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밤/곡 폐허
오호, 동경(東京)이여,
낙일(落日)에 외싸여 대지(大地)에 엎디려 우는 옛날의 도부(都府)여,
재 속에 파묻힌 찬연(燦然)한 전당(殿堂)과 누대(樓臺)에 조사(弔辭)를 드리는 시민(市民)이여,
애닯아라 이 ‘문명(文明)의 몰락(沒落)’을 바라보는 서러운 그 눈이여,
이제는 황금(黃金)과 미인(美人)을 지키던 옛날의 기사(騎士)는
창궁(槍弓)을 내던지고 폐허(廢墟)의 제단(祭壇)을 향(向)하여 만가(挽歌)를 부르노나.
아하, 오동(梧桐)마차(馬車)에 실리어 묘지(墓地)로 향(向)하는 ‘문명(文明)의 말로(末路)’여,
미(美)와 부(富)와에 결별(訣別)치 않을 수 없던가, 오호, 동경(東京)이여,
아하, 옛날의 동경(東京)이여!
대지(大地)에 우는 소리―연기(煙氣), 화염(火焰), 피, 사람의 반역(反逆),―그래서 굴종(屈從)―발광(發狂)―홍소(哄笑)―호읍(呼泣),
아하, 동경(東京)이여! 이렇게 처참(悽慘)하게 인류(人類)의 기억(記憶)을 불살라버리는 이날을 상상이나 하였던가.
역사(歷史) 재조(再造)의 위대(偉大)한 힘 앞에 우두두 떠는 가련(可憐)한 이재(罹災)의 시민(市民)을 그려나 보았던가.
아하, 한 옛날의 영화(榮華)에 고별(告別)하는 성채(城砦)여,
대자연(大自然)의 세례(洗禮)에 오열(嗚咽)하는 시민(市民)이여!
울기를 그치고 웃기도 그만두어라,
힘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무엇이다.
그렇다 힘이다! 지나간 옛날을 탈환(奪還)함에는 오직 커다란 힘이 있을 뿐이다.
아, 인류(人類)여, 여명(黎明) 전(前)에 선 저 동경(東京)의 비장(悲壯)한 울음소리에 고요히 듣는 귀를 가져라.
―대진재(大震災) 나던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