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서양의 사상/현대의 사상/실존주의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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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중요한 사상 조류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빼앗고 평균화·도구화하려고 하는 인간소외적인 상황과 대결하여, 인간의 주체적 독자성을 개인 내면의 자유로운 결단에서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이다. 실존주의의 원류는 근대 시민사회가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19세기 중엽 이후의 대중 사회적 상황 속에서 고독한 예외자로서의 입장을 관철한 두 거성,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와 독일의 니체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지성과 신앙의 갭에 괴로워하는 근대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서도 주체성의 회복에 의해 절망을 극복하려고 하는 실존적인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 초엽에는 러시아의 셰스토프나 에스파냐의 우나무노(1864-1936) 등 철학자나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작가 카프카(1883-1924) 등이 일상적인 삶의 저변에 숨겨져 있는 음울한 허무의 심연을 응시하면서 본래적 자기의 주체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을 전개시켰다. 실존철학을 하나의 독자적인 '철학'으로서 등장시킨 것은 제1차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의 심각한 사회적 위기감의 체험이었다. 이러한 체험의 철학적 반성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1919)이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실존철학의 탄생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저작이 되었다. 패전국 독일과 마찬가지의 사회적 불안이 세계 각국을 엄습하고 사람들이 심각한 인간소외감의 포로가 됨에 따라,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주제로 하는 실존철학은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실존철학을 탄생시키는 요인이 된 제1차대전 후의 인간소외적인 사회 상황은 제2차대전(1939-45)의 전중(戰中)·전후에는 더욱 심각해져서 세계의 사람들을 불안과 절망 속으로 끌어들였다. 전쟁이 일으킨 잔혹한 살육, 비참하고 황폐한 생활. 인류 절멸 병기의 출현, 내일이 없는 인생에 대한 공포, 대중사회적 상황 밑에서의 생활 전면에 걸친 획일화·수평화(水平化) 등이 일상생활을 덮은 보편적인 사실이 되자, 실존주의는 널리 세인의 주목을 끄는 사조가 되고 드디어 대중의 기분을 사로잡는 유행 사상으로서 무드화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세계 각국에서 다음과 같은 사상사가나 작가(作家)들이 다면적으로 각자의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하고 있으나 공통적인 특색은 '실존'을 제1차적인 진리로서 강조하는 것이다. 독일―야스퍼스, 하이데거, 바르트, 브루너 등. 프랑스―마르셀, 사르트르, 보부아르, 메를로퐁티, 카뮈, 무니에(1905-1959) 등. 러시아―셰스토프, 베르자예프 등. '실존(existence)'은 원래 이념적인 본질(Essence)과 대비하여 상용되는 철학용어로서 '밖에' '서 있는(Sistere)' 현실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실존'은 첫째로 이념적 본질 밖에 빠져나와 있는 현실적 존재를 의미한다. 현실적 존재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나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현실 존재는 다른 것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독자적인 '지금, 여기'를 사는, 이 현실의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실존'은 둘째로 인간으로서의 진실한 존재방식을 현실의 생존방식을 통해 실현해 가는 자각적 존재(自覺的存在)로서의 자기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자각적 존재는 모두 이미 지정되어 있는 본질에 따라서 그 현실의 존재방식이 결정되는 데 대하여, 자각적 존재인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므로 현재의, 이 현실의, 자기의 생존 방식에 의해서 인간 독자의 본질 ―― 그 인간을 그 인간답게 하는 개성 ―― 이 시시각각으로 새겨져 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실존이 그 본질을 결정하고, 실존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자각적 자기가 진실한 '실존'이라는 이름에 맞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에 의해 그 본질을 결정해 가는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실존의 본질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는 선택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 이전의 '관념적' 가능성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일정한 선택의 필연성을 스스로 인수하는 '실존적' 자유이다. 그것은 현실의 자기가 무력하며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러한 기존(旣存)의 일상적 자기를 넘어서서 '밖에 서 있는다'고 하는 무한의 자기초극(自己超克)과 자기초월이라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진실한 본래적인 자기 자신이 되려고 결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기성관념이 나타내는 형식적 보편성을 돌파하고 유한한 단독적 자기의 입장으로 되돌아와 거기서부터 재출발함으로써, 현존하는 자기의 유한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탈자적(脫自的)인 자기초월의 결단이 인간 본래의 존재방식이며, 이러한 결단을 바탕으로 비로소 구체적인 진리도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무한한 자기초극의 노력으로써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려 하고, 이러한 자기의 결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근원적 진리라고 하는 실존철학의 주장은 추상적 관념이나 객관적 제도나 대중문화의 노예가 되어 개성과 주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강력한 경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존철학은 모든 도그마(敎說)의 절대화 경향에 반항하고 인간실존의 진실을 우선시킴으로써 현대 휴머니즘(인간존중주의) 철학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한다. 특정한 주의 주장이나 중우적(衆愚的)인 당파성에 의존해서 안이한 수면을 즐기려 하는 자에 대해 자유로운 선택의 필요성과 책임감을 각성시키는 부단한 문제제기자로서 실존주의는 커다란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일상성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며, 선택의 자유와 책임의 강조만으로는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의 명확화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상식이나 과학과의 적극적인 결합이 요구된다. 이러한 객관적 요구에 등을 돌리고 실존의 주관적·내면적인 입장에서 절대화시켜 실존의 '교설체계(敎說體系)'를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묻혀 있으려 할 때, 실존철학은 본래의 체계외적(體系外的)인 실존성(實存性)을 상실하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낡은 추상적 관념론의 입장으로 역전하는 위험성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 실존철학의 커다란 한계가 있다. 실존철학의 탄생을 일찍이 간파하고 크게 평가했던 철학사가(哲學史家) 하이네만(1889- ? )이 '실존'은 사상의 방향을 설정해 주는 규제원리(規制原理)일 수는 있어도 사상의 내용체계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리(構成原理)는 아니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金 恩 雨>

키에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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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위대한 실존사상가로 같은 시대의 안데르센과 함께 덴마크가 자랑하는 문필가의 한 사람.

수도 코펜하겐에서 경건하고 명상적인 상인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엄격한 그리스도교적 훈련을 받았다.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코펜하겐 대학 신학부에 들어갔으나 자유로운 학예를 추구하려는 당시의 분위기에 따라서 철학이나 문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키에르케고르의 청춘생활의 내면은 파란과 고뇌에 가득찬 것으로 '대지진'이라고 그가 부른 심각한 죄악감의 체험(1835),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영혼의 갈등, 사랑하는 사이였던 아름다운 소녀 레기네 올센과의 비통한 약혼파기(1841) 등의 사건이 차례로 다감한 젊은이에게 닥쳐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우수에 찬 내향적 성격은 불안과 절망으로 빠져들어갔다.

이런 경험을 양식으로 삼아서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사색하여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자기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하여 반성을 집중하는 주체적 사상가로 성장하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주체적 진실을 구하며 살리라"는 결의를 굳혔다.

1841년 <아이러니의 개념에 대해서―부단히 소크라테스를 돌아보면서>라는 학위논문으로 대학을 졸업하자 "주체성이 진리이고 보편적 이념보다는 단독적 실존의 가치가 크다"고 하는 실존사상을 전개하는 명저를 익명으로 차례차례 공표하여 저작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했다.

