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일생/방랑편

放浪篇(방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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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하고 은봉이가 학교에서 돌아 오는 맡에 금봉을 불렀다.

『왜? 너 어째 늦었니?』

하고 금봉이가 문을 연다.

은봉은 방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안심한 듯이 뛰어 들어오면서,

『오빠가 사흘 전 어디로 나가고 소식이 없대. 그래 집에선 야단 났어.』

하고 눈이 둥글했다.

『오빠가? 사흘 전에?』

하고 금봉도 놀랐다.

사흘 전이라면 인현이가 금봉의 결심을 재촉하기 위하여 왔던 날이다. 그 날 인현은,

『만일 네가 이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는 어디로 가서 없어져 버리고 말란다.』

하고 대단히 흥분해서 가버렸다. 인현은 금봉이더러 김광진, 심 상태는 물론이요, 최 을남 같은 여자까지와도 교제를 끊고 이 살림을 걷어 치우고, 만일 수녀나 여승이 되기 싫거든 어디 먼 시골 가서 숨어 살라는 것이었다.

인현은 분명히 감 광진이나 심 상태에게 대한 위험을 느꼈다. 또 기미년 만세 운동이 지나고 사회주의 사상이 만연되면서부터 청년 남녀의 마음이 모두 들떠서 마치 성욕과 향락의 난무 시대를 현출한 이때에 금봉이가 그 난 무극에 중요한 광대가 될 것을 인현은 직감하였던 것이었다.

금봉은 비록 인현의 우애지정과 또 그의 인생관에 경의를 표하지 아니함은 아니지마는, 이 좋은 청춘을 두고 절 구석이나 시골 구석으로 들어 가 숨는 것은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글쎄, 오빠.』

하기만 하고 인현의 말에 「네」하는 시원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오빠가 나 때문에 집을 떠나셨구나!』

하고 금봉은 눈물을 흘렸다.

『왜? 왜 오빠가 언니 때문에 집을 떠났수?』

하고 은봉이가 이상한 듯 묻는다.

『넌 모르는 일야?』

하고 금봉은 은봉을 핀잔을 주었다.

『나도 다 알아.』

하고 은 봉은 샐쭉해서 건넌방으로 가버렸다. 은봉도 형과 김광진과 자주 만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오빠 말마따나 오빠는 오빠 운명대로 가고 나는 내 운명대로 갈 수밖에.』

하고 금봉은 혼자 단념하려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은봉아, 은봉아.』

하고 건넌방으로 가버린 은봉을 불렀다.

『왜?』

하고 은봉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형의 근일에 하는 방탕한 생활이 못마땅한 까닭이었다.

『이리 와, 누가 무어랬길래 저것이 골이 났어!』

『왜?』

하고 은봉이가 안방으로 건너 왔다.

『저어, 오빠가 말이야. 오빠를 찾아 보아야 아니하니?』

『오빠가 어디 간 줄 알고 내가 찾수.』

『저어, 송월동 ─ 왜 오빠 친구 안있니. 저 황기현이라든가 하는 그 사람 말야. 너도 보았지?』

은봉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황기현이란 한번만 보아도 여자의 기억에 남을 사람이었다.

『오빠가 요새 송월동 황씨 집에를 놀러 다니는 모양인데, 너 그 집에 좀 다녀 오렴, 오빠가 거기 안 갔나? 그 집에서는 알 듯싶으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집에 어떻게 가우?』

『저 순이 데리고 갔다 오너라. 순아, 어린애 침모더러 좀 보라고 하고 너는 이 아가씨 좀 모시고 갔다 온.』

『그 집이 어디?』

하고 은봉이가 일어서며 묻는다.

『송월동이래. 송월동 알지? 새 문밖에 성 밑으로 돌아가서 말야. 거기 가서 황 부령 집이라면 다 안다더라. 그중 큰 집이래.』

은봉은 간 지 한 시간도 못하여서 돌아 와서, 금봉더러,

『갔더니 그 집에서도 서방님이 사흘 전에 어디로 나가고 안 들어 온다고, 애오개 이 서방허구 그 숭물스러운 늙은 중녀석이 후려 내어서 어디로 빼돌렸다구, 황 부령인가 한 영감이 사랑에서 뛰어 들어오더니 그 늙은 중놈을 붙들어 오라고 사람을 사방으로 보내구, 야단입니다. 경찰서에 수사 청원을 한다구. 그러니깐 그 뚱뚱보 마나님이 아스라구, 경찰서에는 말을 말라구.

그래서 야단만 만나구 왔소.』

하였다.

금봉은 은봉의 보고를 듣고,

<아아, 내가 잘못했다. 오빠의 말이 옳은 것을 내가 죄악의 길에서 벗어날 최후의 기회가 지나갔다. 나는 한량 없이 깊은 죄악의 벌판으로 헤매게 되 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때에 대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은봉은 낯을 찡기며,

『그 녀석이 또 오는군.』

하고 종알대었다. 오후 네시가 지나면 거의 날마다 찾아 오는 김광진이의 음성을 은봉은 잘 기억하였다.

『그녀석이라니? 그게 말 버릇이냐?』

하고 금봉은 은봉을 책망하였다.

『그녀석 아니구! 무엇하러 그녀석이 남의 집 아낙네만 있는 집에 코를 줄줄 끌고 날마다 와, 개수통을 뒤집어 씌울까 보다!』

하고 은 봉은 독살을 부리며 형을 노려 보았다.

『저것이 아무것도 모르고.』

하고 금봉이가 곁에 있는 자막대기를 들다가 도로 놓고,

『주둥아리 꼭 닥쳐!』

하고 마주 눈을 흘겼다.

『정선아.』

하고 광진이가 마루끝에 올라 서다가 은봉이가 뾰로통하고 안방에서 튀어 나와서 인사도 아니하고 건넌방으로 가려는 것을 보고,

『어, 은봉씨. 내가 오늘은 은봉씨한테 선물을 하나 사왔는데 사내 눈으로 고른 것이라 원체 은봉씨 눈에 들까. 어디 좀 보시오.』

하고 미쓰꼬시라는 봉함 뭉텅이를 은봉에게 내어 민다.

초겨울이 다 되어도 나들이옷 한 벌도 없는 은봉의 눈에는 미쓰꼬시 물건이라는 것이 흥미를 아니 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끌러보지 아니하여도 옷감인 것이 분명하였다.

은봉은 광진에게서 그 뭉텅이를 받아서는,

『이건 왜 주세요?』

하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들고만 이었다.

『내 누이 동생이 혼인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혼수 흥정을 갔다가 은봉 씨 생각이 나길래 변변치 못한 것을 한 감 바꾸었지요. 내 누이 혼인 날짜가 오는 시월 삼일이니 그래서 혼인 구경이나오시라구.』

하며 마루에 놓인 명규 책상 앞 회전 의자에 앉는다.

금봉은 그동안에 머리도 고치고 매무시도 고치고 마루로 나오면서,

『오셨어요?』

하고 고개를 숙인다.

『네, 정선이 잘 있어요?』

하고 광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점잖게 인사를 하고 도로 앉으며 다른 뭉텅이 하나를 금봉에게 주며,

『이것은 정선이에게 주는 선물이야요.』

하고 금시 은봉에게 말한 대로 누이 동생 혼인날이 음력으로 시월 심일인 것을 말하고 청첩은 다시 보내겠지마는, 그때에 꼭 출석하여 달라는 부탁을 한다.

『언니, 내게도 이것을 주셨는데.』

하고 은봉이가 아직도 광진이가 준 물건을 들고 섰다가 형의 처분을 기다리는 듯이 묻는다,

『그건 왜 그렇게 하세요?』

하고 금봉이가 또 한번 고개를 숙여 광진에게 고맙다는 뜻을 표한다.

『원 천만에. 무얼 그런 것을.』

하고 광진은,

『그런데 오늘 온 것은…… 참 손 선생헌테서 무슨 기별 또 있어요?』

하고 금봉을 바라본다.

『없읍니다. 남양으로 간다는 편지가 오고.』

하고 금봉은 수색을 띄운다.

『그러세요? 오늘 내게 손 선생헌테서 편지가 왔는데 역시 남양으로 떠나 노라고 하고. 또 가족을 부탁하니 돌아 보아 드리라고 하고, 또 돈 이천원만 향항 삼정 물산으로 보내어 달라고 하기로 바로 전보환으로 붙여 드렸읍니다. 친구를 믿고 부탁하신 것을 범연히 할 수가 있읍니까. 그러니 생활에 관하여서 조금도 염려 마셔요.』

하고 광진은 금봉을 바라본다.

금봉은 남편에게서 온 편지와 광진의 말과 부합하는 것을 보고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까닭 없는 사람에게 생활비를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금봉은,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염치로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하고 속에도 없는 사양을 하였다.

『원 천만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내가 도리어 미안하지요. 그도 돈을 그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시 돌려 드리는 것이니까. 어디 세상에 빚 안 지고 사는 사람이 있나요? 아예 그런 말씀을 마시고 무엇이나 아쉬운 것이 있거든 말씀하셔요.』

『우리 오빠가 절더러 어디 시골로 가라고 하셨는데 아마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어요.』

하고 금봉은 광진의 도움을 사양하는 이유를 보이려 한다.

『어느 시골?』

『어디나 먼 시골로요. 서울은 있지 말라고요.』

『그건 또 무슨 이유실까.』

『젊은 여편네가 혼자서 번화헌데 사는 것이 마음이 안놓이는 게지요. 실상 그렇기도 하고. 암만 해도 오빠 말씀대로 시골로 가는 게야요.』

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한다.

『옳은 말씀이지요. 과연 지당한 말씀이야요.』

하고 광진은 칭찬하고 나서, 허 나도 그 양반을 『, 한번 뵈었으면 좋을 텐데. 그래 오라버니께서는 무엇을 하시나요?』

하고 탐탁하게 묻는다.

『하아.』

하고 금봉은 한숨을 지우고,

『오라버니께서 ─』

하고 그 말을 할까 말까하고 잠간 주저하다가,

『글쎄, 오라버니께서 사흘 전에 어디로 가셨는지 행방 불명이 되었어요.』

하고 또 한번 한숨을 쉬인다.

『행방 불명? 대관절 무슨 일을 하셨는데?』

『아무것도 하는 것은 없어요. 그저 집에 계셨지요. 집을 보시고.』

『그런데 왜 행방 불명이 되셔요?』

하고 광진은 놀라는 빛과 동정하는 빛을 보인다.

『아마 저 때문인가 보아요.』

『왜요? 부인께서 무슨 일이 있으시길래?』

하고 광진은 마치 금봉을 티끌만한 흠절도 없는 사람같이 생각한다는 태도 다.

『제가 죄 짓는 생활을 하는가 보아서 그러시지요. 우리 오라버니는 아주 종교가셔요.』

『예수 믿으시나요?』

『그런 것도 아니지마는.』

『그럼 무슨 종교가실까. 설마 불교는 안 믿으실 터이고.』

『왜 불교는 믿어서 안되나요?』

『지금 세상에 불교를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물며 청년이. 또 만일 부인 같으시면 무섭게 총명하실 텐데. 그런 총명하시고 신교육 받으신 청년 이 불교야 믿으시겠어요? 그런 미신을?』

『예수교는 미신이라고 생각 아니하셔요?』

하고 금봉은 광진의 인생관을 건드려 본다.

『우리는 예수도 아니 믿습니다마는, 나도 서양에 오래 있었으니까 성경 이야기도 많이 듣고 그 고장 예배당 구경도 다녔지만…… 또 내가 하숙하고 있던 집 늙은 부인이 아주 골예수가가 되어서 참 귀찮을 지경이었지요. 기도를 하자고, 설교 들으러 가자고. 그 덕에 설교도 많이 들었지요마는 도무지 우리 귀에는 들어 오지를 아니하겠지요. 그래 어리석은 늙은 과부들 같은 사람에게는 예수를 믿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장래에 소망을 두니까.

하늘 이 물렁물렁한 기체로 화한 오늘날 과학 시대에 천당이 있을 데가 있나요. 하나님이 발붙일 하늘이 있어야지 말이지, 하하하하. 아참 실례했읍니다. 부인께서는 예수를 잘 믿으셨더라지요? 용서하십시오.』

하고 광진은 예수를 믿는다는 금봉이가 제 남편의 눈을 속여서 다른 남자의 품에 드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럼 선생님은 하나님도 안 믿으셔요.』

하고 금봉은 분개하는 모양을 보인다.

『글쎄요. 아직은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는걸요. 하하. 그렇지만 부인께서 믿으라고 하시면 믿어도 좋지요. 우리도 예배당에 가서 찬미가 듣는 것 은 과히 싫지는 아니하니까.』

하고 광진은 유쾌한 듯이 웃는다.

『선선해요. 방으로 들어오시지요.』

하고 금봉은 광진을 안방으로 끌어 들인다.

『어디 저녁 잡수러나 가시지요. 은봉씨도.』

하고 광진은 건넌방 쪽을 바라본다.

『잠간 들어 오셔요.』

하고 금봉은 굳이 광진을 안방으로 끌어 들여서 아랫목에 앉히고 나서,

『그럼 선생님은 죄도 무서워하지 않으셔요?』

하고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죄가 무섭지요. 잡혀 가니까.』

하고 광진은 웃는다.

『경찰에 잡혀 가지만 아니하면 죄는 무섭지 아니할까요?』

『죄라니, 대관절 무엇을 말씀이셔요?』

『죄 아니 있어요? 여러 가지 죄가 있지요. 남을 속인다든가 미워한다는가 또 옳지 아니한 모든 일을 하는 것 말씀야요?』

『그런 건 하기 싫거든 안 하면 좋지요.』

『하면?』

『해도 상관이야 없지요. 좀체면 관계가 있지만.』

『그럼, 선생님은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벌은 아니 받는단 말씀입니 다그려. 생전에나 사후에나?』

『벌? 벌을 누가 주어요?』

하고 광진은 빙그레 웃으며,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신장님이 벌을 주신단 말씀야요.』

하고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하하거리고 웃고 나서,

『그렇게 총명하시고 신교육을 받으신 부인께서 어떻게 이런 구식 생각을 하셔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우리 힘이 및 는 데까지 한다. 이것이 현대 인의 철학이지요. 이것이 문명이란 것이구요. 아직 이 철학을 이해할 만한 정도에 못 달한 사람들이 무꾸리도 하고 살풀이도 하고 기도도 하지요. 종교? 하하하하. 어느 하나님이 내 뜻을 막아요? 내 자유를 막아요?』

하고 광진은 불의에 금봉을 껴안으려 한다.

금봉은 광진의 귀에 입을 대고,

『남의 유부녀를 이렇게 해도 하늘이 무섭지 않수?』

하고 소근거렸다.

『하늘이란 푸른 광선이 먼지와 물방울에 반사하는 것이어든, 조금도 무서 울 것이 없으나……』

까지는 큰소리로 하고 그 다음은 소리를 감추고 손가락으로 금봉의 눈을 만지면서,

『요 눈이야말로 무서워.』

하였다. 은봉은 어느 틈에 안방문 밖에 와서 광진과 금봉의 말을 엿들었다.

금봉이가 눈치를 채고 문을 와락 열고 나오면서 은봉을 보고 눈을 흘겼다.

광진이가 간 뒤에 금봉은 은봉을 불러 놓고,

『무얼 엿을 들어? 계집애년이!』

하고 닦아 셌다.

『엿듣는 게 죄요? 엿들릴 일을 하는 게 죄지.』

하고은 봉은 대들었다

『이년이! 귀 밑에 피도 안 마른 년이!』

하고 금봉은 주먹으로 은봉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언니가 잘했소? 잘했어? 왜 남의 사내를 안방으로 불러 들여 가지고는 그게 다 무슨 행사요?』

하고 은 봉은 울었다.

『무엇이 무슨 행사야? 이야기도 못해?』

하고 금봉은 또 한번은봉의 머리를 때리며,

『가거라 이년, 그럴 테면 집으로 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갈 테야. 이런 더러운 집에서 그 더러운 밥은 안 먹을 테야.』

하고 은 봉은 건넌방으로 들어 가서 제 옷과 책을 싸고 아까 광진이가 사다 준 옷감을 마루로 홱 내어 동댕이를 쳤다.

『어서 가거라, 어서 가!』

하고 금봉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갈 테야. 누가 있을 줄 알구! 어머니 생각을 좀 해보우. 하늘이 안 무섭다구? 흥, 그런 녀석의 대가리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고야 말 걸.』

하고 은봉은 종알거리면서 쌍창을 열고 나섰다.

『아주마! 아주마!』

하고 정선이가 침모방 창을 열고 은봉을 보고 뛰어 나오려고 들었다.

은봉이가 들여다 보지도 않고 중문을 나설 적에,

『아주마 이유와, 아주마 이유와.』

하고 정선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은봉은 잠간 멈칫하고 섰다가 정선의 울음 소리를 따라서 들어 왔다.

『아주마 아주마.』

하고 매어 달리는 정선을 껴안을 때에 은봉은 눈물이 쏟아졌다. 정선이가 아직 낯가림을 할 줄도 모를 때부터 은봉은 정선을 업어 주고 안아 주었다.

그것이 자라서 이제는 세 살, 쉬운 말도 하고 많은 재롱도 피우고 아주마 아주마하고 저를 따르는 것을 보면, 은봉은 이 아이가 다만 제 조카딸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그보다 더 깊이 생명에 관계가 붙은 것 같았다. 은봉은 본래 금봉과 달라서 감정이 그처럼 예민한 편도 아니었건마는, 이십을 바라 보는 처녀로는 노상 센티멘탈한 기분이 없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못 닮을 사람을 닮았을까?>

하고은 봉은 정선을 안아 줄 때마다 생각한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닮아야만 할아재 손명규를 닮은 데는 하나도 없고 그야말로 다식판에 박아 낸 것같이 김광진의 모습이었다. 차차 자라 갈수록 그 음성까지도 김광진을 닮은 것 같았다.

이러한 정선을 손명규가 안고 귀여하며,

『내 딸, 어구 내 딸.』

하고 좋아하는 것을 볼 때에는 은봉은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손명규는 제 말마따나 평생에 처음으로 자식이라고 부를 사람이 생긴 것을 무척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상해로 떠날 때에도 돈이 중해서 가기는 가면서도 제일 떠나기 어려운 것이 정선인가 싶었다.

『정선이 울리지 말어, 배탈 내지 말구.』

하고 아내를 바라보고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신신 당부하는 정경은 은봉에게는 애끓을 일이었고, 그때에 금봉이가,

『무슨 상관요? 내 딸이지 당신 딸이오?』

하고 명규의 품에서 정선을 빼앗아 갈 때에는 은봉은 형이 밉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형도 제 양심에 걸리는 바가 있어서 그러려니 하면, 형도 미운 중에 불쌍도 하였다.

『정선아, 아주머니 갔다 오께, 외할아버지랑 아쩌씨랑 가보고 맛난 것 많이 사가지고 오께.』

하고 정선을 떼어 놓으려고 하나, 정선은 은봉의 목을 그 조그마한 팔로 껴안고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어부바, 어부바.』

하고 정선은 은봉이더러 업어 달라고 졸랐다.

『아이, 가시지 마세요.』

하고 침모가 이 정경을 보다 못하여 툇마루에 놓은 은봉의 보퉁이를 집어서 제 등뒤에 감추며,

『이 아기가 어머니보다도 아가씨를 더 따르는데, 학교에서 오실 때쯤 되면, 아주마 아주마 하고 대문 소리만 나면 대다본다우. 그리다가 안 오시면 울구. 어서 안으로 들어 가셔요. 형제분이 다투신걸 무얼. 나는 형님이나 동생이 있으면 밤낮 욕을 먹고 얻어 맞아도 좋겠는데.』

하고 은 봉은 붙든다.

은봉은 이 침모를 존경한다 . 시골 친정은 넉넉하지마는 양오라버니네에 이 애치기 싫다고 안 가고 소년 과수로 자식도 없이 바느질 품을 팔아서 늙은 시어머니와 어린 동생의 치다꺼리를 하면서 언제나 만족해하는 이 침모를 은봉은 철이 날수록, 오래 사귀일수록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침모는 이렇게 혼자 무슨 재미로 사시우?』

하고 어떤 때에 은봉이가 침모에게 물은 일이 있었다.

그때에 침모는 빙그레 웃으며 바느질감을 내어 밀면서,

『이 재미로 살지요. 이렇게 호고 감치고 하노라면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리지 않아요? 그리다가 옷 한 가지가 마음대로 되면은 기쁘지요.』

이렇게 대답하였다. 역시 침모도 「잊어야 할 것」이 있고나 하고 은봉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처녀인 저는 젊은 과부의 심리를 알 수는 없으리라고 은봉은 생각하였다.

은봉이가 정선에게 붙들려서 섰는 것을 보고 금봉이가 안방에서,

『은봉아.』

하고 불렀다. 마음이 서글퍼진 것이었다.

은봉은 못 들은 체하였다.

『아가씨, 대답하세요.』

하고 침모가 은봉의 대답 없는 것을 보고 은봉에게 눈짓을 한다.

『은봉아, 젖이 불었으니 정선이 데리고 이리 들어와!』

하는 금봉의 말은 정다왔다.

『어서 애기 데리고 들어 가셔요, 네.』

하고 침모가 웃으며 자막대기를 들어서 때릴 것처럼 위협하였다.

은봉은 실상 침모의 정신에 감동이 되어서 정선을 안고 방으로 들어 갔다.

『엄마.』

하고 부르기는 부르면서도 정선은 눈치를 본다. 요새에 금봉은 가끔 화를 내어서 정선을 때리는 까닭이었다.

『젖머.』

하고 젖을 내어 흔드는 것을 보고야 정선은 달음박질을 쳐서 엄마에게로 달려가서 젖을 물고 조그마한 손으로 다른 쪽 젖꼭지를 만진다.

『아이그, 아퍼.』

하고 금봉은 몸서리를 치며,

『요년아, 가만가만 빨어.』

하고 금봉은 요새에 제 몸과 신경에 이상이 있음을 의식한다. 그것은 벌써 경도가 두 달째 거르고 또 어린애 젖 물리기가 싫어진 것이다. 금봉은 또 겪을 입덧과 또 생길 새 생명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났다. 만일 이번에 손명규를 닮은 아이가 난다면 문제도 없겠지마는 그럴 까닭은 없었다. 이것은 김광진의 둘째 아이였다. 그렇다고 정선을 배었을 때와 같이 하늘이 무섭고 세상이 무서운 마음은 없었다. 그만큼 양심에 좋은 살이 박힌 것이었다.

다만 귀찮음이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퇴폐된 심리는 정선에 대해서도 그러 하고 은봉에게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새 자식이 나게 되면 먼저 난 자식이 미워지는 것은 암탉이나 여자나 마찬가지라고, 은봉이나 정선에게 대한 살뜰한 애정이 감하고 귀찮은 생각이 나는 것은 동물적 본능이라 하여도, 또 은봉에게 대한 금봉의 감정이 여자 형제간에 있는 반발력인 원인이라 하더 라도 그보다 더 금봉이가 은봉을 대할 때에는 미워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금봉이 자신은 이제 더러워진 인생이언마는, 은봉은 아직도 마귀의 손이 닿아 보지 아니한 깨끗한 처녀라는 것과, 둘째로는 은봉이가 금년에는 전문 학교 학생이 되어서 지식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금봉 자신보다 높아지는 것이었다. 은봉은 금봉이가 동경 유학할 때 모양으로 종교적 신앙이 굳고 또 학교 성적이 좋아서 학교에서 상당히 이름이 높았다. 그의 성악의 재주는 벌써 글리 클럽에서도 중요 인물이 되었고, 어학의 재주와 글 짓는 재주 도 선생들과 동창들 사이에 평판이 되어서 금년 학교 창립 기념식에 부를 노래의 현상 모집에 당선이 되었다. 이런 것을 기뻐해야 할 형의 처지로서 도리어 시기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제 신세를 금봉은 슬프게도 생각하지마는, 방탕한 생활은 오직 열등한 감정을 자극하고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년아, 그럴 테면 집에 가거라.』

하고 은봉에게 말한 것은 결코 일시적 감정만이 아니었다.

「나보다 나아지려는 저」에 대한 뿌리 깊은 시기였다.

『은봉아, 내가 잘못했다.』

하고 금봉은 목덜미라든지 젖가슴이라든지 뒷모양이라든지 벌써 거얼이 아 니요, 우맨이 다 된 동생을 바라보면서 솔직하게 사죄를 하였다.

『은봉아, 나를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 다오. 나도 너와 같이 깨끗하고도고하던 것이 엊그제야. 그런 것이 이렇게 동생헌테도 업신여김을 받는 천덕궁이 신세가 되었구나. 은봉아, 내가 내 잘못을 모르는 줄 아니? 남의 사내를 안방으로 끌어 들여서 가까이하는 것이 잘못인 줄 모르는 줄 알어? 다 안다. 그렇지만 병신더러 병신이라면 듣기 싫은 모양으로 깨끗한 네 양심의 빛으로 내 마음의 다아크사이드 ─ 어두운 구석을 꼭 집어 내면 내가 견딜 수가 없이 부끄럽고 화가 나는구나. 그러니깐 은봉아, 너는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못본 체, 지옥으로 가든 천당으로 가든지 못본체만 해주려무나. 그리고 너는 네 몸이나 깨끗이 거두고 공부를 잘해서 어머니 소원을 이루어 드리려무나. 죄의 생활이란 한 발만 들여 놓으면 머리까지 들어 가고야 마는 것이다. 한 발을 들여 놓았다가 빠져 나오는 사람도 있나? 퀵 샌드라고 영어에 있지. 죄라는 게 그런 것이야. 한번 빠지면 그만이란 말이야.』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못 나오우?』

하고 은봉은 금봉에게 항의한다.

퀵샌드거든 한번 빠져 『 . 놓으면 몸을 꿈지럭거리는 대로 자꾸만 더 깊이 깊이 들어 가는 것이어든. 또 죄의 쾌락이란 것이 술이나 아편 마찬가지가 되어서, 도리어 술이나 아편보다 더해요. 대번에 인이 박히고 마는걸. 그러니깐 너는 시작을 말어. 키이프알루우프라고 안 그러든? 멀찌기 물러서라구.』

『글쎄 그렇게 소상히 잘 알면서 왜 헤어나지를 못해요? 오빠 말씀대로 왜 수녀가 못되우, 먼 시골로 가든지.』

하고 은봉은 형의 머리와 구변이 좋은데 한껏 탄복하였다.

『이건 어떻게 하고 수녀가 되니?』

하고 금봉은 젖을 빨다가 꼭지를 문 채로 잠이 든 정선을 가리킨다.

『정선이는 내가 맡아 드릴께.』

하고 은봉은 형을 건진다는 의협심을 느꼈다.

『네가 어떻게 맡아? 맡기려면 제 아버지에게 맡기지. 공부하는 네가 어떻게 맡아?』

하고 금봉은 정선의 늘어뜨린 손을 집어다가 제 입에 댄다.

『아재가 언제 오실 줄 알구? 아재가 오시면 언니를 잘 놓아 주시겠수.』

하고 은 봉은 일어나서 정선의 잘 자리를 깔고 베개를 놓고 도로 앉는다.

『아재가 왜 정선이 아빤가?』

하고는 금봉은 한숨을 쉬면서 정선을 자리에 눕힌다. 금봉은 은봉이가 성난 것을 눅힌 것만을 다행으로 알고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 은봉도 아무 말 없이 건넌방으로 왔다.

