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서양의 사상/근세의 사상/근세의 사상〔槪說〕

서양 근세의 시작은 엄밀히 말해서 1453년 5월 29일 아침 해가 돋을 때(터키가 콘스탄티노플시(市)를 함락시켜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때)부터이거나, 혹은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한 1492년 10월 12일 오전 2시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은 1500년부터 근세의 시기가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근세는 중세와 구별되는 새 시대를 지칭하는 말이고, 이 새 시대가 지녔던 사상이 근세사상이다. 근대화(modernization)는 우리 국민의 한 표어일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지배적인 말로 되어 있으나, 다름 아닌 근세사상의 이해·수용·생활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근세사상의 내용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⑴ 근세사상은 중세의 법왕권(法王權)에 맹종하지 않고, 문화의 환속(還俗, secularization)을 주장한 휴머니즘 사상이다. 신본적(神本的)이 아니라 인본적(人本的)인 인간성의 해방·개척·발휘를 노렸던 것이 근세사상의 기조(基調)였다. 사람다운 인간성에 착안한 근세의 휴머니즘 사상은 저 세상의 하나님을 신앙하여 이 세상과 세상의 현실을 기피함으로써 생기는 절망·체념·무위의 소극적 생활태도를 폐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개인의 양심적 신앙을 반드시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휴머니즘이 그 어떠한 종교적 신앙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신앙은 법왕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요, 한갓 피안의 세계를 갈구하는 것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이 세상의 구제와 정의(正義)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 ⑵ 근세사상은 민주와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다. 전자에서 평등한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려는 인민 주권 사상의 이상과 유사한 것으로, 국민 다수에 의한 결정권을 내세운 것이다. 후자, 즉 자유는 개성의 구속 없는 발휘를 도모하고, 이에 따른 개인 능력의 차이를 시인한 것이다. 인권의 평등에서 다수자의 결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개성의 자유로운 발휘에서 소수자의 특이한 재능을 시인하는 자유주의는 서로 모순되고, 그러므로 양자는 서로 제휴하지 못할 성싶다. 그러나 양자는 봉건주의라는 공동의 적(敵)과 대결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고, 이런 처지에서 양자는 서로 협력하여 입법적인 의회주의(議會主義) 정치제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정치의 의회주의화(議會主義化, parliamentation)는 왕과 귀족의 특권에 항거한 시민계급의 융성을 초래하였다. ⑶ 근세사상의 셋째 내용은 기술과 생산을 조장하는 산업주의이다. 근세 이전의 전통사회를 기술 이전의 사회라고 한다면, 근세사회는 무엇보다도 기술과 기계적 생산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술과 기계적 생산의 사회적 과학적 지성과 합리적·비종교적 생활을 존중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근세사상인 산업주의화(industrialization)가 인류의 생활 향상에 기여한 공적은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중세식의 농업경제와 수공업 경제를 지양(止揚)해서 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형성하였다. 현대의 고도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계층간의 빈부 격차를 심하게 한 폐해를 가지고 있으나, 근세의 기원적 자본주의는 단순한 영리(營利) 충동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인의 평등한 복리를 위하는 윤리정신과 과학적인 합리정신이 엄연히 있었다. ⑷ 넷째로 개인주의 사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개인주의라고 할 때에 그것을 이기주의와 혼동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개인주의는 사회적 공동생활을 인정하고 그런 사회 안의 개인으로서 개인이 부담하는 책임의식과 책임적 행동에 투철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기주의는 사회적 연대(連帶)를 무시하고 그런 사회 안에 사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며(아니 고의로 인식하지 않으며), 자기 외의 타인의 욕망이나 이익을 돌봄이 없이 자신의 힘만을 부리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기주의자는 비사회적 자유만을 누리려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근대화한 국민이란 다시 말하여 일찍이 개인주의화한 국민이다. 반대로 전근대적인 국민은 개인주의화하지 못한 국민이요, 자율적 책임의식 없이 대가족·씨족·조상 내지 사주팔자에 매달려서 살려고 한 국민이다. ⑸ 다섯째로 민족주의 혹은 국민주의가 근세사상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근세의 구미인은 국민주의로써 법왕의 보편적 교권제도(hierarchy)에 대항해서 특수적 국민국가를 세웠고 그래서 국민문화를 발달시켰다. 이미 진술한 휴머니즘 사상·민주와 자유·산업주의·개인주의 등이 근세사상의 특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국민주의의 대지주(大支柱)와 함께, 또 국민주의의 대지주를 통해서 고조되고 실현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국민주의가 외국에 대해서 자국 주권의 독립을 주장함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은 또한 민족 고유의 문화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국제적인 문화교류를 도모하는 것이다. 근세 이후로 등장한 국민주의가 후진의 약소국 및 약소민족에 대해서 침략적 제국주의로 활동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원칙상의 국민주의는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국제 협동주의요, 또 협동주의라야 할 것이다. <崔 載 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