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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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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이슬람 공화제 수 도:테헤란(Teheran) 인 구:6,827만 8,826명(2003) 면 적:164만 8,000㎢ 소 득:1인당 GDP 6,300달러(2000) 공 용 어 :페르시아어 화폐단위 :리알(Rial / Ris) 주생산물 :사탕무, 견과류 / 캐비어 / 벽돌, 석유제품 / 석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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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자연
편집Iran-自然
광대한 이란의 국토는 남부와 부부에 있는 두 개의 산맥과 함께 3개의 지형구로 구분된다.북부에선 이란의 최고봉 다마반드산(5771m)이 있는 엘부르즈 산맥이 아르메니아 고원에서부터 카스피해 남안을 거쳐 힌두쿠시 산맥으로 이어지며, 남부에선 자그로스 산맥이 리자이야 호 부근에서부터 페르시아만에 연해서 달리고 있다. 국토는 이 두 산맥에 둘러싸인 이란 고원, 엘부르즈 산맥과 카스피 사이에 낀 협장(狹長)한 평야지대, 자그로스 산맥 남쪽 페르시아만 연안지방으로 구분된다. 이 중 면적이 가장 큰 것은 표고 500
1,500m의 이란 고원인데, 이 고원 북부의 카비르사막, 동남부의 루트사막, 나마크호수, 소택지 등이 산재한다.
이란의 기후
편집대륙성 기후로서 기온의 연간·일간 교차가 크다. 연강우량은 수도 테헤란 지방의 230㎜ 에 불과해 완전한 사막, 스텝기후를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카스피해 연안지방은 1,000㎜ 이상으로 아열대 식물도 자란다.
이란 고원
편집Iran 高原
엘부르즈 산맥과 자그로스 산맥에 둘러싸인 변화와 기복이 많은 고원이다.
페르시아만
편집Persia灣
아라비아해 만입(灣入) 부분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안쪽. 만(灣) 내에는 진주양식이 활발하고 연안에는 석유 자원이 많다.
이란의 역사
편집-歷史
수도 테헤란 남방에 위치한 시아르크 유적은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것 중의 하나이나, 역사상 이란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것은 메디아인이었다. 페르시아인은 메디아와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을 일으켜, 전성기에는 인도에서 이집트, 소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미쳤던 사실이 베히스튼의 비문 같은 데에 기록되어 있다. 이 제국도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손에 멸망했다.기원후 중앙아시아에서 온 파르티아족이 니사를 중심으로 왕조를 일으켰으나 이 왕조가 멸망한 후에는 사산왕조가 다시금 세계에 군림했다. 그러나 그후 아라비아인, 터키인 등의 침공이 있어 16세기에 이르러서 사파비 왕조가 일어나 이란인에 의한 국가통일이 이루어졌다. 19세기경까지 여러 왕조에 의해 유지해 오다가 1935년에 국명을 이란으로 개칭했다.
이란의 주민
편집-住民
주요 민족인 이란인 외에 터키계인과 쿠르드인이 있다. 언어는 인도·유럽어계 페르시아어인데 이란의 회교국가화 이후에 발달한 언어이므로 문자와 어휘가 아라비아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종교는 인구의 98%가 회교도이며, 그 93%가 시아파에 속한다.
이란의 정치
편집-政治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행정상의 국가 원수이며 호메이니를 승계한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로 국가를 대표한다. 의회는 단원제의 국민의회로 정원 270석, 임기 4년이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개혁성향이 짙은 성직자 출신 하타미가 알리 악바르 나데그누리 국회의장에게 압승을 거둬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01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란의 산업·무역
편집-産業·貿易
석유개발 이전에는 농업이 주요산업이었으며, 공업은 페르시아융단을 생산하는 전통적 수공업이 있을 뿐이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세계 제2의 석유 수출국이다. 취업 인구의 약 55%가 종사하는 농목업이 이란의 기간산업이지만, 기후와 지형조건 때문에 농경지는 총면적의 10%에 불과하며 휴한지가 많아 작부 면적은 매년 농경지면적의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란 고원에서의 농경지는 오아시스 주변의 좁은 지역에만 볼 수 있을 정도이다.보링에 의한 지하수 개발과 트랙터의 보급 등 생산 기술의 개선도 약간은 이루어진 편이나, 농업 기술은 아직 낙후된 상태이며, 대토지 소유 제도가 근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 농업 생산액은 총샌산액의 2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주요한 농작물은 밀·보리·야채·사탕무·면화·포도·멜론 등이며 카스피해 연안에서는
벼·차·오렌지의 재배를 볼 수 있다.
