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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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졌다!

이 소리는 찌는 듯한 고열과 썩은 증기 속에서 온종일 볶이던 시민에게 얼마나 반갑고 기운나는 소식이랴. 남산과 북악산, 그 사이 바닥에 놓여 있는 경성 장안의 복판 위에서 견디어 보라고 하는 듯이 불발을 내려 쏟는 해가 새 문 밖 금화산(金華山) 머리를 넘으면, 경성 거리에는 사람들이 우적우적 나와서 행인의 수효가 졸지에 많아진다.

그 무서운 해가 인제야 졌습니다그려! 피차에 이런 말을 하는 듯한 얼굴로 서늘한 세모시 주의(周衣)를 입고들 나서서 느릿느릿 천천한 걸음걸이로 걷는다. 그러면

“자 들어오시오!”

하고, 녹음의 집 탑동 공원의 둥근 전등은 반짝 켜진다. 좁고 복잡하고 먼지 많은 훗훗한 속에서 삶는 듯한 더위에 괴로이 지내면서도 가깝게 땀 들일 곳 조차도 가지지 못한 경성 시민에게 참말로 이 탑동 공원은 좁으나마 얼마나 귀엽고 서늘한 중보로운 마당이랴.


K와 내가 야시에서 과물을 사 가지고 공원으로 들어가기는 9시 가까운 꽤 어두운 때이었다.

문을 들어서면서 벌써 몸은 푸른 그늘에 들고 가볍고, 상긋한 양미(凉味)가 마음에 숨기기 시작하는데 ㅡ 팔각정을 향한 중앙의 곧은 길로, 좌우에서 쭉쭉 뻗은 벚나무 그늘 밑으로 길에 가득한 나뭇잎 그림자를 밟으면서 걷는 맛은 마치 서늘한 버들 밑의 못〔池〕 물을 헤엄치는 것 같다.

물방울이 떨어질 듯이 수기(水氣)에 젖은 잎에 전등 불빛이 부딪쳐서 인화보다도 푸르게 빛나면서도 잎 뒤 나무 그늘은 캄캄할대로 캄캄하여 그것만으로도 정취(淸趣) 깊고 양미(凉味)가 뚝뚝 돋는데 그 나무 그 잎 그림자가 부드럽게 가볍게 불면 날아갈 듯이 땅 위에 어른어른 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그 곳에 앉아서 놀고 싶게 마음이 켕긴다.

밟으면 부서질 듯 싶어 애처러운 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가노라니까, 어느 때 왔던지 벌써 귀로를 밟는 부인 한 분이 소녀 한 사람을 데리고 팔각정 모퉁이에서 이리로 향하여 자태조차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청초한 흰옷 위에 그 부드러운 나뭇잎 그림자가 서늘하게 어른거리다가 때때로 하얀 얼굴에까지 어른거리는 모양은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가경이었다.

밤이니만큼 팔각정은 더 커 보이고, 더 고물같이 보이며, 우중충하게 백의 인 십인(白衣人十人)을 태우고 우뚝이 서 있고, 그 둘레에 둘러 깔린 잔디 위에는 전등불 빛이 흘러서 질퍽하였다. 젊은 중학생, 전문 학생, 신사, 갓 쓴이, 양복쟁이, 가지가지의 사람이 단장도 끌고, 부채도 들고, 횡적(橫笛)도 들고 누구를 찾는 것처럼 천천히 빙 돌고들 있었다. 아무 때 와 보아도 이 공원은 어느 저택의 정원같이 생각되는 곳이다. 앉을 곳이 적고 갈 곳이 없고 하여, 잔디밭 가의 나무 그늘로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 생각을 두텁게 한다. 이 공원 어느 구석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으면 후원을 거니는 기분은 더 충분할 것이다.

