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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소승
편집大乘·小乘
대승은 커다란(뛰어난) 승용물(乘用物 : 가르침)을 뜻하는 마하야나의 번역어이며, 반대로 소승은 조그마한(뒤떨어진) 승용물의 뜻인 히나야나의 번역. 불교는 불타가 입적한 후 그 교설의 전승(傳承)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불교로부터 그 정리·해석을 위주로 하는 부파(部派) 불교로 발전했으나, 이러한 불교가 복잡한 이론으로써 자기 혼자만의 해탈(解脫)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르침이었음에 반대하여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구제를 이상으로 하고 대중 속에 적극적으로 작용하여 자리(自利)와 함께 이타(利他)를 설법하는 보살의 가르침이 차차 융성해졌다.
그리하여 이 실천의 뒷받침이 되는 반야(般若)·법화(法華)·화엄(華嚴) 등의 경(經)이나 <중론(中論)>·<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이 작성되었다. 그때 후자의 교도는 자기들의 가르침이 대승이라 자칭하고 전자를 소승이라 하여 경시했다(소승에 속하는 현재의 스리랑카·버마·태국의 불교도는 결코 가르침을 소승이라 하지 않는다). 중국·한국·일본·티베트에서는 대승이 매우 발전했다.
공
편집空 '공허(空虛)'를 의미하는 범어 '슈냐'의 역어(譯語). 불교를 일관하는 기본적인 교리이며 특히 대승불교에서 여러 가지로 설명되지만 허무적(虛無的)인 뜻으로 이해하는 것을 강력하게 배척하고 있다. 대체로 자기의 존재까지 포함한 모든 존재(法)는 인연(因緣)에 따라 생기(生起)한 것, 즉 연기(緣起)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항상불변(恒常不變)한 자아(自我)나 실체(實體) 같은 것은 없다. 때문에 모든 것은 '공'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을 관조하는 것은 연기를 보는 것이며, 또한 진실한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대승(大乘)에 있어서 실천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특히 대승경전 속의 <반야경(般若經)>과 이에 입각한 용수(龍樹)의 <중론(中論)>에서 명백하게 밝혀 두고 있다.
무아
편집無我
범어로 아나트만 혹은 니르아트만의 번역어로 '비아(非我)'라고도 한다.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처음에는 자기나 자기 소유물을 자기 것으로서 집착함을 금하는 실천적인 입장에서 주장되었으나, 후에는 영원독립이며 주재적인 자아(아트만)의 실재를 주장하는 바라문 교학에 반대하여 사람은 5온(五蘊)의 집합이요, 생명의 주체는 없고 또한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써 생긴 것이며 고정적인 본성은 없다고 하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게 되었다.
법계
편집法界
범어 다르마다투의 역어. 부파불교에서는 의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물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법을 모든 존재·현상으로 해석하여 모든 존재를 포함한 세계, 온갖 현상의 집합으로서의 우주를 뜻하며, 또한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양상, 즉 진여(眞如)까지도 뜻한다. 대승불교 가운데에서도 특히 화엄종에서는 법계를 연기의 세계라 하고 밀교(密敎)에서는 법계를 영원의 이법(理法)과 동일시하고 있다.
윤회
편집輪廻 범어인 산사라의 역어인데 윤회전생(輪廻轉生)·생사유전(生死流轉)이라고도 한다. 마치 수레바퀴가 회전하여 멎지 않는 것처럼 중생이 번뇌와 업(業)으로 인하여 길 잃은 세계, 즉 3계(俗界·色界·無色界) 6도(六道, 地獄·餓鬼·畜生·阿修羅·人間·天)에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또한 죽음이 끝없는 일을 말한다. 이 괴로운 존재에서 벗어나는 경지가 열반(涅槃)이다. 윤회에 대한 고찰은 인도 사상의 현저한 특색으로 되어 있으며, 불교 역시 이 영향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인과
편집因果
원인과 결과. 불교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고 하므로 인(因)과 과(果)라고 해도 결코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시간적·이시적(異時的)인 인과관계에서는 어떤 결과가 곧 인(因)이 되고 다른 과(果)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며, 공간적·동시적(同時的) 인과관계에서 인은 동시에 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걸쳐서 이어져 있다.
이 원리를 우리 자신에게 해당시킨다면 자기라는 것은 결코 불변(不變)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우연히 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노력으로써 진보, 발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악의 행위에 따라 고락(苦樂)의 결과가 온다고 하는 인과응보의 도리를 무시해서는 윤리적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연
편집因緣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인 직접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이를 돕는 외적이며 간접적인 원인을 연(緣)이라 하나, 일반적으로는 양자를 합쳐 원인의 뜻으로 쓴다. 불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써 생겨나고 인연으로써 소멸하는 연기의 이법을 깨우쳤다고 하며 <아함경(阿含經)>에서는 인간이 미망(迷妄)과 고통의 존재임을 12인연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부파불교에서는 12인연을 우리의 윤회 과정에 해당시켜 해석하고 있다.
