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7월의 바다

흰 구름이 벽공(碧空)에다 만물상(萬物相)을 초잡는 그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맥파(麥波) 만경(萬頃)에 굼실거리는 청청(靑靑)한 들판을 내려다보아도 백주(白晝)의 우울을 참기 어려운 어느날 오후(午後)였다.

나는 조그만 범선(帆船) 한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않고 키(舵)도 끊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 떠나려 가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蜉蝣)와 같은 인생(人生)의 운명(運命)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早晩間) 닥쳐올 죽음의 허무(虛無)를 미리 다가 탄식(歎息)하였다.

저녘 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배는 아산만(牙山灣) 한가운데에 떠 있는 「가치내」라는 조그만 섬에 와 닿았다. 멀리서 보면 송아지가 누운 것 만한 절해(絶海)의 고도다.

나는 굴 껍데기가 닥지닥지 달라붙은 바위를 짚고 내렸다. 조수(潮水)가 다녀 나간 자취가 뚜렷한 백사장(白沙場)에는 새우를 말리느라고 공석을 서너닙이나 깔아 놓았다. 꼴뚜기와 밴댕이 같은 조그만 생선이 섞인 것을 해쳐보려니,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외로운 섬 속에도 사람이 사나보다.)

나는 탐험(探險)이나 하듯이 길로 우거진 잡초(雜草)를 헤치고 인가(人家)를 찾아 섬 가운데로 들어 갔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어려서 부르던 노래를 휘파람 섞어 부르며 뱀이 지내간 자국만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갔다.

과연(果然) 집이 있다! 하늘을 꿰뚫을듯 열길이나 까마아득하게 솟아오른 백양목(白楊木) 그늘 속에서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 한 채를 발견(發見)하였다.

(저기서 사람이 살다니, 무얼 먹고 살까?)

나는 단장(短杖)을 휘두르면 내려갔다. 추녀와 땅바닥이 마주 닿은 듯한 그나마도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속에서 육십(六十)도 넘어 보이는 노파(老婆)가 나왔다. 쑥방석 같은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면서 맨발로 나오더니

「아 어디서 사시는 양반인데……이 섬 구석엘 이렇게 찾아 오셨시유?」

하고, 바로 이웃집에서 살던 사람이나 만난듯 얼굴의 주름살을 펴면서 나를 반긴다.

「여기서 혼자 사우?」

나는 그 노파(老婆)가 말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을 이상(異常)히 여길 지경이었다.

「아들허구 손주새끼허구 살어유」

「아들은 어디 갔소?」

「중선으로 준치 잡으로 갔슈」

노파(老婆)는 흐릿한 눈으로 아득한 바다 저편을 건너다본다. 그 정기(精氣) 없는 눈동자에는 무한(無限)한 고적(孤寂)에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인생(人生)의 낙조(落照)가 비치지 않는가? 백양목(白楊木) 윗 가지에는 바람이 씽씽 분다. 이름도 모를 물새가 흰 날개를 펼치고 그 위를 난다.

「쓸쓸해서 어떻게 사우?」

나는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여북해야 인간 구경두 못허구 이런 데서 사나유, 농사처가 떨어져서 죽지 못해 이리루 왔지유」

나는 참아 더 묻기 어려워 머리를 숙이고 돌아 서는데, 노파(老婆)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침침한 부엌 속으로 들어간다. 수숫대로 엮은 울타리 밖에는 마늘과 파를 심었다. 북채 만한 팟종에는 씨가 앉아 알록달록한 나비가 쌍쌍이 날아 다닌다. 조금 있자

「이거나 하나 맛보시유」

하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돌려다보니 노파(老婆)는 손바닥 만한 꽃게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내 어찌 이 불쌍한 노파(老婆)의 친절을 물리치랴. 나는 마당 구석에 가 쭈그리고 앉아서 짭짤한 삶은 겟발을 맛있게 뜯었다.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어 백동전(白銅錢) 한푼을 꺼내어 한사(限死)코 아니 받는 노파(老婆)의 손에 쥐어 주고 나왔다.

