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인도의 사상/불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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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

불교란 불타가 설법한 가르침이며 동시에 진리를 깨달아 불타(깨우친 사람)로 될 것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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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陀 Buddha (전 566 ?∼전 480 ?)

불교의 창시자. 성은 고타마(Go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 悉達·悉陀). 기원전 566년경에 석가족(釋迦族)의 중심지인 카필라성(현재는 네팔)에서 국왕인 정반왕(淨飯王, 수도다나)의 장자로서 탄생하였다(그의 연대는 확정적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북방에 전해지고 있는 제전설에 의한 연구결과에 따랐다)고 한다. 16세 때에 비(妃)를 맞아들여 라훌라(Rahula)라는 아들을 얻었다. 인생문제에 깊이 번뇌하여 29세 때 출가(出家)하였다. 두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서 그들이 체득한 선정(禪定)을 따라 행하였으나, 그 수행법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산림(山林)으로 들어가 6년간 고행에 힘썼다. 그러나 고행(苦行)이 무의미한 것을 알고, 부다가야(佛陀伽倻, Budda gaya)의 보리수(菩提樹) 밑에서 침사명상(沈思瞑想)하여 35세에 대오성도(大悟成道)하여 각자(覺者, 붓다)가 되었다. 그후 여러지방을 편력하면서 중생교화에 힘썼으며, 쿠시나라에서 80세로 입멸(入滅)하였다(전 480 ?). 존칭하여 석가모니(釋迦牟尼, Sakiyamuni-석가족 출신의 聖者, 釋尊)라고 한다.

원시불교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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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始佛敎-思想

고타마에 의하면 당시의 철학자들은 결국 해결되지 않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확집(確執)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결과로 생각지도 않은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고타마는 이와 같은 논쟁은 의의(意義)가 없는 것이라 하여 논쟁에 가담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와 세계는 상주(常住)한 것인가 혹은 무상한 것인가? 나와 세계는 유한(有限)한 것인가 혹은 무한(無限)한 것인가? 신체와 영혼(靈魂)은 하나인가 혹은 별개의 것인가? 완전한 인격자는 죽은 뒤에 생존하는가 혹은 생존하지 않는 것인가? 등의 질문이 나왔을 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14無記> 또는 <捨置記>). 왜 대답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런 식의 형이상학적 문제의 논의는 무익한 것이어서 진실한 인식(認識, 正覺)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하나의 입장을 고수하여 기타의 것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그는 여러 가지의 철학설이 어느 것이나 특수한 집착에 기인한 편견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성찰(省察)하면서 내면의 적정(寂靜)한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진실한 바라문 또는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도리를 설파하는 것이라 표방하고 있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생활해야 할 도리를 밝힌 것인데, 이 도(道)나 또는 규정을 법(다르마)이라고 불렀다. 불교의 실천적 인식이 최초로 당면한 문제는 인생의 고(苦)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어디에 있거나, 또 어떠한 것에 의지하더라도 고(苦)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고(苦)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고인 것이기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모든 것이 무상(無常)한 것인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일체의 사물(事物)은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찰나(刹那)의 순간도 정지하는 일이 없다(諸行無常). 그러므로 사람은 어느 것이건 '내 물건', '나의 소유(所有)이다'라고 집착해선 안 된다. 세인(世人)이 아트만이라고 해석할지도 모르는 여하한 원리(原理) 또는 기능도 실제는 아트만이 아니다. 또한 아트만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불교에서는 실체적 혹은 기능적인 나를 상정하려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법(法, 다르마)을 인정하였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현실 존재로 하여금 현재 이와같이 존재하게 하는 규정, 규범인 것이다. 우리들의 현실 존재 속에는 수많은 법이 작용하고 있다. 거기서 우리들의 구체적인 현실 존재를 해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법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들의 존재는 5온(五蘊, 五陰), 즉 5종류의 법의 영역에 있어서 유지(維持)되며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5온(五蘊)이라 함은 색(色-감각적 물질적인 것 일반), 수(受-意義 중에 무엇인가 印象을 받아들이는 것), 상(想-意義 속에 像을 구성하는 일), 행(行-능동적이며 잠재적인 형성력), 식(識-대상을 각각 구별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다. 우리들의 존재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종류의 법의 영역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이루어진 모든 것을 총괄하여 세속적 입장에서 그것을 우선 나(我), 자기(自己)라고 부르지만, 우리들의 중심주체(中心主體)는 그 어느 법의 영역 속에서도 인정할 수가 없다. 일체의 '나, 나의 것'이라고 하는 관념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별도의 법체계로서, 예컨대 우리의 인식 및 행동이 성립하는 영역으로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6입(六入)이 세워지고, 또한 그것에 대립하는 대상(對象)을 성립시키는 영역으로서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6경(六境)을 들고 있다. 세인(世人)은 물론, 일반 철학자들도 이러한 이법(理法)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무엇인가 상주 영원(常住永遠)한 내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고집한다. 그로 말마임아 많은 번뇌가 생기고, 그것에 고뇌(苦腦)하게 된다. 인간의 번뇌에는 탐욕(貪慾)·노기(怒氣)·미혹(迷惑)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것은 망집(망집 妄執=갈애 渴愛)에 기인하고 있다. 인간이 이 망집에 번뇌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나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고(苦)·무상(無常)·비아(非我)의 이치를 깨달아 정당한 지혜를 완성하면 이 망집을 단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인식을 얻으면 이미 그 무엇인가를 나(我)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여 욕구(慾求)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여 진리의 인식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수행(修行)하는 데 노력하고, 계율(戒律)을 엄수하여 선정(禪定)을 닦을 필요가 있다. 그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고 망집을 단절한다면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해탈(解脫)의 경지이다. 그것을 불사(不死)라든가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열반이라는 말은 원래 '불어 끈다(吹消)는 것' 혹은 '불어 끈 상태(吹消狀態)'를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바람이 타는 불을 불어 끈 경우와 같이, 성하게 타오르는 번뇌의 화염(火焰)을 지혜에 의하여 불어 꺼서 고뇌가 없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거기에서는 적정(寂靜)한 최상의 안락경지(安樂境地)가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고타마는 이상과 같은 도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弟子)·신자(信者)·이교도(異敎徒:外道)들에게 설교하였는데, 설교의 강격(綱格)으로서 종합요약된 것이 <4제설(四諸說)이다. 그것은 다음네 가지 종류의 진리를 가리킨다. (1) 고제(苦諦):범부(凡夫)의 생존은 고(苦)라고 하는 진리 (2) 집제(集諦):범부의 여러가지 고뇌는 결국 번뇌 특히 망집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진리 (3) 멸제(滅諦):망집을 완전히 소멸함에 따라 고(苦)를 소멸해 버린 열반이 해탈의 이상경(理想境)이라고 하는 진리 (4) 도제(道諦):이 고(苦)를 소멸로 인도하는 수도법은 '8정도(八正道)'에 불과하다고 하는 진리. 8정도(八正道:또는 八聖道)라 함은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을 이른다. 또 연기(緣起)의 교설(敎說)은 우리들의 미혹된 생존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성립되어 있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그와 동시에 그 근본 조건을 소멸시킴으로 해서 우리들의 미혹된

