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현대사회의 대중과 사상/인구·인구문제/인구동향·인구문제

세계의 인구동향 편집

世界-人口動向

역사적으로 보아 세계의 인구를 대체적으로 파악하게 된 것은 1650년경부터이다. 인구통계는 국가가 정기적으로 행하는 인구조사와 인구동태 등록에 의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인데, 근대국가가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은 18세기 말부터이고 인구동태 등록은 오늘날에도 실시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이 숫자도 추측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인구학자가 고심하여 각지의 자료로부터 추계(推計)하여 대체적으로 세계인구가 알려지게 된 것은 이 300년 동안의 일이라 하겠다. 이에 의하면 1650년의 세계인구는 약 5억이었으나 그것이 200년이 지난 1850년에는 11억으로 약 2배 증가했다. 그리고 1950년에는 25억이 되었으며 이 전의 1940년에 이미 약 22억이었으므로, 100년이 채 못되어 세계인구는 배로 늘어난 셈이다. 그리고 30억이 넘는 1960년대 말의 세계인구가 그 반이었던 15억이 된 것은 1900년이었다. 여기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인구는 1650년으로부터 200년 동안에 걸쳐 배증하였는데 그 다음의 배증에는 100년이 걸렸고 그것이 20세기에 와서는 약 50년 동안에 배증되고 있는 것이다.또한 서력기원 초의 세계인구는 2억 내지 3억이었다고 추측되므로 근대 이전에 있어서 세계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데는 1600년이 소요된 셈이다(어떤 학자는 그 이전에는 세계인구가 배증하는 데 1만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다시 현재에 와서는 세계인구가 1년에 약 2% 가까운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증가하면 30년이 지나지 않아 배가(倍加)되어 20세기 말에는 세계 인구가 60억을 넘게 된다.이와 같이 근대 이전에는 세계인구의 증가 템포가 매우 느렸으나 근대에 와서 급격하게 그 속도가 빨라져가고 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그 경향이 한층 더 심해지고 있다.세계 인구동향을 지역별로 보면 1650년 당시에 이미 아시아의 인구는 세계인구의 5분의 3을 차지했으며 그 이후의 증가경향을 보면 유럽은 5배 이상으로 증가했음에 대해 아시아는 약 4배 증가했다. 말하자면 아시아 인구가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저하된 셈이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로서, 아프리카의 경우는 1650-1800년 사이에 절대수(絶對數)가 감소했다. 이는 아프리카로부터의 흑인노예의 이송이 격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근대에 있어서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은 유럽·남북 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로 이 가운에 유럽 이외의 지역은 1650년 당시에 인구가 극히 적었으며 유럽인이 내주(內住)한 뒤부터 증가했기 때문에 근대에 있어서의 세계인구의 비약적 증가의 주체는 유럽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그러나 최근의 급격한 인구증가에는 그 주체(主體)가 유럽으로부터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로 옮겨졌다. 특히 세계인구의 3분의 2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 인구의 증가가 격심해지게 된 것은 세계적인 관심사라고 하겠다. 오늘날 아시아의 인구는 약 25억이나 되어 세계인구의 56%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1년에 약 2%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현재 세계인구의 연간증가수는 약 9천만이라고 하며 그 가운데 3분의 2인 약 6천만이 아시아에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인구증가는 출생수와 사망수의 차이에 의한 자연증(自然增)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남북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대량 이민에 의한 사회증(社會增)에 의한 것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아시아에 다른 곳으로부터 대량의 인구이동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비정상적인 인구증가는 자연증에 의한 것이다.인류는 오랫동안 출생·사망이 모두 인구 1,000에 대해 40 내지 50이라는 높은 비율이 계속되어 출생수가 사망수보다 약간 많은 것에 의해서 증가해 왔다. 그것이 유럽에서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망률이 내려가고 출생률은 그대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인구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는 출생률도 저하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인구증가의 기세는 억제되었다. 만약에 출생률이 계속 저하되어 사망률보다 낮아지면 인구는 감소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구 변동의 과정에서 출생률과 사망률의 동향이 고출생(高出生)·고사망(高死亡)으로부터 고출생·저사망(低死亡)의 단계를 거쳐 저출생·저사망으로 바뀌는 것을 '인구 전환', '인구 근대화', 또는 '인구 혁명'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최근의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인구의 대격증은 '인구 폭발'이라고 불린다.유럽은 저출생·저사망의 단계에 들어가서 인구 1000에 대해 출생률 20전후, 사망률은 10 전후이며 증가율은 약 1% 정도이나,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등의 여러 나라에서는 출생률이 아직 전근대적인 고수준에 있으며 다만 사망률만은 UN이나 선진제국의 협력으로 공중위생이 개선되어 급속하게 저하되었다. 따라서 이런 지역에서 급격한 인구증가를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에서는 주로 공업화·근대화가 늦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인구증가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그리하여 이러한 지역에 빈곤·기아 상태가 나타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인구문제 편집