처녀작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에서는 미적 향락(美的享樂)의 인생이 갖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그린 제1부와, 현실의 과제를 착실히 수행해 가는 윤리적 의무의 인생이 갖는 견실성을 그린 제2부를, 날카롭게 대립시켜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취하도록 결단하는 데 진실한 삶이 성립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1부의 마지막 논문 <유혹자(誘惑者)의 일기>는 키에르케고르와 레기네의 연애 체험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연애문학의 걸작 중 하나가 되었으며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제2작 <공포와 전율>(1843)에서는 구약성서의 아브라함 이야기의 해석이라는 형태로 참된 신앙은 신 앞에 홀로 서려고 하는 단독자의 결단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보편화할 것을 명하는 윤리적 의무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예외적 단독자로서 자각해 가는 종교적 신앙이 훨씬 고귀한 가치를 갖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또 <반복>(1843)에서는, 한 청년의 연애 체험 분석이라는 문학적 수법으로 레기네와의 사랑을, 신의 사랑을 매개로 영원의 세계에서 반복하려고 하는 키에르케고르의 통절한 소원이 표현되고, '구극(究極)의 진리는 그리스적인 상기(想起)(테오리아, 관조)'에 의한 점차적인 이행으로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 순간에 있어서의 자기 초월의 결단에 의해서 비약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적 단편>(1844)에서는 진리를 영원한 질서에서 관조(觀照)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기가 되려고 하는 현재의 결단을 통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진리론을 헤겔류의 사변적인 진리관에 대비시켜 전개하고, 관념적인 체계 속에 추상(抽象)시킬 수 없는 단독적 실존의 단편(斷片)에 구극의 진실이 깃들여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보편적인 객관지(客觀知)에 의한 인도를 배척하고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일의 성패를 걸려고 하는 것이므로, 결단하는 자의 내면에 한없는 불안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 현기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불안감에 의해 단련됨으로써만 자유로운 인격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정밀한 심리분석을 시도한 것이 <불안의 개념>(1844)이다.

이상의 실험적인 사색의 성과 위에서 씌어진 실존적(實存的) 인생론이 <인생행로의 제 단계>(1845)이다. 여기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의 자각적 생활방식을 뜻하는 '실존'이 심미적(審美的) 실존·윤리적 실존·종교적 실존의 3단계로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능성을 탐구하여 현실을 다양한 형태로 향락하려고 하는 심미적 실존이 현실 유리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거꾸로 현실을 보편적 이념의 세계로 고양하려고 하는 윤리적 실존이 의무의식의 필연성에 구속되어 참된 자유를 상실할 위험이 있는 데 반해, 신앙에 의한 현실 구제를 지향하는 종교적 실존이야말로 이러한 두 가지 위험성을 동시에 초극하여 양자의 장점을 종합적으로 살리는 최고의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사상을 헤겔의 논리적 체계와 대비시켜 철학적인 기초를 놓으려고 한 책이 <철학적 단편에의 후서(後書)>(1846)이다. "그리스도교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하는 것이 진실한 문제라고 하는 입장으로부터 "주체성이 진리이다"라는 실존적 진리관이 전개된다. 모든 모순을 '이것도 저것도' 일괄하여 하나의 체계 속에 유화(宥和)시켜 가는 헤겔의 '양적 변증법(觀念辨證法)'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어느 길을 선택하도록 가혹하게 요구하는 모순적 사태와 대결하여 그 역설적·비약적 종합을 결단하는 '질적 변증법(實存辨證法)'이 진리 인식을 위한 바른 방법임을 여기서 역설한다.

바로 이 무렵 키에르케고르는 저작가로의 활동을 중단하고 시골에 숨어 살며 여생을 목사로서 하느님에게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르사르 신문>과의 충돌(1845-46)을 전기로 키에르케고르는 무책임한 매스컴 문화의 비판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의 덴마크는 자유주의 문화운동이 이상할 만큼 고양되어 있었고, 또한 절대왕정(絶對王政)을 폐지하고 입헌정체를 실현하려는 정치운동도 착착 그 세력을 증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세(時勢)의 이면에 숨은 인간 평균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단독자로서의 각 인격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이 키에르케고르의 과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자각을 바탕으로 집필한 시대 비판서가 <문학평론>(1846)이며, 후반부의 <현대의 비판>은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1848)과 함께 근대시민사회의 종언을 예고하는 기록적 문서가 되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의 본령은 정론가(政論家)에 있는 게 아니라 종교적 저술가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전적인 유고 <나의 저작 활동의 관점>(1848)에서도 고백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저작은 신(神)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삶이 구극적으로는 허무한 절망으로 끝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인간들의 영혼의 내면에 참된 종교성을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다. 이를 위해 익명으로 내놓은 여러 저작과 함께 일찍부터 수많은 종교강화를 실명(實名)으로 출판하였다. 그 중에 주옥같은 명문이라 하는 <사랑의 행위>(1847) <들의 백합·하늘의 새>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준다>(모두 1849) 등이 있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는 사랑의 찬미가에 취한 단순한 종교적 감격자가 아니라 일체의 타협을 배척하고 주체적 확신을 관철하려는 실존적 신앙가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당시 그리스도교계의 타락을 비판하고 참된 신앙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논한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1849) <그리스도교의 수련>(1850)으로 이 책들은 루터를 잇는 제2의 종교개혁 선언서로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는 신을 상실한 생은 모두 절망뿐이며, 이 절망이야말로 인격을 파괴하는 치명적 병임을 지적하고 참된 신앙만이 이러한 병을 근절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속편인 <그리스도교의 수련>에서는 참된 신앙은 권력에 영합하여 '승리 교회'의 환각에 취한 국가교회(國家敎會)에서는 소실되었다고 하고, 이 국가교회의 허위와 싸워서 진리를 실증해 가는 '전투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대담한 지고권위(至高權威)에의 도전은 당시의 덴마크에서는 광인의 행동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교회 공격에 온 정력과 재산을 다 쓰고 노상에서 졸도하여, 세인의 오해와 조소를 받으면서 깊은 고독 속에서 42세의 생애를 마쳤다.

현대인의 생의 외견상 화려함의 밑바닥에 깔린 니힐리즘의 싹을 키에르케고르는 날카롭게 파헤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체적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실존철학의 개조가 되었다. 또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확보하고 양자간에 존재하는 단절을 신앙의 결단에 의해 연결하려고 하는 그의 종교관은 현대의 유력한 신학의 하나인 변증법신학(위기신학)의 선구가 되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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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

키에르케고르의 주저. 절망의 심리분석과 함께 절망 극복의 방향을 바른 그리스도교적 신앙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 책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여기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격의 죽음을 초래하는 '절망'이라 하고, 절망이란 '올바른 자기관계(自己關係)의 착오'라고 한다. '자기'는 유한성과 무한성, 필연성과 가능성이라는 모순적 계기의 자유로운 종합으로써 성립하는데, 이와 같은 자유로운 종합은 타자(神)에 의해 조정(措定)된 과제라고 한다. 그래서 절망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절망이란 자기 자신에 관계하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할 때 자기가 자기를 조정할 힘을 상실하여 유한한 자아의 껍데기에 집착하거나 자아에 대한 무한적 관념 속에서 현실의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다." 절망의 극복은 우선 자연적·일상적인 생이 절망임을 확실히 자각하고 자기를 자유로운 인격으로 조정한 신에게서 자기 자신의 근거를 구하는 신앙의 결단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한다.

셰스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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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stov (1866-1938)

본명은 레프 이사코비치 시바르츠만 Lev lsaakovich Shvartsman

러시아의 종교적 실존철학자이며 비평가.