생존도 소멸할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원시불교 성전(聖典) 중에는 여러 가지 형식의 연기설(緣起說)이 설명되고 있으나, 어느 연기설이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苦)로 번뇌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직시하라고 지적한다. 또한 고(苦)의 근본원인은 우리의 무명(無明) 혹은 무지(無知)에 있으므로 그 무명(無明)을 소멸시켜야만 우리들의 고(苦)도 소멸한다고 하는 논리를 공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가장 발달된 형식의 연기설에서는 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取·有·生·愛·老死의 12단계를 제시한다).

원시불교에 있어서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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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始佛敎-實踐

불교가 가르치는 실천은 한 마디로 말해서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즉 생활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올바른 도덕은 고금을 일관한 영원한 법으로 고타마가 새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진실하게 노력하는 사람, 진실한 바라문이 될 수 있는 도를 사람들에게 교시(敎示)하는 자임을 표방하고 있었다. 그는 또 옛날의 덕행이 있는 성선(聖仙)을 칭찬하고 있다. 8정도(八正道)의 실천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당시의 신흥 자유사상가의 사이에서 도덕에 위반되는 일일지라도 현세(現世)의 쾌락에 탐욕할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자기몸을 가혹하게 하는 고행(苦行)에 전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고타마는 이것들을 가리켜 어느것도 극단으로 잘못된 실천법이라고 하여 배척하였다. 원시불교의 교단(敎團)을 승가(僧伽)라고 한다(승가라 함은 정치적으로는 공화정체, 경제적으로는 조합으로 비유 할 수 있다). 교단은 출가수행자인 남성(비구 比丘)과 여성(비구니 比丘尼) 그리고 재가신자(在家信者)인 남성(우파한 優婆寒)과 여성(우파이優婆夷)등 4종류로 이루는데, 교단의 중심은 출가수행자이었다. 고타마는 덕행이 높은 부인을 존경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단 내에서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지위(地位)를 준 것은 종교상의 평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타마는 출가(出家)의 맑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찬미하였다. 수행에 정려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재가(在家)의 애욕생활로부터 떠나 출가하여 독신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조조(早朝)에 촌락이나 도시에서 탁발걸식(托鉢乞食)하여 얻은 얼마 만큼의 음식물로 만족하고, 정오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의복은 항상 삼의(三衣)를 걸치는 것뿐이었다. 음식물이나 의복을 획득하여 저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세속적인 직업에서 떠나고 점(占)·주술(呪術)·마법 등도 금지되어 있었다. 타인에 대한 태도로서는 타인을 존중하라, 타인을 경시(輕視)해서는 안 된다. 타인과 싸움해서는 안 된다. 원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일체중생(一切衆生)에 대하여 자비(慈悲)를 베풀어 주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수행을 실천한 비구는 번뇌를 소멸해버려 근심에서 떠나고, 마음은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현세도 내세(來世)도 원하지 않는다. 훼예포폄(毁譽褒貶)에 마음을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 심경은 청랭(淸冷)한 호수와 같이 그 정적의 경지를 즐겼다. 재가신자(在俗信者)는 불(佛)·법(法)·승(僧)의 3보(三寶)에 귀의하는데, 그 계율로서는 5계(不殺生·不偸盜·不邪·不妄語·不飮酒)가 주(主)였다. 도박(賭博)도 금지되었다. 부모·처자·친족을 애호할 것을 가르치고 객인(客人)을 후대(厚待)하라고 한다. 경제문제에 관해서는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여, 진실을 말하고 타인의 이익을 도모해 주고, 열심히 노력하여 신뢰와 명예와 재산을 획득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재화를 일방적으로 획득만 해야 한다고 한다 하여 다만 자기 밑에 저축해 놓는 것은 의의(意義)가 없기 때문에 재화를 자기가 사용하는 동시에 타인에게도 분배하에 유효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또 부채(負債)는 반드시 변제해야 한다고 한다. 원시불교의 성전(聖典)으로서는 팔리어(語)의 <삼장(三藏)>과 그에 상당한 한역(漢譯)이 있다.