〈내 장래는 어찌 되려는고?〉 하고 은봉도 형의 신세를 비추어서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은봉도 나이가 이십을 바라보니 이성 그리운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희미하게나마 누가 기다려지는 것 같았다. 혹시 젊은 남성이 자기에게 주목을 하거나 무슨 기회에 친절히 하여 줄 때에는 그것이 노상 싫지는 아니하게 되었다. 그리나 감정보다도 냉정한 이성을 다분으로 가진 은봉은 남자에게 대한 위험을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형의 신세를 보건댄, 남자는 여자를 잡아 먹는 맹수와 같아서, 교실에서 남자 선생의 강의를 들을 때에도, 〈저 선생도 우리들 젊은 여자를 잡아 먹으려는 맹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학교에 있는 여러 여자 선생 모양으로 나이가 사십 오십이 되도록 혼자 늙은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아직 그 문제는 집어 치우자.〉 하고 은봉은 이런 문제를 집어 치우지마는, 다른 아이들이 남자의 방문도 받고 편지도 받고 무슨 핑계를 만들어 가지고는 남자와 함께 다니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부러웠다.

〈나는 어떤 남자가 찾아 주지 아니하나? 편지라도 주는 이가 있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났다 그러나 . 은봉의 외모가 대단히 쌀쌀해 보이는 탓인지 아직 아무도 은봉에게 지근대는 남자가 없었다. 실상은봉은 얼른 보면 도무지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싸늘한 여자인 것 같았다. 학교 선생들도 「어떻게 형제가 저렇게 딴 판일까. 은봉이만은 연애 사건으로 몸을 망칠 염려는 없다」고들 생각한 정도이었다.

『혈족 관계 없는 남녀가 오빠니 누나니 하는 것도 옳지 않소. 그것도 연애요.』

하고 교장 선생이 하던 말을 다른 아이들은 그것이 옳은 말인 줄 깨달았다.

은봉은 학교에서 연애라는 점에서 더욱 신임을 받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최 을남이와 임숙희가 금봉이 집에 찾아 왔다. 은봉도 학교에서 돌아 온 뒤였다.

『금봉이, 들러리 좀 서 주어야겠네.』

하고 을남은 마치 남자가 남자에게 대한 말투로 방에 들어와 앉는 맡에 말을 떼었다.

『웬 들러리?』

하고 금봉은 호기심으로 을남과 숙희를 번갈아 보면서,

『을남 언니 혼인허우?』

하고 점을 쳤다.

『내가?』

하고 을남은 천만 의외의 말이라는 듯이,

『내가 시집 갈 사람인가?』

하고 사내 모양으로 허허하고 웃는다.

『그럼 숙희 언니가 시집을 가우?』

하고 금봉은 숙희를 본다.

『아니야.』

하고 숙희도 어이 없이 웃는다. 사실상 숙희는 혼인예식을 할 길은 막연하였다. 병걸과는 거의 내어 놓다시피 부부 생활 비슷한 짓을 하고 있지마는 너울 쓰고 웨딩마아치 치고 할 기회는 영원히 올 것 같지도 아니한 까닭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숙희는 적막하였다.

『그럼 웬 들러리야? 이 언니들이 날 놀려먹나, 원.』

하고 금봉은 눈치를 채어 볼 양으로 을남과 숙희를 연해 본다. 은봉도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그러나 표정에 보이지는 아니하고 듣고 있었다.

『어디 알아맞혀 보아.』

하고 을남은 간지리는 웃음을 낯에 띄우고,

『당대 제일 재원이 금봉씨가 그것을 못 알아맞혀서 쓰겠나?』

『글쎄 누굴까?』

하고 금봉은 여러 사람을 머리 속에 그려 본다.

『영자 언니.』

하고 성미 급한 숙희가 퉁퉁증이 나서 그만 폭로해 버린다.

『영자 언니가?』

하고 금봉은 강영자의 새침뜨기, 얌전빼기, 발끈이를 눈앞에 그려 본다.

그리고 강영자를 조선에 제일가는 얌전한 여자라고 노 칭찬하는 을남의 오빠 최 형식을 눈앞에 그려 본다. 동경 생활 오륙년에 한번도 연애 풍설을 내이지 아니한 강영자, 서울 오는 길로 ○○ 여자 고보 교원으로, 역시 혼인이라는 혼자 소문도 내지 않던 강영자가 급전직하로 웬 혼인인가 하고 금봉은,

『영자 언니가 누구허구 혼인을 허우? 도무지 그런 말도 없었는데.』

하고 금봉은 또 한번 놀라는 표정을 한다.

『신랑은 누구겠나, 그게나 맞혀 보아. 좀 가만 있어. 왜 그리 입술이 얇아.』

하고 을남이가 숙희를 노려 본다.

원체 좀 붉은 편인 숙희는 참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그 신랑이란 사람이 금봉에게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니만큼 더욱 참기가 어려웠다. 더구 나 그 신랑이란 사람이 금봉에게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니만큼 더욱 참기가 어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심 변호사?』

하고 금봉은 자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원체 영자는 얌전은 할는지 몰라도 속된 사람으로 낮추 보는 금봉은 심상태가 가장 그럴듯한 배필로 생각한 것이었다.

『아니야. 괘가 잘못 났어.』

하고 을남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럼, 누굴까?』

하고 금봉은 애타는 듯이 양미간을 찌푸린다.

『왜, 금봉이는 심 변호사 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심 변호사는 시어머니와 송사하는 젊은 과부년허구 산다는데 혼인이 무슨 경을 칠 혼인이야?』

하고 을남은 분개한 모양이다.

『그럼, 누구요?』

하고 금봉은 마침내 항복하는 표를 보인다.

『우리 오빠.』

하고 참다 못하여 숙희가 발표를 한다.

『망할 것! 좀 더 금봉이를 애를 먹이지 않고.』

하고 을남은 숙희를 쥐어 지른다.

『오빠?』

하고 금봉은 앞이 아득함을 깨달았다. 태중의 신경과민 관계도 있겠지마는, 이 소식은 금봉에게는 실로 청천 벽력이었다. 제가 먼저 임학재를 배반하고(배반이라고 할 것도 없을는지 모르지마는)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가고 그나 그뿐인가 또 , , 다른 남자와는 아이까지 낳고 또 배기까지 한 처지 언마는, 그래도 금봉은 마음속 어느 한편 구석에 학재의 모양을 감추고 있었다. 「학재는 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혼자 학재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 던 것이다. 그런데 학재가 혼인을 해? 게다가 강영자와 같이 얌전하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는 여자하고? 하면 천지가 캄캄해짐을 깨닫고 심장과 호흡이 한꺼번에 막혀 버렸다.

『금봉이, 금봉이.』

하고 무엇을 기다렸던 숙희는 낯이 해쓱해져서 쓰러지려는 금봉을 한팔로 안으면서 을남이를 바라보았다.

금봉은 숙희의 팔에 얼마 동안 안겨서 눈은 감고 있었다. 얼마 후에 금봉은 정신을 차려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내가 뇌빈혈증이 있어서…』

하고 꾸며대었다.

『역시 금봉이가 학재씨를 못 잊고 있는군.』

하고 을남이가 혀를 찬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뇌빈혈이야요.』

하고 금봉은 무료한 듯이 웃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금봉이가 다시 고개를 들 때에는 눈물이 빛났다.

『역시 영자가 바로 알았군.』

하고 을남이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영자 언니가 무얼 알아요?』

하고 금봉이가 울음을 삼키노라고 낯 근육을 씰룩거린다. 을남이가,

『영자 말이 그런단 말야. 금봉이가 지금도 학재씨를 사랑한다고. 그러니깐 학재씨하고 혼인하는 것이 꺼림칙하다고. 학재씨도 필시 금봉이를 잊지 못하리라고 그런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원 별소리를 다 하네, 금봉이는 벌써 손 선생한테 시집을 가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별소릴 다 하네. 그렇지만 영 자가 역시 바로 알았어. 그것이 말은 안해도 눈이 밝아요.』

하고 숙희를 본다.

『나도 금봉이는……』

하고 잠깐 주춤하다가,

『나도 금봉이는 우리 오빠하고 혼인을 하게 되려니 그랬어. 그렇지만 오빠가 원체 나무로 깎아 놓은 사람이니깐 웬걸 하기도 했지만, 을남 언니는 다 모르리다. 금봉이가 어떻게 우리 오빠를 사모했는지. 기숙사에서도 자는 체하고 가만 보느라면 자다가 일어나서는 기도실로 나간단 말야. 몇 번 따라 나가 보니깐 임 선생, 임 선생 하고 글쎄 오빠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하겠지 ─ 안 그랬어 금봉아?』

하고 금봉의 속도 모르고 사정 없이 아픈 자리를 건드린다.

『아이, 그런 소리를 말아요.』

하고 금봉은 화를 낸다.

『스꼬 시장꼬구다네(좀 무참한 일인걸).』

하고 을남이가,

『임 학재씨하구 영자하구 혼인하는데 금봉이더러 들러리를 서달라는 것은 좀 장꼬꾸하지?』

하고 숙희에게 묻는 것처럼 말한다.

『혼인날은 언제요?』

하고 금봉이가 정신과 몸을 다 수습하면서 묻는다.

『혼인날은 시월 삼일로 하려고 했는데, 그날은 저 김 자작의 딸인가가 혼인식이 있어서 정동 예배당을 쓴다고. 그래서 그날 오후 네시에 할는지 다음날로 할는지 아직 미정이라고……』

하고 을남이가 슬슬 금봉의 눈치를 본다. 금봉은 그 김 자작의 딸이라는 것이 김광진의 누이인 줄을 잘 안다.

김광진이가 시월 삼일에 누이의 혼인식이 있으니 은봉이까지도 참녜해 달라던 그 혼인이다.

금봉이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앉은 것을 보고 을남은 잼처,

『금봉이 어떡할 테야. 나하구 금봉이하구 또 하나는 서정희더러 해 달랄까 하는데, 천주교인이니깐 잘 안 서 줄 테지?』

하고 숙희를 본다.

『제 아무리 천주교인이라도 내가 서라면 설 테지.』

하고 숙희가 장담한다.

『허긴 그래, 같이 감옥에서 고생까지 했다니깐. 그래도 고것은 너무 빽빽 하니깐 ─ 성모 마리아니깐.』

하고 을남은 웃는다.

『남자 들러리는 누구누구요?』

하고 금봉은 가슴속을 감추노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자꾸 묻는다.

『남자는 잘 모르니깐 아마 그 축들이겠지. 우리 오빠하고 숙희네 영감하구, 그리고 심 변호사나 하고, 대개 그럴걸.』

하고 을남은 숙희에게 꼬집어 뜯기면서,

『그럼 조 병걸씨가 숙희네 영감 아니면 뉘 영감인고?』

하고 시치미를 뗀다.

금봉은 임 학재의 혼인에 이러한 사람들이 들러리를 선다는 것이 슬펐다.

그렇게 깨끗한 사람의 혼인에 몸도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 들러리를 선다 는 것이 놀라운 것 같았다.

그래서 금봉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 일종의 반감을 일으키면서,

『좀 깨끗한 사람들을 골라서 들러리를 세우지.』

하고 톡 쏘았다.

이 말은 을남과 숙희를 때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을남은 곧, 목욕이나 잘하고 속속들이 『새 옷이나 갈아 입고 가면 깨끗하지 않어?』

하고 빙그레 웃는다.

금봉은 더욱 반항적으로,

『겉이나 깨끗하면 무엇하오? 속이 깨끗해야지. 피가 더럽고 혼이 더러운 것이 목욕한다구 깨끗해지겠수? 회칠한 무덤이지.』

하고 입을 꼭 다물었다. 자기가 「나는 깨끗하다」고 천지간에 우뚝 서서 뽐낼 수 있던 날이 어제인 듯하기도 하고, 억만 겁 전인 듯하기도 하였다.

『그럼, 금봉이 혼자서 들러리를 서지.』

하고 숙희가 좀 분개한 어조로 쏜다.

『나도 깨끗하던 날을 다 잊어 버렸으니 말이오. 세상에 그렇게도 깨끗한 사람이 동이 났느냐 말이오.』

『그렇게 피까지 혼까지 깨끗한 사람을 골라서 들러리를 세운다면 이 세상에서 혼인은 영 못하게 되겠지. 들러리커녕 주례한 목산들 어디 고를 수가 있다구. 다 목욕이나 하고 새 옷이나 갈아 입으면 깨끗한 게야.』

하고 을남은 늙은이 모양으로 타이른다.

『임 선생도 깨끗지 못할까?』

하고 금봉이가 화두를 돌린다.

『우리 오빠는 깨끗하리다.』

하고 숙희가 을 남의 동의를 구한다.

『아직 총각인 것만은 사실이겠지.』

하고 을남은 학재의 도무지 건드려지지 않던 것을 생각하며,

『아직 정남인 것만은 사실일걸. 그러니깐 금봉이 말대로 피까지 깨끗한 것만은 사실일 것일세, 혼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지만 금봉이헌테는 적어도 혼만이라도 끌렸었을걸. 이번에도 우리 오빠가 아무리 혼인을 권해도 도무지 안 듣더라니깐. 혼인할 마음이 도무지 없노라고 하더라니깐. 그게야 간디식 사상도 사상이겠지만, 암만 해도 생각하는 여자가 있는 표거든. 만 일 학재씨가 생각하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하면 그게야 금봉이 밖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안 그래, 숙희?』

하고 숙희를 바라본다.

『아이, 언니도 왜 금봉이 마음 괴로우라고 자꾸 그런 소리허우? 괜히 금 봉이헌테를 왔다.』

하고 숙희가 화를 내인다.

『그럼 임 선생허구 영자 언니허구 서로 사랑해서 혼인하는 것은 아니 오?』

하고, 금봉은 알고는 싶으면서도 차마 묻지는 못하던 말이 을남의 입으로 저절로 알려진 것이 기뻤다.

『모르지. 웬걸 연애를 했을라구. 우리 오빠 중매로 된 게지. 안 그래? 숙희.』

그럼 우리 오빠 그 『 , , 돌부처님이 연애가 무슨 연애야. 을남 언니 오빠가 자꾸 권하니깐. 또 어머니두 자꾸만 혼인을 하라구 조르니깐 그런 게지. 금봉이허구 연애 못한 사람이 영자 언니허구 연애하겠소? 금봉이허구 영자 언니허구 비기면 그야말로 봉황이허구 닭인데.』

하는 숙희 말은 사실도 사실이지만 낙담하는 금봉을 위로하려는 뜻이 다분으로 품겨진 것이 사실이었다. 숙희는 금봉에게 대하여 동성 연애라고 할 만한 애정을 가졌던 이인만큼, 학재의 혼인설을 듣는 금봉의 심경이 무척 가엾었다.

『그래두 영자 언니는 임 선생을 사랑하길래.』

하고 금봉은 말을 하다가 그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똑 끊어 버린다.

금봉은 마침내 학재와 영자의 혼인에 들러리를 허락하고, 을남과 숙희를 저녁을 먹여서 돌려 보냈다.

학재의 혼인날인 음력 시월 삼일은 양력 십 일월 보름이었다. 금년 철 치고는 아마 마지막으로 따뜻한 날, 벌레들까지도 더러 기어 나오는 놈이 있는 따뜻한 날, 금봉은 하얀 하부다이로 내려 감고 오후 두시 김광진의 누이 혼인 식장인 정동 예배당으로 갔다. 한다 하는 양반집이요, 부자집 따님의 혼인날이라고 점잖은 손님이 그뜩 모이고 머리에 첩지를 붙인 궁부인들도 보였다.

광진은 곧 금봉을 알아 보고 은근하게 인사하고는 자기의 가족으로 안내하였다.

김광진이가 안내하는 가족석에는, 늙은이, 중늙은이, 젊은이, 여학생 등 여러 여성들이 있었다. 광진은 그중에 좀 뚱뚱하고 허위대 좋은 늙은 부인을 보고,

『제 친구의 부인입니다.』

하고 금봉을 보고는,

『내 어머니야요.』

하고는 가버린다. 그 노인은 곁에 비인 자리를 가리키며 금봉이더러,

『이리 앉으시오.』

하고 아들의 친구의 부인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그 음성이 거만하다 할이 만큼 느리고 위엄이 있었다.

금봉은 광진의 어머니에게 한번 깎듯이 인사를 하고 그 곁에 앉은 다른 부인들에게도 한번 인사를 하고, 그리고는 어머니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바로 어머니 저편에 앉았다가 금봉을 한번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리는 젊은 부인의 눈이 금봉에게는 심상치 아니하였다. 독살을 품은 눈은 아니나 호의는 품지 아니한 빛이 있었다. 금봉은 그것이 광진의 부인인가 할 때에 앉은 자리가 바늘 방석인 것 같았다. 그 부인의 얼굴이 여승을 상상시킬이 만큼 적막한 빛이 있는 것이 더구나 남편에게 소박받는 젊은 아내다 왔다.

금봉이가 살짝 곁눈으로 그 부인을 한번 더 보려 할 때에 그 부인도 금봉이 쪽에 눈을 돌려서 눈들이 서로 마주쳤다. 금봉은 무안한 듯이 고개를 숙여 버렸으나 그 부인은 무안해하는 금봉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금봉은 자기가 이 여러 부인들의 호기심의 거리가 된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향하여도금봉이 편을 보는 눈이었다. 하얀 옷으로 내려 감은 금봉이, 비록 임신 중이라 약간 초췌하고 낯에 분이 잘 먹지 아니하였다 하여도금봉은 온 예배당 안에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었다.

뒤로 보더라도 상아로 깎은 듯한 목덜미와 수수한 듯하면서도 무척 어울리는 머리쪽과 알맞은 어깨폭이며 커어브. 만일 앞으로 본다면 그 그린 듯한 살작이며 좀 긴 듯한 눈썹, 비단으로 싼 듯한 알맞은 코, 무엇보다도 금봉을 뛰어나게 하는 그 크고 빛나면서도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눈, 이런 것은 남자보다도 같은 여자들의 주목을 끌지 아니할 수 없었다. 광진의 부인이 금봉의 눈을 볼 때에 위험을 짐작한 것은 다만 아내로서의 본능적 직감력뿐만은 아니었고, 아들의 소행을 아는 어머니도 금봉을 심상하게 보지 아니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윽고 웨딩마아치가 시작되어서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이 금봉의 몸을 떠나서 금봉은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신부는 바로 금봉의 옆으로 지나갔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너울과 화장 때문에 그 본 얼굴을 잘 알 수는 없었으나, 얼굴 모습이 광진이 닮아서 약간 갸름한 것과 몸매가 대단히 노우블하다고 금봉은 생각하였다.

혼인예식이 순탄하게 진행될 때에 금봉은 삼 년 전 제 혼인예식을 생각하고 가슴이 아팠다. 바로 저 자리, 신랑 신부가 지금 인생의 가장 높은 행복을 느끼면서 맹세하고 지환을 주고 받는 바로 저 자리에서 금봉은 그 못 당할 망신을 당하고 기절하였다. 혼인 반지도 끼일 새 없이 금봉은 천지가 캄캄하여 숨이 끊어져서 다시 쉬어지지 말기를 바라면서 기절하였다. 주례 목사가,

『나는 이 혼인 주례할 수 없소.』

하고 달아나 버렸으니 말할 것이 있는가? 그때에 이 예배당에 가득 모였던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하고 웃었을까? 금봉은 그후에는 이 예배당이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다시 발길을 아니하였다. 그러하였거늘 오늘 신랑 신부는 어떻게 저렇게 화평하게 행복되게 순탄하게 혼례를 진행하는고?

〈여기서도 무슨 분란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금봉의 마음에 일어날 때에 금봉은 소름이 끼쳤다.

저 신랑 신부가 식을 다 그치고 되돌아 나갈 때에 사방에서는 오색 종이 줄과 쌀이 신랑 신부를 향하고 뿌려졌다. 그 오색 종이 줄은 팔을 끼고 왕과 왕후와 같은 행복을 느끼면서 행진곡에 맞추어 발을 옮기고 있는 신랑 신부의 머리와 어깨를 칭칭 감았다. 두 사람이 부디 부디 잘 사랑하고 잘 살라는 축복이다.

혼인날 이날은 여자의 일생에 가장 남의 부러움을 받는 날이 아니냐? 지금 저 신부는 바로 그러한 처지에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내 혼인날은 어떠하였던고? 천당 문지방에 한발을 들여 놓았다가 곤두박질로 지옥으로 떨어지 지 아니하였더냐? 처녀의 날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지 못할 것과 같이. 이러한 기쁜 혼인의 날도 내게는 영원히 다시는 없는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할 때에 금봉의 가슴에는 원한이 가득 찼다. 그러나 그 원한은 누구에게 대한 원한인가?

금봉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여 가지고 광진의 어머니와, 그 곁에 있는 광진의 아내라고 상상되는 부인에게도 목례하고 식장에서 나왔다. 신랑 신부와 그 가족들은 기념 촬영을 하느라고 아직 나오지 아니하고 손님들과 구경꾼들만 모두 밀려 나왔다.

『이 금봉이야, 금봉이야.』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금봉의 귀에 들렸다.

『딸 낳은 게 제 남편의 딸이 아니고 다른 사내의 딸이라나.』

하는 소리도 들리고,

『무슨 낯을 들고 이런 자리엘 와!』

하고 금봉이더러 들어 보라는 듯이 떠드는 여자도 있었다.

『오오, 이 금봉이!』

하고 놀려먹는 심술궂은 사내도 있었다.

금봉은 누가 등덜미를 미는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미국 영사관 골목으로 들어서 영선문 고개를 넘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주먹과 손가락이 사면으로 자기를 놀려 대는 것 같아서 몸은 오싹오싹 추우면서도 등골과 이미에서는 땀이 흘렀다.

금봉은 약속대로 강영자의 집에를 갔다. 대문 밖에부터 이 경사 난 집의 웅성거림이 보였다.

『금봉이 왔어.』

하고 대청에서 보던 을남이가 안방을 향하고 외치고는,

『나, 이리 올라 와. 왜 머뭇거리기는.』

하고 을남은 금봉의 손을 잡아 구두도 채 벗기 전에 마루로 끌어 올리면서, 그러는 줄 모르게 금봉의 귀에 입을 대고,

『오늘은 유쾌하게 하란 말야.』

하고 금봉의 등을 밀어서 안방으로 향하게 한다.

『아, 금봉이냐?』

하고 영자의 어머니가 술이 좀 취한 모양으로,

『이리 들어 와. 원, 늙은이란 ─ 벌써 딸이 커다란 사람더러 금봉이냐는 다 무어야. 그래도 내 집은 딸로만 아니깐두루. 그럼.』

하고 반가와하는 것을 금봉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아주머니 기쁘시겠어요. 그동안 오래 와 뵈옵지도 못하고.』

하고 치를 인사도 치뤘다.

기쁘고 말고 이봐 『. , 이 아씨 무얼 좀, 장국이라도 드려야지. 여간 기뻐.

이제는 죽어도 눈을 감지. 또 사위가 아주 얌전해. 저 임 학재라구, 아주 무슨 , 얘, 영자야, 무슨 회장, 네 남편이?』

하고 영자 어머니는 대단히 흥분하였다.

『금봉이가 어머니보다 임 서방을 더 잘 알아요.』

하고 영자가 머리를 트노라고 끙끙거리면서 한 마디 쏜다.

『응, 금봉이도 우리 사위를 아나?』

하고 영자 어머니는 서성서성하면서,

『알겠지. 금봉이, 우리 사위가 아주 썩 잘나고 유명한 사람이라니깐두루.

장안에 우리 사위 모르는 사람은 없다니깐두루. 금봉이도 알겠지.』

하고 자랑에 정신이 없는 것을 영자가,

『아이 어머니두, 좀 가만 계셔요. 금봉이가 그 사람을 잘 알어요. 사랑까지 했는데 그러시네.』

하고 불쾌한 듯이 어머니는 핀잔을 준다.

『사랑을 하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하고 영자의 어머니가 눈이 둥그레진다.

『아니야요.』

하고 을남이가 가로 맡아서 나서며,

『사위님이 동경 계실 때에 사위님 누이 숙희허구 금봉이허구 한 기숙사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금봉이두 사위님을 잘 안단 말야요.』

하고 설명을 한다.

『응, 그래! 그 말이야.』

하고 의심을 푸는 듯하면서도 사랑이라는 해괴한 말이 영자 어머니에게 준 불쾌함은 스러지지를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도무지 너희들은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쓰더라.』

하고 영자의 어머니는 딸에게 핀잔당한 분풀이로 짜증을 내면서,

『원, 우리네 젊었을 적에야 계집애가 어디라고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써.

요새 계집애들은 걸핏하면 사랑사랑 하니 모두들 기생이 되었단 말이냐, 갈보가 되었단 말이냐? 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어? 설사 내외간에라도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받드는 것이요, 남편은 처가속을 돌아 본다고 하지 사랑이라는 말을 어디다 써?』

하고 분개하는 것을 을남이가,

『원, 아주머니두. 아주머니 젊으셨을 때에는 아직 사랑이 없었지요. 요새 세상에는 사랑이 누깔 사탕 모양으로 왼 장안에 넘너른하답디다.』

하고 웃어 버리고 만다.

『을남이는 구변도 좋아, 청산 유수지. 사내 녀석이어든.』

하고 영자 어머니는 껄껄 웃고 성미가 풀려 버리고 말아서, 체경 앞에서 끙끙대는 딸을 보고, 무얼 그리 꿈지럭거리느냐 『 ? 벌써 석점을 쳤는데, 어서 옷을 입어.』

하고 대단히 만족한 기분을 회복해서 긴 담뱃대에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원, 새색시가 제 손으로 단장을 하는 데가 어디 있어? 모두 수모가 와서 성적하고,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원삼 입히고, 활옷 입히고, 눈 봉하고 ─ 어디 새색시가 제 손으로 하는 것이야 하나 있나? 그런데 저건 제 손으로 단장을 하고 있으니.』

하고 옛날 자기가 시집 갈 때 생각을 한다. 그에게는 그 옛날이 그리웠다.

혈육이라고는 단 하나인 금싸라기 같은 외딸을 성적시켜서 초례청에 들여 보내고 사모 관대하고 전안하는 사위의 모양을 못 보는 것이나, 집에서술하고, 떡하고, 한다 하는 숙수 들여서 한번 푼더분하게 잔치를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초례는 예배당에서양고 자식으로 하고, 피로연인가 무엔가는 요리집에서 하고, 집안은 이렇게 쓸쓸한 것이 영자 어머니에게는 대불만이었다.

『어머니는 저 술 취한 꼴을 하고 식장에를 가실 테요?』

하고 영자가 체경에 비치인 어머니의 붉은 얼굴을 보면서 종알대었다.

『그럼 어때?』

하고 영자 어머니는 가래침을 고슬라 뱉으면서,

『잔칫날이라도 집안이 쓸쓸허니 술 한잔 사다가 먹은 것도 병이냐?』

하고 후끈후끈하는 주름살 잡힌 낯을 손으로 쓸어 본다.

『그러기로 술 냄새를 푸푸 피우면서 그게 무에요? 무엇하러 오늘 술을 잡수어?』

『먹은 술을 어떡허란 말이야? 토해 버리란 말이냐?』

『좀 잡수셨으면 어때, 노인이.』

하고 을남이가 중재를 붙인다.

『식장에는 점잖은 손님이 많이 올 텐데 ─ 신문사 사람들이랑 ─ 또 학교에서랑 교회에서랑 ─ 모두 올 텐데, 글쎄 어머니 저게 무에요. 저렇게 낯이 뻘개서. 기생 어미 모양으로.』

하고 영자는 기생 어미란 말로 금봉에게 대한 분풀이를 한다. 영자의 「기생 어미 모양으로」란 말은 금봉의 마음속에 영자가 예기한 이상의 효과를 내었다.

『저년, 저 말 버릇 보았나!』

하고 영자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사네발이 날 것같이 담뱃대를 흔들며,

『저게 대학교까지 졸업한 년의 말버릇이야? 저게 학교 선생님의 말버릇이야? 그게 어미게다 하는 말버릇이야?』

하고 영자 어머니는 자기가 과수로 영자 하나를 받아 기를 때에 어떻게 애를 써서 길렀고, 어떻게 그리움을 참으면서 동경 유학을 시킨 공을 생각한다.

