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예술·스포츠·취미/방송극/라디오 드라마/한국의 성우
한국의 성우〔개설〕
편집韓國-聲優〔槪說〕
성우라면 일반적으로 라디오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를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분류해 볼 때, 배우와 성우는 다른 것이다. 배우가 무대나 영화에서 육체를 표현수단으로 삼는다면 성우는 목소리 하나만을 재료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우는 배우의 표현수단 중에서 목소리만을 빼내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표정이나 동작이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무대의 대사와 영화의 대사와 라디오 드라마의 대사가 다르다. 간혹 무대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연기에서 대사만을 골라내면 그것이 곧 방송연기가 되는 것으로 오해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라디오 드라마의 대사는 무대나 영화에서의 시각적인 면이 함께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을 해 본다면 성우는 밥을 먹으면서 대사를 할 것이 아니라 대사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며, 걸으면서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로서 걸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같은 뜻이지만 국가나 민족의 언어가 다르듯이 말이다.
이렇게 엄격히 구별하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성우라는 전문적인 직종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1926년에 경성방송국(현 방송공사)이 설립되던 때에도 라디오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영화나 연극배우가 역시 짤막한 연극대본을 그대로 방송마이크 앞에 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소설이나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그쳤던 것이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방송극회원'을 모집한 것은 1953년 12월에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모집한 것이 최초의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성우'라는 명칭이 아니었고 '극회원'이었던 것이다. 그 이듬해인 1954년 1월에 기독교 방송국에서 제1회 극회원을 모집할 때 비로소 '성우'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확고한 직종으로서 한 분야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영화나 연극에 종사하던 연기자와 혼합되어 라디오 드라마가 만들어졌으나, 본격적 라디오 드라마로서의 특성이 재정립되면서 연기자도 분류가 되기 시작했다. 그 후 1961년과 1962년에 걸쳐 문화방송, 동아방송, 동양방송(당시 '라디오 서울')이 설립되고 각 방송국마다 전속 성우를 모집했으며 각 방송국 단위로 '극회'가 만들어지고, 현재는 '한국성우협회'란 단체로서 약 400명의 회원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성우가 배출된 데에는 커다란 이유가 하나 있다. 민영방송이 개국되면서부터 연속극이란 것이 속출하여 '붐'을 일으킴으로써 하루에도 20여개의 드라마가 방송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영화제작에서 성우가 차지했던 비중에 대해서이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대사의 녹음을 거의 성우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 분야에서도 많은 성우가 필요했다. 소위 '애프터 레코딩(after recording)'이라 해서 외국에서는 동시녹음이 불가능한 부분을 사후에 녹음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이 즉, 성우가 영화배우 입에 대사를 맞추어 넣은 것이다.
물론 제작여건이나 배우의 능력관계로 이런 기형적인 방법이 채택되었겠으나 여하튼 우리나라 성우가 우리나라 영화에 기여한 비중은 너무나 컸다.
<沈 英 植>
장민호
편집張民虎(1924∼
)
연극배우로서 일반에게 알려졌으나 출발은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성우로서였다. 그 후 신협극단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면서 라디오 드라마에도 계속 출연했으며, 처음 시도되었던 일요연속극 <청실홍실>의 주연을 했다. 그 후 소설 <청춘극장>의 낭독으로 많은 청취자를 매혹시켰다. 중앙국립극장극단장을 역임했으며 예술원 회원이다.
이혜경
편집李惠璟(1929∼
)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성우 특기생로서 첫발을 내디딘 후 현재까지 수천 편의 방송극에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노역으로서는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시나 소설낭독에 장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구민
편집具珉(1924∼
)
어린 시절부터 방송국에 투신해서 8·15광복 직후에 어린이 연속극 <똘똘이의 모험>에서 복남이 역을 맡은 바 있다.
그 후 성장해서 본격적인 성우 생활을 하면서 노역에 장기를 보였으며, 특히 이승만 대통령 역의 성대구사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각 방송극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은 도맡다시피하고 있다.
신원균
편집申原均(1932∼1986)
연극이나 영화에서 전향한 연기자가 아니라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모집한 제1회 성우로서 시작한 순수방송인이다. 독특한 바이브레이션과 볼륨있는 목소리로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해설이나 낭독물에서 장기를 보여 주었다.
