를 가져오게 되었다. 세계의 사상적인 동요로 페시미즘이 짙게 깔려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독일군의 점령 밑에서 자유를 잃고 굴욕을 참아야 했던 프랑스에선 그전과 같은 밝은 휴머니즘이나 낭만주의적 기풍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히 전전의 거장들의 퇴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마르셀 카르네의 <인생유전>이나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 앙드레 카야트의 <라인의 가교>같은 수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앙리 조르주 크루조의 <공포의 보수>나 <정부(情婦) 마농>같은 작품에는 짙고 회의적인 인간상실(人間喪失)의 비극이 깔려 있고, 로베르 브레송은 <시골 사제(司祭)의 일기> 속에서 또다른 내일의 영화미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철학적으로 성장해 온 실존주의(實存主義)가 프랑스에서 꽃을 피워, 문학적으로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를 필두로 해서 다방면으로 영향을 주어 왔던 점을 간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프랑스영화의 전후 리얼리즘이 이 무렵에 가장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쟁이 끝난 후에 해외에 망명한 전전의 거장 르네 클레르, 장 르누아르, 마르셀 카르네 등이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었다. 장 르누아르가 <강(江)>과 <프렌치 캉캉>을 발표했고, 르네 클레르가 <밤의 기사도(騎士道)> <릴라의 문>을, 그리고 마르셀 카르네가 <애인 줄리엣>을 발표했으나, 볼 만한 것이라면 <애인 줄리엣> 정도였다.

근래의 프랑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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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來-France映畵

1957-58년경부터 오늘날까지 최근의 프랑스영화의 흐름을 본다면 이것은 바로 '누벨 바그(새물결)'를 중심으로 보게 된다.

누벨 바그의 영화작가들은 무엇보다 전전의 거장들이 내세웠던 낭만적·낙관적·허구적(虛構的)인 태도를 배격했다. 이탈리아에서 전후에 네오 리얼리즘이 왕성하게 일어났던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서는 무엇보다도 카메라가 직접 터치하는 일상생활(日常生活)의 현실이 거짓없는 인간의 현실이었다. 위선(僞善)은 위선대로, 악(惡)은 악대로, 부도덕(不道德)은 부도덕대로, 모순(矛盾)은 모순인 채로 그것이 인간의 리얼리티였다. 현실(現實)을 감추고 허구속에 도피하는 거기에는 이미 진실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누벨 바그가 내세우는 시네마 베리테의 기본태도였으며 그들의 영화기법도 종래의 허구적이고 드라마틱했던 스타일을 탈피한 생생한 영상을 추구한 것이었다. 굉장한 세트, 휘황한 조명 속에서 이루어진 포토제니가 아니라, 바로 생활의 현실에 밀착한 영상이며 리듬이었다.

로베르 브레송은 <저항>과 <소매치기>를 내놓았고, 프랑스와 트뤼포는 <어른은 알아주지 않는다>, 클로드 샤브롤은 <종형제(從兄弟)>를, 장 뤼크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를, 루이 말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누벨 바그의 물결은 새로운 프랑스 영화의 면모를 일신했다. 다소 색채는 다르지만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나의 사랑> <지난 해 마리엔바드에서> 등도 근래 프랑스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누벨 바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 밖에도 많다. 누벨 바그가 1960년대 후반에 넘어오면서 퇴조(退潮)의 기미를 보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선 생략하기로 하고, 전술한 이들 이후의 주목할 영화 작가로서는 클로드 르루시가 <남(男)과 여(女)> <파리의 정사(情事)>를 만들었고, 아니에스 바르다가 <행복> <창조>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으며, 내일을 기대받는 신인들이 많다. 오늘날의 프랑스영화는 아직까지 로베르 브레송, 알랭 레네, 장 뤼크 고다르 등이 기둥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전세계에 웅비(雄飛)하던 프랑스영화의 전성시대에 비하면 한결 적막감이 든다고나 할까.

<李 英 一>

현대 프랑스영화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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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랑스영화의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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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 France映畵-槪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사이의 프랑스 영화를 현대 프랑스 영화라고 간주하고 살펴본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며, 요령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누벨 바그가 문제가 된 1957-58년을 하나의 길잡이로 보고서, 누벨 바그까지의 사이를 제1기, 새로운 물결의 전개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제2기라는 식으로 2개로 나누어서 전망하기로 한다.

전시 중의 프랑스영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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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時中-France映畵製作그런데, 특이한 현상은 한 가지 더 있다. 즉 전시 중에 독일 점령군의 허가에 의해서, 엄격한 검열과 감시를 받으면서 영화 제작이 행해졌으므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영화는 전시 중에 프랑스영화가 점령군의 허가사항이기 때문에 1시기의 중단은 있었으되 뒤를 이어받은 형태로 되었다고 보는 식의 관찰도 할수 있다. 그 까닭은 1944년 파리가 해방되기 이전에 마르셀 카르네가 완성하고 있었던 <천정좌석(天井座席)의 사람들>이 이듬해인 1945년에 상영되자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전후 프랑스영화 부흥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시 중에 르네 클레르, 장 르느와르, 줄리앙 뒤비비에 같은 거장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대전 전에 벌써 중견 감독이 된 카르네는 신인인 앙리=조르주 크루조, 로베르 브레송, 앙드레 카야트, 크리스찬 자크 등과 함께 고국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각종 악조건하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대부분은 시대극이라든가 코미디 등의 도피영화였었지만 카르네의 <악마가 밤에 온다>같은 레지스탕스적인 작품이 있으며, 브레송의 <죄의 천사>, 크루조의 <밀고> 등의 뛰어난 작품도 있다. 이와 같은 전시 중의 노력과 정진(精進)이 젊은 재능을 대전 후에 급속히 성장시켰다. 패전에 뒤따른 점령하에서 영화제작이 계속되는 기현상은 전후 프랑스영화를 순조롭게 한 듯하다.

