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자아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그것이야말로 실로 독서라고 하는 것이다.
최악의 독자――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병과 같은 패들이다. 스스로 자기가 쓸 만한 것을 몇 개 뽑아 놓고는 다른 것은 더럽히고 흐트러뜨리고 전체를 저주한다.
위대한 양식――위대한 양식은 아름다움이 괴물에 대해서 승리를 거둘 때 생긴다.
사람은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될 경우에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극복해 온 일들만을 말해야 한다.――다른 것은 모두 쓸데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이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가지고 있는 듯한 것은 벌써 우리들의 내면적으로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모든 말한다는 것 가운데는 다소의 경멸이 포함되어 있다. 생각건대 말이란 평균적 중간쯤의 것, 말을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안출된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말로써 이미 자기를 풍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몸짓의 격정은 위대한 속성이 아니다. 대개 몸짓을 필요로 하는 자는 가짜이다.――모든 회화적 인간을 경계하라!
천 개가 있는 인간으로서 그 위에 적어도 두 개를 더 가지지 않는 자는 참을 수가 없다. 즉, 감사와 순결을.
자기의 이성에 당도한 사람은 참으로 그로 인해서 그것을 넘는다.
독창적――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낡은 것, 예로부터 알려져 있는 것, 누구나의 눈에도 보인 일이 있지만 지나쳐 버린 것을 새것처럼 보는 것이 정말로 독창적인 두뇌의 표적이다. 최초의 발견자는 대개 마치 멍청하고 머리가 잘 돌지 않는 공상가――우연이라는 놈에 지나지 않는다.
천재란 무엇인가――높은 목표와 그것에 도달하는 수단을 바라는 것이다.
인생 그 자체는 기둥과 계단으로 자기 자신을 쌓아 올리려고 한다. 훨씬 멀리 눈길을 던져서 이 세상이 아닌 아름다움을 보려는 것이다.――그러므로 인생에는 높이가 필요한 것이다. 높이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단이 필요하고 계단과 그것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순이 필요한 것이다. 인생은 올라가려고 한다. 올라가면서 자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철학자란? 늘 보통과 다른 것을 체험하고, 보고, 듣고, 시기하고, 희망하고, 꿈꾸는 인간.
커다란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이 고통만이 우리들을 부인하지 않고 우리들의 최후의 깊이에 이르게 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산다는 것은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떼어 놓고 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히 생생하게 있는 것이다. 영생이란 원래부터 일반적으로 거저 살아 있는 것 등은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그대들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커다란 경멸의 때인 것이다. 그대들의 행복도 구토가 되고 그대들의 이성과 덕성도 구토가 될 때도 있다.
내 말을 믿어라! 가장 큰 사건은 우리의 가장 시끄러운 때가 아니고 우리들의 가장 조용한 때라는 것을! 새로운 시끄러움의 발명자를 찾아서가 아니고 새로운 가치의 발명자를 찾아서 세계를 회전한다. 귀에 들리지 않고 회전한다.
권태에의 용기――자기와 자기의 일에 대해서 권태를 느낄 정도의 용기를 가지지 않는 자는 예술이나 과학상에도 확실히 일류의 정신을 소유했다고는 할 수 없다.――예외로서 사상가인 것처럼 보이는 조소가가 있다면 세계와 역사를 한번 훑어보고 덧붙여 말했을지도 모른다. '신은 이 용기를 갖질 못했다. 그는 물체 전부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만들려 했고 또 만들어 버렸다'고.
세론과 더불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모두가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자기의 귀에 마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많은 인격에의 초안을 우리들 속에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어떤 하나의 형태를 끄집어내는 것에서 상황이 매일 바꾸어지면 자기에게도 두 개의 형태, 세 개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자유로운 시간은 하나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이루어지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사회와 같은 것이다.
위대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회의가이다. 모든 종류의 확신에 잡혀지지 않는 자유로움이 그의 의지의 강함에 속해 있다. 신념을 갖고 싶은 것, 긍정에 있어서나 부정에 있어서나 여하튼 무엇인가 무조건적인 것을 욕망하는 일은 약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약함은 의지의 약함이다. 신념을 가지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적은 인간의 종족인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신의 자유', 바꾸어 말하면 본능으로서의 불신의 위대함의 전제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위대함을 나타내는 나의 방식은 운명애이다. 앞으로 향하거나 뒤로 향하거나 영원히 어떤 하나의 변화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 필연의 것을 단순히 참고 견딜 뿐만이 아니고 또 감싸주는 것도 아니고――그것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상에 올바름을 주기 위해서는 따뜻함과 열중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이야말로 결국 본다는 그것인 것이다. 그대들은 마치 사상과 어울리는 것을 인간과 어울리는 것과는 다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지 않는 자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다. 모든 인간의 어울림에 있어서 마음속의 기둥이 되는 것은 잉태하는 것뿐이다.
반격되는 체계에 있어서 우리들의 흥미를 이끄는 것은 단지 인격적인 것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반격할 수 없는 것이다. 세 가지의 일화가 있으면 한 인간의 상을 나타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