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현대사회의 대중과 사상/현대사회의 계층구조/현대사회의 계급·계층

현대사회의 계급·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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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社會-階級·階層

지금부터 약 백년 전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나 경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하는 계급개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또 이 계급대립이 사회현상의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되며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과 함께 그것이 한층 명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공업화가 세계문명의 지배적 경향이고 그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서 추진되리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로부터 이 공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이 이윽고 한계에 달하리라는 것, 그때에 구상되어야 할 사회는 이 공업화를 기반으로 하여 평등과 자유가 보다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그러나 현대사회는 이 1세기를 지나는 사이에 일찍이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분화·발달하고 그 계급구조의 구체적 양상도 매우 변화하였다.이와 같이 분화하고 다양화한 현대사회에 관해서 그 현실의 모습을 분석하고, 그것을 통하여 공업화와 생산관계나 광범한 사회체제와의 대응관계나 모순을 확인해야 하지만, 또 그것들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대하여 갖는 실질적 영향을 추측한다는 것, 이것이 현대사회의 계층을 연구하고 계급구조를 연구하는 적극적인 이유이다.그런데 현대의 계층이 연구되는 경우에 일어나는 큰 쟁점의 하나는 이와 같은 제계층의 분화가 현저하게 된 사회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적 계급구조라는 역사적 개념이 그 타당성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공업화와 그에 따른 변화로 노·사 다같이 계층의 분화가 현저하여 단일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하는 2분법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또 이 분화로 화이트 칼라와 같은 중간층이 증가하고 노·사는 대립이 아니라 연속체(連續體)로 될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노·사를 각각 단일하고 균질적인 대립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미 난폭한 단순화이다.이 문제의 중심으로 되는 점은 사유재산권의 사회적 생산과 같은 공적 생활에의 개입, 즉 사기업(私企業)의 자유와 같은 자본주의 특유의 제도가 분화한 사회의 계층구성이, 그것들의 대립관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적 계급구조라는 개념은 즉시 변경해야 하는데, 현재로 보아 이와 같이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서는 현존하는 사회주의사회에도 상하의 성층(成層)이 존재한다고 하는 점이다. 이 점도 이상과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 구조는 상당히 달라 이 개념을 즉시 버릴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계층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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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社會-階層構造

현대사회는 한편으로 공업화와 도시화가 매우 현저한 사회이고 또 한편, 고도자본주의의 특유한 모든 경향이 그와 아울러 강력히 지배하는 사회이다. 이들은 현대사회의 계층구조상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공업화와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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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業化-階層

공업화의 문제가 계층의 구조에 파급하는 측면은 간접적인 것까지 포함하면 거의 전면적이라고 해도 좋은데, 특히 직업계층의 구체적 양상이 이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다. 공업화의 진전도 그 나라의 산업구조와 직업구조를 크게 바꾸어 간다. 클라크(C. G. Clark, 1905-1989)는 산업부문의 구성비(構成比)가 농림업 등과 같이 자연에서 자원을 끌어내는 제1차 산업으로부터, 이 자원을 가공제조하는 제2차 산업 및 상업·금융·운수 등의 유통산업이나 서비스업을 주로 하는 제3차 산업으로 기울어져 가는 경향을 경제발달의 지표로 생각했으나 이것은 공업화의 단적인 표현이고, 이와 더불어 취업인구가 확대되는 산업부문 쪽으로 급속히 이동한다. 현재 선진제국의 제1차 산업취업자의 비중은

적은 나라에서는 10% 이하, 많아야 20% 정도이고, 80% 이상을 제2차·제3차 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다. 이들 산업부문은 제1차 산업부문에 비하여 대체로 생산성이 높고 고용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부문이다.

기술혁신과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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技術革新-階層

산업부문에 있어서는 기술혁신의 속도도 빠르고 그에 비례하여 다양한 숙련도(熟練度)의 다양한 직종이 발생하고 있다. 19세기부터 존재한 숙련공 외에 금세기 초두부터 다수의 소위 반(半)숙련노동자가 제1차 산업과 기타에서 유입되고, 또 새로운 미숙련노동자군도 발생하였다. 그 밖에 제2차 대전 후의 오토메이션화에 의해서 종일 계기(計器)의 감시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출현하게 되어 노동자층은 그 내부구성이 매우 다양화되었다.이들 제2차·제3차 산업에 취업하는 인구는 이들 산업의 중심지인 도시에 유입·집적되었다. 농민층의 분해로 말미암아 농촌의 공동체적 사회관계는 이완(弛緩)되고, 도시의 새로운 생활형태가 이러한 도시인구의 급증에 따라 일반화되어 간다. 그러한 경향을 도시화라 부르고 있는데 이에 의하여 종래 사회적 지위의 심벌로 생각되던 가문(家門) 등의 비중이 저하되고 그 대신 직업이나 수입 등의 비중이 높아졌다. 또 근무처의 유명도(有名度)나 직위, 사생활상에서는 내구소비재의 소유도(所有度) 등을 경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도시화와 분리할 수 없는 매스컴 발달의 일국면으로서의 상업주의에 의해서도 이러한 경향은 박차가 가해진다.그러한 반면 이러한 도시화의 진행에 수반되어야 할 노동조건의 향상이 지체되고 사회보장정책이나 공공시설, 생활환경 등이 상대적인 빈약성을 띠게 되며 또 정치적·사회적 소외 등에 의하여 이들 여러 계층의 현실적 생활이 의외로 빈곤화되고 왜곡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은 고도자본주의하의 사기업의 행동에 유래하는 바가 크다.

관료제와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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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僚制-階層

현대사회에 있어서 관료제의 발달이 계층구조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것은 또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는 소위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사실과도 결부되어 있다. 이것들이 한편에서는 관료층이나 경영자층을 출현시키고, 다른 면에서는 현재의 계층 가운데서 여러 가지 의미로 주목되는 화이트 칼라층(신중간층)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관료제의 발달은 일반적으로 사회권(社會權, 관련된 사회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의 범위)의 확대와 사회적 분업의 발달을 배경으로 하고, 이렇게 분화된 사회 그 자체나 조직을 통합, 관리하는 기술이 일반대중의 공유로 되어 있지 않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근대적 관리기구에 있어서, 예를 들면 행정기구처럼 대중의 위임이란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하더라도 이와 같은 실질로부터 벗어나지는 않는다. 사기업의 관료제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기술혁신에 의한 생산공정의 복잡화에 대응하여 노동조직을 관리할 필요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대규모화와 자유경쟁의 쇠퇴에 의한 재무·판매·광고 등 업무의 비대화와 전문화로부터 발생했다. 이것들은 19세기의 자본주의와는 달리 사적자본의 권한을 수행하기 위한 기구(機構)이다.이와 같이 행정조직이나 경영조직의 관료제의 발달에 따라 고급관료층이나 경영자층과 같은 관리자층이 발생하여 현대의 정치·경제의 중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관료기구의 자기보존·강화 경향까지 얽혀 점점 대중과 단절되고 권력 엘리트로 되어 간다. 동시에 또 히에라르키(Hierarchie)적 관료기구의 중간 이하에 많은 화이트 칼라층이 생겨났다. 화이트 칼라층은 그 고용관계로 봐서는 노동자층에 가깝지만 관료기구의 위계제(位階制)에서 위로 오를 수 있고, 혹은 의식 속에 상승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리하여 '자기의 갈망'(V. 팩커드)이 일어나고 이것은 또 블루 칼라층에도 파급되어 대중의 의식이나 생활양식에 있어서의 '준거집단(準據集團, reference group)'으로도 되는 것이다.