키예프 태생으로 1922년 파리로 망명하기까지 철학적 평론<셰익스피어와 그 비평가 브란데스>, <톨스토이와 니체의 학설에 있어서 선(善)>,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비극의 철학>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망명 후 만년에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접하고 합리주의에의 반항과 종교적 실존의 탐구를 <키에르케고르와 실존철학> <아테네와 예루살렘>(遺稿)에서 집약하고 파리에서 병사했다.

1860-90년대의 러시아에서 지배적이었던 여러 파의 관념론 철학은 20세기 초에 혁명운동의 고조를 앞에 두고 신비적 경향을 강화했으며, 마침내 우라지미르 소로비요프(1853-1900)라는 신비적·종교적 학살을 신봉하는 철학자·시인을 배출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신비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재평가'되어 수용(受容)된 것도 특징적이다. 로자노프(1856-1919), 메레지코프스키(1866-1941), 베르자예프(1874-1948), 셰스토프의 도스토예프스키 해석은 현대에도 뿌리깊이 살아 있다.

셰스토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론을 빌려서 자기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부조리와 고독에의 정열, 신이라 할지라도 무너뜨리지 못할, 필연적 진리에의 절망적인 저항은 실존주의 사상의 선구가 되었다. 그는 생의 우연성과 생에의 신의 개입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용인하는 예루살렘의 성서신앙(聖書信仰)에 대해, 완전히 인식 가능하고, 명확하며 필연적인 질서를 갖고, 영원하고 보편적인 법칙에 지배되는 우주를 요구하는 아테네의 합리주의를 대치시킨다. 셰스토프는 이러한 대비를 키에르케고르와 그 나름대로 이해한 스피노자, 후설에게서 발견하였다.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도 혁명운동을 떠나서 파리에 망명한 후, '새로운 그리스도교'와 인격주의를 내세우고 셰스토프에 매우 가까운 실존사상, '자유로운 정신의 철학'을 세웠다.

비극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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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劇-哲學 (1905)

셰스토프의 주저. 과학이 보여주는 논리적 필연성과 선험적(先驗的)인 선의 관념의 지배에 커다란 불안을 품고 끝까지 저항하려고 한 셰스토프에게 있어서 인간은 '선악의 피안'에 있는 '범속(凡俗)'과 '초인(超人)'·'이상(異常)'으로 나누어진다. 셰스토프는 일상성의 철학을 거부하고 "과학과 철학으로부터 배척된 인간에게도 희망은 있는가, 다시 말하면 비극의 철학은 가능한가?"를 묻고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에 의한 '이상'과 '가장 추한 것'의 심리분석과 형상화(形象化) 속에 현대에 있어서의 인간의 자유와 가능성을 찾아냈다.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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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Heidegger (1889-1976)

현상학으로부터 존재의 사색으로 발전해 나간 현대 독일의 철학자.

남부 메스키르히에 있는 성 마르틴 교회의 경비원의 장남으로, 1909년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가톨릭 신학과 철학을, 1911년 이후는 철학을 전공하고 1915년에는 사강사가 되었다. 다음해부터 후설에게서 현상학을 배우고 제1차대전에 종군한 후, 후설의 조수를 겸하면서 현상학을 강의했다. 1927년 현상학의 기관지에 <존재와 시간>을 발표하여 일약 독일 철학의 제1선에 등장했다.

1928년에는 후설의 후임으로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가 취임 강연이다. 1933년 3월 총장에 피선되었으나 주(州) 문교부와 충돌하여 다음해 2월에 사직하였다. 1945년에는 전술한 총장 취임 때문에 휴직이 되었으나 1950년 복직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 1935년의 강의 <형이상학입문>으로부터 사고방식에 전환이 생긴다. 인간, 곧 현존재(現存在)로부터 존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부터 현존재나 존재를 보는 방식으로 사상이 전환하였다. 이 새로운 존재의 사유는 1947년의 <휴머니즘에 대한 편지>에서도 말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철학 ―― 형이상학을 그 근본으로부터 문제삼는다. 형이상학은 플라톤으로부터 발달한 것으로 자연을 주체의 눈앞에 두어 형상(에이도스)으로 보았으므로 존재하는 것은 주체의 표상작용(表象作用)의 대상이 되었다. 근대에 있어서는 존재하는 것은 기술(技術)의 대상이며 주체의 의지는 관철하기 위해 필요하고 또 사용되는 것이다. 플라톤으로부터 현대의 기술시대, 원자력시대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것은 주체에 대해 그 눈앞에 있는 대상인 것이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그 발달부터 현대까지 존재하는 것이 주체의 눈앞에 현존하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현전(現前)한다는 것은 아직 그것이 주체의 눈앞에 있기 전의 은폐태(隱蔽態)로부터 밝음으로 나왔다는 것이 된다. 형이상학은 현전하는 것의 본디 진상(眞相)인 이 은폐태를 사색(思索)한 적이 없다. 존재의 사색은 형이상학이 사색하지 않는 존재하는 것, 현전하는 것의 진상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 아닌 사색으로써 언어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존재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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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在-時間 (1927)

이 책은 하이데거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저작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하는 것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후설로부터 배운 '사상(事象) 자체로'라는 현상학적 방법이 결합하여 존재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옛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이 최초의 물음으로 설정됐다.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존재한다는 것을, 비록 막연하기는 하지만 인간, 곧 현존재가 요해(了解)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요해(存在了解)를 갖고 있는 현존재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자기 이외의 존재하는 것(가까이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 눈앞에 사물로서 존재하는 것)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 존재를 요해하고 이들과 관계를 갖고 이러한 요해를 개념화할 수 있다.

이러한 현존재의 존재 분석론이 <존재와 시간>의 전반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현존재의 존재는 실존인데, 실존은 도구나 사물의 존재와는 달라서 존재요해에 의해 자기나 자기 이외의 것에 관계하므로 실존은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관심은 일상적으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물에만 쏠리고 있으나,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죽음의 가능성에 직면하여 처음으로 본래의 자기에 눈을 뜨게 된다. 현존재의 존재인 실존 또는 관심은 죽음에 의해 한정되는 유한한 시간성(時間性)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 곧 근거는 시간성에 있다. 이것을 명백히 한 것이 <존재와 시간>의 공적이며, 여기서 존재한다는 것의 시간성이 다시 추구될 예정이었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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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而上學- (1929)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가 된 하이데거가 1929년 7월에 한 취임강연이다.

1929년에 나온 이 책과 역시 같은 해에 나온 <근거의 본질에 대해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등은 <존재와 시간>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라는 근본적인 입장을 다시 문제로 삼았고 약간의 새로운 발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와 <근거의 본질에 대해서>는 1928년 거의 동시에 성립한 것으로 전자는 '무(無)', 후자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와의 '존재론적인 차별'을 각기 주제로 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는 다르다. 그리고 이 강연에서는 존재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무'가 주제이다.

존재하는 것의 전체를 묻고, 그것을 신이나 세계의 근거 등 존재하는 것에로 초월해 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이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 전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를 엄습하는 불안이라는 근본적인 정신 상태에 있어서이다. 우리들 자신을 포함해서 존재하는 것 전체가 빠져들어가는 불안에 있어서 우리는 전적인 무력을 경험하고, 불안에서 깨어나서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전체로서 존재하고 무가 아님을 깨닫는다. 불안을 통해서 무가 현존재에 있어서 경험된다. 현존재란 무의 장소를 유지하는 자를 말하며, 무 가운데로 내밀어진 것을 말한다. 무 가운데로 내밀어진 현존재가 불안에 있어서 출현한다는 것이야말로 존재하는 말을 전체로서 초월한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개시(開示)되는 것은 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래의 형이상학을 넘어선 결론이며 이윽고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사상으로 전개되어 간다.

