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통곡 속에서
큰 길에 넘치는 백의(白衣)의 물결 속에서 울음 소리 일어난다.
총검(銃劍)이 번득이고 군병(軍兵)의 말굽소리 소란(騷亂)한 곳에
분격(憤激)한 무리는 몰리며 짓밟히며
따에 엎디어 마지막 비명(悲鳴)을 지른다.
땅을 뚜드리며 또 하늘을 우러러
외오치는 소리 느껴 우는 소리 구소(九霄)에 사모친다.
검은 「댕기」 드린 소녀(少女)여
눈송이 같이 소복(素服) 입은 소년(少年)이여
그 무엇이 너희의 작은 가슴을
안타깝게도 설움에 떨게 하더냐
그 뉘라서 저다지도 뜨거운 눈물을
어여쁜 너희의 두눈으로 짜내라 하더냐?
가지마다 신록(新綠)의 아지랑이가 되어 오르고
종달새 시내를 따르는 즐거운 봄날에
어찌하여 너희는 벌써 기쁨의 노래를 잊어버렸는가?
천진(天眞)한 너희의 행복(幸福)마저 참아 어떤 사람이 빼앗아 가던가?
할아버지여! 할머니여!
오직 무덤 속의 안식(安息)밖에 희망(希望)이 끊긴 노인네여!
조팝에 주름잡힌 얼굴은 누르렀고 세고(世苦)에 등은 굽었거늘
장자(腸子)를 쥐어 짜며 애통(哀痛)하시든 양은 참아 뵙기 어렵소이다.
그치시지요 그만 눈물을 걷으시지요.
당신네의 쇠잔(衰殘)한 백골(白骨)이나마 편안히 묻히고저 하던 이 땅은
남의 「호미」가 샅샅이 파헤친 지 이미 오래어늘
지금에 피나게 우신들 한번 간 옛날이
다시 돌아올 줄 아십니까?
해마다 봄마다 새 주인(主人)은
인정전(仁政殿) 「벗꽃」 그늘에 잔치를 베풀고
이화(梨花)의 휘장(徽章)은 낡은 수레에 붙어
티끌만 날리는 페허(廢墟)를 굴러 다녀도
일후(日後)란 뉘 있어 길이 설어나 하랴마는……
오오 쫓겨 가는 무리여
쓰러져버린 한낱 우상(偶像) 앞에 무릎을 꿇치 말라!
덧없는 인생(人生) 죽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宿命)이어니
한 사람의 돌아오지 못함을 굳이 설어하지 말라.
그러나 오오 그러나
철천(徹天)의 한(恨)을 품은 청상(靑孀)의 설음이로되
이웃집 제단(祭壇)조차 무너져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목매쳐 울고저 하나 눈물마저 말라붙은
억색(抑塞)한 가슴을 이 한날에 두드리며 울자!
이마로 흙을 비비며 눈으로 피를 뿜으며―
- 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