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교육/교육의 이론과 실제/교육의 의미와 목적/교육이론의 발달

교육사상의 생성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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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思想-生成-發展

교육사상은 교육활동의 반성이나 검토·비판을 통해 생성하고,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곤란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역사적으로 상대적이라고 하겠다. 현재 우리나라 및 구미의 교육사상은 복잡하고 다양하나, 배후에서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역사적인 주요한 교육사상으로는 다음 네 가지를 들 수 있겠다.

① B. C. 4-5세기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나타난 휴머니즘 교육사상, ② 그리스·로마 사상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차차 보급 전파된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바탕을 둔 신(神) 중심의 교육사상, ③ 현실이나 자연에 눈을 돌린 근세인이 자연주의를 기조(基調)로 하고, 인간성의 자각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한 자연주의적 휴머니즘 교육사상, ④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전개된 인간의 생명과 사회적 문화의 발전을 목표로 한 사회적 휴머니즘 교육사상. 이 네 가지 교육사상의 고찰을 통해 교육사상의 생성과 발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적 휴머니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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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ce的 humanism 敎育思想

고대 원시적 사회에서는 위인이나 영웅의 뛰어난 행위와 업적을 규범으로 하여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었다. 그러나 B. C. 5세기 중엽부터, 민주정치가 번성하였던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많은 소피스트(知者)가 각지로부터 모여들어, 전통이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으로써 진보적으로 사는 길을 청년들에게 교수했다. 그 때문에 폴리스(都市國家)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커다란 대립과 마찰이 생겨났다.

전통적인 가치와 진보적인 지식의 대립과 모순을 조정하고 화해하기 위한 고차원적인 지혜를 탐구하고 제시하여, 쇠퇴하기 시작한 아테네를 부흥시키려고 한 사람은 소크라테스(B. C. 470?-399)나 플라톤(B. C. 427-347)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과시하는 지식에 대해 지식의 근거나 규준을 추궁했다. 그리고 보편적인 참된 지혜를 탐구했으나 아직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무지(無知)를 표명했기에 '무지의 지자(知者)'라고 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교수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덕(뛰어난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지도하고 조언했다. 지식을 탐구하려는 이성적 능력은 청년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으므로 그것을 개발하고 덕을 실현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의 교육방법은 대화에 의해서 교수의 질문과 그것에 응하는 생도의 대답이라는 연속적 발전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답법 또는 산파법(産婆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교육사상을 이어받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끝까지 탐구했던 참된 지혜는, 모든 존재나 인식의 궁극적인 원인이며 원리인 최고의 실재(善의 idea)를 관조(觀照)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선의 이데아를 지향하여 청년의 정신을 전향시키고 생성케 하는 것을 교육의 본질이라 하여 조직적인 교육과정을 전개했다.

그에 의하면, 기초교육은 음악(학예전반)과 체조이며, 청년의 심신의 조화적 발전(調和的發展)을 꾀하고 착한 마음과 성격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수학적인 여러 과학을 중심으로 하여 고등교육을 행하고, 이성적 사고능력을 훈련했다. 뿐만 아니라 변증법을 배워 모든 것의 본질을 파악하는 훈련을 거듭함으로써 최고의 실재인 선(善)의 이데아를 관조하고 참된 지혜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는 선의 이데아를 관조한 자는 국가의 실무를 보좌하는 일에 종사하고, 국제적인 수련을 쌓은 뒤 철인이 되거나 혹은 정치에 참여하여 철인군주가 되며, 철인군주의 지배에 의해 비로소 현실의 국가를 개혁하고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고, 이상국가의 건설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도의 교육을 감내할 수 있는 자는 이성적 능력을 갖춘 소수자(小數者)에 한정된다. 점점 높아지는 교육과정을 감내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은 제각기의 능력에 따라 국가를 수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든가 혹은 생산자가 된다. 때문에 교육은 인간의 각 능력의 조화적 발전을 꾀함과 동시에 각자의 능력을 선별(選別)하여 국가적인 기구에 배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의 각 능력의 조화적 발전을 꾀하는 교육은 휴머니즘의 입장에 입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성적인 능력만이 그 밖의 여러 능력을 지배한다고 보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 입장은 이성주의라고 하겠다. 또한 의욕이나 욕망이나 능력이 강한 대개의 사람은 수호자나 생산자가 되어 소수자의 지혜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 입장은 귀족주의적이기도 하다. 즉 이성주의적 휴머니즘이 플라톤에 의해서 집대성된 것이 그리스 교육사상의 특질이라고 하겠다.

플라톤의 이러한 이상주의적 교육사상을 현실적인 것으로 개정하고, 더욱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B. C. 384-322)이다. 그들의 교육사상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교육사상의 원형(原型)이 되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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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敎育思想

플라톤이 말하듯이 참된 지혜를 찾는다는 것, 또는 가치를 찾는 것을 생활의 근본으로 삼는다면, 무지한 것이나 가치가 없는 것은 경멸된다. 또한 타인에게 끼치려는 폐나 죄를 자각할 수조차 없다. 이와 같은 그리스 사상의 일면성(一面性)에 대해 가치를 사랑하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죄의 원천이라 하고, 인간의 행동에 관해 근본적인 반성과 죄의 자각을 호소함으로써 세계사에 등장한 것이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태도에 바탕을 둔다. 그 근본은 신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가 주장하는 신은 죄 많은 인간을 구제하는 사랑(agap

)을 본질로 한 신이다. 아가페는, 그리스적인 사랑(eros)과는 전적으로 대조되는, 가치로 충만해 있는 신이 인류에 대해 일시동인(一視同仁)의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랑이며 은총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의 사랑을 믿는 것이 모든 생활의 근본이라고 예수는 주장한다. 믿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에의 귀의(歸依)를 뜻하며, 사심을 버리고 타율(他律)의 입장에 서는 것을 말한다.

