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현대사회의 대중과 사상/현대의 농촌/농촌사회의 특질

농촌사회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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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村社會-特質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주체로 하고 있는 농촌사회는 농업생산이 토지와 연결이 강하고 공업 등에 비하여 자연에 지배받기 쉽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농업의 특징으로 인해서 농촌사회는 도시에 비하여 이동성(移動性)이 적고, 따라서 농민들 간에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경작지(耕作地)가 없으면 농업생산을 할 수 없다는 일면과 농민들 간에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다는 일면이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농민이 형성하는 커뮤니티는 도시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소규모의 것이다. 커뮤니티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지만, 농촌사회는 규모가 작고 서로 밀접한 연결을 갖는 집단으로서 농가가 수십호 정도 모여 거주하는 촌락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촌락은 단순히 농가가 모여 살고 있는 지역적인 단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역내의 농가들은 생산면에서나 생활면에서나 긴밀한 연관을 갖는 촌락이 하나의 사회생활의 단위가 되어 있다.그것은 생산면에서나 생활면에서 농가가 협력할 때에는 촌락을 단위로 해서 행하는 일이 많고, 또 농촌은 도시의 생활과 같 이 각각 기능에 따라 그 사회생활이 행해지는 규모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언제든지 같은 사람들이 협력하여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생긴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은 서로 이웃 사람들의 생활의 사소한 점이나 그 성격까지도 잘 알고 있어 매우 친밀한 감정을 갖게 되는 반면, 때로는 귀찮을 정도로 긴밀한 사회생활이 행해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교제가 이와 같은 특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래자(外來者)에 대해서는 반대로 배타적이고 경계적인 태도를 취하는 면이 적지 않다.이러한 점에서 농촌사회는 폐쇄적이라든가 전통적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나, 그 형태는 농업생산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변화해 감에 따라 변해가고 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노동시장의 관련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따라서 농촌사회의 특질도 그 역사적·지역적인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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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

지역사회라고 번역될 경우가 많으나 어떤 범위의 공간적인 결속(結束) 단위가 여타 지역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질을 가지고 있을 때 그 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의 촌락은 폐쇄적인 결속을 갖는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으나, 현대의 촌락은 상품의 유통, 통근 등의 노동력의 유통, 기타 사회생활 면에서의 여러 가지 기능 충족을 위한 교류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보다 넓은 지역과의 연결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농민의 입장에서는 촌락이 하나의 커뮤니티일 뿐만 아니라 행정상의 읍(邑)·면(面)의 결속이나, 중심이 되는 읍(邑)과의 연결에 의해 이룩되는 상업권(商業圈) 등의 범위도 커뮤니티라고 말할 수가 있다. 오늘날 농민은 여러 가지 규모의 중첩된 커뮤니티 속에서 살고 있다. 원래 커뮤니티라는 말은 지역적인 결속 뿐만 아니라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일체성도 의미하고 있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그러한 측면이 희박해졌다.