이란의 교통·도시
편집-交通·都市
육상 교통은 산유국답제 잘 정비된 도로망에 주로 자동차가 이용되고 있다. 원거리 버스 노선도 잘 발달하여 북·서유럽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국제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테헤란에서 서쪽으로는 자동차전용고속도로가 이어져 있다. 도시교통도 전적으로 택시·버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교통의 마비상태는 대단하다.철도는 테헤란을 중심으로 페르시아만연안·카스피해연안·아제르바이잔·호라산·케르만에 통하고 있으며 그 연장은 5,000㎞에 달한다. 도시는 물자원이 있는 메소포타미아 평야와 엘부르즈 산맥 및 자그로스 산맥의 산록 지방에 몰려 있다.
테헤란
편집Tehran
이란의 수도. 이란 고원 북부 엘부르즈 산록에 위치하며, 인구는 738만명(2000). 비교적 역사가 짧은 도시로 정치, 경제, 교통의 중심지이다.
에스파한
편집Esfahan
테헤란 남방 420㎞에 있는 미려한 도시. 사파위 조 황금기의 대왕 아바스 1세(Shah Abbas Ⅰ, 1587∼1629)가 1597년 수도를 카즈위에서 에스파한으로 옮기며 건축가와 공예인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 야심으로 지은 곳으로 ‘에스파한은 세계의 절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늘날까지 그 아름다움이 인정되며 유적이 잘 보존된 도시이다. 세계의 3대 광장의 하나인 ‘왕의 광장’이 있다.
아바단
편집Abadan
페르시아만의 항구. 후제스탄주(州)의 도시로서 대정유소가 있는 석유 수출항.
마슈하드
편집Mashhad
이란 북동부의 상업도시. 인구 175만. 사막을 왕래하는 대상(隊商)의 기지이며, 곡창지대의 중심지.
수사
편집Susa
페르시아만 평야에 있는 페르시아의 고도. 이란 고원의 문화를 전해 주는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있다. 1897년 프랑스의 답사반이 발굴했다.
이란의 관광명소
편집-觀光名所
페르시아 융단과 도자기로 유명한 이란은 위대한 역사적 영광과 빛나는 문화적 유산이 많은 나라이다.
페르세폴리스
편집Persepolis
페르세폴리스는 다리우스 1세에 의해 건설된 성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성으로 호화로운 궁전인 동시에 견고한 요새이기도 하다. 이 왕조가 거대한 제국으로 군림할 당시에 정치적 수도는 제국의 중심 근처 수사와 에크바다나에 있었지만 바르스 지방이 성립될 때까지 성스러운 도시로 그 위치를 확고하게 지켜나갔다. 즉위식을 비롯하여 중요한 의식도 모두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원래 이 왕조를 세운 것은 중앙아시아 스티브에서 남하하여 이곳에 정주한 민족으로, 자신들은 영웅 하카마니슈의 자손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기원전 550년 메디아를 멸하고 바빌로니아를 시작으로 중근동 국가와 이집트까지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최전성기에는 서쪽으로는 이집트 동으로는 인도까지 그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원정 때 파괴되어 발굴되기까지 폐허로 남아 있었다. 다리우스왕이 조영(造營)한 웅장한 건축물은 이란 제1의 유적이다. 부근에 고도 시라즈가 있다.