『아주머니 ─ 영자.』

하고 을남이가 중재를 하느라고 야단이다.

『아주머니, 어서 옷이나 입으세요. 자동차 올 때가 되었는데.』

하며 을남은 영자 어머니를 머릿방으로 끌어다 놓고 다시 영자한테로 와서,

『영자, 오늘은 웬일이야. 왜 독살이 났어?』

하고 영자가 옷 입는 것을 거들어 준다.

『남의 애인을 빼앗아서 혼인하는 년의 심사가 편하겠소?』

하고 영자는 고개를 돌려서 웃목에 시무룩하고 앉았는 금봉을 힐끗 본다.

『그건 다 무슨 소리야? 혼인날, 기쁜 날, 그런 소리는 왜 해?』

하고 을남이가 영자의 치마 허리를 치켜 준다.

『무엇이 무슨 소리요? 임이 금봉이 애인 아니오?』

『에잉,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왜 언니도 안 그랬소? 임허구 나허구 혼인한다는 말을 듣더니 금봉이가 거절을 하더라구. 무얼 우물쭈물 속이우?』

『에잉, 그런 소리 말라니깐!』

『왜 말어? 난 아직도 마음이 작정이 안되는데. 오늘 내가 식장에 가서 신부가 될까 들러리를 설까?』

『원, 뭔 소리를 다 하네.』

하고 을남은 금봉을 돌아 본다. 금봉은 무르팍만 들여다보고 앉았다.

영자는 금봉을 힐끗 돌아 보면서,

『금봉이가 날더러 임허구 혼인 말라면 이제라도 그만둘 테야. 내가 왜 평생을 두고 남헌테 원망을 들어. 괘니들 형식 오빠랑을 남 언니랑 서둘러서 들 그러지, 내야 이 혼인을 꿈이나 꾸었나. 안 그렇수 언니? 그러니깐 금봉이가 말라면 나는 말 테야. 또 오빠도 돌아가시구 어머니 혼자만 남으시구. 나는 도무지 시집 잘 마음이 없어. 게다가 금봉이가 저렇게 기절을 하도록 설어하고 한평생 두고 날 원망할 테니 내가 어떻게 편안하겠어? 안 그래, 언니?』

하고 눈에 날이 서고 얼굴에는 파란 기운이 돈다.

『언니, 왜 날 가지고 그러시우?』

하고 금봉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면서,

『내가 무에라기에 그러시우? 언니가 그러시면 난 어떡허면 좋아?』

하고 기막힌 듯이 몸을 튼다.

『아, 이거 무엇을 하구 있어? 시간이 다 되었는데.』

하고 형식이가 중절모를 비스듬하게 젖겨 쓰고 단장을 두르고 들어 오며

『신부 어디 있어? 무얼 꾸물거려, 어서 나와.』

하고는 또 좀 더 소리를 높여서,

『아주머니, 아주머니, 시간 되었읍니다.』

하고 쾌활하게 외친다.

영자 어머니는 머릿방에서 영자와 금봉이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말을 다 엿듣고 대단히 입맛이 썼다. 그의 생각에는 사위와 금봉이와 사이에는 벌써 있을 일은 다 있은 것같이 작정을 하였다. 이 생각은 새 사위 임 학재에게 대한 신임을 많이 떨어뜨렸다. 사주단자와 치마 양단을 지붕 위로 넘긴다는 옛날 일도 생각하였다. 그러하던 차에 형식이가 쾌활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좀 풀려서 뛰어 나왔다.

『응, 형식이 왔나? 벌써 시간이 되었나? 얘, 자동차 왔느냐? 다들 무엇들 하느냐?』

하고 영자 어머니는 불쾌한 생각을 떨어 버리려고 일부러 바쁘게 서두른다.

『자동차는 벌써 와서 기다리나 보던데요. 운전수는 한잠 자고 난 모양이 야요.』

하고 형식은 단장으로 마루끝을 두드리면서,

『아, 이, 무엇들 해?』

하고 재촉을 한다.

방에서는 영자와 금봉과 을남과의 사이에 바늘 품고 칼 품은 말이 왔다 갔다하는 모양이요, 이따금 영자의 쨍쨍하는 성난 소리가 한 마디씩 들렸다.

『또 무슨 변괴가 났어? 어서 나와.』

하고 형식은 영자의 도무지 어거하기 어려운 성질을 상상하였다. 필시 금봉에게 대한 질투여니 하고 형식은 알아 차렸다. 그러나 금봉에게 대한 질투 이외에 다른 원인 ─ 이번 혼인에 대하여 짜증을 내이는 다른 원인 하나가 있는 줄은 오직 형식만이 안다. 그것은 영자의 형식에게 대한 감정이었다.

형식은 영자가 십 삼사세 적부터 그 죽은 오라비의 절친한 친구로 영자의 집에 통내외하고 다닐 때에 영자는 형식에게 대하여 오빠라는 정도 이상으로 사모하는 정을 가지고 있었다. 형식도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형식이가 비록 남녀 관계에 깨끗한 한 인물은 아니면서도 결코 저를 믿고 따르는 이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혼인할 처치도 못되는 영자에게 대한 관계를 형제의 문지방 너머로 넘기지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오빠, 나는 시집 안 가요.』

하고 영자가 형식에게 대하여 버티는 이면이 여기 있는 줄을 형식은 잘 알지마는, 형식은 그러하기 때문에 도리어 반강제적으로 이번 혼인을 맺어 놓은 것이었다. 영자와 학재의 새에는 아무 연애 관계도 없었다. 학재도 연애도 장가들 사람이 아닌 동시에 영자도 연애로 시집 갈 사람이 아닌 것을 형식은 잘 알았다. 게다가 매우 어거하기 어려운 성품을 가진 영자는 대단히 인격이 높은 사람허구 혼인하기 전에는 부부 생활을 무사히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고, 또 도무지 제 몸과 제 집을 돌아 볼 줄 모르는 학재에게는 약간 인간적이요, 심한 편이지마는 조촐하고 매진 영자 같은 아내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래서 형식은, 어서 영자허구 혼인을 『해. 자네두 이제 청년회 일을 해가려면 여자 교제도 많을 텐데 늙은 총각으로 다니면 세상의심도 없지 아니하거든.』

하며 학재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가지고 이 혼인을 붙여 놓은 것이었다.

영자는 이왕 혼인할 바이면 임학재보다는 심 상태가 낫지 아니할까 하는 눈치도 보였다.

『그게야비교가 되나? 임학재가 금이면 심 상태는 함석이야.』

이렇게 형식은 영자의 잘못된 인식을 정정하여 주었다. 그러나 원체 실제 적이요, 현실적인 영자에게는 학재의 지사적, 영웅적 기질보다도 상태의 변호사라는 직업이 더 귀하였다. 어딘지 모르게 학재에게 대하여서는 영자는 불만을 품었던 데다가 금봉이가 학재를 아직도 못 잊는 불만을 품었던 데다가 금봉이가 학재를 아직도 못 잊거니 하면 심사가 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마침내 영자는 신부로 차리고 자동차를 타고 식장으로 갔다. 금봉 도 화장을 고쳐 하고 들러리로 따라갔다.

식장에는 아까 김광진의 누이 혼인식적과는 유다른 손님으로 가득 찼다.

노인이라고는 신랑 신부 두 집 친족뿐이요, 다른 신식 청년들이었다. 학재 가 조선 청년회의 중심 인물인 만큼 기미년 이후에 새로 생긴 중견 계급이 거의 총출동이었다. 비록 청년들이라고는 하지마는 모두들 새 조선의 주인 을 자처한 사람들이어서, 새로 된 신문사의 사장입시오, 주필입지오, 기자 입시오, 새로 된 회사의 중역입시오, 무슨 회의 화장입시오, 집행 위원입시오, 그러한 이들이었다. 이 회중을 아까 보던 머리가 허옇고 구한국 시대에 참판이니 승지니 대감이니 영감이니 정경 부인이니 정부인이니 하는 회중에 비기면 외양이나 기분이나 전혀 딴 나라, 딴 세상이었다. 저들 속에는 공자 맹자가 들어 앉았다 하면, 이들 속에는 루소와 볼테에르가 들어 앉았고, 간혹 마르크스와 레닌도 들어 앉았다. 저들이 가버린 옛날의 영화를 돌아 보는 무리라 하면, 이들은 앞에 올 영광을 내다보는 무리였다.

신랑 되는 임학재는 이날도 다른 날과 다름 없이 거의 무표정이라 할 만 하게 정면만 바라보고 걷고 정면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목사가 서약하는 말을 물을 때에는 그는 매우 분명한 어조로,

『네.』

하고 대답하였다.

신부의 손에 가락지를 끼울 때에도 그의 얼굴은 엄숙 그 물건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신부는 매우 흥분한 모양이었다. 두 번이나 발을 헛디디고, 목사 앞에 서서도 고개와 몸을 움직였다. 들러리를 선심 상태는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그의 쉬일 줄 모르는 눈은 연해 회중 위로 헤매고, 안 하에 무인한 듯한 형식의 시치미뗀 태도와, 얌전과 수삽 그 물건인 듯한 금봉의 태도가 가장 주목을 끌었다. 체통으로 보면 형식이가 학재보다 나았고, 아름다움을 보면 금봉이야말로 신부인 듯하였다. 사람들의 눈도 매양 신부에게보다는 금봉에게로 자주 굴렸다. 할머니가 다 된 듯이 도무지 수삽한 빛이 없는 을남은 연해 신부의 옷자락을 거두어 주었다.

식이 끝나고 축사판이 벌이지매, 젊은 지사들은 이것을 연설회장만큼 여기고 소리를 지르고 제스처를 하면서 열변을 토하였다. 그들은 임학재의 조선에 대한 책임이 중대한 것을 역설하고 그 남편을 도울 신부의 책임이 따라서 중한 것을 역설하였다. 회중의 이 신랑 신부에 대한 열렬한 축하의 감정은 식이 파하고 신랑 신부가 물러 나올 때에 수없는 오색줄과 쌀 소나기와 우렁찬 만세 소리로 표현되었다.

신랑 신부가 출입문에 다다랐을 때에는 사방으로서 악수의 총공격이 있었고, 금봉의 혼인에는 하나도 아니 왔던 ○○ 여자 고보 직원들과 교우들과 학생들까지 모두 떨어 오고, 교우 대표의 축사 낭독까지 있었다. 을남이와 숙희와 서 정희에 대하여서도 다 반가와하고 존경하는 표를 보이지마는, 금 봉에게 대하여서는 더러 마지못하여 인사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여자들은 마치 무슨 더러운 전염병자를 대하는 모양으로 금봉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켰다. 그 깨끗한 몸들이 어떻게 차마 금봉이와 같은 더러운 것과 접촉하랴 하는 듯 하였다.

〈너희들은 무엇이길래.〉 하고 금봉은 강하게 반감을 일으켜도 보았다.

금봉은 도저히 피로연에 참녜할 용기가 없어서 형식더러 아프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밤에 형식이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서 금봉을 찾아왔다.

『대단히 아파?』

하고 마루끝에 앉아서 금봉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치운데 들어오시지요.』

하고 금봉은 쓰고 드러누웠던 자리를 밀어 놓고 문을 열었다.

『어서 문을 닫아. 나는 피로연 끝내고 가는 길에 들렸어, 어떤가 하고.』

하고 방에는 들어 오지 아니하고,

『너무 마음 고생 말어. 영자가 좀 샘이 나서 그러지마는 이제 혼인까지 했으니깐 어떨라구. 또 세상 사람들이 금봉을 보고 환영을 아니하기로 그것 이 대순가? 저희들은 다 백로같이 깨끗한 체하지마는 속들을 들쳐 보면 마귀들이어든. 금봉이가 저희들보다 아름다우니깐 모두들 샘이 나서 그러는 게지. 원체 세상이란 환영한다고 기쁠 것도 없고 배척한다고 슬플 것도 없 는 것이야, 그러니깐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구.』

이 모양으로 혼자 지껄이고는,

『괜히 쓸데 없는 걱정 말고 잘 자.』

하고 가버렸다.

금봉은 형식의 친절이 고마왔다. 언제나 그렇지마는, 그는 사람의 속을 잘 알아 주고, 알고는 동경하여 주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형식을 이현령 비현령이라고 하기도 하고 건달같이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아니하지마는, 그는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또 언제나 대의를 잊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금봉은 믿는다 을남은 . 미친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때도 있지마는 형식만은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또 믿는 보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허량한 듯하면서도 찾을 제는 다 찾고, 희미중인 체하면서도 볼 것은 다 보고, 별로 누구하고 논쟁을 하거나 제 고집을 세우려는 빛도 없으면서도 세상을 내려다 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형식의 위로하는 말로도금봉은 위로가 되지 아니하였다. 오늘 하루에 겪은 일이 천년 만년 두고 겪을, 못 겪을 일을 다 겪은 듯하였다. 일찍은 세상에서 칭찬과 부러움의 목표가 되었던 그가 이제는 세상의 멸시와 조롱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 것을 아프게도 까달았다.

〈흥, 저희들은 무엇이길래.〉 하여 보지마는, 세상이라는 무정하고도 어마어마하게 큰 물건의 압박은 금 봉을 등심뼈와 갈빗대가 우그러져라 하도록 내려 누르는 것 같았고, 그것은 마치 악악 소리를 내고 불어 오는 바람과 같이, 또는 물결과 같이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는 배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 몽둥이로 얻어 맞은 듯한 아픔과 그리고도 다음번으로 내려올 몽둥이가 머리 위에 들려 있는 듯한 느낌은 도무지 금봉에게 잠들기를 허하지 아니하였다.

〈이제는 임 선생도 가고 세상도 갔다. 나 혼자만 죽어 버린 전염 환자의 자리옷 모양으로 흉가 된 비인 집에 남아 있고나.〉 이렇게 금봉은 생각하였다.

이러한 정신적 타격은 임신 중인 금봉을 생리적, 심리적으로 더욱 괴롭게 하였다. 입맛은 더욱 떨어지고 구역은 더 나고 팔다리는 더 쑤시고 잠은 안 오고, 어찌어찌 잠이 들면 뒤숭숭한 꿈만 많았다.

학재가 혼인한 지 한 십여 일 후에 을남이가 와서 영자가 내외 싸움을 하고 울며 친정으로 뛰어 왔다는 말을 하였다. 을남의 말에 의하건댄, 을남이 가 영자의 하소연을 들은 말이란 것은 이러하였다 ─ 학재는 도무지 아내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영자의 원망의 주지였다. 을남의 말대로 적으면,

『글쎄 이런단 말야. 영자 말이, 임이란 사람이 도무지 나무로 깎아 놓은 사람이라고. 도무지 신혼 사랑 같지를 아니하고,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지 마는, 그렇게 무정한 사내허구는 남편이라고 믿고 살 수가 없다고. 아마 가정에서도 그렇게 점잖을 빼나봐. 어디 빼는 겐가, 그렇게 생겨먹었지. 그리고는 또 영자 말이, 밤낮 회 일만 생각하니 집에 들어 와서까지 그럴 게 무에냐구. 그러구 사람들이 찾아 와서는 밤이 깊으니 깊은 줄을 아나, 그러구는 사랑에서들 자구 간다고. 그럴 게 아니야? 임이 어디 집안 사람 생각한 사람인가? 그런데 영자는 그게 다 불만이어든. 꼭 남편이 제 생각만 해주어야 만족할 모양이니. 영자 성질이 왜 그렇지 않은가베. 퍽으나 다심하거든.

그래서 영자 말도 차라리 심 상태 같은 사람이 나을 것 같다고 그랬지. 말하자면 영자는 아기자기한 내외 재미로만 살 사람이어든. 사람이야 알뜰하지 않은가? 그런데 임 같은 사람의 심경이나 사업을 이해할 사람은 아니란 말야. 그래 우리 오빠가 가끔 가서 설교를 했다나. 잘난 남편을 돕는 아내의 도리가 어쩌니 하고. 계집의 궁둥이나 달라붙어서 계집의 비위나 맞추어 주는 사내를 무엇에다 쓰느냐고. 너는 조선에 일등가는 인물의 아내가 되었 으니 그를 잘 위로하고 도와서 큰 사업을 이루게 하라고. 그래도 그런 말은 영자의 귀에는 안 들어 가더래. 그리고는 말야, 영자 말이 ─ 금봉이 또 어떻게 듣지 말어. 금봉이는 너무 신경질야. 내가 하는 말을 그저 예사 지나 가는 말로만 들으라구. 인생이란 너무 그렇게「쿠소마지메」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어든 그런데 말야, 영자 말이 무슨 사내가 그런 사내가 있겠느냐고.

이건 필시 임이 금봉이를 못 잊어서 제게는 사랑이 없는 때문이라고. 그리구는 말야, 참 우스운 일도 아 있지. 우리 오빠도 앉아 있는 자리에서 영 자가 임을 보고 아주 「마지메」하게 질문을 하더라구.』

하고 을남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바탕 웃고 나서,

『영자가 무에라고 질문을 하던고 하니, 들어 보아요 금봉이. 여보시오, 영자 말이 말야, 여보시오, 당신이 이 금봉이를 사랑하였소 아니하였소? 이러더래. 그러니깐 임이 또 목곧이가 아니야? 사랑했지, 그러더라나. 그러니깐 영자가 눈이 샐쭉해지면서, 지금도 사랑하시오 아니하시오? 이러더라고.

그러니깐, 지금도 글쎄, 이 임이라는 탯덩이가 지금도 사랑하지, 그러더라는구먼. 그러니깐 영자가 입술이 파랗게 질리면서, 발발 떨면서 하는 말이, 그럼 왜 나허구 혼인하셨소? 사랑하는 다른 여자가 있으면서 왜 나를 버려 주셨소? 그게 인격자의 행사요? 글쎄 이러구 날뛰더래. 그러는걸 우리 오빠 가 능청스럽게 말하기를, 영자, 나를 사랑했나 아니했나? 지금도 사랑하나 아니하나? 이렇게 물어서 영자의 예기를 줄여 버리니깐, 어디 그와 같아요, 어디 그와 같아요, 하기는 하면서도 수그러지더래. 그랬는데 그다음에도 이 문제 저 문제로 밤낮 내외간에 옥신각신했던 모양야. 영자가 그러는데, 임 의 말이 나는 조선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한 수는 없고, 옳은 일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할 수는 없고, 옳은 사람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할 수가 없다고 그랬다나. 아마 영자헌테 쪼들리던 끝에 무슨 말계제에 그런 말이 나왔겠지. 그랬다고 영자는 그런 남편하고 살 수는 없소,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을 무엇보다도 고작으로 사랑해 주는 남편 아니면 부부 생활할 수 없소, 그랬다나. 그리고 뛰어 나왔더래, 글쎄. 그리고는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런 분한 일이 있느냐고 울고불고 야단야. 왜 그래 글쎄, 영자가? 난 그런 줄까지는 몰랐어.』

하고 을남은 한숨을 짓는다.

금봉은 가만히 듣고 앉았다가 빙그레 쓴웃음을 웃으며, 할 말 없다는 듯이,

『거 큰일 났구려.』

하고 말았다.

『큰일 났어. 벌써 소문이 싸아헌데. 임이 사회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아니냐? 수천 명 회원의 지도자가 아니야? 지금 청년들의 임 숭배가 여간이 아니야요. 그런데 영자가 저 모양이니 어떡해?』

하고 을남은 냉수를 마신다.

『영자 언니가 왜 그러까?』

하고 금봉은, 영자가 그 좋은 남편 ─ 임학재와 같은 남편을 만나 가지고도 무엇이 불만해서 그러나 하였다.

『왜 그러까는 무엇이 왜 그러까야?』

하고 을남은 신이 나서,

『돼지에게 구슬을 준 셈이란 말야. 영자가 제게는 분에 넘는 남편을 만났거든. 영자헌테는 심 상태 따위가 꼭 알맞는단 말야. 짚신에는 제 날이 격이라고. 그런데 오빠는 웬일인지 과대 평가를 해요. 영자를 무슨 끔찍이 좋은 여자로 알아요. 날 보고도 저 영자를 보아요, 어떻게 얌전한가 하고. 그야 내가 미친년이고 영자야 얌전이야 하지만도, 얌전이면 그만인가 왜? 그 까짓 얌전이야 날더러 피우라면 몇 갑절 더 피울걸 무어, 안 그래, 금봉이?

그런데 오빠는 영자를 과대 평가를 해가지고는 좋은 신랑 하나 망쳐 버렸지. 임이 아무리 잘났기로니 저런 여편네를 데리고 행세를 한담.』

『왜 언니도 그 혼인을 권하였다면서?』

하고 금봉이는 을남의 말이 더 듣고 싶었다.

『권하긴? 내야 심상태나주라고 그랬지. 그러다가 이왕 혼인이 다 되고 보니 할 수 있나? 그래서 덜렁대고 한참 심부름을 해주었지.』

하고 을남은 속에도 없는 말을 한다 하고 잠간 양심에 부끄러웠다.

『날더러 잠간만 하나님 노릇을 하랬으면 바로 잡아 놓을 일이 많건마는.』

하고 웃지도 아니하고 한숨을 쉬인다.

금봉은 웃으면서,

『언니가 하나님이 되면 무엇을 바로 잡겠소?』

하였다.

『바로 잡을 게 수수만만하지마는 그중에도 당장에 바로 잡을 것이 있단 말야.』

하고 저도 제 생각이 우스워서 한바탕 웃고 나서,

『자, 들어 봐요. 우선 임허고 영자허고는 떼어서 영자는 상태나 우리 오빠를 주고, 임학재는 이 금봉허고 혼인을 시키고, 숙희는 조병걸허고 부부가 되게 하고, 심상태는 도로 제 어미 뱃속에 집어 놓고, 손 선생은…… 에 그만두어.』

하고 쓴웃음을 웃어 버린다.

『그리고 언니는?』

하고 금봉도 킥킥 웃었다.

『나는? 내야 이대로 두지 어떻게 하나?』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글쎄 나? 나는 서 정희허고 둘을 한테 뭉쳐서 반에 갈라나 놓으까?』

하고는 마음이 괴로운 듯이 시무룩한다.

한참이나 두 사람이 다 입이 써서 말이 없다가 금봉이가,

『그런데 언니는 이제 어떻게 하려우?』

하고 정성스럽게, 또 근심스럽게 묻는다.

『나?』

하고 을남은 눈으로 어디 먼 곳을 바라본다. 을남의 눈은 결코 심상한 눈이 아니었다. 가느스름하고 쌍가풀이 지고 사람을 꿰뚫는 빛이 있었다. 더구나 그가 시무룩해서 허공을 바라볼 때에는 그 눈에 위엄이 있었다. 그 얼굴도 아기자기하게 예쁘지는 아니하다 하더라도 빛도 희고 흠할 곳은 없는 편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여성답지 아니한 생활를 하였기 때문에 처녀다운 야 릿야릿한 맛이 없고 늙은 총각과 같이 엉그러운 빛이 빛이 있지마는 그래도 어느 구석엔지 모르게 엄전하고 의젓한 데가 있었다. 이제는 비록 금봉이나 다름 없이 제 말에 팔리는 신세가 되었지마는, 금봉이가 보기에는 을남은 다른 여자 동무 모양으로 야멸차지도 않고 야살스럽지도 아니하고, 인정이 있고, 칼로 벨 때에는 베어도 상냥스러운 때에는 무척 상냥스럽고 믿음성 있는 사람이었다.

『나? 나도 무엇이 될지 모르지. 그저 아이들헌테 싫은 소리나 하고 이럭 저럭 살아 가지.』

하고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언니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으시우?』

하고 금봉은 한걸음 더 파서 묻는다.

『흥, 그런 소린 왜 물어?』

『아니, 언니같이 저렇게 좋은 여자가 왜 아직도……』

하다가 금봉은 뒷말을 무엇이라고 댈지 몰라서 말을 끊어 버렸다.

『낸들 왜 마음에 먹는 남자가 없겠나?』

하고 을남은 이제야 속에 먹은 말을 꺼내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 허사란 말야. 다 허사니깐 이렇게 미친년이 되어 버렸거든.』

하고 늙은이 모양을 한다.

『미치기는?』

하고 금봉은 을남을 진정으로 두둔을 한다.

『미친년이지, 내가 생각해도 미친년이야. 날마다 학교에서 계집애들을 대하면 ─ 그것들이야 금봉이 문자로 깨끗한 생명들이 아닌가. 우리도 고만 때에는 천사 볼쥐어지르게 깨끗했거든. 지금 이렇게 개차반이 되었지 ─ 고 깨끗한 계집애들을 앞에 놓고 선생이랍시고 칠판 앞에 서면 등골에 땀이 흘러요 고것들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또 나 같은 개차반이 선생이랍시고 나 같이 되어라, 하게 된 것이 미안도 해서. 그래서 어떤 때에는 분필갑을 탁 둘러메치고 울고 뛰어 나오고도 싶지.』

『어디 언니보다 나은 선생은 있던가?』

하고 금봉은 자기 위로 겸 을 남을 위로한다.

『그럴 리가 있나? 선생들이 다 나 같은 사람이면 나라 망하게. 그런데 말야, 금봉이도 나를 음탕한 년으로까지 알는지 모르지마는 ─ 또 말로도 내가 일상 정조가 무슨 다 거지 발싸개야, 하고 큰소리를 하지마는, 그게 다 결국은 할 수 없어서, 자포 자기로 하는 소리야. 역시 사람이란 남녀 관계가 깨끗한 게 제일이야. 물론 여자만을 가리키는 것이야 아니지. 남자나 여자나이 깨끗이란 문제에서는 평등이지마는. 도무지 한번 정조를 헐어버리면 뻗댈 심이 없어진단 말야. 어째 때묻은 옷을 입고 나선 것 같아서 사람을 대하면 저절로 움츠러지거든. 우리가 깨끗한 처녀 적에야 어디 겁이 있었어? 그야말로 하늘을 우러러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사람을 보아도 두려울 것이 없지 않았어? 그러더니 한번 아차 정조를 헐고 부정한 비밀을 가슴에 품게 되니깐 처녀 적도고하던 것이 쑥 들어 가고 만단 말이야. 그래서 저를 변호하노라고 연애의 자유니 연애의 신성이니 개성의 해방이니 인습타파니 하고 그럴듯한 철학을 꾸며 대지마는 그것이 다 「야세가만」이란 말야.

