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문화·민속/한국의 연극/한국의 가면극/한국 가면극의 기능보유자
한국 가면극의 기능보유자〔개설〕
편집韓國假面劇-技能保有者〔槪說〕
전승연극으로서의 탈놀음은 그 분포가 거의 전국적인 것이었으나 현재로서는 해서지방(海西地方)·경기지방·영남지방에 규모있게 전해오고 있다.
이 밖에도 함경도의 북청사자(北靑獅子)놀음, 강원도 강릉의 관노탈놀이(官奴假面劇)가 있고 유랑 예인집단(流浪藝人集團)인 남사당패(男寺黨牌)의 탈놀음이 있다.
탈놀음의 예능을 보유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 지방 출신의 서민들로서 그 고장에서 세습적으로 놀아오는 탈놀음을 어려서부터 익혀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1964년 이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 의하여 민속극이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로 지정되면서 기능보유자로 위촉되었다. 이들은 소정의 생계 보조비와 전수(傳授) 보조비를 받고 있는데,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 고령의 사람들로 총 58명에 이르고 있다.
<沈 雨 星>
양주별산대놀이의 기능보유자
편집楊州別山臺-技能保有者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京畿道楊州郡州內面維楊里)에서 약 150여년 전부터 전해오는 이 탈놀음은 본산대계(本山臺系)에서 떨어져 나온 산대놀이라 하여 '별산대'라 불리는 것이다.
탈놀음의 기능자로는 이미 고인이 된 분으로 김성태(金星泰, 1894∼1962), 박준섭(朴俊燮, 1886∼1959), 박동환(朴東煥, 1888∼1965), 김성대(金成大, 1907∼1969), 박상항(朴湘恒, 1890∼1971) 등이 손꼽히는 사람들이며 그 밖에 주요 연희자는 다음과 같다.
서정주(徐貞柱, 1893년생, 취바리)
신순봉(申順奉, 1908년생, 소무, 상쇠잡이)
고명달(高明達, 1911년생, 노장, 눈끔적이)
유경성(柳敬成, 1918년생, 소무, 탈 제작)
박교응(朴敎應, 1922년생, 첫상좌, 완보, 말뚝이)
김상용(金相容, 1926년생, 먹중, 원숭이)
노재영(盧載永, 1932년생, 옴중, 취바리)
석거억(石巨億, 1911년생, 먹중, 피리)
통영오광대의 기능보유자
편집統營五廣大-技能保有者영남지방의 오광대(五廣大)놀이 중의 하나인 '통영오광대'는 경상남도 통영시에 전해오는 탈놀음으로, 1964년 12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이래, 6사람의 기능보유자가 위촉되어 있다.
오정두(吳正斗, 1900년생, 영노, 탈 제작, 악사)
김삼성(金三成, 1911년생, 큰어미, 사자탈)
유동주(劉東柱, 1917년생, 꼭두각시, 작은 어미, 포수,호적)
문창섭(文昌燮, 1918년생, 문둥탈, 말뚝이, 사자머리, 소무, 악사)
고영수(高永守, 1919년생, 손님 사자)
강연호(姜連浩, 1931년생, 큰어미, 꽹쇠)
강영구(姜永九, 1931년생, 말뚝이)
이기숙(李基淑, 1922년생, 원양반, 할미양반)
그 밖에도 장재봉(張在奉), 박정대(朴正大), 장용기(張容基) 등이 이 탈놀음을 전한 공로자들이다.