프랑스영화의 전후·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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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映畵-戰後·第一期3색기가 상징하는 자유·평등·동포애의 프랑스정신도 그러하거니와 프랑스의 예술도 자유와 개성을 기반으로 하고 성립하였다. 오락 일변도의 대중영화는 별문제로 하고, 예술성을 생각하고 만들어지는 프랑스영화는 감독의 개성적인 재능과 역량이 작품을 결정하는 효율이 높다. 가령, 동등하게 리얼리즘 작가라고 말할 수가 있을지라도 브레송은 브레송의, 크루조는 크루조의 리얼리즘 표현을 지니고 있어서 잘못 관찰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다. 크루조는 <범죄하안(犯罪河岸)> <정부(情婦) 마농> <공포의 보수> <악마와 같은 여자>를 만들고, 브레송은 <불로뉴 숲의 여자들> <시골 사제(司祭)의 일기> 등을 남겼다. 이 두 사람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점을 찾는다면, 전후 프랑스 영화의 커다란 경향으로 된 암흑영화의 장르에 속한다는 점 뿐일 것이다.

물론 암흑영화 자체를 장르로 인정할 것이냐 하는 것도 문제라고 보는 측도 있다. 대체로 르네 클레르의 밝은 작풍을 예외로 친다면 예술영화의 대부분은 어두컴컴하고 페시미스틱한 경향에 치우치는 것이 프랑스 영화의 전통이며 따라서 인간악을 묘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실 암흑영화라고 하는 호칭도 대전 후에야 프랑스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가 1944년에 해방되고 45년에 2차대전이 끝났는데도 그 해에 베트남전쟁이 시작됨으로써 54년에 프랑스가 민족 해방군에게 패배할 때까지 많은 희생과 타격을 계속 받게 되고, 또한 그 해의 알제리의 민족해방 게릴라 전쟁에도 군대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럽고 암흑에 찬 세월을 프랑스가 보냈던 것이 영향을 미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암흑스런 세대에 신인(新人) 르네 클레망이 나타났고, 전시 중엔 저속했던 카야트가 사회고(社會苦)·사회악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귀국한 클레르 및 르느와르는 노성(老成)으로, 카르네는 다채로와지고, 장 콕토는 문단에서 참가해옴으로써 프랑스영화는 만발기(滿發期)를 만난 것같이 보였다.

프랑스영화의 전후·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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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映畵-戰後·第二期정력적이고 다작가(多作家)인 뒤비비에도 <동 카밀로> 등 희극(喜劇) 2편을 만들더니 페이스가 떨어짐과 동시에 연출력도 쇠퇴하기 시작했고, 색채 영화가 뒤떨어진 느낌이 있는 프랑스에서 르느와르는 <강> <프렌치 캉캉> <사랑 많은 여자> 등 색채 표현에 의욕적인 정열을 기울이고 있으되 역시 과작(寡作)이었다. 클레르는 <밤의 기사도(騎士道)> <릴라의 문>에서 노후의 꽃을 피웠다. 카르네는 <애인 줄리엣>에서 대전 중의 낭만주의를 승화시키고 <탄식의 텔레즈>에서 그의 냉철한 사실주의의 극한을 보인다. 그러나 3노대가(三老大家)보다도 10살 이상이나 젊은 카르네가 이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게 되는 것은 뜻밖이었다.

클레르가 <릴라의 문>을 낸 1957년에 브레송은 <저항>을, 신인 루이 말은 처녀작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내놓았다. 3작품 모두 다 탈출을 그렸던 것은 우연스럽다고 보겠으나 제1작이 완성된 것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제2·제3작은 모두 신선(新鮮)한 박력과 양감(量感)에 미래의 약속을 품고 있었다.

클레르는 60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들어갔으며, 브레송은 <소매치기> <잔 다르크의 재판> 등을 만들고서 프로배우에 의한 영화제작을 거부했으며, 말은 <지하철의 저어지>를 제외하고는 <연인(戀人)들> <사생활> <귀화(鬼火)> <파리의 큰 도둑놈>에서 브레송과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었다.

같은 1957년 대가적(大家的)인 지위에 있었던 크루조는 <스파이>를 내놓았고, 카야트는 <눈에는 눈을>로써 기염을 토하는 한편, 이른바 누벨 바그의 1번타자인 클로드 샤브롤은 <굉장한 세르쥬>를 만들었다. 영화는 영상(映像)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그의 새로운 주장은 확실히 파문을 일으켰으나, 샤브롤은 제2작 <종형제> 이후는 통속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1958년에 <어른은 알아주지 않는다>에서 나온 프랑스와 트뤼포와 1959년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나타난 장 뤼크 고다르 등 두 사람에게 새로운 물결의 주도권을 넘겼다. 재능과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남는 것이 현실이다.

그 후, 새로운 물결의 파문 밖에서부터 알랭 레네를 비롯하여 자크 드레, 여류 아니에스 바르다, 클로드 르루시 같은 신인이 나온 바 있으나, 시네마 베리테 등 대중으로부터 동떨어진 이론에 사로잡히는 경향도 있었으며, 미국 자본의 대공세에 압도되어 현재의 프랑스영화는 수년 이래 계속해서 위기에 처해 있다.

작품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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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좌석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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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井座席- Les Enfants du Paradis감독 마르셀 카르네. 주연 장 루이 바로오, 아를레티. 흑백·스탠더드. 1944년 제작.

<내용> 1840년대의 파리. 레저와 범죄의 거리. 팬터마임 극장의 피에로(바로오)는 여예인(女藝人:아를레티)을 좋아하는데, 내성적이기 때문에 말문을 열 수가 없다. 바람둥이 여자 연기자는 호색가(好色家)인 주역배우(피에르 브랏수르)와 동침하는데, 고집이 세고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건방진 사나이에게 환멸을 느끼고, 돈많은 백작과 가까이하게 된다. 보잘것 없는 대서인(代書人:마르셀 엘랑)은 남색가(男色家)였으므로 여자로서가 아니라 여예인(女藝人)의 파트너인 체하면서 피에로와 여자 연기자 사이를 중개(仲介)하고, 아니꼬운 백작을 미워하는 나머지 두 사람의 현장을 보인 뒤에 터키탕에서 백작을 살해한다. 팬터마임 극장 주인의 딸(마리아 카자레스)은 피에로를 연모하다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으나 여행에서 돌아온 여자 연기자는 피에로와 다시 만나 하루밤을 지낸다. 그러나 피에로는 행복은 가정과 아내에게 있음을 깨닫고 떠나 버린다.<감상> 카르네는 형(型)으로서의 인물을 늘어 놓으면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산 사람으로서 살리고 폭 넓게 울고 웃기는 인간 희극을 전개한다. 천정좌석(天井座席)의 사람들이란 연극을 좋아한다는 뜻인데,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연극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랑스인의 인생을 인생희극으로 빗댄 영화라고 간주하더라도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배우가 멋지게 벌이는 연출은 3시간 반에 걸치는 상영(上映)으로서 나타나는데, 관객들은 이 긴 관람시간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

육체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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肉體-惡魔 Le Diable au Corps

감독 클로드 오탕 라라. 주연 제라르 필립, 미슐린 프레일. 흑백·스탠더드. 1946년 제작.

