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후기 문학/시대 배경

時代背景

조선 초기의 사회는 성리학의 완고한 학풍과 함께 당쟁이라는 병폐를 조성하는 동안에 뜻하지 않은 외환을 겪게 되었다. 즉 임진란의 쓰라린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80년 후 다시 병자호란을 겪게 되니 민족적 시련은 그 극에 달했다. 이 양란으로 말미암아 그 피해도 막대했거니와 서서히 자아에 대한 각성도 움터 관료적 지배층인 양반계급의 무력함이 폭로되었고 또한 자기 계급 내에서도 비판의식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평민들의 권리가 신장하여 서서히 상업 경제가 일어났고, 종래의 공리 공론만 일삼던 도학적 학풍에서 벗어나 사회를 개량하고 국민의 복리 후생을 도모하려는 새로운 학풍이 대두되었다.

이 새로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은 청나라를 통한 서양 문물의 전래와 함께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일군(一群)의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수광, 한백겸(韓百謙), 유형원(柳馨遠), 홍만선(洪萬選), 이익(李瀷) 등에 이르러 실학의 체계가 본격화되었고, 안정복(安鼎福), 정약용(丁若鏞) 등 백과사전파의 출현을 보았다. 이러한 학풍은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등 실학자에게 계승 발전되니 이것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주체적인 자각과 노력이다.

한편 서학인 천주교의 신앙 또한 조선사회에 전래되어 봉건사회의 오랜 미몽(迷夢)을 깨우치는 데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러한 사회의 변모와 자각 속에서 박지원의 현실 비판의 소설이 자리잡았고, 문학이 특수계급인 양반 관료의 완롱물(玩弄物)이 아니라 학으로서의 지표(指標)가 세워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차츰 장편적인 가사나 소설이 출현하였고, 서정적인 유배문학에서 산문정신의 문학적 표현인 소설의 발달을 촉진하게 되었다. 자연의 예찬이나 은둔적인 생활은 근대적인 산문으로 대치되었고, 문학의 폭은 그만큼 확대되었다. 중인계급에 의해 사설시조가 이루어졌고, 또 국민적인 문학 향수(享受)의 자리에 광대의 창(唱)과 판소리를 통한 서민문학의 형자(形姿)가 이룩된 것이다.

<朴 晟 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