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프랑크 왕국과 사라센 제국/잉글랜드의 소국시대
잉글랜드의 소국시대〔槪說〕
편집앵글로색슨족이 잉글랜드에 침입한 449년부터 에그버트왕이 여러 왕국을 통일한 829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는 소위 7왕국(Heptarchy)의 시대이며, 소국이 각지에 흥망하였다. 선주(先住)의 브리튼인을 제압하면서 앵글로색슨족이 전잉글랜드에 힘을 뻗쳤고, 가톨릭 교회도 세력을 증대시켰다. 그리고 7왕국은 켄트, 서섹스, 웨섹스, 에식스, 이스트앵글리아, 머시아, 노섬브리아의 7개국이라고 되어 있다.
7왕국
편집七王國
앵글로색슨족이 잉글랜드 침입 후 건설한 7왕국. 북으로부터 노섬브리아, 머시아, 이스트앵글리아, 에식스, 웨섹스, 켄트, 서섹스 등을 말한다. 5세기 말에 서섹스 왕 엘라가 남부 영국에서 패권을 잡은 이래 7왕국은 서로 패권을 다투었으며, 패왕(覇王)은 종속왕(從屬王)들에게 봉토(封土)를 주는 형식으로 봉건적 주종관계를 맺었다. 패왕의 교대는 격심하였으나 9세기 웨섹스 왕조가 흥륭하여, 데인인(人)의 침입을 계기로 통일을 이루어 영국 봉건 사회가 확립되었다.
켄트 왕국
편집-王國 Kent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 중 하나. 전설에 의하면 5세기 중엽 헹기스트가 대네트 섬에 상륙하여 로마 제정 말기 브리튼 섬에 웅비(雄飛)했던 보티건으로부터 동맹자로서 국토를 얻어 건국하였다. 6, 7세기 에셀버트 왕 때에 번영하여 남부 잉글랜드의 패권을 잡았다. 대륙과의 교섭이 많아 중부 프랑크·라인적인 유트문화를 형성하였다. 메로빙거 왕조와도 교섭하였으며, 597년 아우구스티누스의 크리스트교 포교를 받아들여 개종하고, 7왕국 중 문명이 가장 앞선 나라가 되었다. 켄트 왕국의 수도 캔터베리는 이미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중세 이래 한 주를 이루었는데, 자유로운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는 비(非)장원적인 토지제도가 특별히 두드러져, 선진지역인 동남부 중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지역으로서 주목되고 있다.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
편집-王國 East Anglia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 중 하나. 오늘날의 노퍽, 서퍽 일대를 총칭하는 지명도 된다. 처음 정주자는 북부 펜랜드 및 직접 동해안으로부터 온 앵글족이라고 전해진다. 상(上) 템스 부근과도 문화교류가 있었으며, 켄트의 에셀버트 왕 다음, 이스트 앵글리아 왕 레드월드(?∼622?) 때에 번영하여 한때 남잉글랜드의 패권을 쥐었다. 그 후, 거꾸로 머시아, 웨섹스에 예속되었고, 9세기에 데인인(人)의 침략으로 요크 지방의 해안과 펜랜드가 그 침입을 받았는데, 데인 군대가 그대로 정주하게 됨으로써 스칸디나비아 사회의 요소가 많이 이식되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적 농경법이 행하여졌는데, 태반의 사람이 자유로운 소토지 소유를 했다는 지역적인 특색도 데인인들의 지분지(持分地)에 기원한다고 한다.
노섬브리아 왕국
편집-王國 Northumbria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王國) 중 하나. 547년 건국하였다. 610년경 데이라 왕국을 지배하고, 노섬브리아 지방을 제패하였으나 그의 아들 오즈왈드 왕 때 641년 머시아 왕 펜다에 패배. 그후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머시아에 대항하였으나, 825년 웨섹스 왕 에그버트에게 항복하였다. 북방 브리튼인(人)의 침입, 국내 귀족의 반항 등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5세기경부터는 크리스트교 문화에 접하였고, 아일랜드인 등도 도래(渡來)하여 문화는 번영하였다.