<내용>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휴전의 날, 프랑수아(필립)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애인 마르토(프레일)와 사별(死別)하게 된다.남의 아내인 그녀는 프랑수아의 아이를 낳자마자 죽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임시 병원으로 되어 있는 학교에서 서로 알게 되어 서로 애인이 된다. 마르토는 출정 군인과 약혼했었으므로 프랑수아와 결혼할 수는 없었는데도 그와 사랑하다가 임신한다. 휴전을 며칠 앞두고 파리로 놀러 갔던 바 요정에서 마르토는 실신했으며, 병원에서 간호를 했으나 파리 교외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낳고 죽었다. 프랑수아가 연인(戀人)의 출관(出棺)을 전송할 때 휴전을 고하는 종이 울린다.

<감상> 무성영화시대에 전위영화 서클에 있었던 오탕 라라는 제2차 대전 중에 단독적인 감독이 됐는데, 이것은 대전 후의 제2작이지만 그의 최고작이다. 레이몽 라디게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서 전쟁이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의 행복을 파괴한 폭력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악역(惡役)을 연출한다. 두 연인이 거의 순진할 만큼 아름답게 묘사되므로 전쟁의 참혹성이 은연 중에 피부에 느껴진다. 전쟁 반대의 의도를 내포하는 비련영화(悲戀映畵)라 하겠다.

정부 마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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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婦 Manon

감독 앙리=조르주 크루조. 주연 세실 오브리, 미셀 오크렐. 흑백·스탠더드. 1948년 제작.

<내용>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프랑스 해방도 바로 눈앞에 다가선 1944년.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거리에서는 독일에 협력한 '매국노'를 제재하고 있었다. 전쟁에 찌들린 소녀 마농(오브리)이 곤혹을 당하는 것을 저항군 민병 로벨(오크렐)이 구출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해방 후 두 사람은 파리에서 암시장을 경영하고 있는 마농의 오빠 레옹(세르주 레자니)의 벗이 되는데 마농은 애인을 배신하고서 레옹의 두목의 정부(情婦)가 된다. 레옹은 다시금 동생을 미국인에게 팔아 넘기려 하다가 로벨에게 살해된다. 로벨은 마농을 데리고서 마르세유로 도망치고, 근동으로 가는 화물선에 많은 유태인과 함께 밀항자로서 승선한다. 팔레스티나 연안에서 두 사람은 유태인들과 같이 상륙하는데, 사막에서 아라비아인에게 습격당하여 유태인으로서 살해된다.

<감상> 프레보의 소설에서 골자를 딴 크루조의 마농 레스코인데, 대전 후의 파리의 혼란과 암흑면이 날카롭고 차갑게 묘사된다. 유태계인 크루조는 마농 등을 유태계로 간주하고, 유태인 망명자들과 함께 약속된 나라로 보냈는데 드디어 구적민족(仇敵民族)에게 침입자라고 해서 살해된다. 유태민족의 불행을 아무 비창감(悲愴感)도 없이 냉혹하게 쏘아보는 크루조의 눈은 거의 자학적일 만큼 날카롭다.

오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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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phee

감독 장 콕토. 주연 장 마레, 마리아 카자레스. 흑백·스탠더드. 1949년 제작.

<내용> 죽음의 왕녀(카자레스)는 인간을 죽음의 나라로 불러오는 것이 맡은 바 직책인데, 어느날 시인 오르페(마레)를 사모하게 됨으로써 질투 때문에 그의 아내를 죽음의 나라로 연행한다. 이것은 죽음의 법칙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해서 재판받는다. 오르페도 그 법정에 서고, 그는 아내와 함께 삶의 나라로 되돌려 보내지는데, 오르페를 원한스럽게 보는 측의 무리에게 사살된다. 그러나 불멸(不滅)이어야 될 시인(詩人)의 죽음을 보상하기 위해, 죽음의 왕녀가 희생물이 됨으로써 오르페와 아내는 삶의 나라로 살아 돌아간다.

<감상> 콕토에 의한 오르페 전설의 현대화(現代化). 오르페가 죽음의 왕녀의 사랑을 받고 그도 사랑하는 것은 콕토가 죽음을 사랑한 것을 인격화한 것이며, 오르페는 콕토 자신일 것이다. 즉 그 자신과 죽음의 왕녀와의 삶의 나라와 죽음의 나라에 있어서의 사랑의 유희의 시(詩)가 영화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일체가 콕토의 시혼(詩魂)에서 탄생된 창조물이며, 일반 영화에서의 영상(映像)이나 말과는 이차원적(異次元的)인 것인 관계로, 이에 흥미를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감각에 맡길 도리 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 재료를 영화화한 콕토의 기술(技術)은 완전에 가까운 놀랄 만한 것이다.

재판은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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裁判-Justice est fait

감독 앙드레 카야트. 주연 클로드 노리에. 흑백·스탠더드. 1950년 제작.

<내용> 죽음에 직면하여 암 때문에 고생하는 애인을 안락사시킨 에르자(노리에)는 살인혐의로 중죄재판소(重罪裁判所)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장은 7명의 배심원에게 평결(評決)을 맡긴다. 아내의 바람기에 고민하는 농부는 유죄표(有罪票), 약혼하여 좋은 기분에 잠긴 사환은 무죄, 딸의 연애에 신경을 쓰고 있는 퇴역군인은 유죄, 신앙심이 돈독한 인쇄업자는 유죄, 여자 미술상인은 독신의 적적함을 에르자의 제2의 애인으로부터 받은 달콤한 사랑으로 달래고서 무죄, 여자 미술상인을 좋아하는 장사아치도 무죄, 난봉꾼인 말(馬)주인은 유죄표로서, 4대3의 유죄가 되어 에르자는 5년의 징역형 선고를 받는다.

