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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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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Hashemite Kingdom of Jordan 정치체제:입헌군주제·양원제 수 도:암만(Aman) 인 구:546만265명(2003) 면 적:9만 2,300㎢ 소 득:1인당 GDP 4,300달러(2002) 공 용 어 :아랍어 화폐단위 :요르단디나르(JD) 주생산물 :감귤류, 가지, 올리브유 / 구두, 도자기, 비료 / 인산염, 칼륨

요르단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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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自然

국토의 서단에 레바논, 안티레바논 두 산맥의 연장이 남북으로 달리고 그 사이 폭 10

20㎞의 대지구대(大地溝帶)가 있는데 이것이 갈릴리호, 사해(死海), 아카바만(灣) 등을 거쳐 아프리카에 이어진다.지구대의 저변은 평탄하지 않아 헤르몬 산에서 발원한 요르단 강이 남쪽으로 흘러 사해에 들어간다. 사해 남쪽에서 지구대가 차츰 높아져 그 10㎞ 남방에서 해면과 같은 고도가 된다. 지구대 동부의 요르단은 표고 500

1,000m의 완만한 고원상을 이룬 암석 사막지대이다.지구대의 서쪽은 지중해성 기후로 하계에는 고온·건조하고, 동계에는 저온·다습하여 500㎜ 정도의 비가 내린다. 동부는 스텝 사막지대로 강우량이 200㎜ 미만이다.

요르단의 주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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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民·政治

주민은 대부분이 아랍인 회교도들로, 아라비아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으나, 도시에서는 영어도 통용되고 있다. 주민 중 70만명이 팔레스타인 피난민으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관의 원조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1967년의 대 이스라엘 전쟁의 결과 요르단강 서안에 거주하던 요르단인 중 많은 사람이 동안으로 이주했다.사해 북단의 에리코에서는 기원전 5000년의 도시가 발굴되었고, 아카바만 부근의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페트라는 험준한 적색하암 협곡지대에 위치해 있다. 1차대전시 후세인 왕의 아들 파이살이 아카바와 암만을 점령하여 세운 토후국 아미르는 1921년 영국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후 팔레스티나 전쟁이 일어나 압둘라 왕은 1946년 팔레스티나 동부를 점령했다.1952년 국왕 후세인이 입헌군주제를 선포하고 친서방적인 외교노선을 폈다. 아랍제국 중 가장 친서방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 지지를 표명한 탓에 미국 등 서방측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999년 2월 후세인 국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요르단의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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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業

요르단강 지류에 댐이 건설되어 농업용 수자원이 확보되어 있다. 주산물은 밀과 보리이다. 경제규모가 영세하여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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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man

수도. 인구 144만. 정치, 문화, 상공업의 중심지. 남서방에 로마 시대의 유적 페트라가 있다.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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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stine 팔레스타인 지방은 현재 이스라엘에 자리잡고 있는 지중해 동안, 즉 레바논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시나이반도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면적은 대략 2만 6,000㎢. 천연자원은 거의 없다. 요르단강 서안의 동부는 황무지가 전개돼 있지만 서부는 경작 및 목초지대가 있어 농축산물이 생산된다. 가자지구는 일부 경작지에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으나 목초나 삼림지대는 거의 없다. 강수량이 매우 부족한데다 그마저 75%가 증발해 수자원을 이스라엘에 크게 의존한다. 주민은 가자지구의 경우 팔레스타인계가 99.8%로 절대다수이고, 유태인은 극소수이다. 언어로는 아랍어를 사용하며 이스라엘어와 영어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 대부분이나 기독교 신자들도 일부 존재한다. 이슬람과 기독교 도합 88%, 유태교 등 기타 종교 12%이다.

요르단의 관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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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光名所

역사상 중요한 곳인 요르단은 국내 도처에 귀중한 고고학적 유적과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가 조화를 이룬 유물들이 흩어져 있는 나라이다.