이맘 호메이니 광장
편집Meidun-e Emam Khomeini
1612년 건설을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장으로 길이 512m, 넓이 160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Naghsh-e- Jahan이라 불리던 작은 광장을 아바스 1세가 폴로 경기를 목적으로 다시 대규모로 지었는데 20세기에 들어 광장에 잔디를 깔고 분수를 만들었다.금요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휴일에 광장으로 나오는 시민들의 모습과 조명으로 빛나는 광장의 야경은 정말 아름답다.
로얄 모스크
편집The Royal Mosque
엷은 파랑색 타일로 멋지게 장식된 사원으로 18,000,000개의 벽돌과 472,500개의 타일로 장식된 이란 건축예술의 걸작품이다. 샤 사원(Shah Mosque)이라 불려졌던 왕가의 사원으로 아바스 왕에 의해 1612년 건설 시작하여 정문을 먼저 만들었고 아바스 왕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26년 동안 작업해 1638년 완공되었다. 30m의 으리으리한 정문, 높이 54m의 중앙 돔, 42m의 첨탑, 현재는 복구공사로 곳곳이 작업중이지만 내부의 타일장식과 사원의 거대한 규모가 사파위 조의 건축양식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곳은 메카를 향해 세워져 방향이 틀어져 있고 빛에 따라 돔의 타일색이 변화하며 돔 중앙의 회색빛 돌위에서 바닥을 두들기거나 박수를 치면 7번의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양쪽으로 난 홀과 돔의 공간이 사원의 음향시설 역할을 한다.
쉐이흐 로폴라 모스크
편집Sheikh Lotfollah Mosque
왕궁 알리카푸(Ali Qapu)와 바로 마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원으로 1602년 아바스 1세가 그의 장인이며 쉬아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쉐이흐 로폴라(Sheikh Lotfollah)를 위해 만들었다. 이후 이맘 광장을 만들 때까지 왕족을 위해 사용했다. 아름답게 장식된 사원의 타일장식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돔의 엷은 파란 타일도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멋지게 변화하며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공사기간만 20년 걸렸다고 하며 첨탑이나 정원이 없는 점이 다른 사원과 다른 점인데 오랜 왕조시절 여자 왕족을 위한 시설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얼굴이 보여지지 않게 기도에 참석하도록 궁전과 사원을 연결하는 지하터널을 만들어 출입하였다고 한다.
졸파교회
편집Jolfa Church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인 졸파(Jolfa)에 위치하고 17세기 아바스 왕 시절에 건설된 아르메니아인의 교회이다. 정문을 들어가면 오른쪽에 교회, 왼쪽에 박물관이 있는데 교회 내부는 기독교인들의 박해당하는 끔찍한 장면과 천국과 지옥 관련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규모는 매우 작고 어두운 편이다. 박물관에는 700점 이상의 손으로 쓴 책이 있고, 종교와 문화에 관한 것이 전시중인데 세계에서 제일 작은 성경책과 성경구절을 도금한 머리카락은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이다. 종교유물 및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도 소장하고 있다.
40기둥 궁전
편집Palace of Forty Pillars
17세기 아바스 2세(1642∼1667)의 접견실로 지어진 건물로 현재 작은 박물관 안은 도자기와 오래 된 동전, 코란 등이 전시되고 있다. 내부는 아바스와 우주벡의 전쟁에 관련된 그림, 인도 무갈 제국의 황제 호메이옹과 연회를 즐기는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20개를 합해서 40기둥이라 말하는데 각 기둥은 플라타너스 나무를 통자로 잘라 만들었고 지붕에 사용된 들보도 모두 같은 나무로 제작되었다. 연못 끝에서 바라보는 궁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디의 묘
편집Saadi’s Tomb
‘장미정원(Gulistan)’이란 시집을 내었고 서정시의 대가로 알려진 이란의 문학 거장 사디의 묘가 있는 사당이다. 사디는 1291년 100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는데 1860년에 만들어진 대리석묘로 이 사당은 시내 외곽에 있어 휴일을 제외하고 조용한 편이다.