고도자본주의사회와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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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度資本主義社會-階層

현대사회는 공업생산력의 비약적인 발달과 도시화의 일측면으로서의 사회생활의 합리화, 그리고 화이트 칼라화에 의한 일반 교육수준의 상승이나 관리기술의 발달 등으로 어느 의미에서는 대중 자신의 참가에 의거한 복지의 향상을 보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시대이다. 또한 사기업의 중심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의해서 빅 비즈니스화하여 이미 1세기 전의 사기업과는 다른 측면을 가지게도 되었다. 그리고 세계대공황 이후 거대화한 사기업체의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서 재정정책이나 관리통화제에 의한 소위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행해지고, 사회보장이나 누진과세(累進課稅) 등에 의한 소득재분배정책도 행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철저한 민주주의에 의해서 사회의 성층구조에 알맞는 지배와 예속, 선진제국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인구의 5%가 국민소득의 20%를 취득한다고 하는 번영과 빈곤의 문제가 심각히 제시되고 있다. 또한 경제에 대한 국가정책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무력화하고 혹은 빅 비즈니스의 제도화된 안정장치가 되고 있을 정도로 사기업이 건재하고 있는 점을 들어, 국가와 빅 비즈니스가 융합하고 있다는 지적이 문제로 제시되는 일도 있게 된다. 앞에서 든 측면 외에 솟아오르는 인플레나 사회자본의 빈곤화, 그리고 '무익한 법제화'(갈브레이드), 기업의식의 강화와 같은 고도자본주의의 특유한 현상이 현대 여러 계층의 존재형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공업화와 인구의 근대적 노동자화 그리고 관료화는 반드시 자본주의 특유의 현상은 아니다. 현존하는 후진국형 사회주의에도 존재하는 현상이다.그러나 이상과 같은 고도자본주의의 특유한 양상하에 한편에서는 파워 엘리트층의 출현·강화, 다른 한편에선 미조직의 정체산업, 영세기업, 취업인구, 인종문제 등등에서 보여지는 저변계층의 고정화 같은 양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현상이 계층간의 장벽을 타파하는 노력에 있어 마이너스 요인이 되거나 계층의 히에라르키성을 해소해 가는데 그 가능성을 저지하고 있다고 하면, 고도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계층현상과 사회적 평등에 대한 이념이 가장 중요한 국면으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사회적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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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社會的移動

사회이동에 있어서 문제점의 하나는 계층구조의 특질이 어떠한 이동에 의하여 생겨났는가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에 따른 결과는 어떤가 하는 점이다.금세기에 있어서 큰 구조변화의 결과로 선진제국의 사회적 이동률은 대체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그것은 농민 등 기타 제1차 산업 인구의 상공업이나 서비스업에의 유입, 또 거의 모든 계층으로부터 화이트 칼라층에의 이동 등에 의하는데, 동시에 이들 나라의 세대간(世代間) 이동에 대한 비교연구는 선진제국간에도 이동률이나 이동의 유형에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이동률이 높은 데 비하여 영국은 낮다.이동률이 낮다는 것은 계층의 폐쇄성이 그만큼 높은 것을 의미하지만 그 반면에 이동률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회가 반드시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높은 이동률 그 자체가 계층간의 격차를 해소한다든지 기회의 균등을 낳는다든지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러한 사정이 변하지 않고 이동률이 높은 경우에는 도리어 상승할 수 없었던 자나 하락한 자들이 불만을 축적한다는 면도 있다. 또 엘리트층의 경우에는 재산이나 가문, 인척관계의 비중이 크다는 점, 정(政)·재(財)·관계(官界)의 정점은 이와 같은 관계까지 포함한 여러 관계에 의해서 밀착한 파워 엘리트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일찍이 개인의 근면과 절약이 자본주의하에서 성공하는 비결이었지만 학력이 상승이동(上昇移動)의 비방(秘方)으로서 찬양되기에 이른 것도 현대의 특징이다. 이것은 화이트 칼라나 블루 칼라의 상층에 있어서 교육수준이 하나의 요건으로서 중요시되었다는 점인데, 한편 교육을 받는 기회는 재산이나 수입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좌우되고 있으며, 이것 또한 불평등을 촉진하는 큰 요인으로 되고 있다.

부르주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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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geoisie

부르주아지라는 말은 원래 농노(農奴)나 독립자영농민과는 구별된 중세 후기의 중산계급층 시민, 특히 자치도시의 자유스러운 시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다.19세기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치되는 말로 사용했다. 그 경우 부르주아지는 캐피탈리스트(자본가)와 같은 의미가 된다. 오늘날 부르주아라고 할 때는 자본가계급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속성이나 사회주의정당의 주장과 다른 것을 갖는 것에 대해서 부르주아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자본가는 영리자본(營利資本)의 소유자 또는 지배자이고 이윤을 소득원(所得源)으로 하며 지주(地主), 노임을 소득원으로 하는 노동자와 함께 주요한 계급을 이룬다. 자본가는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도 존재했었지만 그것은 상업자본이나 고리대(高利貸) 자본 즉 전기적(前期的) 자본의 소유자이고 유통과정에서 이윤을 얻는 기생적(寄生的) 존재로 그 자체가 독자적인 계급을 이루지는 않았다. 봉건사회 내부에서 상품경제가 발달하고 그 토대에서 생산과정 그 자체로부터 이윤을 얻는 자본가 즉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는데 따라 이 자본가는 지주·귀족·전기적 자본 등의 봉건적 지배관계와 대항하여 새로운 근대자본주의 사회를 세웠다. 다른 한편 거기에서 새로이 형성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지배자로서 독자계급(獨自階級)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자본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자유주의 단계에서는 상호간에 격렬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말경부터 소수의 대자본가가 카르텔·트러스트·콘체른 등의 형태로 결합하고 또 노동자의 조직화와 운동에 대응하여 자본가도 조직화함으로써 종래의 동업조합 등과는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가진 자본가단체가 발생했다.이때부터 자본가계급 내부에 계층화가 일어나서 독점자본가, 중소자본가, 영세업주가 각각 독자적인 이해를 갖는 계층으로서 형성되어 독점자본가는 노동자계급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여러 자본가 계층까지도 경제적·정치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른다. 또 이때부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들어가고 선진제국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는 자본가계급은 매판자본가, 민족자본가, 중소자본가, 도시근로시민=영세업주로 되지만 민족자본가 이하의 여러 계층과 매판자본가와는 많은 점에서 이해가 대립된다.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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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營者

