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청계천! 경성의 한가운데를 동서로 꿰어 흐르는 청계천!

이 청계(淸溪)란 이름이 어떻게 아름다운 것이냐. 그러나 이 이름 좋은 청계천은 청계(淸溪)가 아니요 탁계(濁溪)이다. 오계(汚溪)이다. 검고도 불그스름한 진흙 모래밭 가운데로 더러워진 끄나풀같이 거무충충하게 길게 흘러가는 그 곤탁(涃濁)한 물을 보고야 누가 청계라 말하겠느냐?

이름 좋은 청계천은 경성 삼십만 생령(生靈)이 더럽혀놓은 구정물이란 구정물을 다 받아내는 길이다. 약을 대로 약아버린 도회인의 땟국은 다 그리로 흘러 들어간다. 대변, 소변, 생선 썩은 물, 채소 썩은 물, 곡식 썩은 물, 더럽다 하여 사람이 버리는 모든 오예(汚穢)는 다 그리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도 도회인은 이것을 청계천이라 한다. 신경이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도회인은 오히려 청계라 한다. 청계라 부르면서 아무 모순도 부조화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중얼대며 영순(英淳)은 청계천의 북쪽 천변을 걸어간다.

때는 첫 봄날 석양이었다. 목멱산과 인왕산 봉우리를 연결한 선의 중간쯤에 걸린 해는 오히려 청계천 북쪽 천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가끔가끔 내 위로 불어 가는 바람에는 겨울의 추위가 아직도 섞이었다. 그러나 천변에 늘어선 집의 벽에 반조(反照)된 광선에는 봄다운 따뜻한 맛이 있다. 이 천변을 왕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양지의 따뜻함을 탐함인지, 그늘진 남쪽 천변으로 다니는 사람이 극히 적어 보였다. 참으로 꼭 남쪽 천변에 볼일이 있는 사람이라야만 그쪽으로 다니는 듯하였다. 그리고 내로 향하여 오탁(汚濁)을 흘려버리는 도랑과 수채의 어귀에는 삼동을 두고 얼어붙은 고드름이 아직도 녹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더러운 것이란 더러운 것이 다 흘러 들어가도 그래도 청계이니라 비웃느라고 입을 벌리며 혀를 쑥 내민 것처럼 보였다.

‘옳다! 그래도 청계천이다! 다른 의미에서 청계이다. 장안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서의 청계천이다. 북악, 목멱, 인왕의 골짝과 골짝의 바위틈에서 샘솟아 흘러내릴 때의 물 그것들은 물론 알았다. 이러한 땟국 섞인 물이 아니었다. 바위틈으로 혹은 나무뿌리 밑으로 새어나올 때의 정(淨)한 것은 벌써 얼어버리었다. 경성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얼어버리었다. 그러나 모든 더러운 것을 받아 가지고도 아무 불평도 없이 그대로 흘러간다.’라고 또 중얼댔다. 기울어가는 해는 아무 미련 없이 따뜻한 볕을 한꺼번에 흠씬 주고 가려는 것처럼 호득호득하였다.

영순은 어느덧 관수교에 당도하였다. 다리가 앞에서 바로 뚫려 보이는 창덕궁 돈화문의 주토 (朱土) 빛이 석양의 엷은 광선을 비듬히 받아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먹줄로 퉁긴 듯이 반듯한 신작로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희끗희끗 드문드문 보였다. 그는 다시 북을 향하고, 전차 다니는 종로길로 나섰다.

‘청계천! 청계란 말이 어떻게 아름다운 말이냐? 아귀 같은 이, 삼십만 되는 인종이, 허위의 권화(權化)인 도회인이 삼각산을 향하여 모여들기 전의 청계천! 오백여 년 전의 청계천! 그것은 북악 바위틈에서 흐르는 그대로 목멱의 나무뿌리 밑으로 숨어 나온 그대로 인왕의 잔딧풀을 목욕시킨 그대로의 맑은 물이 흰모래 틈으로 굽이굽이 감돌아 논(沓) 도랑 사이로 밭 언덕 밑으로 고기 새끼를 놀리며 흘러가던 청계천! 아! 어떻게 아름다웠던 청계천이냐?’라고 또 중얼대었다.

