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전기 문학/창가의 의미와 형식
창가
편집唱歌
창가라 하면 시가 형태의 하나로 갑오경장 이후 신시(新詩)의 최초의 형식으로 등장했다. 이 형식은 재래의 가사(歌辭) 및 시조 찬송가의 영향으로 처음에는 4·4조가 주였으나 후에는 7·5조, 8·5조 등으로 변해서 시간이 흐른 후에 신시와 연결되었다.
내용은 개화 이후의 새로운 시대의식 즉 자주독립, 민권확립, 남녀평등, 신교육 등 개화기의 계몽적인 내용을 담은 것으로, 이에 서양식의 음곡(音曲)을 붙여 부르면 그대로 노래가 된다.
창가는 1896년부터 <독립신문>에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아직 특정 시인의 예술적 창조 의욕에서 창작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유명 무명의 인사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지어져 발표되었다. 한편 이 창가에는 글로 된 가사와 음악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노래의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어, 창가의 가사에 가락을 붙여 부르면 노래로서의 창가가 되었으므로, 이 시기에는 창가가 신식 노래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창가의 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4·4조 ① <동심가>(건양 원년 이중원 작)
잠을 깨세 잠을 깨세, 사천년이 꿈속이라, 만국이 회동하야, 사해가 일가로다. 구구세절 다 버리고, 상하동심 동덕하세, 남의 부강 부러하고, 근본없이 회빈하랴. 범을 보고 개 그리고 봉을 보고 닭 그린다. 문명개화 하랴하면 실상일이 제일이라. 못에 고기 부러말고, 그물매자 잡아보세, 그물맺기 어려우랴 동심결로 맺아보세.② <자주독립가> (건양 원년 이필균 작)
아세아의 대조선이, 자주독립 분명하다. 에야에야 애국하세, 나라 위해 죽어보세. 깊은 잠을 어서 깨어, 부국 강병 진보하세, 남의 천대 받게 되니, 후회 막급 없이 하세, 남녀 없이 입학하야, 세계 학식 배와 보자. 교육해야 개화되고, 개화해야 사람되네.
(2) 8·5조 <경부철도가> (1908년 최남선 작) 이십사번 화신풍(花信風) 불어올 때에, 때좋다고 꽃피난 금성산(錦城山)인데, 정든 손을 나누기 어렵다 하야, 꽃다운 혼(魂) 스러진 낙화대(落花臺)로다. 미륵(彌勒) 황간(黃澗) 두 역을 바삐 지나서 추풍령의 이마에 올라 타도다. 경부선 중 최고지(最高地) 이 고개인데, 예서부터 남편은 영남(嶺南)이라오.
앞의 (1)의 4·4조의 형식과 그 내용에 담겨진 자주독립·부국강병·남녀교육 등의 열렬한 외침은 그대로 당시의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4·4조의 형식은 7·5조, 8·5조 등의 새로운 형식으로 변천해 갔는데, (2)의 8·5조 형식과 비교해 보면 그 변천 경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체시
편집新體詩
결국 창가는 형식의 변천 과정을 통해 일부는 신체시에 넘기고 일부는 학교 창가와 사회적으로는 가요 형식으로 분립해 창가는 문학사적으로 신체시의 선행적인 의미를 지닌다. 신체시는 새로운 스타일의 시라는 뜻으로, 창가가 그 형식에 있어 재래 가사의 영향을 지닌 것이라면 신체시는 서구의 근대시의 이미지와 형식에 접근한, 즉 현대 자유시(自由詩)의 형식에 가깝다. 최남선의 <구작삼편(舊作三篇)>과 <해에서 소년에게>가 최초의 작품이며, 1908년경부터 1918년 사이에 성행되었다. 국민의 계몽을 주로 한 것으로 이광수(李光洙)의 <말 듣거라> 외에 많은 사람이 신시를 지었다. 1908년 <소년> 제1호에 실린 최남선의 <해(海)에서 소년에게>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다 미우나
그 중에서 똑하나 사랑하난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이와 같이 신체시는 정서적인 면보다는 새시대의 주인공으로 소년(少年)을 내세워, 자유와 계몽을 고취하는 등 종래의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새시대의 이상을 노래했다. 또한 문학사적으로 현대시에 도달하는 선구적 구실을 하게 되어, 1919년을 계기로 현대 자유시로 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