색
편집色 범어로 루파의 역어. 넓은 뜻으로서는 물질적 존재, 즉 변화하고 파괴되고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것과 상용(相容)되지 않는 것의 총칭이며, 좁은 뜻으로는 눈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속성, 즉 빨강이니 파랑이니 하는 '색깔'과 장단방원(長短方円) 등의 형체를 가리킨다.
무상
편집無常
범어 아니토야의 역어. 불교의 근본교의를 나타내는 3법인(三法印)의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즉 모든 것은 생멸변화(生滅變化)하여 변천해 가며 잠시도 같은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꿈이나 환영이나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한다.
진여
편집眞如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하는 범어 타타타의 역어.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무상(無常)·무아(無我)이다. 즉 모든 사물은 연기(緣起)의 존재일 뿐이다. 원시 불교에서 진여는 이 연기의 이법(理法)이 영원한 진리를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현상세계 그 자체, 또는 모든 현상적인 차별상(差別相)을 초월한, 절대의 세계나 우주 진리의 인격화된 법신(法身)의 본질을 뜻하게 되었다.
진제
편집眞諦 승의제(勝義諦), 또는 제1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하며 이에 대한 속제(俗諦) 또는 세속제(世俗諦)와의 양자를 합쳐 진속이제(眞俗二諦)라고 한다. 제(諦)란 진리를 뜻하나 속제가 세상의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진 도리임에 대하여 진제는 불교를 깨우친 사람들에게 알려진 4제 등의 진리를 말한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속제가 우리의 언어나 사상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며, 진제는 이를 초월한 공(空)의 진리로서, 더구나 속제에 의해서 진제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반야
편집般若 범어의 프라주나의 음을 딴 말로서 '지혜'라 번역된다. 모든 사물이나 도리를 명확하게 뚫어보는 깊은 통찰력을 말한다. 초기 불교에서도 제법무상·고(苦)·무아를 반야에 의해서 안다고 주장하나, 대승에서는 보살이 수(修)하는 6바라밀(六派羅蜜)의 마지막에 반야바라밀로 설법되고 다른 5바라밀의 근거로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반야는 제불(諸佛)의 어머니라 불리며, 이러한 것은 많은 <반야경전>을 비롯한 대승경전이나 논서(論書)에 널리 강조되고 있다.
중생
편집衆生
범어 사트바의 반역어로 유정(有情)이라고도 한다. 모든 삶을 누리는 생류(生類)를 가리키며, 초목이나 흙·돌 같은 비정(非情)에 대하여 인간을 비롯한 의식감정을 지닌 생물을 말하고, 특히 미망(迷妄)의 세계에 있는 것의 뜻으로 쓰인다.
5욕
편집五慾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根, 즉 눈·귀·코·혀·몸)의 대상(五境, 즉 色·聲·香·味·觸)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다섯 가지 정욕(情慾)을 말한다. 색욕(色慾) 내지 촉욕(觸慾)을 말하지만 또한 5경(五境)도 그 자체는 욕(慾)이 아니나 사람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5욕 또는 5욕락(五慾樂)이라 한다. 이런 경우에 욕은 범어로 카마그나를 번역한 것이 된다. 그리고 별도로 재욕·색욕·음식욕·명예욕·수면욕의 다섯 가지 욕망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업
편집業 범어 카르마의 역어로 행위나 의지에 의한 심신의 활동을 뜻한다. 이 업에는 일종의 잠재적인 힘이 따른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시간적인 인과관계를 적용, 선악의 업에는 반드시 거기에 상응(相應)된 고락의 인과(이숙<異熟>이라고도 한다)를 받는다는 것이 인과응보이며, 또한 이 업의 총체로서의 자기가 과거에서 미래로 전변(轉變)하는 것이 윤회 사상이다. 업의 분류에서 대표적인 것은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이란 3업이 있으나 이 밖에도 매우 상세한 분류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명
편집無明
범어 아비드야의 번역어로서 명지(明知)가 없는 것, 즉 진실한 도리를 깨치지 못하고 사물에 통달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12연기(十二緣起)의 최초에 두는 것처럼 우리의 미고(迷苦)라는 존재의 근본이라 하였으며, 불평 불만의 형체로 나타나서 갈애(渴愛)와 표리의 관계를 이룬다.
행
편집行 범어 산스칼라의 역어. '만드는 것'과 '이변(異變)하는 것'의 뜻이 있다고 하며, 12연기(十二緣起)의 제2행(行)은 전자, 즉 업(業)의 뜻이고, 제행무상이라고 할 때에는 후자, 즉 모든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수행(修行)이란 뜻에서의 행은 그 원어가 다르다.