그는 다시 동대문 쪽으로 향하여 걸었다. 거무스름한 성문의 윤곽만이 넓고도 무디게 커브를 그린 큰길 끝에 우뚝 서 보였다. 전차는 경종을 땡땡 울리며 레일을 긋고 굴러갔다. 자동차는 뿡뿡거리며 가솔린과 먼지를 내뿜고 달아난다. 우차, 마차는 덱데굴덱데굴 굴러갔다. 인력거 끌고 가는 이의 헐떡이는 소리가 들린다.

‘청계천! 이름 좋은 청계천! 청계이면서도 땟국만 흘러가는 청계천!

그러나 이 땟국인 청계천이 흘러 들어간 도도한 한강물이 오탁하다고 누가 말하겠느냐? 다시 한강이 흘러 들어간 양양(洋洋)한 대해(大海)를 누가 오지(汚池)라 말할 수 있겠느냐?

옳다! 큰 것 앞에는, 절대의 큰 것 앞에는 오(汚)도 청(淸)도 없다. 탁(濁)도 정(淨)도 없다. 악도 선도 없다. 절대의 큰 것으로 돌아갈 때에는 죄도 악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선이란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다만 본연한 그것을 절대의 큰 것이 용납하여준다. 저 대양(大洋)이…… 저 대해(大海)가…… 저 대하(大河)가 청과 탁을 의식적으로 가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라고 중얼대었다.

털목도리 댄 외투를 모가지까지 깊숙이 무릅쓴 신사가 지나간다. 가마니 자락을 어깨에다 망토 두르듯 두른 거지가 양지에 웅크리고 앉았다. 조바기 쓰고 비단 두루마기 입은 분 바른 미인이 향수 냄새를 풍기고 천천히 걸어간다. 보통이를 머리 위에 인 노파가 굴러오는 전찻길을 바쁜 걸음으로 가로 건너간다.

영순은 종로 4정목(町目) 전차 교차점에 이르렀다. 다시 창경원 편으로 들어섰다. 전매연초공장의 연와(煉瓦)담이 감옥처럼 보였다. 연초 냄새와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굴이 핼쑥한 직공들이 변도 그릇을 끼고 길로 걸어 나온다.

총독부 병원 앞에 다다랐다 . 약 냄새가 나는 듯하였다. 병인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 간호부 떼가 포플러나무가 늘어선 병원 안 언덕길에서 내려왔다. 창경원 안에서는 학의 □연(然)히 우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리고 날개 치는 소리조차 들리었다.농(籠)과 책(柵) 속에서 모든 동물의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병원 뒤 송림에서는 어둔 빛이 나오는 듯하였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

“여관으로…….”

“무엇 하러……?”

“밥 먹고…… 잠자러…….”

“무슨 밥…….”

“돈 주고 사 먹는 밥…… 턱찌끼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맛없는 밥…….”

“잠은……?”

“단칸방…… 빈대 피로 그림 그린 방! 그리고 차기가 얼음 같은 방…….”

“안 죽으려고…….”

“잠은 자서 무얼 해?”

“거저…… 잠이 오니까.”

“안 죽어 무엇 해?…….”

“살려고…….”

“살아 무엇 해…….”

“거저…… 모르지…….”

영순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거저 다…… 거저 살아가려 함이다!’

라고 중얼대었다.

또 발을 멈추었다. 창경원 궁장(宮墻)에는 아직도 해가 환하게 비쳤다. 반사하는 광선에 눈이 부시어 머리가 횡횡 내둘리는 듯하였다. 이렇게 열병 환자처럼 초와 분으로 변하여 냉열무상(冷熱無常)한 영순의 머리에는 무엇이 물굽이 치고 있었을까?

그는 또다시 물었다. 그러나 이 문답은 영순의 마음밖에는 아무도 아는 이 가 없다.

“그러면 너는 턱찌끼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맛없는 밥을 먹는 그것만으로도 살기만 하러 가면 만족하겠느냐?”

아니다 나는 “ ! 좀 더 맛있는 것을 원한다. 고량진미를! 천하의 감지(甘旨)를 먹으려 한다.”

“빈대 피로 그림 그리던 단칸방으로도 만족하겠느냐……?”