휴머니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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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1946년 가을에 파리의 장 보프레 앞으로 씌어지고, 1947년 스위스에서 <플라톤의 진리론>에 첨가되어 <휴머니즘에 대한 편지>로서 공간되었으나, 1947년에 독일에서 별쇄(別刷)로 출판되었을 때의 제목이 <휴머니즘에 대해서>이다.

하이데거의 사상에 전회(轉回)가 있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존재와 시간> 전반, 제1부 제3편은 '시간과 존재'라는 제목으로 공간된 제2편까지에서 얻은 존재의 의미로서의 시간에 입각하여 시간을 존재의 지평(地平)으로 생각해 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예정대로 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에서는 고찰되지 않은 존재의 의미를 사색해 감에 따라서 시간이라는 것도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에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 차츰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존재와 시간'으로부터 '시간과 존재'로의 전회에는 형이상학의 본질을 규명하고 이에서 떠나는 1930-40년대 중엽까지의 긴 사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은 그 성과인 새로운 존재의 사색을 처음으로 기본적으로 공개한 것이며, 하이데거의 사색의 제3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휴머니즘은 형이상학에 입각하여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주관이나 객관에서 구해지지 않듯이 실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이미 형이상학으로부터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질의 존재의 본질을 바탕으로 존재의 밝음 속에 드러난 탈자(脫自) ―― 존재(存在)이다. 존재의 진상은 운명적으로만 스스로 나타난다. 존재의 진상은 존재의 운명으로서, 존재의 역사로서 주어지는 것이며, 형이상학 자체가 이러한 존재 역사의 한 국면이다.

존재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것,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말은 존재의 집이다.

횔데를린 시의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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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解明 (1951)

1930-47년경까지는 하이데거의 사상에 전회(轉回)가 생기고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가 가장 주목했던 철학자는 니체, 시인은 횔데를린이었다. 1936년 로마에서 강연했던 <횔데를린과 시의 본질>, 1939-40년에 걸친 강연 <축제일처럼…>, 1943년의 횔데를린 서거 백주기 추모 강연 <귀향-가까운 이들에게>, 추모 논문 <추상(追想)> 등을 합한 이 책은 1935-36년에 걸쳐 집필된 <예술 작품의 근원에 대하여>와 함께 하이데거의 예술론, 특히 사색과 시작(詩作), 창작과 언어, 존재와 언어 등의 문제를 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는 횔데를린의 시를 '해석'한다. 즉 그가 시인으로서 시적 언어로 말한 것을 사색에 의해 순수화시키면서 그 소재를 구명하려고 한다. 횔데를린은 성스러운 것을 말한다. 성스러운 것은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퓨지스(자연)이고 자연의 본래적인 존재양식이며, 그 본질이다. 이 성스러운 것은 횔데를린에게 언어를 주고, 꽃이 피듯이 언어가 스스로를 개시(開示)한다. 이 성스러운 것은 인간과 신들을 초월해 있다. 시인에게는 이 성스러운 것을 직접 사색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시인은 인간과 신들의 중간에 존재해서, 성스러운 것의 멀고 가까움에 적합하게 성스러운 것의 말을 시작(詩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를 쓰는 자는 성스러운 것, 즉 자연에 응대하고 그 도래를 언어 속에 창건(創建)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스러운 것, 자연은 신들을 초월해 있으며 어떤 시간보다도 오래되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개시하고 존재하는 것을 스스로의 내부에서 드러나게 한다. 제신(諸神), 인간, 존재하는 것 등이 서로 조우하는 것은 이 성스러운 것의 개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성스러운 것이야말로 하이데거가 지향하는 존재의 진상의 변명인 것이다.

하이데거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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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辨明

1976년 5월 26일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작고한 직후 <슈피겔>지에 발표된 하이데거의 유언에 해당하는 비공개 대답. 1966년 9월 23일 작고 후에 발표할 것을 약속하고 작성해 두었던 대답이다. 이 대답은 나치스 시대, 특히 1933년의 하이데거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었으나 그는 전후 20년간 조용히 침묵을 지켰을 뿐이었다. 후일 생전에 이 비난에 대해 변명하고 싶다는 자청에 <슈피겔>지가 응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대담기사(對談記事)에서 하이데거는 담담하게 자신이 나치스에 동조한 짧은 기간에 대해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터무니없는 비방에 대해서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있다.

첫째는 1933년, 하이데거의 프라이부르크 총장 취임 때 나치스와 타협하여 나치스 총장이 되었느냐에 대한 <슈피겔>지측의 물음에 대해 자신의 취임은 나치스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동대학에 유대인 규탄 플래카드를 걸겠다는 나치스 돌격대의 요구를 거절했으며, 나치스계 학자의 저서 문서도 단호히 용허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둘째로 자신의 총장 취임 연설에서 히틀러는 "이 발흥의 위대함과 훌륭함"이라고 찬양한 점을 시인했고, "당신은 1933년 가을에 학설이나 이념이 여러분의 존재의 규칙이 아니라 총통 자신이, 그리고 그 분만이 오늘과 내일의 독일의 현실과 그 규칙이다"라고 쓴 적이 있느냐란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그대로 시인했다. 그러나 1934년 이후에는 나치스 찬양의 악몽에서 깨어났고 오히려 감시와 박해의 대상이었음을 주장했다. 그는 은사인 후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후설이 유대인 학자였기 때문이며, 당국의 탄압에 우유부단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대담에서 "아마도 어떤 신(ein Gott)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그의 존재가 그리스도교적인 신이었음도 시사해 주었다. 세기적 대철학가 하이데거의 1933년의 행동을 <슈피겔>지는 비정치적 인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돌렸었다.

<申 一 澈>

야스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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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Jaspers (1883-1969)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 실존철학을 창시한 철학자.

오르덴부르크시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법학을 배웠으나 의학으로 옮겼다가 정신분석학, 심리학을 거쳐서 철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1913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 자격을 획득하고 1921년에 철학 정교수가 되었으나 나치스에 의해 1928년에 교수직에서 추방되었고 1945년 이후 복직되어 대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1948년에는 스위스의 바젤 대학으로 옮겨갔고, 1961년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병사했다.

<정신병리학총론>(1913)에서는 딜타이에 의해 발전된 '이해'의 개념을 정신병리학에 도입하여, 정신생활에 있어서 내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과 단순한 과학적 인과율에 의해 해명되어야 할 것을 날카롭게 구별하였다.

<세계관의 심리학>(1919)은 인간이 죽음에 직면한 상황을 비교 고찰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미 '한계상황(限界狀況)'의 사상이 싹터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죽음, 고뇌, 우연, 죄책(罪責), 투쟁 등 인간이 회피할 수 없는, 거꾸로 이것에 의해서 자기의 실존 앞에 마주 서게 되는 궁극적 상황이 해명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근대 실존철학의 최초의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 논리학>은 1947년에 제1권이 나왔으며 자연과학적 인식과는 확실히 구별되고 또한 그의 실존철학에 이미 나타나 있는 철학의 독자적 논리를 추구하였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1957년 이후에 출판되고 있는데, 철학을 서양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동양을 포함시킨 점에서 그의 이른바 '세계철학'의 의도에 있어서도, 또한 철학사 연구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야스퍼스의 활동은 전문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정치문제(예컨대 <전쟁죄책론(戰爭罪責論)> 1946), 대학문제(<대학의 이념> 1923-46) 등에도 관심을 가졌고, 신학과도 교섭을 가졌으며(<철학적 신앙> 1948, <니체와 그리스도교> 1946 등) 현대 서구세계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의 정신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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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精神的狀況 (1931)

이 책은 야스퍼스의 주저 <철학> 3권과 거의 동시에 출판됐으며 야스퍼스 철학의 문화평론적 표현이다.