<감상> 배심 제재판(陪審制裁判)은 좋으냐 나쁘냐, 안락사를 시키는 것은 죄냐 아니냐 라는 2개의 문제를 카야트가 제출한다. 이에 대해 그 자신은 의견을 말하지 않으나 배심제에는 부정적이며 안락사에는 동정적인 심경으로 기울고 있다. 이 문제도 매우 흥미가 있지만 7인의 배심원의 개인적 사정이라든가 환경의 묘출(描出)방법이 예사로운 카야트 영화처럼 관념적으로 흐르지 않고 인간미가 넘쳐 있으므로 혹은 유죄로 하고 혹은 무죄로 하는 배심원의 심경이 약동하고 있다. 카야트의 최고작이다.

파리의 하늘 아래 센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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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s le Ciel de Paris Coule la Seine

감독 줄리앙 뒤비비에. 주연 없음. 흑백·스탠더드. 1951년 제작.

<내용> 파리에 사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어느날의 사건이 그려진다. 주인공은 좀 이상스런 얘기이지만 '파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펜팔 애인을 만나러 파리 시내까지 찾아온 시골처녀가 편지의 내용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한 채 걷고 있는데 그만 정신 이상이 된 조각가에게 살해되며 조각가는 경찰관에게 사살된다. 패션모델은 애인인 의과 대학생이 금년에도 국가시험에 실패했으므로 실망하게 된다. 미치광이 조각가를 쏜 경찰관의 유탄(流彈)으로 중상을 입게 된 공원(工員)은 시험담력(試驗膽力)이 없는 의과 대학생의 대수술로 연명을 한다. 이 공원은 동맹파업으로 일을 쉬고 있었으므로 결혼기념일의 축하 술에 취해서 들떠 있을 때였다. 무작정 고양이를 좋아하는 늙은 처녀는 고양이의 먹이를 찾아 헤매며 어느날 하루종일 파리 시내를 걸어 다닌다. 공부를 몹시 싫어하는 계집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내아이와 센강에서 보트 놀이를 하다가 날이 저물어서 미아가 되었는데, 미치광이 조각가의 도움으로 자기 집으로 무사히 돌아간다.

<감상> 에피소드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뒤비비에가 파리 탄생 1,500주년 축하제 때 만든 영화. 파리의 하늘 밑, 시민의 생활은 어떤 면에선 모두 그 영위(營爲)가 서로 연결됨으로써 1,500년간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파리의 대통로(大通路), 좁은 뒷골목, 사람이 많이 나다니는 광장이 다큐멘터리로 묘사되어서 파리의 표정이 서민의 희로애락에 반영된다. 뒤비비에의 테크닉이 훌륭하다.

공포의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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恐佈-報酬 Le Salaire de la Peur

감독 앙리 조르주 크루조. 주연 이브 몽탕. 흑백·스탠더드. 1952년 제작.

<내용> 남미의 어딘가에 있는 석유갱(石油坑)에 화재가 일어난다. 니트로 글리세린으로 폭파하여야만 불을 끌 수 있게 되어 있다. 미국 대자본의 석유회사는 소방결사대 대원을 모집한다. 마리오(몽탕)외에 세 사람의 건달이 응모하여 2대의 트럭으로 화재 현장으로 향한다. 도중에서 트럭 한 대는 폭발하여 두 사람이 죽고, 마리오의 한패도 사고로 죽었으므로 마리오 혼자서 현장에 도착한다. 두 사람 몫의 보수를 받아들고 크게 기뻐하던 그는 돌아가던 길에서 실수하여 골짜기 밑으로 굴러떨어져 죽게 된다.

<감상> 생명을 건 폭약 운반이라는 공포의 보수는 큰 돈이 아니라 죽음이었다고 하는 풍자. 마리오를 기다리는 여자의 희망도 파탄이 나고, 미국 사람도 아닌 4명의 남자의 목숨과 연인었던 여성의 희망을 희생으로 하여 석유회사는 큰 화재를 끔으로써 재난을 면한다. 미국인만 아니라면 사망을 하든 절망을 하든 상관 없다고 하는 미국 대자본의 비인도적(非人道的)인 이익추구주의(利益追求主義)에 대해 크루조가 항의를 하게 되는데, 공포의 서스펜스의 고조는 굉장하다. 손에 땀을 쥐게만 하는 정도가 아닌 긴박감은 히치코크의 서스펜스 영화를 능가한다. 크루조의 최고 걸작이다.

목로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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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vaise

감독 르네 클레망. 주연 마리아 셸. 흑백·스탠더드. 1956년 제작.

<내용> 1850년대의 파리의 노동자 거리. 제르베즈(셸)는 내연(內緣)의 남편인 랑체가 두 아이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가출(家出)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기와장이 쿠포(프랑수아 페레)와 결혼하고 딸 하나를 낳는다. 쿠포가 큰 부상을 당하게 되자 대장간 주인 구제의 돈을 빚내어 세탁소를 차린다. 술주정뱅이인 쿠포가 자기집 근처로 되돌아와 살고 있는 랑체를 데리고 와서 동거케 한다. 쿠포는 알콜 중독자로서 단정하지도 못하며 제르베즈는 랑체와 다시금 부부의 관계를 되찾는다. 장남은 어머니의 행위를 보다 못해 구제와 같이 여행길을 떠난다. 랑체는 바람둥이 계집인 비르지니와 눈이 맞게 되어 또다시 집을 나가고, 알콜 중독으로 발광한 쿠포는 시민병원에 수용된다. 제르베즈의 세탁소는 비르지니의 과자가게가 되고, 제르베즈는 선술집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감상> 클레망이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을 그린 것인데 제르베즈를 중심으로 타락하기까지의 그녀의 생활을 냉혹하고도 리얼하게 그린다. 제2제정시대(第二帝政時代)의 파리 빈민가의 풍속 묘사가 훌륭하며, 셸과 페레의 연기도 박진(迫眞)의 호연(好演)이다. 클레망의 숨길로 졸라의 세계는 살아 있는 그림 두루마리로 화하였다. 졸라가 형태화(形態化)한 주독(酒毒)의 인물군(人物群)은 속(俗)된 인간으로 되살아나서 주독의 이소(泥沼)에서 꿈틀거린다. <철로(鐵路)의 싸움>으로 출발한 클레망의 다큐멘터리 터치는 여기서 비로소 인간 드라마로 대성공했다.