자본주의 초기단계에서는 자본을 소유하는 자와 그것을 운영하여 이윤을 얻는 자, 즉 협의의 자본가와 경영자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양자의 기능을 동일인물이 겸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중소기업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자본의 조달이 주식 등의 형태로서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자, 다수의 자본소유자가 특정한 기업에 연관을 갖게 되고 또 기업자체가 거대화하여 그 관리와 운영을 위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기에 이르러, 법률상 기업소유자로서의 주주(株主)와 직능적 경영자는 기능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분리되고 경영자가 협의의 자본가로부터 독립하여 나타났다. 경영자는 자본소유자로부터 맡은 자본을 운영하여 이윤을 얻고 그 일부를 금리(金利)로서 자본소유자에게 배당하고 또 일부를 자신의 소득으로 한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광의에 있어서 자본가 층의 유력한 일부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경영자라면 일상업무를 담당하는 이사(理事)를 가리키지만 공업화에 있어서 자본·원료·노동력과 함께 경영자를 생산요소의 하나로 볼 때에는 그것은 최고관리직원·소유자·이사·간부직원·최고전문가·기술자·변호사·일선감독자까지 즉 톱 매니저, 미들 매니저 및 감독자층을 포함한 것으로 생각된다.1930년대에 미국의 거대기업 200개 회사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경영자가 기업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는 형태가 44%였는데 반하여 단일한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한 지배는 6%, 과반수 지주지배(持株支配)는 5%에 지나지 않아, 기업이 거대화하는 데 따라 기업형태는 경영자지배에 기울어져 간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늘날의 기업에 있어서는 개개의 구체적인 경영에 관한 대폭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의 자유가 경영자의 손에 놓여져 있다.

파워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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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elite

일정한 사회에 있어서 그것을 움직이는데 충분한 권력을 집중하고 있는 계층을 파워 엘리트라고 한다. 이것은 가끔 권력으로부터 격리되어 무력감(無力感)과 불안 그리고 고독감에 떠는 대중과 대치되어 쓰여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권력이 사회성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고, 성원간의 합의에 의해서 정치가 행해진다고 하는 시민사회적 민주주의 모델의 붕괴를 그 인식의 전제로 하고 있다.20세기에 와서 테크놀러지(technology)의 현저한 발달에 의하여 고도의 지식과 기능을 필요로 하는 기술수단이 사회를 움직이게 되고, 이 기술수단을 사용하는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등장하여 사회의 권력은 그들에게 집중되어지는 경향을 띠었다. 이들 그룹은 정부·정당·기업·군대·노동조합 등의 대조직에서 형성되고 이들 조직의 전문지도자가 국가레벨에서 영향력을 가질 때 파워 엘리트가 나타난다. 또 일단 국가 레벨에서 파워 엘리트를 구성한 전문지도자들은 일면에서는 그들 모체의 조직이 갖는 이해나 요구를 대표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상호간에 밀착하여 소수의 권력자 집단을 형성하고 각조직을 지배하며 다수지배의 의제(擬制)상에 서서 소수지배를 사회의 말단까지 침투시킨다. 저개발국에서는 정치가와 군인이 파워 엘리트의 중핵이 되며 여기에 극히 소수의 부호가 참가하고 때로는 종교가도 들어간다. 이에 대하여 공업이 고도로 발전된 국가에서는 정치가·군인과 아울러 경영자·관료가 유력한 파워 엘리트로서 등장한다. 그런 경우 경영자는 정치가·관료의 모든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의하여 국가 레벨에서의 의사결정을 상당히 크게 좌우한다.

경영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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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營elite

시장의 확대와 경영규모가 거대화됨에 따라 기업경영은 고도로 전문적인 경영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경영 엘리트(managerial elite)는 그것을 담당하는 자로서 나타난 층이다. 오늘날의 대규모 기업체에 있어서는 의사결정기능의 주요 부분이 톱(top)에 집중되고 , 그를 위한 정보수집이나 수단의 제시는 스태프(staff)에 의해서 행해지며, 라인(line)은 거기서 내려지는 지시에 따라 생산활동을 수행한다고 하는 식으로 상당히 기능분화가 이루어져서 각 부문에서는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경영 엘리트는 경영의 의사결정에 참가하는데 충분한 전문적 지식·판단력의 소유자로서 양성되고 있다.

상류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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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流階級

어느 사회성원을 특정한 기준으로 분류한 결과 상위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군(一群)을 상류계급이라 한다. 따라서 그것은 계급이라기보다는 계층의 하나이다. 이 분류에는 보통 소득의 크기, 사회적 평가(위신), 권력 또는 세력 등이 지표로서 사용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상류계급은 말하자면 조작적(操作的)으로 설정된 한 계층이다.그러나 상류계급이 실로 하나의 계급으로서 실체적으로 부각될 때는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사회내에서 맺어지며 그 밖의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특징에 의해서 질적으로 구별되고, 또한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상류계급은 가문·부(富)·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서 특정사회내에서의 위신을 독점하고, 파티나 방문 등을 통해서 폐쇄적인 사회관계를 맺거나 결혼도 그 조그만 사회권(社會圈) 내부에서만 이루어진다. 또 그 사회의 권력도 그 가운데에서 나누어 갖는다.

유한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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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閑階級

부·화폐의 축적을 비생산적인 생활의 쾌락에 쏟고, 예술이나 경기의 감상이라든가 동물애완 등, 물질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활동에 시간을 소비하는 생활양식에 가치를 두고, 또한 이것에 의하여 명성이나 위세를 높이고 고정시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 내지 자기들을 구별하는 계층을 유한계급이라 한다. 이와 같은 계층은 사유재산제가 성립하여 계급사회가 형성 되었을때 사유의 재력 때문에 전적으로 피지배계급의 노동 성과에 의해서 생활하며, 자기자신은 생활을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생산적 노동을 멸시하고 비생산적인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들로부터 생겨났다. 그 모체는 노예소유자·지주·귀족·자본가 및 그들에 기생하는 일부 계층이다.

