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국민의 권리/평등의 원리



인격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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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格-平等

원래 평등의 뜻은 인격의 평등을 뜻했다. 우리들 인간이 평등하다는 뜻은 우리들은 다 같은 인간이고 그 인간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구별이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널리 세계에 있는 인류는 종족적으로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피부의 색이 희고 누르고 검은 차이가 있는가 하면, 키가 큰 인종도 있고 또 키가 매우 작은 인종도 있다. 또 문화나 문명을 비교해 보더라도 고도의 물질적 문명을 창조해 내서 높은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민족도 있고, 아직도 원시적이고 미개한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극히 저급한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인종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인종 또는 민족적으로 차이가 있고 그 육체적 특성이나 정신적 상태까지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어서 얼핏 보면 인간이 평등하다는 원리는 모순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평등하다는 뜻은 이러한 피부색이나 신체의 강약 또는 기타 어떠한 차이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인종간의 차이나 특징은 인종과 인종을 구별하고, 민족과 민족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는 그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나 문화로서 크게 존중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념은 그가 인간된 자격 즉 인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원래 인간의 평등이라는 원리가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는 왜 인간의 평등이라는 것이 근대사회 발전의 근본이념이 되는가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이전에는 동양이나 서양에는 사람은 날 때부터 귀하고 천한 구별이 엄연하게 있었고, 그 구별에 따라 귀족계급, 평민계급 또는 노예계급 등의 계급적 차이가 엄격히 유지되고 있었다. 또 우리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양반과 평민(平民) 또는 천예(賤隸)의 구별이 있어서 이러한 계급적 차별은 매우 심한 것이었다. 특히 신라시대의 골품제도와 같은 것은 출생에 따라 인간을 선천적으로 불평등화한 좋은 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우연히 양반집에 태어났다고 해서 잘났고 존귀하며 또 상민이나 노예의 아들 딸로 태어났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상놈이나 노예로서 남의 천대만 받아야 한다는 것은 오늘의 개명된 눈으로 본다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관념이라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근대 정신은 사람은 날 때부터 귀하고 천한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간 평등의 사상이 주장되고 인격의 평등은 민주주의의 큰 원리의 하나가 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주주의란 인간의 평등, 즉 인간 위에 인간이 없고 인간 밑에 인간이 없는 사회의 실현을 말한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실천과 완성은 이러한 인간의 평등이 현실사회 속에 그대로 실현되는 사회를 말한다.

사회적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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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的平等

인격의 평등은 사회적 조건의 어느 정도의 평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근세 초기에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는 원리를 내세운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사회적으로 출생과 더불어 매우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분적인 불평등을 타파하지 않고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활발하게 자기의 개성을 개발하여 각자의 최선을 실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큰 뜻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농부의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는 상태는 그 개인의 큰 불행이고 불운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그가 원하는 바를 힘껏 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 평등의 원리가 높게 외쳐졌으며 그로 인해서 근세인은 과거의 신분적·계급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각자가 자기의 재능과 희망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근세의 시민적 자유는 인격의 평등에서 도출된 또 하나의 이념이고 실천이라고 할 수가 있다. 농노적(農奴的)인 구속이나 노예의 신분적 구속의 배제는 인격의 평등 때문이고 그러한 구속이 배제된 결과는 모든 사람이 귀천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실현케 한 점이었다. 자유주의의 결과 근세 시민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의 발전이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크고 빠르게 진전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인류는 주로 농업을 주된 산업으로 하는 생활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러한 농업 위주의 사회에는 생산력에 있어서나 생산수단에 있어 그리 큰 변화가 있을 수 없었고, 따라서 모든 인간의 생활도 비교적 간단하고 검소하며 또 물질적인 생활이 인생에 대해서 지니는 비중도 그다지 큰 것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 산업혁명을 치른 결과 인간의 물질적 생활 정도는 과거의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가 없을 만큼 높아졌고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물질적 문명은 과거와 같은 소수의 왕공(王公)이나 귀족들만이 누리는 특권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이 다같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범인간적(凡人間的)이고 시민적인 것이라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는 물질적 풍요가 그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고, 인간의 생활은 이러한 풍요한 물질 속에서 편리하고 고도로 발달된 생활수단의 혜택 속에서 삶을 즐기는 시대로 되었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회에서는 물질 그 자체가 인간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몫이 크고 값지게 됨을 피할 길이 없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인류는 물질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물질적인 차이가 인간의 전 생활영역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근대시민들의 그것보다는 훨씬 적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생활수단이 고도화함에 따라 이제는 물질의 다과(多寡)나 빈부의 차이는 인간의 행과 불행을 판가름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고, 가난은 그대로 불행과 직결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가 성숙해 감에 따라 사회 속에는 현격한 빈부의 차이가 생겨나고, 이 차이는 이제는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무서운 장벽을 이루게 되었다.

