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란 일단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날엔 그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주지만, 단 한 가지 해주지 않는 것은 언제까지든지 계속해서 사랑해 주는 일이다.
남자분들은 자기보다도 못한 것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것, 더러운 것, 불명예스러운 것, 그런 것까지 사랑하실 수 있지요. 하지만 저희들 여자는 사랑하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을 존경하고 있는 거예요. 만약 그 존경을 잊어버린다면 저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애정이 없는 결혼은 비극이다. 그러나 애정이 조금도 없는 결혼보다도 더 나쁜 결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애정이 있으되 한쪽밖에 없을 경우이다. 정절이 있되 한쪽뿐이요, 헌신이 있되 한쪽뿐. 그리하여 부부의 마음 가운데 한쪽만이 언제나 짓밟히는 경우이다.
이십 년 동안의 치정 생활은 여성을 폐허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십 년 동안의 결혼 생활은 여성을 공공 건축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부부 사이에 애정이란 서로가 속속들이 알게 된 후에야 간신히 솟아나는 것이다.
경험이란 모든 사람이 과실에 대하여 붙이는 이름이다.
함부로 자살한다는 것은 사회에 지는 것과 다름없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애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감정 가운데 최고의 것이며 동시에 온갖 대예술의 전형과 시금석임을 이제사 나는 깨달았다. 비애야말로 인생과 예술의 궁극의 전형이다.
중대한 문제일 경우에는 말로 나타내는 법이 아름다우냐 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여자의 일생은 감정이라는 곡선에 따라 회전하지만 남자의 일생은 지성이라는 직선 위를 진행한다.
우리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는 여자의 연약함, 과오, 불완전함을 다 알고 난 뒤에 사랑한다. 아니 그러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불완전한 인간이야말로 사랑이 필요하다.
여성이란 물건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이야깃거리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끌게끔 이야기합니다.
여성은 우리들 남성을 제재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남성이 용서를 빌 때 용서하여 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여성의 사명은 용서하는 데 있다. 벌하는 일이 아니다.
여자의 일생 동안에 참다운 비극이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사는 언제나 애인처럼 여기며 그리워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항상 남편처럼 생각하여 단념해 버리는 일이다.
가장 완전한 사교술을 갖기 위해서는 모든 여성에 대하여 네가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듯이 말을 걸어라. 그리고 모든 남성에 대해서는 그가 네게 진저리를 내고 있듯이 말을 걸어라.
인간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간은 매력이 있는가, 없는가의 둘로 나누어질 뿐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 즉 잘 씌어진 책과 서툴게 씌어진 책이 있을 뿐이다.
여성은 사랑해 주기를 바라며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요즘의 시대사조는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들은 인생을 일종의 투기로밖에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인생은 투기가 아닙니다. 일종의 비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이상은 사랑이요 그것을 정화하는 것은 희생입니다.
비애란 사랑 이외의 어떠한 것에 손이 닿아도 피를 뿜는 상흔이다. 아니 사랑의 손이 닿을 때조차도 아프지는 않을망정 피는 스며 나온다. 그러나 비애가 있는 곳에만 정복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이 말의 뜻을 이해치 못하리라. 그러나 그것을 깨닫기 전에는 사람은 인생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인이기보다는 미인인 편이 낫지만 추부이기보다는 선인인 편이 낫습니다.
남자는 늘 여자의 첫째 애인이 되고 싶어하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허영심이다. 여자는 보다 더 빈틈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여자가 바라는 바는 남자의 마지막 애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