중소 부르주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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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小 bourgeoisie

중소자본가를 말한다. 중소자본자가 자본가계급 일반으로부터 특히 문제시되는 것은 단지 자본규모에 있어서 대자본가와의 양적 차이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대자본가와의 사이에 일정한 이해의 불일치·대립이 있고 또한 대자본가에 의해서 지배되며 이익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인식에 의한 것이다.자본주의가 독립단계에 들어서자 독점적 대기업은 자기와 경합하는 중소기업을 구축, 배제, 흡수하였다. 중소자본은 이윤율이 낮은 불안정한 부문으로서 상호간에 경합하여서 살아남든가 독점적인 대기업의 보조부문에 흡수되는 존재로 되었다. 후자의 경우, 구매독점이나 하청제를 통하여 중소자본 이윤의 일부는 독점적 대기업에 흘러 들어간다. 또, 중소자본가는 원재료의 독점가격, 금리나 세금의 불평등한 부담을 통하여 독점자본으로부터 이익의 침해를 받고 있다. 독점자본과의 이와 같은 대립으로 중소자본가는 반독점운동의 일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소자본가는 자본가계급의 일부로서 노동자계급과 이해가 상충한다. 중소자본가는 한편에서는 독점적 대자본가와,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계급과 이해가 상충한다.

도시근로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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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市勤勞市民

구체적으로는 자영소상인(自營小商人)이나 직인(職人) 등으로 자영농민과 함께 구중간층(舊中間層)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계층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자본가층의 일부로 간주되지만,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자기자신의 노동에 의해서 수입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자본가층과는 달리 간주된다. 그것은 중세후기의 자치도시에서는 자유시민의 중핵을 이루었고 또 부르주아 혁명에서는 급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서는 몰락과 신생을 반복하였으며 독점단계에서는 독점적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고 중소기업을 매개로 한 경제지배의 저변(底邊)에 놓여 있다. 이 층은 독점자본 우선의 경제정책과 때때로 이해 대립을 보이고, 또 경영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중세(重稅) 반대나 저금리(低金利) 대부요구 등의 운동을 조직적으로 행하는 일이 있다. 사회주의 입장에서는 이 층을 동맹군으로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층은 많은 자본주의국가에 있어서 보수정당의 유력한 지지층을 이루고 노동자운동에 적대적인 심정을 보이고 있다. 또 체제의 위기적 상황 하에서는 때때로 농민이나 중소자본가와 함께 파시즘 발생의 기반을 이루었다.

프롤레타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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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etariat

노동자계급을 말한다. 그 기본적 성질은 첫째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제용구(諸用具),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점이고, 둘째로는 스스로 사회적 노동에 참가하고 있는 점이며, 셋째로는 스스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이다. 고용된다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부르주아지에게 팔고 그 대신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을 받는 대신에 자본가의 명령에 따라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역사적으로 보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중세의 농민이 궁핍으로 그 농업경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토지를 버리고 떠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또 중세의 하층 무사가 몰락하여 그 생활근거를 잃고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근대사회에서 자본가의 명령에 따라 노동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매일의 노동으로 소모한 육체와 정신을 영양섭취와 수면, 휴식 등으로 다음날까지는 원상복구해야 되는데 그에 필요한 물질의 가치를 임금으로 받는다. 이 임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적 주장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기본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노동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가 임금으로서 받는 가치보다 크며, 그 차(差)는 잉여가치로서 부르주아지의 손에 남고, 그 결과 프롤레타리아트는 궁핍화한다'는 소위 궁핍화이론은 오늘날 선진국 노동자들의 생활이 윤택해짐으로써 현실적으로 그 이론적 기반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또 다음과 같은 주장은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력을 사들여 잉여가치를 획득하는 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간의 협조는 있을 수 없다. 양자는 반드시 대립하고 그 대립은 계급투쟁으로 발전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에 있어서 먼저 생활상의 사회적 불평등, 노동하는 곳에서의 가혹한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부당하게 생각하여 그에 저항하고 드디어 사회체제를 인식하며 계급의식에 눈뜨게 되고,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힘을 하나로 단결시켜 부르주아지 중심의 근대사회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인 사회주의를 세운다'는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트관·사회관이 곧 그것이다.현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다른 성격을 갖는 여러 가지 형태의 노동자로서 존재하고 있다. 대학출신의 샐러리맨도 노동력을 팔아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이고 산골 오막살이에 살고 있는 자도 일일 고용자로서 건설업장에 고용되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이렇게 다른 형태의 노동자는 각자의 생활양식·생활의식·정치의식을 갖고 있다. 즉 현실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과 행동이 부르주아지에 반대하여 하나로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내부에서마저 대립이 존재하는 것이며 생활양식·생활의식·정치의식에서 부르주아지와의 구별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그 때문에 사회학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로 모아서 생각하기 보다는 직업별·수입별로 구별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예(例)를 든다면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를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있는 점에서 본다면 양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나 생활조건의 상위(相違)에 따라서 여러 가지 성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블루 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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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collar

화이트 칼라에 대한 말로 소위 현장노동자를 가리킨다. 그 전형적인 것은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철강산업의 압연공(壓延工), 그리고 기계산업의 절단공(絶斷工)·조립공(組立工) 혹은 전기산업의 벨트 콘베이어 작업에 종사하는 여자노동자 등일 것이다. 그들은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땀흘려 일하며 도시락을 가지고 출근하여 기름이 밴 작업복을 입고 작업장에 나간다. 그 작업복은 대부분 청색(靑色)이다. 또한 학력이 낮은게 보통이다. 그러나 소비생활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블루 칼라 노동자도 통근 때나 오락·휴식할 때 등에는 흰 와이샤쓰에 넥타이를 매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가고 반대로 학교의 교사가 노타이(no tie)로 나다니게 되었다. 그 때문에 화이트 칼라와의 구별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그러나 그것은 외견상의 것으로 양자는 본질상 역시 구별되고 있다. 노동의 내용이 변화했다지만 블루 칼라는 어디까지나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자로서 그 중에는 아직도 다수의 교육수준이 낮은 자를 포함하고 있다. 교육수준이 낮은 자를 블루 칼라로 고용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다. 반대로 교육수준이 낮은 많은 사람은 판매·서비스직을 제외하면 화이트 칼라가 될 수 없다. 즉 생산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종사하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면 블루 칼라는 일관된 명백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 블루 칼라의 기본적 성격은 이러한 생산면에서 규정되고 있다.

