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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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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United Arab Emirates 정치체제:7개 수장국 연방제 수 도:아부다비(Abu Dhabi) 인 구:248만 8,414명(2003) 면 적:8만 2,880㎢ 소 득:1인당 GDP 2만 2,000달러(2002) 공 용 어 :아랍어 화폐단위 :디르함(DH) 주생산물 :대추야자, 멜론 / 새우 / 석유

오만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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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Sultanate of Oman 정치체제:군주제 수 도:머스켓(Muscat) 인 구:280만 7,125명(2003) 면 적:21만 2,460㎢ 소 득:1인당 GDP 7,720달러(2002) 공 용 어 :아랍어 화폐단위 :리알오마니(Rial Omani / RO) 주생산물 :대추야자, 담배, 라임 / 대구, 정어리 / 구리, 석유, 천연가스

아랍에미리트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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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Arab Emirates-自然

국토의 대부분은 사막지대이나, 페르시아만 연안부는 평탄하고 염분이 많으며, 사우디아라비아국경의 알아인 지방은 풍요로운 오아시스지대이다. 북동부의 무산둠반도 동부에는 남북 80㎞에 걸치는 아하다르산맥이 있으며, 최고봉은 약 3,000m이다. 페르시아만 연안의 해안선은 복잡하게 되얽혔으며, 바다는 멀리까지 수심이 얕고 먼 바다에는 많은 섬과 산호초가 점점 떠 있다. 두바이항은 천연의 마곡으로 된 양항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역사·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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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住民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이, 17세기에는 네덜란드,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이 인도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전통적인 해상생업(海上生業)이 어렵게 된 페르시아만 연안지역의 주민은 해적으로 바뀌어갔다. 1820년에는 해적행위와 노예무역에 대한 금지협정을 맺었으며, 35년에는 연간 6개월간의 진주 채취중에는 전쟁을 멈추는 해상휴전협정을 각 수장과 맺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지역을 트루시알코스트(휴전해안)라고 하게 되었다.19세기말이 되자 서유럽 열강이 이 지역에서 이권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영국은 여러 외국과의 자유로운 교섭을 금지하는 독점협정을 각 수장과 맺고, 보호 아래 두었다.그러나 1962년에는 아부다비에서, 그뒤에는 두바이에서 석유생산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각 수장간의 이해관계가 표면화되었으며, 연방화를 위한 움직임은 어려움에 빠졌다. 결국 카타르와 바레인 산유국은 분리 독립했다. 1971년 12월 영국군이 철수한 뒤 라스알하이마(1972년 3월에 연방 가맹)를 제외한 6개 수장국에 의해 아랍수장국연방이 되었다.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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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民

아랍계 주민의 인구비율은 42%밖에 안되는 상황이고, 아시아계(특히 인도인·파키스탄인·이란인)가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오만인·예멘인·팔레스타인인·이집트인 등의 외국인도 많이 일하고 있다.공용어는 아라비아어이나,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슬람교 수니파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두바이에는 시아파가 많다.

아랍에미리트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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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

연방을 구성하는 7개국은 각각 토후국으로 ‘에미르’라고 하는 토후가 다스린다. 토후들은 자국의 국내 행정과 경제 문제에 권한을 가진다. 연방정부는 아랍에미리트의 외교와 국방을 관장하고, 연방의 경제·사회 발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최고의결기관은 7개 수장국 대표자로 이루어져 있는 연방최고평의회이며, 초대 대통령으로는 아부다비의 자이드 수장, 부통령으로는 두바이의 라시드 수장이 선출되었다.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며, 또한 의회는 각 수장으로 임명된 의원에 의한 연방의회이다.연방발족 뒤 석유에 얽힌 영토분쟁이 계속 일어났는데, 사막지대에서는 프라이미오아시스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고, 페르시아만에서는 아부무사섬과 대툼·소툼섬이 이란과의 사이에서 각각 계쟁관계를 파생시켰다.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과 그로 인한 석유파동을 계기로 결속이 느슨했던 아랍수장국연방은 단단히 뭉쳤으며, 강력하게 아랍진영을 지지했다.1974년 이후 막대한 오일달러가 흘러 들어와 그 경제력과 정치적 단결의 분위기 속에서 자이드 대통령은 계속적으로 행정개혁에 착수하였으며, 연방체제 강화를 실천해 갔다. 그러나 그 발언력 증대를 경계하여, 각 수장국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두바이의 라시드 부통령과의 사이에서 주도권분쟁이 표면화되었다. 특히 1979년 2월 페르시아만의 건너편지역에서 이란혁명이 일어나자, 페르시아만의 안전보장체제 재편성을 주장하는 자이드 대통령과 국내에서 시아파가 많은 점을 이용하여 이란의 호메이니정권과 접근하려는 현실파인 라시드 부통령과의 대립은 심해졌으며, 연방의 분열소동으로까지 몰고 갔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아랍 여러 나라의 조정으로 라시트 부통령이 총리를 겸임하게 되고, 새 내각을 조직함으로써 모면할 수 있었다.또한 그때까지 연방예산의 90% 이상을 부담해 왔던 아부다비 대신에 각 산유 수장국은 각각 석유수입의 50%를 예산에 내놓는다는 데 합의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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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業