“아니다. 나는 아방궁 같은 집을 원한다. 고대광루(高臺廣屢)를 원한다.

동화에 나오는 호박 주추에 산호 기둥을 세운 용궁 같은 집을 원한다.”

“너는 언제든지 고독을 원하느냐?”

“아니다. 온 천하의 미색을 내 앞에 두기를 원한다. 양귀비를, 클레오파트라를…….”

“너는 언제든지 무명인 영순으로 만족히 여기느냐?”

“아니다. 나는 이 못난 영순으로는 있기 싫다. 마호메트와 같이 씩씩하게! 불타와 같이 자비하게! 야소와 같이 비장하게…… 그러한 이름을 가지고 싶다!”

가가대소하는 소리가 영순의 마음의 귀에 들리었다.또 두어 걸음 걸었다.

다시 문답이 시작되었다.

“너의 지금 먹는 것은 무엇이냐? 또 자는 곳은 어디냐?”

“먼저 말한 바와 마찬가지다! 턱찌끼나 다름없는 밥! 빈대 피로 그림 그린 단칸방! 그것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

“나 혼자다. 만일 다른 무엇이……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하면 벽에 붙은 유화의 미인이다……. 그 풍만한 육체를 가진…….”

“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누구이냐?”

“집 주인, 회사의 동료, 약간 알고 지내는 친구들…… 그 밖에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너는 어떻게 먹고 사느냐?”

“벌이해서…… 월급을 받아서.”

“월급은 얼마……?”

“겨우 한 달 동안에 식은 밥덩이나 얻어먹을 만큼, 또는 피곤한 몸에 하룻밤의 휴식을 줄 만큼.”

영순은 생각하였다. 이 어떻게 비참한 자기의 현실이냐고, 그리고 모순이냐고…….

그에게는 산해의 진미가 보였다. 금전옥루(金殿玉樓)가 비추었다. 천하의 미인의 아양 부리는 얼굴이 나타났다. 역사가 보였다. 위인의 화상이 보였다. 찬송가가 들리었다. 염불 소리가 들리었다.

이것이 모두 영순에게는 환영이었다. 그가 거의 병적으로, 발작적으로 보던 환상이었다. 그리고 다시 더욱 분명히 눈에 나타나는 것은 그가 매일 다수히 주무르는 금고에 가득한 돈이었다. 지화(紙貨) 뭉치였다. 그는 그것을 종로 네거리에서 내어 뿌려보았다고 생각하였다. 바람에 날리어 이리로 저리로 날아 흩어졌다.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덤비어들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거지도, 부자도, 신사도, 학생도, 미인도, 노동자…….

영순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떠한 나라에 방황하는 듯하였다. 자기가 다리를 붙이고 선 곳이 어디인지를 거의 의식하지 못할 듯하였다. 그는 이만큼 머리에 혼란을 느끼었다. 다시 부르짖었다.

‘섣부른 양심을 버려라! 미숙한 생활욕을 끊어버려라! 그리하여 그 양심과 생활욕을 뒷동산 양지 끝에 꽝꽝 단단히 파묻어라!그리고 한 번 놀아보자!’라고…….

그는 발을 돌이켜 창경원 앞길의 정적을 버리고 종로통의 열시(熱䦙)로 다시 향하게 되었다.

영순은 이와 같은 혼란한 태도로 거의 발작적으로 따라가는 곳은 어디일까? 또는 무엇 하러! 창경원 연못에서 나는 학의 울음이 길게 들리었다. 차차 길어가는 초봄 해도 벌써 서편 하늘에서 그 얼굴을 감추어버렸다.

영순이가 이와 같이 발작적으로 흥분하여 무의식적으로 따라간 곳은 그가 근무하는 회사였다. 그 회사는 어느 개인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영순은 그 회사의 충실한 사원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관으로 돌아가던 영순이 무슨 까닭으로 다시 그 회사로 발길을 돌이켰을까? 더구나 무의식적으로…… 발작적으로…… 어찌하여? 몇 시간 뒤에 연출한 영순의 행동이 그렇게 발길을 돌이킨 이유를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영순은 밤이 깊으려 할 때에 종로 네거리에 나타났다. 종로경찰서의 탑상(塔上) 시계 장침은 Ⅹ를 가리켰다. 단침은 Ⅸ를 가리켰다. 영순은 저 한 사람뿐이 아니다. 동료 이, 삼인과 함께 남대문통으로 무엇이라 떠들며 걸어갔다. 거들며 걸어가는 영순의 모양은 극히 흥분해 보였다.