본공·임시공·사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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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工·臨時工·社外工

본공은 기업과 기한을 정하지 않고 계약하고 고용되어 있는 현장노동자를 가리킨다. 임시공은 기한을 한정된 계약에 의거하여 고용되는 자나 본공이 되기 전 일정기간의 노동자를 가리킨다. 후자의 경우 본공이 받는 근로계약상의 제반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게 보통이다. 사외공의 고용계약 대상은 자기가 작업하고 있는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企業)으로부터 어느 공정(工程)을 하청받는 기업이다. 그 하청·청부기업은 대개 영세기업이고, 사외공은 그곳의 노동자로서 급료를 받는다. 작업장만이 대기업인 모기업(母企業)의 사업소인 것이다. 대기업이 이러한 존재의 임시공·사외공을 이용하는 것은 첫째로 경기변동의 조절판(調節瓣)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조업을 축소하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계약의 파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임시공·사외공의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셋째로 노동자를 이와 같은 차별적인 그룹에 나누어 두면 상호간에 대립하여서 경영자로서 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에 유리한 존재인 임시공·사외공은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기업노동자·중소기업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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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企業勞動者·中小企業勞動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은 여러 면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종업원의 규모에 따라 분류하는 게 보통이다. 대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자가 대기업노동자,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자가 중소기업노동자이다.양자간에는 여러 가지 격차가 있다. 그 하나는 임금격차일 것이다. 또 임금만이 아니라 기타 노동조건에서도 중소기업노동자들의 그것은 열악(劣惡)하다. 중소기업에 있어서는 기계화가 뒤떨어져 있고 공장내의 상태도 나쁘고 실질적인 노동시간도 길다.

일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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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雇勞動者

건설업과 같이 어느 시기에 어느 지점에서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는 경우, 노동자를 정규적으로 고용하고 있다는 것은 비능률적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운수업·농업·어업에도 어느 시기에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 경우 수개월내에 이동할 것을 전제로 하여 노동자를 하루단위로 고용하는 것이 능률적이다. 이와 같이 하여 고용된 자가 일고노동자이다. 그들은 임시공 이상으로 이동성이 크다.

중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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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間層

근대시민사회의 성립은 승려와 봉건귀족에 이어 '제3신분(第三身分)'으로서의 시민계급을 형성했지만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에의 분열이 이루어지고 남은 부분이 중간층으로서 존속하였다. 중간층의 내용은 중소기업주·소상인·자영농민·지주·금리생활자·자유업자 등이다. 이 층을 화이트 칼라인 신중간층(新中間層)과 구별하는 의미에서 구중간층(舊中間層)이라고 한다. 구중간층은 기본적으로는 시민계급의 계층 분해과정에서 과도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성격은 실로 중간적이어서 독점자본가와 노동자의 중간에 위치한다. 구중간층의 대부분은 적지만 일정한 자본과 생산수단의 소유자이고 이러한 면에서 노동자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그들은 항상 대자본의 압박하에 있어 도산(倒産)의 위기와 임금노동자화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제(資本制) 생산의 본질과 자본주의적 경쟁의 격화는 자본의 집중과 노동자의 대량산출을 불가피하게 하고 그 때문에 구중간층의 몰락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분해과정은 직선코스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산업 가운데에는 생산성이 낮아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부문이 있고 거기에서는 자본집중이 진행되지 않아 중소기업이 존속할 여지가 있다. 중소기업은 그 존립기반으로 보아 독립자영의 존재일 수가 없고 대기업에 종속하여 하청기업으로서 겨우 존속을 유지하고 있기도 한다. 대기업측에서 보면 불황시의 안전판으로서 중소기업을 육성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상인은 상업의 도매단계에서는 자본 집중으로 말미암아 구축당하지만 소매단계에서는 아직도 존재이유를 갖고 있다. 농업분야에서는 지주제의 해체 후에도 농민의 계층분해가 철저하지 못한 채로 자영소농민이 광범위하게 존속하고 전체로서는 국가독점자본으로부터 이익을 침해 당하고 있는 면도 있다. 이와 같이 해서 구중간층은 자본주의 사회의 보족부분(補足部分)으로서 끊임없이 재형성된다.신중간층은 이에 대해서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급격히 증대한 사회적 부분이고 이제야말로 그 동향이 주목을 끌고 있다. 신중간층의 구성원은 화이트 칼라라고 일컬어지는 두뇌노동자의 일군(一群)이지만 이 층을 신중간층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상업부문의 비중이 증대하고 기술의 중요성이 증대한 것 등이 단순한 육체노동자와는 다른 새로운 두뇌노동자를 형성하고 그들이 직원이라는 공원(工員) 위에 서는 신분층에 편성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그들도 육체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피고용자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반해 상대적·부분적으로 블루 칼라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고 또 그 출신계층이 구중간층인 자가 많기 때문에 화이트 칼라가 중간층 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구중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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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中間層

중소기업주·소상인·자영농민·자유업자·금리 생활자 등으로 구성되는 구중간층은 기본적으로는 전(前)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유물이고 자본주의 발전에서 그 중간적·동요적 성격은 점차 강화되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중간층이기 때문에 당연히 독점자본과 노동자 쌍방에 대하여 이해가 대립하는 관계에 있지만,

그 계층적 성격은 소자본가층(petit bourgeoisie)이라는 점에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자본의 압박을 받아 위기에 직면하고 있지만 부르주아사회의 보족부분으로서 부단히 재생산되고 대자본에의 종속하에 존속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존립조건은 저렴한 노동력을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점에 있다. 중소기업의 최하층을 이루는 영세기업에 있어서는 기업주 스스로가 노동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든 구중간층의 구성원은 그 의견상의 자영형태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대자본에 종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종속하면 할수록 그들의 노력 목표는 대자본으로서의 성장에 두게 되며 그들은 격렬한 자본주의 경쟁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개인적 수단을 쓰고 서로 이반(離反)하는 동시에 노동자에의 적의(敵意) 내지 차별의식을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객관적 조건은 반드시 구중간층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공리적(功利的) 노력은 항상 초조하게 된다. 구중간층이 갖는 하나의 특성은 실로 그 모순에 찬 동요성에 있고 객관정세의 추이에 따라 고양(高揚)과 침체를 반복한다. 또한 출구(出口)가 없는 절망적 상황에 있어서의 초조감이 '프티 부르주아적 급진주의'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 외견상의 급진성은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주관적 원망(願望)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성이 부족하고, 이윽고 패배주의로 전화하는 일이 많다. 광신적인 파시즘을 지탱한 계급기반이(독일 파시즘의 온상은 중간계급이었다) 동요적인 구중간층을 주체로 하고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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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小企業主