초록왕궁박물관
편집Sabz (Green) Palace-Museum
1925년 레자샤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137,229㎦의 아름다운 대지 위에 세워졌다. 건축학적이나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에 꼽히고 내부의 조각과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1974년 지하를 새로운 새로운 스타일로 재건했고 레자왕과 아들의 개인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1980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고 내부는 페르시안 카페트, 유럽에서 들여온 가구, 자기 세트 등이 전시되고 있다.
바킬 사원
편집Vakil Mosque
길이 75m, 넓이 36m인 대규모의 예배당이다. 48개의 나선형 모양의 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는데 내부의 타일장식이 인상적이며 잔드조에 만들어진 사원을 카자르조에 보수 및 확장하였다고 한다.
하페즈의 무덤
편집Aramgah-e Hafez
가잘(Ghazal, 서정적인 연애시)의 대가인 하페즈(1300∼1389)의 시는 모든 이란인에게 잘 알려져 있고 인정받고 있다. 그의 시속에는 몽골족의 지배하의 고통이 은유적으로 드러나 있어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이란인은 그의 무덤에 세겨진 시, 가잘을 가장 아낀다고 한다. 두 개의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 위에 대리석으로 된 그의 무덤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그 주위에 앉아 그의 시집을 펼쳐 들고 읽고 있다.
국립왕궁박물관
편집National Palace(White) Museum
건물의 우아한 색으로 하얀궁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레쟈왕이 개인 주거지로 사용하였고 사후 그와 그의 아들을 기리는 기념비적인 장소였는데, 1982년 박물관으로 공개되었다.1931년 건설을 시작 1939년 완공된 독일식의 건물로 세 개 층, 54개 방으로 이루어졌고 내부는 러시아, 비잔틴, 그리고 이란식으로 꾸며져 카페트와 무기, 왕이 사용하던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람 공원
편집Eram Park with historical monu- ments in Shirax‘Eram’은 이란어로 낙원을 의미한다. 이 정원의 아름다움으로 붙여진 이름인데 사이프러스 나무와 어우러진 공원의 가로수 길에서 쉬라즈 최고의 공원임을 느낄 수 있다. 해발 1,600m의 고지대라 한여름에도 아주 뜨겁지 않고 겨울에도 서늘한 편이라 자연적인 공원조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원에 마지막 카자르조의 궁전도 있는데 현재 쉬라즈 대학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렘
편집Harem
왕가의 여인들이 살던 곳이다. 궁과 연결되는 문이 따로 있으며 동쪽문에는 왕이 사자머리 괴물과 싸우는 모습이 있고, 남쪽문은 2명의 시종이 Xerxes왕을 따르고 있는데, 한 사람은 파리채를 들고 다른 이는 파라솔로 왕의 머리를 보호하고 있다. 여왕의 구역은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중앙 돌기둥이 있는 부분이 그녀와 시녀들을 위한 구역이라고 한다. 하렘의 입구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일부는 복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캬부드 사원
편집Kabud Mosque
사원의 아름다운 푸른 타일로 인해 일명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카부드 사원은 지한 왕정(1389∼1420)때 건축된 건축물로 지진에 의해 파괴되어 많이 손상되었지만 그 걸출한 모자이크 타일은 지금도 볼 수 있다. 2개의 첨탑의 정문은 가장 큰 돔 아래의 기도 홀(Shabestan)로 이어지고 양쪽 복도를 따라 작은 돔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이어진다. 벽은 대리석판으로 되어 있고 초기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으리라 생각되나 파란색 모자이크들이 많이 손상되었고, 그 절반은 사라져서 폐허의 모습이다.
타브리즈 박물관
편집Tabriz Museum, Azarbaijan Museum1957년 건설을 시작하여 1962년 문을 연 3,000㎦ 규모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캬부드 사원(Kabud Mosque)의 옆에 위치하고 3개의 전시장으로 나뉜다.이란인들의 의복이나 부족들의 생활환경에 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는 부분, 고대시대의 유물인 동전, 무기, 살림살이 등 고고학적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부분, 그리고 이란의 성법 및 혁명에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는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