신의 사랑의 절대성을 믿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생활은 내일의 것을 생각하여 번민하지 않으며, 현세의 상대적인 가치를 초월하여 전도(轉倒)시킨다. 가치전도의 생활은 신에게의 봉사를 사명으로 하며, 똑같이 신의 피조물(被造物)인 이웃을 사랑하여, 만인으로 하여금 신에게 귀의토록 이끄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신과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를 인간상호간의 관계로 옮긴 것으로서 현세생활의 중심원리이다. 이와 같은 예수의 생활태도를 근본으로 한 그리스도교의 정신은 이윽고 계급이나 민족을 초월하여, 현세와 내세를 포괄한 보편적인 카톨릭 정신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카톨릭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교육의 과제라고 했다. 교회에 의해서 행해진 그리스도교의 교육은 예수를 최고의 구주(救主)로 하고 또한 교사(敎師)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가치 내지는 진리 그 자체인 신의 보편적인 사랑을 믿고, 그 부름에 따라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근본으로 했다. 즉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현세를 말세로 보지만, 하늘나라가 다가온다는 희망을 지녀, 인류가 죄를 뉘우쳐 마음을 고쳐먹고 예수가 가르치고 이끄는 하나님의 길(진리의 길)을 걷는 것을 교육의 본질로 삼는다.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여 양심을 움직이며, 존재 자체까지도 움직이는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그 권위는 그러나 신 또는 진리 자체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윽고 교육은 신 또는 진리 그 자체의 권위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엄존하는 절대적인 진리를 배우는 것, 또는 그것에의 접근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참된 교사는 진리의 증인, 또는 전달자(傳達者)이며, 진리에의 선도(先導)며 통로라고 하였다. 이른바 사제간(師弟間)의 관계는 동업자 또는 형제처럼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중세 그리스도교의 교육사상은 근세의 교육에도 깊이 침투했다. 그러나 객관적·절대적인 진리에 따라 행해지는 교육은 철저히 보편주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와 자발성(自發性)을 몰각(沒却)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혹심하게 압박했다. 그 속박에서 자유를 되찾으려 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 이후의 자연주의운동이라고 하겠다.

자연주의적 휴머니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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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主義的 humanism 敎育思想

르네상스 운동의 바탕이며 근대정신의 근본이 된 근세의 휴머니즘은 모든 인간의 평등관을 특질로 삼는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휴머니즘은 인간의 불평등관에 입각한 것이었다.

근세 휴머니즘 교육사상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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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世 humanism 敎育思想-基礎

평등관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균등의 일반교육을 실시해야만 한다고 주장, 근세 휴머니즘의 기초를 쌓은 사람은 종교개혁의 제1인자인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이며, 또한 자연주의·경험론·과학주의의 개조(開祖)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대학교수>의 저자 코메니우스(Johan Amos Comenius, 1592-1670)

등이라 하겠다.

로크의 형식도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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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e-形式陶冶說

이들 선각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경험론을 인식론으로서 조직한 사람은 로크(John Locke, 1632-1704)이다. 그는 감각적 경험에 바탕을 둔 관념을, 수학이나 신학에서 나타내는 이상형식(理想形式)에 따라 올바르게 연합시키면 이상적인 인간정신을 형성하고 훈련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형식도야설(形式陶冶說)을 조직화한 것이라고 하겠다.

낭만적 자연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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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漫的自然主義敎育思想

선인(先人)의 영향을 받으면서 실학주의(實學主義)와 계몽사상에 의해서 형식화되었던 당시(18세기 중엽)의 교육을 배척하고 혁신적인 낭만적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제창한 사람은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78)이다. 낭만적 자연주의라는 것은 루소가 일찍이 고대 그리스인이 존재의 전체를, 특히 그 근원이나 원리를 '자연'으로 본 것에 마음이 끌려, 그것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것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교육을 비판하여 조교육(早敎育) 또는 형식이나 개념의 주입교육·범지(汎知)주의·준비주의·어른중심주의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당시의 교육이 부자연스럽다고 하여, 참된 교육이란 이와 반대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어린이가 태어나서부터 선(善)인 본성(本性;自然性)에 의거하여 그 발달단계에 따르고, 어린이의 생활을 통해 충동이나 감각을 개발시키고, 어린이의 현재생활의 의미를 충실케 함을 목표로 하여 아동중심으로 교육을 시켜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즉, 자연계 안에 있는 자연성을 근원으로 하여 이를 원리로 삼고 그것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보호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어린이는 커리큘럼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자발적 활동에 부응하여 커리큘럼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은 모든 인간의 평등관에 입각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동의 세계에까지 확대·보급시켜 철저하게 했던 것이다. 어린이의 생활에는 어른과는 다른 독특한 가치나 의의가 있음을 강조한 루소는 '아동의 발견자'이며, 주저(主著) <에밀>(1762)은 '아동의 복음서'로 불리기도 한다.