농촌의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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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村-近代化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상품교환에 입각해서 경제생활이 영위되고 있지 않았으며, 당시의 농민들은 자급자족적(自給自足的)으로 농업생산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의 촌락은 촌락공동체로서 자급자족적인 사회생활의 단위라는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농민은 공동의 산림이나 채초지(採草地) 등을 이용하고 마을 사람들의 협력으로 관개(灌漑)를 위한 시설을 관리하거나 촌락공동의 토지를 이용하면서 생산을 하는 동시에, 일상생활의 의례(儀禮)나 종교적인 행사 등에 이르기까지 마을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협동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마을에는 자연히 생산이나 생활방식에 있어서의 협동을 목적으로 하는 결정사항이 만들어지고 관습적으로 그것이 지켜지게 되었다. 이 결정사항은 기본적으로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비록 낮은 수준이나마 그런대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농민의 생활을 여러 면에서 규제하여 농업생산의 새로운 발전을 제약하는 역할을 해왔다.도시의 공업발전에 자극되어 농업이나 축산업의 발전이 촉진된 한편, 농촌에서는 종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해 온 토지의 사유화와 급속한 계층분화(階層分化)가 진전되었다. 영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었던 인클로저(enclosure)운동이 행해진 결과 한편에서는 대량의 임금노동자가 생기고 다른 한편에는 종래의 영세한 자급자족적 농업경영이 대규모의 자본제적 농업경영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의 성립에 따라 농업의 근대화가 이룩되어 간다.근대화 과정에서 폐쇄적이고 자급자족적인 촌락공동체는 해체되지만, 자본제적 농업이 행해지고 농가의 계층분화가 진전된다고 해서 모든 농업경영이 자본가적인 대규모 경영형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자본주의화에 따라 대규모의 백화점이 생겨난 반면에 소규모 개인경영의 상점도 많이 있듯이 가족경영의 농업이 다수 잔존한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촌락이 만들어지게 된다.그러나 이 경우에는 촌락공동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공동체 규제(規制)는 모습을 감추고, 보다 자유로운 연관을 갖는 커뮤니티가 생기며 농가와 도시와의 연결도 증대한다. 이것이 근대적 촌락이라고 할 수 있다.공업이 자연조건을 점차로 극복하고 있는 데 대해 근대사회에 있어서의 농업은 아직도 자연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공업은 점차로 대규모의 경영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으나 농업의 경우에는 자본가적인 대경영이라고 해도 자본이나 노동자의 규모에서 본다면 공업의 중소기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점차로 경영의 발전이 곤란하게 되고 계층분화의 진전도 어려워지게 된다. 소위 농업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이에 대해 계획경제를 추진하는 사회주의체제 하에서는 토지의 국유화 내지 공유화라는 이름 아래 공동경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물론 거기서도 정도의 차이로 그 형태에 따라 사적(私的) 경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이전의 가족경영적인 농업은 모두 집단농장으로 바뀌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도 농업은 자연의 지배를 받으므로 계획화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어 사회주의 경제의 큰 모순점이 되고 있다.

촌락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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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落共同體

원시공동사회에 있어서는 토지가 촌락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되어 있었으나, 사유재산제의 발달에 따라 사유지가 형성되었다. 촌락공동체란 이와 같이 한편으로는 사유지를 가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의 토지에 의한 생산활동을 빼놓을 수 없는 상황하에서의 촌락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근대에 있어서는 농가가 각기 자립적으로 생산을 행하고 공동체가 소유하는 토지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됨으로써 공동체의 해체가 진전된다. 흔히 근대사회에 있어서 주체적인 개인이 탄생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의 하나는 바로 공동의 토지 소유와 그에 입각한 공동체 규제를 특징으로 한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공동체가 소유하는 공동의 토지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농지소유에 있어서 일시적이고 일정 기간마다 바꾸어지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영구적일지라도 그 토지를 경작에 적합하도록 유지 관리할 때 공동노동을 한다는 점에서 공동의 토지로 간주되는 형태가 있고, 또한 모든 토지는 국왕(國王)의 것이라는 왕토(王土)사상에 근거한 형태 등도 있다.

공동체적 도덕의 2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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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同體的道德-二重性

자급자족적이고 폐쇄적인 촌락공동체 속에서는 그 구성원 사이의 행동방식을 규제하는 도덕·윤리와, 구성원이 아닌 마을 외부에 대한 행동을 규제하는 도덕·윤리가 매우 판이한 형태를 보인다. 공동체 내에 대한 대내(對內)도덕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비록 낮은 수준이나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기저(基底)로 한 평등성이 원칙이 된다. 또한 사소한 금전문제는 따지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으나, 외부에 대한 대외도덕은 폐쇄적인 것을 특질로 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적대적(敵對的)인 태도를 갖게 된다.따라서 이와 같은 윤리의 2중성을 배경으로 하여, 공동체의 외부와 상거래(商去來)를 할 때에는 가능한 한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수단을 취하는 것도 불사하려는 태도가 생긴다. 그러나 상품경제가 경제활동의 전 영역을 차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도덕의 2중성이 타파되고 합리적인 영리추구의 사고방식이 형성된다.

