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음악/서양의 경음악가/재 즈

트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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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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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Armstrong(1900-1971) 1920년대 후기부터 1930년대 초기에 '핫 파이브'의 이름으로 취입된 수십곡은 재즈사상(史上) 불멸의 명반(名盤)이라 하겠다. 재즈사상의 거인이며 희대의 솔리이스트였던 그는 재즈 보컬리스트로서도 제1인자였다. 70세가 넘기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던 그는 일찍이 우리 나라에서도 연주공연을 가진 바 있고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여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 노장이다. 재즈의 산 역사이며 증인이기도 하였던 그의 절정기는 1930년을 중심으로 한 몇해 동안이었다.

바이더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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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 Bix Beiderbecke(1903-1931) 암스트롱과 같은 시기에 완전히 백인적(白人的) 감각의 새로운 트럼펫 스타일을 완성한 거인. 진 골드케트 악단을 거쳐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까지 폴 화이트먼 악단에 속했으며 수많은 캄보 취입도 하였다. 피아노와 작곡에도 손을 댔으며 그러한 것에는 프랑스 인상파(印象派)의 영향이 엿보인다.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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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fford Brown(1920-1956) 죽은 지 40년이 지났지만 그의 레코드는 여전히 몇 차례나 재발매되며 또한 잘 팔리고 있다. 하드 바프기(hard bop期)에 나타난 명수로서 아드 립(ad lib)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점철되며, 그의 솔로는 어느 부분을 들어도 그것이 그대로 새로운 곡이 된다고 할 정도이다. 1953년부터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기까지 맥스 로치와 함께 브라운 로치 퀸테트(quintet)를 이끌었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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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s Davis(1926-1991) 1950년대가 낳은 최대의 재즈 음악가의 한 사람이다. 1940년대, 찰리 파커의 캄보로 데뷔했을 무렵, 빈약했던 테크닉은 끊임없는 연마로써 극복되어 1950년대에 나온 음반에는 한 장의 태작(▩作)도 없다. 탤런트 스카우트에도 뛰어나, 그가 기른 신인은 잇달아 다음 세대를 담당할 스타로 자라났다.

엘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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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 Eldridge(1911- ? ) 밥(Bop) 시대의 영웅 디지 길레스피에게 최대의 영향을 미친 트럼펫 주자. 1930년대에 루이 암스트롱의 고음취주(高音吹奏)로 영향을 받은 그의 솔로는 1930년대의 헨더슨, 쿠르퍼의 두 악단에서 그 명성을 떨쳐 팬의 인기를 독점하였다. 후에는 JATP(Jazz at the Philhar­monic)에서 활약,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끔 깜짝 놀랄 만한 명연(名演)을 내놓았다.

길레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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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Birks Dizzy Gillespie(1917- ? ) 찰리 파커(알토색소폰 주자)와 함께 밥(Bop) 시대의 상징적 존재. 로이 엘드리지의 모방자로서 출발하였으나 밥 이후 오늘날까지 최고의 트럼펫 주자로서 군림하였다. 자주 빅 밴드를 편성하였으며, 현재는 캄보를 이끌며 특히 아프로 큐번(Afro Cuban) 리듬을 사용한 작품이 많다. 그 성질대로 한없이 명랑한 음빛깔과 프레이징의 소유자이다.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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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James(1916- ? ) 절정기에는 굿맨 악단의 스타 솔로이스트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1939년에 독립, 밴드를 운영하였다. 한때 코머셜리즘에 타협하여 스윗 스타일로 변한 시기도 있었으나 그의 본령(本領)은 빅 밴드 스윙에서 발휘되었다. 테크닉이나 필링도 나무랄 바 없으며, 그를 존경하지 않는 트럼펫 주자는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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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Farmer(1928- ) 1950년 초기에 라이오넬 햄프턴 악단에서 클리퍼드 브라운과 함께 인기인으로 활약하였으며, 그 후 지지 그라이스, 호레이스 실버, 제리 멀리건의 캄보에서 일하였다. 베니 골슨(테너 색소폰)과 재즈테트라는 캄보를 가졌으나(1959-1961), 그 이후는 자신의 캄보를 갖고 활약하였다. 슬로와 미디엄 템포에 특히 개성이 강하다.