'실존철학'이라는 말을 야스퍼스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사용하였으며 자기의 철학을 현대의 정신적 상황에 명백히 연결지어서 수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의 프랑스 혁명에 있어서 명확히 전환된 새 시대――이성에 의해서 인간의 현존재를 근저로부터 개조한다는 시대가 현대이지만, 한편으론 키에르케고르나 니체, 기타 많은 사상가에 의해 지적되고 있듯이 인간이 위협을 받고 불안과 허무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대이다. 이러한 인간의 위기는 근대로부터 현대에 걸쳐서 세계의 신신앙(神信仰) 상실이나 기술화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며, 인간이 이러한 변화 속에 완전히 매몰됨으로써 야기된 것이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상황을 근대사회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합리화' '기계화' '대중화' '평균화' 등의 프로세스에서 관찰하고 그 가운데서 인간이 존재를 박탈당하고 기능화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제1부에서 제3부에 걸쳐 가정생활, 노동, 기타 인간의 생의 모든 영역이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탁월한 광범성과 심각성으로써 분석·논술하고 있다.

제4부에서는 이와 같은 '가호(加護)가 없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현대의 사상·학문――마르크스 주의나 정신분석이나 종족론(種族論) 등――이 해결을 할 힘이 없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폭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철학으로서 '실존철학'을 주장하고 있다.

제5부에서는 인간이 단지 이러한 상황에 매몰되어서 자기상실의 상태에 떨어져 있지 않고 그 상황을 분명히 파악하여, 그 상황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상황을 변혁하고 인간 자신을 전취(戰取)하는 길을 추구한다. 그것은 기술화 해가는 사회의 방향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화시키는 것이며, 인간의 고귀함과 연대성(連帶性)을 회복하는 데서 수행된다.

이 책은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이 기술화·기계화·대량화의 기구 속에서 상실된 인간 자체를 회복한다는 현대사회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또 그의 철학에 대한 흥미있는 입문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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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 (1932)

야스퍼스의 주저로서 3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철학적 세계정위(世界定位)> <실존해명>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야스퍼스는 존재를 '객관존재' '자기존재' '즉자존재(卽自存在)'라는 3양태로 구별하고 이것들은 상호간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고 하며, 이러한 존재양식에 대응하여 고찰을 전개시키고 있다.

첫째 객관존재――존재를 우선 시간 공간적 대상으로서, 또 그 밖의 대상성(對象性)에 있어서 다양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탐구는 개별과학의 과제이다. 이 연구에서는 '개별적인 방식으로 거기에 존재하는 것'을 파악하지만, 그 통합성(統合性)이 명백해지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세계상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학적 세계 정위', 곧 참으로 철학이 세계 자체에로 자기를 방향짓는 것은 개별과학의 테두리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자기존재――'철학하는 것'(야스퍼스는 Philosophieren을 중요시한다)의 과제는 '실존해명'이다. '자기의 해명', 곧 우리들에 대해 객관적 대상으로서 결코 주어지지 않는 실존의 해명이 제2권의 과제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란 대상화되지 않는 자기 자체이며 그것은 확실히 확인되지만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행위에 있어서 처음으로 명백히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의 세계, 곧 참된 '실존'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대상적 세계를 탈각(脫却)한다. 이 세계에 사랑·불안·고독·사귐 등이 있다.

셋째 즉자존재――야스퍼스는 단순한 실존주의 철학에 머물지 않고 즉자존재 또는 '초월자'의 형이상학을 지향하고 있었다. 철학하는 것은 대상적 세계로부터 비대상적 즉자존재로 초월하는 것이며, 이러한 세계는 보통의 의미로서는 대상적으로 인식되지 않으나 역사 속에 '초월의 암호(暗號)'로서 나타나는 형이상학적인 지식을 내적으로 비추어 보려고 하는 시도가 된다.

이와 같이 철학하는 것은 일정한 체계적 학설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식을 근저로부터 변혁시키는 것이며, 인간의 존재방식의 전환이며 해방이다. 철학하는 것에 의해서 비로소 우리는 본래적인 것을 자각하고 객관존재의 세계가 투명해지고 근원적인 것이 각지(覺知)되는 것이다.

이성과 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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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性-實存 (1935)

야스퍼스가 1935년 네덜란드 프로닝헨 대학에 초청되었을 때 한 다섯 개의 연속 강의를 수록한 것이다.

첫머리의 한 마디, 곧 "이성적인 것은 비이성적이란 타자(他者)가 없으면 사유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실에 있어서도 이 타자가 없으면 이성적인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문제는 비이성적인 것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비이성적인 것이 남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이성적인 것은 어떻게 파악되는가,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책의 방향을 보여준다.

제1강―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의 이성의 입장에 선 철학사에 대해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실존적 사유의 의의를 대립시키고,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철학하는 활동의 가장 오래된 문제는 케에르케고르와 니체를 응시하면서 전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현대의 형태로 새로이 알린다"고 말하고, 그 사이에 서서 철학적 과제를 자각한다.

제2강―포괄자론(包括者論)에 있어서 포괄자가 철학 과제로서 파악될 때 이성과 실존이라는 인간존재의 양극(兩極)이 갖는 의의를 명백히 하고 "실존은 이성에 의해서만 내용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련에서의 이성과 실존은 각기 독자적인 논리와 해명을 가짐을 알 수 있다. 이성에는 '철학적 논리학'이 속하고, '실존해명'이 속한다.

포괄자론은 무엇보다도 철학의 내적 태도의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3강―이러한 새로운 철학에 의해 진리가 각지(覺知)되는 경우, 그 진리의 전달 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제4강―포괄자를 생각하는 이상, 생각하는 사유가 형식적으로는 우월하지만, 잘못해서 이를 공허한 논리학이나 절대지(絶對知)로 떨어뜨리는 위험성이 검토된다.

제5강―키에르케고르와 니체를 진지하게 생각하여 타개된 현대에 있어서 새롭게 철학하는 가능성을 실존이성적(實存理性的)인 관점에서 추구한다. 우선 철학적 논리학이 형식논리학이나 자연과학의 논증과는 다르다는 것을 기술하고, 실존철학이 영원한 철학의 전통에 이어지는 것임을 명백히 하며, 최후로 '철학적 신앙'을 주장한다. 이 책은 야스퍼스 철학의 개론(槪論)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마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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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 Marcel (1889-1973)

프랑스의 철학자·극작가·비평가.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콜라주 드 프랑스에서는 베르그송의 강의를 들었다. 1925년에 발표한 <실존과 객체성(客體性)>은 20세기 최초의 실존주의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자신은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르트르와 결부되는 실존주의라는 말을 싫어해서 자기의 입장을 즐겨 신소크라테스 학파 등으로 불렀다. 베르그송 이외에 셸링, 영국의 관념론자 브래들리, 로이스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구호원으로 종군하여 인간존재의 비극을 몸소 체험하고 추상적인 철학에 만족하지 못하여 1929년 가톨릭에 귀의했다.

