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전기 문학/구극과 신극
원각사
편집圓覺社
조선 선조 때부터 대두된 광대들에 의해 연출된 창극(唱劇)은 신재효에 이르러 크게 발전되었다. 그러나 연극을 상연할 극장을 갖지 못한 채 그 생명을 유지해 오다가 조선 말 광무 6년에 이르러 비로소 극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궁내부(宮內部)의 관할인 국립극장 원각사이다. 이 원각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신문화운동의 선구자인 이인직의 주선으로 당시 궁내대신 이용익(李容翊)의 양해와 고종의 칙허(勅許)를 받아 내탕금(內帑金)으로 건축된 것이다. 극장의 내부는 로마의 극장을 본떠서 짓고, 관객 2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을 갖추었다. 이인직의 신극운동은 이 극장에서 시작되었는데, 1909년 신극의 첫공연으로 <은세계>가 상연되었고, 뒤이어 <설중매> 등도 상연되어 비로소 한국 신극운동의 막이 올랐다. 이 원각사의 무대활동은 일반에 큰 반향과 자극을 주어 많은 극단이 조직되었고, 광무대(光武臺) 등 많은 극장이 나타났다. 원각사는 신극으로 출발했다가 곧 구극(舊劇)의 극장으로 변하여 관기(官妓)의 가무와 광대의 재담(才談) 등이 속출되었으며, <춘향전> <심청전> 등이 공연되었다.
구극
편집舊劇
구극이라 하면 조선 순조 때에 대두하여 광무연간 이래 극장 원각사와 광무대에서 연출된 전통적인 연극을 말한다. 창극과 비슷하며, 여러 명의 배우가 분장하고 나와 창극에서 부르는 식으로 부르는데, 극적 요소를 표현한 점으로 보아 현대의 가극과도 비슷하다. 이는 뒤에 초창기 신극인 시대극으로 변하였다. 광무연간에 '협률사(協律社)'라는 극단이 조직되어 지방 순회를 통해 <춘향전> <심청전> <장끼전> <흥부전> 등과 그 밖에 곡예(曲藝)·가면극(假面劇)·고전음악 등을 하다가 1914년 해체되었다. 1912년 박승필(朴承弼)은 유일한 구극의 극장으로 광무대를 세워 여기에서 광대 줄타기·기생의 가무재담·검무(劍舞) 등과 <춘향전> <심청전> <백상서가(白尙書歌)>
<흥부전> 등의 구극을 상연하게 되었다. 광무대는 오랫동안 흥행(興行)을 계속한 끝에 한국 구극의 권위가 되었다.
신파극
편집新派劇
보통 신극이라 하면 갑오경장 이후 서구의 근대극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새로운 연극을 말한다. 이인직이 1909년 <은세계>를 원각사에서 상연하여 신파극을 신극의 효시로 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1921년 토월회(土月會), 극예술협회 후부터를 말한다.
한편 신파극이라 구극을 구파(舊派)라고 한 말에 대하여 신파연극이란 뜻으로, 일종의 대중극을 말한다. 1909년 원각사에서 <은세계> <설중매> 등이 상연된 것을 시초로 1920년경까지 전성, 주로 외국 작품을 흥행 본위로 연출했다.
대표 극단으로 1911년 임성구(林聖九) 일파의 혁신단(革新團), 윤백남·조중환 등이 조직한 문수성(文秀星), 이기세(李基世), 일파의 유일단(唯一團) 등이 있었다. 임성구는 1911년에 김도산(金陶山)·김소랑(金小浪)·양성현(梁聖賢)·임용구(林容九) 등과 혁신단이라는 신극의 극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남대문 밖 어성좌(御成座)에서 흥행하다가 얼마 후 단성사(團成社)로 옮겨 <법지법(法之法)> <육혈포 강도(六穴砲强盜)> <의형살해(義兄殺害)> 등을 상연했다. 1913년에는 일본에서 귀국한 윤백남과 조중환이 함께 원각사를 인수, 문수성(文秀星)을 조직하여 <불여귀> <장한몽>
<나의 죄> 등을 상연하였고, 이기세는 유일단을 조직하여 연흥사(演興社)에서 흥행했다. 이 신파극은 뒤에 1922년 박승희 등이 조직한 토월회의 새로운 연극운동을 통해 획기적인 신극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신채호
편집申采浩 (1880-1936)
충남 대덕 출생. 호는 단재(丹齋).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움. 1897년 상경. 1898년 성균관 입학. 1905년 <황성신문> 논설기자 재임 중에 애국 활동을 전개하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 북경 대학에서 연구하였다. <조선상고사>를 집필하였으며, '무오독립선언서' 39인 중 대표이다.
1928년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북경회의의 동방연맹대회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여순 감옥에 복역하다가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을지문덕> <이순신전> <백세 노인의 미인담> <용과 용의 대격전> 등이 있다. 1977년 단재 신채호 전집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