임학재가 누구헌테나 존경을 받는 것이나, 또 강영자가 젠 체하고도고한 것이나 다 그 때문이어든. 세상 사람들은 저희는 깨끗하지 못하고 ─ 저희가 깨끗하지 못하니깐 그런지 모르지만, 남이 깨끗한 것은 시기는 하면서도 무척 존경하는 것이어든.』

금봉은 을남의 말을 들으면서 절절히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성 문제에 있어서는 되는 대로 주의로 가는 것같이 보이던 을남이가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면 놀라웁고 또 을남이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때에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을남은 다시 말을 이어서,

『우리 오빠도 사람이야 괜찮지. 아주 머리가 좋고 서글서글하고 시원시원 하고, 또 너그럽고, 또 대의에 버스러지는 일은 안 하지만 「보헤미안」이란 말야. 좀 방탕하거던. 그것이 오빠가 제 가치를 낮추는 것이야. 나도 오빠와 같이 「보헤미안」식 아버지 피도 받았지마는 오빠의 나쁜 본을 받은 것 이 더 많지. 그것이 내 일생을 망쳤어. 그 연유를 들어 보려나? 내가 동경 갈 때까지야말괄량이 소리를 들었지마는 여간 도고했어?』

『그럼. 언니야도고하다가 돌리우리까지 했지.』

『그런 것이 동경 가서 오빠랑 또 오빠만도 못한 선떡부스러기들이 연앱시오 하는 꼴들을 보니깐 그만물이 들었단 말야. 그래서 어떤 놈팽이헌테 정조를 빼앗겼거든. 빼앗겼나, 바로 말하면 내가 주었지. 여자들이 정조를 빼앗겼노라는 것은 다 비열한 거짓말이어든. 글쎄 그 일이 있은 뒤에 어떤 남자를 만났단 말야, 마음에 드는 남자를. 그러니 기가 막히겠어 안 막히겠 어?』

『기막힐 일이지. 그 남자가 누구요?』

『글쎄 그 남자가 누군 건 둘째 문제로 하고. 그러니 겁겁한 내 성미에 죽어 버리고 싶단 말야.』

『응, 그래서 언니가 물에 빠져 죽는다고 아다미로 달아나는 문제가 생겼구려?』

『그럼. 그래도 오빠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 남자 관계인 줄은 아시겠지마는 꼭 어떤 남자인지도 모르시지. 그러니 내 몸이 깨끗지 못하고 보니 어디 감히 그 남자를 바랄 수가 있나. 그러면서 단념은 안되고. 그래서 에라 빌어 먹을 것, 이왕 독약을 마시려거든 찌끼까지 마셔라 하고 나간 것이 이 꼴이란말야.』

『그래서?』

하고 금봉은 을남의 말에 깊은 흥미를 느끼면서,

『그런데 그 남자가 누구요?』

하고 을남의 못 이룬 사랑의 대수를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말야……』

하고 을남은 말을 이어서,

『그러니 죽지도 못하고 마음에 먹은 남자는 그림의 떡이란 말이지. 잊자 니 잊어를 지나……』

『잊어질 게면 무슨 걱정이야?』

하고 금봉이가 대꾸를 높인다.

『그럼. 사람이란 잊길 곧잘하는 동물이지마는 잊으려 들면 더 생각이 나 는걸. 그래서 에라 내 몸을 버린 바이니 그 사내를 한번 후려 내어나 볼까, 글쎄 이런 생각을 다 했어.』

『에그머니! 언니도.』

『그럼 어떡해? 그야 내가 악이 오른 것이지. 그래 그 사람을 자꾸 찾아 갔지. 가서는 울어 보고 웃어 보고, 무엇은 안 했겠어? 그렇지만 이 사내는 돌부처님이라, 암만 지근덕거려도 눈이나 거들떠 보나. 괜히 내 속만 다 보이고 말았지.』

『그래서?』

『그래서 그리고 말았지, 어떡허나? 소설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서 마음속에 그리고 그 그리움을 품고 그 애틋한 마음으로 양식을 삼으면서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 않어, 저 이반젤린같이 말야. 남자로 치면 이노크 아렌도 그랬지만. 서양 사람들은 곧잘 그 짓을 하나봐. 그렇지만 나는 그게 안돼, 내가 장년이 돼서 그런지.』

하고 을남은 한숨을 쉰다.

참 그랬으면 좋기는 『 좋을 게야. 그까짓 혼인이니 부부 생활이니, 그런 추접스러운 것 다 말고 마음속으로만 깨끗하게 사랑을 품고 살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금봉도 한숨을 쉰다.

얼마 잠잠하다가 금봉이가,

『그래 그 남자 ─ 언니가 사랑하던 그 남자는 도무지 언니를 사랑하는 기색을 안 보여?』

하고 그 문제를 계속한다.

『왜 호의야 가지지.』

『그래 언니가 지근지근 조르면 무에라고 해요?』

『하하, 그렇게 알고 싶어?』

금봉은 낯을 붉힌다. 을남은 금봉에게 미안한 듯이 곧 말을 이어,

『인생이 왜 연애뿐이냐고, 연애가 내죄는 아니지마는 연애를 이기는 것이 더 거룩한 일이라고, 예수도 일생 독신으로 지내시고 베드로랑 바울이랑도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지 않았느냐고, 그이들도 사람이니깐 이성 그리운 정이 없었을 리야 있느냐고, 그렇지마는 연애와 같은 자기 일신의 욕망보다 더 크고 거룩한 사명을 자각하고 목숨까지 희생을 하였으니, 그까짓 연애 따위냐고, 우리 조선 청년들도 연애 이상의 남녀가 많이 생기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고 ─ 그저 이 말이지. 그러니 아무리 나 같은 잡년이기로니 이런 말을 듣고야 다시 무에라고 하나?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물러날밖에.』

하고 유심하게 금봉의 눈치를 본다.

금봉은 을남의 말을 듣고는 이야기 듣던 흥미도 다 깨어지고 전신을 칼로 에어 내는 듯한 아픔을 깨달으면서,

『언니, 그이가 누구요? 언니, 그게 모두 정말이오, 나 들으라고 꾸며대는 말이 아니오?』

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을남을 유심히 본다.

『꾸며 대기는?』

하고 을남은 거의 비창하다고 할 만한 표정으로,

『내가 왜 꾸며 대나? 이제는 다 말해도 괜찮을 때가 되었으니깐 금봉이보고 한번 설파해야 될 말이니깐 말한게지.』

하고 마치 솟는 눈물을 삭이려는 사람 모양으로 눈을 끔적끔적하면서,

『그만큼 말하면 내가 더 말하지 아니해도 금봉이가 다 알았지?』

『무얼요?』

『그래도 몰라? 그 사람이 누군고 하니 임학재란 말이오.』

금봉은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인다.

『금봉이가 임을 사랑하는 줄을 알고는 내가 샘이 났어요. 그것도 이제 자백하지. 그래서 금봉이의 사랑을 훼방을 놓느라고 ─ 금봉이 용서해요. 나는 오늘 금봉이헌테 내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빌러 왔어. 나는 금봉이가 샘이 나서……』

하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듯이 입을 다문다.

을남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가 다시 고개를 들 때에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였다.

『금봉이, 용서해요.』

『아이, 언니도. 용서가 무슨 용서요?』

『아니야, 내가 죽일 년이야. 금봉이를 일생을 망치게 한 년이 내어든. 그래서 내가 금봉이헌테 사죄하러 왔어요. 금봉이 용서해, 응?』

하고 을남은 걷잡을 수 없이 느껴 운다.

금봉은 을남의 할 말이 무엇인지 모르나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언니, 왜 우우? 내가 언니헌테 용서해 드릴 게 있으면 무엇이나 용서할 내니 우시지 말아요.』

하고 을남의 어깨를 만진다.

금봉은 을남이가 우는 양을 처음 본다. 남자 같은 을남이가 우는 것을 볼 때에는 더욱 처량하였다.

『고맙소. 금봉이 고마워.』

하고 을남은 으스러져라 하고 금봉을 껴안고 눈물에 젖은 뺨을 비빈다. 찬물과 같아 보이던 을남도 이러한 열정을 가슴속에 감추고 있었던고 하고 금봉은 더욱 슬펐다.

둘이서 한참 동안 서로 안고 울다가 을남이가,

『금봉이, 나 냉수.』

하여 냉수 한 그릇을 반이나 마시고 나서 어룽어룽한 눈물을 씻으면서,

『그러니……』

하고 말을 계속한다 ─

『그러니 나는 실패했는데 금봉이가 나선단말야. 내 생각에는 그때까 지금 봉이는 어린애 같고 동생으로 보아도 셋째 동생이니까 되는데, 금봉이가 나서고 보니 어디 나하고야 경쟁이 되느냐 말야. 금봉이는 그야말로 함 속에 넣어 두었던 깨끗한 숫처녀야, 미인이야, 재주가 있어, 어디 무엇 하나 부족한 데가 있나? 게다가 가만히 눈치를 보니깐 임이 금봉을 못 잊는 모양이란말야. 그 사람은 솔직하거든. 그러니깐 못 견디게 샘이 난단 말야.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훼사를 놓으려고 결심을 하고는 ─ 아니 부끄러워서 이 말을 다 어떻게 해? 금봉이 용서해요.』

하고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어서 말해요.』

『그래서는 임을 보고는 금봉이 흠담을 막 했지, 있는 소리 없는 소리. 그래도 안되니깐 심 상태를 추겨서 금봉을 후려 내라고 하고, 그것도 안되니깐 나중에는 손 선생헌테 편지질을 했지, 금봉이가 임이랑 심이랑 허구 좋아한다구 어서 혼인을 해버리지. 아니하면 영영 놓쳐 버리리라고. 그리고는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을 보고 나는 좋아서 혼자 웃었지. 그리고도 부족해서 이번에는 오빠를 추겨서 영자허구임허구 혼인을 시켜 놓고. 그리고는 금봉 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량으로 금봉이더러 들러리까지 서라고 하고. 금봉이, 내가 이렇게 괴악한 년인 줄은 몰랐지? 금봉이는 그래도 나를 믿고 언니 언니 하고 따랐지.』

하고 애원하는 눈으로 금봉을 본다.

금봉은 이 말을 듣고 파랗게 질렸다. 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풍맞은 사람 모양으로 떨렸다. 입에는 침이 마르고 손발 끝이 금시에 싸늘하게 식는다.

금봉은 단박에 을남에게 대들어서 그 아가리를 찢고 눈깔을 후벼 주고 싶었다. 칼로 그 가슴통을 우비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전신이 얼어 붙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을남은 금봉의 이런 모양을 보고 머리가 쭈뼛하도록 무서웠다. 그러나 제 한 간이 그만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계속하였다 ─

『금봉이, 내 할 말을 마저하께. 그 말까지 듣고는 나를 때리든지 발길로 차든지 칼로 찔러 죽이든지 마음대로 해요. 실컷 분풀이를 해요. 내가 그 분풀이를 받아 싼 년이니까. 그렇지만 내 말이나 들어 주어. 응? 내가 ─ 이런 몹쓸년이 이렇게, 그래도 금봉이 앞에 와서 제 죄를 자백할 생각이 났는지, 그 말까지나 들어 주어, 응?』

하고 금봉이에게서 올 무슨 보복이든지, 그것이 설사 칼로 가슴을 찔리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 달게 받으리라 하는 결심을 하고는 태연하게 대접에 남은 냉수를 마저 마시고 금봉이 눈이 제게로 향하기를 기다린다. 금봉의 눈은 마치 운명하려는 사람의 눈 모양으로 허공에 박혀서 움직이지를 아니한다.

을남은 금봉의 눈이 들리고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못하여금봉이야 듣거나 말거나 하려던 말이나 다 쏟아 버리리라 하고,

『금봉이, 듣기 거북하더라도 내 말을 다 들어. 그래, 그런데……』

하고 두서를 찾지 못해서 잠간 머뭇거리다가,

『그런데 어저께 영자헌테서 오빠허구 나허구 좀 오라고 기별이 왔단 말야.

대단히 시급한 일이 있으니 곧 오라고. 편지도 아니구 사람이 와서 전갈을 하거든. 그래서 오빠는 마침 안 계시고, 그래 나 혼자 달려 가 보았지, 영 자 집으로. 그래 갔더니 글쎄 영자가 어머니허구 앉아서 도저히 임허구는 살 수 없다고 독이 올라서 야단이란 말야. 마치 히스테리 들린 여편네 모양으로 울고불고 짜증을 내고. 내가 영자 마음을 돌리느라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해도 막무가내야. 임이 자기에게 대해서는 사랑이 없다는 것이어든. 너무 냉담하다는 것이어든. 그리고 금봉이를 사랑하노라고 자백했다는 것이어 든. 어머니더러 이혼해 내라고 야단이야 글쎄. 그리다가 할 수 없이 집에 돌아 왔지. 오빠가 들어 오시길래 그 말을 했더니, 오빠야 상투끝에 벼락이 떨어지기로니 눈이나 깜짝하는 사람이야? 내버려 두라고, 혼인 초에는 그런 일이 있느니라고, 가만 두면 낫는 병이요 건드릴수록 더하는 병이라고.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망할 것이 분에 넘는 남편을 만난 것을 고마운 줄을 모르고서, 이러시겠지. 영자를 두고 하는 말이지. 오빠 말씀을 들으니깐 또 그럴 듯도 하지마는 밤에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디 잠이 와야지. 모두 내 잘못으로, 내 질투로 몇 사람을 불행에 빠지게 했나 하고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단 말야. 금봉이를 망쳤지, 임씨를 망쳤지, 영자를 망쳤지, 손 선생인들 망친 게 아니고 무엇이야? 금봉이나 임이나 영자나 이 앞에 어떠한 장면을 전개하려는고 하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그래서 밤 새도록 한잠 못 자고 오늘 학교에를 가지는 갔지마는, 교실에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지. 그리고는 금봉이를 찾아 온 게야. 와서 내 죄를 자백하고 금봉이 손에서 받아 싼 벌을 받든지 용서함을 받든지 하리라 하고. 금봉이 용서해 주어요. 내가 어디 본래 이렇게 요사스럽기야 했나? 미친년 같다는 말은 들어도 악인이라는 말은 안 들었지. 그런데 임에 대한 샘으로 그만 마음이 뒤집혔단 말야. 미친 개 혼이 씌었단 말야. 그런데 이제는 운명으로 정해진 죄를 다 지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씌었던 미친 개 혼이 벗겨져서 도로 본심에 돌아왔으니 금봉이 용서해주어요. 금봉이만 망쳤나? 나 자신은 더 망쳐 놓았지. 그야 나는 자작지얼이지. 애매하고 불쌍한 것은 금봉이야.

금봉이가 나보다 아름답다, 나보다도 남자를 끄는 힘이 더 많다 하는 것이 내 마음속에 지독한 질투의 불을 붙여 놓았단말야.』

여기까지 말하고 을남은 말을 그치고 금봉을 바라보았다.

금봉의 얼굴에는 다시 피가 돌고 거의 끊어진 듯하였던 숨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언니하고 나하고 무슨 업원이오?』

하는 말이 금봉의 입술에서 흘러 나왔다. 다음 순간에 금봉은,

『언니, 그런 말씀은 내게 안 들려 주셨더면 좋을 뻔했어. 그야 내 마음만 단단했으면야 아무리 언니가 책동을 하시기로 까딱도 없었겠지마는 그래도 약한 인생이라 언니가 원망스럽구려. 아직 언니를 용서한다고는 못하겠 어.』

하고는 더 말하지 아니하였다.

을남은 금봉의 이 말에 숭배하고 싶도록 높은 무엇을 느꼈다. 을남은 금봉 의 이 말에 숭배하고 싶도록 높은 무엇을 느꼈다. 을남은 한참이나 무료한 듯이 앉았다가,

『금봉이, 나는 요새에 내 마음보다 더 힘있고 높은 무엇이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 금봉이도 아다시피, 내야유물론자 아니야? 그런데 비록 짧은 일생이지만 일을 생각하면 암만 해도 내가 내 마음대로 살아 온 것 같지를 않아. 이 우주에도 나보다 큰 힘이 있어서 나를 이리저리로 조종을 하는 것 같이 내 마음속에도 미친 개 혼허구, 퍽 깨끗하고 높은 무엇허구 둘이 싸우고 있는 것 같고 그게. 하느님과 마귀라는 것인지, 조 병걸씨 문자로 모두 다 전생의 업보라는 것인지는 모르지마는, 무엇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애. 그것이 없다고 뻗대고 온 것이 내 모든 죄와 실패의 원인인 것 같아.

금봉이, 내 이제부터는 좋은 길로 가도록 힘을 쓰께.』

하였다.

〈퀵샌드! 퀵샌드!〉 하고 금봉은 삼청동 새로 떠나온 집 마루끝에 앉아서 김장에 바쁜 하인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을남 언니는 좋은 길을 걷겠다고? 흥, 헌털뱅이가 다 되어서 이제는 넝마전에도 못 나가게 되니깐.〉 하고 며칠 전에 을남이가 하던 이야기를 생각한다.

〈좋은 길을 가라지. 퀵샌드에 빠진 나는 점점 더 깊이 들어 갈 뿐이다.

밑창까지 들어 가서 바닥을 보고야 말 작정이다.〉 하고 금봉은 오늘부터 꼬물거리기 시작한 뱃속에 든 아이를 생각하고 이제는 침모의 딸이 다 되어서 침모방에서 종알대는 정선의 소리를 듣는다.

〈이것들이 나를 한량 없이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 가는고나.〉 하고 금봉은 한숨을 쉰다.

금봉은 이제는 아주 내놓은 광진의 마나님이 되어 버렸다. 은봉은 차라리 계모의 눈총을 맞고 살지언정 첩살이하는 형 집에는 아니 있는다고 삼청동 형의 집에 와 보지도 아니하고 애오개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호적은 손명규의 처로 있는 채 김광진의 첩이 된 것이다. 광진은 은행 시간이 끝나면 큰집으로 갔다가 큰집에서 저녁상을 받고는 곧 금봉의 집으로 왔다. 아침은 금봉의 집에서 먹고 저녁은 가회동 큰집에서 먹는 것이 격식이 되었다. 삼청동에 온지 얼마 아니하여서 벌써 가회동 큰집에서 먹는 것이 격식이 되었다. 삼청동에 온 지 얼마 아니하여서 벌써 가회동 집 하인들이 염탐 겸 다니기를 시작하고, 이따금 누가 보내는 것인지 반찬 거리와 제사 음식 같은 것도 왔다. 처음에는 그런 것을 받는 것이 침모랑 하인들 소시에서 뭐하기도 하였지마는, 그것도 얼마 하지 아니하여서 예사가 되고 말았다. 김장도 가회동 하인들이 사다 들이고, 지금 이 마당에서 배추를 다듬고 무우를 씻는 것도 가회동서 온 사람이었다. 문패만은 김광진이라고 붙이지 아니하고 침모의 이름으로 어 소사라고 붙였다.

〈그래도 이것이 아들이 되어서 입적만 되면.〉 하고 금봉은 광진의 약속을 생각한다. 광진은 정선을 입적시키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이번에 낳는 애가 아들이면 적자로 입적을 시킨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대감께서 허락하시겠어요?』

하고 금봉이가 물을 때에,

『그건 염려 말어. 아버지도 지금 나이 칠순에 손자를 어떻게 기다리시는 데.』

하고 광진이가 다지기까지 하였다.

이것이나 낳아서 다행히 〈아들이고 또 맏아들로 입적이나 되면, 그게나 길러 놓고……〉하고 금봉은 이런 것으로 희망을 살게 되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금봉은 차라리 세상에서 잊혀지기를 원하였다.

추운 겨울과 부른 배도 배지마는, 금봉은 조금도 대문 밖에 나서는 욕망이 없어졌다. 후끈후끈하게 난로를 피워 놓은 대청에 앉았노라면 눈을 소복소복이고 섰는 백악의 소나무들이 보이고, 취운정 뒤에 식전산보다니는 학생들이 목이 찢어져라 하고 외치는 소리도 들리고, 산꼭대기에 서서 정말 체조를 하는 모양도 보였다.

〈에라 될 대로 되어라.〉 하고 몸을 탁 내어 던지니 도리어 편안하였다. 비록 몸이 던져진 데가 구린내 나는 시궁창이라 하더라도 뭇사람의 눈총에서 조바심하는 것보다는 도리어 마음의 편한 것 같았다. 「지옥의 편안」이라고 금봉은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시나브로 책장을 들쳐 볼 여유조차 있었다.

광진은 퍽으나 금봉을 위하였다. 저녁에 올 때마다 무엇이나 먹을 것도 싸 가지고 오고, 커다란 빅터 유성기도 갖다 놓고, 성북동 정자에서 광진이가 금봉이를 처음 만날 때에 보던 침대와 탁자도 갖다 놓고, 레코오드도 가끔 새 것을 사오고, 설 명절에는 라디오도 사다 놓았다.

손 명규가 사 준 피아노를 갖다 주고 그보다 더 좋은 피아노를 사다 놓았다. 때때로 금봉이가 피아노를 치는 소리도 한길에 울려 나왔다.

『우리 정선이는 여섯 살만 되면 피아노를 가르쳐야.』

하고 광진은 정선을 이제는 내놓고 제 자식으로 안고 앉아서 그 팔목을 잡고 피아노를 치게 하였다. 광진도 「피커딜리」곡조쯤은 칠 줄을 알았다.

〈그럭저럭 살아 가지.〉 할 만하게 된 때에 금봉에게는 새 괴로움이 또 왔다.

금봉에게 온 새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광진의 부인이 잉태한 것이었다. 십 오륙 년 전에 아이 하나를 낳아서 젖끝에서 잊어 버리고는 영 잉태해 보지 못하던 「아씨께서」태기가 있다는 것은 김광진의 집에는 여간 경사가 아니었다. 광진이가 서양 다녀 온 후로는 도무지 본처와 동침하지 아니한다고 해서 두 집 ─ 광진의 집과 그 처가집이 큰 걱정 거리가 되던 것이 이제 광진의 부인이 잉태한 것이 확실한 것은 두 집에 큰 경사일 것이 아닌가.

『아씨께서도 나이가 사십에 웬 앨까 하고 여태껏 감추고 계셨다구요. 그래도 영 입맛이 없으시구 몸이 수척하시구 하니깐은 정경 부인마님께서 노 걱정을 하셔서, 얘 아가 웬일이냐 어디가 아프냐, 하시고 애를 쓰셨답니다.

정경 부인마님께서 어떻게 그 아씨를 귀애하신다구요. 또 영국 서방님께서 도무지 가까이하시지를 아니하시니깐은 그것이 가엾으셔서 노 불쌍하다고 그리셨답니다 그래서 . 의사를 불러 오랴, 아가 병원에를 가보려무나, 그러시던 끝에 무슨 박산가 한 의사 양반이 와 보시나, 그러시던 끝에 무슨 작 산가 한 의사 양반이 와 보시더니 애기라구요, 벌써 다섯 달이나 되었다구요. 그러니 정경 부인마님께서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대감마님께서도 이거 경사라구, 인삼을 들여라 녹영을 들여라 하시고 야단이신데요.』

하고 가회동 집 수다스러운 어멈이 금봉이 집에 와서 침모를 보고 묻지 않는 말을 한바탕 늘어 놓고 간 것이었다.

〈그래도 본부인한테를 댕기는군,〉 하고 금봉은 이 말을 들을 때에 질투가 일어났다.

금봉이가 삼청동 온 뒤에도 광진은 삼사차 큰집에서 자고 왔다. 혹은 제사 라 하고, 혹은 시골서 손님이 와서 성북동서 잤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금봉은 본마누라하고 동침은 하리라고 생각도 아니하였다.

〈다섯 달이라. 이 애보다 석 달 나중이로고나.〉 하고 금봉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금봉을 괴롭게 하는 것은 광진의 본마누라에 대한 질투뿐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더 큰 것이 있었다. 만일 광진의 부인이 아들을 낳는다면 금봉의 뱃속에 있는 아들이 광진의 상속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고 보면 금봉의 지금까지의 꿈은 헛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광진의 부인이 딸을 낳고 금봉이가 아들을 낳으면? 둘이 다 아들을 낳으면 ─ 이러한 생각을 뇌이고 뇌었다.

그날 광진이가 삼청동 집에 왔을 때에는 광진은 술이 취하였다. 금봉은 광진을 만나는 대로,

『그런 경사가 어디 있어요.』

하고 빈정대는 모양으로 웃었다.

『무슨 경사?』

하고 광진은 취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우물거렸다.

『부인께서 태기가 계시다고요. 참 그런 경사가 없어요.』

하고 금봉은 바르르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하였다.

『누가 그래? 어느 미친년이 와서 또 무에라고 지껄였어?』

하고 광진은 좀 낭패하여 일부러 더 취한 양을 보인다.

『그런 기쁜 소식을 내가 알면 큰일 나나요?』

하고 금봉은 새침해진다.

『큰일 나지, 큰일 나.』

하고 겸연찍은 듯이 금봉의 허리를 껴안으려고 하는 것을 금봉은 몸을 뿌리쳐 물러앉으면서,

『점잖은 양반이 무얼 이러시오?』

하고 북받쳐 오르는 분통을 꾹꾹 내려 누르면서,

『오늘은 어째 오셨어요? 부인헌테서 주무시지.』

하고 똑바른 화살을 광진에게로 쏘았다.

『이건 뭐야, 질투를 합시는 게야?』

하고 광진은 멸시하는 듯이 금봉을 향하여 픽픽 웃는다.

『원 천만에 말씀이오. 내가 무에라고 남의 내외의좋게 사시는 것을 질투를 해요? 벼락맞게. 그러지 아니해도 밤낮 저주를 받고 있는걸. 부인께서 기다리실 테니 어서 가보시란 말이지.』

하고 금봉은 일어나서 마루로 나가 버린다.

정선이가 자다가 엄마와 「아저씨」의 큰소리에 깨어서 운다.

이로부터 금봉에게는 다시 입덧이 돌아 오는 것 같았다. 아주 구미를 잃고 몸은 날로 수척하였다. 책장도 안 들춰 보고 피아노도 안 울렸다. 광진이가 와도 피아노도 안 울렸다. 광진이가 와도 웃음판이 벌어지는 일이 없었다.

만삭을 바라보는 금봉은 귀신이 다 되었다. 아침마다 하던 단장조차 폐해 버리니, 그렇게 곱던 살빛도 누르스름하게 되고 얼굴에는 여기 저기 죽은깨 조차 보였다.

『요년 요년. 요 웬수엣년이!』

하고 어쩌다가 어미 옆에 오는 정선을 욕설하고 때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뱃속에서 더욱 기운차게 펄떡펄떡 노는 아이도 금봉에게는 무슨 징그러운 원수만 같았다. 왜 이것은 떼어 버리지를 못했던고, 하고 금봉은 혼자 몸부림을 하며 화를 내었다.

〈이것들이 자라기로 무엇을 하나. 일생을 천덕구니로 지날 것을.〉 하고 금봉은 자기가 학교에서 「기생 딸, 기생 딸」 「첩년의 딸, 첩년의 딸」하고 아이들한테 가슴 쓰린 수모를 당하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 여편네 애가 떨어지기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날 때에 금봉은 몸서리가 쳤다. 내가 첩년이 다 되었고나, 악한 계집이 다 되었고나 하고 하늘이 무서웠다.

세상을 다 등진 금봉을 찾아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가끔 가회동 집 수다스러운 어멈이 와서는 듣기 싫은 소리를 골라 가지고 나온 것같이 늘어 놓고 갈 뿐이었다.

『우리 아씨께서는 삼청동 아씨 어떠시냐고 노 걱정을 하신답니다.』

이런 소리까지 하였다.

『참, 우리 아씨는 인자하셔요. 삼청동 아씨도 인자하시지만.』

이런 소리도 하였다.

『그년이 요담에 오거든 아가리를 찢어 주어야.』

하고 금봉네 할멈은 금봉을 대신하여 분개하였다.

『식은 밥덩이 얻어 먹기는 제나 내나 매한가진데, 무얼 어쭙지 않게 큰집 하인이로라고 사람을 깔보고.』

하고 할멈은 혼자 게두덜거렸다.

금봉을 찾아 오는 친구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동네에 사는 어떤 늙은 부자의 마나님이었다. 그는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한참은 기생으로 이름이 높았고 지금 바라보는 사람으로, 한참은 기생으로 이름이 높았고 지금은 부자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자식 없는 늙은 부자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고, 또 여러 일가들이 반대를 물리치고 제가 낳은 아들을 적자로 입적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찌어찌하여 남편에게 수천 석을 제 명의로 옮기는 데도 성공하였다. 그는 매우 큰 수완이 있었다. 그는 넉넉한 재산을 가지고 여러 가지 부인 단체와 자신 사업에 돈을 내어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피아노 소리에 금봉의 집에 흥미를 가졌고, 나중에는 하인들의 염탐으로 그 피아노 소리가 유명한 이 금봉의 손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하루는 집 구경이라 칭하고 찾아 들어왔다.