트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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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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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Brookmeyer(1929- ) 그의 악기는 슬라이드가 아니라 밸브 트롬본이다. 쿨 재즈 시대에 데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스타일은 캔자스 재즈적인 스윙감과 릴랙스(relax)한 맛을 지니고 있다. 체트 베이커(트럼펫)의 후임으로서 1954년에 제리 멀리건 퀸텟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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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 Johnson(1924- ) 밥(Bop) 초기부터 계속하여 트롬본계의 왕좌를 지키는 거인. 1950년대 중기에 백인 카이 윈딩과 콤비가 된 'J 앤드 K'는 인기의 절정에서 해산하였으나 그 후 캄보를 조직하여 계속 활약하였으며 작곡 및 편곡자로서도 일류이다. 본명은 제임스 루이스 존슨으로 J. J.는 자기가 지은 애칭이다.

알토 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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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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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Parker(1920-1955) 모던 재즈의 기초를 만든 위대한 천재 알토 색소폰 주자. 캔자스시티 태생으로, 1941년에 뉴욕으로 나와 잼 세션에서 크게 관심을 모아 뉴 재즈(비 밥)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후에는 JATP에 소속하였으며 만년은 마약으로 인한 고통과 병마로 형편 없는 레코드도 몇 개는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재즈사상에 흔치 않은 위대한 재즈 음악가의 한 사람이라 하겠다.

데스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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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Desmond(1924- ) 가장 섬세하고 백인적인 서정미를 지닌 알토 색소폰의 명수이다. 블루베크 캄보의 지보(至寶)로서 오랫동안 소속되어 있었다. 본질적인 멜로디스트이며, 샘처럼 넘쳐흐르는 프레이징은 서정성으로 가득차 있다. 히트곡 <테이크 파이브>의 작곡자이며, 지적인 용모도 매력적이라 하겠다. 또한 평론을 하면 신랄한 유머리스트가 되기도 하였다.

코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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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onitz(1917- ? ) 레니 트리스타노 문하의 수재이며 백인 쿨파(派)를 대표하는 거인. 1950년을 중심으로 그 천재적인 쿨 알토는 재즈계를 지배했다. 1952년부터 약 1년 동안 스탠 켄턴 악단, 1954년부터 자기의 캄보를 가졌으나 운이 없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음악교사와 뮤지션이라는 이중생활을 하였다.

애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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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n 'Cannonball' Adderley(1928-1975) 힘찬 알토 색소폰 주자. 펑키(funky)한 스타일을 특징으로 한다. 1956-1957년에 동생인 냇과 캄보를 가졌으나 1958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캄보에 들어갔다가 다음 해에 다시 독립하였다. <디스 히어>, <워크 송>, <잼 더티 블루스>, <머시, 머시, 머시> 등 펑키하고 알기 쉬운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다.

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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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nette Coleman(1930- ) 전위 재즈의 아버지라 하겠다. 재래의 재즈 리듬, 멜로디, 하모니의 권외(圈外)에서 연출되는 그의 재즈는 1950년대 말에 데뷔하였을 때는 엉터리 음악으로서 조소를 받았으나, 1960년대에 들어오자 그가 제시한 방향을 지향한 젊은이들이 잇달아 나타나고 롤린스, 콜트레인 같은 주류파도 여기에 기울어져 그의 존재가 재평가되었다.

테너 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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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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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leman Hawkins(1904-1969) 재즈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 호킨스 이전의 테너 색소폰은 재즈악기로 생각되지 않고 있었다. 레스터 영이 출현하기까지 온 세계의 테너 주자는 모두 그를 모방함으로써 출발하였다. 또한 그의 위대한 점은 스윙 시대에서 밥(1940년대의 전반에 흑인의 진보적인 뮤지션에 의해서 일어난 모던 스타일의 재즈, 비밥이라고도 한다), 모던과 40여년에 걸쳐 그가 항상 현대적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는 시대를 초월한 거인이라 하겠다.

Lester Young(1909-1959) 콜먼 호킨스밖에 없었던 테너 색소폰의 세계에 전혀 다른 스타일로 나타나 모던 테너에 큰 영향을 미친 스윙 중간파의 거인. 비브라토가 거의 없으며, 음은 작고 프레이징은 허약한 느낌으로, 처음은 이단시되었으나 10여년 후의 모던 테너는 모두 그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재즈 사상 많지 않은 참다운 창조자의 한 사람이라 하겠다.