우리들은 팔각정 앞에서 서편으로 꺾이어 나무 그늘로 빠져서 연못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나 연못가 덩굴 밑 벤치에 앉았다. 경성 학생들이 이 연못을 불인지(不忍地)라 부르고, 그 다리를 추월색 소설(秋月色小設) 껍질에 있는 관월교(觀月橋)라 부르는 것도 젊은 학생의 짓다워서 재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네는(그들은) 항용 오늘 저녁,

“몇 시에 관월교에서 만나세.”

하고는, 이리로 모여서 다시 출발을 한다는데, 오늘도 휘문의 교복을 입은 학생 한 사람이 못가에서 금어를 장난하고 있었다.

이 곳에 잠깐 앉았는 동안에 몇 사람인지 모르게 우리의 앞을 지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뒷짐진 손으로 단장을 끌면서 다리를 지났다.

언뜻! 저쪽 모퉁이 요릿집 가까운 구석 나무 그늘에 다 썩어진 소나무 토막에, 트레머리 검은 치마의 젊은 여자 한 사람과 양복 입은 키 큰 신사 하나가 정답게 앉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으로 하여 그 곳 정경은 퍽 어울린 감이 그윽하였다. 그랬더니 웬일인지 여자는 수건으로 눈을 자주 씻는 모양이었다. 웬일일까? 하는 의심과 호기심이 벌컥 우리에게 일어났으나, 더는 아는 수가 없었다. 앉은 키로도 몹시 커 보이는 양복 입은 신사는 민망해 하면서 좌우를 자주 둘러보고 있었다. 여자는 그냥 고개를 수그리고, 수건으로 눈만 주무르고 있었다. 그 곳이 연못가이니만큼 흥취 있는 일 장면이였으나, 양복 신사가 자주 우리를 보는 것이 미안하여서 우리는 그 곳을 떠났다.

연못 북편 가의 이층 일본집은 승리(勝利)라는 양요릿집이었다. 아이스크림 얼음 채운 맥주를 , , 하절 한철에는 파느라고 모가지에 분칠한 일녀(日女)가 유리창으로 방긋방긋하지마는 비싸기도 할 뿐외(外;아니라), 집이 시원하게 탁 트이지 못하고 어떻게 깊고 갑갑한 듯싶어서 들어가는 이는 별로 없는 집이다. 우리는 그 모퉁이를 돌아 팔각정으로 훤하게 통한 길로 나서려니까, 거기 널빤지 걸상에 사진사 최(崔)와 함흥의 김(金)이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야! 어디서 오시오?”

하고, 일어난다. 우리는 넷이 합쳐서 널빤지 걸상에 앉아서 과물을 먹기 시작하였다.

여기는 요릿집 앞, 조그만 소나무 한 주가 섰고, 그 옆에 이름 모를 잎 잘 고 키 큰 나무 밑에 앉아서, 팔각정이 비슷이 보이는 곳이다. 앞에는 길가의 말뚝 같은 소나무 토막이 두 개가 받쳐 있고, 여기 앉아서 팔각정을 바라보면 거기 남모르는 그윽한 맛 있고, 풍정 있는 딴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팔각정 속 천정의 오래된 고식(古式)의 등이 달려 있고, 오랫동안 소제를 하지 아니하고 두어서 거미줄이 엉키고, 먼지가 그득히 앉고, 묵을 대로 케케 묵은 고등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다. 그것이 이 승리라는 요릿집 앞 소나무 옆, 키 큰 나무 밑 널조각 걸상에 앉아서 보면, 정자 기둥 위에 가로놓인 굵은 나무 위 장식이 난간 틈으로 조금 보여서 컴컴한 속에 그 등의 유리가 반품(半分)쯤 보이는 것이 마치 어느 산밑 외로운 초당이나, 어느 대가 후원(大家後園)에 따로 떨어진 초당 미닫이의 다정한 추등(秋燈)이 은연히 비치는 것같이 보인다. 보면 볼수록 그렇게 보여서 어린 때에 자주 듣던 과거 보러온 소년 재사가 경성 어느 대가의 후원에서 초당에서 공부하던 처녀와 인연을 맺는다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은연히 보이는 그 등이 꼭, 초당 미닫이의 등불이 환하게 비친 것같이 보이고, 그 방 속에 깨끗한 처녀가 있어서 글 읽는 낭랑한 소리가 들리는 듯 들리는 듯도 싶고, 또 어떻게 하면 그 방 미닫이 앞에 남녀의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는 것 같기도 하여 거기에는 다른 정다운 시 같은 이야기의 세상이 보인다.