“그런데 여보게 자네, 오늘 저녁에 웬일인가?”

라고 묻는 친구의 말이 들리었다.

“웬일이란 무슨 말이야. 사람이란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게지……. 영순, 나는 벌써 전달 영순이가 아닐세…….”

라 대답하는 흥분한 영순의 말소리가 들리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걸! 내일은 해가 아마 서쪽에서 떠오를걸!”

또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었다.

“왜?”

라 하는 것은 흥분한 영순의 반문하는 소리였다.

“어디로 가나……?”

“S관으로 가서 한잔 먹세그려.”

이러한 문답을 하면서 걸어가는 영순 일행은 남대문통의 포도(鋪道) 한편을 거의 차지하였다.

그들은 S관 요릿집으로 들어갔다.

요릿집 휘황한 전등불 아래에 나타난 영순은 참으로 전날에 볼 수 없던 영순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로워졌다. 얼굴빛조차 창백하게 변하였다.

그는 때 묻은 떨어진 양복을 입고 사무상(事務床) 앞에 높은 걸상에 걸터앉아서 주판을 놓고 장부를 끼적거리던 영순으로는 아니 보였다. 중역 앞에서

“네. 네.” 하며 머리를 수그리던 그이로도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에서는 보석 반지가 번적거리었다. 가슴에는 쇠사슬 같은 시곗줄이 걸리었다. 털댄 외투로 깊숙이 싼 목은 불독의 대가리처럼 험상스럽게 보였다. 새 외투 자락 밑에서는 가메날 구두가 반작거리었다.

그들은 특별히 조용한 방을 찾아 들어갔다.

요릿집 보이들의 눈이 이상스럽게 반작거리었다. 보이들도 영순과 같이 머 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새것으로만 차린 손님을, 그렇게 고귀한 것으로만 차린 손님을 아마 그렇게 용이하게 볼 수 없는 듯하였다.

기생을 불러왔다.

음식이 들어왔다.

술을 먹었다.

취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 모든 것을 영순 한 사람 외에는 다 의아로 여기었다.

영순은 술이 취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휘휘 내둘려 뵈었다.

그는 혀 고부라진 소리로 말하였다. 기생들에게 향하여,

“이아! 너희들 좋아하는 게 무어니? 세상에서 제일 말…… 이다…….”

술을 따르려고 병을 손에 들은 기생이, 그중에서는 제일 얌전하여 보이는 기생이 빙긋 웃으며,

“좋아하는 것은 알아 무얼 하세요? 어서 약주나 잡수세요…….”

라 하였다.

이 말소리가 난취(亂醉)한 영순에게 어떻게 들리었을까? 그 보드라운 목소리가……. 영순은 술을 한숨에 들어 마시고 더운 숨을 확 내품으며 새삼스럽게 기생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너는 누구라 했지……. 무엇 홍련(紅蓮)이? 애는 옳지! 난향(蘭香)이? 그리고 또 저 애는 무엇이라 했지? 옳지! 옥섬(玉蟾)이? 응…….”

“약주 취하셨네…….”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야?”

“그것 알아 무엇 하세요?”

“내가 말할까. 돈? 돈?”

“나리는 돈을 싫어하십니까?”

“옳다! 옳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데 있겠니? 너희들 아는 범위 안에서는…… 말이다.”

“그런 말씀은 그만두세요!”

“그만두어……? 하…… 하…… 이 애들아! 너희들도 돈이 많이 있었더라면 모모한 집 아가씨란 말을 들었지……. 또는…… 뉘집 영부인…… 뉘집 마님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겠지! 돈이지! 돈이지! 돈만 있으면 그만이지……?”

“그만두세요! 왜 그렇게 쑥스러우세요?”

“쑥스러워? 돈 말하는 것이?”

영순은 양복 포켓에 손을 집어넣었다. 집어넣던 손이 조금 떨려 나왔다.