스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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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Stitt(1924-1982) 알토 색소폰 주자로서는 너무나 파커와 흡사하기 때문에, 파커가 살아 있을 때에는 테너 색소폰을 부는 경우가 많았다. 테너 색소폰은 호쾌한 음빛깔이기는 하나 프레이징은 레스터 영의 영향이 많이 엿보인다. 밥 초기부터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테너 색소폰에는 많은 팬이 뒤따랐다. 친구인 진 아몬스와 콤비가 되었으며, 취입 레코드도 매우 많다.

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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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t Sims(1925- ) 백인이면서도 호방하고 섬세한 테너 색소폰 주자로서 저명. 쿨기(期)에 데뷔하였으나 스타일은 오히려 하드 밥파 흑인에 공통된다고 하겠다. 스탠 게츠와 함께 백인 테너 가운데 최고의 실력자이다. 같은 시대의 백인 플레이어(게츠를 포함하여)와 함께 레스터 영 스타일을 신봉하여, 이와 같은 경향을 지닌 알 콘(테너 색소폰 주자)과는 자주 콤비가 되었다.

콜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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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oltrane(1926-1967) 모던 재즈에서 전위 재즈에 걸친 거성. 1955-1956년, 또한 1958-1960년에 데이비스 캄보를 만난 이후 그 눈부신 발전은 팬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60년 이후는 자기 캄보를 갖고 한 작품마다 남이 감히 따르지 못할 독특한 개성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혁신적인 그의 뉴 재즈는 커다란 감명을 주었던 만큼 1967년에 있었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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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Getz(1927-1991) 1950년대의 초기에 쿨 재즈파의 신인으로서 알려진 그는 1960년대에 보사노바를 다루어 다시 왕좌를 찾았다. 백인 테너 색소폰 주자의 제1인자. 1958년에 JATP와 함께 유럽으로 가서, 1961년까지 가족과 함께 코펜하겐에서 살았으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차리 버드(기타 주자)와 함께 취입한 <재즈 삼바>의 히트 이후 순조로운 활약을 하였다.

롤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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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Rollins(1929- ) 1950년대를 지배하였던 애드 립(즉흥연주)의 명인. 밥기(期)의 소니스티트, 딕스터 고든적인 힘찬 음빛깔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유연하고 의젓한 스타일로 변하였으나, 긴 애드 립에서 보이는 기승전결(起承轉結) 등 그 절묘한 구성은 달리 그 유를 찾아볼 수 없다. 2년 반의 은퇴생활에서 재기한 1960년대에 와서는 다분히 오네트 콜만적인 전위수법의 영향을 보여주었다.

멀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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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ry Mulligan(1927-1995) 해리 카네이가 계속 지배하였던 바리톤 색소폰의 세계에 쿨한 감각으로 소프트한 음빛깔을 지닌 멀리건의 출현은 1950년대의 초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멀리건은 초기의 재즈에도 밝고 때로는 딕시의 수법조차 모던한 감각으로 모디파이하였다. 편곡자로서도 일류이며, 빅 밴드를 구성한 적도 있으나 캄보에 가장 큰 매력을 발휘하였다.

클라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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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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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ny Goodman(1909-1986) 스윙 시대의 상징적 존재. '스윙의 왕'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시카고의 가난한 양복점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직업 악사(樂士)가 되어 후에 최고의 클라리넷 주자가 되었다. 항상 빅 밴드를 이끌었으며 동시에 캄보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당시로서는 진귀한 흑인의 우수 뮤지션을 스카우트하는 등, 그가 재즈에 미친 공적과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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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y Herman(1913- ? ) 1936년에 아이샴 존스 악단을 양도받아 1940년대를 통하여 가장 정력적이며 열광적인 악단으로 발전시켰으며(퍼스트 하드), 쿨 시대에는 스탠 게츠 등을 고용한(세컨드 하드) 일류의 밴드로 군림하였다. 알토 색소폰을 불던 조니 호지스의 영향이 짙다. 제1급의 밴드를 가진 클라리넷 주자이다.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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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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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Kennedy Duke Ellington(1899-1974) 스타일의 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재즈맨에게 존경받는 작곡·편곡가이며, 또한 피아니스트이자 밴드 리더이기도 하다. '나의 악기는 나의 오케스트라'라는 신념으로 50여년을 두고 제1급의 밴드를 이끌어 왔으며, 항상 최고의 흑인 음악을 계속 만들어 왔던 미국을 대표하는 대작곡가의 한 사람이다. 1969년에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주최로 그의 70세 기념 파티가 열렸다.