최(崔)는 물끄러미 보다가,

“아! 시골집 생각난다!”

고 하였다. 여기서 이렇게 자꾸 보고 있으면 벌써 낙엽지는 감상의 가을 같은 기분이 가슴을 덮는다.

밤이 꽤 깊었다.

열 시가 지나면 이 공원에는 약속한 듯이 사람들이 더 많이 쏟아져 들어온다 야시를 한 바퀴 돌아오거나 . , 저녁 일을 보아 놓고 오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다.

그 중에 객을 낚는 매음녀나, 값싼 기생도 이 시간쯤 되어 싸여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곳을 떠나 석탑의 옆을 지나, 공원의 북문 앞 서편 구석의 잡초밭에 서 있는 쓸쓸하고 컴컴한 정자를 엿보았다. 거기는 한 구석이고 쓸쓸하고 거치른 까닭인지, 낮이면 이 근처에 노동 역부들이 모여 앉아서 각처의 벌이터 이야기와 경험담 바꾸는 곳으로 어느 틈엔지 저절로 된 것이라, 어디 직공, 고학생 십여 명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 판을 차리고 어떤 양복한 그 중에 조촐한 40쯤된 남자가 연해 자주 입을 놀리면서 미국으로 벌이 갔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열심으로 근청하고 있다. 천장에는 새까만 전깃줄이 있으면서도 전등은 없이 허연 갓만 매달려 있고 그 밑 좌석 중에서는 때때로,

“그래 거기서는 무엇들을 먹고 사나요. 하루에 얼마씩이나 버나요.”

하고는 답답스런 문답을 열심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 어쩐지 마음을 처연(凄然)케 한다. 팔각정, 양식집, 조그만 공원의 속에서도 이 정자에는 투철히 다른 세상을 열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다시 동편으로 석탑 뒤를 돌아서 음악당 옆으로 갔다. 서늘해 보이는 음악당과 전등은 뎅그러니 비어 있고, 그 뒤에 등(藤)덩굴 밑에는 모시 옷 입은 이가 많이 앉아 있었다. 등덩굴의 한 부분을 차지하여 마당을 덮고도 시침을 떼고 있는 승리옥의 출장점은 그래도 조금 서늘하여 보였다. 우리는 그 집의 앞에 역시 널조각 걸상 위에 트레머리 여학생과 양복 신사가 다정히 앉아 있는데, 양복 신사의 키 큰 것을 보니까, 아까 연못가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던 패이다.

이상도 하지. 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여자가 신사의 팔을 툭 치더니, 신사는 얼른 궐련을 꺼내어 여자에게 바치고, 여자의 코 끝에 연기가 모락모락 오른다. 무얼까? 하는 의심이 금방 나다가 매음녀라 단정하고 말았다. 울기는 왜 울었을까? 그것을 알 까닭이 없거니와 키 큰 신사의 과히 상냥스럽지 않은 얼굴이 퍽 딱해 보였다. 지나가는 양복쟁이마다 이 두 남녀를 유심히 보고는 지나갔다. 두 남녀는 그런 것은 본 체도 아니 하였다. 신사는 기나긴 다리를 쭉 뻗은 사이로 두 손으로 단장을 짚고 앉아서 땅만 보고 있고,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는 여자는 쉴 새 없이 속살속살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저렇게 하는가 싶어 까닭없이 궁리하였으나, 알 길이 없어 앉았노라니까, 캡을 쓴 주의(周衣) 청년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꼴을 보더니 무슨 물을 말이 있는 듯이 그 남녀의 앞으로 삼척쯤 가까이 가서 기착태세 를 하고 (氣着態勢) 딱 서서 자꾸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그 후로 지나가던 학생이 또 그 뒤로 가 서서 보고 있었다. 불의의 침습자(侵襲者)를, 남녀는 일시에 보았다. 그러자 키 큰 신사의 고개는 다시 숙이고, 여자만 눈을 말똥말똥 뜨고 마주보았다.