人口問題

인구의 크기라든가 그 구조, 또는 변동이 사회의 존속과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질 때에 거론되어지는 인구현상이 다름아닌 인구문제이다. 그러므로 인구현상 그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같은 인구현상도 사회경제의 발전단계가 달라지면 문제로서 다루어지는 방법도 달라진다.인구문제에는 질적 인구문제와 양적인 인구문제가 있다. '질적 인구문제'란 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계층이나 집단의 특성이 인구 전체의 존속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문제이다. 도시화와 공업화의 결과로서 청소년층 인구의 체질이 약화되는 것으로 말미암아 전체인구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오는 문제나, 흑인 출생률이 높기 때문에 전체 인구 가운데에서 흑인의 비중이 커지지 않을까 하는 백인의 불안감 같은 것에서 오는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질적 인구문제는 인구구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이에 대하여 '양적 인구문제'란 인구의 크기나 분포상태, 혹은 그 변동의 규모와 속도 등으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인구문제로서 인구증가가 경제발전에 압박을 가한다든가, 현재의 국토 면적에 비하여 인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일 따위에서 오는 문제이다. 흔히 인구문제라고 할 경우의 대부분은 이 양적 인구문제를 말한다.인구의 양에 대한 고찰형태로는 인구가 너무 많다는 사고방식과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즉 '과잉 인구론'과 '과소 인구론'이다. 인구가 과잉되었다든가 과소하다든가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에 대하여 과잉되고 있는가, 혹은 과소한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가장 많은 경우 그 기준이 되어 온 것은 국토·생활자료·천연자원이나 넓은 의미에서의 경제력 등이며 그 밖에 국방의 문제도 있다. 맬서스(T. R.Malthus)의 과잉 인구론은 생활자료에 대한 것이었으며, 한국의 과잉인구를 말할 때는 주로 국토를 두고 하는 말이다. 또한 국토의 방위라는 입장에서 과소인구가 문제시되었던 일도 있다.과잉인구 혹은 과소인구에 대하여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정인구(適正人口)'라는 개념도 있다. 적정인구에 대하여 대표적인 이론을 내놓는 사람은 경제학사(經濟學史) 학자 에드윈 캐넌(Edwin Cannan)으로서, 그는 경제학적 입장에서 토지와 자본을 관련시켜서 1인당 수확이 최대량이 되는 인구의 크기가 적정인구라고 했다. 그러나 적정인구의 개념에 대해서는 적정인구의 양을 측정하는 일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있다.인구의 과잉 및 과소는 생활자료·국토 등과 관련시켜 생각할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아서 경제사회의 발전단계와 그 당시의 현실적인 정치적 요구로 인하여 그 나타나는 양상이나 다루어지는 방법이 달라진다.고대 그리스에서는 그것이 도시국가였으며, 시를 중심으로 둘러싼 비교적 좁은 농촌을 경제적 기초로 삼았던 국가였기 때문에 늘 인구의 압박이 있었다.기원전 7·8세기에 그리스인이 지중해 연안에 진출하여서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도 인구압박의 결과라고 한다. 따라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도 인구에 대해 논하였는데, 그것은 인구가 너무 많거나 적어도 도시국가의 정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 적정인구의 유지를 주장했으며,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인구의 질적·양적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고대 그리스도 말기에 이르러서는 인구의 감소가 거론되었으며 그 원인으로는 시민의 도덕적 퇴폐가 지적되었다.고대 로마에서는 그것이 노예노동을 경제적인 기초로 하는 제국(帝國)이었기 때문에 늘 인구를 증가시킬 필요가 있었고 따라서 거기에서는 인구과소가 논의 대상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Augustus:재위 BC27-AD14)는 결혼과 출산을 국민의 의무로 하고 또한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자는 일정기간 내에 재혼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했으며, 나아가서는 결혼하지 않는 자에게는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률까지 제정했다.중세 유럽은 일반적으로 봉건사회가 그러했듯이 인구증가는 적었으며 정체상태에 있었다. 사상적으로는 그리스도교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원래 그리스도교에는 금욕사상과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舊約聖書, 創世記 9장17절) 하는 다산사상(多産思想)이 있는데 로마 제정(帝政) 말기부터 중세 전기(前期)에 걸쳐서 가톨릭교회에서는 금욕사상이 우세하였다.그러나 중세 중엽에 이르러서는 교부(敎父)들에 대한 엄격한 금욕사상도 완화되어서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순결을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이나 출산을 선(善)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또한 중세 후기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는 독신의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을 권장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가 많다는 것이 바로 국력(國力)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하여 인구론, 인구사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이르러서는 독신의 금욕생활이 오히려 죄악이라고 하여 이를 부정해 버렸다. 당시는 바로 근대국가성립의 직전이었기 때문에 인구증가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강렬했던 것이다.근대국가는 가톨릭적 세계를 타파하고 절대군주 아래 민족국가로서 성립하였으며,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에 따라 해외에 식민지를 획득하면서 발전해갔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상비군(常備軍)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인구는 병력·조세 부담자로서 중시되었고 그 최대한의 증대가 국가에 의해서 요청되었다. 따라서 16·7세기의 인구사상은 인구가 적다고 하는 과소인구론이었으며, 또한 이 시대에 영국의 토머스 먼(Thomas Mun),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존 그론트(John Graunt) 등에 의해서 인구의 과학적 연구에 대한 기초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18세기 말까지는 인구사상으로서 과소연구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하겠다.그것이 18세기말부터 19세기에 걸친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대량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여 거기에 노동자 계급의 생활을 둘러싼 심각한 빈곤문제가 나타나게 되자 사회의 인구에 대한 사고방식이 일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때의 인구론은 과소인구론에서 과잉인구론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그러한 사상의 중심이 된 것이 맬서스(T. R. Malthus)의 인구론이다.