김수일
편집金秀一(1933∼
)
서울중앙방송국 제1회 성우로서 연속극 <청실홍실>에 조연으로 본격적인 데뷔를 해서 현재까지 많은 드라마에 주연이나 조연을 폭넓게 구사해 내고 있다. 천성적인 단정한 모습처럼 연기도 깔끔한 것이 특성이다.
이창환
편집李昌煥(1933∼
)
서울중앙방송국 1기생으로 성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해서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아로운'역으로 청취자에게 알려져 있으며, 영화녹음에 전렴해서 우리나라 영화배우의 주연 목소리는 도맡다시피 했다. 청아한 음색으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역이 적격인 듯한 인상을 풍겼으나, 현재는 방송계를 떠났다.
고은정
편집高恩晶(1936∼
)
서울중앙방송국 1기생이다. 다분히 문학적인 성향을 보여 초기에는 연기 생활에 적응성을 찾지 못했으나 <장희빈>이란 드라마에서 '장희빈'역을 맡아 성공함으로써 성우다운 자질을 과시했으며 그 후 수많은 연속극의 주인공으로서 출연, 중견 성우의 자리를 굳혔다.
김소원
편집金素媛(1933∼
)
서울중앙방송국 1기생이다. 연속극 <청실홍실> <산 너머 바다 건너>의 출연이 데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후 많은 작품에 '히로인'으로 등장했는데, 정감 있는 목소리는 애청자들의 가슴 속에 조용한 메아리를 일으켰으며, 현재는 성숙한 여인의 애환(愛歡)을 그려내는 것을 장기(長技)로 삼으며 활약하고 있다.
윤미림
편집尹美林(1933∼
)
서울중앙방송국의 1기생으로, 많은 작품에 출연해서 하이틴에서 20대 여인에 이르기까지 발랄한 여성의 독특한 연기를 했다.
오승룡
편집吳昇龍(1934∼2022)
)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생으로, <청실홍실>이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초기 작품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는 '모리' 일등병 역으로 출연, 잔인한 일본군인의 전형적 모습을 열연하는 등 악역에 특기를 보이는가 하면 코미디에도 자질을 보였다. 한때 문화방송국의 '오발탄'이란 현실폭로적인 프로를 성공시킨 재원이기도 하다.
주상현
편집周尙鉉(1933∼
)
기독교방송국 제1기 성우로서 방송계에 투신했으나 그 전에 대학시절부터 연극이나 영화를 전공한 연기자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텁텁한 목소리가 연륜을 쌓아가면서 차원 높은 인생의 애환을 담아 많은 청취자의 심금을 올려준 성우이다.
천선녀
편집千仙女(1935∼
)
기독교방송국 성우 1기생으로 방송계에 데뷔하기 전에 대학연극과 직업극단에서 연기 수업을 하였다. 개성있는 목소리와 유니크한 연기로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 데 능숙하며,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는 한국인 사병 '아로운'을 사랑하는 일본 여성 '히데코'의 어머니역을 맡아 열연했다. 현재는 라디오 드라마보다도 텔레비전 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있다.
정은숙
편집鄭恩淑(1936∼
)
기독교방송국 1기생으로서 시작은 했으나 서울중앙방송국 최초의 일요연속극 <청실홍실>에 데뷔함으로써 본격적인 성우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히데코'역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서 수많은 작품의 주인공을 해냈으며, 우리나라 라디오 드라마 연기의 전환기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연했다.
유병희
편집兪炳姬(1928∼
)
기독교방송국에서 <이 생명다하도록>이란 작품의 해설자 겸 주인공을 모집했을 때 응모해서 픽업된 연기자이다. 그 후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해설을 성공시킴으로써 독특한 해설법을 개척하고 해설을 연기상의 한 장으로서 확립하기도 했다. 무대극이나 영화에도 출연,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이우영
편집李又迎(1934∼
)
기독교방송국 제1기생이다. 온화한 듯하나 격정적인 연기를 하는 성우이며 많은 작품에 폭 넓게 출연했다. 특히 동아방송국에서 수년에 걸쳐 방송된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의 해설은 청취자의 뇌리에 남아 있다.