몇 번 내왕에 금봉은 「종태 어머니」라는 이 부인과 친하게 되어서 금봉은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그는 금봉을 동생이라고 부르게까지 되었다.

『내가 아우님 어머니를 여러 번 뵈었다우. 어렸을 때지마는 그 아주머니야 거문고 잘 타시기로 유명하셨다우. 나도 그 아주머니 거문고 타시는걸 보았지만 참 잘 타셨거든. 나도 배우기는 그때에 배웠지. 바로 아우님 어머니 선생님이 내 선생이야. 아우님은 모르시겠지마는 선경 상인이라고 이름이 서 광옥씨. 우리 배울 때에는 아주 늙은이야, 파파 노인야. 그래도 거문고에는 오백 년에 제일이라거든. 그 어른 말씀이, 당신이 거문고를 여러 사람 가르쳐 보았지만 민 계향 ─ 아차 실례 ─ 아주머니 성함이 그러시지 않소? 그 어른만하신 이는 처음 보았노라고. 아까운 재주가 그만 거문고를 놓았다고 우리 보고도 그러셨다우. 얼굴도 잘나시구. 그랬는데 어쩌면 글쎄 이렇게 아우님을 만나게 되었어.』

하고 진정으로 반가운 태도를 보였다.

금봉은 어머니를 존경하기 때문에 종태 어머니도 기생 중에는 또 어머니 같은 인격자나 아닌가 하는 호기심을 가졌다.

『인생이란 꿈이야. 한바탕 꿈이거든. 괴로워도 꿈이요 즐거워도 꿈인데 무어 그리 애를 쓸 것 있나. 그럭저럭 살아 가지요.』

하고 종태 어머니는 시원한 소리로 금봉을 위로하여 주었다.

그러나 종태 어머니가 돌아 가면 금봉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왔다. 더구나 근래에 광진의 발이 점점 떠져서 오지 않는 날이 많고, 혹시 오더라도 전과 같이 금봉을 위해 주는 것이 박한 것 같았다. 광진 편으로 보면, 요새에는 금봉을 보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 귀신 같은 모양 밤낮 짜그리고 불쾌한 소리만 하고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금봉이 집에를 오고 싶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금봉이가 광진의 아내 잉태한 것을 샘내는 것을 볼 때에는 퍽 불쾌하였다. 광진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본처에게 정이 없다 하더라도 본처의 몸에서 아들이 나는 것만은 좋은 일이었다. 더구나 십여 년을 안 돌아 보아도 도무지 불쾌한 빛을 보이지 아니하고 정성껏 옷을 지어 주고, 혹시 대하면 언제나 웃는 낯으로 대하고, 금봉이를 첩으로 얻어서 잉태하였다는 말을 듣고도,

『그것이 아들이나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고 진정으로 아들 낳기를 바라는 표정을 하는 것을 볼 때에는 광진은 그 아내가 성인 같고 천사같이 생각히어 도리어 동정이 솟아 올랐다. 혹시 옷 한 가지라도 끊어 다 주면 그 기뻐하고 고마와함이 말이 아니면서도 눈물겨웠다.

『왜 한번도 친정에를 아니 가오?』

하면 광진의 아내는,

『남편을 잘못 받들어서 소박을 받는 년이 무슨 면목으로 친정에를 가 오.』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번에 하나님과 조상님 은혜로 아들이나 낳으면 친정에도 가고 일가댁에도 가지요.』

하였다. 광진은 아내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금봉과 비겼다. 아내는 현부인이요, 금봉은 음탕한 창녀였다.

〈서방 두고 딴 서방 보는 년.〉 하면 금봉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본래 정부의 하나로 일시 장난으로 사귀인 것이지마는, 그런 계집과 오래 가까이하는 것은 몸이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자식이 나오기로 오죽할라고.〉 광진은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정선이가 제 어미를 닮았으면 어찌하나?〉 이런 걱정도 하게 되었다.

더구나 금봉이가 만삭이 되어서 꼴이 귀신같이 되고 보니 광진의 마음이 끌리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인은 미인이거든.〉 하고 광진은 예전 금봉을 생각하면 못 견디게 그립던 기억을 일으켜 본다.

은행에서 사무를 보다가도 금봉이 생각이 나면 곧 뛰어 나가 찾아 가고 싶도록 그립던 것을 생각한다. 만년필로 무심코「이 금봉, 이 금봉」하고 금봉의 이름을 수없이 쓰다가 급사의 눈에 뜨이고는 낯이 후끈거리던 일을 생각한다.

〈이제 해산이나 하고 몸이 추서면 또 그때 아름다움이 돌아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금봉이가 아까왔다. 아직 그냥 두고 보다 싫어지거든 내 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마음을 놓았다.

사꾸라가 피기 시작할 때 금봉은 아이를 낳으려고 입원하였다. 광진이 입원을 시킨 것이었다. 방도 특등실 조용하고 넓다랗다. 침대에 누워서도 고개만 들면 뜰에 섰는 사꾸라나무가 보였다.

간호부 한 사람 쯔끼소이, 「 」한 사람, 그리고도 순이라는 계집 아이 하나 까지 집에서 밥먹고 날마다 와 있기로 하였다. 틀은 틀대로 부자집 아씨가 할 것은 다 하였다. 병실 문에는 까만 패에 흰 분으로 「이 금봉」이라고 써 달았다. 오래 세상에 숨었던 이 금봉의 이름이 다시 세상의 눈에 뜨이게 되었다. 입원한 지 사흘이나 되어서야 금봉은 또 이십여 시간의 진통을 겪고 아들을 낳아 놓았다. 남의 눈을 꺼리는 광진은 아침에 일찌기 병원으로 찾아 와서 어린애를 들여다 보고는 간호부가,

『아드님이 나셔서 그런 경사가 없읍니다.』

하는 인사도 들은 체 만 체하고 은행으로 가버렸다. 금봉은 난산 끝에 이몽 가몽하면서도 광진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읽어 보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광진은 차릴 인사는 다 차리면서도 기뻐한다는 것보다도 「걱정이다」 하는 것 같았다.

광진이가 간 뒤에 금봉은 울었다.

〈아비 없는 자식이로구나.〉 하고, 우는 갓난이 소리를 가슴 아프게 들었다. 그라고 정선을 낳을 때에 손 선생이 밤새도록 들락날락 애를 쓰고는 낳은 어린애를 보고 기뻐하던 양을 생각하였다. 이것이 남편의 아들이면 얼마나 기뻐할까. 이 아이가 한 달 만 일찍 낳았어도 손의 씨라고 할 수도 있지마는, 손의 씨라기에는 너무도 때가 늦었다.

하루 종일 누구 하나 들여다 보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간호부와 「쯔끼소 이」가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금봉은 학교에 있는 동생은봉을 부를까 생각하였으나 은봉은 벌써 졸업식을 마치고 어디로 갔는지를 모른다. 신문에는 졸업식날은봉이가 졸업반을 대표하여서 답사를 하였다는 말이 나고, 야릇한 모자에 가운을 입은 은봉이를 졸업생 일동의 사진에서 찾아 내어서 울던 것을 생각한다. 이제는 금봉은 은봉에게 비겨서 말이 못되게 천하여지고 성령 없어진 것을 생각할 때에 금봉은 동생에게 대하여서도 일종의 질투를 느꼈다.

〈오빠는 어디로 가셨나?〉 하고 금봉은 인현을 생각한다. 수녀가 되거나 시골로 가거나 하리던 인현의 말이 생각한다. 그 사랑과 그 정성, 그것을 생각하면 금봉은 한량 없이 슬펐다.

〈오빠 말씀이 옳았던 것을.〉 하고 금봉은 그후 일 년 간에 자기가 얼마나 더 지옥을 향하고 떨어졌나를 생각해 본다.

〈불의의 일시적 쾌락과 뼈가 녹는 지옥의 고통.〉 하고 금봉은 지나간 일 년의 생활을 돌아 볼 때에 지긋지긋하고 소름이 끼친다. 후회와 원망과 질투와 허욕과, 거기서 오는 실망과 불안과 ─ 이러한 감정으로 지글지글하는 생활이 지옥 생활이 아니면 무엇이랴. 게다가 아무리 앞을 내다보아도 희망의 빛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흑암 ─ 참으로 흑암 지옥이었다.

〈오빠는 선지자시다.〉 금봉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빠는 내 앞길이 이러할 줄을 미리 아시고서 나를 이 지옥에서 건지려고 하셨건마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이 너 하나를 건지거나 그렇지 아니하 면 너 때문에 여러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할 운명이라고까지 하시던 것을.〉 하고 금봉은 인현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을 후회하였다.

『오빠, 오빠!』

하고 금봉은 반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어서 불렀다. 간호부가 깜짝 놀라서 금봉을 흔들었다. 금봉이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야 간호부는 안심한 듯이 머리를 만져 보고 제자리에 돌아 가 앉았다.

금봉은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은 푹 가라앉아서 땅 속으로 들어 가는 것만 같은데, 정신은 흥분한 것도 아니요 희미한 것도 아니면서 꿈과 생시와 사이로 오락가락하였다.

인현이가 머리를 새파랗게 밀고, 검은 장삼을 입고, 합장하고 섰는 양도 보이고, 손 선생이 눈을 멀뚱멀뚱하고 금봉의 머리맡에 섰는 양도 보이고, 어머니가 전신에 물을 쪼르르 흘리면서 우물에서 나오는 양도 보이고, 또 금봉이가 동경 ○○학원 기숙사 기도실에서 자리옷 바람으로 꿇어 앉아서 옥중에 있는 임 학재를 위하여 기도하는 양도 보였다.

〈나는 어디로 가는고? 장차 어디로 갈 것인고?〉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벼락같이 금봉에게 덤벼들기도 하였다. 사흘이 되어 도 젖이 한 방울도 서지 아니하였다.

다니러 왔던 할멈은,

『미역국을 안 잡수셔서 그래요. 미역국을 잡숫고 미역국으로 젖을 씻어야 젖이 도는데.』

하고 미역국을 끓여 오기도 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또 광진이가 왔다. 소나무와 시네다리아 화분을 들리고 백합은 제가 들고 와서 방을 장식해 놓았다. 이날은 어린애를 쳐들어 도 보고 웃고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모를 구할 걱정도 하였다. 그러나 한 십 분이나 있다가 가버리고 말았다.

금봉은 간호부에 대한 면목이 좀 섰다. 그래도,

『이 애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안 계셔요?』

하고 물을 때에는 금봉은 낯에 모닥불을 담아 붓는 듯하였다.

『금봉이.』

하고 을남이가 부를 때에 금봉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게다가 을남이 뒤에 정희가 따르는 것을 보고는 더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변 억하기도 하고 일변 부끄럽기도 하여금봉은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여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애기 낳았다고.』

하고 을남은 조그마한 침대 곁으로 가만히 걸어 와서 어린애를 들여다보며,

『예쁜데, 잘났는데.』

하고 탐스럽게 칭찬을 하고는 부러운 듯이,

『아들이야?』

하고 금봉의 침대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가, 정희더러,

『정희, 이리 와 앉아.』

하고 제가 앉았던 자리를 정희에게 내어 주고 저는 다른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앉으며,

『괜찮아?』

하고 금봉의 여윈 얼굴을 들여다 본다. 금봉의 모양이 모나리자 같다고 생 각하였다.

『괜찮아요. 그런데 언니는 웬일이야요?』

하고 금봉은 빙그레 웃으며,

『정희 언니는 또 웬일이고? 어떻게 내가 여기 입원한 줄을 알고들 오셨어?』

하고 반가와하는 빛을 지었다. 사실로 오래간만에 만나는 옛 친구들이 반갑기도 하지마는 어엿하지 못한 제 꼴을 보이는 것이 본의도 아니었다. 더구나 남편의 씨 아닌 아이를 낳아 놓고 병원에 드러누웠는 것이 염치 없었다.

『숙희 언니? 왜? 무슨 병으로?』

『흥.』

하고 을남은 간호부와 「쯔끼소이」에게 꺼리는 눈을 던진다.

간호부와 「쯔끼소이」가 슬쩍 나가 버린다.

그제야 을남은 안심한 듯이,

『숙희가 유산을 했지요. 그리고는 출혈이 많이 되어서 죽는다고 야단이었 다누. 그래서 이 병원에 입원한 지가 사흘째인가.』

하고 동의를 구하는 듯이 정희를 본다.

『유산? 숙희 언니가 유산을?』

하고 금봉은 놀랐다.

『아마 어떤 섣부른 의사헌테 떼어 달랬던가 봐. 그런걸 그 놈팽이가 잘못 손질을 해서 그랬나봐. 나도 처음 볼 때에는 숙희가 아주 백짓장이야요, 피가 다 빠져서.』

『그래 무에더래? 그 뗀 애가 사내더래, 계집애더래?』

하고 금봉은 호기심으로 묻는다.

사내더래 숙희가 그러는데 『 . 벌써 사람 모양이 다 되고 떼낸 뒤에도 한참이나 숨을 쉬고 움찔거리더라는걸.』

『에그머니나! 어쩌문 그걸 떼었어!』

하고 금봉이가 끔찍끔찍해서 몸을 떤다.

『그러기에말이야, 처녀로 다른 사내하고 가까이할 뱃심이 있거든 왜 처녀로 아이를 낳아서 기를 뱃심이 없어?』

하고 을남은 분개한 듯이,

『숙희가 철저하지를 못해. 거 어떻게 제 오빠허구는 그렇게도 딴판이야?

어머니도 한어머니라는데 글쎄 어린애를 떼고는 그것이 후회가 나서 밤낮 우는군. 그렇게 우는 것을 떼긴 왜 떼었느냐고 하니깐 남이 부끄럽고 오빠가 망신이 될까 봐 그랬다고. 그랬거든 울긴 왜 울어, 하고 몰아 세니깐 그때엔 애가 눈에 밟히고, 불쌍하고 그래서 운다고 자꾸 그것이 눈에 보인대.

그 퍼떡퍼떡하는 꼴이 눈을 감아도 보이고 떠도 보이고 그런대. 자꾸 꿈에, 보이고. 딴은 무섭긴 무서울 게야!』

하고 을남은 서양 사람이 하는 모양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에그, 얼마나 무서울까!』

하고 금봉은 자기가 어린애를 떼어 버릴까 하던 생각을 하고 아래웃입술을 빨았다.

『무서울 테지. 저게 일생에 두고 마음에 키운 게 아니야? 살인이어든. 제 자식을 죽인 것이어든. 그래서 지금은 숙희를 보면 무시무시해요. 징그럽기도 하고. 정희는 안 그래?』

하고 을남은 잠자코 앉았는 정희를 건드린다.

『숙희가 잘못이지.』

하고 정희는 부득이 입을 열어서,

『하나님이 계신 줄을 모르고, 영혼이 안 죽는 줄을 모르니깐,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오? 아무리 몰래 죄를 짓기로 하나님 몰래 할 수야 있어?』

하고 고개를 숙인다.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지. 하나님이 꼭 계시고 사람이 죽은 뒤에 꼭 영혼이 남아서 생전에 한 대로 벌을 받는 줄을 믿으면야 죄는 못 짓지마는.』

하고 을남은 제 일생을 돌아 보노라고 멍허니 허공을 바라본다.

금봉도 자기가 하나님과 영혼을 믿을 때와 손과 김광진의 영향으로 하나님이 다 무어냐 한 때와를 비겨 보았다. 그리고, 〈정말 하느님이 계신다.〉 하고 속으로 무서운 생각을 하면서 정희를 바라보았다.

『하느님이 안 계시면……』

하고 정희가 고개를 들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이 우주가 있고 우리 인생이 있겠어요? 이 우주에 법칙이 있고 우리 인생에 양심이 있겠어요? 숙희도 양심이 있길래 죄 지은 것을 후회하고 괴로와하는 마음이 영혼이 아니고 무엇이오?』

하고 확신 있게 말한다.

전 같으면 을남은,

『어, 또, 성모 마리아가 나오는군.』

하고 정희를 놀려먹을 것이지마는 숙희를 보고 금봉을 본 오늘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나고 도리어 정희의 꾸밈없는 힘있는 말에 저항할 수 없는 위엄을 느꼈다.

『나도 정희 언니처럼 굳은 믿음을 가졌으면.』

하고 금봉은 자기의 심경을 솔직하게 자백하였다.

정희는 손 선생한테 한번 몸을 더럽힘이 되고는 스스로 제 몸이 더러운 몸 이라 하여 수녀로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고 천주교에서 세운 다른 학교의 교사로 가라고 해도 안 가고 교당 안에 있는 고아원에서 부모 없는 아이, 내다 버린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서 깨끗한 봉사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몸소 깨끗한 생활을 실행하는 정희기 때문에 그의 말은 입으로만 진리를 말하는 종교가들의 말과 달라서 힘이 있었다. 을남과 금봉도 그 힘에 눌린 것이었다.

그러나 정희는 그 이상 더 말하지 아니하였다. 금봉도 정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더 나올 것이 무서웠다. 어차피 구원받지 못할 제 몸이어니 하면 양심에 찔리는 말을 들어서 공연히 마음 고생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금봉은 정희의 말이 끊어진 것을 기회로 말끝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그런데 영자 언니는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을남에게 물었다.

『영자?』

하고 을남은 딴 생각을 하다가 금봉의 묻는 말에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여전히 제가 하던 생각을 계속한다. 을남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죄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을남은 요전 금봉에게 「내 좋게 되도록 힘을 쓸께」한 뒤로도 별로 좋게 된 것도 없었고, 거의 그 생각을 잊어 버릴 지경으로 있었지마는, 지금 정희의 말에 문득 그때에 ─ 금봉에게 제 잘못을 자백하고 사죄를 청할 때에 먹었던 마음을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하여도 정희가 걸어 가는 길이 바른 길 같았다. 을남이가 제 과거를 생각하매, 제가 하여 놓은 일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제 한 몸의 낙인들 얻은 것이 무엇인고? 이 성과 난잡한 말을 하거나 육체적 접촉을 할 때에 어떤 관능적 쾌미? 그것은 너무도 순간적일 뿐더러, 그 쾌미보다 몇 백 배나 되는 회한의 고통과 심신의 피로와 불쾌를 값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 관능적 쾌미를 따라서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헤매는 꼴, 그러고 그것이 얻어지지 아니할 때에 목마르 고 주린 듯이 괴로와하는 꼴, 그리고 거기 따르는 허욕과 질투와 원망과 아첨과 거짓 등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와 회오리바람 ─ 이 모든 것을 돌아 보면 지긋지긋하게 더럽고 괴로운 것이었다. 더구나 정희와 자기와를 비길 때에 마음의 안정이나 고결함은 젖혀 놓고라도 외모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더라도 얼마나 큰 차이가 있나. 겨우 두 살 터울 밖에 안되는 제 용모와 정희의 용모의 엄청난 차이 ─ 을남이가 보기에, 정희는 제 나이보다 다섯 살은 젊어 보이고 자기는 다섯 살은 더 먹어 보였다.

『부정한 생활은 고생스러운 생활과 같이 사람을 늙게 한다.』

어떤 책에서 본 말이 옳다 하였다. 게다가 정희의 얼굴에는 숫처녀의 맑음이 있고 자기의 얼굴에는 마치 놀아먹던 계집과 같은 흐림이 있었다. 마음의 생활은 속일 수 없는 것이라고 을남이도 말로는 들었지마는, 깨닫기는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하나는 말짱한 것, 하나는 다 헌 것이라고 집어 내일 것 같았다. 더구나 여기 눈앞에 누워 있는 금봉이와 저 쪽 방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숙희를 생각할 때에 이른바 자유주의 자라는, 가장 새로운 사상을 가진 선구자라는 자기네의 인생관의 끝이 어떠 하다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을남은 아직도 잉태한 일은 없었다. 만일 숙희나 금봉과 같이 잉태까지 하였던들 자기도 숙희나 금봉이가 받는 괴로움을 아니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을남은 혼자 무서웠다.

『을남 언니,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영자 언니가 어떻게 살아 가느냐니깐.』

하고 금봉은 을남이가 제게 관한 무슨 생각을 하는가 보아서 대답을 재촉하였다. 을남이가 줄곧 금봉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금봉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응, 영자?』

하고 그제야 을남은 몸을 한번 움직이고 나서 빙그레 웃으면서,

『영자 말이지? 그저 그렇게 살아.』

『이제는 쌈도 아니하고?』

『싸움? 싸움을 할 새도 없겠지. 요새는 임은 줄창 시골로 돌아 다니니깐.

강연으로, 지회 설치로, 또 싸움 말리기로.』

『그럼 영자 언니는 더 짜증을 낼걸. 동부인해서 다니지.』

『하하, 동부인을 어떻게 해!』

하고 그제야 을남은 전과 같이 쾌활한 기분을 회복하고 말문도 열린다.

『또 우리 오빠가 그러는데, 임이 이제는 곧잘 아내 조종술을 아는 모양이라고. 혹시 집에서 만나면 매우 원만해 보이더라고. 그러길래 내가 오빠더러 아내 조종술이란 무엇이오, 여자를 모욕하는 말이 아니오, 하고 대들었더니 오빠 대답이 장관이겠지. 무어라는고 하니, 여자 조종술이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그저 고양이 달래듯만 하면 된다고 그러겠지. 그게 무슨 소리오, 하고 내가 골을 냈지. 그러니깐 이 양반 수작 보아요. 고양이란 대단히 독하고 패랫궂은 즘생이 되어서 맞서기만 하면 앙앙거리고 할퀴지마는 먹을 것이나 잘 주고 속으로는 밉더라도 슬슬 쓸어만 주면 좋아하는 법이라고 여자도 그러니라고 . . 더구나 요새 학교 깨나 다닌 계집애란 더욱 그러니라고, 글쎄 그런단 말이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오빠는 남자 조종술은 아우, 그랬지. 그러니깐, 오빠 말이 그럼 몰라? 그러길래 무예요?

어디 아시나 봅시다, 그러니깐 오빠 말이, 사내야 여자들헌테 칭찬만 받고,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해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고 제게 의논하는 모양만 보이면 죽을지 살지 모르고 허겁지겁하느니라고. 사내란 여편네가 우거지 오만상을 해가지고 찌드럭거리고 앙절대면 앙절거릴수록 짓밟아 줄 생각이 나는 법이라고. 그래서 영자더러도 그런 비결을 일러 주었건마는 그것이 원 체 도고해서 잘 안 듣는 모양이지마는, 학재는 그래도 알아 들은 모양이더라고. 그리고는 말야, 오빠가 또 하는 말이, 학재가 아직 여편네 조종술에는 초대가 되어서 여자를 자기와 평등으로만 여기고 진리니 의리니 하고 이론을 캐는 모양이라고. 여자란 희랍 사람 문자로 이성은 없는 동물이니깐 진리니 의리니 하는 것은 여자에게는 당치도 않은 이론이라고, 그러니깐 여편네 조종하는 법이 그저 고양이 달래듯 귀애 주거나 그렇게 아니하면 고양이 얼르듯 얼러 주거나 두 가지 길 밖에 없느니라고. 그런데 학재더러 그 말을 했더니 학재가 픽픽 웃기만 하는 모양이지마는 결국은 내 말이 진리로 고나 하는 것을 터득할 날이 있으리라고, 이렇게 뽐낸단 말야. 그러니 내가 가만 있겠어? 그래서…』

하고 을남은 픽 웃고 잠간 쉬인다.

『그래서?』

하고 금봉도 이 불의의 방문객을 만날 적보다 불안도 부끄러움도 다 일소해 버리고 가벼운, 유쾌한 기분으로 을남의 말을 재촉한다. 정희도 을남의 말을 재미있는 듯이 빙그레 웃고 듣고 앉았다.

『그래 내가 오빠는 어디서 그런 나쁜 계집들만 사귀고 다니셨소,, 왜 여자가 그렇단 말이오, 어디서 켸켸묵은 남존 여비의 사상을 아직도 가지고 다니시오, 하고 항의를 했지. 그랬더니 이것 봐요. 오빠 말이 무에라는고 하니, 그럼 어디 그렇지 아니한 여자를 좀 대보라고, 너 아는 여자에 돈과 사내의 유혹에 줄줄 끌려 다니지 아니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서 정희 하나 밖에 제 정신으로 사는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금봉이도 장래성이 있다고 믿었더니 저 꼴이 되지 않았느냐고, 그리고 숙희 꼴은 무엇이고 네 꼴은 무엇이냐고, 너는 꽨 듯싶으냐고 막 이렇게 나온단 말야. 딴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그렇기도 하거든. 그러니 할 말이 있나? 그래서 그것도 사내들이 악해서 그렇지요, 하고 악을 쓰고 말았지. 숙희도 조 병걸이 때문이 아니오, 오빠는 계집애들을 얼마나 버려 주었소, 막 몰아 셌지. 그러니깐 오빠가 계집년들이 잡아 잡수우 하고 덤비는 것을 가만 두어, 가만 두기로 쓸 계집 되겠기에, 글쎄 이런단 말야. 그런 줄 몰랐더니 오빠가 아주 대단 한 마이서 지니스트란 말야. 여자는 도무지 사람으로 안 알아요.』

하고 말을 끊으며, 내가 너무 오래 말을 『하였어. 금봉이 아직도 신경이 약할 텐데, 안정해야 될걸.』

하고 금봉의 이마를 한번 만져 보고는 일어선다. 금봉의 이마에는 촉촉히 땀이 났다. 금봉이는 장래를 믿었더니 그 꼴이라는 말이 대단히 금봉을 괴롭게 한 것이었다.

『정희 언니도 숙희 언니 보러 오셨소?』

하고 금봉은 정희를 바라본다.

『아니, 나는 다른 이 위문이야.』

하고 정희도 일어선다.

『다른 이 누구?』

하고 금봉은 두 사람을 잠시라도 더 붙들려는 듯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묻는다.

『우리 선생님인데, 저 불란서 수녀야. 자느라는 한 오십 된 인데 맹장염으로 입원한 지가 한 사오일 되었어요.』

수녀라는 말에 금봉은 자기더러 수녀가 되라던 인현을 생각하였다.

『수녀면 아직도 처녀겠지?』

『그럼, 수녀는 다 처녀지.』

금봉은 그 오십이 되도록 처녀로 수도한다는 자느 수녀를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났으나 더 말하지는 아니하고 을남을 향하여,

『숙희 언니는 그래 대단치는 않소?』

하고 말끝을 돌린다.

『그럼, 이제는 죽지는 않는대. 아직도 출혈은 이따금 되지마는, 그 많은 욕설과 고생은 누구를 주고 죽어?』

하고 을남은 픽 웃는다.

『그래 조병걸씨는 와 보아요?』

『그럼. 아까도 와 앉았던데. 그 군이 오길래 내가 비켰는데.』

『어떡헐 작정인고?』

하고 금봉이가 양미간을 찌푸린다.

『무얼 어떻게 해?』

하고 을남은 경멸하는 듯이,

『이제 숙희가 추서면 또 아이를 배고 그리고는 또 떼고 그럴 테지. 숙희 도 김 애도가 다 되었어요. 애도가 아이를 다섯을 떼지 않았나베. ○○동네 처녀 애떼기 전문하는 의사가 다 있는걸. 숙희도 그녀석헌테 걸려서 경을 쳤지마는.』

『이제는 그 노릇 좀 그만두지 무어 그리 좋은 게라고 애만 낳아.』

하고 금봉은 정희를 보며,

『정희 언니, 나 같은 건 시집도 가고 애도 낳고 했으니깐 수녀도 못되지?』

하고 묻는다.

『처녀 아니고는 수녀가 못된다면서?』

하고 을남이가 정희를 바라본다.

정희는 빙그레 웃을 뿐이요 대답은 없다.

밖에서 퉁퉁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간호부가 문을 와락 열고 들어 오면서,

『과장 선생 회진이야요.』

하고 을 남과 정희를 훑어 본다.