한참이나 서로 맞보다가 캡 쓴 청년이 그냥 가던 길로 가 버렸다. 그러니까 나중에 온 학생도 슬그머니 가던 길로 가 버렸다. 최도, 김도, 픽픽 웃었다 텅 빈 집 음악당의 전등만이 무심히 빛나고 있었다.

“이 뒤로 해서 슬슬 돌아가 봅시다.”

하고, 우리는 그 곳을 또 떠났다.

이 공원의 동편 담 밑은 어두컴컴하고 움푹한 곳이라, 때때로 이야깃거리가 이 곳에서 생긴다.

공원의 동문 부근으로부터 귀비(龜婢)가 서 있는 곳까지의 컴컴한 곳에는 전등이 간신이 새어 들어올 뿐이어서 양영(凉影)이 만지(滿地)하여 참으로 그늘의 천지라, 가지마다 주의(周衣)가 걸렸고, 그늘마다 사람이 열지어 있는 중에 서늘하게 분장한 젊은 여인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모르는 남자에게 담뱃불을 청하여 수작을 거는 곳도 이 곳이라, 그래서 남자가 꼬이는지, 남자가 꼬이니까 그것이 모여드는지, 여하튼 여드름 흐르는 양복쟁이나, 분 바른 매음녀는 들어만 서면 이 편으로 쏠린다 한다.

바로 거기서 정문으로 나올 것이나 아직도 이 공원 안에 정취 있는 곳이 두 곳이 남았었다. 정문과 팔각정 사이에 서편으로 뚫린 길이 둘이 있는 중에, 첫째 길은 화초 온실 앞을 지나 변소로, 연못으로 가는 길이니 정문으로 들어오다 가나, 나가다가 이 길로 꺾이어 들어서면 이 공원에서 제일 밝고, 제일 고요하고 아늑한 다른 세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정자도 아니고, 그늘도 아니지마는 그 길을 꺾어 들어서면, 바로 거기 바른손쪽으로 철책(鐵柵) 안에, 전등 불빛이 몹시 찬란하고, 탐탁하게 비치는 풀밭이 있으니, 거기는 키 큰 잡목에 에워싸인 두 칸쯤 되는 곳에 단풍나무가 한 주, 소나무 두어 주가 서 있고, 그 밑에는 수척이나 자라서 나팔 주둥이처럼 보기 좋게 늦은 화초가 여러 포기 아늑하게 조용히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서 있는 전등 불빛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이 곳에만 쪼이는 것 같아서 그 빛이 찬란하기 짝이 없고 누구라 이 옆에 모여 떠드는 이도 없어서 그윽히 조용하고, 그윽히 아늑하여 이 복잡한 공원 안에 이 곳만은 딴판으로 즐거운 꿈나라에 포근히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이 복많은 천지에 태어난 다복한 분들이 고개와 고개를 맞대고 소곤소곤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로서는 그 다복한 속살거림을 자꾸 듣고 싶게 된다.

우리는 한참이나 여기서 철책을 붙잡고 서서 부러운 듯이 보고 있다가 다시 발을 옮겨 그 길로 조금 더 나가서, 화초 온실을 지나 그 길 위편에 있는 정자에 이르렀다.

이 정자는 전년에 어느 말 잘하는 친구가 매일 매야 이 곳에 와서 고담을 하여서, 그 고담에 맛을 붙인 사람들이 매야 무슨 사무 시간 보듯이 모여들던 곳이라, 전년의 고담사는 경찰의 취체를 받고 그 후에 자태를 안 뵈건마는 이 정자에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주의는 벗어서 턱턱 걸어놓고 자기집 사랑에 앉았는 격으로 모여 앉아서 시사의 논평을 시작한다.