귀의
편집歸依
불(佛)·법(法)·승(僧)에 귀투(歸投)하여 믿음에 몸을 맡기고 신앙함을 말한다. 이를 3귀의(三歸依)라고 하며, 불교신앙의 전부를 나타낸다. 그리고 귀명(歸命)은 범어 나마스의 역어로, 그 음을 따서 나무(南無)라 하는데, 이는 귀의한 마음을 말로 나타낸 것이다.
일념삼천
편집一念三千
천태종(天台宗)의 중요한 교의. 범부(凡夫)가 실제로 갖는 미망(迷妄)의 일념 속에 우주의 모든 사상(事象)이 갖춰져 있음을 말한다. 3천이란 우주의 제상(諸相) 전부를 수(數)로 나타낸 것이며, 지옥 내지 불(佛)의 10 경계가 각각 10계(十界)를 갖추기 때문에 백계(百界)이며, 이것들이 <법화경>에서 설법하는 십여(十如)를 갖추기 때문에 천여(千如)이다. 이것을 중생(衆生)·국토(國土)·오음(五陰)의 삼세간(三世間)에 배치하면 삼천세간이 된다. 일념삼천이란 실천 형식을 통하여 모든 사물의 진실한 모습, 즉 진여(眞如)를 깨달은 것이다.
지관
편집止觀
지(止)는 범어의 샤마타, 관(觀)은 비파슈야나의 역어이다. 지는 모든 망념(妄念)을 그치게 하여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기울이는 것이며, 관은 지로써 얻은 명지(明知)에 의해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말한다. 즉 선정(禪定)과 지혜에 해당되며, 양자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 같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고 계(戒)와 아울러 불교도의 중요한 실천 항목이다. 특히 중국의 지의는 <마하지관>을 저술하여 지관을 상세히 분류, 고찰하고 있다
바라밀
편집波羅蜜
범어 파라미타의 음을 딴 말로 도피안(到波岸)·도(度) 등으로 번역한다. 미망과 생사의 차안에서 해탈, 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것. 또한 그 때문에 보살이 수(修)하는 행(行)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야경전>에서 설법하는 6바라밀(六波羅蜜), 즉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여섯을 말하며, 마지막의 지혜 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라고도 하여 다른 다섯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6바라밀에 방편(方便)·원(願)·역(力)·지(智)의 넷을 더한 10바라밀이나 그와는 별도로 4바라밀 등도 설법되고 있다.
해탈
편집解脫
범어 비모크샤·비므크티의 번역어로 풀려서 놓이게 됨을 말한다. 즉 번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미망의 고(苦)를 벗어나 자주적이며 자유로운 생활을 획득하는 것. 이리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열반(涅槃)이다.
열반
편집涅槃
범어 니르바나의 음을 딴 것으로 적멸(寂滅)·멸도(滅度) 등으로 번역된다. 불어서 끄는 것, 또는 불어서 꺼진 상태라는 뜻이다. 불타는 번뇌의 불을 꺼서 깨우침의 지혜를 완성하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함에 놓임을 말하며 불교 실천에서 궁극적인 목적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제행무상·제법무아(諸法無我)·일체개고(一切皆苦)와 함께 불교에서 내세우는 네 가지 주제라고 하겠다. 소승불교에서는 열반을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육체를 지니면서도 번뇌를 끊었을 경우――과 무여의 열반――육체도 소멸했을 경우――로 나누며,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에 적극적인 의의를 주어 앞서 말한 두 열반에 덧붙여 모든 것이 진여적멸(眞如寂滅)이라 하고 본래의 자성청정(自性淸淨) 열반을, 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생사에도 머무르지 않고 열반에도 살지 않는 무주처(無住處)를 설법하고 있다.
피안
편집彼岸
미망의 생존인 이(此)세계, 즉 현세(現世)를 차안(此岸)이라 하고, 깨우침(悟)의 세계를 피안(彼岸)이라고 한다.
말법사상
편집末法思想
불타의 멸후(滅後), 사람들의 기근능력(機根能力)은 차차 저하하고 그 교설이 올바르게 행해지지 않게 된다는 역사관에 의해 시대를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의 3시(時)로 나눴다. 정법이란 교설(敎)과 그 실천(行)과 그 증과(證果 : 證)의 셋이 모두 갖춰진 시대, 상법(像法)이란 교(敎)와 행(行)뿐으로 증(證)이 없는 시대, 말법이란 교(敎)뿐인 시대가 되어 각각 5백년, 1천년, 1만년을 계속한다는 설이 대표적. 말법(末法) 후에는 교(敎)도 없는 법멸의 때가 온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도작(道綽)이나 선도(善導)가 말법에 들어갔음을 시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