금봉이가 어린애를 낳은 지 열흘째 되던 날 마침 찾아온 광진을 보고 금봉은,

『어린애는 이름도 짓고 출생 신고도 해야 아니해요?』

하고 그 마음을 떠보았다. 분명히 제 아들로 입적을 시키려는가 어떤가를 알자는 것이었다.

『그거 그리 바쁜가?』

하고 광진은 머리를 빗고 앉았는 금봉을 탐나는 듯이 바라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어서 몸이나 추설 도리를 해야지. 유모도 하나 좋은 것이 있다고 해서 데불러 갔으니 아무 걱정 말고 몸 생각이나 해.』

하고는 또 어린애를 들여다 본다. 광진은 어린애의 얼굴에서 저와 닮은 곳을 찾으려고 눈이며, 코며, 입 모습이며, 귀바퀴며, 유심히 들여다 본다.

아직 갓난이를 보기에 눈이 익지 아니한 광진은 어린애 얼굴이 모두 그럴 듯도 하고 안 그럴 듯도 해서 과연 저를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이 아이가 난 지 며칠짼 줄 아시우?』

하고 금봉은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여서 광진의 속을 알려 한다.

『며칠 되었나?』

하고 광진은 정말 몰라서 묻는 것도 같고 또는 알고도 그러는 것도 같이 한 마디 되묻고는 제 생각을 계속한다.

그 생각이란, 〈이것이 과연 내 아들일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선이는 분명 나를 닮았는데.〉 하고 광진은 이 어린애가 제 씨라는 것을 믿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어찌 아나?〉 하고 광진이가 믿으려고 할수록 의심이 들어 온다. 삼청동에 온 뒤에 맨 아 이라면 믿을 수도 있지마는 인사동에서 밴 것이고 보니 믿을 만한 근거가 심히 박약하였다.

광진은 영국 있을 때에 읽은 메러디드의 소설이 생각났다. 아비란 제 자식의 진부를 알 힘이 없다는, 어미의 비밀은 오직 어미만이 안다는. 그리고 심 상태가 금봉이 집에 다니던 것을 아는 광진에게는 더욱 의심이 나지 아 니할 수 없었다.

〈이것을 입적을 시켰다가 내 자식이 아닌 것이 판명이 된다면……〉하는 의문은 금봉이 해산한 날부터 광진을 괴롭게 한 문제였다. 광진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의견도 지금 광진의 처가 태중에 있으니 그 아이가 낳기를 기다려서 만일 그 아이가 사내면 그 아이를 장자로 하고, 또 그때가 되면 금봉의 몸에서 낳은 아이도 백날이나 되어서 얼굴 모습이나 울음 소리도 알아 보게 될 것이니, 그때를 기다려서 입적을 시키는 것이 좋겠고, 또 광진의 처가 낳는 아이가 계집애고 보면 다시는 생산하기를 바랄 수 없으니 금봉의 몸에서 낳은 아이를 장자로 입적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광진아, 그래 너는 확실히 믿니?』

하고 일전에도 광진의 어머니는 또 밤낮하던 말을 물었다.

『무얼 믿느냐 그러시오?』

하고 광진이가 약간 귀찮은 빛을 보일 때에, 그 어머니는,

『얘야, 그런 계집을 어떻게 믿니? 제 본남편 두고 딴 사내의 애 낳는 계집을 어떻게 믿느냐 말이다. 그러니깐 그 애가 꼭 네나 우리 집안 모습을 닮은 데나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아니하면 그게 누구 자식인 줄 알고 입적을 시킨단 말이야. 옛날 같으면……』

하고 양반의 가문에서 그런 천한 계집의 몸에서 낳은 자식에게 봉제사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을 한바탕 푸념하려 할 때에 광진은,

『그러기에 어머님 말씀대로 그 애가 백일이 되거든 입적을 시킨다는데 왜 성화십니까?』

하고 불쾌하게 대답한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였다.

금봉은 금봉이대로,

『오늘이 열흘이야요, 열흘 안에 출생 신고를 아니하면 벌을 받는다던데 요.』

하고 정선을 낳았을 때에 손명규가 하던 말을 생각한다.

『글쎄 염려 말라니까.』

하고 광진은 어린애의 얼굴 연구를 쉬지 아니한다.

『그렇게 당신네 집 호적에 넣기가 싫거든 그만두세요.』

하고 금봉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틀고 나서 화를 내고 일어나서 어린애 누인 침대를 광진의 앞에서 와락 잡아 다니며,

『나 같은 천한 계집이 낳은 새끼를 어떻게 양반 댁 호적에 넣겠어요? 내가 내 마음대로 기르기나 남을 주거나 엎어 놓아서 죽여 버리거나 내 마음대로 하지요. 오죽한 것이 내 몸에 태어날라고.』

하고 침대를 밀어다가 저쪽 벽에 탁 부딪친다. 잠들었던 아이가 깜짝 놀라서 바람이 날 듯이 울기를 시작한다.

『글쎄 왜 이 모양이야? 그런 말법이 어디 있어?』

하고 광진이가 분개한 듯이 벌떡 일어난다.

『양반 집에서나 말법을 찾지 나 같은 천한 상년이 말법이 무슨 말법이오?』

하고 금봉은 우는 어린애를 들여다보며 운다.

『어, 그럴께 아니라니까.』

하고 광진은 금봉의 어깨를 만지며,

『누가 입적을 안 시킨다나? 집안 사정이 있으니까 내게 다 맡기고 좀 기다리란 말야. 어서 어린애 젖이나 좀 물려요, 우는데 그러네.』

하고 금봉을 무마하려 한다.

『울어라. 어서 울어서 울다가 죽어 버려. 난 지가 십여 일이 되니 들여다 보는 사람이 있나, 이름 짓고 출생신고하여 줄 아비가 있나, 그런 것이 살면 무엇해!』

하면서도 우는 것이 가여운 생각이 나서 아이를 치어 들어서 젖꼭지를 물리면서,

『어서 가세요. 다시는 오지도 마세요. 나는 나대로 있다가 아무 데로나가버릴 테니. 삼청동 집으로 나가려니 생각도 마셔요. 이제는 그 더러운 죄의 생활을 다 청산해 버립시다. 당신도 당신 부인이나 사랑하시고 남의 계집 아예 건드리지 마시오. 나도 이제는 속할 때가 되었어요. 어서 가세요.』

하고 곁방에서 들릴이만큼 악을 쓴다.

『응, 쯔쯔.』

하고 광진은 괴로운 듯이 병실 안으로 왔다 갔다하면서 금봉의 말을 듣다가 우뚝 서서,

『글쎄,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죄는 무슨 죄고 가기는 어디로 간단 말이야?』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유부녀 통간해서 자식을 둘씩 낳았으니, 그만해도 당신네 양반 집안에서는 죄로 안 아시오?』

하고 금봉은 광진을 향하고 눈을 딱 바로 뜬다.

『넌센스! 그게 원 무슨 소리야.』

하고 광진은 고개를 흔든다.

『넌센스? 내 말이 넌센스요? 흥, 딴은 당신은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른다고 하였겠다. 그래도 당신도 아아, 죄로고나, 내가 천벌을 받는고나, 하고 가슴을 칠 날이 있으리다. 응! 나를 이 꼴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죄 없는 핏덩이까지 부접할 곳이 없이 스러지게 하고도 천벌이 없을 줄 아시오? 어디 두고 보시오. 오늘 해가 다 가기 전에 당신이 끔찍끔찍한 꼴을 보고야 말 테니!』

하고 금봉은 이를 득 갈았다.

금봉의 이 말에 광진은 전신에 쪽 소름이 끼쳤다. 금봉의 말 속에는 무슨 피비릿내 나는 무서운 것이 있었다.

광진은 말 없이 물끄러미 금봉을 바라보다가 금봉의 입술이 파랗게 되고 얼굴의 근육이 매섭게 긴장된 것이 보였다.

광진은 겁이 났다. 그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여보, 나를 믿으우, 나를 믿어요. 이 어린애가 내 혈육이 분명한데, 애비 된 내가 작히나 다 알아서 하겠소? 나를 믿어. 그리고 그런 독한 생각은 애여 마우. 그렇게 신경이 흥분하면 몸에 해로워. 아직 가만히 누워서 정양 할 땐데. 애여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나만 믿어요.』

하고, 아무리하여서라도, 거짓말을 하여서라도 당장은 모면할 필요를 느꼈다.

『난 벌써 이럴 줄을 다 알고 혼자 결심한 것이 있어.』

하고 금봉은 잠도 채 들지 아니한 아이를 고이 자리에 누이고 나서,

『난 내 결심이 있으니깐 나는 걱정 마시고 어서 가세요.』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가 버리고 만다.

금봉이가 독한 말을 쏘고 뛰어 나가는 뒷모양을 보고 광진은 병실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눈쌀을 찌푸리고 입맛을 다셨다.

〈배우지 못한 계집이! 천한 집에서 자란 계집이!〉 하고 광진은 자기의 아내와 금봉을 비교해 보았다. 자기의 아내는 이런 경우를 당하더라도 결코 그런 불공한 말을 할 것 같지 아니하였다. 욕설을 하거나 때리기나 짓밟거나 아무러한 감정도 표하지 아니하고 어디까지든지 참 고 예절을 지키는 자기 아내, 그의 입에서는 일찌기 이렇게 뽀롱뽀롱한 반항하는 말이 나온 일이 없었다.

〈응, 그런 말법이 어디 있어?〉 하고 광진은 한번 더 금봉을 미워하여 보았다.

『그렇지만 자식을 낳은 지 열흘이 되어도 이름 지어줄 아비도 없고.』

하던 금봉의 말에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유부녀를 통간하여 자식을 둘씩 낳게 하고도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느냔 말은 광진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인 것 같았다.

〈고약한 년의 입버릇이로군!〉 하고 금봉을 미워하는 생각을 억지로 더 내이려 하였다.

그러나 금봉의 아름다움은 이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삭이 된 때에 보기 흉하던 금봉의 몸이 이제는 비록 수척은 하였지마는 본디 모양을 가지게 되고, 또 수척한 모양에는 다른 때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이것은 그의 본아내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내 아들, 「 」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그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인력을 발하였다.

「그것이 정말 내 아들일까?」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래도 그것이 이 세상에 나온 뒤로는 잠시도 잊어 지지 않는 존재였다.

〈파아더널 인스팅크트(어버이 본능)로고나!〉 하고 광진은 영어로 생각하였다. 만일 이 어린애가 백날이 되어서 제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기만 하면 더욱 귀여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광진은 침대 위에 누워 자는 어린애를 한번 안아 볼까 하고 침대 곁으로 갔다가 편안히 자는 것을 놀라게 할까 봐서 겁이 나서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었다.

아까 금봉이가 하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 말은 어린애를 데리고 어디로 달아난다는 뜻 같기도, 하고 어린애를 안고 어디 가서 죽겠다는 뜻 같기도 하였다. 그것은 안될 말이었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금봉을 무마하지 아니하 면 아니 되겠고, 또 그리고도금봉의 행동을 감시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 다고 생각하였다.

금봉은 어디를 갔는지 꽤 오래 되어도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광진은 기다리다 못하여 「쯔끼소이」를 불러서 찾아 보라 하였다.

이때에 금봉은 숙희 방에 가 있었다. 오늘 처음 일어나 앉아서 머리를 빗고 숙희를 찾아 보려 하던 끝에 마침 광진에게 대한 분풀이 겸 아무 말도 없이 숙희를 찾은 것이었다. 마침 숙희 방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다행히 여겨서,

『언니!』

하고 부르며 금봉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에 숙희는 너무 억해서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언니 좀 어떠우? 난 오늘이야 일어났어.』

하고 금봉이가 숙희의 머리를 만질 때에야 숙희는 금봉의 손을 덥석 잡고 울었다. 숙희는 아직 열이 있었다. 머리는 흐트러지고 부석부석했던 것조차 다 내려서 눈은 움쑥 들어 가고 관골까지도 두드러졌다. 본디 숙희가 미인은 아니었지마는, 푹실푹실한 맛까지 없어져서 아주 보기 흉하게 되었다.

금봉은 그래도 제 얼굴이 아직 숙희 얼굴보다는 나은 모양으로 제 신세도 숙희 신세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금봉이, 고마워. 내가 무슨 낯으로 금봉이를 보아.』

하고 숙희는 수건으로 눈물 콧물을 씻으면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나는 언니보다도 더하지.』

하고 금봉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금봉이는 자식은 안 죽였지.』

하고 숙희는 다시 울기를 시작하며,

『퍼떡퍼떡하는 것을 내 손으로 죽였으니. 나 같은 이 죄 많은 년이 천하에 어디 있어 자꾸만 ? 꿈에 보이는구먼. 퍼떡퍼떡, 씰룩씰룩 노는 피 묻은 그 모양이 눈만 감으면 보이는구먼.』

하고 몸을 흔든다.

『무얼 그러우?』

하고 금봉은 수건으로 숙희의 눈물을 씻어 주며,

『이왕 그렇게 된 것을 생각하면 무엇해? 새로 살아 나아갈 길이나 생각하셔야지. 자꾸 그런 생각만 하시면 병이 낫수?』

하고 측은한 빛을 보이면, 숙희는 더욱 반가운 듯이 금봉의 손을 만지면서,

『새로 살아 나아갈 길? 내게는 이제는 새로, 새로 살아 나아갈 길이 없어요. 나는 이대로 얼마 동안 더 벌을 받다가 지옥으로 들어 가는 길 밖에 없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지도 않고. 설사 살아나기로니 이 쓰라린 기억을 품고 어떻게 살아? 자, 보아요, 지금도 이렇게 눈앞에 그 핏덩어리 모양이 어른거리는걸. 한번 울어도 못보고 엄마라고 불러도 못 보고 픽픽 퍼떡퍼떡하다가 죽어 버린 그 모양이. 아이, 무서워! 아이, 무서워!』

하고 두 손으로 제 낯을 가리어 버린다.

〈정신에 이상이 생겼나?〉 하고 금봉은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언니, 세상에는 그런 일을 하고도 사는 사람이 많은데.』

하고 금봉은 아무렇게 하여서라도 숙희의 마음을 좀 안정시켜 보려고 말을 생각하여 가며,

『그게 죄라 하더라도말야, 우리네 연약한 사람이 할 길이야 뉘우치는 것 밖에 더 있소? 죄를 짓고는 뉘우치고 짓고는 뉘우치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 이 아니오? 그 밖에 무슨 길이 있나? 없지.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어디 있소? 짓고는 뉘우치면 그만이지. 다시는 아니 그러겠다 하고 맹세하고 힘써 가며 살 수밖에 어떡허오? 언니가 그것을 큰 죄로 아시거든 얼른 건강을 회복하셔서 그 죄를 속할 만한 좋은 일을 하시구려. 이렇게 밤낮 울고만 있 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자, 언니 그만 울어요. 언니나 내나 다같이 불행한 죄인들이니 우리 이 앞으로는 서로 붙들고 서로 도와서 새로운 길을 걸어 보아요. 응, 언니 그래요. 정 괴롭거든 기도를 하시구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시구려.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즐겨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안 그랬어? 아서요. 그렇게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아요. 응, 언니.』하고 다짐을 받으려는 듯이 그 손을 잡아 흔든다. 핏기 없이 싸늘한 그 손끝은 마치 죽은 사람의 손을 만지는 것 같았다.

『고마워. 금봉이, 고마워. 금봉이 말은 금봉이 손과 같이 그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워. 나 같은 것은 이런 고생을 해서 싸지마는 금봉이같이 이렇게 보드랍고 향기로운 영혼이 어찌해서 그런 고생을 할까?』

하고 숙희는 금봉의 말에 얼마쯤 안위를 받은 듯이 금봉에게 동정하는 뜻을 표한다. 사실상 금봉의 말에는 숙희의 아픈 혼을 유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마치 불에 데어서 쪼이는 살에 기름을 바른 듯하였다.

금봉이가 바로 숙희의 방에서 나가려고 숙희의 손을 잡을 때에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그것은 학재였다.

학재는 금봉을 보고 잠간 주춤하였다. 금봉은 낯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금봉은 가슴이 설레어서 인사할 경황도 없을 때에 학재가 먼저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였다. 금봉은 마치 사 년 전 처녀 시대에 돌아 간 것같이 수줍어졌다. 학재는 코 밑에 조금 수염을 붙였다.

학재는 삼 주일 동안이나 삼남 지방으로 순회하다가 오늘 아침에 돌아 와서 처음으로 누이를 찾은 것이었다. 숙희는 두 손으로 낯을 싸고,

『오빠, 오시지 마셔요. 뵈올 면목이 없어요.』

하고 울었다.

『그런 소리 말어!』

하고 학재는 힘있게 숙희를 책망하고 머리를 만져 보면서,

『아직 신열이 있고나.』

하고 동생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오빠, 면목이 없어요.』

하고 숙희는 입술을 문다.

『그런 생각 말어. 연약한 사람에게 허하여진 힘은 회개다. 면목이 없거든 앞으로 고칠 생각이나 하고 쓸데없이 괴로워 말어. 괴로움은 마귀의 일이 다. 회개와 기도로 하나님께 새 은혜를 구하여라.』

하고 금봉을 돌아 보았다.

학재가 저를 돌아 보는 것이 이것은 네게도 하는 말이 다 하는 것같이 금봉에게는 생각혔다. 금봉은 고개를 푹 수그려 버리고 말았다. 금봉은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이 옳은 줄을 알면서도 발이 방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일생에 떠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학재의 뒷 모양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그자리에서 영원히 떠나고 싶지를 아니하였다. 더구나 이제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학재, 천리 만리 갈수록 멀어지는 듯한 학재, 멀어질수록 더욱더욱 그리워지는 학재,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못 만날 듯도 한 학재라 하면 인사 체면 불구하고 달려들어 어깨에 늘어진 채 그만 죽어 버리고도 싶었다. 이제는 학재는 그저 깨끗하기만 하 면 젊은 학생이 아니요, 온 조선이 다 아는 청년 운동가다.

그의 몸이 부대해진 것은 없으나 천근 무게가 있을 듯이 틀 지고 그 얼굴에는 세상 풍파를 많이 겪은 듯한 노성한 빛이 있었다.

이런 모든 것은 금봉에게는 새로 보는 힘이었다. 김광진의 아무 알멩이는 없이 번지르르하게 발라맞추는 것으로만 일생을 삼는 사내만 바라보던 금봉의 눈에는 학재의 주의와 신앙과 분투와 극기와 자기 희생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한없이 그리웠다.

『오빠, 언제 오셨어요?』

하고 숙희가 물을 때에 학재는,

『아침 차에 왔어.』

하고는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눈을 감았다.

『언니, 잘 있어요?』

언니라 함은 영자 말이다. 영자는 남이 부끄럽다 하여 한번도 숙희를 찾지 아니하였다.

『계집애가 애를 배어서 그것을 떼다가 입원한 사람을 남이 부끄러워서 어떻게 찾아 다녀.』

하더라고 을남이가 와서 숙희에게 일러 바쳤다.

『별일 없어?』

하고는 학재는 화두를 돌리려는 듯이,

『병원비는 어찌되었느냐. 얼마나 밀렸어?』

『십 일분은 내구 그 나머지허구 수술비허구 남았지요.』

『그럼, 모두 얼마나 돼?』

『병원비는 걱정 마세요.』

『누가 걱정허구?』

학재의 이 말에 숙희는 말문이 막혀서 눈만 끔쩍거리다가,

『조가 내요.』

하고는 눈을 감아 버린다.

『아직도 조허구 불의의 관계를 계속할 작정이냐?』

하는 학재의 어성은 날카로왔다.

숙희는 말이 없었다.

학재는 명령하는 어조로,

『그것은 안될 말이다. 내가 여기 돈 백원을 구해 가지고 왔으니 이것으로 병원비를 물고 조군헌테는 한푼도 받지 말어. 조군이 찾아 오더라도 만나지도 말고. 회개란 지금까지 잘못한 것을 칼로 끊어 버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조군허구는 일체 교제를 끊고 새 사람이 될 각오를 하여라. 아직 늦지 않았어.』

하고 양복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십원짜리 열 장을 내어서 숙희의 베개 밑에 밀어 넣는다.

『오빠가 웬 돈이 있어요?』

하는 숙희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난 회 시간이 있어서 가겠다. 내 말대로 회개와 기도의 생활을 하고 조 군과는 단연히 관계를 끊어 버린다는 대답을 해라.』

하고 학재는 울음을 참는 사람같이 얼굴을 씰룩씰룩하였다. 숙희는 오빠의 그 비통한 표정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 비통한 표정이 말로 번역하면 몇 천만 마딘지 모를 것 같았다.

『오빠, 용서하셔요.』

하고 숙희는 다시 울먹울먹하였다.

그런 말이 다 쓸데 『 있니? 네가 앞으로 똑바른 길을 힘있게 걸어 나가기만 하면야 세상이 너를 용서만 해? 숭배하겐들 안되랴. 진창에 빠진 사람이 할 첫일은 진창에서 나와서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몸을 씻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어서 진창에서 나오란 말이다.』

『오빠, 나는 살아 날 것 같지도 않고 또 살아 나고 싶지 않아요. 내게는 도무지 희망이 없어요. 오빠, 이 동생을 잊어 버려 주셔요.』

하고 숙희는 느껴 울었다.

이러할 적에 「쯔끼소이」가 어떻게 알았던지 숙희 방에 금봉을 찾아 와서,

『애기 아버니께서 여쭈세요.』

하고 금봉을 불렀다.

금봉은 학재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할 때에 학재가,

『손 선생 돌아 오셨어요?』

하고 놀라는 듯이 물었다.

금봉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네? 아니오.』

하고 병실에서 나와 버렸다.

학재는 나중에 숙희한테서 금봉이가 김광진의 아들을 낳아 놓았다는 말을 듣고 말 없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학재에게는 금봉은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였다. 영자와의 혼인 생활이 너무도 공허함을 느낄수록 금봉의 그림자는 자주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 금봉이가 갈수록 부정한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 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학재는 만일 금봉이가 자기와 함께 되었던들 일없이 행복되게 살았으리라고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 뒤미쳐서는, 〈아아, 나는 이런 생각을 하여서는 안된다.〉 하고 꾹꾹 눌러 버렸다. 그러나 그 생각은 누르면 눌러는지지마는 아주 뿌리를 빼어 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학재는 이 스러지지 않는 금봉의 그림자에 일종의 무서움을 느꼈다.

광진은 금봉이가 돌아 오는 것을 보고 아주 다정하게 유쾌하게 위로하는 말을 주었다. 그리고 은행 시간이 끝나거든 또 찾아 올 것까지 약속하였다.

과연 그날 오후에 광진이 정선을 안고 금봉을 찾아 왔다. 금봉이가 창밖에 펄펄 날리는 사꾸라를 바라보고 앉았을 때에,

『엄마!』

하고 정선이가 광진의 품에서 내려서 통통통 금봉에게로 달려 왔다.

금봉은 반가운 김에 정선을 껴안았다. 그런 뒤에는 정선이가 새로 이 발을 하고 초록 외투에 분홍 하부다이 양복을 입고 새 스토킹에, 새 구두에, 일습을 새로 차린 것이 눈에 띄었다. 딸이 예쁜 새 옷을 얻어 입은 것은 어미의 마음에 가장 기쁜 것이었다.

『이 꼬까 누가 사주셨니?』

하고 금봉은 새로 가뜬히 자른 딸의 머리를 만지면서 아니 물을 수 없었다.

정선은 한 손가락을 입에다 물고 말하기는 어려운 듯이 몸을 비꼬면서 광진을 바라보았다. 요새에는 정선이가 광진이더러 「아저씨」라는 말을 아니 하게 되었다. 어린 그도 광진이가 아저씨만은 아닌 것을 알아 차린 모양이요, 그렇다고 달리 무엇이라고 부를 이름도 없어서 광진을 지명할 일이 있으면 다만 치어다만 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미쳐 볼 새도 없을이만큼 빠르게 손가락질을 할 뿐이었다. 이번에도 옷을 사주고 이발을 시켜 준 것이 광진 이라는 것을 표하기 위하여 정선은 구두 신은 발을 들어 보고는 광진을 바라보고 머리를 만져 보고는 광진을 바라보았다. 광진은 그 모양이 귀여워서 웃기만 하지마는, 금봉은 그것이 가슴을 어이는 듯이 슬펐다. 더구나 광진 과 정선을 함께 놓고 볼 때에 어찌도 그렇게도 닮았을까, 하면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때는 슬픈 빛을 보일 때가 아니라 하고 금봉은 웃음을 지으며,

『누가 고르셨길래 이렇게 꼭 맞아요.』

하고 정선의 옷의 품과 기장을 한번씩 잡아 당기어 본다.

『내 누이가 골랐지. 외투는 누이가 사주고.』

하고 광진도 만족한 듯이 대답하였다. 외투라는 말에 정선은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그 속에서 꽃놓은 콧수건과 「미루꾸」갑을 꺼내었다.

금봉은 속으로, 〈이를테면 고모님이로구나!〉 하고 입이 썼다. 그리고 광진이가 누이 혼례식하던 때를 생각하고, 어찌해서 광진이가 누이를 데리고 정선이 양복을 사러를 갔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누이가 어린애를 본다고 병원까지 왔다가 다음번에 본다고 갔지.』

하고 광진은 정선을 바라보았다.

『나 아주머니가 안구, 뚜뚜 타구, 응응, 또, 응, 과자랑 따랑 사먹구우 왔어어.』

하고 정선은 자랑을 하였다.

금봉에게는 광진의 의사가 대강 짐작되었다. 이번에 낳은 아이가 제 씨가 분명하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선 제 누이에게 정선의 선을 보인 것이었다. 이것이 금봉에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마는, 그래도 광진의 성의만은 인정되어서 기뻤다.

그래서 어린애 이름을 짓는 것이나 출생 신고를 하는 것이나 다 광진에게 맡겨 버리고 금봉은 가만히 있기로 마음을 작정하였다.

금봉은 병원에서 이 주일을 지내어서 삼청동 집으로 돌아 와서 전과 같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유모도 젊고 깨끗한 사람 하나가 오고 광진도 자주 와서 잤다.

세 이레가 지내어도 어린애의 이름을 짓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제 마음대로 이 어린애를 아담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아비가 없다는 뜻이었다. 어린 애는 투실투실하고 예뻤다.

백날을 며칠 안남긴 어떤 날 광진은,

『집에서 어른들이 이 애를 좀 보자고 하시는데……』

하는 말을 비추이고 은행으로 간 지 얼마 아니하여서 가회동에서 과연 인력거와 사람이 왔다. 대감과 정경 부인께서 애기를 보고 싶으니 보내시라고, 그동안에도 보고 싶었지마는 소중한 애기가 감기가 들까 보아서 날이 더워지기를 기다리신 것이라고, 애기를 유모에게 안겨서 바람 안 쏘이도록 푹 싸서 인력거를 태워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금봉은 한편으로는, 옳지 이제는 되었고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던 어린것을 비록 잠시라도 내어 놓기가 섬뜨레하였지마는 아니 보낼 수도 없어서 물을 끓여서 목욕을 시키고 머리까지 말짱히 감기고 전신에 향기로운 분을 바르고 새 옷을 갈아 입혀서, 〈이만하면 누가 본들 잘난 아이라고 아니하랴?〉 하고 만족과 자랑을 느끼면서 그대로 유모에게 내어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서 젖을 물리고 차마 놓지 못하였다.

떼어 버리려고까지 하던 원수의 아이언마는 낳아 놓고 보면 세상에 제일 귀여운 것이었다. 벙싯벙싯 웃는 양이 나 팔다리를 가둥가둥하는 양이나 보드라운 그 입이 젖꼭지를 무는 양이나 모두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아담아, 할아버지 할머니 가 뵙고 칭찬 많이 듣고 와!』

하고 금봉은 다시금 어린애를 들여다 보고 입을 맞추고 뺨을 대고 껴안고 하다가 마침내 유모에게 안겨서 인력거를 태워 보냈다.