릴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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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as-門 Porte des Lilas

감독 르네 클레르. 주연은 피에르 브랏수르, 조르주 브라상스. 흑백·스탠더드. 1957년 제작.

<내용> 파리의 릴라의 문 근처. 큰 몸집의 사나이인 주즈(브랏수르)는 헌 옷 장수인 어머니의 돈벌이에만 의지하고 있는 술주정뱅이 건달. 기타를 치며 자기가 지은 노래를 부르는 악사 브라상스는 주즈와 친구지간이며, 예축(豫蓄)해 두었던 술을 주어 마시게 한다. 흉악범인이 횡행한다고 하여 범인을 색출코자 경찰관이 조사차 왔으나 악사의 집엔 이상한 사람이 없다. 경찰관이 떠나고 보이지 않게 되자 범인인 바르비에(앙리 비달)가 숨겨 달라고 하면서 나타났으므로 지하실에 감춘다. 두 사람은 바르비에의 정부(情婦)의 아파트로 짐을 찾으러 가고, 그가 달아나는 데 필요한 여권(旅券)도 악사는 자기의 이름으로 받아갖고 온다. 순진한 술집 딸(다니 카렐)을 바르비에가 속여서 이용코자 하는 것을 주즈가 알고 대격투를 벌인 끝에 상대의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악사는 여권을 불태워버리고, 주즈는 바르비에가 술집 딸한테서 빼앗아 가졌던 돈을 되돌려 주려고 간다.

<감상> 클레르가 <파리축제>의 옛날로 되돌아간 것 같은 파리 서민의 스케치인데, 클레르의 조종인형(操縱人形)적인 인물이야말로 사람다운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인형연극(人形演劇) 같은 클레르 영화의 맛이 브랏수르의 훌륭한 연기 솜씨와 브라상스의 아마추어 연기에 소탈하고 구애스러움이 없는 정취(情趣)로 살려져서, 클레르의 독자적인 영화정신이 온 영화 속에 충만하며 서민애(庶民愛)를 나타낸 점이 훌륭하다.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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抵抗 Un Condamne a Mort s'est echappe

감독 로베르 브레송. 주연 프랑수아 루테리에. 흑백·스탠더드. 1957년 제작.

<내용> 1943년 프랑스군의 폰테인 중위(루테리에)는 독일군에게 붙잡혀 어떤 형무소에 수감이 되었으나 탈옥을 결심한다.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인지 중위는 가장 위층 독방에 감금된다. 독방에 붙은 널빤지를 떼내면 나갈 수가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식사용 숟갈을 갈아서 나이프의 대용으로 하여 인내심도 강하게 세밀히 공작함으로써 널빤지를 떼낼 수 있게 된다. 탈출용 밧줄은 침구라든가 타올로 만든다. 그러나 사형선고를 받았으므로 어물어물하고만 있을 순 없게 된다. 그때 16살된 소년병이 같은 감방 속으로 들어온다. 그를 꼬여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어느날 으슥한 밤에 함께 탈출하여 지붕 위로 올라간다. 야경원도 죽이고 가운데 뜰로 내려와서는 다시금 딴 동(棟)으로 올라가 외벽(外壁)으로 건너간다. 이렇게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무려 4시간이나 되며, 새벽녘에 이르러 중위는 소년병과 탈옥한다.

<감상> 브레송은 중위의 행위만을 묘사한다. 그가 보는 것만이 보이고, 그의 귀에 들리는 음만이 관객의 귀에도 들리는 것이다. 감방의 문, 방바닥, 침대가 보이며 감방 자물쇠의 소리와 간수의 구두소리는 곧 고통과 연결되는 소리이며, 형무소 담 밖의 전차(電車)의 소리라든가 기적소리는 잔뜩 애타게 그리고 있는 자유의 약속같은 소리이다. 또 중위가 받는 고문이라든가 사형선고의 장면 또는 그에게 살해되는 독일군의 고민 상태도 묘사하려 않는다. <한 사형수가 탈옥한다>고 하는 원제(原題)의 이름이 보여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브레송은 카메라를 돌린다. 더욱이 서스펜스는 극도의 강력성을 나타낸다.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제작 방식이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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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刑臺-elevator L' Ascenseur po­ur L' Echafaud

감독 루이 말. 주연 잔 모로, 모리스 로네. 흑백·스탠더드. 1957년 제작.

<내용> 어느 회사의 사장 부인(모로)은 사원 타베르니에(로네)와 연애하는 사이가 되고, 남편인 사장을 죽이게 한다. 자살인 양 보여진 완전범죄지만 차로 도망칠 때 증거물을 깜박 잊어버리고 그대로 놓아 둔 채 왔으므로 다시 되돌아 간다. 그런데 전원(電源)이 끊김으로 엘리베이터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갇히게 된다. 자동차는 엔진 발동이 걸린 채이므로 불량소년인 루이가 애인과 함께 자동차를 잡아타고 도망친다. 모텔(motel)에서 동침한 둘은 독일인 부부를 죽이고 독일인 차로 도주한다. 한편, 엘리베이터 탈출은 할 수 없게 되고, 아침에 이르러서야 전기가 들어 왔으므로 겨우 빌딩 속에서 나가게 된다. 부인은 밤을 새워가며 타베르니에를 찾아 돌아다닌다. 타베르니에는 독일인 살해 범인으로 오인되어 포박되고, 결국 사장을 죽인 것을 실토하게 된다.