ㅡ 미가(米價)는 어떻고, 어디서는 낙뢰(落雷)가 되어 인축(人畜)이 상하고 ㅡ 하는가 하면, 금시에 미국에선 금주를 하는데 그 가부를 논하고, 불란서에서는 과부가 많은데 인물은 어디가 낫고 하여, 화제가 서양으로 가는가 하면, 금시에 또 단성사 사진은 어떻고, 명치정의 곡마단은 어떻고……, 하여 화제가 귀국하는 등 근심없는 무명객들의 허튼 이야기는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면, 또 그 곳에 모든 사람들은 근청(謹聽)하는 태도로 명심해 듣고 있다. 이러다가 열두 시쯤 되면 퇴사 시간이나 된 것같아 옷을 다시 입고 헤어진다. 이렇게 하여 쫙 퍼진다. 그리고 이튿날 밤이면 하나씩, 둘씩, 모여들면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제 오십니까?”

하고, 언제 친했던 듯이 인사를 바꾸고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특별히 이 곳에 모이는 중에는 50여 세의 노인도 보이며, 때로는 단소(短簫)나 사현금(四絃禁) 타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청량한 한 곡을 듣기도 한다.

여기는 이러한 일종 이상(日種異常)한 정서의 딴 세상이 매일 열리는 것이다.

이 정자까지 방문하고 다시 돌아 정문으로 나올 때는 꽤 늦었건만 그 때도 손목을 맞잡고 들어가는 내외 같은 남녀가 있었고, 공원문 밖의 야시에는 돌아갈 준비를 차리는 상인만이 많았다.

장충단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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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탑동 공원에 비하여 자못 공원다웠다. 오후 여섯 시쯤하여 전차로 훈련원 마당 앞에서 내려서 밭과 밭 사이를 남으로 향하여 한참이나 들어가다가 파출소 앞을 지나면 벌써 공원다운 청량한 기운이 반겨 달려든다.

공원으로 가는 길 옆으로 적지 않은 깨끗한 물이 흘러 내려오고, 그 물가에서 부인네 빨래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부터가 몹시 정신나고 서늘하게 한다.

꽃밭 가진 일본인의 집을 몇 집 더 지나가면 벌써 색다른 공원의 어여쁜 경치가 눈 앞에 보이고, 차마 통행을 금지하는 말뚝 박은 어귀에 닥뜨리게 된다.

그 말뚝 어귀까지 채 가지 말고 녹색을 칠한 다리로 올라서면 공원의 연못에서 개천으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근 한 길이나 되는 높이에서 돌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느라고 희고 흰 국수발같이 갈래갈래 맑은 소리를 치며 내리는 것이 심신을 유쾌하게 하여, 전신에 솟은 땀이 일시에 걷힌다. 다리 중턱에 선 채로 서서 눈을 물에서 옮기면 여름을 모르는 수양버들이 그늘 깊은 잔잔한 연못을 이루고 있고, 숲 사이로 보이는 양옥과 벤치가 아울러 거울면 같은 못물에 거꾸로 비치는 것도 보기 드문 서늘한 경치라, 내 몸까지 물속에 있는 것 같아서, 해지는 것을 여기서 잊었다.

한참이나 후에야 다리 저편으로 돌아 연못가 벤치에 가서 앉았다.

해는 졌으나, 한가히 뜬 저녁 구름은 여홍(餘紅)에 비치어 어느 틈엔가 보랏빛으로 변하여졌다.

장무당(壯武堂) 옛집 앞에 늙은 고목은 만년의 거인같이 저무는 하늘에 우뚝이 서 있고, 공원 어귀에 외따로 선 버들은 다 늙은 기생같이 풀없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신정(新町) 고개로 푸른 줄 섞인 하의(夏衣)를 입고 분(粉)박을 쓴 일본 여자가 3인씩 4인씩 작반하여 손목을 잡고 내려오는 것은 분명히 유랑의 창기일 것이다.

