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프랑크 왕국과 사라센 제국/7 ~ 8세기경의 세계

7 ~ 8세기경의 세계〔槪說〕 편집

동에 당(唐)제국, 서에 프랑크 왕국, 중앙에 사라센 제국의 3국이 각각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 이 시대의 세계 대세(大勢)이다. 서유럽에서는 4세기 이래 각지에 이동한 게르만 제족(諸族)이 앵글로색슨족이나 서고트족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프랑크 왕국이나 동로마 제국의 치하에 흡수되었다.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를 마르텔의 사라센 제국의 격퇴로 궁재(宮宰)의 힘이 강대해졌으나, 8세기에는 피핀에 의해서 카롤링거 왕조가 성립되었다. 이 무렵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황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시작했으나, 교황 또한 그리스 교회와 대항하기 위해 세속(世俗) 군주와의 유대를 바라고 있었다. 여기서 프랑크 왕국에서는 봉건제의 기반이 성립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중세에 있어서의 교황과 군주와의 제휴·상호 이용이 전개되었다.동로마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번영의 뒤를 이어, 6세기 말부터 슬라브 제족(諸族)의 발칸에의 이주와 국내의 반란으로 일시 시달렸다. 그러나 7세기 초부터 이 제국은 둔전병(屯田兵)과 군관구 제도 등을 채용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해서, 7세기 말 사라센군의 침입을 방위했다. 또한 8세기 초에는 우상숭배 문제를 계기로 하여, 로마 교회와 대립하기 시작하고, 제국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스적 국가로서의 특색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5

6세기까지 서유럽 외의 세계는, 사산 왕조로 대표되는 이란 문명권과, 동로마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문명권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7세기에 이슬람교가 성립되자, 종래의 여러 문명을 계승하면서도 이들의 문명권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이슬람 문명이다. 마호메트는 알라신(神)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라에의 절대적 귀의(歸依)를 가르쳤다. 그는 한때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하였는데, 드디어 아라비아 전부족을 통일하여 이슬람 세계 건설의 기초를 닦았다. 마호메트의 사후, 역대 칼리프는 이슬람 세계의 확립과 발전에 노력했기 때문에, 불과 1세기 동안에 동으로는 중앙아시아·인도로부터, 서로는 북아프리카·이베리아 반도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사라센 제국이다. 정복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으나 제3대 오스만 시대 무렵부터 교단(敎團) 내부의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굽타 왕조의 멸망 후 북인도에서는 잠시 분열시대가 계속되었는데, 7세기 초에 바르다나 왕조가 성립되고 일시 북인도는 통일되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왕실이 문란해지고 인도의 통일은 급속히 무너졌다. 바르다나 왕국이 멸망한 때부터 이슬람교도에 의해서 북인도가 통일될 때까지인 약 5세기 반 동안, 인도에는 소왕국 난립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남인도에서는 드라비다계(系)의 여러 왕국이 분립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단(南端)의 타밀 지방에 일어난 촐라 왕조가 특히 부강했다. 이 왕조의 원정군은 동남아시아의 스리비자야까지 갔었다.동남아시아 방면에서는, 그 후 인도 문화의 수용(受容)이 진행되었고,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하여 진랍(眞臘)이 대두되었으나, 얼마 후에 분열했다. 또한 수마트라에서도 스리비자야 왕국이 일어나서 해상(海上) 무역에 의하여 강대한 국가가 되었다.동아시아에서는, 6세기에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토목공사와 외정(外征)에 주력하여, 서로는 칭하이(靑海)의 땅을 처음으로 지배하에 두었고, 남으로는 지금의 북베트남·타이완의 땅까지 지배하였으며, 나아가서 고구려를 세 번에 걸쳐 침공하였으나 실패했다. 이 때문에 국력을 소비하여, 농민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각지의 호족들이 반란집단을 통합하여 할거(割據)하다가, 7세기 초 당공(唐公) 이연(李淵)이 당(唐)제국을 건국함으로써, 수는 불과 38년, 실질적으로는 2대로 멸망하고 말았다. 당은 북위(北魏) 이래의 균전제(均田制)를 실시하여 율령(律令)을 정비하고, 서북 변방의 돌궐(突厥), 탕구트, 토번(吐蕃)을 토벌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확립시켰다.안정된 통일국가의 출현은 동서문화의 교류를 촉진시켰고, 국내적으로는 현란하고 호화로운 귀족적·국제적 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대외적으로는 당을 중심으로 한 주변 여러 국가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동아시아의 각지에는 율령국가가 성립하여, 여기서 당을 중심으로 하여 정치적·문화적으로 통일된 문화권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8세기 중엽에 일어난 안사(安史)의 난을 계기로 하여, 당제국의 권위는 크게 동요되고 당의 성격은 일변했다. 균전제는 붕괴되어 조용조(租庸調)·부병제(府兵制)는 실시되지 않게 되었다. 이 전란의 혼란을 처리하고 재정(財政)을 바로잡고, 난의 원인이 된 절도사(節度使)를 통제하여 왕조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