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나폴레옹과 빈 체제/19세기 전반의 동남아시아

19세기 전반의 동남아시아〔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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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는 1802년 완조(阮朝)가 성립되었다. 초대의 가륭제(嘉隆帝, 자론)는 중앙집권을 확립하고 공전제(公田制)를 시행하며, 또 영토상으로는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룩하였다. 초기부터 프랑스의 세력이 강하게 들어와 그리스도교의 포교가 왕성하였다. 프랑스는 남(南)베트남을 직할식민지로 하고(1858), 이를 발판으로 하여 라오스·캄보디아로 진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1900)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미얀마에서는 18세기 중반에 성립된 알라웅파야 왕조가 북부의 아바를 중심으로 타이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었으나, 19세기 초에는 인도 지배를 확립한 영국이 이에 눈을 돌려, 1824, 1852년의 영·미얀마 전쟁을 통해 해안부(海岸部)를 병합하였다. 1885년의 세번째 전쟁에 의해 미얀마 전토가 병합되어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타이는 1782년 현(現) 방콕 왕조가 성립되었다. 19세기 중엽에 명군(名君) 라마 4세 몽쿠트왕(王), 5세 출라롱콘왕(王)이 왕위에 올라 적극적으로 근대화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밀려드는 서구 열강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소극적 독립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말레이에서는 1786년 이래 영국이 페난섬을 근거로 말레이 반도에 진출하였으나 1824년 런던 조약에 따라 네덜란드와 조정하여 본격적 지배에 나섰고, 또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해협(海峽)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알라웅파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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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 Alaungpaya

18세기 중엽 버마인 알라웅파야가 개창한 후 19세기 후반까지 계세(繼世)된 미얀마 최후의 왕조. 그 수도는 이라와디강 중류에 있는 스웨보, 아바, 아마라푸라, 만달레이 등으로 전전(轉戰)하였다. 알라웅파야는 팽창정책을 펼쳐 아유타야까지 원정했고, 제5대 보도파야왕 때에는 동쪽의 테나세림에서 서쪽의 아라칸까지 영유(領有)하여 미얀마 최대의 판도(版圖)를 누렸다. 그러나 영국 세력과 충돌하여 3차에 걸친 미얀마 전쟁이 있었고, 결국 1885년 제10대 왕인 티보가 영국군에 포로가 되자 이 왕조는 133년 만에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