<감상> 범행에서부터 잡혀 묶일 때까지의 십수시간을 묘사하는 스릴을 느끼게 하는 작품인데, 말의 신선도나 감각은 매우 신선한 서스펜스를 일으킨다. 엘리베이터 탈출의 고심참담한 장면도, <저항>의 소박한 탈옥에 대하여 현대를 느끼게 하는 스릴이다. 걸어다닐 뿐인 모로의 연기가 갇혀 있는 로네와 무궤도한 불량소년의 범행과 대조되고, 밤이라고 하는 마성(魔性)의 매혹이 솟아나온다. 여기에 모던 재즈의 영화음악이 거의 섹시하게 관능을 자극하고 마비시키는 효과도 울린다. 루이 말의 현대감각의 굉장한 개화(開花)이다.

어른은 알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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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Quatres Cents Coups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주연 장 피에르 레오. 흑백·시네마스코프. 1958년 제작.

<내용> 13세가 되려고 하는 앙투안(레오)은 자기반에서 돌려가며 보는 누드 사진을 보다가, 교실 구석에서 벌을 서게 된다. 누드 사진을 갖고 온 친구나 그 사진을 본 많은 다른 친구들은 벌을 받지는 않는다. 집엘 돌아갔더니 어머니에게 혹사되어서 숙제를 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이튿날엔 학교를 쉰다. 그 다음 날은 결석계가 없으므로 어머니가 어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의붓아버지로부터 뺨을 맞는다. 홧김에 집을 나가 버린다. 끌려 돌아오게 되나 또다시 가출하여 의붓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타자기를 훔쳤으나 팔아먹을 수가 없으므로 돌려주려고 갔다가 붙잡힌다. 경찰서에 호출된 부모는 소년형무소 구치감으로 자식을 집어넣는 문제에 대해 승낙한다. 그러나 앙투안은 운동시간의 틈을 이용하여 도망친다. 도망친 해안의 저쪽은 바다로서 이젠 더 도망칠 길도 없다.

<감상> 원제명(原題名)인 <4백의 구타(毆打)>란 나쁜놈이라는 의미의 속어. 학교의 성적은 나쁘지만 악한 아이가 아닌 소년을 소년원으로 쫓아 넣어, 바다에라도 빠져 죽고 싶게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 테마는 진부한 데가 있으나 트뤼포의 수법은 차갑고 리얼하다. 소년의 눈에 눈물이 빛나는 것도 실은 호송차의 창문을 통해서 밤에 파리의 휘황한 등불빛이 보일 때 뿐이다. 나쁜 것은 어른이라고도 강조치 않는다. 시네마스코프의 넓은 스크린이 잘 사용되고 있다.

네 멋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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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 Bout Souffle

감독 장 뤼크 고다르. 주연 장 폴 벨몬도, 진 세버그. 흑백·스탠더드. 1959년 제작.

<내용> 대낮의 마르세유의 선창에서 훔친 고급차로 자동차 도둑(벨몬도)은 파리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속도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추적되자 차 속에 있던 권총으로 경찰관을 사살한다. 파리에 도착한 후는 공중변소에서 강탈한 돈으로 양복과 검정안경을 산다. 샹젤리제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유학생인 미국 아가씨(세버그)와는 니스에선지 칸에서 동침한 사이. 그녀의 방에서 도망의 제1야를 보내고 조간신문을 팔아갖고 돌아온 그녀에게 깨워지자 침대 속으로 잡아 끌어 넣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점심때까지 정사를 한다. 형사적인 범죄를 마구 저지르면서까지 하는 돈벌이는 실패로 끝난다. 이미 알고 있는 누드 사진관에서 둘째밤을 보냈던 바 뜻밖에 그녀는 "계출했으니까 곧 형사가 올 거예요"라고 한다. 거리로 뛰쳐 나갔으나 기관총 난사로 쓰러진다. 형사가 발로 얼굴을 차서 위로 향하게 하자 단말마적인 외마디 소리로 계집을 저주한다.

<감상> 무성영화(無聲映畵)의 영상(映像)제조를 현대조(現代調)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 누벨 바그의 일반적인 방향이었으나 고다르는 모든 제약을 박차고 프로페셔널한 수법을 무시하고서 어느 모로나 깨어지기에 알맞는 영화를 만들었다. 벨몬도의 개성이 이것과 꼭 들어 맞아서 그야말로 통쾌한 영화가 이룩되었다. 거기에는 새로운 매력이 충실(充實)하게 발산한다. 즉 애교를 느끼는 것이다. 이에 새로운 영화 마술사가 나타났다.

흑인 오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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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人- Orfheu Negro

감독 마르셀 카뮈. 주연 브레노 멜로, 마르페사 동. 색채·스탠더드. 1959년 제작.

<내용> 시골처녀 우리지스(동)는 무서운 모습의 사나이를 피해서 리오의 거리로 나와 시내전차 운전수 오르페(멜로)와 서로 사랑한다. 몰로의 언덕에서 수수께끼의 사나이에게 붙들린 우리지스를 가까스로 빼앗은 오르페는 몰래 숨겨 둔다. 이튿날은 카니발. 오르페는 그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약혼자 밀라가 질투해서 우리지스를 쫓아버린다. 춤추는 군중 속으로 숨는 그녀는 사신(死神)의 가장(假裝)을 한 수수께끼의 사나이에게 쫓겨 오르페를 찾으며 차고로 숨어들어가나 고압선에 닿아서 죽는다. 오르페는 애인의 시체를 껴안은 채 몰로의 언덕으로 돌아가지만, 밀라가 던진 돌을 이마에 얻어맞고 우리지스를 껴안은 채 벼랑에서 떨어진다.

<감상> 오르페 전설을 그리스로부터 브라질의 흑인세계로 옮겨서 현대화했다. 가톨릭이 니그로화(化)된 이교적 요소(異敎的要素)와 이방적 무드에 가득찬 카니발이 배경이고, 소박한 멜로드라마가 원시적인 색채와 이국정서(異國情緖)로 양식화되어서 삼바 조(調)의 리듬으로 화려하고도 강렬하게 채색된다. 흑인의 매력을 이만큼 집약한 영화는 없다. 음악은 토속적(土俗的)·민족적인 것과 모던 재즈적인 것이 장렬히 융합되어서 육감적(肉感的)으로 힘차게 호소한다. 색채도 진하고 연한 리듬을 갖고 있어서 그 자극에 흥분케 되며, 또한 스스로 도취경에 빠져 든다.

이렇게도 긴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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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在 Une Aussi Longue Absence감독 앙리 코르비. 주연 알리다 발리, 조르주 윌슨. 흑백·시네마스코프. 1960년 제작.