(아아, 인생(人生)의 쓸쓸한 자태(姿態)여!)

나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그집 모퉁이를 돌아 나오려는데 등뒤에서

「응아 응아」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애가 우는구나! 그 늙은이의 손주가 우나보다)

나는 발을 멈추었다. 불현듯 그 어린애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한번 안아보고 싶은 충동(衝動)을 억제(抑制)할 수 없어 발을 돌렸다. 토굴(土窟) 속 같은 방 속에서 어머니의 젖가슴에 달라붙어 젖을 빠는 것은 이집의 옥동자(玉童子)였다. 그 침침한 흙방 속이 이 어린애의 흰 살빛으로 환하게 밝은듯.

「나 좀 안아 봅시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살이 삐죽삐죽 나오는 베옷 한벌로 앞을 가린 젊은 어머니는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한다. 노파(老婆)는

「이 더러운 걸」

하며 손주를 젖에서 떼어다간 내 팔에 안겨준다.

어린 것은 젖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사지(四肢)를 바둥거리며 내 얼굴을 말끄럼이 쳐다본다. 울지도 않고 낯도 가리지 않고 반가운 인사나 하는듯 무어라고 옹알거린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제 힘껏 감아쥐고는 놓지를 않는다.

까만 눈동자의 별 같이 영롱(玲瓏)함이여! 조그만 코와 입모습의 예뿜이여!

나는 가슴에 옮겨드는 어린 생명(生命)의 따스한 체온(體溫)에서 떨어지기 어려웠다. 이 고도(孤島)의 어린 주인(主人)을 떼치고 참아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바다 위에는 저녁 바람이 일어 성낸 물결은 바윗돌에 철썩철썩 부딪친다. 내 얼굴에는 찬 빗발이 뿌리고 백양목(白楊木)은 더 한층 처창(棲槍)한 소리를 내며 회색(灰色)빛 하늘을 비질 한다.

내가 그집에서 나오자 어린애는 다시 울었다. 걸어 오면서도 배를 타면서도 등뒤에서 「응아 응아」 하는 소리가 바람결을 따라 들렸다. 머리 위에서 날으는 물새의 우는 소리조차 그 어린애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인 듯.

(그 어린애가 잘 자라는가?)

(그들은 그저 그 섬 속에서 사는가?)

그 뒤로 나는 바람 부는 아침 눈 오는 밤에 몇번이나 베갯머리에서 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 아이가 병(病) 없이 자라기를 빌어 주었다.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언제까지나 내 귀바퀴를 돌며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일년(一年)이란 세월(歲月)이 꿈결 같이 흘렀다. 며칠 전(前)에 나는 마을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숭어 잡는 구경을 하려고 나갔다가 「가치내」 섬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 노파(老婆)와 젊은 며느리는 전(前)보다도 갑절이나 반가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들은 일년(一年)에 한두번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 듯…………

그러나 어린애는 눈에 띠우지 않는다.

「어린애 잘 자라우?」

하고 묻는데 때 묻은 적삼 하나만 걸친 발가숭이가 토방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지 않는가, 작년(昨年)에 내가 대접을 받은 꽃게 발을 뜯어 먹으며 두 눈을 깜박깜박 하고 우리 일행(一行)을 쳐다본다.

「오오 네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나는 그 어린애를 끌어안고 해변(海邊)을 거닐었다.

어린애는 일년(一年) 동안에 몰라보도록 컸다.

오래 안아 주기가 힘이 들만치나 무거웠다.

……그 날은 바다 위에 일점풍(一點風)도 없었다. 성자(聖者)의 임종(臨終)과 같이 수평선(水平線) 너머로 고요히 넘어가는 태양(太陽)을 바라보며 나는 석조(夕照)에 타는 붉은 물결을 멀리 보며 느꼈다. 이 외로운 섬속,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속에서도 우리의 조그만 생명(生命)이 자라나고 있지않은가. 그 어린 생명(生命)이 교목(喬木)과 상록수(常綠樹)와 같이 장성(長成)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限)없이 쓸쓸한 우리의 등뒤가 든든해지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一九三五 첫여름 당진(唐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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