임옥영
편집任玉英(1936∼
)
서울 태생으로 기독교방송국 1기생이다. 학생시절에 방송계에 투시해서 20년 가깝게 종사하고 있는 중견 성우이다. 다른 성우와는 달리 무대극이나 영화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프리랜서로 라디오 드라마에만 출연하고 있다.
남성우
편집南聖祐(1934∼
)
서울중앙방송국의 제2기생이다. 풍부한 성량 못지 않게 세련된 용모로 무대극이나 영화에서도 주연을 많이 해냈으며 특히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리노이에'역을 맡아할 때, 경상도 사투리 붐까지 일으켰다. 근래에는 라디오 드라마보다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열중하고 있는 편이다.
안영주
편집安永珠(1938∼
)
서울중앙방송국 제2기생으로서 무대극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하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학생극에 출연했다. <안시성의 꽃송이>에서 독특한 연기를 하여 성우로서의 위치를 굳혔으며 현재는 무대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영배
편집金英培(1937∼
)
기독교방송국 2기생으로 출발해서 각 방송국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무대극에서 단련된 연기가 방송극에 잘 조화되어 베테랑에 속하는 연기 생활을 하고 있다.
김성원
편집金聖源(1936∼
)
기독교방송국 제2기생으로 출발하기 전에 무대극을 전공한 연기자이다. <로맨스 빠빠> <현해탄은 알고 있다> <밤에만 흐르는 강>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이는 한편 많은 연극과 영화에 출연했으며 근래에 와서는 주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유기현
편집柳基鉉(1936∼
)
기독교방송국 제2기생으로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으며 한때 극단 '신협'에서 직업연기자 생활도 했다. 특히 문화방송국의 장수프로 <전설따라 삼천리>의 지문낭독으로 독특한 억양을 구사해서 낭독법의 새로운 스타일을 굳혀 놓기도 했다. 그 밖에 노인역에 뛰어났다.
오정한
편집吳丁漢(1935∼
)
기독교방송국을 거쳐 서울중앙방송국 제3기생으로 재출발한 관계로 연대별로 따진다면 뒤늦은 감이 있으나 방송계에 투신한 연조로 보면 20년이 된다. 고등학교·대학교 시절부터 연극에 자질을 보여 전국대학 연극대회에서 수상한 바가 있으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최장수프로인 <김삿갓 북한방랑기>(후에는 <김삿갓 방랑기>로 개명)의 김삿갓역을 탁월한 연기로 해낸 베테랑이다.
남일우
편집南一友(1938∼
)
서울중앙방송국 제3기생으로서 연기자생활을 시작했으며 예리한 감성과 저항적인 음색으로 현대 젊은이의 대변자같은 역을 도맡아 오고 있고 노래할 줄 모르는 연기자로 통하고 있으며 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열중하였다.
김현직
편집金鉉稙(1936∼2002 )
서울중앙방송국 제5기생이었으나 그 후 문화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겨 10여년이 넘는 연륜을 쌓은 성우이다. 방송드라마는 물론이려니와 텔레비전에서 외화가 방영되고 '애프터 레코딩' 성행하게 됨에 따라 그쪽에서의 활약이 대단했다.
전운
편집田雲(1937∼
)
1959년 부산문화방송국에서 출발해서 1965년에 한국문화방송국으로 옮기면서부터 본격적인 성우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무대극에도 수없이 출연했으며, 근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주력하고 있는데 특히 <대원군>에서 대원군역을 맡아 열연했다.
김무생
편집金茂生(1943∼2005 )
동아방송국 제1기생으로 방송계에 투신, 동아방송 초창기의 모든 드라마에 출연, 연륜을 쌓았고, 현재는 문화방송으로 옮겨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라디오 드라마 이외에 텔레비전 드라마와 무대극에도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다.
박웅
편집朴雄(1940∼
)
동아방송국 제1기생으로 방송에 투신하기 전에 연극에서 맹렬히 활약한 경험이 있다. 동아방송 전속으로 활약한바 있으며, 동아 방송국의 라디오 드라마에 거의 모두 출연하여 구수한 바리톤으로 청취자들을 매혹했으며, 해설과 낭독이 장기에 속한다.
김종성
편집金種聲(1943∼
)
동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양방송국 제1기생으로 투신해서 현재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며 장기로서는 해설이나 낭독(朗讀)을 들 수 있겠다. <沈 英 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