사상적 작품은 에세이 이외에 많은 희곡이 있다. 또 사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바흐의 음악이라고 한다.

그의 철학은 한마디로 구체자(具體者)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에서 시작되는 근대적 자기 의식의 추상(抽象)을 배척하고 신체 속에 수육(受肉)되어 타자와 함께 있는 구체적 생활을, 통상의 대상화하는 반성과는 다른 '제2의 반성'에 의해 자각하면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존재에 참여하는 것이 그의 철학의 주제이다.

존재와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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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在-所有 (1936)

마르셀의 주저로, 제1부에는 1928-33년의 <형이상학적 일기>, <소유의 현상학 소묘>, 제2부에는 <현대의 비종교에 대해서>, <신앙에 대한 반성>, <피타부스트에 의한 경건한 마음>등의 논고가 수록되어 있다.

제1부의 일기에는 1929년 마르셀의 가톨릭 개종 시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사상 형성기의 중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소유의 현상학 소묘'에 나타난 이 책의 중심사상은 소유, 곧 '갖는다'는 것이 갖는 역설적 사태를 명백히 하고 있다. '갖는다'는 것은 물체가 특성을 갖는다는 식으로 전용될 수 있으나 본래는 내가 무엇을 갖는 것이며,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긴장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긴장에 있어서 자기 중심적으로 소유물에 집착할 때, 자기는 오히려 자기를 상실하고 소유물에 흡수되는 활력이 없는 것이 되는데, 거꾸로 창조적 활동에 있어서는 사물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소유는 초월되고 존재에로 고양된다. 존재는 소유되는 대상이 아니라, 특징을 밝히는 것도 문제로서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인간 자신을 기초지어 주는 신비라고 하며, 신비 앞에서 자신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존재의 신비 서설, 존재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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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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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Paul Sartre (1905-1980)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작가·비평가.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에 독일어 학자인 할아버지 서재에서 서적과 친숙해지면서 문필생활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1915년 앙리4세 학교에 입학했으며 급우(級友) 중에서 후의 공산주의 작가 폴 니장으로부터 청년기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1921년에 대학 진학, 에콜 노르말 슈베류스에게서 배우고 1929년에 철학교수 자격을 얻었다.

보부아르와 알게 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레이몽 아롱으로부터 독일의 현상학에 대한 계발을 받아 1933년 독일에 유학, 후설, 하이데거의 철학을 연구하였다. 1930년경부터 철학논문, <벽> <구토(嘔吐)> 등 소설을 발표하고 N. R. F.지에 많은 평론을 기고했다. 1939년의 독소불가침조약 체결과 함께 친구 니장은 프랑스 공산당을 탈당하고 됭케르크에서 전사했다. 사르트르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응소했으나 독일군의 파리 입성 직후에 포로가 되어 다음해 석방되자 메를로퐁티 등과 대독(對獨)저항 지하운동을 조직하였다. 1943년에 철학적 주저 <존재와 무(無)>, 희곡 <파리>를 출판하고 카뮈와도 알게 되었다. 파리 해방 후에는 교직을 떠나 <현대>지를 창간하고 실존주의 논진을 펴면서 소설·희곡·평론을 다수 발표했다.

반(反)스탈린 주의 입장에서 처음 공산주의자와 논쟁을 벌이고, 1948년 비공산당 좌파를 규합하여 정치결사를 조직했으나 다음해에 와해되었으며, 이때부터 효과적 정치를 구하여 공산주의자에게 접근하였으나 그 대신 카뮈와 결렬되고 메를로퐁티도 잃었다. 1956년의 스탈린 비판을 거쳐 헝가리 의거가 일어나자 그것을 지지하고 소련의 개입을 비판하였다.

프랑스 공산당을 비난했으나

비(非)스탈린화가 진전되자 대화를 회복하였다. 1958년에는 알제리 전쟁 반대 투쟁에 가담하였으며, 드골 내각의 성립시에는 그 독재적 성격에 반대하여 반체제(反體制) 입장을 관철하였다. 1964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되었으나 사퇴했다. 보부아르와 함께 자주 세계 각지를 방문하였다.

문학가로서의 사르트르는 처음에는 그의 작품 때문에 프루스트의 계승자, 미국 소설수법의 도입자, 또는 새로운 염세관을 표현한 자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른바 정치 참여 문학을 제창한 후에는 문학의 기능과 본질에 대한 사상적·이론적인 문제 제기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의 주장의 뉘앙스에는 변화가 보이며 예술의 독자성에 대한 성찰(省察)이 깊어졌다.

사르트르의 철학적 업적은, 그가 공부하던 당시에 프랑스를 지배하던 관념론적 합리주의의 추상적 사고에 저항하고 후설, 하이데거, 헤겔 등 독일철학의 섭취로 사상의 구체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 있다. 상상력(想像力) 등에 관한 초기 연구는 현상학적 심리학의 방법에 의해 신국면을 개척하였으며, <존재와 무>는 그 충격적인 문제의식과 체계적인 철저성 때문에 현대 철학의 하나의 경이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같은 파괴적인 기도(企圖)를 가한 책에 이어서 사르트르는 새로운 윤리학을 건설할 목적이었으나 현대 역사에의 참여가 심각해짐에 따라 처음의 구상을 단념하고 마르크스 주의에의 접근·동화(同化)의 방향, 또는 스탈린 주의적 경화(硬化)를 깨뜨리는 네오 마르크스 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변증법적 이성비판>은 개인과 집단과 역사를 매개하려고 한 노작이다.

상상력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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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像力-問題 (1940)

사르트르의 초기 철학서 중 하나로서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을 상상력 연구에 적용한 성과이며 근본사상이 이미 나타나 있다.

의식은 후설이 말한 것처럼 언제나 '무엇에 대한' 의식이며 지향적 대상(指向的對象)을 갖는데, 상상력이란 원리상 부재(不在)하는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며 비현실화하는 작용으로서 현실적 대상의 지각(知覺)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상상적 대상과 지각의 대상은 서로 다른 것을 배경으로 갖고 있다. 상상적 의식이 현실적 사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부재하는 대상을 현전화(現前化)하기 위해서는 현존(現存)하는 것과 거리를 갖고 그것을 일단 없는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각도 근저에 이러한 무화(無化) 작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서 이는 의식의 자유의 본질을 이루는 것 또는 의식 자체라고 사르트르는 생각한다.

그러나 비현실화하는 상상적 의식도 완전히 세계로부터 떠나서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상상적 대상을 지탱하는 아나로곤(類比物)이 필요하고, 이 세계를 부정하는 데도 특정한 관점에서 부정하며, 이러한 의미에서는 어디까지나 세계내 존재(世界內存在), 상황에 있어서의 존재이다. 의식은 비현실적인 상상적 대상에 스스로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고, 꿈은 이러한 종류의 의식생활의 전형이다.

이에 반해서 지각은 언제나 의식을 초월한 현실에 직면하고 무한한 학습을 요구한다고 하여, 이 점에서 현실적 생의 모랄이 예상된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예술작품의 본질을 비현실, 상상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구하고 예술가의 작업은 아나로곤의 제작에 있다고 한다.