중소기업주는 구중간층의 대표적 구성부분인데 그 존립기반은 좋든 싫든 독점자본의 종속에 있다. 자본주의사회는 본질적으로 계획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발전은 파행적이고, 또 근대화가 급격히 진전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로부터의 전근대적 생산방법이 온존 육성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이 존속할 수 있는 분야는 대량생산으로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없는 산업부문이고 거기에서는 전근대적 도제(徒弟)제도마저 존속하고 있다. 중소기업주는 독점자본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그 수익의 태반이 하청을 준 기업에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중소기업주의 수익은 저렴한 노동력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프티 부르주아 생활양식이 실현되고 있다. 중소기업주층도 단일한 계층은 아니고 내부적 계층분해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영세기업화하여 '반(半)프롤레타리아적' 부분으로 되고 있으나 개중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소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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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商人

소상인의 존립조건도 기본적으로는 중소기업주층과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수적으로 보면 소매상인의 수는 오히려 증대하고 있고 이는 중소기업주의 점감경향(漸減傾向)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소상인이 대자본의 압박을 받고 있는 정도는 중소기업의 경우보다 더 심하고 그 경영규모도 대체로 영세적이다. 상업의 도매단계에서는 그들은 거의 완전하게 대상업자본인 도매상에게 구축되고 근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유통기구의 말단, 즉 소매단계에서 도매자본에 종속하면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매상업에까지 대자본이 진출하고 있어 소매상인의 경영은 일층 압박당하고 있으며 소상인층도 내부적으로 계층분해하고 있다. 비교적 큰 경영상인은 저렴한 점원의 노동력에 의존하여 그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프티 부르주아적 생활양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저변에 깔려 있는 대다수의 영세 소매상인은 가족노동에 의존하고 거의 잠재실업자와 다름 없는 노동자화되고 있다.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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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民

봉건사회의 붕괴로 농노(農奴)는 한편에서 독립자영 소농민으로 성장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토지를 상실하여 전근대적 임금노동자로 전화한다. 자본주의경제하에서 이 농민층은 또 계층분해를 하여 기업농과 농업노동자로 분화한다. 그러나 농업부분에서의 자본주의 법칙은 공업부문에서만큼 명확하게 관철되지 않고 다소 굴절하여 작용한다. 농민은 극소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가족노동에 의존하면서 겨우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도 균질적인 사회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농·중농·빈농으로 계층분해하고 있고 또 농업노동자·임금노동자도 하향분해하고 있다. 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침투에 따라 농업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겸업농가가 증대해가고 있다.

구중간층의 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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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中間層-分解

구중간층의 주요 구성원인 중소기업주·소상인·소농민은 전(前)자본주의적 사회가 붕괴하고 근대시민사회로 들어서면서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그 내부에서 계층분해가 생겨 일부는 대자본층으로 성장하고 대부분은 임금노동자화하였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단순히 '양극분해'하지 않고 광범하게 존속하였다. 즉 소시민층은 대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를 부동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보족부분으로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독점단계에 들어서고 자본주의적 사회의 전반적 위기와 더불어 더욱 급속히 진행하고 있으나, 그 진행형태에는 상당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내부 여러 계층의 동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신중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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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中間層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구중간층이 부단히 재생산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몰락을 피할 수 없었는데 대하여 새로이 다른 중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자본의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사무원과 판매원, 생산의 기술과정에 참여하는 전문·기술노동자, 그리고 공무원·지식노동자 등 주로 두뇌노동에 종사하는 화이트 칼라가 그것이다. 그들은 근육노동에 종사하는 블루 칼라와는 상대적으로 구별되고,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기업내 지위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우위의 신분층을 형성하고 있다. 화이트 칼라의 상층부분인 경영보조자는 특히 기업내의 관리적 지위에 있고 경영자에의 승진길도 부분적으로 열려 있다. 그러나 신중간층의 대부분인 하층 화이트 칼라는 확실히 현장의 생산노동자와 구별되는 다른 종류의 노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일부류인 점에는 변함이 없고 이것을 중간층이라고 칭하는 것은 실태(實態)에 맞지 않는다. 기껏해야 임금노동자의 상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층을 신중간층이라 규정하는 것은 화이트 칼라의 계층적 성격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계층의식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화이트 칼라는 블루 칼라와는 달리 중간층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중간층의식을 품는 것은 그들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간층이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그 자신의 노동·수입·사회적 지위 등에서 일반 생산노동자보다도 상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노동자로서의 근육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이 중간층의식이라는 자기 만족적 규정으로 전화하고 있다. 그 차별의식은 노동·수입 등에서 현장노동자의 그것과 차이가 커지는 데 따라 그 농도를 더해가게 된다. 이것은 화이트 칼라로 하여금 격렬한 경쟁을 불러 일으키게 하며, 화이트 칼라층의 상층으로 갈수록 좁은 승진의 가능성을 둘러싸고 더욱 격렬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미들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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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manager

화이트 칼라의 상층부분은 기업내 지위에 있어서는 중급관리자로서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그들이 종사하는 노동은 단순한 상업노동이 아니라 경영보조노동이라고 규정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부문별로 보면 기획·조사 등의 스태프(staff)적인 경영보조부문에 집중하고 있지만 구매·판매·경리 등의 부문에 있어서도 경영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다. 생산과정에 있어서 기술노동자의 상층도 생산노동자의 관리·감독이라는 경영보조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상층 화이트 칼라는 요컨대 자본의 이윤획득행위를 보조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층 화이트 칼라와 이해를 달리하고 그들과 적대관계에 있기 쉽다. 외견상으로는 양자는 연속된 계층처럼 보이나 기능적으로는 감독자와 피감독자로 내부분열되어 있다. 따라서 미들 매니저는 그만큼 중간층 의식이 강하고 프티 부르주아적(소시민·소자본가적) 성격이 짙다.