그 손에는 지화 뭉치가 쥐였다.

그는 그 뭉치로 요리상을 한 번 탁 치며,

“이것이 돈이지! 이 돈을 가져보려무나……. 응…… 속가(俗歌)에 그런 노래가 있지. 잘나고도 못난 놈, 못나고도 잘난 놈…… 잘난 년도 못난 년, 못난 년도 잘난 년! 이게 어떻게 무서운 말이야! 이게 어떻게 인생의 타락을 그대로 폭로시킨 말이야.”

라고 연설구체로 부르짖었다. 방 안이 조용하였다.

“자네 너무 취했네.”

한 벗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 역시 취한 소리였다.

“자! 이것을 나 혼자 가져! 너희들이 가장 신용하는 이것을. 아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절하는 이것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것을 집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영순은 그것을 보고 다시 부르짖었다.

“그래도 너희들에게는 노력 이외의 부정한 것을 취치 않는다는 양심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여보게 여보게 “ , , 자네 취했네! 취했어……. 이게 무엇이람! 사람을 모욕을 해도 분수가 있지!”

라고 친구가 말하였다.

영순은 허허 웃으며 부르짖었다.

“자네들에게도 모욕이란 관념이 있나? 모욕을 느낄 감관(感官)이 있나?

기적일세! 내가 말하는 모욕? 어떠한 돈이 명예? 재산이란 어떤 것인 줄 아나? 프루동이 무엇이라 했나?”

“이 사람이 정말 취했나? 대체 돈이 어데서 그렇게 난다……?”

“말할 것도 없지! 훔쳤네, 훔쳐!”

이 영순의 훔쳤다는 말이 그들에게 어떻게 큰 경이를 주었으랴? 그리고 또 지금까지의 의문을 어떻게 쉽게 해답함을 어땠으랴?

영순은 또 부르짖었다.

“놀라지 말게! 여러 벗이여! 나에게 금강석 지환이 무슨 상관이 있나? 이 손가락을 보게! 주판알을 퉁기느라고 못 박힌 이 손가락을 보게! 또 나에게 백금 시계와 황금 줄이 가당이나 있는 말인가? 한 달에 겨우 밥값도 잘 벌지 못하는 나에게, 그리고 이러한 의복이 날마다 팥죽땀을 흘리는 나에게 얼토당토않는 과분의 것일세……. 나도 그렇게 알아왔고, 세상 사람도 다 그렇게 알지 않나? 그러나 나는 도적질한 결과로, 재산이란 것이 나의 손에 들어온 결과로 이 세상의 부자 녀석들이 하는 이러한 호윤(豪潤)한 생활을 사치스러운 향락을 다만 일시라도 맛본 것일세! 이러한 향락! 이런 사치, 인류의 타락한 생활을 도절(盜竊)한 재산의 결과로 해보았네! 그러나 도적질하는 데에도 그 수단 방법이 교묘할수록 이러한 향락, 이러한 사치를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일세! 나는 수단이 재미스럽지 못하였네! 방법이 틀렸었네! 그러니까 요만한 향락과 사치를 하룻밤밖에는 못 누리게 될 것이로세! 알았나? 응……. 나는 오늘 밤에라도 이 밤보다 더 캄캄한 뇌옥(牢獄)으로 들어가게 될는지 알 수 없네! 물론 들어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지!

이러한 인류의 타락을 스스로 기뻐하였으니까? 그러나 방법 수단이 교묘한 자가 그대로 있는 것은 좀 알 수 없는걸! 허…… 허…… 이 애 기생들! 그 돈을 집어라! 아무 말 말고……. 이야, 너희들이 장안 한가운데로 흘러가는 내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청계천이다! 너희들이 부르는 시조 가운데에서 볼 수 없는 청계다! 구정물이 흘러도 청계다! 희껌장이 흘러도 청계다! 희 껌장이나 구정물이 흐른다고 청계를 탁계나 누계(漏溪)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세상이란 모두 그러하다! 내가 주는 돈을 싫다고 도적질을 한 돈이라니까.”

영순은 여기까지 한참 동안이나 말하였다. 그리고 더운 숨을 내뿜었다.