인간의 평등, 즉 인격의 평등에서 시작된 근대가 격심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가 난숙해짐에 따라 이러한 지나친 생활조건의 불평등은 마침내 인격의 평등 그 자체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경제적 생활의 격심한 불평등 속에서 인격의 평등을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유해한 짓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젠 인격의 평등을 명실상부하게 이룩하기 위해서는 격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여 모든 사람이 큰 빈부의 차가 없이 생활하는 사회조건의 형성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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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等權

어느 시대, 어떠한 사회를 막론하고 그 속에는 어느 정도 빈부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생활조건이 좋은 사회 속에 있더라도 게으르고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가난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부지런하면 잘살고 게으르면 못산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라도 일을 하려고만 결심하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산업혁명을 치르고 고도로 발달한 기계화된 자본주의체제하에서는 사람이 아무리 일을 하려고 발버둥을 쳐보아도 일거리가 없어 일을 못하는 사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이 난숙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형성됨에 따라 나타난 현실이었다. 일거리가 얼마든지 있고 일만 하면 잘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아니하여 잘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그 잘 못사는 책임은 게으른 개인에게 돌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일을 하려고 해도 일터가 없고 일거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고(안하는 것이 아니고) 그 결과 못산다고 할 때에 그때에도 못사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구조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사회구조는 고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잘못과 모순을 시정 또는 수정하려는 모든 사상과 이념 또는 원리를 보통으로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사회주의에는 좌로부터 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주장이 있고 주의가 있다. 사회주의에 종류가 많은 이유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어떻게 보며 또 그것을 고치는 처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보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극단적 주장을 하는 이론인데,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생산수단의 사유를 금지하고 경제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를 무시하는 극단적 독재정치를 감행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같이 자본주의의 폐단을 고치기 위해서 극단적 독재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들의 속담과 같이 빈대를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草家三間)을 태우는 것과 같은 파괴라고 하지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잘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 개인이 잘살고 못살고가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국가는 모든 사람이 모두 잘살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또 일시적으로라도 실업을 하거나 질병으로 인해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생활이 곤란하면 그것도 국가가 책임을 지고 도와주어야 한다. 현대국가는 국가가 모든 국민들의 최저생활을 확보해 줄 책임을 지고 있으며, 현대국가를 사회복지국가 또는 사회시설국가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 국민은 인간으로서 인간된 대우를 받고 또 참된 인간으로서 알차고 보람있는 삶을 누려야 하며 이러한 삶을 누리기 위한 여러 가지 여건의 조성이나 조건의 충족을 국가에 요구할 수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은 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권리는 인간의 평등원리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국가는 각종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여 이의 충실에 크게 주력하고 있는데, 선진국으로 이름난 서구의 국가 중에는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완벽하게 시행되고 있어서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인간의 불평등한 상태는 대부분 제거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적으로 평등을 한 개의 권리로서 규정한 조문을 보면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서 평등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11조 1항). "그리고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헌법 11조 2항).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헌법 11조 3항).

헌법상의 평등권은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로서 규정된 것이지만 이미 앞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평등의 원리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고, 평등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제도로서는 민주정치가 발달하게 되었고, 인간의 생활원리나 방식으로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해 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민주주의나 민주정치에서 인간의 평등이라는 대원리는 제외해 버린다면 그 때에는 민주주의나 민주정치 그 자체가 완전히 붕괴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李 鍾 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