근세의 실천적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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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世-實踐的敎育思想

르네상스 이후에 발견되고 해방되어 온 인간성의 자각은 루소에 의해서 크게 심화(深化)되었으나, 교육실천을 통해서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도야하려고 한 사람은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이다. 그는 인간성의 근저에 있는 내적 본질을 '진리'라고 하여, 정복(淨福)을 얻는 가능력(可能力)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의 신적 본질이며 인간이 아무리 타락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그것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절대존엄이라는 것이다. 그 가능력을 개발하고 참된 지혜와 힘으로 완성하는 것이 이른바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교육의 본질이라고 페스탈로치는 말했다. 그리고 교육의 장소는 신의 사랑을 근본으로 삼는 어버이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이 오고 가는 교류를 본질로 하는 가정생활이라 하여, 가정생활을 중심으로 하고 이를 범주로 하여 학교나 사회를 올바른 인간교육의 장소로 개조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자연스런 길이라고 그는 말했던 것이다.

가정생활을 중심으로 하여 어린이의 정복력(淨福力)을 개발하려면 자기 주변의 보다 구체적인 것을 직관(直觀)하고 체험하고 또 노작(勞作)하는 생활을 통해 인간성 전체를 개발해야만 한다. 이것을 체험한 페스탈로치는 머리(정신력)와 손(기술력)과 심장(심정력)과의 조화적 발전을 주장하여 인간교육의 이상을 확립시켰다. 그는 고아나 빈민의 어린이들의 인간다운 생활 구현을 염원하여 교육실천에 이바지, 어린이 교육의 개선을 통한 사회의 건실한 개혁을 뜻했다. 그의 휴머니즘은 빈민이나 고아 등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에게 복음을 주었던 것이다.

루소나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을 계승하여 진보적 교육사상을 철학적으로 심화(深化)시키고, 특히 유아(幼兒)교육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교육사상을 발전시킨 사람은 프뢰벨(Friedrich Fr

bel, 1782-1852)이다. 루소나 페스탈로치 및 프뢰벨에 의해서 집대성된 근세 교육사상은 과학적 및 낭만적인 자연주의를 근본으로 하여, 휴머니즘의 정신을 아동이나 유아, 고아나 빈민에게까지 확대시켜 인간성의 자각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교육사상에는 과학성이나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해서 과학적인 체계를 가진 교육학을 조직한 제1인자는 헤르바르트(Friedrich Herbart, 1776-1841)라고 하겠다. 그의 교육학은 교육의 목적론과 거기에서 연역(演繹)된 방법론으로 이루어지며, 목적은 윤리학에 의하여, 방법론은 심리학에 의해서 그 바탕을 이루었다. 그 목적론은 인간의 도덕성 또는 인격의 배양을 최고의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문화재를 교수하고, 학생의 다방면적 흥미를 길러 심의(心意)를 조화적으로 구성코자 한 것이었다. 헤르바르트의 교육학은 그 학파 사람에 의해 교육현실에 따른 실제적인 것으로 전개되고, 19세기 후반 이후 널리 세계 각국의 교육계에 적용되었다.

사회적 휴머니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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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的 humanism

敎育思想

사회적 이상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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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的理想主義敎育思想

헤르바르트의 교육학을 도덕지상주의·주지주의·형식주의·개인주의라고 비판하여 사회적 이상주의 교육학을 제창한 사람은 나토르프(Paul Natorp, 1854-1924)이다. 플라톤 및 칸트의 이상주의를 계승한 나토르프는 인간의 충동이나 의지를 실천적인 이상의지(理想意志)로 높이는 것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사회 속에 있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인간의 가치(當爲·規範) 의식에 의해서만 본질적으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현실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충동(경제활동)이나 사회적 의지(정치활동)를 사회적 이성의지(도야활동)로 높이는 것이 교육의 근본문제이다. 이러한 근본문제에 부응하여 교육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치의식이 충만하고 있는 학교의 공동생활을 통해 가치의식을 체험케 함으로써 청소년의 실천적인 이성의지를 도야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주장한 것이

<사회의 기초에 입각한 의지교육의 이론>이라고 하는 부제(副題)가 달린 나토르프의 주저 <사회적 교육학>(1899)이다. 도야의 사회적 조건과 사회의 도야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나토르프의 교육학은 헤르바르트의 개인주의적 교육사상을 극복하여 현대 교육사상의 일대 특질을 제시한 것이다. 나토르프의 교육학은 그러나 이상주의나 비판주의적인 철학에서 연역된 것으로서 '위로부터의 교육학'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교육적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린이의 구체적인 생명의 동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압박하는 결과가 되기도 하여, 교육실천을 구체적으로 지도하지는 못했다.

문화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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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主義敎育思想