맬서스의 인구론 편집

Malthus-人口論

맬서스가 『인구의 원리』를 쓰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당시에 널리 읽히고 있었던 혁명적 급진주의자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1756-1836)의 저서 『연구자(硏究者)』(1797)에 관한 그의 부친 다니엘 맬서스(Daniel Maithus, 1730-1800)와의 논쟁 때문이었다. 부친과 토론하는 동안에 그는 자기의 생각을 명확하게 글로 써서 발표할 필요를 느끼게 되어 단숨에 써서 탈고, 익명으로 발표한 것이 『인구의 원리』(1798)였다. 이 논문은 예상 밖의 반응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각 방면으로부터 비판 혹은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되어 그는 이를 반박하며 해명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풍부한 자료를 추가하여 논점(論点)을 명확히 한 다음 1803년에 제2판을 내어 놓았다. 이것도 역시 커다란 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이 저서는 저자의 생존중에 6판을 거듭하게 되었다.맬서스의 『인구의 원리』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인구는 제한을 받지 않으면 2, 4, 8, 16, 32와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에 대하여 인간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생활자료 및 식물(食物)은 2, 4, 6, 8, 10과 같이 산술급수적으로 밖에는 증가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성욕이 불변(不變)하다는 것과 음식물의 생산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부터, 무한대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인구가 그 생활자료에 의해 규제받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이는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했다. 궁핍(빈곤·기아)등과 악덕(전쟁·영아 살해)의 존재는 이 법칙의 필연적 결과라고 했다. 이것을 맬서스는 제2판에서 다소 수정하여 다음의 3가지 명제로 정리하였다.(1) 인구는 생활자료, 특히 식량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제약된다. (2) 인구는 극히 유력하고 명백한 장애에 의해서 저지되지 않는 한, 그 생활자료가 증가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증가한다. (3) 이러한 장해와 아울러 인구의 뛰어난 번식력을 억압하고 그 결과를 생활자료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해로서 모든 도덕적 억제, 죄악 및 궁핍을 포함하게 된다는 것이다.맬서스는 인구와 생활자료와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것으로 초판에서는 악덕과 궁핍을 들었으나, 이는 인간의 주체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각 방면에서 나왔기 때문에 제2판 이후에는 '도덕적 억제'를 추가시켰던 것이다. 도덕적 억제라는 것은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결혼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악덕과 궁핍을 발생시키는 조건으로 '적극적 장해', 도덕적 억제를 '예방적 장해'라고 불렀다. 적극적 장해란 사망률을 높임으로써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것이며, 예방적 장해란 출생률을 저하시킴으로써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출생률을 저하시키려면 결혼의 연기 외에 계획적인 피임 등도 있겠으나 맬서스는 이 방법을 반대하였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맬서스의 생각과 같이 인구가 항상 생활자료·식량의 한계에까지 증가한다고 하면 물질적인 진보에 의한 인류의 생활상태의 영속적인 개선은 불가능한 것으로 된다. 왜냐하면 생활상태의 물질적 개선(이는 생활자료의 증가가 된다)은 필연적으로 인구의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시대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이며, 그 결과로서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몰려 들어온 노동자 계급의 빈곤이 비참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궁핍과 이로부터 나오는 악덕을 그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고 이를 인구법칙의 면에서 설명했던 것이다. 