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양약
배금열(拜金熱)이 팽배하던 자유주의의 그 시절 그때엔 사실 돈만 가지면 능치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금력으로도 무가내하(無可奈何). 일정한 양미, 일정한 시탄(柴炭)으로 절제의 생을 달게 여겨야 되는 날이왔다. 너무 풍성하던 옛 호화의 기억에 자칫하면 오늘의 긴장이 고(苦)로 생각될 수도 있다.
물자가 너무 풍성하던 그때 우리는 황금의 힘에 절대고 물(物)의 고마움을 채 잊기 쉬웠다.
이제 비로소 쌀알의 귀함, 목면옷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논 가는 이, 나무 베는 지아비의 덕을 깨달아야 한다.
생과 물에 대한 의의를 발견할 절호의 기라면 오늘의 군색은 차라리 고마운 교훈이 아닐까. 사물을 바로 보는 자를 경계해 이런 고화(古話)가 있다.
아내가 김장독을 사다 씻어 엎어놓았다. 이것을 본 지아비,
"허, 입 없는 독을 사왔구나."
문득 밑을 들어보고,
"이런, 밑까지 빠졌네."
이 지아비의 평은 독자에게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