불교신앙의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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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信仰-普及

불교는 고타마의 사후에 주로 모든 도시의 왕후(王侯)와 상공업자의 귀의(歸依)를 받아서 중부 인도를 중심으로 한 동부 인도에 전파되고 있었으나, 아소카왕(재위 연한 약 전 268∼전232)의 절대적인 원조와 보호를 받음으로써 전인도에 보급되었다. 불타는 당시의 인도인 일반이 바라는 이상적 위인(偉人)으로서 갖추어야 할 특징을 모두 갖추었고, 특히 그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을 구비하고 있다고 믿었다. 현실의 역사적 존재가 신격화(神格化)된 것이다. 불타의 위대성이 강조됨에 따라 그러한 위대한 인격은 단지 금생(今生)의 수행에 의하여 완성된 것만이 아니고, 과거의 많은 생애를 통한 오랜 수행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석존(釋尊)은 과거세(過去世)에 있어서 비상한 공덕을 축적하고 선행(善行)을 하였기 때문에 현세(現世)에 있어서 이와 같은 초인적 존재로 출현하였음이 틀림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석존의 전세(前世)에 연유된 많은 본생담(本生譚)이 제작되었다 (현재 파리어 경전 속에 546편이 전해지고 있다). 본생담은 원래 중앙 인도에 옛부터 민중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던 교훈적 우화(寓話)었으나 그것을 석존의 전생과 결부시켜 석존은 과거 세상에서, 혹은 선왕(善王)으로, 혹은 양신(良臣) 등으로, 혹은 짐승으로서 이러한 선행(善行)을 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생담은 사회적 감화가 대단히 커서 일반민중을 불교에 귀의시키고 도덕적으로 그 심정(心情)을 숭고하게 하는 점에서 비상한 공헌을 하였다. 불교의 번성과 함께 불타나 혹은 불제자(佛弟子), 성자(聖者) 등의 유골(遺骨)과 유품(遺品)에 대한 숭배가 성행하게 되어 그것들을 매장하고 있는 장소에는 장대한 탑(塔=스투파)이 건립되었다. 불상숭배(佛像崇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아 당시의 많은 조각을 보아도 석존(釋尊)의 상은 아직 조각되지 않았다. 탑의 주변의 난순(欄楯) 및 석주(石柱) 등은 많은 비구·비구니 및 재가(在家) 신자들이 시주한 것이다. 그들은 시주함으로써 부모친족과 혹은 사장(師匠)의 명복(冥福)을 빌고 또 자신의 공덕을 쌓으려고 기원하고 있었다. 재가 시주자의 직업을 보면 상공업자 및 그의 가족에 이어 농촌의 자산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부인이 많이 있어 거의 남성에 필적(匹敵)한다. 이에 반하여 왕족, 무사 및 일반 농민의 시주는 거의 볼 수 없다.

소승제파의 성립(상좌부와 대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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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乘諸派-成立 (上座部-大衆部)

불교 교단(佛敎敎團)이 발전하여 아쇼카왕(재위 연한 대략 전 268∼전 232)의 시대가 될 무렵, 교단은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분열하였다. 자유주의적인 수행승들은 전통적인 교단에 대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대중부(摩詞僧祗部)를 수립하였다. 이에 대하여 보수적인 장로(長老)들의 일파를 상좌부라고 하였다. 현재 남방 아시아 제국의 불교도는 상좌부에 속한다. 교리(敎理)에 관하여서도 여러 가지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서 가장 현저한 변화는 이상적 인격으로서의 불타 및 이상적 상태로서의 열반(涅槃)이 일반수행자에게 너무 거리감 있게 여겨졌다. 그래서 수행과 관련하여 극복해야 할 번뇌에 관한 고찰도 점차로 상세하게 고찰되었고, 선정(禪定)의 종류도 많이 생겼다. 당시의 불교는 인도의 모든 계급·직업에 걸쳐 전파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인·사카인 등의 신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부모의 명복을 비는 추선공양(追善供養)으로서, 혹은 일체 중생에 공덕을 미치기 위하여 스투파(탑)라든가 승원(僧院:伽藍)을 건조하여 교단에 시주했다. 특히 사카족 및 파르티아족의 국내에서는 국가의 안녕이나 혹은 왕후 일족의 행복을 기도하기 위하여 시주한다고 하는 사상이 났다. 당시의 출가수행자는 승원에 거주하는 자가 점차로 많아졌으나 승원은 어느 편의 부파(部派)엔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미 아소카왕 시대에 상좌부·대중부의 계통의 두 파로 분열하였고, 그후 약 백년 동안에 대중부 계통이 잡다하게 분열하였고 이어 약 백년간에 상좌부 계통이 분열되었다. 흔히 전설에 의하면 18부파(部派)가 새로 분립하였다고 한다. 즉 근본 2부(根本二部 上座部와 大衆部)와 분파(分派) 18부를 합쳐서 소승 20부(小乘二十部)라고 전해오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상좌부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독자부(犢子部)·정량부(正量部)·화지부(化地部)·경량부(經量部)는 특히 중요하다. 이들 제부파(諸部派)의 분열이 기원전 백년경에는 거의 완료된 것 같다. 각 부파는 각각 자파의 교설(敎說)에 권위를 붙여 정통설(正統說) 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각 부파마다 각각 자기나름대로의 입장에서 종래의 성전(聖典)을 편찬하고 집대성하였다. 불교 제부파(佛敎諸部派) 중에서 가장 유력했던 것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이었다. 설일체유부(약하여 有部)라는 것은 일체의 법 즉 5온(蘊)·12처(處)·18계(界)라 하는 것과 같이 각자의 법의 체계를 의미한다. 유부(有部)에서는 자연세계가 원자(原子 極微)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경량부(經量部)는 경전(經典)만을 전거(典據)로 하여 유부에서 말한 것을 비판적으로 개정하였다. 그들은 색법(色法) 중의 4대(四大)와 마음의 실유(實有)를 인정하면서 기타의 것의 실유(實有)는 부인하였다. 이상의 상좌부 계통의 사상에 대하여 대중부 계통에서는 불(佛)의 초인성(超人性)·절대성을 강조하며, 보살(菩薩)의 미덕을 강조하여 우리들의 '심성(心性)은 본래 정(本淨)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들은 어느것이나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이르는 과도적 사상 형태이다. 4세기 이후가 되면 허다한 강요서(綱要書)가 작성되었으나, 후세에 가장 중시된 것은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天親 320 ?∼400 ?)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摩俱舍論)>이다. 실론에 전하는 상좌부(上座部)에서는 팔리어(語)의 성전(聖典)을 주해연구(注解硏究)하고 있었다. 붓다고사(4세기 후반∼5세기)가 인도 본토로부터 실론에 와서 대정사(大精舍)에 전파된 3장(三藏)의 제주석(諸注釋)을 팔리어로 개서(改書)하면서 자신이 주석을 하였다(415∼450경). 또 상좌부의 교의(敎義)를 조직적으로 종합하여 <청정도론(淸淨道論)>을 지었다.