제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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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쉬는 로마-그리스 시대의 10개 위성도시(decpolis)의 하나로써, 보석, 비단, 상아 등의 판매가 이루어지던 사막 대상(caravan)의 경유지였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폐허가 되었었으나 최근에 발굴작업으로 거의 원형이 복구되어 이태리 외에 로마시대의 도시흔적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도시로서 유명해지고 있다. 제라쉬의 북쪽으로는 알-리바트 성은 산등성이에 위치하여 맑은 날이면 요르단 계곡을 통해 예루살렘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마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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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바는 다수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 및 바닥들이 발견된 기독교 도시이다. 그리스 정교교회인 세인트 조르지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6세기 시대의 예루살렘 시 지도가 모자이크 벽화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다바 시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10㎞ 지점에는 느보산이 있다. 기독교 구약시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는 곳이다. 또한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샘물이 솟았다고 알려진 모세의 샘에서는 약 3,2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물이 샘솟고 있다.마다바의 남쪽에는 카락성이 있는데 12세기 카락 지역의 통치자였던 리노드 대 샤리용 군주가 회교인 대상(caravan)들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던 주요 요새였으며, 1187년대 회교군의 유명한 명장인 살라할 딘 장군에 의해 정복되었다.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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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 나오는 헬레니즘 양식의 웅대한 건물이다. 건물 정면은 암벽을 파서 만들었고, 암벽을 파서 방도 만들었다. 페트라는 대부분의 건물들을 이와 같이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이곳에는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현대 도시 못지 않다.나바티안이라고 불리는 민족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수많은 대상들이 들러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고 번창했었으나, 대상무역의 쇠퇴와 함께 폐허가 되어 여러 세기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812년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 하르트라는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가 이 웅장한 유적을 발견한 것이다.현대의 수수께끼 유적의 하나로 남아 있는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밋과 더불어 고대 세계 7대불가사의의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마지막 성배’를 이곳에서 찍었다.

시타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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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del

로마국장 반대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꼭대기에 옛성터가 있는데 암만의 전경이 멋있게 펼쳐지는 곳이다. 현재는 폐허로 잔재들만 남아 있지만 한창 복구공사가 진행중이다. 2세기 지어진 헤라클레스 신전(The temple of Hercules)은 일부가 복원되어 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Marcus Aurelius, 161∼180)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입구부터 도시까지 계단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나 지금 계단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 외에도 청동기 시대의 성채부터 로마시대의 방어성벽, 우마야드 왕조의 왕궁(기원후 8세기) 및 주거지, 6세기의 비잔틴 교회 등 현재 활발하게 복원작업이 진행중이거나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암만 고고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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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Archaological Museum암만의 유물이 선사시대부터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시타델 중앙에 위치하고 규모는 작지만 융성했던 암만의 역사들을 되집어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곳이다.

로마 원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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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 Amphitheatre

시내에 위치하며 고대 필라델피아의 유적중 보존이 잘된 건축물이다. 경사진 언덕을 파서 만든 원형극장으로 기원후 169∼177경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며 대략 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극장은 현재도 각종 행사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극장 곳곳에 아름다운 장식이 남아 있고 무대 양옆으로는 ‘전통의상 박물관(Traditional Jewels & Costumes Museum)’과 ‘민속박물관(Fo- lklore Museum)’이 있다.

카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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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asury, Al Khazneh

페트라 유적중 최고로 인상적이고 웅대한 2층의 건물이다. 25m 높이의 고린도식 기둥 6개가 정면을 받치고 서 있는데 그리스식 건축양식의 건물로 기원전 1세기 경 나바네안 왕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한다. ‘카즈네(Khazneh)’란 베두인의 말로 ‘보물’이란 뜻인데 건물 꼭대기에 항아리 모양의 단지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곳에 셀 수 없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전설에서 지금의 보물고라 불려지게 되었다. 건물외관의 넓이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하는데 1, 2층 정면에 걸쳐 나바테안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암벽을 파고 다듬어 만든 건물로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다.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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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Deir, The Monastery

전면의 폭이 50m, 높이가 45m에 이르는 페트라의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안쪽에 들어서 있다. 4세기 이후부터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도원까지 올라가는 길은 매우 환상적인 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언덕이 끝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