베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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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Count Basie(1904- ? ) 30여년에 걸친 밴드 리더. 음표를 절약하여 훌륭한 스윙감을 쌓아올리는 피아니스트. 1935년 캔자스의 유명한 밴드 베니 모텐 악단을 계승하여 뉴욕으로 나와, 베니 굿맨 악단의 위치를 위협하기도 하였다. 한때 캄보로 축소한 시기도 있었으나, 여전히 빅 밴드 스윙의 왕좌를 확보하였다.

하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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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Hines(1905- ? ) 재즈 피아노의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파더'라는 애칭이 있다. 암스트롱 핫 파이브를 거쳐 1928년에 자기의 밴드를 창설, 밥의 신인스타를 확보하여 활약하였다. 나중에는 트리오를 이끌었으나 그 힘찬 터치, 넘쳐흐르는 스윙감은 전혀 쇠퇴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모더니스트와 어깨를 견주어 손색이 없을 만큼 최대의 갈채를 받았다.

테이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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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Tatum(1910-1956) 재즈 사상 최대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만큼 피아노라는 악기를 자기 것으로 한 명인을 달리 찾는다면 재즈계가 아니라 클래식의 역사적 거장 가운데에서 골라야 할 것이다. 놀랄 정도의 테크닉과 정확한 타이밍으로 그는 수많은 레코드를 남겼다. 파우어나 피터슨 모두 그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은 만큼 그는 구름 위에 우뚝선 거봉이다.

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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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Kenton(1912-1979) 피아니스트로서보다도 밴드 리더로서 유명. 1941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밴드를 결성하여 자기도 편곡하였으며, 전임 편곡자 피트루고로의 작품을 연주하여 유명해졌다. '프로그레시브 재즈'의 기치를 내걸고 그 산하에서 웨스트 코스트파(派)의 뛰어난 재즈맨을 많이 배출하였다. 일류 멤버를 이끌고 연주 여행을 하는 등 활약이 컸다.

트리스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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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nie Tristano(1919-1978) 밥에서 쿨에의 전환기에 완전히 백인적인 감각으로 모던 재즈의 방향을 제시한 존경받은 음악가. 그의 문하에서 리 코니츠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그 이론은 밥에 의하여 확대된 하모니의 개념을 멜로디에 적용시키려는 것으로, 직관적이며 기복이 많은 멜로딕 인벤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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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wis(1920- ) MJQ의 피아니스트. 흑인 또는 매우 백인적인 정서를 지니며, 바로크 음악의 형식과 재즈의 형식을 결합시킨 훌륭한 앙상블은 MJQ를 성격짓고 있다. 실질적인 리더이나 음악감독이란 지위에 있다. 영화음악에도 진출하여 <대운하>(황혼의 베니스), <권총의 보수> 등 여러 작품이 있다. 그 단정하고 기품있는 피아노의 우아한 연주 또한 훌륭하다.

멍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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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onious Monk(1920-1982) 어릴 때부터 할렘 피아노의 <거인>을 듣고, 후에 밥의 창조자의 한 사람이 되었으나, 그 타협을 모르는 성격과 비정상적인 거동으로 말미암아 올바르게 평가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독창적 감각으로 만들어진 음악은 전위파 뮤지션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멍크야말로 모던 재즈의 중심인물이라 하겠다.

브루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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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Brubeck(1920- ) 제2차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하였던 거장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의 문하생으로서, 클래식한 터치를 보이나 폴 데스몬드(알토 색소폰 주자)와 콤비가 된 퀴테트는 16년에 걸친 커리어를 가지며, 이 기간에 전 미국의 대학을 역방하여 재즈를 모르는 학생들을 팬으로 만든 공적은 크다고 하겠다.

