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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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메리카의 탐정 작가 존스톤•막컬리(Johnston McCully)의 “Black Star”의 초역(抄譯)이다. 이 인기작가의 탐정소설은 대개가 다 영화화(映畵化)되는만큼 그 대중성과 명랑성은 독자로 하여금 탐정소설의 특유한 음침하고도 잔인한 분위기 같은 것을 조금도 느끼게 하지 않고 최후까지 이끌고 나가는 흥미진진한 중심 요소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가는 1918년 경부터 약 7년에 걸쳐 “지하철도의 덤”이라는 작품을 탐정 잡지에 연재하여 대인기를 얻었고, 미국에서는 “덤”이라고 하면 소매치기의 대명사가 되어 있을만큼 유명했다. 이 밖에도 “쌍둥이의 복수” “악귀(惡鬼)” 같은 작품이 있으나 모두가 다 “검은 별”처럼 경쾌하고 명랑한 탐정 소설이다.

이 “검은 별”의 유일한 특징은 피가 뚝뚝 흐르는 잔인성 대신에 탐정과 범인이 마치 천진난만한 “술레잡기”를 하는 것과 같은 명랑한 지략(智略)의 연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견디어 배길 수 없는 흥미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소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는 그것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러한 대목이 독자의 과학적 공상과 흥미를 북돋우는 결과를 가져 올는지 모른다. 일년 반 동안 《學園》에 연재하여 독자의 꾸준한 성원을 받은 것도 결국 그러한 점에 있지 않은가 한다.

끝으로 한가지 말해 둘 것은 한 두 페이지의 낙장(落帳)으로 말미아마 줄거리에 불분명한 데가 있기에 역자가 무리없이 연락해 놓았다는 것과 등장인물 중 “막크스”를 “막스”로 한 것은 연소한 독자의 발음상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단행본에는 “막크스”로 고칠 것을 예통하여 두었으나 다망한 편집부에서 그대로 교정을 보고 지형(紙型)까지 떴다기에 하는 수 없이 연재 시 대로의 “막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일세(一世)의 괴도(怪盜) “검은 별”과 탐정 “바베크”의 기상천외의 탐정적 “술레잡기”는 독자의 흥미를 최후의 장까지 끌고 갈 것으로 믿는 바이다.

1954년 11월 하순

역자 씀

한밤의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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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무서운 도둑이 평화스러운 이 거리 전체를 공포와 전율 속으로 휩쓸어 넣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넉 달 전이었다. 어디선가 커다란 범죄 사건이 돌발할 적마다 그 곳에는 조그만 검은 별이 반드시 붙어 있곤 하였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아무런 증거도 붙잡지는 못했다. 검은 별은 아주 득의만만하게 경찰이나 신문사에 그들의 무능을 비웃는 편지를 연방 내면서 한층 대담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범죄를 실행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은 떠들썩하고 이 무서운 도둑을 하루 바삐 붙잡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을 공격하였다.

검은 별은 각 가정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금고를 여는 비밀 암호 같은 것도 어떻게 아는지 미리부터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금고를 열고 돈을 꺼내 간 후에는 반드시 검은 별 한 개씩이 금고 속에 붙어 있었다. 그렇듯이 대담한 검은 별이건만 경찰에서는 아직도 검은 별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검은 별이 어떤 날 밤, 청년 탐정 바베크의 침실로 감쪽같이 숨어 들어온 데서부터 이 재미있는 모험의 이야기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겨울 날,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한잠 깊이 골아떨어졌던 바베크 탐정이 캄캄한 방 안에 불현듯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문득 눈을 떴다. 방 안은 캄캄하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쨌든 침실 다음 방인 서재 안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상한 인기척을 후딱 느끼고 벽에 걸어 놓았던 권총을 잡아들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었다.

그러나 서재 안에서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고 회중전등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수상하긴 수상해.”

그는 가만히 침대에서 내려와 문틈으로 불어 들어오는 찬바람에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면서 잠옷 위에다 까운을 걸쳤다. 그리고는 만일의 경우를 염려하여 피스톨을 힘있게 겨누고 서재를 향하여 가만가만히 방 안을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바로 길 네거리에 있는 전등의 불빛이 반사되어 방 한 구석이 훤하다. 그 희미한 불빛 속을 그 순간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획 하고 지나가면서 스름스름 바베크 옆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접니다. 선생님! 접니다.”

다가온 그림자가 바베크의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다. 그것은 바베크 탐정의 충복 막스였다.

이 막스로 말하면 몸집은 작았으나 완력이 센 사나이로서 벌써 오랫동안 바베크 탐정을 모시고 있는 성실한 부하였다. 주인을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도 돌보지 않는 충실한 부하였다.

“선생님도 들으셨읍니까? 저도 들었읍니다. 서재에 누군가 들어왔읍니다.”

막스는 또 가만히 속삭이었다.

“응—”

바베크는 머리를 끄떡끄떡하였다. 이리하여 주인과 하인은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죽이면서 서재로 통하는 중문을 향하여 살금살금 다가왔다.