고성오광대의 기능보유자
편집固城五廣大-技能保有者경상남도 일대에 분포된 오광대놀이 중의 하나로, 1970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도 연희자 중에 공이 컸던 사람으로는 이평언(李平彦), 김창준(金昌俊), 정창순(鄭昌順) 등이 있으며,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조용배(趙鏞培, 1929년생, 중, 말뚝이)
허종복(許宗福, 1930년생, 말뚝이, 탈 제작)
박진학(朴鎭鶴, 1913년생, 접광대)
허판세(許板世, 1920년생, 양반)
허현도(許現道, 1921년생, 큰어미, 비비)
최규칠(崔圭七, 1904년생, 양반, 비비)
이금수(李今洙, 1919년생, 접광대, 악사)
이윤순(李允純, 1918년생, 악사)
봉산탈춤의 기능보유자
편집鳳山 技能保有者
산대계(山臺系) 탈놀이의 해서형(海西型) 중의 하나인 봉산탈춤은 1945년 8·15광복 이후 월남한 몇 사람의 연희자들에 의하여 전해지다가 1967년 6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월남한 연희자 중에서 이 놀이의 재현을 위하여 힘써 온 김진옥(金辰玉)이 1969년 사망함으로써 한동안 그 전수가 위기에 처했었으나, 한국가면극연구회(韓國假面劇硏究會)의 노력으로 현재는 전수사업을 활발히 펴고 있다.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이근성(李根成, 1895년생, 목중, 취바리, 사자)
양소운(梁蘇云, 1924년생, 사당, 미얄, 무당)
김용익(金龍益, 1902년생, 목중, 사자, 마부, 거사)
윤
옥(尹
玉, 1925년생, 상좌무, 돌머리집, 목중)
오명옥(吳明玉, 1906년생, 파리, 해금)
김선봉(金先峰, 1922년생, 상좌, 목중)
최경명(崔景明, 1912년생, 말뚝이, 취바리)
동래야유의 기능보유자
편집東萊野遊-技能保有者
지금은 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의 한 구(區)로 편입되어 있는 동래(東萊)는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까지만 하여도 이 지방의 산업·교통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동래야유'뿐만 아니라 줄다리기, 연날리기 등 갖가지 큰 민속 행사가 무수히 전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7년 12월 동래 출신으로 이름 있는 탈꾼(假面劇演戱者) 박덕업(朴德業, 1890∼1972)이 중심이 되어 이 놀이를 재현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촉되어 있는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문장원(文章垣, 1917년생, 원 양반, 탈 제작)
이남선(李南先, 1907년생, 제대각시)
양극수(梁克銖, 1918년생, 할미)
양세주(梁世珠, 1922년생, 악사, 탈 제작)
노진규(盧振奎, 1905년생, 양반)
신우언(辛祐彦, 1899년생, 연출 지휘)
천재동(千在東, 1915년생, 탈 제작)
강령탈춤의 기능보유자
편집康翎-技能保有者
해서지방의 탈놀음 중의 하나인 강령탈춤은 황해도 강령에서 해마다 세습적으로 놀아온 것인데, 1945년 8·15 광복 후 월남한 기능 보유자들에 의하여 1970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능보유자로 위촉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다.
박동신(朴東信, 1909년생, 탈 제작, 악사)
양소운(梁蘇云, 1924년생, 할미 광대, 노승, 취바리)
김지옥(金知玉, 1922년생, 맏양반, 목중)
지관룡(池觀龍, 1909년생, 장고, 피리)
김정순(金正順, 1923년생, 상좌)
김실자(金實子, 1928년생, 둘째양반, 마부)
강령탈춤 역시 봉산탈춤의 전수소로 되어 있는 한국가면극연구회가 그 전수를 맡고 있다.
수영야유의 기능보유자
편집水營野遊-技能保有者
부산시 동래구 수영동(釜山市東萊區水營洞)에 전해오는 이 탈놀음은 '동래야유'보다 연조가 더 깊은 것으로, 이미 고인이 된 최한복(崔漢福)이 중심이 되어 재현의 기미를 보이다가 1971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바 있다.
위촉된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태명준(太命俊, 1905년생, 범<담보>)
김귀수(金貴秀, 1909년생, 할미)
조덕주(趙德周, 1914년생, 탈 제작)
윤수만(尹守萬, 1916년생, 악사<꽹쇠>)
김달봉(金達鳳, 1917년생, 영노)
조복준(趙福俊, 1920년생, 악사<장고>)
북청사자놀이의 기능보유자
편집北靑獅子-技能保有者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전지역에서 놀이되던 북청사자놀이는 월남한 연희자들에 의하여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는 바, 그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윤영춘(尹迎春, 1907년생, 사자 앞머리)
동태선(董泰善, 1903년생, 북)
변영호(邊永鎬, 1907년생, 사자 제작, 악사)
이근화선(李根花善, 1924년생, 사당춤)
동성영(董誠日榮, 1909년생, 사자 앞채)
여재성(呂在成, 1919년생, 사자 뒷채)
전중식(全仲植, 1914년생, 악사<퉁소>)
김수석(金壽石, 1907년생, 사자 앞채)
전광석(田光石, 1917년생, 칼춤)
송파산대놀이의 기능보유자
편집松坡山臺-技能保有者탈놀음 중에서 가장 최근에 지정되었다.
김윤택(金潤澤, 1904년생, 첫상좌, 취바리 외)
이범만(李範萬, 1907년생, 팔먹중, 샌님)
한유성(韓有星, 1908년생, 눈끔적이 외)
이충선(李忠善, 1901년생, 잽이)
문육지(文陸地, 1913년생, 완보, 쇠뚝이 외)
김학석(1940년생, 연희)
남사당덧보기의 예능보유자
편집男寺黨-藝能保有者
아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새로 발굴된 남사당덧보기의 예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남형우(南亨祐), 양도일(梁道一), 조송자(趙松子), 박계순(朴季順), 남기환(南基煥), 박용태(朴龍泰), 김세중(金世中), 송순갑(宋淳甲).
<沈 雨 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