화이트 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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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collar

땀과 기름에 젖지 않은 간접생산부문 노동자가 과시하는 상징은 그 청결한 작업복 즉 흰 칼라의 샤쓰이다. 화이트 칼라라는 것은 이 작업복의 이미지로부터 온 간접생산부문의 노동자의 총칭이고 이 층은 또 블랙 코트(black coat) 노동자라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화이트 칼라라는 명칭은 편의적·상징적인 호칭으로 엄밀한 과학적 용어는 아니다.19세기에는 의심할 바 없이 직접생산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중핵적 존재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가 산업자본주의 단계(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확립되는 단계, 영국을 비롯한 구미선진국에서는 10세기 후반)로부터 독점자본주의 단계(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단계,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자본주의는 20세기초에 거의 이 단계에 들어섰다)로 이행하는데 따라 노동자계급의 구성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즉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직접생산부문에 비하여 간접생산부문이 급격히 비대해지고, 이 부문에 종사하는 사무노동자·서비스·판매노동자 등의 수적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이들 간접생산부문의 노동자는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근육노동자보다도 비교적 깨끗한 복장으로 일할 수가 있고 수입·학력·사회적 지위 등에서 우월하다고 생각되었다.생산부문노동과 간접생산부문노동의 대비(對比)는 거의 근육(육체)노동과 두뇌(정신)노동과의 대비에 대응한다. 따라서 화이트 칼라를 두뇌노동의 종사자로 규정해도 좋다. 일반적으로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근육노동과 두뇌노동이 분화할 뿐만 아니라 두뇌노동이 근육노동에 대하여 우위를 점하고 양자는 대립하기도 한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이 대립은 직원과 노무자라는 신분층으로 고정되고 양자의 이해는 부분적으로 분단되기도 한다. 이리하여 화이트 칼라는 자본의 피고용자이면서 생산노동자와 상대적으로 구별되고 다소 중간적인 위치를 점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화이트 칼라는 신중간층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가 있고 소상품 생산자나 소상인 등의 구중간층과도 구별된다.화이트 칼라의 내부구성은 극히 잡다하다. 예를 들면 밀스(C. W. Mills, 1916-1962)는 그 3대 직업집단으로서 교사·판매원 및 사무종사자를 들고 있다. 화이트 칼라의 전형은 그 중에서도 사기업노동에 종사하는 사무원이고 그 다음에 서비스·판매원·기술노동자가 따른다. 또 독점 자본주의 단계에 있어서는 자본과 국가의 밀착이 진행되고 국가기관에서의 공무원·교사 등도 신중간층을 구성한다. 그러나 화이트 칼라는 단일한 동질적인 계통은 아니고 내부적으로 상층·하층으로 분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무직원층은 경영보조원과 상업노동자 및 보조사무원으로 분화하고 있다. 직원층의 상층과 하층 사이에는 여러 가지 격차가 있고 여기에도 화이트 칼라는 분단화되고 있다. 수적으로 대다수를 점하는 하층 화이트 칼라는 기계화의 진전 그리고 국민교육수준의 향상, 권력집중화 등의 제요인에 의해서 끊임없이 부동화하고 현장노동자와의 격차가 점차로 좁혀지고 있다. 임금·생활수준·노동내용·학력·사회적 지위 등 어느 것이나 우월한 특권을 잃어가고 있다. 화이트 칼라와 근육노동자와의 격차의 점감화는 이렇게 확실히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 중간층의식의 소멸과 직결되지 않는 점에 화이트 칼라의 복잡한 성격이 보여진다.

근육노동·두뇌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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筋肉勞動·頭腦勞動

생산력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는 노동은 기술과정에 있어서도 조직과정에 있어서도 미분화상태였다. 생산력의 향상에 수반한 사회적 분업과 교환이 발전하는데 따라서 노동은 근육노동과 두뇌노동으로 분화한다. 즉 이 이종(異種)의 노동분화는 사회적 분업에 유래하는 것이고 사회의 계층적 성립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사회의 계층적 진전은 근육노동과 두뇌노동과의 분열을 극도로 하여 두뇌노동의 담당자 즉 인텔리겐차를 특권층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자본주의사회)의 성립은 지적 직업이 존엄하다는 베일을 벗기고, 의사·법률가·승려·시인·학자를 부르주아지(자본가계급)에게 고용되는 임금노동자적 성격으로 바꾸어 버렸다. 두뇌노동은 근육노동에 대해서 상대적인 우위성을 가지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임금노동으로 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독립자영'의 인텔리겐차마저 자본에의 예속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기 때문에 화이트 칼라는 당연히 자본에 고용된 임금노동자에 불과한 것이다. 화이트 칼라가 종사하는 일은 경영보조·구매·판매·경리·기획 등 '상업적 조작'이라든가 고도의 전문·기술업무여서 이와 같은 일은 어느 것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식과 기능수준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들 노동력의 재생산비에는 교육비가 부가되고 그 대가는 단순한 근육노동자보다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최근에 합리화·기계화의 진전은 일부의 고급전문·기술 노동을 제외하고 화이트 칼라의 노동 대부분을 단순한 기계적 보조노동으로 바꾸었다. 두뇌노동과 근육노동이 급속히 접근하여 그 경계는 심히 불분명하게 되어 가고 있다.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의 혼합형태로서 그레이 칼라의 형성이 지적되는 것도 이러한 새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사무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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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務勞動者

산업자본(상품의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그 유통과정(流通過程)을 매개하는 구매·판매·경리 등의 '상업적 제조작(諸操作)'도 증가한다. 사무노동자는 이러한 상업적 조작 즉 상업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사무노동자는 직접 생산노동자와 달라 잉여가치(剩餘價値, 자본가가 지불한 노동력의 가치=임금 이상으로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생산에 관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상업자본(상품의 매매, 서비스에 의해 이윤을 얻는 자본)을 위해서 잉여가치의 배분으로서의 상업이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결국 상업자본과는 이해를 달리하는 일정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20세기의 근대적 사무실은 낡은 회계사무소와는 상당히 다른 작업조건을 사무노동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사무소의 규모가 확대되는 데 따라 사무조직은 집권화하고 업무는 합리화하여 주체적 창의를 발휘할 여지는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 사무용 기계의 도입은 또 사무노동을 단순한 기계의 조작으로 일변시켰다. 전기타이프라이터·자동복사기·전자계산기·분류기 등의 보급은 타이피스트 등의 특수기능마저도 몰아내고 두뇌노동의 거의 전부를 단순한 근육노동으로 변하게 했다. 이처럼 일이 단순화하여 그 습득이 용이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육보급과 상응하여 사무노동자는 공급과잉이 되고 그 임금은 점차로 내려간다. 사무노동자와 생산노동자의 격차는 일의 내용에서도 수입면에서도 급속히 소멸되어 가고 있다. 일부 승진 코스를 달리고 있는 관리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하급사무노동자가 임금노동자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문·기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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專門·技術勞動者