머시아 왕국
편집-王國 Mercia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王國) 중 하나. 5세기 말에 이셀이 건국하였으며, 630년경 펜다왕 때 크게 번영하였고, 8세기 후반 오파왕(王)은 제국(諸國)을 지배함으로써 패왕(覇王)이 되어 웨섹스를 압박하고, 캔터베리 대주교(大主敎)에 머시아인을 임명하였다. 왕은 대주교와 협조하여 강대한 국가를 조직하여 샤를마뉴에게 위협을 주는 한편, 대륙과의 교역(交易)을 장려하여 문화교류를 도모하였다. 그후 825년 웨섹스 왕 에그버트에 패하여 그 지배하에 들어갔다.
에식스 왕국
편집-王國 Essex
영국 7왕국의 하나. 오늘날의 에식스 지방에 건국한 동(東) 색슨의 국가. 7세기 이전의 사정은 불명하며 617년부터 왕의 이름이 전해진다. 이 왕국은 7왕국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지방적 존재에 불과했다. 7세기 중엽 시게버트왕 때 개종(改宗)하였으며, 8세기에는 머시아 왕 오파에 예속되었고, 825년 웨섹스 왕 에그버트에게 종속 병합되었다.
서섹스 왕국
편집-王國 Sussex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 중 하나. 색슨족(族)에 의한 브리튼 정복은 주트족(族)에 의한 켄트의 정복 후, 엘라와 그 세 명의 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남(南)색슨족은 477년 소수 군대로써 잉글랜드 남안(南岸)에 상륙하여 점차 동방으로 진출하였고, 7세기 후반에는 켄트에 이어서 머시아의 종주권(宗主權)에 복종하였다. 그 때까지 그들은 이교(異敎)를 믿었으나, 661년 왕이 세례(洗禮)를 받은 다음 점차 개종(改宗)하기 시작하였다.
웨섹스 왕국
편집-王國 Wessex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 중 하나. 5세기 말 영국 남안에 상륙한 체르디치가 펜랜드 지방으로부터 상(上)템스 강변으로 남하한 색슨족을 지배하여 건국. 7세기 후반 데번까지 영토를 넓혔는데, 한때 동서로 분열되었다. 8세기 초, 이네왕(王)이 동으로는 켄트, 서로는 웨일스 지방을 정복하여 남부 영국의 웅자(雄者)로 불리었으며, 법전(法典)을 편찬하여 크리스트교적 농업사회를 확립하였다. 8세기 말에 머시아 왕(王)에 복속하였으나, 825년 에그버트 왕 때 독립하고 크게 흥륭하여 영국 통일의 길을 열었다. 특히 9세기 중엽부터의 데인인(人)의 침입은 웨섹스 왕 앨프레드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주의적 경향을 조장(助長)하였으며, 이 왕조가 성장함에 따라 7왕국 시대의 전란은 통일되어 영국의 봉건사회가 확립되었다.
에그버트
편집Egbert (775?∼839, 재위 802∼839)
서(西) 색슨족의 왕. 켄트 출신으로 선조(先祖)는 웨섹스의 왕가였다. 젊었을 때 머시아의 오파에게 쫓기어 프랑크의 카를 대제 밑에서 지냈으며, 귀국 후에는 켄트 왕국을 탈환하고 콘월을 정복하였으며, 825년에는 머시아를 복속시켰다.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통일 왕권하에 복속된 것은 이 시대이며, 또한 스칸디나비아에서 침략해 오는 부족들을 격퇴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앵글로색슨 법
편집-法 Anglo Saxon Law
노르만 정복 이전의 잉글랜드에서 앵글로, 색슨 두 부족이 형성한 7왕국. 그중에서도 특히 켄트 및 웨섹스 양 왕국이 제정했던 법. 이는 속인주의(屬人主義) 입장을 취하여 라틴어로 된 대륙의 부족 법전과 달리 앵글로색슨어로 기록되어 있다. 켄트 왕 에셀버트는 잉글랜드의 최초의 입법자이며, 그가 편찬한 법전은 가장 오래된 현존(現存) 문헌이다(6세기). 7세기 말에는 이네 법전이 편찬되었으며, 앨프레드 대왕은 웨섹스 왕의 자격으로 126장으로 된 법전을 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