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잡힌다. 그 동안 고향에는 많은 변동이 생겼을 것이다. 시가지가 좀더 번화했을 것이라든지 사릿골[四里洞[사리 동]], 오릿골[五里洞[오리 동]]에 빈민이 그 수를 더했을 것이라든지…… 더구나 이웃에서 주소로 대하던 맘 좋던 할머님들이며, 자루 같은 젖통을 휘두르면서 입에 침기가 없이 아기자랑으로만 일을 삼는 젊은 부인들이며, 아리랑타령을 제법 멋들게 부르며 우리집 앞으로 지나다니던 나무하는 아이들까지도 내가 이제 고향에 가면 만나보지 못할 얼굴들이며 알아보지 못할 얼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항상 바라보고 위안을 얻으며 격려를 받던 그 하늘만은 의연할 것을 머리에 그리며 나는 이 붓을 옮긴다.

두견산 밑에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그 중에서 가장 작고 가장 낡은 집이 우리집이다. 그 집은 지은 지가 몇십 년이나 되는지 모르나 어쨌든 벽하나 바르지 못하고 기둥 한 개 성하지 못하다. 비 오는 날이면 기둥 썩은 냄새가 물큰하게 난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손질을 잘 하셔서 일견 새집 같고 안팎이 정결하다.

안방은 세주고 윗방에 우리 모녀가 있었다. 윗방은 더구나 천정이 얕아서 키 큰 사람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가게 된다. 벽은 쓰다가 버린 원고용지로 바르고 뒷문 편으로 다 낡은 옷궤들이 컴컴하게 놓여 있으며 앞문 앞에는 석유상자 책상이 푸른 보에 덮여 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빌려온 신문들이며 책권들이 언제나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처마 끝에 참새들이 조잘거리고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만든 듯한 앞문에 햇빛이 따스하게 드리우면 어머님은 이엉초 걱정에 부산하시다. 그런지 며칠 후에는 기어이 이엉초를 마련해 가지고 뒤뜰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시면서 이엉을 엮으신다.

문예란 말만 들어도 나는 입을 헤하고 벌리던 그때라 신문이나 잡지권을 애써 얻어들여 가지고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붙잡고 있다. 어머님은 나의 이러한 행동에 불만하셔서 항상 꾸지람을 하시며 일감을 내놓아 나로 하여금 책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간간이 어머님과 대항을 하다가도 못 이겨서 잡히지 않는 바늘을 쥐고 일을 하는 체한다. 그러나 어머님이 밖으로 나가시면 옷감을 구석으로 밀어던지고 또다시 책을 든다. 더구나 저렇게 이엉을 엮으실 때는 어머님이 용이해서는 방안에 들어오시지 않으므로 나는 마음을 놓고 누워서 책을 본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때야말로 눈에 비쳐지는 문구란 문구는 모를 것 밖에는 없다 어떤 때는 책 . 한 권을 다 읽고 나도 머리에 남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재독을 한다, 삼독을 한다, 내지 오륙차를 거듭해도 점점 더 아득하다. 나는 기가 있는 대로 치밀어서 벌떡 일어나 미친년같이 온 방을 휩쓸다가도 못 견디어서 밖으로 튀어 나간다.

어머님은 아무 불평이 없이 만족한 얼굴로 이엉을 엮으시다가 나를 보고,

“왜 또 나오니, 좀 지접(地接)을 해서 일을 하지”

걱정스러이 나를 쳐다볼 때 나는 통곡을 하고 싶다.

“바느질이나 하면 뭘해요!”

나는 톡 쏘는 듯이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는,

“계집아이가 바느질해야지 뭘 한단 말이냐…… 어머니는 손에 피가 나도록 일만 하는데 넌 놀려고만 하니, 너도 이젠 그만하면 셈 좀 들어라.”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신다. 나는 어머님의 저 한숨소리만 듣게 되면 언제나 가슴이 찌르르 울리면서 마음이 죄송해진다. 그리고 어머니를 위로해 드릴 생각이 부쩍 일어난다. 나는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섰다가 어머니 곁으로 가서 이엉초를 한 줌씩 집어 어머니 손에 쥐어주며 약간씩 붙은 나락을 훑어서 바가지에 담는다.

“손끝이 몹시 아픈데 어디 좀 봐라.”

나는 내미는 어머니의 손을 쥐고 들여다보니 다섯 손끝에 빨갛게 피가 배었다.

“아이 어머니, 피가 나올래. 내 좀 해 응, 저리가, 어머니는”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시면서,

“네까짓 것이 뭘하냐.”

어느덧 모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어서 들어가서 일이나 해라.”

어머니는 목이 메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부스스 일어났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저 두견산, 우리 인간사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이 푸른 옷, 붉은 옷을 찬란히 입고 올라라 올라라 하늘 끝까지 푸르러……

미의 극치를 완연히 들어보이고 있다. 산 넘어 새소리 꿈같이 들려오고 미풍에 산 향기 그윽하다. 나는 이 장관에 취하여 잠깐 섰다가 방으로 들어오면 방안은 굴 속 같고 무슨 냄새가 코를 버티운다.

나는 겨드랑에 땀을 척척히 느끼며 앞문을 탁 열어제친다.

문이 좁아라 하고 밀려드는 저 하늘, 내 조그만 책상에 말없이 미소를 던져주는 저 하늘, 어디서 보던 하늘보다도 밝고 다정하다. 나는 어느덧 책을 들며 ‘읽자! 쓰자!’하고 부르짖을 때 내 머리 속은 저 하늘같이 맑아지며 그렇게 푸른 희망으로 내 조그만 가슴은 터질 듯하다.

지금도 간도에 있는 나, 때때로 하늘을 우르러 내 고향을 그린다. 조그만 우리집을 푹 덮어줄 그 하늘, 문마다 가득 찰 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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