대승불교의 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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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乘佛敎-興起 기원후 1∼2세기의 불교계에 있어서는 전통적 보수적 불교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사회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일반민중과 더불어 그 지도자었던 설교사(說敎師)의 사이에서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승불교(大乘佛敎)'(마하야나)이다. 이에 대하여 구래 전통적, 보수적 불교는 일반적으로 소승불교(히나야나)라고 불려졌는데 그것은 대승불교측에서 붙인 폄칭이며 정통의 구래의 불교 제파(諸派)는 그와 같이 부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불교의 정통파로 자처하여 대승불교를 무시하고 있었다. 정통적 불교제파는 커다란 사회적 세력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에 의존하여 홀로 자신이 몸을 고고하게 함으로써 그 몸을 정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태도는 한층 더 독선적·고답적이었다. 그들은 동리를 떠난 지역의 거대한 승원 내부에 거주하며 고요하게 명상(瞑想)하고, 좌선(坐禪)을 하면서 복잡한 교리연구에 종사하고 있었다. 대승불교는 이와 같은 생활태도를 강력하게 공격하였다. 심지어 부파불교의 그러한 태도는 이기적·독선적이라고 하며 경시하여, 그들을 소승(小乘)이라고 폄칭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남을 이롭게하는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하였다. 대승불교에서는 자비정신(慈悲精神)에 입각하여 생명을 가진 생물 모든 것을 고(苦)에서 구출할 것을 희망한다. 자기자신이 피안(彼岸)의 세계에 달하기 이전에 우선 타인을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自未度先度他). 이와같은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살(菩薩·大士·開士)이라고 한다. 출가한 비구이거나 재가(在家)의 국왕·상인·직인(職人)이거나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서원(誓願·悲願)을 세워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살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비에 근본하는 보살행(菩薩行)은 이상으로서는 어느 사람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일반 범부에게는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불(諸佛)·제보살(諸菩薩)에 귀의하여 그 힘에 의하여 구제하고 서원을 실행할 것을 말한다. 제불중에서도 특히 아축불·아미타불(阿彌陀佛)·미륵불(彌勒佛)·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열렬한 신앙을 받았다. 또한 보살도 초인화(超人化)되어서 그 구제력이 강조되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문수보살(文殊菩薩)·보현보살(普賢菩薩) 등이 많은 신자들의 염불대상이었다. 그들은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몸으로 이 세상에 나온다. 그들은 중생에 대한 자비(慈悲) 때문에 자기 스스로는 열반(涅槃)에 들어가는 일도 없다. 제불(諸佛)·보살에 대한 신앙이 고조됨에 따라 그들의 신체(身體)를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여 그것을 숭배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나 마침내 많은 불상(佛像)과 보살상(菩薩像)이 제작되었다. 중앙 인도의 마투라시(市)와 서북 인도의 간다라 지방이 불상 제작의 중심지였다. 전자는 아소카왕(재위 전268∼전232) 이래의 인도 국수미술(國粹美術)의 전통을 좇고 있으나 후자는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대승불교의 교화방법은 당시 민중의 정신적 소질(素質)이나 경향에 적합한 방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불·보살을 신앙하여 귀의할 것 같으면 많은 재부와 행복이 얻어지며 무병으로 재해를 없앨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으로는 교화의 중요한 한 수단으로서 주구(呪句=陀羅尼·총지總持)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교화방책은 비상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승불교가 뒤에 타락하게 된 원인(原因)을 여기서 싹트게 하였던 것이다.