존재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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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在-無 (1943)

사르트르의 <상상력의 문제>에서 보여준 대로 의식은 존재를 무화(無化)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대상을 의식하는 것은 암묵리에 그 대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서의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자기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 곧 대자존재(對自存在)라고 불리며, 사물처럼 의식을 갖지 않은 것은 그 자체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 곧 즉자존재(卽自存在)라고 불린다. 대자(對自)가 자유롭다는 것은 즉자(卽自)를 무(無)에 의해 침식하는 것이며, 대자는 즉자로부터 무에 의해 단절되어 있으므로 지탱이 없는 불안으로서 자기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불안을 피하기 위하여 대자는 자기 기만에 의해 지탱을 찾으려 하고, 즉자와의 일치를 바라지만 의식이 대자이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그 소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대자는 즉자와의 결여이기 때문에 충족된 전체, 곧 도달 불가능한 즉자를 가치로 삼고 이와 함께 나타나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자기를 투기(投企)한다. 대자의 투기에 의해 세계는 시간의 질서 밑에 나타나는데, 시간은 이미 끝나서 즉자가 된 과거와 대자 그 자체인 현재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라는 3차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근저에 있는 것은 바로 대자의 자유이다. 대자의 새로운 기도는 반성에 의해 자기와의 일치를 구하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일반적으로 반성하는 의식과 반성되는 의식의 분열을 일으키고 좌절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반성이 자기 기만적으로 즉자와의 일치를 구하는 불순한 그것이 아닌 순수하게 대자에 철저하여 자유로운 자기에의 전적 현전(全的現前)을 수행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이렇게 해서 근본적 회심(回心)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순수반성 또는 정화적(淨化的) 반성의 동기부여에 대한 연구를 과제로 남겼다.

그런데 반성은 스스로 타자가 되려는 의식이며 다른 의식의 존재를 예상하지만, 의식은 대자존재인 동시에 대타존재(對他存在)이므로, 인간은 자기에 대해서는 주체이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객체에 불과한 신체를 갖는 존재이며, 타인의 시선 밑에서는 그 주체성은 부정되고 자기에 속하는 세계가 상실되어 가는 것을 경험한다. 주체와 객체의 이러한 불일치를 피하려고 하는 대자의 기도는, 한편에서는 스스로의 주체성을 지워버리려 하여 사랑·언어·마조키즘의 동기를 부여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주체를 전멸시키려고 하여 무관심·욕망·증오·새디즘의 태도라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와 같이 의식 상호간의 관계를 상극적(相剋的)인 것으로서 복수의 인간의 협력관계가 성립하여 공동존재 내지 '주체로서의 우리'라는 경험이 생겨도 그것은 변하기 쉬운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집단이 타로부터 객체화되는 경우에는 '객체로서의 우리들'이라는 근본경험을 통해서 연대성(連帶性)이 탄생한다.

이렇게 해서 주체의 자유는 타의 자유에 의해 한계지어지지만 이 한계조차 자기의 책임하에서 초극하려 하는 데에 자유의 무한성·절대성이 인정될 수 있다. 대자의 자유로운 투기는 일반적으로 '갖는다' '한다' '있다' 중 어떤 양상을 가지며, 처음 두 가지는 결국 대자가 어떻게 '있는가'에 귀착하고 대자의 투기(投企)는 근본적으로 존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서 즉자적으로 존재하려고 하는 모든 기도는 좌절이 숙명적인 것이다. 인간의 기도에 있어서는 본원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으로부터 여러가지 2차적 선택이 파생·응결하지만, 이러한 의미를 소급해서 판독하고 근본에 숨겨져 있는 자유로운 동기부여를 이해시키는 것이 실존적 정신분석이다.

이것은 여러 가치의 원천에 자유가 있는 것을 보여주고, 모든 경우에 있어서의 인간 자신의 책임을 명백히 한다. <존재와 무>의 결론부는 도덕 문제에 대한 전망으로 끝난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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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存主義- (1946)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실존주의가 급속히 보급되었던 시기의 사르트르의 강연·토론을 수록한 것.

사르트르는 자기의 사상을 평이하고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근본적 주장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구 등 사물은 예정된 용도나 제조법, 미리 그 본질을 규정하는 개념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제작되고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데,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그 후에 자기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자기의 본질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이며 어떠한 기존(旣存)의 본질에도 기존의 가치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유롭게 선택함으로써 선택되는 것의 가치를 스스로 세우기 때문에 만인이 그것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신과 기성(旣成)의 가치가 없는 것은 인간을 절망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지만, 이것은 환상을 갖지 않고 행위의 전 책임을 인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사르트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미리 정해져 있는 보편적 본질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만, 인간이 세계 안에서 활동한 타인들 사이에서 살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등, 인간의 조건에 필연성·보편성이 있음을 긍정하고 여기로부터 인간의 모든 기도가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고 보며, 구체적인 보편성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물론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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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物論-革命 (1949)

<존재와 무>에 의해 철학적 기초를 확립한 사르트르가 스탈린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자와 대결하여 자신의 철학이 혁명의 철학이라고 규정한 책이다. '혁명의 신화' '혁명의 철학'의 2부로 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마르크스 주의자의 유물론, 자연변증법(自然辨證法), 모사설(模寫說) 등을 혁명의 신화로서 비판하고 있다.

제2부에서는 그의 철학에 있어서의 자기와 타자(他者), 주체·객체 관계에 입각하여 혁명적 실천을, 지배계급에 의한 억압·객체화(客體化) 밑에서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는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서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기를 해방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변증법적 이성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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辨證法的理性批判 (1960)

사르트르의 원저에 서설로 수록된 <방법의 문제>는 비스탈린화의 격동을 겪은 1957년에 발표된 것으로서 실존주의를 현대 철학인 마르크스 주의의 보충적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또한 사르트르는 역사적 인간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하여 보편적 계급과 개인의 매개를 소행적 분석(遡行的分析)과 전진적 종합에 의하여 재발견하는 방법을 제창하여 마르크스 주의 이론의 경화를 타파하려고 하였다.

본론은 변증법을 독단에서 구하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소행(遡行)과 전진의 방법에 의해 변증법적 이성의 자기 비판, 그 근거와 타당성의 의미·확정을 꾀하고 있다. 전체화(全體化) 운동으로서의 변증법은 인간의 실천에 있어서 명증적(明證的)으로 확인된다. 추상적으로 파악된 개인의 실천에서도 이미 욕구 수준에 있어서 유기체가 갖는 결여의 극복, 부정을 부정하는 전체화 작용이 인정되어 여기에 변증법의 원형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회는 희소성(稀少性)을 물질적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개인들의 실천은 상호간의 간섭에 의해 목적에서 벗어나고, 여기서 변증법 자체가 부정되어 사르트르의 용어에서 말한 반변증법(反辨證法), 또는 실천적 타성태(實踐的惰性態)에의 소외가 일어난다. 이 소외태(疎外態), 곧 자기의 타성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집단은 집합태(集合態)라고 불리며, 특정한 역사적 상황 밑에서 인간은 반변증법을 다시 부정하고 집단의 변증법을 구성하면서 자기를 회복할 수가 있다.

집단은 언제나 다른 집단 또는 집합태와 상호관계를 가지며, 그 자체가 집합태에의 변질을 피할 수 없는데, 사르트르는 이러한 착종(錯綜) 내에 성립하는 실천의 제 구조, 그 변증법적 상호관계의 가능한 각 경우를 추구하고 역사의 장(場), 가지성(可知性)의 조건 또는 틀을 설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행적 분석에 의해 도달되며 단지 공시적 구조(共時的構造)를 형식적으로 나타낼 뿐이고, 통시적 운동(通時的運動)으로서의 역사 자체의 전체화 작용을 종합적 전진에 의해 수립하는 것이 제2권의 과제가 된다.