그는 인구법칙이란 어길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의해서 고드윈 등 당시의 낙관적 개량주의자의 자유주의적 사회개혁론에 반대했던 것이다.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해서는 그 후 많은 비판이 나왔다. 이론적으로는 인구가 실제에 있어서 생활자료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것인지 혹은 생활자료의 부족에 의하여 방해를 받지 않으면 증가된다고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과 같은 비판이 있었다. 또한 사상적 입장에서도 빈곤을 합리화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 하여 마르크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맬서스는 인구와 식량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절대적 과잉인구를 주장했으나, 마르크스는 과잉인구는 식량에 대해서가 아니고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자본에 대한 것이며 그것은 '상대적 과잉인구'라고 논하였다. 맬서스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인구법칙을 주장했음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그와 같은 절대적 인구법칙은 없으며 시대가 변하면 인구법칙도 변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역사적 법칙이라고 했다.맬서스의 인구론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입장으로부터 반대를 받았는데 그 이후의 현실적인 움직임도 그가 주장한 바와는 달랐다. 맬서스의 예상과는 반대로 농업생산력이 대단히 발전하게 되었으며 또한 출생률의 저하도 그가 생각했듯이 결혼을 연기하는 도덕적 억제에서가 아니라, 그가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킨다고 하여 반대했던 피임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더구나 그것은 빈곤계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상층계급(中上層階級)에 의해서였다.이와 같이 그의 인구론은 이론적으로나 도덕적·이데올로기적으로도 비판되었고, 또한 현실은 그가 우려했던 사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빚어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의 인구론은 여전히 읽히고 있으며, 요즘에는 오히려 '맬서스의 부흥'이 논의되고 있다.그 이유로서는 사회에 대한 인구의 압력을 그가 이론적으로 지적했다는 점과, 또한 현재 20세기에 들어와서, 특히 최근의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기아상태는 바로 그가 우려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현실화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여 새삼스럽게 그의 인구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있을 것이다.

신맬서스주의 편집

新Malthus主義

신맬서스주의란 맬서스의 인구원리를 시인하고 이 원리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해악을 방지하는 방법으로서 피임·산아조절을 주장하는 입장이며 그 운동이다. 맬서스는 종교가이고 극히 엄격한 도덕주의자였기 때문에 인구법칙에서 오는 해악에의 대책으로서 도덕적 억제를 주장하고 피임은 찬성하지 않았던 모양이나, 그의 인구론을 받아들인 영국 공리주의자(功利主義者)들에 의하여 현실적인 방법으로서 산아조절이 주장되고 신맬서스주의의 이름으로 이 운동이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맬서스 연맹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출생률이 저하하여 이 운동은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다는 뜻에서는 그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되었는데 20세기에 와서 가정생활의 건전화를 위한 산아조절·가족계획을 추진하는 운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현대의 인구문제 편집