밤마다 밤마다 고기와 피를 무리로 팔리우는 괴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남에게는 흡혈귀(吸血鬼)라는 무섭고 참담한 지명을 받는 그네들도 이렇게 날마다 황혼시마다 목욕에 닦은 몸에 서늘한 화장을 베풀고 고개를 넘어와서 물 맑은 연못가, 늘어진 버들 밑을 거닐 때만은 저으기 정화되는 것 같다.

분명히 그렇다. 저렇게 저희의 세상 외의 사람의 세상이 그리워서 연못가 난간을 짚고 섰거나 널따란 잔디밭 뒤를 소요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는 아무 고기의 괴로움도 피의 쓰림도 있지 아니하다. 고개 저 너머 생활의 어두운 그림자가 따르지 아니하였다. 다만 여자일 뿐이다. 여자라는 인생일 뿐이다.

어두운 그늘이 버들숲 사이에서 조금씩 조금씩 기어 나오는 듯하여 저무는 때의 정취가 그윽한 공원 마당에 젊은 여자가 셋씩 넷씩 소요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 같아서 도저히 다른 공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이 공원이 특유의 정취이다.

이윽고 신정 고개로부터 전등이 켜지기 시작하여 그 불이 차츰 들어와서 공원의 요릿집에까지 켜졌다. 그리니까 또 시간이 되었다! 하는 듯이 유녀(遊女)의 한 떼는 야업(夜業)에 출근해야겠기에 다시들 모여 넘어오던 고개로 넘어들 간다.

“좀 더 이 공원에서 놀 수 있었으면!”

얼마나 불쌍한 그네는 심중에 이렇게 생각하였으리라. 공원은 투철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 공원의 동편 구석 운동장 밑에 있는 요릿집 여지야(與志野)의 앞뜰 화원을 지나 남을 향하면 남산 산울(山鬱)의 송림 속에서 구부러져 나온 신작로가 그 길이요, 그 길 좌우에는 벚나무가 나열해 섰는데 그 길의 동편에는 이 공원의 화단이 있고, 서편에는 양요리의 어여쁜 양옥이 서 있다. 신작로이니만큼, 벚나무가 드문드문 늘어서 있는, 이 길은 몹시 신선미를 가져서 나는 몇 번이나 이 길을 오락가락하였다.

공원의 남쪽 산기슭은 조금 어두워졌다. 신작로로 남산을 향하고 조금 올라가노라면 길 위편에 졸졸 소리를 내면서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흘러내리는 물 위에 굽이굽이마다 이삼 인씩의 젊은이가 벌거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 틈에 조용한 중간을 찾아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고 앉았으면 무엇보다도 청신하고 강력한 기운이 발 끝으로부터 머리 끝까지 식혀 올라온다.

발을 담근 채로 시원한 맛에 정신없이 앉았으면, 어두워가는 산울의 송림 속에서 길게 뽑는 노랫소리가 사람 없는 공산(空山)에 울리어 그윽히 청아하고 유한(幽閑)히 들리어, 마침 인가도 없는 심산 창림 속에서 나무 찍는 초부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 그 소리에 한 맛을 더 얻어 고개를 돌리어 송림을 바라보면 길게 울리던 노래는 점점 가까이 들려 오다가, 이윽고 어두운 솔숲에 실날같이 사라진 길에서 어디 역부인지 도시락을 늘어뜨려 들고, 세 사람이 나오면서 그 중의 한 사람이 붉은 얼굴로 노래를 계속하여 부르면서 나왔다.

그러더니 그 세 사람도 물가로 달려들여 목욕을 시작하였다. 산과 송림을 울리던 노래는 그치고, 다시 물 소리만 조용히 들린다.