산업의 중심은 석유이며, 전형적 아랍산유국형이다.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의 주된 경제활동은 오아시스농업·연안어업·중계무역 등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1959년 아부다비에서 상업베이스에 편입되는 유전이 발견되자, 경제정세는 급격히 변화했다.원유의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수출되며, 전체 국가수이브이 약 90%를 차지한다.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기 때문에 경작 가능면적은 0.4%정도이며, 농업은 사막의 오아시스지대와 무산둠반도의 일부로 한정되어 있는데, 밀·보리·잡곡류·대추야자·망고·사료작물·담배 등이 주요생산물이다. 연안에는 어류가 많으며, 또한 20세기초에는 천연진주사업도 번영했다.오늘날의 어업 중심지는 무산둠반도 동부인데, 특히 아지만은 직업인구의 약 1/3이 어업과 관련을 맺고 있다. 제조업은 많은 공업화계획을 당성하여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정유소·석유관련산업·제분·건설자재·시멘트·청량음료 등이 주요한 것인데, 이것은 2대산유수장국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집중되어 있다.

오만의 자연·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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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an-自然·社會

아라비아 반도 동남단에 위치하며, 북위 16∼26, 동경 51∼59에 남서쪽으로 북동쪽으로 약 940㎞,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350㎞ 걸쳐 있다.오만과 페르시아 만 사이의 무산담 반도 북단에 자리잡은 루우스알 지방(‘산꼭대기’라는 뜻)은 본토와 떨어져 아랍에미리트와 맞닿아 있지만 오만 영토에 포함된다. 오만 영토는 남서쪽으로 예멘, 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아랍에미리트, 북쪽으로 오만 만, 남쪽과 동쪽으로 아라비아 해와 각각 이웃한다.지세는 북부 알바티나 지방, 남부 도팔 지방, 무산담 반도, 마시라 섬을 비롯한 섬들, 그리고 국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막·토막(土漠)으로 나뉘어진다.오만에서 가장 높은 지형은 오만 안 해안과 나란히 뻗은 알하자르 산맥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이 솦아 있으며 알아크다르 산맥 부근에서 해발 3,000m가 넘는 이 산맥은 북서쪽에 있는 너비 32㎞의 알바티나 적평야와 넓게 펼쳐진 자갈 사막 사이에 솟아 있다. 자갈 사막은 오만 영토의 3/4을 차지하면서 남서쪽으로 약 600㎞를 뻗어 남서쪽 모서리의 도팔 주에 있는 산맥까지 펼쳐져 있다.국토의 대부분은 불모의 사막으로 혹서와 건조함이 일년 내내 계속되는 소위 사막형 기후를 보이지만 해안지방은 산에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과 몬순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다르다. 연평균 강우량은 약 100㎜. 무스카트 부근 해안지방의 여름기온은 대개 36에 이르며 겨울에는 17 정도이다. 담수의 공급원이 되는 저수지나 강은 없으며 특유의 자연 식생도 거의 없어 아카시아 정도가 식생의 전부를 차지한다.오만은 회교 군주인 술탄이 다스리는 왕국이다. 술탄은 내각을 구성하는 각료 2명을 임명한다. 각료의 일부는 왕족이 맡는다. 술탄이 임명하는 위원 55명으로 구성된 자문회의가 정부의 자문기관 구실을 한다. 오만에는 헌법도 없고 정당도 없다.

오만의 주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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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民·産業

오만인은 고대부터 해안지대에 살며 농경, 어업에 종사하고 또한 대형선박을 타고 인도양을 무대로 활약했던 해양민족형 아랍인, 사막의 베드윈, 예전의 오만령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의 일부)에서 이주해온 아프리카 흑인, 오만령 발루치스탄(현 파키스탄의 일부)에서 이주해온 발루치인으로 나뉘어진다.인구의 대부분은 아랍인이고, 비아랍의 오만인은 소수이다. 최근에는 도시부를 중심으로 인도,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영어도 통용되고 있다. 이슬람교의 예언자 모하메드가 생존할 때부터 오만은 이미 이슬람교국가였고 현재도 변함없지만 종파는 오만 독자의 이바드파가 인구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