메를로퐁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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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프랑스의 철학자.

에콜 노르말 슈베류르에서 배웠으며, 1930년에는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제2차대전 때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 1945년에는 <행동의 구조>, <지각(知覺)의 현상학(現象學)>을 박사논문으로 체출하여 일약 학회에서 명성을 얻고 리옹 대학과 소르본 대학, 콜라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했으나 급사했다.

사르트르의 <현대>지에 창간 이래로 협력하여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으나 이윽고 동지를 떠나 사르트르를 비판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 대한 사상적 영향은 후에 인정받았다.

그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 특히 생의 세계에 대한 후기의 사색을 발전시켜 행동의 구조와 지각세계의 연구로부터 출발하였으며, 관념론과 실재론의 전제를 모두 배척하고 관념으로도 사물로도 환원할 수 없고 인간적 실재의 이의성(二義性)을 조명하는 동시에 정치·역사·언어·예술 등 제 문제에 독특한 전망을 열려고 한 것이었다.

지각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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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覺-現象學 (1945)

이 책은 메를로퐁티의 철학적 주저로, 후의 정치·미술·언어 등 다방면에 걸친 사색은 주로 이 책에 기초를 두고 있다.

지각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세계내에서 대상을 발견하고 또한 타인과 자기를 인식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이 지각내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반성은 과학이 항상 전제하면서도 조명하지 못하는 지각적 의식의 원초적(原初的) 신념을 형성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재발견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심리학의 경험주의적·주지주의적 제개념을 비판함으로써 현상적 장(場)으로서의 세계에 되돌아가야 할 필요를 말하고 그 중심 인물을 이루는 자기의 신체에 대해 사물이라고도 관념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방식을 조명한다. 신체는 세계에 상주함으로써 습관적 층(層)을 침전시키고 행동의 자유로운 환경을 주는 것이지만, 예컨대 과거에 손이나 발을 절단한 사람이 상실한 부분에 아직도 통증을 느끼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습관적 신체는 물리적 실제도 아니고, 또 단순한 관념으로 해소되지도 않는다.

인간의 세계에 고유한 중후(重厚)함을 부여하는 것은 해방과 예속·진리와 오류의 가능성을 어느 것이나 나눌 수 없게 내포하고 있는 양의적(兩義的)인 신체의 존재이며, 지각의 해명은 여기에 조명을 비침으로써 자유 문제만이 아니라 의미의 침전으로서의 문화나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구체적인 취급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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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의 소설가·비평가·극작가.

알제리에서 태어났으며 알제 대학을 졸업하자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제2차대전 중에는 파리에서 항독 지하운동에 가담하고 해방 후에는 <콩바>지(紙)를 발간했다. 소설 <이방인>(1942), <페스트>(1947) 등의 명작을 발표하였고, <시지프의 신화>(1942), <반항적 인간>(1951) 등의 이론적 저작에서 이른바 부조리(不條理)의 철학을 주장하고, 수많은 소설·희곡·비평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사고로 사망하였다.

처음 사르트르와 협력관계에 있었으나 <현대>지의 좌익노선과는 <반항적 인간> 이후로 결렬하여 사르트르와 논쟁을 일으켜 화제를 모았다. 사상적으로는 부조리를 이겨내는 반항과 연대(連帶)의 모랄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후에는 혁명적 정치운동 속에서 니힐리즘으로부터 생기는 악을 규탄하고 과격을 배척하는 중용(中庸)의 모랄을 주장하게 되었다.

제2차대전 후에는 실존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으나 그의 사상은 실존주의 이론면에 특유했던 후설 이후의 현상학적 철학과는 ―― 사르트르의 현상학적 철학도 포함해서 ―― 그다지 깊은 연결을 갖지 않았던 듯하며, 오히려 고전적인 유럽 사상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휴머니즘 색채가 짙다.

만년의 카뮈는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게 되었고, 알제리 전쟁에 대한 태도도 선명하지 못했다.

반항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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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抗的人間 (1951)

이 책은 카뮈의 이론적 저작으로서 전작인 <시지프의 신화>로부터의 발전을 보여주고 동시에 유럽 사상의 변천을 개관하여 현대세계의 인간의 존재방식을 논한 문명비평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인간의 조건의 부조리성, 곧 행동을 인도하는 형이상학적 근거로서의 가치기준의 부재를 인정한 카뮈는, 부조리 가운데서 절망을 견디는 생을 긍정하고 자살과 살인을 동시에 배척하는 생의 연대에서 모랄을 구했으나, 이 책에서는 우선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方法的懷疑)처럼 일체를 백지로 돌리는 부조리의 경험을 통해서 이에 대한 반항을 최초의 명증(明證)으로 세운다. 반항이야말로 최초의 가치원천으로서 주인에게 반항하는 노예는 인간의 권리를 요구하고 주인으로서의 주인을 부정하지만, 이 부정에는 원래 긍정해야 할 것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만일 반대자가 긍정과 부정의 긴장에 지쳐서 인간의 조건 자체를 전적으로 창조하려고 하면, 그것은 형이상학적 반항이 되고 여기에서 니힐리즘이 시작된다. 이것은 근대의 제 사상과 함께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역사에 있어서는 전체성(全體性)을 요구하는 혁명내에서 논리적 귀결을 발견한다. 카뮈에 의하면 마르크스 주의도 모든 공포정치와 마찬가지로 예언적 교의(豫言的敎義)로서 살인을 정당화하게 되었는데 그 유래는 한계를 넘은 전적 부정, 곧 니힐리즘에 있었다. 창조적인 반항이란 한계를 자각하는 것, 중용의 옹호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자각이 카뮈가 말하는 '정오(正午)의 사상'인 것이다.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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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e de Beauvoir (1908-1986)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사르트르와 나란히 제일선에서 활약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파리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시몬은 남자의 두뇌를 갖고 있다"고 아버지는 평하였다.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들어가서 사르트르를 알게 되어 일생을 같이하는 연인 사이가 되었으며 함께 사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발표하여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제2의 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소설 <르망다랑>으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녀의 사상은 실존주의적 자유를 구하는 사르트르와 공통된 것이다. 특징은 여성론에 나타나 있다. 여성론에는 현실에 대한 생생한 직관력의 선명함,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행복에의 추구가 있다.

제2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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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性 (1949)

보부아르는 자서전을 쓸 예정이었으나 자기를 말하려면 '여자라는 조건을 전반적으로 다룰'필요를 느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녀 자신은 여자라는 데서 부자유를 느껴보지 못한 여성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여성론은 여성이 쓴 책에서는 드물게 보는 객관성을 갖고 있으며, '제2의 성'은 두번째의 종속적인 성=여자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여자는 이와 같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보부아르는 말한다.

"내가 주장한 것은 양자의 차이(제1의 성과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의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유년기부터 노년기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말할 생각이었다."

여자의 비자유·비인격적인 상태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반드시 다시 변경시킬 수 있다고 하는 부인해방의 이론서이다.

참된 여자다움은 여자가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획득할 때에 생기고, 전반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이외의 길이 없다고 주장하며, 지금까지의 부인해방 이론에 비해 구체적인 '여자'를 이론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 탁월한 책이다. 세계 각국의 인텔리 여성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