아담이를 보내고 나니 금봉은 정신을 잃은 것같이 텅비인 것을 깨달았다.

대문으로 뛰어 나가서 아담이가 타고 가는 인력거를 바라보려 하였으나 벌써 모퉁이를 돌아서 보이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눈에 뜨거운 눈물이 그득하여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정선이가 동생헌테 빼앗겼던 어머니를 독차지하게 된 것이 기뻐서,

『엄마!』

하고 금봉에게 매어 달렸다. 금봉은 오래간만에 정선을 안아 주었다. 정선은 만족한 듯이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한손으로는 다른 젖꼭지를 만적거리고 한손으로는 엄마의 등을 또닥거렸다. 그립던 어머니를 오늘이야 만났구나 하는 듯하였다.

금봉은 정선의 나풀나풀한 머리를 만져 주고 포근포근한 볼기짝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어미를 그리워하는 딸의 정경에 눈물이 흘렀다.

젖먹이를 잃은 금봉은 마음을 붙일 곳이 없어서,

『어째 아직도 우리 아담이가 안 올까?』

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렇게 수이 보내시겠어요?』

하고 할멈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금봉은 장고 뒤져서 여름살이도 만져 보고 피아노도 닦아 보고 다락 세간도 뒤져 보고 아담이의 기저귀도 개어 보았다.

『네시를 치는데.』

하고 금봉은 아담이가 벗어 놓은 옷을 코에 대고 그 젖내 섞인 살내 ─ 어머니만이 아는 그 자식 냄새를 맡았다.

불현듯 상해로 갔다가 향항을 거쳐서 남양으로 간다던 남편 생각이 나고, 황씨와 함께 태허 법사를 따라 간 뒤에 소식이 망연한 오빠인현의 생각도 났다. 다들 어떻게나 되었는지, 하고 금봉은 무릎 위에 빨래를 올려 놓은 채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나긴 여름날이다. 저물도록 가회동 간 아담이는 돌아오지를 아니하였다.

금봉은 저녁도 먹을 생각이 없이 여러 가지로 아담에게 관한 걱정을 하였다. 밤이 깊어도 광진도 오지 아니하고 천둥이 일어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금봉은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졸임으로 빗소리를 들으면서 밤을 새웠다.

이날 밤에 가희동 광진의 집에서도 밤을 새워 가면서 웅성거렸다. 그것은 광진의 처가 애기를 비릇은 까닭이었다.

광진의 처 홍씨는 아침도 먹는 듯 마는 듯 배가 아프단 말을 시어머니에게 보고하였다. 시어머니는 이 말을 대감께 보고하여 대감이 안으로 들어 와서 내외가 며느리 해산시킬 공론을 하고 일변 성북동에 전화를 걸어서 광진을 불렀다.

이렇게 온 집안이 의논하고 연구한 결과로 금봉이가 낳은 아들을 급작스러 이 데려 오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만일 광진의 처가 딸을 낳으면 아담이를 장자로 입적을 시키고 만일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과 아담이를 쌍태로 출생 신고를 하되 본처의 아들을 장자로 하고 금봉의 몸에 낳은 것을 둘째로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밖에 내어 말은 아니하여도 속에 먹은 뜻이 있으니, 그것은 만일 광진의 처가 죽은 아이를 낳는 경우면 금봉의 몸에서 낳은 것을 광진의 처가 낳은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어떤 걱정을 하게 된 까닭이 있다. 그것은 광진의 처가 두어 달 전부터 발등이 붓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손등과 눈등까지 붓고 무릎 아래는 수종다리같이 부어서 거의 행보를 못할 지경인 때문이었다.

『붓는 게 좋지 않다는데.』

하고 모두들 수군거리게 되고, 홍씨 자신도,

『내가 왜 이렇게 부을까?』

하고 다리를 손가락 끝으로 찔러서 쑥쑥 들어 가는 자리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의사도 매우 염려가 된다는 말을 비치어서 입원하기를 권하고, 광진도 입원설을 주장하였지마는 어디서 들은 말인지 모르나 병원에서 해산을 하면 어린애가 비꼬이는 일이 있다는둥, 쥐한테 자지를 뜯겨서 죽는 일이 있다는 둥, 뭇놈이 들어 와서 보고 만진다는둥, 미역국밥을 못먹어서 젖이 아니 난 다는둥 하고 정경 부인이 듣지를 아니하여 집에서 해산을 하기로 작정이 된 것이었다. 이렇게 작정이 되고는 광진이가 삼청동에 들려서 금봉에게 어린 애를 가희동에 보내라는 말을 이르고 은행으로 간 것이었다.

정경 부인은 일변 사람을 할미당과 절로 보내어서 삼신님과 부처님께 빌게 하고, 일변 방과 마당을 깨끗이 쓸게 하고, 일변 사당을 깨끗이 소재하여 조상님의 돌아 보심을 축원하고, 일변 정경 부인 자신이 하나님도 불러 보고 삼신님도 불러 보고 부처님, 보살님네며 이름 아는 신장님네도 불러 보고, 일변 부엌에 신칙하여 비린 것을 들이지 말라 하고, 또 일변 녹용을 달여서 산모를 먹이게 하고, 또 일변 의사와 산파를 부르고, 또 일변 애기 받이 잘한다는 일갓집 마누라를 부르고 ─ 이 모양으로 좋다는 것은 다 하면서 며느리 방에 들락날락, 이제나 저제나 하고 오래 기다리던 손주새끼가 으아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얘, 삼천동 얘기 아직 안 왔느냐?』

하고 금봉이 집에 사람을 보낸 지가 십 분이 다 되지 못해서부터 정경 부인은 재촉하기를 시작하였다.

『아직 안 오셨어요.』

하고 어떤 하인이 대답하면.

『인력거 보냈지?』

『네에.』

『그, 원, 삼청동이 지척인데 무엇하구 아직도 안 와?』

하고 삼청동에서도 들으라는 듯이 화를 내었다.

시어머니가 삼청동 애기를 기다리는 소리를 듣는 며느리의 마음은 평안할 수가 없었다.

〈아이구, 내가 이 자식을 낳아 보기나 하려나?〉 하고 홍씨는 웬일인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도 뱃속에서 꿈틀하고 다 자란 아이가 노는 것을 느낄 때에는 빙그레하고 웃었다.

〈나는 죽더라도 뱃속의 아이나 나서 살았으면. 이것 아들이나 되었으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다리가 저려요. 허리가 끊어져 오고.』

하고 홍씨는 낯선 젊은 산파더러 하소하였다.

『몇 시간만 참으셔요.』

하고 산파는 동정하는 듯이 홍씨의 다리를 주물렸다. 주무르는 대로 손가락 자국이 났다.

『다리가 이렇게 부었어요.』

하고 홍씨는 산파를 향하여 웃었다.

『네, 좀 부으셨어요.』

하고 산파는 할 말 없는 대답을 한다.

『이렇게 붓는 게 좋지 않다던데.』

하고 홍씨는 제 운명을 한 시각이라도 미리 알아 보려고 애를 쓴다.

『무얼요. 이보다 더 붓는 이도 있는데요.』

하고 산파는 위로를 주려 한다.

『예서 더 부으면 얼마나 부어요.』

하고 홍씨는 소복소복한 제 손등을 본다.

『오줌을 좀 누여 드릴까요?』

하고 산파가 물을 때에 홍씨는,

『마려운 줄 모르겠는데요.』

하고 낯을 붉힌다. 나이 사십이 되었건마는 얌전한 며느리로 살아 온 홍씨는 마치 새색시 같은 수줍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순간만 하시면 부은 것도 다 나리시고 몸이 거뜬해지십니다.』

『글쎄요. 죽지 않고 살아날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애기를 처음 낳으시나요?』

『한 이십 년 전에 하나 낳았다가 잃어 버렸어요.』

하고 희미한 지옥 속에 떠오르는 죽은 아이를 생각한다. 그래도 홍씨의 일 평생에 그것 밖에는 그리운 기억이라고 없었다. 그것이 돌을 바라볼 때에 홍역을 하다가 잘 내뿜지를 못해서 쌔근쌔근하고 젖도 못 빨고 눈을 홉뜨고 하던 생각은 단조한 홍씨의 정신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것이 죽을 적에 시 부모님 앞이라 소리를 내어서울지도 못하던 그 슬픔, 이렇게 눌러진 슬픔이 가슴에 못이 되어서 스러질 날이 없었다.

『그리고는 영 못 낳아 보셨어요?』

하고 산파가 눈을 크게 뜬다.

홍씨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동안 이십 년 가까이 남편은 외국에 가지 아니하면 소박을 하여서 아이 아이를 밸 기회가 없었다. 이 말은 아무에게도 발설할 말이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에 제 속이 어떻게 썩었을까는 오직 천지 신명만 알고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었다.

『아이구 허리가 끊어져 와.』

하고 홍씨는 몸을 비틀고 낯을 찌푸렸다.

『삼청동 애기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이리 데려 와!』

하는 정경 부인의 허겁지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에는 발자국 소리가 많이 들린다.

홍씨는 일어나려다가 도로 눕는다.

어쩌문 『글쎄 이 애기가 이렇게도 서방님을 닮으셨어요?』

하는 간사한 소리가 들린다.

『아이, 잘도 나셨어!』

하는 소리도 들린다.

『아직 졸린 모양이다. 떠들지를 말어!』

하는 정경 부인의 소리도 들린다.

『아이 코가 오똑하시구.』

『또 저 이맛전은……』

『아이 살갗도! 어쩌면 이렇게 옥이실까!』

으아으아하고 우는 소리 들린다.

『저 울음 소리!』

『응, 내 손주가 어련하겠니? 아따, 젖 좀 먹여라. 기저귀 갈구.』

하는 극히 만족하여하는 정경 부인의 소리가 들린다.

〈응, 받아 안았다가 도로 유모에게 주는군.〉 하고 홍씨는 혼자 생각하였다.

산파는 웬일인가, 그것이 웬 아인가 하고 어리둥절하여 일변 안방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변 홍씨의 눈치를 엿보있다.

『이리 온, 애기 데리고 이리 와.』

『네 어미헌테 가거라.』

하는 정경 부인의 거벽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유모가 아담이를 안고 홍씨 방으로 들어 온다. 정경 부인도 뒤따라 와서 며느리를 들여다 보며,

『아가, 네 아들 보아라. 남편의 혈육이니 네 혈육과 꼭같이 생각하는 법 이야.』

하고 생각하는 법을 명령하였다.

시어머니가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며느리는 허리 아픈 것도 잊어 버린 듯이 벌떡 일어났다.

『왜, 일어나느냐. 어서 누워 있거라.』

하고 시어머니는 정답게 말한다. 시집온 지 이십여 년에 일찍 한번도 시어머니 말을 거역해 본 일이 없는 홍씨다. 그래도 시어머니의 본능으로 며느리가 미운 적도 있지마는 속으로는 내 며느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아니치 못하는 그다. 그 며느리가 손자를 낳아 주려고 저처럼 고생을 하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였다.

홍씨는 일어나서 유모가 안고 온 어린애를 받아서 껴안았다. 그리고 귀여 운 듯이 머리를 만지고 볼기짝을 또닥거렸다. 비록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물결을 쳐서 무엇에 놀란 것 모양으로 떨리기까지 하지마는, 그래도 이 아이를 사랑해 줄 의무가 있다고 그는 믿는다. 자기는 어머니요, 이 아이는 아들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제도에 순종하는 것이 일생의 습관이 된 그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일생의 습관이 된 그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마는 그보다도 남의 , 집 장손 며느리로 아들을 못 낳았다는 책임감이 그에게 가장 무섭게 마음을 내려 누르는 점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아들이라고 이름 지을 아들이 생기는 것을 진정으로 기다리지 아니치 못하였다. 아들을 못 낳은 것이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마는, 그래도 남편에게 소박을 맞게 된 것이 제 책임이요, 비록 제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제 전생의 책임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홍씨다. 홍씨는 이러한 옛 조선의 딸들의 덕행을 학자님이라고 존경을 받던 그 아버지와, 현부인이라고 일컬음이 되던 그 어머니에게 배워서 일생을 지켜 온 것이었다. 소학, 효경, 오륜 행실만을 배우고 학교 물을 먹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어린애는 홍씨의 품에 안겨서 낯가림도 아니하고 입을 내어 들어서 젖을 찾았다. 홍씨는 까맣게 된 제 젖꼭지를 한번 물리는 것이 의무인 줄을 생각 하고 손으로 제 젖을 잡아서 어린애에게 물렸다. 어린애는 다리를 버둥거리면서도 좋아라고 그 젖을 빨았다.

『아이, 어쩌면 이 애기가 도무지 다른 사람의 젖은 안 먹는데.』

하고 유모가 아첨 겸 놀라는 빛을 보였다.

『핏줄이 켕긴다는 게야. 어미를 알아 보는 게지.』

하고 정경 부인은 며느리가 하는 일에 크게 만족하였다.

그래서 서성서성하면서,

『다 조상님 덕이요, 또 네 복이지. 이제 네가 아들이나 낳으면 그런 경사가 또 있느냐. 김씨 문중에 꽃이 피는 게다.』

하고 이 빠진 입에 웃음을 가득 담았다.

홍씨는 배 아픈 것을 참다참다 못하여 어린애를 유모에게 주었다.

『어서 드러누워라. 그리고 얘 약 먹어야지. 녹용 달인 것 어찌 되었느냐.

애 낳기에는 젖 먹은 기운까지 다 든다는데 약을 먹고 또 밥도 잘 먹어야 한다.』

하고 정경 부인은 안방으로 가버린다.

산파가,

『어서 드러누우세요.』

하고 홍씨를 안아 누인다. 홍씨는 고통을 참노라고 이마와 콧등에 구슬땀이 맺힌 것을 산파가 가아제 조각으로 씻기며 속으로 홍씨의 참는 힘과 예절다 운 것에 놀랐다.

식전부터 비릇는 아이가 밤이 되어도 나오지 아니하고 산모의 고통만 시각 시각으로 더하였다. 애기가 거꾸로 앉은 것이나 아닌가, 어떠한 것이나 아닌가, 하고 산파가 산모의 정경을 보다 못하여 사랑에 와서 대령하고 있는 는 의사에게 때때로 보고를 하였으나 대김이란 이가 의사더러 들어 가 보라는 말이 내리가 전에는 그리 할 수도 없어서 의사는,

『좀 더 기다려 보오.』

하고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홍씨는 약 달인 것은 먹었으나 점심도 저녁도 뜨는 체 만 체하고는 넘어 가지를 않는다고 먹지를 못하고 밤이 들어서부터 가끔 졸기를 시작하였다.

산모가 꼬박꼬박 조는 것을 보고는 산파는,

『자간!』

하고 혼자 놀래었다. 신장에 고장이 있어서 부은 산모로서 졸아, 이렇게 생각하면 산파는 겁이 났다. 산모가 도무지 겁을 내는 빛도 없고, 괴로와하는 모양도 없고 진통의 발작이 올 때에도 가볍게 「아이구」하는 소리를 내이지마는 그것도 문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리지 않게, 또 입을 꼭 다물고 눈쌀을 찌푸리지마는, 그래도 유심히 보지 아니하면 괴로와하는 줄을 모를이 만큼, 그만큼 밖에 괴로움을 표현하지 아니하고, 괴롭고 아픈 중에서도 손님 앞에 있는 때와 같이 태연하고도 조심성스러운 태도를 읽지 아니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때에 산파는 더욱 산모에게 동정이 가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 산모의 고통의 시간을 줄이고 기다리는 아들을 순순하게 낳도록 하여 주고 싶었다.

밤 열시가 지나도 아이는 아니 나오고 자정이 되어서는 산모는 아주 정신을 잃어 버린 때가 많아지고 그동안도 길어졌다. 산파의 이 보고에 의하여 광진은 의사를 데리고 산길로 들어 왔다. 정경 부인도 왔다. 산모도 혼몽 중에 있어서 전신에 아무 기운도 없었다. 의사는 맥을 보고 눈을 까보고 고개를 흔들고 나서 광진을 보고,

『자간의 염려가 있읍니다.』

하고 통통 부은 다리를 손가락 끝으로 찔러 보이며,

『신장염 기운이 있으니까 염려가 되는군요.』

『 선생님, 잘 순산하게 해주세요. 그 어떻게 소중한 애기라구요.』

하고 산모와 의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네, 제 힘껏은 하지요마는……』

하고 의사는 산모의 배에 귀를 대어 보기도 하고 배를 만져 어린애의 위치를 알아 보기도 한다.

『어린애는 아무 일 없지요?』

하고 정경 부인은 약간 체머리를 흔들면서 보통보다 높은 음성을 내인다.

산모가 한번 길게 한숨을 쉬인다.

의사는 산모의 곁에 꿇어 앉은 대로 고개를 기울이고 잠간 눈을 감는다.

의사가 무슨 하기 어려운 말이 있어하는 눈치를 보고 광진은,

『어머니는 가셔서 주무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드리겠읍니다.』

하고 눈으로 가라는 뜻을 표한다.

『자기는 내가 어떻게 잔단 말이냐. 거, 원, 웬일이냐?』

하고 광진의 어머니는 중얼거리면서 나간다.

『어떻겠어요?』

하고 광진이가 의사의 말이 나오기를 재촉한다.

『기계를 써 보지요.』

하고 의사는 마침내 선언하였다.

『기계를?』

『네, 산모가 이렇게 위험한 상태에 계시니까.』

광진은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다. 아내의 심중을 생각해 본 것이다. 아내가 수십 년 만에 자기와 동침하던 날 아내가 자기에게 울며 하던 말을 광진은 생각한다.

『내 나이 사십이 아닙니까. 아이 하나만 낳게 해 주시면 그후에는 영영 안 돌아 보아도 괜찮아요.』

하던 말.

광진은 아내의 이 말에 터럭끝만한 거짓도 없음을 믿는다.

『기계를 쓰면 어린애가 성할까요?』

하고 광진은 고개를 들어서 의사를 본다.

성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마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읍니 다. 두 생명을 다 건지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면.』

광진은 어린애가 죽고 아내만 살아 날 경우를 생각한다. 그것은 차마 생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에는 아내에게서는 모든 희망의 광명이 다 스러지고 아주 암흑세계가 되고 말 것이다. 다시는 배어 보기도 어려운 아이.

이 정경을 생각하면 광진은 그동안 이 정숙한 아내를 소박한 것이 아프게 뉘우쳐졌다. 아내에게 무슨 허물이 있어서 한 소박은 아니었다. 광진은 아내의 도덕적 완전 ─ 실로 완전에 가까운 덕성을 가진 아내라고 광진은 믿 는다 ─ 아 싫어서 소박한 것인가. 왜 광진은 이 흠할 데 없는 아내를 소박하였나?

『웬일이야. 그렇게 인물 잘나고 맘씨 곱고 공손하고 그런 사람을 왜 광진 이가 싫어할까?』

하는 것은, 광진의 친척은 말할 것도 없고 며느리라면 예쁜 것조차 밉다는 시어머니까지도 노 말하였다. 광진이 자신도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본래 여자를 좋아하는 성질을 가진 광진으로서 한 여편네에게 오래 정을 들일 수가 없는 것도 할 이유요, 말쑥말쑥한 여학생들의 모양이나 기생들의 조발적이요 아양스러운데 마음이 끌린 것도 한 이유요, 구식 교육을 받은 아내의 무변화하여 진력이 나는 것도 한 이유겠지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저 싫은 것이었다. 대하면 싫고 살이 닿으면 싫고, 그저 못 견디게 싫은 것이었다. 대하면 싫고 살이 닿으면 싫고, 그저 못 견디게 싫은 것이었다. 궁합이 안 맞는다거나 인연이 안 맞는다거나 하는 그러한 싫음이 있 다 그러나 이 계집 . 저 계집 여러 가지 여자를 접해 본 광진(광진은 거의 전세계 인류의 여성을 골고루 접해 보았다), 게다가 나이가 사십이 다 된 광진에게는 어느 계집이나 별로 신통한 것은 없는 것 같아서 지금 같았으면 아내를 그처럼 소박하지 않고라도 견딜 것 같았다. 지난 일 년 동안 금봉을 사랑하면서도 그 아내에게 대하여 꽤 많이 애정을 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또 젊었을 때에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무슨 큰일같이 알아서 한 번 잘, 정말, 생명을 바쳐서 사랑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마는, 청춘의 순결함을 잃어 버린 중년의 광진에게는 여자란 더운 날 얼음에 채인 맥주나 보들한 옷 모양으로, 또는 코오피나 홍차 모양으로 한 기호품에 불과하였다. 성적 욕구쯤은 어떤 여자로나 만족할 수 있는 것이요, 눈의 욕구를 채우자면 길에 다니는 여자들을 바라보거나 요리집에서 기생을 부르면 그만이었다. 여자란 그다지 생명을 바쳐서까지 사랑할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또 꼭 어느 여자라야만 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 그리 흉없지나 않고 꺼칠꺼칠하지나 않고 냄새나 안 나면 어느 것이나 다 쓸 것 같았고 잠시잠시 쓰다가 버리는 넥타이 단장 같은 물건 같았다. 정신적 생활이 없어진 광진에게는 여자에게서 어떤 정신적 만족을 얻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친구들 간에 혹시 정신적인 신성한 연애라는 말이 날 때에는 대학에서 배운 키케로와 에머어슨의 말을 인용하여서 가장 높은 사랑은 오직 남자끼리의 친구간에만 성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신적 감화를 받으려거든 성현이나 위인의 말을 볼게지, 그것을 여자에게서 구해? 그게 연목구어란 말야. 희랍 사람의 말과 같이 여자에게는 정신이란 것이 없거든. 아름다운 것하고 애 낳는 것하고 이것이 여자의 전체여 든. 여자는 남자의 노예로 자연이 예비한 것이란 말야.』

이렇게 말하였다.

실상 광진에게는 여자뿐 아니라, 저 이외에 다른 사람은 누구나 그리 소중할 것은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도 그리 소중할 것은 없었다. 제가 필요한 때에만 일시 소중하였고 그 필요가 지나면 전연 무관심이었다. 하물며 세상에 필요한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광진으로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익 사업을 위하여서 돈 십원 낸 일도 있으나 그것은 졸리기가 어려워져서이지 그 사업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세상을 위하거나 남을 위하여서 돌아 다니며 애쓴다는 인물들을 볼 때에 광진은 웃었다. 그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돌아 다니는 과객으로 밖에는 아니 보이는 까닭이요, 극히 호의로 해석한다면 일종의 퍼내틱(무엇에 미친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아내가 보기 싫으니까 소박하였고 또 근래에는 견딜 만하니까 좀 가까이하여 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가진 그에게도 아내의 정숙한 것을 감탄하는 생각과 생명이 경각에 달린 아내를 볼 때에 불쌍한 생각이 나고 겸하여 뉘우치는 생각이 나는 것은 수상한 일이다. 본능이라고 할 것이다.

『하, 어서 손을 써야 하겠는걸요.』

하고 의사가 광진에게 결정하기를 재촉하였다.

광진은 아버지와 어머니께 여쭈라고 하인에게 명령하였다. 산파는 의사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수술 기구를 가지러 병원으로 달려 갔다.

대청에서 가족의 회의가 열렸다. 광진은,

『의사 말씀이 산모가 위태하다고 합니다. 기계를 써서 인공으로 분만을 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렇지 아니하면 두 목숨이 다 위태하다구요.』

하고 개회하는 취지를 설명하였다.

『기계를 쓴다니? 그러면 애는 죽여서 꺼낸단 말이냐?』

하고 대감도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어린애도 안 죽을 수도 있다구요. 그렇지만 두 목숨을 다 못 건질 바이 면 한 목숨이라도 건지잔 말씀이지요.』

하고 광진이가 설명하였다.

『그거 원 무슨 일이란 말인고?』

하고 대감은 옛날 벼슬할 때에 하던 버릇으로 책임질 말은 아니한다.

『안된다. 기계가 무슨 기계냐. 그러다가 순산하는 수도 있지 기운이 없어지면 잠간 졸기도 하는 것이야. 기계가 다 무엇이냐.』

하고 정경 부인만은 표명하였다.

며느리 백이 죽더라도 손자 하나만을 살리려는 생각이냐. 며느리는 암만이라도 얻어 들일 수 있는 것이지마는 손자는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마누라의 말이 옳은 것도 같으나 며느리의 생명이 가엾어 보이는 것이 대감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아무 말도 아니하는 것이 대감의 처세술이었다.

광진도 이자리에서 어느 편으로나 힘있게 주장할 뜻이 없었다. 아내가 죽으면 젊은 새 아내를 얻어 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는 누구 딸, 누구 딸, 어떤 계집애하고 제 눈에 들었던 여자들과 말로 들었던 여자들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뻤다. 조선 안에서 제일 잘난 여자가 제 아내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금봉은 그 후보자의 말석에도 참녜하지 못하였다.

광진은 의사를 불러 내었다.

『그렇게 위험허오?』

하고 대감이 위엄을 갖추어서 물었다.

『네, 제가 보기에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 기계를 안 쓰고는 순산이 안된단 말씀이오?』

하고 정경 부인이 묻는다.

『그럴 것 같습니다.』

하고 의사가 조심조심하여 대답한다. 의사는 산모의 생명을 구하여는 직업 의식이 강하지마는 원체 꾀까다로와서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면 경계와 인사 체면 많은 양반 집 일이라 함부로 무엇을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하는 동안에 산파가 기계를 가지고 돌아 왔다. 그래도 문제는 결정이 되지를 아니하였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이때에 대감이니 정경부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각각 좀스러운 생각으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 저편의 비위를 거슬릴까, 서로 제 속의 약점을 책잡힐까 하여 어름어름하는 것을 볼때에 속으로 분개한 마음이 생겨서 혼자 일어나 산실로 들어가서 산모의 오줌도 빼고 주사도 놓았다. 만일 필요하면 제 마음대로 수술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이제 경련만 일어나면 이사람은 죽는다!』

하며 젊은 의사는 산모의 약간 떨리기 시작한 듯한 입술을 들여다 보았다.

〈이 집안에 이 사람의 생명을 꼭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나!〉 할 때에 의사는 얼마 전에 어떤 행랑살이하는 사람이 이와 같은 상태에 있 는 제 아내를 놓고,

『 선생님, 아무렇게 해서라도 이것을 살려 주셔요.』

하고 벌벌 떨던 것과 그 곁에는 여남은 살 된 계집애 하나와 사내 하나가 엄마, 어머니하고 울었던 것을 생각하였다.

『리솔 풀어!』

하고 의사는 양복 저고리를 벗고 와이샤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시계가 한시를 땅 쳤다.

의사는 주사 한 대를 더 놓았다. 산모는 아픈 것을 감각하는 듯이 몸을 흠칫하였다. 그리고는 눈을 떴다.

산모는 눈을 떠서 제가 아이를 낳았나, 어찌 되었나, 하는 듯이 한번 휘 둘러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 있다가 다시 눈을 뜨고 산모는,

『 선생님?』

하고 의사를 불렀다.

『네?』

하고 의사가 산모의 입 가까이 귀를 귀울였다. 무슨 무서운 말이나 기다리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암만 해도 제 힘으로는 낳을 수 없는 것 같으니 제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 주세요. 저는 죽더라도 아이만 성하게.』

이렇게 산모는 안간힘을 써가며 있는 힘을 다하여 말하였다.

정경부인이 이 말소리를 듣고 들어오고 광진도 들어 왔다. 산모는 광진을 힐끗 바라보고는 기운 없이 눈을 감았다.

『아가, 정신을 차려서 배에 힘을 주어라.』

하고 정경 부인이 낯을 찡기면서 말하였다.