나토르프 교육학의 이와 같은 결함에 대해 어린이의 자연적·정신적인 생명과 사회적·역사적인 문화를 상호 즉응시켜 발전케 함을 교육의 본질로 보는 사상이 19세기 이후에 대두, 20세기 교육사상의 기조(基調)가 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사람은 생명철학의 대표인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이다. 딜타이는 '위에서부터의' 입장을 취하는 이상주의나 비판주의를 배척함과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입장을 취하는 실증주의나 실험과학마저 배격하여 인간의 '안으로부터의' 생명의 움직임에 즉응하여 모든 것을 체험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안으로부터의 생명의 움직임은 외적인 것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역사적으로 생성·발전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생명의 본질이 바로 개성인 것이다. 역사는 인간의 생명을 동력인(動力因)으로 하고 개성적인 것을 매개로 해서 발전한다. 모든 개성 내지 역사적 생명의 상호작용을 통해 객관적인 정신 또는 역사적인 이성이 형성된다. 역사적·객관적인 이성 또는 정신을 체험에 따라 과학적 및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참된 인간연구이며 정신과학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과학에 의거하여 딜타이는 어린이의 생명을 목적관(目的觀)으로 갖고 역사적으로 전개해 가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사회적·역사적인 정신의 체험이나 이해 및 표현을 통해서 어린이의 개성을 자유롭게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체험이나 이해 및 표현을 기본적인 방법으로 하는 교육은 결국은 심리주의로 기울어지며, 개인적·주관적인 자유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약점을 통찰하여 딜타이의 생명철학 내지는 정신과학 또는 역사주의의 입장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에 있어서는 사회적·객관적인 문화의 보편성이나 이념, 논리나 규범을 강조, 문화철학을 수립하고 교육사상을 발전시킨 사람이 슈프랑거(Eduard Spranger, 1882-1963) 또는 리트(Theodor Litt, 1880-1962)이다. 슈프랑거의 문화철학은 서구문화 몰락위기에 대처함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현대 문화의 몰락의 이유는 실증주의적인 과학이나 기계적인 기술이 과대하게 발달하고 독주했기 때문에 문화의 객관면이 비대해져 그 통일성을 상실했다는 점, 그리고 문화를 담당해야 할 인간(문화의 주관면)의 능력이 분산하고 소실되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내적 구조의 균형을 회복하고, 인간의 생명 내지는 문화의 이념이나 규범에 합치시켜야만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문화의 주관면과 객관면과의 보강관계(補强關係)를 통하여 문화적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으로서, 이것이 교육의 근본과제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문화의 전달·창조를 중심문제로 하여 어린이의 생명발달을 돕고, 이념을 추구하고, 규범을 실현하는 인격적인 양심의 각성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화의 이념이나 규범을 강조하는 슈프랑거의 입장은, 문화의 자유로운 창조적 발전의 원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비판한 리트는 개성적 창조의 원리를 제창하여 교육사상을 크게 심화(深化)시켰다. 리트에 의하면 이념이나 규범은 인간의 생명이나 문화 내지는 정신적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계기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할 때에 매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념이나 규범 등의 보편성은 사회적·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많은 개성이 분담하고 개성화하면서 승화(昇華)시켜야 하는 것이다. 개성과 보편성이란 상호간에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이나 긴장관계를 통해서 보다 큰 전체적 관련을 구성시켜야만 한다. 그 전체적 관련 가운데에서 제각기의 개성은, 즉 개인뿐만 아니라 한 민족이나 사회 및 국가나 시대 등도 자기 개성을 견지함과 동시에, 다른 개성의 가치나 독자성을 존중하고, 서로 부여하고 또한 택해야만 한다. 이리하여 비로소 참된 개성, 즉 보편적인 개성 혹은 개성적인 보편성이 창조되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리트는 주장한다. 이와 같은 개성적 창조의 원리에 입각한 리트의 교육학적 사고는 어린이의 개성적인 생명을 이해하고, 그 욕구에 부응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어린이의 생명은 미숙하지만 있어야 하는 것(理念·當爲)을 지향하려는 어쩔 수 없는 충동을 지니기 때문에 단순한 존재가 아니며, 존재와 당위와의 미분화(未分化)의 한 전체이며, 존재와 당위의 이중구조를 지닌다. 교육학적 사고는 이러한 구조를 올바르게 전체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가 요구하는 목적에 부응하면서 지향해야 할 당위의 요청에 응해야만 한다. 목적을 가진 생명에 대한 사실적 인식과 그 생명이 지향해야 할 당위나 가치의 설정을 상호간에 즉응시켜야만 한다. 그러므로 교육학적 사고는 단순한 과학적 사고나 기술적 사고와는 달라서 존재와 당위의 이중구조까지 지녀야만 한다.

어린이가 배워야 할 문화재는 역시 현실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과의 이중구조를 지닌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생명과 문화재와의 변증법적 종합 통일을 매개로 하여 조성(助成)하는 교육자 정신은 인간애와 문화애와의 이중구조를 지녀야만 한다. 각각 이중성을 지닌 어린이의 생명과 문화재와 교육자와의 다극적(多極的)인 변증법적 통일을 목표로 해서 계획하는 것이 참된 구체적 전체관에 입각한 교육학적 사고이다.

이와 같은 리트의 설명으로 인간의 생명과 사회적 문화를 상호즉응시켜 발전케 하려는 현대의 사회적 휴머니즘 교육사상의 발전은 일단 도달점에는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진보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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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步主義敎育思想

이상으로써 독일을 중심으로 한 교육학을 살펴보았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두 이후 경험철학에 의거한 교육학이 발전하고 있다. 그 대표자인 듀이(John Dewey, 1859-1952)에 의하면 교육이란 경험의 의미를 증대하고, 그 후의 경험과정을 지도하는 능력을 증대시키듯이 현재의 경험을 개조하여 재조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험'이란 인간의 생활 및 행동 본연의 모습을 해명하기 위한 용어로서, '이룩하고' 또는 '받아들이는' 상호작용을 말한다. 경험의 근본소재는 자연 에너지의 상호작용으로 보고, 모든 존재나 의식을 여러 가지 '상호작용'의 조직이나 계속으로써 설명, 또한 개선하려는 것이 경험철학의 근본이다.

