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세 유럽과 아시아/르네상스와 종교개혁/15 16세기경의 세계
15 16세기경의 세계〔槪說〕
편집서구의 중세 봉건사회는 로마 교회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정신적 공동체로 그 명맥을 이어왔으나 수차에 걸쳐서 감행된 십자군 원정 이래 로마 교회의 권위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십자군 운동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상업의 부활과 도시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상업의 발달은 화폐의 통용을 가져왔고 화폐경제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농업을 주로 하는 봉건사회 내부에 변화를 일으켰다. 즉 봉건지대(封建地代)의 금납화(金納化) 과정이 도처에서 실시됨으로써 장원제도(莊園制度)를 서서히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정치적인 측면에서 15
16세기 유럽을 개관해 보면 소위 근대적 국민국가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하는 동안 싹이 튼 강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의지를 하나로 묶을 수가 있었으며, 봉건제후(封建諸侯) 사이에 벌어졌던 장미전쟁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시키는 데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튜더(Tudor) 왕조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15
16세기는 정치·경제면만의 변혁기가 아니었고,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혁명을 일으킨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문예부흥 운동과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운동은 근대 유럽사회의 정신적 두 지주가 되었다. 여기에 곁들여서 자연과학과 항해술의 발달은 지리상의 발견을 초래하였다. 이것은 유럽 세력을 세계에 확대시키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동서간의 교통이 개통됨에 따라 유럽 각국은 식민지 획득을 위한 쟁탈전쟁을 전개하였다. 이리하여 동서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 새 출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양 근대문화의 모체가 된 문예부흥 운동은 인간의 정신활동 모든 분야에서 전개되었지만 그 중심 사상은 특히 미술과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은 현세를 존중하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르네상스 운동은 14세기 중엽경에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16세기 중엽까지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의 자유도시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십자군 운동 이래 동방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부의 축적과 병행하여 외부로부터 정신적인 영향을 어느 국가보다 먼저 받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16세기 초엽 독일에서는 인문주의자와 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중세 로마 교회의 미신적 교리와 교권에 항거하고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복귀하기 위한 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이와 같은 개혁운동은 보헤미아의 후스(Huss), 영국의 위클리프를 거쳐 마침내 루터에 이르러 실현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네바의 칼뱅과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은 각각 타당한 명분을 내걸고 로마 교회와 대결하여 개혁운동을 촉진시켰다. 이 개혁 운동은 단순히 로마 교회에 대한 항거라는 차원에서 끝나 버린 것이 아니고 정치·경제·사회 각 방면의 개혁에도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15세기의 동유럽 정세를 개관할 것 같으면 우선 폴란드에서 야겔로 왕조가 수립됨으로써 미약하지만 서서히 근대국가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였고, 슬라브인의 모스코 공국(公國)이 1480년 칸(汗)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였다.
서아시아에서는 티무르(Timur)가 나타나 차가타이 한국(汗國)·일 한국(汗國)과 오스만 투르크를 정복한 다음 강대한 국가를 수립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티무르는 죽고 말았다. 그의 제국도 분열되고 티무르 제국에서 벗어난 오스만 투르크는 소아시아 방면에서 강력한 신흥국가로 등장하여 소아시아 지역을 휩쓸었다. 1453년 모하메드 2세 때에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였다. 1000여 년간 지속되어 오던 비잔틴 제국도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오스만 투르크는 세력을 계속 신장시켜 16세기 초에는 발칸반도 전역을 복속시켰다. 그래서 1517년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Sultan, 황제)이 이슬람 세계의 칼리프로 군림하던 무렵에는 그 막강한 세력으로 서유럽을 위협함으로써 새로운 위기를 조성시켰다. 이 무렵 인도에서는 티무르 제국이 성립한 후 토후국(土侯國)으로 분열상태를 계속해 오다가 티무르의 후계인 바벨(Babel)이 델리 정권을 타도한 다음 무굴(Mugul) 제국을 건설하였다.
14세기 중엽부터 원조(元朝)의 정치세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오랫동안 그 압제하에서 신음하던 한족(漢族)은 반란을 일으켜 몽골족을 다시 사막으로 추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명(明)은 중앙집권 국가를 수립하자 즉시 한민족(漢民族)의 중흥과 한문화의 재건에 착수하였다. 영락제(永樂帝)는 북원(北元)의 잔존세력을 소탕하고 남방에는 정화(鄭和)를 파견, 명의 국위를 널리 선양하였다. 그러나 명조(明朝)도 중기에 이르자 대외적으로는 소위 북로남왜(北虜南倭)로 곤경에 빠지게 되고 대내적으로 환관(宦官)의 횡포와 당파싸움에 국세는 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에 의해서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