이것도, 이 공원 정서의 값 있는 한 가지일 것이다. 날이 저으기 어두웠다. 양말을 다시 거두어 신고, 가던 길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벚나무 길 중간에 문을 열어 놓고 있는 양식집은 날이 어두워 오니까, 더 찬란하고, 더 소슬해보였다 . 수중의 마궁(魔宮)같이 사람을 꼬여 들이는 이 집에 기필코 나도 솔솔 꼬이어 들어갔다. 옥같이 흰 돌로 된 식탁은 손 끝만 닿아도 서늘하고 청의 미인의 행주치마 입은 맵시는 상냥한 목소리와 어울려 저으기 서늘하였다.

주문한 고기 몇 그릇이 되기까지 부어 놓은 맥주는 거품만 뿜고 있었다.

손이라고는 나 이외에 일인 부부 한 패뿐이었는데, 그네는 식탁 하나를 격하고 저편 북창(北窓)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자는 23, 4세나 되었을까, 간단한 속발(束髮)에 눈은 커서 어글어글하고 얼굴은 둥그런 신형이었다. 남자는 총독부 줄테나 전차과(電車課)의 사무원 같아 보이나, 욕의(浴衣)만 입어서 분명히는 알 수 없었다.

안경을 쓰고 코 밑에는 짧은 팔(八)자 수염을 기른 것이 과히 얄밉지 않았다. 퍽 정답게 속삭거리는 아야기는 이 집 문 앞 길 건너 이 공원 화단의 꽃 이야기였다. 달리아는 자기 집만큼 못되었다는 것을 들으면 그네들의 집에도 꽃을 기르는 것이고, 내외가 퍽 화초에 취미를 가진 모양 같았다. 한참이나 재미나게 듣다가 정신이 내게로 돌아와 잊어버렸던 듯이 얼른 맥주를 집어 마시면서 생각하니까, 어쩐지 나는 홀로 들어와 앉았는 것이 큰 수치인 것 같았다.

들창 밖에는 가는 버들잎이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고 천정에 휘황하는 전등 불빛은 식탁 위의 한 연꽃잎을 새어서 맥주 컵에 빛나고 있었다. 두 눈과 얼굴이 웬만큼 붉어 온 것 같고 마음은 포근하였다. 이상한 이국 기분이 도는 공기 속에 내 혼이 떠돌았다. 그 집을 나설 때에는 밤이 몹시 깊어서 선뜻한 야기가 얼굴에 닿았고, 공원 마당의 불은 연못에서 바르르 떠는데 이름도 모를 벌레 소리는 어디서인지 가을같이 울고 있었다.

한양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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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공원으로 올라가는 근로(近路)는 여러 곳이 있으되, 반드시 남대문 턱에서 성터를 밟아 가는 데 별다른 취미가 있다. 제도(制都)의 위엄을 자랑하던 고성의 헐어진 터를 밟으면서 올라가면 몇 군데 형체만 남은 성벽의 머리를 끼고, 옆의 돌층계를 밟아 가게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시가가 낮게 보이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늘이 얕게 보일 때, 우리는 고성을 끼고 오르면서 거룩하고 오래인 무슨 구적(舊蹟)ㆍ성지(聖地)를 찾아가는 때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오르고 또 오르고 등에 땀이 젖도록 호흡이 괴롭게까지 허위허위 올라가다가 어떤 평범한 마당에 나서면 날아갈 듯이 시원한 바람이 기다렸던 듯이 달려든다. 마치 이 유쾌하고 청신한 바람과 조망이 좋은 곳을 구하려면 반드시 올라오기까지의 고난을 지내야 된다는 수도자의 고행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원한 터에, 노송도 정자도 벚나무도 모두 자취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신궁(神宮) 건축의 공사가 벌어져서 흙 차(車)가 놓이고, 역부의 합숙소인지 무엇인지 조잡한 창고 같은 집이 서고, 이 곳 저 곳에는 다듬지 아니한 석재가 쌓여 있어서 정서도 흥취도 피난해 도망간 지 오래였다.

한양 공원은 공원으로의 생명은 죽은 후였다.

올라왔던 길이니 잠시 땀이나 식혀 가자 하였다. 가슴을 풀어 헤치고 앉아 있으면 몸의 피곤을 잠시 잊는다.