인간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여러 가지 상호작용을 보다 잘 조직하고, 계속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및 사회적인 사물의 조직이나 관련이 성립된다. 그것이 '의미'라고 불리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구성된 온간 의미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의미를 증대시키는 것이 행동을 지도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모든 행동의 목적이이기도 하다.

의미의 증대, 즉 확대하고 결합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류업적을 받아들이면서 자연이나 사회에 대해서 과학적·실험적인 조작을 해나가야만 한다. 그와 같이 해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점점 추진시키고 개조하고 재조직하는 것, 즉 의미를 증대하듯이 현재의 경험을 계속적으로 재조직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의 본질이라고 듀이는 말한다.

경험이나 의미는 인간과 사물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성립되기 때문에 원래 사회적인 것이다. 개인은 경험을 성립시키는 한 중심이지만 경험을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에 규정되면서도 환경을 규정하고 자기를 개조해 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과 환경과의 상호 한정적인 작용, 즉 사회적 경험에 착안하여 그것을 재조직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개인과 환경, 즉 자연·사회·문화 및 역사를 상호즉응시켜 발전토록 하려는 것이 듀이의 교육학적 특질이다. 그 목적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위에서부터'의 교육학과 '아래에서부터'의 교육학, '안으로부터'의 입장과 '밖으로부터'의 입장,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등 모든 대립이나 모순을 극복하고 사회문제를 근본적 및 전체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슈프랑거나 리트는 자연주의나 과학적 기술이나 기계적 기구 등의 세력확대를 경계하고 그것을 억제하려 했으나, 듀이는 오히려 그것들을 재조직하고 공공적으로 사용하여 사회생활의 전체적 개선에 기여케 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대중의 사회적 지성을 높이려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했던 듀이의 교육학은 극히 포괄적인 조직을 갖는 것이라 하겠다.

교육의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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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과학화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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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科學化背景

J. D 버널은 교육이론이 전통적으로 교육의 참된 목적이나 본질의 추구를 게을리 해 온 원인을 "사회가 원래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 계급구조를 지닌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능력이나, 또는 의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구하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사회를 영구불변한 것으로 하여 어린이들을 이 사회에 적응시키는 방책을 발견할 것을 목표로 해왔기 때문에, 권력에 순응하는 변명적(辨明的)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역사에서의 과학>).

교육의 과학화라는 주장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듣는 것이며, 대개는 교육을 교사의 직감이나 요령에 맡기지 않고 기술화한다는 것, 교육을 상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교육의 여러 조건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효과를 측정한다는 것 등이다. 물론 교육을 현실사회의 역사적 발전이나 과학기술의 진실에 즉응시켜 그 목적·내용·방법·제도 및 설비의 개선을 꾀하기 위해 교육의 과학화가 제창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경향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회의 발전이나 과학기술의 진보가 전적으로 관념적이며, 거기에서 확립되는 교육정책이나 그것에 적응하는 교육이론도 그때뿐인 비과학적인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겠다. 버널이 말했듯이 변동하는 사회나 계급구조를 지닌 사회를 대상으로 해서 정면으로 리얼하게 인식하기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과학화를 진정으로 꾀한다면 이와 같이 변동하고, 이와 같은 계급구조를 지니고, 또한 여러 가지 모순을 안고 있는 사회 속에서 여기저기에 부딪치면서 어린이의 학습권에 답하고, 어린이를 지키고 키우기에 온갖 힘을 쓰는 교사의 교육실천을 똑바로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동시에 교육의 내부구조에 있어서의 모순과 대결하고, 그 모순의 극복을 지향하는 발전 노선이기도 하다.

이것은 교육을 단순한 현상으로서 대상화(對象化)한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상으로 간주되는 교육사실을 과학적 인식(科學的認識)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객관적인 입장이 성립되는 듯이 여겨지나, 거기서는 의외로 인식하는 주체가 탈락하는 것이다. '교육의 숲'에서 교사나 어린이나 부모들은 고민하고 있지만 숲 밖에서 냉담하게 그 사태를 방관한다는 것은 '교육의 과학화'가 아니다. 숲속에 들어가서 이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숲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과학화'에 대한 최대의 요청인 것이다. 교육을 과학화해야 할 실천으로서 파악한다는 의미가 바로 이 점에 있다. 교육실천의 자세한 활동 가운데서 교사와 어린이와 부모가 의식하면 할수록, 교육과학이 바로 대상으로 삼아야 할 교육모순이 모순으로서 더욱더 명확하게 나타나고, 그 극복이 요청된다. 그리고 과학적 인식이 바로 여기에서 성립된다.

교육의 과학적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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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科學的認識

교육이론과 실천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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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理論-實踐-結合

교육이론이란 교육실천과 올바르게 결합하는 가운데 참된 교육과학이 될 수 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한다면 교육의 과학이란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의미하게 된다. 실천에 있어서 교사는 사고하는 많은 기회와 일반화하기 위한 많은 재료를 발견해야 한다. 또한 사물 상호간의 새로운 결합이나 관계를 만들어 내고, 그 가운데서 지식이나 기술을 높이는 것이 실천이다. 그러므로 실천은 이론의 원천이라든가 인식의 궁극목표라고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실천도 이론에 의한 점검(點檢)이나 공헌이 없다면 맹목적인 것이 된다. 교육의 구조나 그 운동의 법칙성을 이론적으로 파악하려는 지적 활동이 병행함으로써만 실천은 비로소 확실한 전진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란 이러한 뜻이라고 하겠다.