<내용> 파리 교외구(郊外區)의 카페의 여주인(발리)은 장거리 수송용 트럭 운전수를 애인으로 삼고 있는데, 남편이 독일 수용소로 들어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마음 속으로 공백을 느끼며 16년 간이나 지낸다. 전사자(戰死者) 취급으로 공로장(空路章)도 받았으나 돌연히 남편이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아침, 저녁 가게 앞을 지나가는 지저분한 텁석부리의 부랑자(浮浪者)를 어느날 바로 가까이 옆에서 보고 남편이라고 깨닫게 된다. 이튿날 가게로 불러서 말을 걸어보았으나 기억을 상실하고 있어서 '자기 소개'의 이름도 틀리게 나온다. 남편의 친척을 시골로부터 불러서 물어보아도 딴 사람이라고 말한다. 좋아했었던 오페라곡을 들려주건 왈츠를 추어 보이건 텁석부리의 기억력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어느날 밤에 남편 이름으로 그를 불렀더니 가던 걸음을 멈추었으나 곧 도망쳐서 어딘가로 가 버리고 말았다.

<감상> 사망의 증거가 없는 전쟁 중의 실종은 아내로서는 죽음이 아니라 미귀환이며 과거의 사랑의 기억은 살아있다. 기억이 만드는 마음의 공동(空洞)은 새로운 사랑으로는 메워지지 않는다. 기억을 완전히 잃은 텁석부리로부터는 그녀의 남편이라고 하는 확증을 잡을 수가 없으나 반드시 남편일 것이라는 희망도 버릴 수가 없다. 오히려 희망은 더욱 부풀 뿐이다. 그녀는 언제까지든지 낙심치 않고 기다릴 것이라고 결심한다. 마르그리트 뒤러가 쓴 여심(女心)을 코르비는 마치 여류 감독처럼 자상하게 쭉 그려 나간다. 그러나 냉혹하게 그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묘사했다.

지난 해 마리엔바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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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nee Derniee aMarienbad

감독 알랭 레네. 주연 조르죠 알베르타치. 흑백·시네마스코프. 1961년 제작.

<내용> 바로크풍의 호화스런 호텔. 돈과 여자가 넘치는 숙박객 중의 한 사나이(알베르타치)는 애타게 찾고 있는 자기의 애인(데리핀 세리그)을 발견하고, "작년에 마리엔바드에서 뵈온 일이 있지요"라고 말을 건넨다. 여자는 이때 "그렇지 않을 걸요"라고 대꾸하나 남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여자의 남편(사샤 피토에프) 감시하에 끈질기게 지껄이자 여자는 드디어 설복당하고 만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호텔을 떠나간다.

<감상>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고 경쟁자의 방해를 물리치고 여자를 획득한다는 도식(圖式)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보통의 삼각관계의 드라마와는 전혀 작풍이 달라진 것이다. 인물은 이름도 없으며 특정한 개성도 없다. 마리엔바드는 어디에고 실존치 않는다. 작년이란 바로 1년 전의 작년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때일 것이다. 남자는 남편인 듯한 자가 있는 여자에게 연정을 품는다. 남편에게 승패의 일전(一戰)을 도전당하면 반드시 진다. 남편은 권총의 사격솜씨가 좋고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 유부녀를 사랑하는 입장이 남자로 하여금 그 성적인 불능의 열등감(劣等感)에 빠지게 하는 듯하다. 남자는 여자를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바로 그 순간 또다시 여자를 잃는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이 영겁회귀(永劫回歸)의 연애의 상념(想念)을 영상화(映像化)하고 음상화(音像化)한 영화이기에 관객은 스스로가 주인공 남자로 동화(同化)되어서 이 남편 있는 예쁜 여자를 설득시켜보는 입장에 서면 남자의 상념에 공감하고, 레네의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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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福 Le Bonheur

감독 아니에스 바르다. 주연 장 클로드 도르오. 색채·스탠더드. 1964년 제작.

<내용> 젊은 목수 부부(도르오 부처)는 아이가 둘이 있는데 아내는 내재봉(內裁縫)의 부업을 하면서 일요일에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재운다. 그리고는 꽃동산과 같은 공원에서 정사(情事)를 하며 낮잠잔다―이러한 행복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전화를 걸러 가서 우체국의 여직원과 시선이 서로 교환되더니 남편의 들뜬 마음이 이번에는 진지하게 되어서 목수는 드디어 두 여성을 사랑한다. 어느날 공원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고백한다. 아내는 알았노라고 하고, 정사까지 치른 뒤 남편을 재운다. 남편이 눈을 떠보니까 아내는 연못에 투신 자살해 있었다. 공원이 붉게 물든 가을날, 남편은 우체국 여직원과 결혼하고, 아이들과 단란하게 산책도 한다.<감상> 파리 교외의 서민의 행복이 아름다운 색채와 아름다운 고전음악과 함께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프랑스에선 단 한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여류 감독 바르다는 여자의 기분을 여성답게 섬세하게 발굴해 보인다. 프랑스인 일반남자의 성욕의 리얼리티를 자연스럽고 리얼하게 그린다.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현상으로서만 다룬다. 아내의 자살이 문제성을 내포하겠으나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남과 함께 갖고 싶지 않으니까 죽는 것일 게다. 그것도 사랑하는 남편과 정사(情事)를 즐김으로써 그 행복감과 충족감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 삶을 끊어버리고 만다. 여자로서 가장 이기주의적인 기쁨의 죽음이다. 자살한 여자는 한국의 질투나 원한으로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으로 죽었으며, 보통 있을 수 있는 정사(情死)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파리의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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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情事 Vivre pour Vivre

감독 클로드 르루시. 주연 이브 몽탕, 안니 지라르도, 캔디스 버겐. 색채·스탠더드. 1967년 제작.