現代-人口問題

'인구폭발'이라는 말이 나타내듯이 20세기, 특히 1940년대부터 세계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는데 세계적으로 보아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이나 혹은 그 영향이 한결같지는 않다.오늘날의 인구문제는 전세계를 하나로 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유럽·캐나다·미국·일본 등의 선진국과 그 밖의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의 둘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인구폭발이라고 표현되는 이 큰 증가는 후자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출생률은 여전히 높은 데 비하여 사망률이 급속하게 저하했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현저하게 되었고, 이 증가된 인구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식량이 부족하여 기아상태를 나타내고 있다.이에 대하여 선진지역에서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낮고 인구증가의 기세는 완만한 데 비해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이 이루어져 공업화가 대규모로 급격하게 진전되고 그 결과로 노동력의 부족이 문제시되고 있다.이와 같이 한편에서는 인구과잉, 다른 지역에서는 인구과소가 문제로 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인구폭발 현상을 보이고 있는 지역의 인구가 세계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1년 동안에 2% 내지 3%라는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더욱이 이러한 지역에서는 식량부족이 일어나 평균의 식생활은 영양학적으로 보아 불충분하거나 기아상태에 놓여 있다. 저개발국의 사람들은 선진지역의 사람들에 비하여 영양섭취량이 한 사람당 1일 평균 300칼로리가 적으며, 단백질의 소비량은 3분의 2이하, 지방질 소비량은 3분의 1이하의 식생활을 하고 있다. 제2차대전 전에는 저개발국에서 양곡류를 선진국에 수출했었는데 전후에는 수입국이 되고, 그 양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이들 저개발 지역에서는 전후에 2%의 인구증가에 대하여 1인당 식량의 생산은 매년 3분의 1%밖에 증가하지 못하였으며, 더구나 1950년대 후반부터는 전체적인 증가가 정지되어 1960년대에 와서는 약간의 감소조차 보이고 있다.이와 같은 사태는 선진제국에 대해서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중압으로 작용하여, 이에 대한 대책이 선진국의 책임으로 되어 있는 실정이다.인구문제는 이제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므로 국제적인 여러 기관에서도 인구문제를 각각 의제(議題)로 삼고 있다. 국제연합에는 인구 위원회가 있어 해마다 한 번씩 회합을 열고 있으며, 상설기관으로서 인구부(人口部)를 두어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인구정책 편집

人口政策

인구문제에 대하여 국가가 취하는 대책이 인구정책이다. 인구정책에는 출생·사망·이동의 인구과정 자체에 국가가 개입하여 이를 조정하는 정책과, 당면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제·사회·문화 등의 측면에서 취하는 정책이 있다.사망률이 너무 높다든가 출생률이 낮아서 국가의 장래를 담당하는 국민의 수가 감소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나, 지역적으로 인구가 편재(偏在)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구의 현상(現狀)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이를 조정하기 위해 취하는 정책이 전자이고, 인구증가나 인구이동이 급격히 진행된 결과 식량·주택·고용·교육시설 등의 면에 취해지는 정책이 후자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격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고, 인구문제가 심각해진 결과 인구의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인구조정을 위한 정책이 취해지는 경우도 많다.인구정책의 내용에는 (1) 인구 자체에 대한 정책(사망률을 저하시키는 정책·출산억제·이민정책·전출입 제한 등), (2) 경제면에 있어서의 정책(식량증산·자원개발·임금·고용대책 등), (3) 사회·문화면에 있어서의 정책(주택·교통·문교정책 등)이 있다.이 가운데 첫째의 인구 자체에 대한 정책에서 사망에 관해서는 사망률을 저하시키는 것이 과제가 되며 이를 위해서는 환경위생의 개선책 등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이에 반해 출생률에 관해서는 이를 저하시키기 위한 정책과 이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생각할 수 있다.과잉인구 대책으로서는 출생률을 저하시키기 위한 가족계획의 보급이 있으며 인구증가가 정체하고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출산이나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이 취해진다. 인구이동에 관한 정책으로서의 이민장려책(이민에 대한 행정적·경제적 원조)은 과잉인구 대책으로서 생각되어질 뿐만 아니라 당면한 실업문제, 경제불황대책으로서 실시되는 경우도 많다.