방 가운데 모든 사람들은 어떠한 영문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영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옳지! 부자의 가진 돈! 세상 사람이 지금 내가 가진 돈과는 다른 것으로 만 여기고, 모두 절하고 받아 갈 것이다. 아니다. 절하여 주기를 원할 터이지! 하…… 하…….”

방 안에 험악한 기운이 물굽이 쳤다. 모든 사람들은 얼굴빛이 확실히 변하였다. 그들은 오늘 밤의 모든 것을 불행한 신수로 여기었다.먹은 것을 될 수 있으면 게워서라도 내놓고 싶었다.

그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 “나는 가겠네…….” 하고, 비틀걸음을 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영순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보내었다. 또 한 사람이 그와 같이 나가버렸다. 기생들도 하나씩 둘씩 다 나가버렸다. 남은 것은 영순과 낭적(浪籍) 한 배분(盃盆)뿐이었다. 영순은 혼자 중얼대었다.

“아! 무엇에게 단단히 붙들린 자들아! 그만두려무나! 탁계인 청계천도 한강에 들어가면 맑아지고, 대해로 들어가면 더 맑게 보인다. 대자연 앞에는, 절대의 큰 것 앞에는 선도 악도 없다! 내가 오늘 한 일은 틀림없이 죄악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대자연은, 절대의 큰 것 그것을 용서할 것이다! 그러함에 이를 때는 정화하여줄 것이다……. 아! 모르겠다……!”

보이가 들어왔다. 영순은 돈을 손에 집히는 대로 한 줌 쥐어주었다.

그는 비틀걸음을 걸으며 S관을 나왔다.

밤은 이미 깊었다. 찬바람이 휙휙 귀를 따리며 불어갔다. 전찻길 곁에 포도로 나왔다. 보기 좋게 늘어선 가등(街燈)이 찬 밤을 고요히 지키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영순의 곁으로 시커먼 무엇이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내밀며 따라왔다.

“나리! 돈 한 푼 줍시오! 돈 5전이 없어서 구세군에 가서 못 잡니다. 한푼 보태줍시오! 나리! 으흥…….”

라고 우는소리인지 떠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이것은 부대 조각으로 등을 덮은 걸인이었다. 이 걸인 뒤에는 또 검은 그림자가 하나 따랐다.

영순은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배고픈 소리로 말하였다.

“네가 거지로구나! 동물 중의 못난 것 가운데에 제일 못난 거지? 제일 유순한 거지? 제일 비겁한 거지지? 그렇게 애걸할 것 무엇이냐? 이 세상에는 더운밥이 어떻게 많이 있는 줄을 모르겠니? 따뜻한 잠자리가 어떻게 많이 있는 줄을 모르겠니? 이렇게 구걸을 아니하여도 밥 얻어먹고 잠잘 도리는 얼마든지 있어…… 돈.”

이때에 “여보! 어데 가?” 하고, 영순의 팔을 단단히 붙드는 이가 있다.

영순은 거지를 보는 눈을 돌리어 팔 붙드는 이를 보았다.

“어디 가? 이리로 좀 와! 조사할 일이 있으니…….”

이렇게 말하는 이는 누구였을까? 말할 것도 없이 행색 불심(不審)으로 뒤를 밟은 관헌이었다. 영순은 벌써 알았다.

한편 손을 포켓 안으로 집어넣었다. 집어넣은 손은 무엇을 쥐었을까! 그에게는 촌철(寸鐵)이 없었다. 포켓에서 쑥 잡아 빼는 손에는 지폐 뭉치가 쥐었다. 그는 그것을 공중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거지! 저것을 집어라! 그리고 미즉한 생활욕을 버려라! 부패한 인생을 타락한 인생을 구할 것은 저것을 버리는 것이다! 부패한 자야! 타락한 자야! 저것을 집어라! 어서…….”

지화 뭉치는 전신주에 탁 부딪치며 우수수 하며 떨어졌다. 떨어진 그것이 찬바람에 날리었다.

“어서 주워라! 집어라! 너를 구할 다만 하나의 저 돈을!”

그러나 걸인은 번적거리는 관헌의 눈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벌벌 떨며 섰다.

관헌의 호각소리가 휙…… 호르륵 났다. 돈은 바람에 더그럭 바삭바삭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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