옛날의 전문직 종사자는 자유업자로서 중간층에 속하고 있었지만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의 일부는 그 자체가 사기업화(私企業化)하고 대부분은 봉급을 받는 피고용자화하고 있다. 의사·변호사·교원·과학자·기술자 등은 직접간접으로 국가관료조직에 편입되어 봉급생활자로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업무의 일부인 과학노동은 원래 노동의 발전과정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주의하에서는 자본과의 사이에 상치되는 점이 생겨 고용자와 종사자는 일정한 이해를 달리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고 노동강화를 강요당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자도 자본과 마찬가지의 일정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기술의 임금노동자화는 당연하게도 높은 비율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일반노동자보다 고임금이라고 하더라도 그 부가가치(어느 기간에 새로이 생산된 노동의 가치)에 비하면 그들은 분명히 임금 노동자와 마찬가지 성격을 가지게 된다. 또 과학·기술노동자는 두뇌노동자의 한 종류이지만 노동과정의 불가결한 요소로서 임금으로 받는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노동자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적 합리화와 교육수준의 향상에 따라 기술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 노동강화·실업화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반면에 기술자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의 감독노동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고 이러한 면에서 일반노동자와의 사이에 일정한 상치점(相馳點)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술자는 노동자계급의 일원이고 사실 중간층으로서 그들을 전문직업단체에 조직화하려는 수많은 시도도 아직 성공하는데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서비스·판매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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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ice·販賣勞動者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에 따라 일반적으로 유통과정이 비대(肥大)한다. 산업구성상으로 보면 소위 제3차 산업(판매·서비스업)이 특히 발전하고 또 기업에 있어서도 시장의 확대가 불가결한 요청으로 된다. 서비스·판매업 종사자 혹은 기업의 판매부문 종사자의 증대는 이와 같은 것을 배경으로 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특히 판매활동의 대규모화는 현저한 현상이고 그에 따라 판매노동자의 노동강화와 비인간화가 문제시되고 있다. 각인에게 할당된 노동의 기준량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든 방책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고, 고객을 응대하는 겸손한 태도는 그들의 습성으로까지 되어 있다. 그들은 자기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퍼서낼러티(개성·인격)까지 상품으로서 자본가에게 팔고 있다. 판매업무의 광고부문, 외교부문 가운데 광고부문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외교원이 갖는 자주적 활동의 여지는 극도로 좁아지고 그들 노동의 단순화와 퍼서낼러티의 왜곡이 문제시되고 있다.

하층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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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層階級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부르주아지 이외의 여러 계급은 본래 하층계급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활이 불안정하며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회적인 지위를 표현하는 경우에 특히 하층계급이라 한다.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극히 다양해서 영세기업노동자·일고(日雇) 임시노동자·가내노동자·내직(內職)노동자를 비롯하여 행상·노천상·직인 등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자를 광범하게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적인 점은 어느 것이나 극히 불안정한 취업상태이고 또 소득이 낮고 빈곤한 생활을 할 수 없이 영위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일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실업자이고 상대적 과잉인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들의 생활은 건강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저생활비마저 보장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육체적인 능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저생존비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생활상태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황폐하여, 결국에는 노동에 의한 착실한 생활을 영위하는 의욕마저 잃어버리고 말아 타인의 도움에만 의존하는 피구호적 궁민(窮民,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에 침전해버리고 만다. 하층계급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의식하고 있건 없건 간에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이러한 과정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에게는 당연히 사회보장의 손길이 뻗치지 않으면 안된다.

저소득자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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低所得者層

소득의 고저는 상대적인 것으로 저소득자층을 명확히 규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노동자 가운데서도 특히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영세기업노동자, 잡역이나 토건노동에 종사하는 임시·일고(日雇)의 단순노동자 혹은 내직·가내노동자 또 소자영업에 고용되고 있는 사용인 등이 저소득자층의 대표일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소득이 낮기 때문에 예외없이 빈곤하다. 또 임시·일고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고정직을 갖고 있는 경우에도 극히 불안정한 취업상태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모두 상대적 과잉인구이고 실질적인 실업자라고 보여진다. 이처럼 관청통계에는 현재화(現在化)하지 않는 잠재실업자로서의 저소득자층이 도시·농촌의 하층에 광범하게 존재하며, 방대한 수에 달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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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困層

빈곤의 개념에는 상대적인 의미에서의 빈곤과 절대적 의미에서의 빈곤,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상대적 의미에서의 빈곤으로 보면 자본주의사회의 빈곤층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절대적인 의미에서 본 빈곤층은 어느 기준 이하의 생활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이 기준의 설정에 관해서는 몇 개의 방법이 있는데 예를 들어 론트리(B. S. Rowntrie, 1891-1954)는 실태적(實態的)으로 최저생활비를 산정하여 여기에 빈곤선을 긋고 그 선 이하의 자를 제1차 빈곤자, 그 선상에 있는 자를 제2차 빈곤자로 하였다. 그리하여 전자는 '전(全)수입이 단순한 육체적 능률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한에도 부족한 가족'이고, 후자는 '유용하게든 낭비로든 전수입의 얼마가 다른 용도에 사용되지 않는다. 단순한 체력유지를 위해서는 그 수입으로 충분한 가족'으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엥겔이 주장한 가족지출 중에 점하는 음식비의 비율로 구별하는 빈곤의 규정도 유명하다.그러나 어떠한 빈곤의 규정을 내리더라도 문제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빈곤층의 존재 그것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날 때부터 빈곤층이 되도록 태어난 것은 아니다. 무언가의 사회적 이유에 의해서 현재의 빈곤생활을 할 수 없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보더 라인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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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der line層

생활보호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생활은 빈곤으로 괴로워하고 있고 피보호상태와 마찬가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더 라인층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후진국에 있어서는 사회보장의 내용도, 기준도, 생활보호법도 없다. 따라서 당연히 생활보호를 받아야 할 빈곤상태에 있으면서 피보호자가 되지 못하는 보더 라인층이 방대한 수에 달한다. 그들은 무엇인가의 수단으로 겨우 생활의 식량을 얻고 있지만, 그 수입은 극히 낮고 가족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는커녕 때로는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마저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최저생활비를 밑도는 생활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롬펜 프롤레타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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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pen proletariat

상대적 과잉인구(産業豫備軍)의 또 하층에 피구호적 궁민(窮民)의 세계가 있고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피구호적 궁민은 부랑자·범죄자·매춘부 등과 태어나서부터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와 노동능력자·고아·노령자·불구자·병약자·과부 등으로 타인의 부조를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고 또 그것에 의해서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이 중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신체적으로 노동할 힘을 가지면서 타인의 부조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자이다. 그들은 장기간 실질적인 실업상태로 비참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황폐해버려 이미 정당한 노동에 의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능력을 상실해 버린 자이다. 노동의욕과 정상적인 생활능력을 잃어버린 그들은 이미 노동자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존재는 결코 태어날 때부터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결과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