파우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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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 Powell(1924-1966) 길레스피, 파커와 함께 밥 시대의 전재적 뮤지션(피아니스트). 몸이 허약하기 때문에 그작품의 우열에 대한 기복이 상당히 심하며 특히 만년의 것에는그의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등의 고통으로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1950년 전후의 테크닉과 개성, 1953년경의 웅대하고 섬세한 음악성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후기의 것에도 음악이 서정성이 상실되지는 않았으나, 그의 천재는 1950년대 전반까지 모두 연소되어 버렸다고 하겠다.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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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terson(1925- ) 캐나다 출신의 흑인 피아니스트. 압도적인 스윙감과 함께 지적 구성력을 지닌 피아노의 거인. 특히 레이 브라운(베이스 주자)과의 긴밀한 협조는 5년에 걸쳐 그의 트리오를 왕좌에 앉혔다. 브로크 코드와 트릴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일종의 브로크이나 무궤도에 빠지는 일이 없이 질서와 조화를 지닌 경향의 훌륭함을 갖춰 높은 인기를 유지하였다.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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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ace Silver(1928- ) 펑키파(funky派)의 대표적 피아니스트로서 캄보 리더. 물론 버드 파우웰의 영향 아래 자란 사람이나 멜로디를 만드는 솜씨가 훌륭하고 보다 흑인적이며 블루지한 뉘앙스를 지녔다. '재즈 메신저스'의 초대 피아니스트로서 메신저스의 특징인 펑키한 스타일은 그가 남겨 놓은 공적이다. 그 후로는 자기가 창설한 캄보에서 활약하였다.

에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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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Evans(1929-1980) 1950년대 말기부터 관심이 집중되어 온 백인파(白人派) 피아니스트. 펑키 전성시대에 전적으로 대조적인 스타일로 데뷔하였으며 테크닉이나 애드립도 1급이다. 특히 슬로우 발라드에서 보이는 자기표현은 지적인 서정성마저 감돌고 있다. 데뷔 당시의 스윙감도 인상적이며 1960년대에 스코트 라팔로(베이스 주자)나 짐 홀(기타리스트)이 콤비가 된 트리오, 2중주가 더욱 훌륭하다.

플래내건(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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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 Flanagan(1930- ) 디트로이트 출신의 흑인 피아니스트. 마일즈 데이비스, 서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 등 일류 멤버와 공연한 레코드가 많다. 산뜻한 모던 스윙파의 중견으로서 1957년에 스톡홀름에서 녹음한 피아노 트리오에 의한 <오버시즈>가 크게 히트하여 1967년에 재발매되었을 때도 최고매상을 기록하였다.

비브라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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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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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el Hampton(1913-2002) 1936년에서 1940년까지 베니 굿맨 캄보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이후 독립하여 자기 밴드를 조직하여 활동한 비브라폰 주자. 스윙의 화신(化身)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익사이팅한 비브라폰은 또한 발라드나 블루스에서 끝없는 정서를 자아냈다. 그의 빅 밴드는 음이 거칠어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서비스 정신이 풍부하다. 또한 그라디스 부인의 내조의 공도 유명하다.

잭슨(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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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 Jackson(1923- ) 모던 재즈기(期)가 낳은 최대의 비브라폰 주자. 디지 길레스피 악단을 거쳐 MJQ의 설립에 참여, 이후 15년 동안 MJQ에 속하였으나 단독으로 수많은 레코딩 섹션에 참가하였다. 그의 블루스는 감동적이고 발라드는 서정적이나, 압도적인 스윙감의 소유자이며, 그가 나타났기 때문에 햅프턴은 상당수의 팬을 빼앗겼다고 할 정도이다.

라인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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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ango Reinhardt(1910-1953) 유럽의 집시 기타리스트. 그 오리지널리티로 본바닥 미국 재즈계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외국인이라 하겠다. 화상을 입어 왼손의 두 손가락이 거의 자유롭지 못한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스탠더드 및 오리지널곡에 랩소딕하면서도 멜랑콜릭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조금만 들어도 미국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자기 자신의 음악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크리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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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Christian(1919-1942) 기타를 리듬 섹션으로부터 호른과 같은 계열의 솔로 악기로 취급한 흑인 재즈맨. 당시까지 기타는 단순한 리듬 악기에 불과했으나 크리스천의 기타는 마치 색소폰 같은 것이었다. 바니 케셀에서 웨스몽고메리까지의 모던 기타 주자는 모두 그를 재즈 기타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굿맨 악단에 약 2년 동안 적을 둔 적도 있었다.

Jim Hall(1930- ) 모던 재즈의 명조연(名助演)으로 알려진 기타리스트. 주역을 교묘히 앞세워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주역과 동격(同格)으로 인터플레이를 주고받는다. 뛰어난 테크닉과 함께 대단한 순응성(順應性)을 지녔다. 치코 해밀턴, 지미 제프리, 리 코니츠, 서니 롤린스, 아트 파머, 빌 에번스, 폴 데스몬드 등의 레코딩에 참가하였으며 융통성이 풍부한 그의 명플레이를 찬미하는 사람이 많다.