W. 오콘은 학교에서의 교육실천의 중심으로서 생각되는 교수·학습과정에 관해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① 인식의 원천으로서의 실천, ② 진리의 기준으로서의 실천, ③ 현실의 변혁으로서의 실천이라고 하는 3개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교육의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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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科學化

교육을 과학화한다는 것은 교육이라고 하는 대상의 특수성을 실천 속에서 구함으로써 실천 가운데의 여러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과학적 인식을 도모하여야만 분명해진다. 오콘이 교수·학습과정에서의 이론에서 특히 실천에 큰 비중을 둔 것은 모순에 작용하는 어린이의 인식과 실천의 역량이 그 인격형성의 원동력으로 전화(轉化)하는 곳에서 교육의 본질을 구하기 때문이다.

원래 과학이란 인간이 자연이나 사회의 구조나 운동의 법칙성을 이론적으로 파악하려는 지적 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이론적으로 파악하려는 지적 활동이 인식이며, K. R.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1959)에 의하면 모든 인식은 우선 '문제'란 일반적인 의미에서 불리는 문제가 아니라 앞서 말한 '모순'과 거의 똑같이 보아도 된다. 인식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지식을 정당화하는 것이 과학적 비판이나, 그것은 '말하자면 화성인(火星人)'이 지구를 관찰하듯이 국외자(局外者)로서 문제 밖에 서서 바라봄으로써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문제의 와중(渦中)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포퍼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교육의 과학화'에 관해 앞서 말한 것과 똑같은 것으로서, 인식하는 주체가 탈락한다면 인식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지식을 정당화하는 과학적 비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과 과학적 비판의 차이는 과학 그 자체가 문제로부터 시작함에 대해 과학적 비판은 어떠한 방법으로 행해진 문제해결의 시도를 가설(假說)로 정립(定立)시킴으로써 시도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반증가능성(反證可能性)'에 바탕을 두는 '허위의 검증이론'에 의해서 검증되고, 차차 객관성에 접근한다. 포퍼에 의하면 이 '과학적 객관성'은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저항하고 지배적 도그마에 대한 비판을 가능케 하는 전통 가운데서 구해진다. 과학적 객관성이란 과학자의 개인적 여러 가지 일이 아니라 상호비판이나 공동작업을 보증하는 '개방된 사회'에서의 사회적 사업이다. 우리가 '교육의 과학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과학과 과학적 비판의 대상으로서 교육실천을 파악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실천이란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의 양식을 어떤 방향으로 변용(變容)시키는 인간의 목적적(目的的)·사회적인 활동인 이상, 거기에는 항상 어떤 가치의식 내지는 가치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의 과학화'는 앞서 말한 과학이나 비판이나 사실인식(사실판단)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치의식이나 가치판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와 같이 양자가 결부되고 있는 것이 모순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교육실천의 특징이다. 가치판단에는 목적에 관한 것과 수단에 관한 것이 있으며, 특히 수단에 관한 가치판단이 인식에 의해서 일의적(一義的)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아니, 목표설정의 과정에 있어서나 또한 그것을 확대시켜 가치체계나 가치관 그 자체를 외적이며 구체적인 여러 조건의 변화에 결부시켜 분석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과학적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의 내부구조의 모순을 밝혀내고, 그러한 것의 극복을 의도한다면(그것이 그대로 과학화이지만),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인간이 보다 잘살기 위한 인식과 실천의 결합력을 기대한다면 아무래도 과학적 인식과 가치의식,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문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의 과학적·가치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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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科學的·價値的實踐

'교육의 과학화'란 교육을 과학적으로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나 거기에는 교육의 목표·내용·방법에 대한 가치적인 태도의 일관성(一慣性)이 필요해진다. 즉 목표의 설정, 내용의 구성, 방법의 적용 등을 과학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교육실천에서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를 항상 통일적 및 시종일관하여 과학적 인식과 가치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교육실천 가운데에서 실현되는 교육적 가치를 과학적 인식의 대상으로서 항상 명확하게 분석한다는 것과, 그것이 사회 전체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목표·내용·방법이 지니는 사회적 및 인간적인 의미)를 충분히 구명하는 것이다.

교육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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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目標

교육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우선 교육의 목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에 바탕을 두고, 아동·학생의 발달이나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의 과학적 인식과, 그것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향하고 어떠한 도달점에 이르는가의 가치의식이 추가됨으로써 설정(設定)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여러 과학이 동원되게 되나, 잊어선 안 될 것은 그러한 과학적 인식과 가치의식의 결합은 교육실천 가운데에서 교육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교육의 목표설정에 임해서는 교육실천 속에서 교육실천에 의한 부단한 검증과 평가(실천적 가치평가라고 불러두자)의 과정을 정밀하게 파악하지 않고서는 참되게 어린이의 행복과 맺어지는 교육목표는 설정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커리큘럼 구성에 있어서의 목표설정 과정과 같은 형식성과 불모성(不毛性)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육내용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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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內容-構成