반야경전의 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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般若經典-空觀

공관(空觀)이라 함은 일체제법(一切諸法)이 공(空)이며, 그 무엇도 고정적인 실체(實體)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사상이다. 이미 원시불교에서 세상을 공이라고 설명되고 있거니와, <반야경전(般若經典)>에서는 그 사상을 받아 더 발전시켜 대승불교의 기본적 교설(敎說)로 삼았다. <반야경전>으로서는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600권 玄裝譯)의 일대집성서(一大集成書)인데 그중에 <반야심경(般若心經)>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이취경(理趣經)> 등이 특히 유명하다. 당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의 소위 소승제파(小乘諸派)가 법의 실유를 주창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공격하려고 부정적인 공(空)이라는 말을 <반야경전>은 더욱더 반복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에 의하면 우리들은 고정적인 '법(法)'이라고 하는 관념을 가지면 안 된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은 공이다. 왜냐하면 일체제법은 다른 법에 조건이 지워져 성립함으로써 고정적·실체적인 본성을 갖고 있지 않는 것, 즉 <무자성(無自性)>인데, 무자성한 것은 공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법(諸法)이 공이라면 본래 당연히 공이어야 할 번뇌(煩惱) 등을 단멸한다고 하는 것도 진실한 의미로는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이법을 체득하는 이법을 체득하는 일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다. 그 외에 어떠한 무상정등각이라고 하는 것은 따로 별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실천(實踐)은 이와 같은 공관(空觀)에 기초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보살은 무량, 무수, 무변(無量無數無邊)의 중생을 제도(濟度)하지만 그러나 자기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보살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구(救)하는 자도 공이며, 구제되는 중생도 공이며, 구제되어서 도달하는 경지(境地)도 공이다. 여래(如來)에는 소설(所說)의 가르침이 없다. 가르침은 뗏목과 같은 것이다. 중생을 인도한다고 하는 목적을 달하였으면 뗏목은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적 인식을 지혜의 완성<般若波羅密多>이라고 한다.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의 완성과 아울러 6도(六度:六波羅密多)라고 한다.

재가불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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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家佛敎運動

공관(空觀)으로부터의 논리의 필연적인 결론으로서, 윤회(輪廻)와 열반(涅槃)이 그 자체로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설교되었다. 따라서 우리들의 현실의 일상생활이 그대로 이상적 경지로서 시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 경계(理想境界)는 우리들의 미혹한 생존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空)의 실천으로서의 자비행은 현실의 인간생활을 통하여 실현된다. 이 입장을 철저하게 한 나머지 출가생활을 부정하여 재가(在家)의 세속생활 속에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종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소산으로서 탄생한 대표적 경전(經典)이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다. 거기에서는 유마힐(維摩詰)이라고 하는 재가(在家)의 거사(居士)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출가자인 석존(釋尊)의 고제자들의 사상이나 혹은 실천수행을 미진한 데 없이 철저히 논난추구(論難追究)하여, 그들을 위축시킨 다음 그후에 진실한 진리를 밝혀서 그들을 지도한다고 하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재가불교운동의 이상은 조금 후대에 나타난 <승만경> 속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석존의 면전에서 승만부인이 제문제에 대하여 대승법(大乘法)을 설명하였더니, 석존은 자주 상찬(賞讚)하는 말을 하면서 그 설법을 시인한다고 하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화엄경의 사상(보살행의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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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思想(菩薩行-强調)

화엄경의 취지는 사사무애의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을 바탕으로 보살행(菩薩行)을 설파한 것이다. 보살의 수행에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와의 두 방면이 있으나, 보살에에게는 중생제도(衆生濟度)라고 하는 것이 자리(自利)이기 때문에 자리 즉 이타이다. 이 경의 10지품(十地品)에서는 보살의 수행이 진행하는데 따라서 마음이 향상하는 과정을 10지(十地 10종의 계단)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또 제6현 전지(第六現前地)에서는 <삼계허망 단시 일심작9三界虛妄但是一心作), 12인연분개의심(十二因緣分皆依心)>(3계는 허망한 것 다만 이 마음의 지음이요, 12인연분은 다 마음에 의한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말이다. 또 입법계품(入法界品) 중에서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구도(求道)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서 보살행(菩薩行)을 완전하게 알기 위하여, 남방에 여행하여 53인(또는 44인)이 있는 곳을 방문하여 설교를 청하고, 최후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의 가르침을 받아서 구극의 경지에 도달한다.

정토3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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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土三部經>

일부의 대승교도(大乘敎徒)는 현세를 예토(穢土)라고 하여 피안(彼岸)의 세계에서 정토(淨土)를 구하였다. 후세에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정토인 극락세계의 관념이다. 아미타불의 신앙은 당시의 민중 사이에서 행하여져 <제대승경전(諸大乘經典)>속에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주요한 것은 <정토3부경(淨土三部經)>이다.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 그것이다. 정토경전(淨土經典)은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중생을 위하여 석존이 아미타불(阿彌陀佛)에 의한 구제를 말한 경전이라고 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아미타불이라 함은 원어(原語)를 생략한 음역이다. 의역(義譯)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한다. 아미타불은 과거세(過去世)에서 법장비구(法藏比丘)라는 수행자였는데, 중생제도의 서원(誓願)을 일으켜서 장자(長者)·거사(居士)·국왕(國王)·제천(諸天) 등이 되어 무수한 중생을 교화하였으며, 제불을 공양(供養)하여 드디어 깨달음(悟)을 얻었다고 한다. 이 세계에서 서방(西方)으로 십만억(十萬億)의 불국토(佛國土)를 지난 곳에 극락세계가 있는데 그 부처는 현재 그곳에 계시면서 설법(說法)하고 있다. 선남자(善男子) 혹은 선여인(善女人)이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의 명호를 듣고서 마음으로 염원한다면, 그 사람의 임종시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가 성문(聲聞) 및 보살(菩薩)의 성중(聖衆)을 거느리고 그의 앞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세의 의의가 후대의 정토교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으나 이미 경전 속에서 6도(度)의 실천의의가 강조되고 있다.