서대문, 남대문 밖에서부터 동대문, 동소문에 이르기까지의 경성 전 시가의 수없는 전등은 찬란히 반짝이어 불야성을 이룬 한 폭이 발 밑에 깔려 있고, 검푸른 하늘은 손만 들면 어루만질 듯이 가까워 보여서 북두의 꼬리가 이마에 닿은 것 같은 하늘의 별, 땅 위의 전광(電光)이 서로 빛을 다투는 듯한 중에 엄연히 서서 보면 하늘의 별은 한 입으로 불어 꺼질 것 같고, 땅 위의 전등은 한 발로 휩쓸어 버릴 듯 싶어, 하늘과 땅에 내가 홀로 주인이라는 커다란 생각이 움직인다.

그러나, 시가의 불 중에 제일 큰 불이라서 얼른 눈에 뜨이는 불에 눈이 멈추면 다시 마음이 푹 가라 앉는다.

시가에서 제일 큰 불, 그것은 시가의 서북 끝 서대문 감옥 마당의 불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외따로 큰 불은 금계(金鷄)봉 컴컴한 그늘에 반짝반짝 하고 있다.

‘아! 세상은 꿈이다 꿈이다!’ 하는 덧없는 생각이 가슴을 덮는다. 경성도 지금 꿈 속에 있다. 모든 허위, 모든 협잡, 모든 투쟁이 지금은 꿈 속에 잠겨 있다. 꿈과 꿈의 연쇄(連鎖)! 그 사이에 인간은 떠돈다! 보라, 어두운 속 깊은 꿈은 무섭게도 컴컴한 북악산 기슭에서부터 나와서 장안을 덮고 있다.

깜빡깜빡 그것은 꿈결에 떨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문〔新門〕 밖 의주 통(義州通) 길의 전등은 기나긴 꿈길을 지어 인왕산과 금화산 사이 어두운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래 두고 연쇄되는 꿈은, 어느 운명과 맞닥뜨려 오랜 꿈을 지어 인왕산 밑 금화산 밑으로 꿈길을 밟아간다.

아! 꿈이다. 경성은 지금 꿈 속에 있다. 아름다운 밤은 모든 추(醜)와 모든 악을 덮어 싸 주어서, 경성의 시가는 꿈 속에 들어 있다.

밤은 깊을 대로 깊었다 . 귀로에 선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도 노량진, 영등포, 무더기 무더기 꿈결의 불이 깜박깜박하고 있었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도 이 공원의 별다른 정취이다. 가슴은 헤친 대로 두루막은 어깨에 걸고 진고개 내려가는 길로 휘적휘적 걸었다.

높고도 깊은 송림의 사이로 탄탄 대로(坦坦大路)는 허옇게 깔려 있는데, 그 길로 서늘하게 걸으면서 솔과 솔 사이로 간간이 시가의 전등을 엿보는 것도 흥취이거니와 길이 굽을 때마다 달도 없건마는 시가의 전등에 비쳐서 환하게 이마를 비치고 있는 이 산의 마루〔宗〕가 보이는 것은 몹시 재미있는 일이다.

일행 네 사람이 다 같이 물을 구하면서도 얻지 못하고 가다가 일본 처녀 하나와 선생 같은 남자의 한 패를 만났다.

수상한 남녀의 이야기에 물도 잊고 가다가 다행히 산 중턱에서 식수집에 부딪쳤다. 미인 차옥(美人茶屋)이란 이름이 일본 구식이었으나, 들어가 빙수 두 그릇씩을 청하였더니 밖에서 보던 이층집 뒤에 따로 떨어진 이야말로 한 칸 초당에서 장자(障子)를 열고 젊은 여자가 행주 치마로 입술을 씻으며 와서 얼음을 가는데 초당에는 남자 객의 나막신은 놓여있으면서 장자에는 전등만 비치고 기침 소리도 나지 않았다.

쓸쓸하고 큰 산 속에 소리도 없이 밤은 깊을 대로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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