이동대책은 인구의 지역적 분포상황이 바람직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경제적·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취해진다. 전입·전출을 규제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 하겠다.또한 최근에 있어서와 같이 대도시 지역에의 인구집중이 극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지방에 경제적 사회적 개발을 행함으로써 인구집중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도 이 정책이며, 이러한 것은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취해지는 인구정책이라고 하겠다.이 분야의 당면한 정책으로서는 선진지역에서의 고용대책·주택·교통대책이 긴급한 문제로 되어 있으나, 저개발지역에서는 공업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농촌지역에서의 생활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농촌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는 형태로서의 인구이동이 많고 이것이 도시에서의 기아상태를 확대·심화시키고 있다.따라서 식량정책이 인구정책으로서 극히 중대해져가고 있다. 오늘날 국제연합의 식량농업기구나 그 밖의 기관에서 실시하는 원조와 지도 아래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식량증산을 위한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구노령화 편집

人口老齡化

인구 전체에서 차지하는 노년인구(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높아가는 현상. 일반적으로 노령인구 비율의 증가로 파악되는 인구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대체적으로 근대화 과정과 함께 나타난다. 거시적으로 보아 근대화는 인구변동과 병행하여 일어나며 인구변동은 주로 사망력 저하와 출산력 저하에 의해 이루어진다. 출산력 저하는 소년인구비율을 감소시키고 사망력 저하에 따른 평균수명의 연장은 노령인구를 증가시키므로 인구구조상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며 이러한 사회를 노령화사회라고 한다.노인인구의 상대적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에는 65세 이상 인구를 경제활동 인구(15-64세)로 나눈 노령인구부양비, 노령인구를 연소인구(0-14세)로 나눈 노령화지수가 있다. 또, 인구노령화 정도를 알게 해주는 수치로 평균수명이 있다. 한국은 1962년부터 출산율이 낮아지기 시작하여 한국부인의 1인당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전 가임기간 동안 갖게 될 총출생아수)은 60년 6.0명에서 70년 4.2명, 90년 1.7명이 되었다.또, 사망률도 함께 감소하여 인구 1,000명당 사망자수가 60년의 14.0명에서 91년에는 5.9명으로 낮아졌다. 따라서 65세 이상 인구비율도 계속 증가하여 60년에 3.3%였던 것이 91년에는 5.1%로 증가하였으며, 2020년이 되면 12.5%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한국의 노령인구부양비를 보면 60년 6.1%에서 90년에는 7.4%로 되었고, 2020년에는 17.5%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노령화지수도 60년의 7.7%에서 90년 20.1%로 크게 증가하였다.세계 각국의 노령화지수와 비교해 보면 스웨덴의 106.44(88년), 일본의 71.14(91년)에 비해서는 아직 낮지만, 필리핀의 8.83(89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96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95년 한국 사회지표'에 의하면, 인구 1천 명당 출생률은 90년 22.7명에서 94년 16.5명으로 감소하였고, 사망률도 7.3명에서 5.5명으로 줄었다.

인구사회학 편집

人口社會學

사회학의 특수부문으로서 인구현상과 사회생활·사회집단과의 관련이나 사회관계·사회제도·사회의식 등이 인구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학문. 인구사회학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인구의 연구를 사회학적 연구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F. 퇴니에스, R. 해벌의 인구지학(人口誌學), 뒤르켐 학파의 사회형태학 등이며, 다른 하나는 인구현상 자체의 사회학적 연구로서 G. 한센의 인구주류(人口周流) 이론, 베르티용의 차별출생률 연구, A. 뒤몽의 사회적 모관현상설(毛管現象說) 등이다. G. 매켄로드의 인구양식 이론도 이 계보에 속한다. 이상의 두 방향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양자의 통합이 바람직하다.M. 알박스에 있어서의 사회현상이 형태적 측면을 연구하는 넓은 뜻의 사회형태학과 인구를 연구하는 좁은 뜻의 사회형태학과의 구별은 이 통합에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