법화경의 사상(일승사상과 구원의 본불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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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華經>-思想

대승불교도는 소승불교도에 대하여 극력 공격하지만 불교 내의 여러 가지 교설은 어느것이나 그 존재의의(存在意義)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도리(道理)를 희곡적 구상과 문예적 형식을 빌어서 명료하게 표현한 법경이 <법화경(法華經)>이다. <법화경>은 특히 구마라습(鳩摩羅什) 역(譯)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에 의해 유명해졌는데 그의 전반 14품에서는 다만 성문승(聲聞乘, 석존의 설교를 듣고서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연각승(緣覺乘, 혼자서 悟覺을 개척하는 실천)·보살승(菩薩乘, 自利利他를 목표로 하는 大乘의 實踐)의 3승(三乘)이 1승(一乘)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종래 이들 3승은 일반적으로 별개의 교법(敎法)으로 간주되었으나 그것은 피상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3승은 어느것이나 부처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설파한 것이며 사실은 1승법(一乘法)이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교법(敎法)이 어느 것이나 존재의의를 갖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들은 육신(肉身)의 석존인 까닭은 아니다. 그것들을 성립시키는 근원은 시간적·공간적 한정을 초월하고 있으면서 특히 그 근원 속에서 개현(開顯)하여 오는 절대자(絶對者)·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理)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석가여래가 석가족(釋迦族)에서 출가하여 수행함으로써 오각(悟覺)을 열고 80세에 입멸(入滅)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 석존은 영원한 옛날 오각(悟覺)을 열어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것으로서 상주불멸(常住不滅)이다. 인간으로서의 석존은 다만 방편으로 나타난 형상에 불과하다(이상 후반 14품, 本門)는 것이다.

중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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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觀派

대승교(大乘敎)의 철학 학파의 하나. 공(空)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기초 세운 것은 나가르주나인데, 그의 학계(學系)를 중관파라고 한다. 나가르주나의 제자에 아리아데바(Aryadeva 提婆·聖天가 있다. 예리한 논법으로 모든 학파를 논파하였기 때문에, 타파로부터 원망을 산 나머지 살해되었다고 한다. 저서에 <백론(百論)><사백론(四百論)> 등이 있다(중국·한국의 三論宗은 <中論> <百論> <十二門論>에 준거한다). 후세의 중관파에서는 붓다팔리타(佛護)와 바비야(淸辯) 두 사람이 대립하여 각각 푸라상기카파(派)와 스바탄트리카파(派)의 개조가 되었다. 또 타인에 대한 봉사를 강조한 샨티데바도 중관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가르주나(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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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arjuna 龍樹 (150 ?∼250 ?) 인도의 불교사상가. 남인도 사람. 불교와 아울러 다른 학문에도 정통하여 공(空)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기초 세운 최초의 사람이다. 그는 후세의 불교에 깊은 영향을 미쳐, '8종(八宗)의 조사(祖師)'로 준숭되고 있다.

저서로서는 <중론(衆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이 있다.

중론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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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論>-思想

나가르주나는 저서 <중론>에서 유부(有部)의 법유주장(法有主張)을 포함하여 실체적 원리를 상정하는 모든 종류의 철학사상을 비판하며 논란하고 있다. 만약 법유(法有)의 입장에 서서 개념이나 혹은 본질(本質)과 같은 것을 실체시한다고 하면 현상계(現象界)의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그는 주장한다. 우선 시간적 규정을 받아서 실체적 본질을 갖는 것은 변화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경험세계(經驗世界)에 있어서는 생멸거래(生滅去來)의 변화가 성립하고 있다. 따라서 제법 그 자체는 실유(實有)일 수는 없다. 공(空)이어야 하며 무자성(無自性)이 아니면 안 된다. 또 현상계(現象界)에 있어서 개개의 상(相)은 상호간에 다른 상과의 대립 의존관계에 있어서 성립하고 있다. 어떠한 것도 자기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더욱이 이와 같은 부정적 대립자를 부정함으로 인하여 성립되고 있다. 그러므로 제법 그 자체는 얻지 못할 것이어서 공(空)이다. 어떠한 개념으로도 언어로도 서술할 수 없다.

다만 부정적으로만 표현될 수 있다. 모든 것은 공(空)일 뿐이기 때문에 실천이 가능한 것이다. 만일 공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이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공(空)의 이법(理法)을 나가르주나는 '연기(緣起)'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도 하며, 또 <무아(無我)>와 같은 의미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이 이법(理法)은 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제 개념 속에서 어느 한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또한 <중도(中道)>라고도 한다. <중론(中論)>의 제명(題名)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나가르주나에 의하면 윤회(輪廻)와 열반(涅槃)은 아무 구별도 없다. 열반이라고 하는 특별한 경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미망(迷妄)이다. '계박(繫縛)과 해탈(解脫)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해탈이 있다.

이 이법(理法)을 체득해야만 자비행(慈悲行)의 실천이 성립한다.無我)>와 같은 의미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이 이법(理法)은 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제 개념 속에서 어느 한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또한 <중도(中道)>라고도 한다. <중론(中論)>의 제명(題名)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나가르주나에 의하면 윤회(輪廻)와 열반(涅槃)은 아무 구별도 없다. 열반이라고 하는 특별한 경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미망(迷妄)이다. '계박(繫縛)과 해탈(解脫)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해탈이 있다. 이 이법(理法)을 체득해야만 자비행(慈悲行)의 실천이 성립한다.