교육목표의 과학적 및 가치적 설정에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을 교육내용의 구성이라고 하겠다. 여기서는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큰 구실을 다할 뿐만 아니라 인식대상(또는 인식영역) 그 자체를 과학적인 체계에 따라 교육내용으로 하는 조작이 중요하다. 물론 그 경우에 교육목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재구성하면 되느냐 하는 것과 어린이의 발달에 어떤 식으로 구성할 수 있겠느냐는 등이 명확하게 파악되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목표 및 방침을 보면, 각 교과(敎科)·도덕 및 특별교육활동의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에 필요한 기본적 사항을 정선하는데, 그 정선함에 있어서는 시대의 진전에 부응함과 동시에 아동의 심신발달에 따르고, 그 발달성과 계통성에 관해 더욱 유의한다는 등의 방침이 제창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 사항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정선하느냐의 문제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볼 수 없으며 내용의 충실이라든가 연구를 한다 해서 오히려 학습량을 늘리는 것을 마치 시대의 진전에 부응하는 것처럼 정당화시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시대의 진보에 부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러기 위한 지식·기능·태도를 기본적으로 말한다면 무엇일까와 같은 문제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과학적 인식과 가치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버널도 말하였듯이 지식의 전달에서 지식의 창조로, 아는 것을 적게 하고 생각하는 것을 많게 하는 것이 앞서 말한 기본적 사항의 파악과 시대의 진전에 부응시키는 것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아동의 심신발달에 따라'라는 것은 근세 이후의 아동교육의 개념으로서, 여기에서의 발달 개념이란 관념적·비과학적인 인상마저 풍긴다. 그것은 발달이 환경과 교육에 의한 규정이라는 점, 사회의 모순이 어린이의 요구나 능력과 얽혀서 생긴 그들 내부의 모순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관념적 및 비과학적인 발달관은 권력지배의 측면에서 세워지는 목적에 따르는 교재를 어린이에게 충실하게 주입시키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그럴 경우 자주성이나 주체성의 확립은 어렵다.

교육방법의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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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方法-科學化

교육방법의 과학화는 교육목표 및 교육내용의 과학화에 직결하여 뛰어난 교육실천을 창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말한 버널의 말을 다시 빌린다면 "기성의 진리를 전하기보다는 그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을 나타내는 것, 바꿔 말하면 과학적 방법의 적극적인 면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 기존 지식의 축적에 비추어 본다든가 또는 실험에 의해서 직접 자연이나 사회에 물음으로써 진리를 발견하는 두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버널의 <전쟁이 없는 세계>에서). 그러므로 '발견학습'이라든가, '과제해결·집단학습'(W. 오콘)이라든가, 나아가서는 '구조학습'(브루너) 같은 것이 주장되고 있으나, 그것은 '학습의 지도'(학습방법의 지도)일 뿐만 아니라 학습과 지도 사이의 모순, 혹은 교수와 학습 사이의 모순을 분석하고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육의 과학화를 교육방법의 수준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실로 전교(全校)의 교사집단이 매일 매시간의 수업에서 '학습·지도' 내지는 '교수·학습'의 과정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며, 사전에 교재연구나 수업계획표를 어떻게 구성하며, 사후의 수업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른바 수업의 과학적 확립이라고 하겠다.

교육과 관련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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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關聯科學

'교육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사실이 똑같은 교육사상(敎育事象)에 관해서 그 사상(事象)의 복잡성이나 파악하기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듯이 여겨지기도 하나 한편 교육의 과학화에의 어느 하나의 노선도 그어져 있지 않은 탓도 있다. '교육과 관련과학'을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이 어느 한 노선을 긋기 위해서이며, 동시에 그럼으로써 교육과학이나 교육학의 자립성을 확립하기 위함 이기도 하다.

교육의 본질규정에서 요청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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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本質規定-要請-問題

교육이란 인간이 인간에게 작용하고, 그 인식과 실천의 발달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럼으로써 인간의 변혁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교육이란 무엇이냐'의 질문에 답을 한다면 이 규정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일이 명확해져야 한다.

우선 첫째로, 작용을 하고 작용을 받는 인간은 어떠한 상황 아래 놓여 있으며, 인간과 인간 상호작용의 실태는 어떻게 되어있는가. 또 그러한 인간이 어떠한 상태가 되면 실제로 교육적인 작용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하자면 '인간의 문제(問題)'가 여기에 가로놓이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이와 관련해서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인간의 문제를 낳은 상황이나 사태, 역사적·사회적 현실이나 현대의 여러 과제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그러한 것의 해결방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는 문제이다. 이것에 대해 구미(歐美) 자유주의 각국에선 교육의 사회적 배경으로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나, 사회주의 각국에서는 사회적 배경이라는 완만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사회에 의한, 소위 사회를 위한 교육으로서 철저하게 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로 문제삼아야 할 내용은 인간, 특히 어린이들의 발달이란 무엇인가, 그 발달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져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나 흔히들 발달을 말할 때 발달이 환경과 교육에 의해서 규정된 것임을 무시 또는 경시하고 있다든가 발달이 각 모순의 극복과정에서 이룩됨을 발견하지 못하는 관념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발달에 미치는 교육과 환경의 힘을 어떻게 파악하며, 발달 내지 전면적인 발달과 인간의 변혁과의 관련을 어떻게 보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변혁이 사회의 변혁과 어떻게 결부되는가 등 기본적인 문제에 올바르게 답하려는 노력 가운데에서 교육과 여러 과학과의 관련이 보다 명백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과학이란 인간이 자연이나 사회의 구조 및 그 운동의 법칙성을 이론적으로 밝히려는 지적 활동이라고 흔히 말한다. 앞서 서술한 약간의 기본적 교육문제를 올바르게 답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런데 올바르게 답할 수 있는가 어떤가는 예상되는 해답이 올바르게 검증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어떤 측정의 가설(假說)에 대한 검증이 실험·관찰·측정에 의해서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천을 규준으로 하는 과학적 인식의 과정이며, 또한 인식과 실천이 결합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설을 설정할 때의 사고(思考)과정은 단순히 감성적·직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나 이미 알려진 법칙·이론을 단서로 하는 어떤 종류의 논리적 구조를 지니는 것으로서, 프래그머티즘의 시조라 불리는 C. S. 퍼스는 이를 가설전제(假說前提:abduction)→가설에서의 연역(deduction)→귀납·실험에 의한 정당화(induction)의 과정이라 했다. 이른바 탐구(探究)의 과정(process of inquiry)이 이것이다.