<내용> 텔레비전 뉴스의 취재기자 로베르(몽탕)는 아내(지라르도)와의 가정생활 외에 신선(新鮮)한 연인과의 정사(情事)를 필요한 것으로 본다. 아프리카의 야수 사냥의 취재 때 파리 대학의 유학생인 미국인 처녀(버겐)를 데리고 갔는데, 2주일 간의 스릴과 정사(情事)에 열중한다. 파리로 돌아가서는 아내와 암스테르담으로 휴가를 즐기러 가는 데 미국인 처녀가 뒤따라 온다. 하는 수 없이 2일간은 아가씨와 함께 보낸다. 그러나, 아내가 화를 냈기 때문에 별거하게 되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미국처녀와는 1개월 간이나 같이 살 수 있었으며, 베트남으로 취재하러 가는 로베르와 작별한 처녀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베트남에서 돌아와 보았더니 아내에게는 연인같은 남자가 있었는데 피로한 몸의 로베르를 오히려 부드럽게 품어 주었다.

<감상> 원제명은 <살기 위하여 산다>이다. 뉴스 취재의 고단하고 격심한 작업에는 아내의 애정만으로는 그 위로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별개의 신선한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마음먹고 있는 남자의 생활습관을 도덕적인 비판 없이 감독 르루시는 그려 나간다. 가장 첨단적인 직업인의 생활방식이 화려한 표현과 기교로 그려지므로 매우 재미있게 감상되지만 그 흥미는 사진기 조작과 색채플랜의 신선함·화려함에 그칠 뿐이다. 살기 위하여 산다고 하는 인간은 살아 있는지 마비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너무나도 지나치게 기교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 '인간'을 보지 못하고 놓치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빠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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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illon

감독 프랑클린 J 샤프너. 주연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1973년 제작.

<내용> 가슴에 나비(빠삐용)의 문신이 있는 앙리 샤리엘(스티브 맥퀸)은 빠삐용으로 불리는 종신수. 혹서와 가혹한 강제노동, 그리고 자기에게 씌워진 살인죄란 누명을 벗기 위해 남미 프랑스령의 악명높은 기아나 형무소에서 탈옥을 꾀하나 실패. 결국 공포의 조셉 섬 형무소의 독방에 2년간 갇히고 만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한다는 지옥의 독방에서 그는 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네나 바퀴를 잡아먹으며 겨우 연명을 한다. 온갖 고초 끝에 독방형(獨房刑)을 마치고 다시 상 로랑 형무소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채권 위조범 드가(더스틴 호프만) 등과 다시 탈주. 동료들은 모두 살해되거나 잡히는 등의 고초 끝에 빠삐용만은 독화살을 맞아 바다로 전락, 정신을 차려보니 콜롬비아의 해안이었다. 여기서 한때는 섬 아가씨와의 달콤한 로맨스도 꽃피는 듯했으나 교활한 수도원 원장의 밀고로 다시 체포되어 이번에는 5년의 독방형. 그러나 악착같은 빠삐용의 의지는 이 지옥 같은 형벌까지 견뎌내어 이번에는 상어와 급조(急潮)로 둘러싸여 탈출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악마도(惡魔島)로 이송되고 여기서는 비교적 편안한 형기(刑期)를 보낸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겉보기에는 안락한 생활도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빠삐용으로서는 지긋지긋한 수인(囚人)생활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생을 체념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이 고도에서 보내려는 드가를 외면한 채 빠삐용은 매일 절벽에서 야자 열매를 바다로 던져 해류(海流)의 흐름을 연구한다. 머리는 이미 백발이 되고 이도 몽땅 빠진 몰골에 발은 고문 끝에 뼈를 다쳐 절룩거리는 참담한 육신이건만 자유에의 집념만은 처절하리만큼 강렬하다. 그리하여 드디어 결행의 날. 빠삐용은 수십미터의 절벽에서 야자 열매를 담은 푸대와 함께 바다로 뛰어내린다. 멀리 수평선으로 차차 멀어져 가는 빠삐용. 단 하나의 동료였던 드가는 멀리 바다 속에 잠겼다가는 떠오르고 떠올랐다가는 다시 잠기는 한 인생의 전부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이윽고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 모든 것을 체념하며…….

<감상> 이런 인생도 있다. '그 뒤 빠삐용은 남미대륙에 표착, 한 자유인으로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이야기가 픽션이 아닌, 한 무기징역수의 생생한 실록 자서전 <빠삐용>을 각색한 것이며, 이 영화의 주인공 앙리 샤리엘이 바로 그 자서전의 저자임을 알고 나면 과연 행복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암흑가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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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黑街- Deux Hommes Dans la Villa

감독 지오제 지오반니, 주연 장 가방, 알랑 드롱. 1974년 제작.

<내용> 은행강도죄로 12년의 형을 받은 지노(알랑 드롱)는 가출옥이 되어 10년이나 기다려 준 아내 소피의 따뜻한 품안으로 돌아와 인쇄공으로서 충실한 나날을 보낸다. 물론 노 보호사(保護司)인 제르망(장 가방)의 보살핌과 보증이 있어서이다. 그러나 이 10년 만에 찾아온 행복도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이 난다. 아내와 함께 피크닉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순식간에 아내를 잃고 만다. 암담한 절망 속에서 상심하는 지노를 자애로운 눈으로 격려해 주는 제르망. 그러나 비운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친구였던 뤼시와의 따뜻한 우정이 애정으로 싹트기 시작, 겨우 그에게도 행복이 찾아오는 듯 싶었으나 운명의 검은 그림자가 다시 그를 감싸기 시작한다. 전과자 지노의 개과천선을 믿지 않으려는 형사 고와트로는 때마침 수사중이던 범죄의 주범을 지노로 단정, 집요한 손길을 뻗친다. 아니, 진범으로 단정하기보다도 온갖 수법으로써 진범으로 조작하려고까지 하는 것이다. 마침내 지노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른다. 그만 지노는 고와트로의 목을 죈다. 그것은 살의에 의한 모살(謀殺)이 아니라 충동과 분노로 인한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보석 중에 저지른 살인, 더구나 상대는 경관이 아닌가.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로 끌려가는 지노를 구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제르망의 만감이 오가는 눈길만이 그를 지켜볼 뿐.

<감상> 사형반대론자가 아니라도 몸서리칠 라스트 신이 충격적이다. 멋진 샹송, 향그러운 포도주, 패션과 예술과 자유의 나라에 펼쳐지는 흉칙한 환상 ―― 단두대의 도끼가 목을 내리치는 그 순간이 환상같기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