유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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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識派

종전의 대승불교(中觀派의 철학을 포함하여)는 철학사상은 있었으나 이론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굽타 왕조 시대에 들어서 시대 전반의 풍조에 따라 대승불교도 이론적 체계가 세워져서 학파를 확립하였다. 그 학파를 유식파라 한다. 유식파를 요가 행자파(行者派)라고도 한다.

유식설(唯識說)은 이미 <해심밀경(解深密經)>에서나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摩經)> 중에 설파되고 있는데, 유식파의 개조(開祖)는 마이트레이아(Maitreya, 彌勒, 270년경∼350년경)이다. 후세의 전설에서 그는 미륵보살(彌勒菩薩)과 동일시되었다. 그는 <유가사지론(諭伽師地論)>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등을 저작하였다. 마이트레이아의 가르침을 받아서 유식설을 조직적으로 논술한 것이 아상가(Asanga,

無著, 無着, 310년경∼390년경)이다. 그는 많은 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섭대승론(攝大乘論)>이 특히 유명하다.

아상가의 동생에 바스반두(Vasbandhu, 世親·天親 320년경∼400년경)가 있다. 처음에는 소승불교를 연구하여 <구사론(俱舍論)>을 저작하였으나 후에 형(兄)인 아상가의 지도를 좇아 대승교(大乘敎)에 귀의하여 많은 저서를 지어냈다. 그의 저서 중에서 <유식20론(唯識二十論)><유식30송(唯識三十頌)>이 특히 유명하다.

유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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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識說 유식설에 의하면 인간의 현실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법(法)은 실유(實有)가 아니고, 그 실상(實相)은 공(空)이다. 다만 무차별하고 한결같이 공(空)이라고 하는 한 원리(原理)에 따라 일정하게 질서있는 현실의 차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종류의 법(法)이 현재 있는 것과 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각각 공에 근거된 원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원인은 이미 가능성의 상태에서 존재한다. 그것을 '종자(種子), (비쟈)'라고 부른다. 종자라고 하는 것은 '법(法)을 생하는 가능력(可能力)'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가능력은 순수한 정신작용 즉 식(識)이다. 식이라는 것은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작용이다. 만유(萬有)는 식에 의하여 현현(顯現)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유식설을 주장한다. 이 동향을 식체(識體)의 전변(轉變)이라고 한다. 식체가 전변하여 세 가지 종류의 식을 성립시킨다. 첫째로 아라야식(阿賴耶識)은 근본식(根本識)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이는 제법의 종자(種子)가 된다. 둘째로 사량(思量)의 작용을 하는 식(未那識)으로서, 아라야식에 의존하여 일어나지만 아뢰야식을 대상(對象)으로 하여 아집(我執)을 일으킨다. 셋째로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식인데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인식한다(합쳐서 8식이 된다). 그런데 자기의 대상(對象所緣)을 공(空)이라고 깨달아 실재(實在)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마음은 유식성(唯識性)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는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을 상이한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진여(眞如)의 지혜(知慧 般若)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사의 차원에서 존재되지 않는다. 또한 자비(慈悲)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노력하여 권태함이 없으며, 열반에 머무르는 일도 없다(無住處涅槃). 구체적인 덕목(德目)으로서는 6도(六度)를 실천한다.

유식파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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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識派-系譜

유식설(唯識說)은 비스반두 이후 인도의 사상계에 있어서 대단히 우세하게 되어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여러 가지 이상한 학파(異流)를 성립시켰다. 아상가. 바스반두에서 유래한 경식구공(境識俱空)을 주장하는 진실유식설(眞實唯識說)은 인도에서는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라고 호칭된다. 이는 진제삼장(眞諦三藏, 499∼590)에 의해 중국에 전파되어 섭론종(攝論宗)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단 식(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 즉 경공심유(境空心有)의 방편유식설(方便唯識說)은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가 주장한 것으로서, 디그나가(Dignaga 陳那·域龍)에서 시작하여 무성(無性)을 거쳐 호법(護法 530∼561)에 이르러 대성하였다. 이는 현장 삼장(玄裝三藏)에 의해 중국·한국에 전해져 법상종(法相宗)이 되었다. 디그나가는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 등을 저작하였다. 그는 지식근거로서 직접지각(直接知覺)과 추론(推論)과의 두 종류만은 승인하면서, 직접지각은 분별(分別)을 떠난 것이어서 내용이 없는 것이지만, 추론의 작용이 가(加)해짐으로써 구체적인 지식으로서 성립한다고 한다. 또 보편(普遍)의 존재를 부인하여, 그것은 타자(他者)의 배제(排除)에 의하여 부정적으로 구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참뜻으로 말하는 개별자란 작용의 어느 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신인명(新因明)'을 확립하였다. 샨카라스바민(Sankarasvamin)의 <인명입정이론(因明入正理論)>(玄裝譯)은 그 입문서(入門書)인데, 중국·한국에서는 인명(因明)의 근본 전적(根本典籍)으로서 많이 연구되었다. 디그나가의 논리사상은 다르마키르티(Dharmakirti, 法稱, 650?)에 의해서 더 한층 세밀한 것으로 되었다. 그에 의하면 각 순간이 승의(勝義)에 있어서 어떤 것이다. 우리는 각 순간의 연속으로서 의식의 흐름을 상정(想定)하여 개인의 사유에 의하여 구상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논거 그 자체로부터 인도되어 나오는 추론과 결과를 논거로 하는 추론과를 구별하였다.