블랜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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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Blanton(1921-1942) 겨우 21세의 생애에도 불구하고 재즈에서 베이스의 역할을 일변시킨 재즈사상의 거인. 만 2년간을 듀크 엘링턴 악단에서 활약하였음에 불과하나, 그가 있었던 시대의 레코드는 찬란한 빛을 내었다. 페티퍼드, 밍거스, 레이 브라운 등 모던 베이스의 주자는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모던 베이스의 주자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밍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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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Mingus(1922-1979) 흑인의식을 지니며, 상당히 투쟁적인 베이스 주자. 딕시에서 출발하여 스윙을 거쳐 모던 재즈로 들어갔으나 그 힘차고 테크닉이 풍부한 베이스에는 정평이 있다. 모던 초기에는 근대적인 무조음악(無調音樂)에 뜻을 두었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스트파(派)의 발흥과 함께 흑인으로서의 자존심, 분노에 철저히 뿌리박은 음악을 창조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직립원인(直立猿人)>은 그의 대표적 걸작이다.

페티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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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ttiford(1922-1960) 모던 베이스의 아버지인 지미 블랜턴이 개척한 수법을 더욱 발전시킨 위대한 베이스 주자로서, 재즈나 첼로도 다루었다. 그 베이스의 음은 크며, 리듬적으로나 멜로디적으로도 풍부한 창조력을 갖고, 레이 브라운과 함께 많은 베이스 주자의 우상이 되었다. 1958년,독일에서 자동차사고를 만나 그 후유증으로 코펜하겐에서 사망하였다.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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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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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y Clarke(1914- ? ) 모던 드러밍의 아버지. 스윙시대부터 종래의 드러머처럼 베이스드럼의 네 번을 치지 않고 새로운 주법을 고수하였으나, 밥 시기에서의 최고의 명수가 되어 맥스 로치, 아트 브레이키 등은 그의 타법을 기초로 오늘의 드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1952년부터 줄곧 파리에 살며 명사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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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y Rich(1917-1987) 드러머로서는 공전의 테크니션으로, 심장이 약하여 연주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하여 당시에는 그의 기술을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테크닉이 재즈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바로 그의 약점이었다. 캄보보다도 빅 밴드로의 형태에 속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1966년에 새로 편성한 빅 밴드는 양질의 것으로 갈채를 받았다.

블레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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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lakey(1919- ? ) 힘찬 드럼의 명수이나 그 이상으로 캄보 '재즈 메신저스'의 리더로서도 유명하다. 메신저스는 1950년대 중기 이후, 항상 참신한 신인을 확보하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 꾀하였다. 이스트 코스트 재즈의 중심인물이며, 펑키(funky) 붐을 일으킨 재즈맨이기도 하다.

Shelly Manne(1920- ) 웨스트 코스트파(派)의 중심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셸리스 맨 홀'이라는 재즈 클럽을 경영하였다. 스탠 켄턴, 우디 허먼 등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여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사운드트랙, TV음악에서도 활약하였다. 백인적이며 섬세하고 멜로디어스한 드러머라 하겠다.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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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o Hamilton(1921- ) 야심적인 캄보 리더. 1952년에 제리 멀리건 퀸텟의 드러머로서 명성을 떨쳐 그 후 자기 캄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역시 탤런트 발굴에 재능이 있었으며, 짐 홀, 바디 콜레트, 엘릭 도르피, 찰스 로이드 등은 모두 그의 캄보에서 이름을 떨쳤다.

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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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Roach(1925- ) 케니 라크가 개척한 밥 드럼 주법을 완성시킨 거인이며 브레이키의 야성에 대하여 로치는 지성파이다. 인종문제에 관해서도 만만치 않은 투사로서 아내 아비 링컨(재즈 가수)과 함께 도전적인 몇몇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1954년, 클리퍼드 브라운(트럼펫 주자)과 공동으로 조직한 캄보는 이스트 코스트 재즈 발흥의 도화선이 되었다.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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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vin Jones(1927- ) 디트로이트 근교 태생의 드러머. 큰형인 헝크(피아니스트)와 둘째형 사드(트럼펫 주자)의 다음인 그는 두 형과 함께 음악적 소양이 많아 1950년대 후반 뉴욕으로 나와, 1960년대 존 콜트레인 퀸텟에 들어가서 복잡한 리듬의 타주로 1960년대를 대표하는 드러머가 되었다. 오늘날의 전위 드러머는 모두 이 엘빈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