산모는 시어머니 말에 순종하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두어 번 힘을 써보다가,

『힘이 안 써집니다.』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 선생님, 저는 죽어도 이 아이만 살게 해주세요.』

하고 산모는 한번 더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기운이 없었다. 산모의 두 눈에 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산파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리고 의사는 머리를 긁고 입맛을 다셨다.

산모는 다시 정신을 잃고 시계는 두시를 쳤다.

『이제 바람만나면 못 건집니다.』

하고 의사는 최후 통고를 하였다.

그러나 그때에는 대감은 첩의 방에 나가 잠이 들고 정경 부인도 보이지 아 니하였다. 광진만이 그래도 대청에 놓인 교의에 기대서 졸고 있었다.

광진은 마침내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승낙을 아니할 수 없었다.

의사는 감자를 써서 아이를 꺼내었다. 아이는 사내였다. 가사 상태로 낳은 아이가 첫울음을 울 때에 산모는 한번 눈을 떴다.

『아드님을 낳으셨어요.』

하고 산파가 크게 소리를 쳤다.

산모는 그 말을 알아 들었는지 빙그레 웃는 것도 같았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후 일 주야만에 소원대로 아이만 살리고 저는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는, 시집에는 아들은 낳아 바치고 새계집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새로 장가들 자유를 주고 누구나 아껴 주는 사람도 없이, 울어 주는 사람도 없이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들을 낳아 놓고 죽었다는 공으로 홍씨는 좋은 장례를 받았다. 그 뿐 아니라, 대감이나 정경 부인이나 또 광진이나 그 사람이 죽고 보니 생전에 잘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꿈자리가 사나운 것도 두려워서 돈을 아끼지 아니하고 장례를 지냈고, 대감도 예대로 제복을 입었다. 겉으로 하는 것만은 극진하게 하였다고 할 만하게 하였다. 그리고 집가심이니 진오귀니 에 죽은 사람의 살에 닿았던 옷은 대부분 무당의 손으로 불살라서 저승에 있는 홍씨에게로 보내고 더러는 무당이 가져 가고 또 더러는 하인들에게 나누어도 주고 또 하인들이 훔쳐 내기도 하였다. 그저 죽은 사람으로 하여 동 티만 아니 나기를 원하였다.

금봉은 아담이를 잃은 날부터 밥맛과 잠을 잃었다. 젖이 불을 때마다 울었다. 대접에 불은 젖을 짤 때에는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광진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단 말을 들어도 아무 감각이 없을이만큼 금봉은 잃어 버린 아담에게 골똘하였다.

비록 아담이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그 애의 장래를 위하여 좋은 일이라고 마음을 지어 먹어도 제 새끼를 남의 손에 내어 놓지 아니치 못하는 어미의 슬픔은 그 일을 당해 본 어미가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광진의 부인이 아들을 낳고 죽었다는 기별은 금봉에게 이상한 충동을 주었다 그것은 지극한 비극을. 보는 것이요, 그 비극에는 금봉이 자신도 관련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찌할까?〉 하고 금봉은 밤을 새우고 밤을 새웠다.

어떤 날 밤에 삼청동 금봉이 집에 웬 노파 하나가 들어와서 지나다가 집 구경을 들어 왔노라고 두리번거리다가 나가 버렸다.

『미친 년이로군.』

하고 할멈이 대문을 걸면서 중얼거렸다.

『거 웬 여편네야?』

하고 금봉이가 안방에서 나서면서 물었다.

『모르지요. 무얼 훔치러 들어 왔던 게지요.』

하고 할멈은 대단히 불쾌한 모양이었다.

『나가 보아요, 어디로 갔나?』

하고 금봉이도 마음이 안 놓였다.

할멈이 대문을 열고 나갔다가 한참만에 들어 오더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저 위로 올라 가는 것도 같고……』

하고 말았다.

어린애도 잃고 광진이도 아니 오고 하는 이 집에서는 고양이가 하나 지나가도 큰 사건인 것 같았다. 이 집이야말로 모든 것이 초상난 집 같았다.

홍씨의 장례가 끝난 이튿날 광진이 술이 취하여서 금봉의 집에를 왔다. 그는 친구들에게 졸려서 득남례와 상처한 축하턱을 내인 것이었다.

『광진이는 상처할 팔자까지 탔네그려.』

하고 그 친구들은 광진을 놀렸다.

금봉은 무엇이라고 인사할 말을 찾지 못하여 잠자코 있었다.

광진은 집에 들어 오는 대로 금봉을 희롱하기 시작하였다. 금봉은 그것이 심히 불쾌하였다. 제 아내를 파묻은 것이 어젠데, 하면 구역이 나도록 광진 의 음탕한 행동이 싫었다. 그래서,

『어린애는 왜 안 보내시오?』

하고 노기를 띄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애? 우리 아들? 어머니가 내놓으시나. 한 시각도 안 보시고는 못 사 신대. 허허……』

하고 광진은 무슨 좋은 수나 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금봉은 더 말하고 싶지도 아니하였다.

광진은, 금봉이 우리 마누라 『 , , 허허, 우리 금봉이가 왜 오늘은 새침했어? 고게 더 예쁘지.』

하고 실없은 소리를 중얼대며 칼라나 넥타이, 양말을 이리저리 벗어 던졌다.

금봉은 전과 같이 그것을 받아서 양복장에 차곡차곡 넣을 생각도 없었다.

광진의 입김에서 나는 술냄새와 그가 쉬일 새 없이 중얼거리고 껄껄대는 싫 없은 소리가 모두 불쾌하기만 하였다.

〈나를 무얼로 알어!〉 하고 금봉은 속으로만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광진은 냉수를 두 대접이나 마시고 금봉이더러 다리를 밟으라는둥 어깨를 주무르라는둥 갖은 지랄을 하다가 마침내 잠이 들어 버렸다.

금봉이도 어슴프레 잠이 들려고 할 즈음에,

『문 열어 주우.』

하는 여편네의 소리가 들렸다.

『자정이 지났는데 누가 왔어?』

하고 할멈이 중얼거리며 대문으로 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금봉은,

『가희동서 왔나보군.』

하고 혹시 어린애가 ─ 아담이가 무슨 병이나지나 않았나 하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삐걱하고 문 여는 소리가 나자 퉁퉁 퉁 퉁 하는 사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금봉은 누굴까 하고 고개를 들어서 귀를 기울일 때에 벌써 안방지게문을 와락 열어 젖히고 들어 선 것은 금봉의 남편 손명규였다.

금봉은 모시 겹이불을 막써 머리를 감추었다.

명규는 초록 생초 모기장을 떨리는 손으로 잔뜩 잡아 당기었다. 그리고는 덜덜덜덜 떨면서 세상 모르고 자는 광진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명규의 눈과 입은 찌그러지고 씰룩씰룩하였다.

털이 많이 난 큰 손에는 번쩍번쩍하는 칼이 떨고 있었다.

명규는 향항으로 싱가포우르로 일년 남아 헤매다가 모두 다 실패하고 아편장이가 되어 가지고 일주일 전쯤 전에 서울에 굴러 들어왔다. 아내 금봉이 와 딸 정선을 안아 보리라는 유일한 희망을 품고. 그러나 그는 아내가 광진 의 것이 되 사정을 듣고는 연놈이 한방에 들기를 기다리고 노파 하나를 사서 염탐을 시키다가 오늘이야 그 기회를 찾은 것이었다.

『이놈, 이놈, 이놈!』

하고 손명규는 광진의 가슴을 타고 앉으며 한손으로 광진의 가른 머리를 검어 쥐고 한 손으로는 칼을 높이 들었다.

광진이가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광진은 뜬 눈을 다 감지도 못하고 다만,

『어, 어, 어!』

하고 전신에 얼음물을 끼얹은 때에 나는 소리를 할 뿐이었다.

『이놈! 이놈!』

하고 명규의 칼은 허공에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광진의 눈에는 명규의 얼굴이, 하늘만큼 크고 그 두 눈은 번갯불 같았다. 바로 눈 위에서 떨리는 시퍼런 칼날 ─ 그 빛!

『소, 소, 소, 소, 손 선생, 사, 사, 살, 살려 주.』

하는 소리가 들릴락말락 광진의 목에서 나왔다.

일초, 오초, 십 초, 일분.

『무엇이든지 손 선생 소원대로 다할 테니 목숨만 살려 주.』

명규는 물론 애초부터 광진을 죽이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유부녀 통간 중에 동시 포착하여 광진에게서 돈을 떼어 내려는 것이었다. 그처럼 명규에게는 벌써 사람의 염치는 없었다. 그러나 사랑하던 제 아내가 다른 사내와 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볼 때에는 명규도 보통 사람의 감정이 나서 눈이 벌컥 뒤집혔다. 이것은 죽여도 살인죄가 안되는 경우다. 손에 들린 칼이 여러 번 광진을 향하고 내려 가려 하였다. 어차피 전도에 소망이 다 없어진 몸이라, 간부, 간부를 한칼에 죽여 버리고 피 흐르는 칼을 휘두르며 행길로 날뛸 생각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일 초, 일 초 참는 동안에 아편장이 손명규가 돌아오고 돈을 한번 크게 벌어 보려는 손명규가 돌아 왔다.

명규는,

『이놈. 내가 너를 친구라고 믿고 처가속을 맡겼거든, 이놈, 내가 내가 너를 살려?』

하고 한번 더 뽐내었으나 마침내 칼을 집에 꽂아서 양복 주머니에 넣고 광진에게서 내려 앉으며,

『일어나 옷들이나 입어라.』

하고 이불을 잡아 젖힌다.

태 속에 든 아이 모양으로 웅크리고 있던 금봉이 이불로 몸을 싸고,

『나를 죽여 주셔요. 아까 그 칼로 나를 죽여 주셔요.』

하고 명규를 향하여 엎더진다.

명규는 킁킁하고 두어 번 코웃음을 웃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광진이가 옷을 다 입고 나서 손명규를 보고,

『우리는 성북동 내 집으로 갑시다.』

하고 모자를 들고 나섰다.

명규는 광진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가자!』

하고 따라 나섰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에 명규는 정선을 찾았다. 침모방에서 자는 정선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아비의 정이 움직인 것이었다.

명규와 광진이가 나간 뒤에 금봉은 옷을 입고 체경 앞에서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고 그리고는 핸드백 하나와 우산 하나를 들고 나섰다.

『아씨, 지금 어디 가세요?』

하고 할멈과 침모와 순이가 나와서 붙들었다. 그들은 금봉이가 필경 한강으로 죽으러 나가는 줄만 안 것이었다.

『내 얼른 다녀 올께』

하고 이 금봉은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순이가 동십자각까지 금봉의 뒤를 밟아 온 때에 금봉이 알고 돌아 서며,

『요년, 따라 오지 말어!』

하고 발을 굴렀다.

순이는 궁장 그늘로 몸을 비켜 섰으나 돌아 갈 생각은 아니하였다.

금봉은 두어 걸음 육조 앞께를 향하고 몇 걸을 가더니 되돌아 서서,

『순아, 순아!』

하고 불렀다.

순이가 궁장 그림자에서 튀어 나와서 금봉의 곁으로 왔다. 곁에 가까이 온 그림자에서 튀어 나와서 금봉이 곁으로 왔다. 곁에 가까이 온 순이의 머리를 만지며 금봉은,

『순아, 너의 집이 어디?』

하고 정답게 물었다.

『자잇골 이야요, 남의 행랑입니다.』

하고 순이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너 집으루 가자.』

하고 금봉은 순이를 앞세우고 경복궁 앞으로 지나서 자앗골로 향하였다.

『나 오늘 밤 너의 집에서 잘 테야.』

하고 금봉은 길을 가면서 순이에게 청하였다.

순이는 대답이 없었다. 순이도 금봉이가 다른 서방하고 살다가 본 남편한테 들켜서 야단만난 줄을 알기 때문에 금봉의 정경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렇더라도 그렇게 호강하던 금봉이가 냄새 나고 빈대 끓는 행랑방에서 잘까가 의문이었다.

순이는 어떤 허름한 집 찌그러진 대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대문에 입을 대고 안에 들릴까 봐 조심하는 목소리로,

『어머니, 어머니!』

하고 두어 소리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어서 순이는 대문을 달깍달깍 흔 들었다.

안팎 고달픈 일에 골아 떨어진 순이 어머니는 좀처럼 잠이 깨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뙤약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모군을 서던 순이 아버지는 누가 묶어 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얼마만에야 여편네의 졸리는 소리로,

『거 누구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문 좀 열어요.』

하는 소리를 그제야 알아 듣고,

『순이냐? 웬일이냐? 주인집에서 쫒겨났니?』

하고 문은 열고 일어나 나와서 소리 안 나게 대문 빗장을 열면서,

『밤중에 웬일이냐? 무슨 짓을 했길래 이 밤중에 쫒겨났어?』

하다가 금봉을 보고,

『아씨, 웬일이세요?』

하고 놀라서 뒤로 물러선다.

금봉은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오늘 밤 좀 재워 주우.』

하였다.

『웬일이세요?』

하고 순이 어머니가 어리둥절하는 것을 순이가 가만히 어머니의 옆구리를 찌른다.

『어떻게 이런 데서 주무시나?』

하고 순이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 가서 성냥을 찾아서 석유 등잔에 불을 켜 놓는다. 금봉의 눈앞에 전개된 광경은 이러하였다.

오십이 넘은 수염 조금 나고 수척한 사내가 우통을 벗어 홀쭉한 배를 들먹거리며 코를 골고, 그 곁에는 전신에 먹칠을 한 듯이 시커먼 팔구 세 되는 사내 아이가 배만 가리우고 드러누웠고, 또 그 다음에는 젖먹이 하나가 베개에서 떨어져 자고, 벽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종이를 발랐으나 종이가 모두 흙빛이 되었다. 그리고도 성냥 상자, 석유 상자 같은 궤짝이 이를테면 장 대신으로 구석에 포개 있다.

『여보, 여보!』

하고 순이 어머니가 남편을 흔들어 깨우는 것을 금봉은 손을 흔들어서 막고 방으로 들어 갔다. 순이 어머니가 빠져 나온 자리도 안 보이던 방이언마는 그래도 금봉이와 순이가 다 드러누울 수는 있었다.

축축한 장판은 찼다. 금봉이는 특별 대우로 주는 때묻은 베개 위에 핸드백을 놓고 손수건을 덮어서 베개를 삼았다. 모기가 무서워서 문을 닫아 놓으니 냄새 나는 공기에 숨이 턱턱 막힐 것 같고 이따금 뚜껑 없는 요강에서 지린내가 금봉이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것도 약과였다. 불을 끄고 한참 누웠느라니 모기는 귀 밑으로 왕왕거리고 빈대는 목덜미를 물어 떼었다. 금봉의 등으로 다리로 배로 스물거리는 것은 벼룩인지 거르만지 모르지마는, 처음에는 손으로 쓸어도 보았으나 나중에는 단념해 버리고 말았다.

빈대 벼룩이 아니기로 잠이 들 금봉은 무론 아니다.

자정 넘은 밤중에 갈 곳이 없으니 밤이 새기를 기다리잔 말이다.

그런 중에도 금봉은 어느덧 눈이 붙었다. 깨어 보니 순이 아버지가 벌써 밥상을 받았다. 무쪽 씹는 소리를 들어서 밥 먹는 줄을 짐작할이만큼 아직도 누웠다.

『어느새에 일어나서 남편의 밥을 지었노?』

하고 금봉은 어린애를 뒤쳐 업고 남편 숭늉 심부름을 하는 순이 어머니의 모양을 보고 믿기지 아니할이만큼 생각하였다. 저 사내 ─ 오십이 넘고 몸은 살이 말라서 갈빗대가 드러나고 배가 움쑥 들어 간 저 사내는 여름날이 밝기도 전에 이른 조반을 먹고 지게를 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뼈가 휘도록 ─ 정말 그의 등은 휘었다 ─ 벌어서 처자를 먹이는 것이다.

금봉은 일어날까 하다가 도리어 주인이 미안해할 것 같아서 자는 체하고 가만히 있었다. 순이와 순이 동생도 그냥 자고 있었다.

『오날은 어디로 가우?』

하고 순이 어머니가 문지방을 한손으로 붙들고 서서 보채는 아이를 허리만으로 흔들면서 묻는다.

『조선 은행 앞으로 가보아야 알지.』

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숭늉 찌끼를 숟가락으로 벅벅 긁었다.

『왜 자문안 흙지는 일은 다 끝났소?』

하고 아내는 다시 물었다.

『기운 없다고 붙여 주어야지.』

하고 남편은 숟가락을 소반에 놓는다.

『망할 놈들! 저희 기운은 황소만하던가?』

하고 아내는 분개하였다.

영감은 곰방이에 담배를 담아서 피우려다가 마누라가 금봉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한 손으로 밥상을 들고 대문간으로 나가 버린다. 성냥을 긋는 소리가 나고 뻡뻑 빠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이 스르르 열리고 대문 밖에 나선 사람이 걸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안에서 안 들리도록 조심조심하여 대문을 여는 소리가 금봉에게는 퍽 슬펐다.

그제야 금봉이가 일어났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텁텁하고 귓속이 웅웅거렸다.

『어느새에 일어나셔요, 아씨? 좀 더 주무시지. 이맘때가 되면 빈대도 들어 가는데. 방이 누추해서, 어디 아씨야 이런 누추한 방이야 보시기나 했겠어요? 저희는 한평생 이런 데서 산답니다. 어디 요새 세상에야 행랑을 그냥 빌려 주시는 댁이 많습니까? 이것도 한 달에 삭월세가 이원이나 된답니다.

그리고도 안 대청 걸레 치고 물 길어 대고, 또 잔심부름도 해드립지요. 순아, 이년아 일어나거라. 그나 그뿐인가요? 아범이 저렇게 늙고 또 지난봄에 그 몹쓸 염병을 앓고 나서는 참 아씨 덕분에 약첩이나 사 먹고 낫기는 낫습지요마는 도무지 추서지지를 아니한답니다. 그러니 하루도 일 안 나갈 수는 없고 ─ 다만 열 냥, 수무 냥이라도 벌어야 자식 새끼를 먹이지를 않습니까 그저 어디 방세 안. 내는 행랑방이라도 한 간 얻었으면 살겠는뎁시오.』

하고 순이 어멈은 세수하란 말도 없이 밥상을 차려다가 금봉이 앞에 놓는다. 그리고는 자는 아들은 마치 무슨 물건 모양으로 방 한편 구석으로 밀어 놓고 방에 깔았던 누더기들을 이리저리 밀어 놓는다.

잠을 깬 순이는 아씨가 집에서 같으면 아직 한잠을 잘 것이요, 아홉시나 열시가 되어서 화로에 놓은 찌개 국물이 다 졸아붙을 때쯤해서 일어나면 비누라 무엇이라 한 마루 벌여 놓고 더운 물 찬 물을 양동이로 하나탁이 들여서 세수를 하고 그리고는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고 담배를 먹고, 그리고 나서도 밥맛이 없다는둥, 속이 좋지 못하다는둥, 새로 지은 밥을 다시 끓이라는둥, 법석을 하다가 열시 열 한시나 되어서야 상이 나오던 것을 생각하고,

『어머니, 아씨 세수도 안 하시고……』

하였다.

『무엇에 세수를 하시나? 대야도 없고.』

하고 순이 어머니는 그제야 점잖은 양반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하고 세수하는 법이 있는 것을 생각하였다. 양치를 하자니 소금이 있나? 소금이 있기로니 시커먼 호렴을 쓸 것 같지도 아니하고.

『괜찮다. 이따가 하지.』

하고 금봉은 밥상이란 것을 들여다보았다. 밥 한 그릇하고 아까 순이 아버지가 우적우적 먹던 그 풋김치 한 그릇, 그리고 물 한 그릇, 그것뿐이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금봉은 주인의 호의를 무시하기가 미안하여서 물 한 모금을 먼저 마시고는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금봉은 그 냄새에 오장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안남미에 만주 좁쌀을 섞은 밥이었다. 묵고 묵은 쌀, 장마통에 곰팡이 난 쌀, 한 말 이상 사는 사람에게도 팔 수 없는 쌀, 싸전에서 썩혀 내는 이 쌀은 종이 주머니에 한 되, 반 되 팔아 가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 가는 것이었다. 만일 집에서 같으면 금봉은 우엑질을 하고 밥상을 둘러메어쳤을 것이다. 그렇지마는 금봉은 마치 뜨거운 것을 삼키는 모양으로 입에 문 밥을 억지로 삼키고 물을 마셨다.

『빈대 끓고 냄새 나는 방 한 간과 곰팡 냄새 나는 호좁쌀밥 ─ 이것도 없어서 걱정인 사람이 조선 백성의 절반은 된다. 하루 종일 땀흘려 벌어도 그러하거든 땀을 흘려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도 없는 사람이 또 몇 백만 ─』

금봉은 이 비슷한 말을 쓴 책을 보던 기억을 한다. 설마 그러랴 하였더니 바로 장안 안에 금봉은 그것을 본 것이었다.

금봉은 순이 어머니에게 돈 몇 원을 집어 주고 순이더러는 삼청동 집으로 먼저 가라고 이르고 사직골 어귀에서 인력거 하나를 잡아 타고 남대문 정거장으로 가자고 일렀다.

금봉은 붙일 곳 없는 몸이 오빠인 현을 찾아 가려는 것이었다. 인현이가 태허 대사라는 중을 따라 간 것은 분명하고, 태허 대사란 이름난 중이라고 하니 태허 대사만 찾으면 인현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금봉이는 정거장 앞에서 인력거에서 내려서 원산으로 가는 차 시간표를 보았다. 아직도 한 시간이나 동안이 있었다.

금봉은 그동안에 삼청동에 들어 가서 정선을 한번 더 볼까, 동생은봉이나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찾아 볼까, 하고 망설였다. 가희동에 가 있는 아담이는 볼 수 없으나 아담이가 있는 집이라도 한번 바라볼까,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이제 다시 서울 안에 고개를 들고 다닐 면목도 없고, 또 혹시 손 명규에게 붙들리지나 아니할까 하는 것도 염려가 되어서, 〈다 그만두자.〉 하고 대합실 한편 구석에 눈에 뜨이지 않도록 고개를 벽으로 돌리고 앉았다. 순시하는 순사의 칼 소리가 날 때마다 공연히 속이 울렁거렸다. 누가 저를 붙들려고 찾는 것만 같아서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올 때마다 조바심을 하였다.

그 한 시간이라는 것이 무척 길어서 시계를 치어다보면 늘 그 자리에 바늘 이 섰는 것만 같았다.

〈이제 가면 다시는 이 세상에는 아니 나온다.〉 하고 금봉은 같은 결심을 뇌이고 뇌였다. 지금 금봉의 생각에는 모든 것이 뉘우침뿐이요, 부끄러운 것뿐이요, 귀찮은 것뿐이었다.

〈한강에 나가서 빠져 죽어 버릴까?〉 이렇게 생각하고 벤치에서 일어서 보기도 하였다. 철교에서 풍덩실 몸을 던지면 그만이다. 이렇게도 생각하였으나, 내 생활을 이렇게 망쳐 버린 것이 무슨 까닭인가, 하는 것을 알고 나서 죽더라도 죽고 싶었다. 그래서 도로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는 또 시계를 치어다보았다. 아직도 멀었다.

금봉은 지리한 것을 참다 못하여 자동 전화에 가서 ○○학교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서 은봉을 불렀다. 은봉은 교사가 되어서도 기숙사에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일곱 시밖에 안된 학교에서는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자동 전화실에서 나와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시간이 있었다.

금봉은 다시 삼청동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구요?』

하는 것은 남편 손 명규의 소리였다. 금봉은 수화기를 탁 걸고 뛰어 나오고 말았다.

금봉은 원산 표를 사가지고 함흥행 차를 탔다. 차에서도 사람의 이목을 피 하는 사람 모양으로 창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산, 한강, 왕십리를 지나서 차가 청량리를 향하고 달릴 때에는 그래도 금봉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서울을 바라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천주교당 뾰죽집, 인왕산, 북악. 그러나 차는 금봉의 마음에 생각의 실마리를 끌어 내일 여유를 주지 않고 달렸다. 금봉의 낯은 붉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금봉은 그리 힘들이지 아니하고 오빠인 현을 만날 수가 있었다. 금봉은 마하연에 가서 사람 하나를 사서 선암(船庵)에 있는 인현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인현은 곧 달려왔다.

금봉은 처음 보고는 인현인 줄을 몰라 보았다. 인현은 머리를 파랗게 밀고 회색 장삼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맨발에 피신을 신었다. 얼굴빛은 파란 것 같고 눈은 가늘어지고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그렇게 동탕하고도 변화 많고 빛나던 눈과 얼굴이 표정이 어쩌면 그리도 변하였을까. 인현은 금봉을 보고도 도무지 표정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방에서 내다 보다가 이윽고야 그것이 인현인 줄을 알고 뛰어 나가며,

『오빠!』

하고 울었다.

인현은 자기에게 편지를 전해 준 사람에게 말 없이 합장으로 고맙다는 뜻을 표하고 툇마루에 올라 앉았다. 방 앞으로 중들이 지나갈 때마다 인현과 서로 합장하고 국궁하였다. 그러나 도무지 말도 없고 웃는 법도 없었다. 금봉은 처음 보는 공경을 무시무시하게 생각하였다. 올 때 생각에는 오빠를 만나면 매달려서 실컷 울려고, 오래 떠났던 사랑하는 동기의 반가운 정을 실컷 향락하려고 하였던 기대는 어그러지고, 마치 스스러운 어른의 앞에 나온 것과 같이 조심스러웠다.

『오빠!』

하고 금봉은 조심조심하여 인현을 바라보았다.

『정선이 잘 자라니?』

하는 것이 인현의 첫말이었다.

『잘 자라지요.』

『네 남편헌테서는 기별 있니?』

『왔어요.』

『서울을 왔어?』

하고 인현은 약간 눈썹을 움직였다.

『네.』

하고 금봉은 고개를 까닥까닥하고 한숨을 쉬었다. 제가 당한 일을 어떻게 차마 말하랴 하였다.

〈오빠는 또 아이 하나를 낳은 것은 모르시는구나!〉 하였다.

『은봉은 만났는냐?』

『도무지 안 와요.』

『아버지는 가 뵈었니?』

『안 가 뵈었어요.』

인현은 잠간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다시 눈을 뜨며,

『그래 어째 금강산에를 왔니?』

하고 금봉을 바라보았다. 여러 날 여행에 금봉의 모시 치마 적삼이 구김살이 가고 후줄군하여서 퍽 초라하였다.

『말이 길어요.』

하고 금봉은 쏟아지는 눈물을 고개를 수그리고 방바닥에 떨어 버렸다.

인현은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속으로 금봉에게 생길 만한 일을 생각하면서, 그 일에 대하여서는 더 묻지 아니하고,

『그래 며칠이나 있다가 가련?』

하고 물었다. 인현의 말은 차차 떨리는 듯하였다. 누이 ─ 그렇게 사랑하던 누이에게 대한 가긍한 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인현은 눈을 감고 꾹 눌러 버렸다.

『오빠!』

하고 금봉은 눈물이 어룽어룽한 얼굴을 들어서 인현을 보며,

『오빠, 나는 집을 아주 떠났어요 ─ 오빠를 따라 왔어요. 다시는 세상에는 안 나가요.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요. 나는 다시 세상 사람은 대하지 아니할 테야요.』

하고 수건을 코와 눈에 번갈아 대며 느꼈다.

『울지 말지.』

하고 인현도 고개를 숙이더니.

『너 금강산 처음 오는냐?』

하고 딴 곳으로 화제를 돌린다.

금봉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세상이 싫거든 나가지 말려무나. 나가게 되는 때에 나가고.』

하고 인현은 금봉을 어디 가서 있게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금봉을 한번 다시 훑어 보았다. 이 산속에 들어 와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