여래장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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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藏思想

여래장사상은 유식설(唯識說)과 비슷한 사상이지만, 대승불교의 일부 철학자들이 이 여래장사상을 가르쳤다. 범부(凡夫)의 마음속에 있는 여래(如來)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다. 이 관념에 입각하여 중생의 미혹과 오각(悟覺)이 성립하는 까닭을 설명하는 사상경향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저작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마명(馬鳴)의 저작이라고 하고 있으나, 아마도 5세기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대승(大乘)에 대한 정당한 믿음(信)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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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敎

원시불교 교단에 있어서는 세속적인 주술밀법(呪術密法)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승불교(大乘佛敎)는 부분적으로는 그 주술밀법을 받아들였다. 대승경전(大乘經典) 속에는 많은 다라니(陀羅尼)가 설해지고 있다. 4세기경부터는 주법(呪法)만을 설하는 독립된 경전(經典)이 제작되었다(<孔雀王呪經)> 2권, <護諸童子陀羅尼經> 등). 이와 같은 주구(呪句)를 진언(眞言 만트라)이라고 한다. 진언타라니(眞言陀羅尼)를 주창하고, 그것에 의해서 마음을 통일하여 제존(諸尊)을 공양(供養)하는 일이 고조됨과 동시에, 이를 어떻게 염송(念誦)하며 어떻게 공양해야 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방법도 점차로 발달하였다. 방형(方形) 또는 원형(圓形)의 토단(土壇)을 쌓고, 제존(諸尊)을 여기에 안치하여 공양제사를 행하였다. 그 단(壇)을 만다라(曼茶羅)라고 하였으나 뒤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중심으로 한 제존(諸尊)을 배치한 도화(圖畵)를 만다라(曼茶羅)라고 하였다. 제존에 대하여 많은 인계(印契)가 설명되었다. 인계(印契 印相)는 불(佛)·보살(菩薩)·제천(諸天)의 내증(內證)·본서(本誓)를 교시(敎示)시키는 외상(外相)이나, 때로는 평지(平指)의 인(印)을 말한다. 이와 같은 밀주(密呪)의 수행이 <화엄경(華嚴經)> 철학과 결부하여 그 기초 위에 건설된 조직적인 종교체계(宗敎體系)가 비밀불교(秘密佛敎 密敎)이다. 개조(開祖)는 용맹(勇猛 나가르주나 600 ?)이라고 이른다. <대일경(大日經)>(7세기의 중엽에 서남 인도에서 성립)에서 말하는 만다라(曼茶羅)를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라고 하고, <금강정경(金剛頂經)>(7세기 말에 동남 인도에서 성립)에서 말하는 만다라(曼茶羅)를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라고 한다. 밀교(密敎)는 팔라 왕조(약 750∼1199)의 통치하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밀교에 있어서는 근본불(根本佛)을 대일여래(大日如來大毘盧遮那佛)라고 부른다. 종전의 여러 불교는 석존의 가르침이지만 밀교는 대일여래의 가르친 바다. 종래의 대승불교와는 상이하다는 점에서 스스로 '금강승(金剛乘)'이라고 하였다. 비밀교단인 것을 표방하여 폐쇄적이며 특유의 복잡한 의례(儀禮)를 발달시켰다. 사람들은 사(師)의 아래서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비의(秘儀)에 관계되는 의식을 '관정(觀頂)'이라고 한다. 제불(諸佛) 제존(諸尊)뿐 아니라 종래의 불교에서 말하지 않았던 많은 명왕(明王)과 불교 외의 제신(諸神)·제성자(諸聖者)도 역시 대일여래의 나타남이라고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많은 민간신앙을 섭취하여 그 취지를 직관적으로 표시하기 위하여 대만다라(大曼茶羅)를 구성한다. 중생은 본래 불성(佛性)을 구유(具有)하고 있기 때문에 제존을 염(念)하고 다라니(陀羅尼)를 외고, 밀교의 특별한 의식에 참여하면 용이하게 구경(究竟)의 경지에 도달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卽身成佛). 따라서 인간의 번뇌 정욕은 극복억압될 것이 아니고 존중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좌도 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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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道密敎

번뇌를 긍정하는 사상은 당시의 속신(俗神)에 대한 타협과 서로 관련, 비열하고 외천(猥賤)한 의례를 도입할 위험성이 있었다. 일부의 밀교도(密敎徒)는 남녀의 성적결합을 절대시하는 탄트라의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左道密敎)>를 성립시켰다. 그 창시자는 인도라부티이(8세기)라고 하는데, 9세기 이후 특히 성행하였다.

말기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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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期-佛敎

불교의 최후단계에 있어서는 세계원인으로서의 원초불(原初佛)의 신앙이 나타났다. 거기는 힌두교의 유신론적(有神論的) 견해의 영향이 현저하다. 이 신앙은 네팔 및 티베트에 전하여졌다. 또 마찬가지로 좌도밀교(左道密敎)의 변형(變形)으로서의 사하쟈승(乘)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처녀에 대한 애정이 해탈에의 길이라는 등의 말을 한다. 회교(回敎) 침입 후에 시륜(時輪) 탄트라가 성립하였다(약 1027∼1087). 회교가 인도를 석권하였으므로 그것을 박멸하기 위하여 불교도가 비시누, 시바와의 연합군을 형성한 것이라고 한다. 1203년에 밀교의 근본도량인 비크라마쉴라 사원(寺院)이 회교도의 군대에 파괴되고 승니(僧尼)가 곳곳에서 살육되었다. 그와 함께 인도에서 불교는 급격히 쇠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