처음에 든 교육의 본질규정에서 요청되는 문제를 과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밝혀나가는 곳에 교육에 관한 여러 과학의 성립 근거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교육과 학습심리학·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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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學習心理學·社會心理學

교육의 본질규정에서 요청되는 첫째 문제로서 성립되는 과학은 인간의 현상·실체·본질의 추구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형성 및 변용의 과정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마땅히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동시에 교육적 가치가 인간에게 있어서 실현되는 과정을 과학적인 눈을 통해 분석하는 것으로, 그 실현과정에서 사회에 대해 지니는 의미를 충분히 파악함을 뜻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예컨대 '인간소외(人間疏外)'에 관한 사회학적·사회과학적인 규명이 필요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인간의 형성, 인성(personality)의 형성, 행동·태도의 변용(變容), 인식의 발전, 특히 그것들을 포함하는 정신적 발달 등을 교육과정과 결부시켜 구명하면, 사회심리학·학습심리학·인식론(어린이의 인식과정을 대상으로 하는) 등이 요청되게 된다. 또한 교육을 '가치에 있어서의, 가치에 의한, 가치실현의 과정'으로서 과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거기에 가치와 과학의 관계를 추구하는 가치과학이 필요해진다.

과학과 가치에 관해서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견해도 있다. 즉 "가치는 주관과의 관계에 의해서 객관이 띠게 되는 심리적 구성분에 의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적 사유는 그 내용이 주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관계를 원리적으로 사상(捨象)하여 그 개개의 객관 사이의 상호관계적 구명에만 전념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만 주관으로부터의 독립된 자연이라고 하는 개념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대상의 주관에 대한 여러 가지 관계를 방법으로 사상함으로써 과학은 그 주관관계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더구나 모든 대상에 하나의 가치의 색조(色調)를 주는 심리적 구성분을 고려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과학적 사유에 있어서 모든 가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경험적 사실에 불과하다"(A. 스턴의 <역사철학과 가치의 문제>).

이와 같이 살핀다면 교육적 가치의 실현과정을 과학적 인식의 대상으로서 구명함은 가치판단의 문제를 사실판단의 문제와 결합하는 것이며, 가치판단을 의미 있는 것으로 하여 사물과 사건에 대해 측정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각각 주관과의 관계에 있어 심리적 구성분에 의거한 객관으로서의 가치(그것은 교육과정에 있어서는 특정의 교사와 특정 어린이들 사이의 교재를 매개로 하여 성립되는 교육적 사실)를 경험과학적 사실로 하여 '일반화'하는 것이 가치의 과학 내지는 가치과학이다. 교육실천의 일반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교육과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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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社會敎育

인간의 문제를 낳는 상황이나 사태, 역사적·사회적 현실 등의 과제 및 그 해결책의 해명에 관계되는 것이 사회과학이다. 인간의 문제 내지 인간형성의 문제의 사회적 배경을 탐구하는 것은, 시점(視點)을 바꾸어 본다면 모순에 찬 현실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이며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이며 또 어떠한 가치의 내용이나 방법에 의해서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교육에 관계되는 사회과학의 독자성과 과제로서 생각되는 것은, ① 대상이 항상 인간적·사회적·역사적 사실인 이상 비판적으로 자기목적으로서 검토되어야 할 가치를 선택한다. ② 목표달성에 필요한 가치의 내용으로서의 지식이나 기술의 엄밀성 내지 정확성을 검토한다. ③ 목표가 설정되면 가능한 한 엄밀하게 그것에 이르는 가치의 방법조건을 준비(그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수단이 됨을 자기목적으로 하는 주체활동의 준비를 뜻하기도 한다)한다 등이다.

교육과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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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心理學

이 외에 '인식과 실천'의 발달에 대한 교육의 역할을 구명하는 과학이 있다. 그것은 정신 또는 지능의 발달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오늘날 여기에는 두 주류가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 즉 J. 피아제가 대표이며 그의 제자 B. 인헤르더가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제네바 학파와 R. 비고츠키의 흐름을 계승한 A. 레온체프, P. 가르페린, N. 멘친스카야, G. 고스추크 등 소비에트 학파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학파에 의한 주장의 근본적 차이는 발달을 생물학적·자연적 사실로서 시인하고 거기에 교육이 성립된다고 하는 제네바 학파와 그러한 사실을 시인은 해도 반대로 교육과 환경에 의해서만 발달이 가능하다고 하는 소비에트 학파에서 볼 수 있다.

교육과 관련과학을 생각할 경우 정치학·경제학·역사학 등의 사회과학과, 인식론·가치론·언어학·언어철학 등의 인문과학, 그리고 수학·생물학·생리학·발육학 등의 자연과학, 또한 문학·음악·미술 등에 관계되는 예술을 포괄해야 하며, 학교에서의 교과교육과 관련과학의 결합을 밀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여러 과학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