농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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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業革命

자본주의의 성립 과정에서 추진된 농업경영에 있어서의 큰 변혁을 통틀어 농업혁명이라고 한다. 이 혁명이 전형적으로 진전된 것은 영국이었다. 우선 15-16세기에 목양업(牧羊業)의 발전을 위해 촌락공동체의 공유지나 영세농의 경작지 등이 통합되어 대규모의 목양경영이 형성되었다. 이어서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윤작(輪作)방식의 확립과 농기구의 개량에 의해 농업생산력이 상승되고 자본제적 농업경영이 형성되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혁명은 농촌의 계층분화를 급속하게 진전시켜 농업으로부터 쫓기어 도시로 유출하는 노동자를 낳게 하였다. 그러나 영국보다 늦게 자본주의를 확립한 나라에서는 농업혁명이 순조롭게 진전되지 못하였다.

미국의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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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農村

오늘날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의 대표적인 위치에 있는 미국의 농업은 봉건적인 유물(遺物)을 제거하고 자본주의적 발전을 추진해 온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도 남부와 북부를 비롯한 지역적인 차이가 현저하였고, 남부에서는 노예제에 입각한 면작(綿作)경영에 의해, 북부에서는 자작적(自作的)인 가족경영에 입각한 곡작(穀作)경영에 의해 각기 발전이 진행되었다. 현재 농업생산액의 면에서는 대규모의 자본제적 농장의 비중이 전생산액의 반을 넘고 있으나 농장의 수에서 본다면 90%까지가 가족경영으로 영위되고 있다.이들 가족경영적인 농장은 영국에 있어서의 자본제적 경영의 전개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주정착(移住定着)이 진행되어 왔으므로 각기 독립된 생활의 단위로서 분산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아시아와 같은 집촌(集村)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농촌지대에 산재하고 있다. 농가 상호간의 연결도 훨씬 희박하며, 상거래 등 일상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중심 시가지를 포함해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이것이 생활상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회주의적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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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主義的農場

사회주의체제하에서는 집단농장을 중심으로 해서 농업이 형성되어 있다. 소련에서는 혁명 후 농업 기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공업의 발전과 농업협동조합의 조직화를 이룩하고, 1925년의 당대회 이후 영세적인 농업경영의 극복과 부농(富農)의 박멸(撲滅)을 목적으로 한 집단농장(콜호즈, kolkhoz)의 건설을 추진해 왔다. 콜호즈 중에는 도즈(토지협동경작조합), 알테리(농업생산협동조합), 고므나(생산소비공산자치제)의 3가지 형태가 있으나 콜호즈는 도즈에 비해 토지와 중요한 생산수단을 집단화하고 있는 점에서 보다 집단화의 정도가 높고, 고므나에 대해 소가축(小家畜)·채원(菜園) 등의 사유를 인정하여 부업적인 개인경영을 인정하고 있는 점에서는 개별적인 알테리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 외에 예로부터의 대경영을 국유화하거나 처녀지를 개척하여 만들어지기도 했던 국영농장(소프호즈, sovkhos)도 있으며 최근에는 콜호즈를 소프호즈화 하여 농업의 전개를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또 농업은 영세경영이 대량으로 잔존하여 그 확대가 곤란한 채로 사회주의화가 진행되는 점에 사회주의 농장의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여진다.

일본농촌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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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農村-特質

일본의 농촌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룩한 메이지(明治) 이후의 발자취 속에서도 특히 낡은 사회질서가 농후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메이지 이전에 이미 봉건적인 체제의 동요가 보이기는 했으나, 농업혁명이 명확한 형태로서는 추진되지 않은 채 지주제(地主制)나 영세한 규모의 농업경영이 유지된 데서 온 특질이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농업을 영세한 규모로 둔 채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농민의 생활은 지주제이거나 영세경영하에서 낮은 수준에 정체하였고, 더욱이 과잉인구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빈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전후(1945년 이후) 농지개혁과 경제성장에 의해 농촌의 특질의 몇 가지는 급속한 변화를 이룩하였다. 우선 지주제가 해체되었고 자작농(自作農)이 광범하게 늘었다. 오늘날 농가의 4분의 3 이상은 자작농이 되어 있다. 그리고 전후(戰後)의 경제성장에 의해 농업인구의 유출, 농산물의 다양화와 상품생산의 전개, 농업 기계화의 진행, 농가의 생활양식의 변화 등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전전(戰前)의 농촌에 있어서 지주제와 아울러 중요한 문제였던 차남·삼남문제와 인구문제 등은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