문을 방싯 열었다. 한치, 두치, 세치…… 서재 안에도 거리의 등불이 훤하게 반사되어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앞에 시꺼먼 그림자 하나가 후딱 움직이었다. 분명히 사람의 그림자다. 들창은 열려져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분명히 사람의 시꺼먼 그림자가 아닌가.

그 때 바베크는 막스의 옆구리를 쿡 찔러, 서재 안으로 가만히 숨어 들어가서 도둑이 도망을 못하도록 들창을 잠그라고 명령을 하였다.

막스도 피스톨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막스가 서재로 숨어 들어가는 순간, 바베크 탐정은 서재의 스윗치를 누르면서 재빨리 권총을 도둑에게 겨누었다.

“손을 들어!”

테이블 앞에 우뚝 서 있는 사나이가 후닥닥 놀라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울퉁불퉁한 싯누런 이빨이 입술 사이로 들여다보였다. 그는 도망을 칠 셈으로 후딱 들창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막스가 권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사나이의 두 눈이 그 순간 번쩍 빛났다. 그는 자기가 깜쪽같이 함정에 빠지고 만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끄집어 낼 셈으로 손을 슬금슬금 밑으로 내리는데,

“쓸데없는 장난은 그만두는 것이 좋아!”

바베크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다. 정말로 쏘아 버릴 것 같은 바베크의 태도에 사나이는 하는 수 없이 항복을 한다는 의미로 두 손을 들었다. 눈초리에 떠올랐던 반항의 빛은 이미 살아지고 말았다.

“사정은 군에게 있어서 약간 귀찮게 된 모양이네.”

하는 바베크의 여유 있는 말에 도둑은,

“흥, 재수 없다! 기어코 내가 함정에 빠졌다는 말이지?”

“오늘 밤의 군의 방문은 약간 버릇이 없어. 왜 현관으로 당당히 들어오질 못 하구?”

“흥, 기분 상하네.”

“하옇든 좀 걸터앉아.”

사나이는 여전히 손을 든 채 권하는 대로 걸상에 앉았다.

“자아, 막스……”

바베크는 부하를 불렀다.

“네, 네……”

막스는 주인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들창의 늘어진 커어튼의 끄나불을 끌러 가지고 익숙한 솜씨로 사나이의 두 손을 뒤로 꽁꽁 동여매어 다시 그 끈을 걸상에다 붙들어 맸다.

바베크는 무기를 내리우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며,

“이거 봐. 별로 필요한 물건은 없지? 이런 독신자의 아파트에 뭐가 있겠다구……”

“흥, 어쨌다구?”

“왜 좀 더 금만가의 저택을 방문 못 하고 이런 데를 찾아 왔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어. 아마두 군은 풋내기 도둑이야. 응? 이건 또 뭐야?”

책상 위에 봉투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바베크에게 보낸 편지인데 겉봉 글씨는 고무판으로 찍은 것이다. 그리고 봉투 한 모퉁이에는 조그만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었다.

“아, 검은 별이다!”

바베크 탐정은 소리를 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책상 위에도, 꽃병에도, 그리고 책장 유리 문에도 검은 별이 붙어 있지 않는가.

“응……?”

바베크는 후딱 머리를 돌려 사나이를 훑어 보았다. 그러나 사나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방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러면 우리는 지금 검은 별의 방문을 받은 것이 아닌가!”

바베크는 막스의 얼굴을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이거 봐, 막스! 이 거리를 뒤흔들고 있는 악당 중의 제일인자, 저 유명한, 스미스의 저택에서 다이어먼드를 빼앗고 경찰 본부 바로 앞집에서 금고를 파괴한 사나이, 이 거리의 은제품(銀製品)의 절반이나 도둑해 내고 귀부인들의 보석을 매일처럼 약탈해 가는 사나이가 지금 우리를 방문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막스도 긴장한 얼굴을 지었다.

“음, 시민을 농락하고 경찰의 무능을 비웃는 사나이, 경찰에게 미리 통지를 해 놓고 그들의 눈앞에서 하고 싶은 노릇을 다 하는 사나이, 전 세계의 탐정이 다 들어붙어도 자기는 못 잡는다고 커다란 소리를 탕탕하는 사나이— 어디 한 번 읽어 볼까? 그 검은 별이 도대체 내게 무슨 소리를 써 왔다는 말이냐?”

바베크는 그러면서 사나이에게 한 번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곧 봉함을 뜯었다.

손으로 쓴 편지가 아니고 겉봉과 같이 무슨 고무판 같은 것으로 찍은 편지였다. 언젠가 경찰에 보내왔다는 검은 별의 편지가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었는데 한 번 보아서 그것과 흡사한 편지였다.

×

바베크 군, 어제 밤 어떤 회합에서 검은 별의 이야기가 났을 때, 군은 말하기를, 검은 별은 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의 단체(團體)다. 경찰 당국이 그를 체포하지 못하는 것은 사건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발생하여서 그 전부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군은 다시 말하기를, 누구든지 보통 이상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 노력만 하면 검은 별을 체포하여 그의 단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군은 군 자신도 검은 별을 체포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군의 두뇌와 수단을 가지고서 나에게 대항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노력인가를 군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군이 지금 잠들어 있는 옆방 책상 위에 이 편지를 놓아 두고 동시에 군의 소지품에다 검은 별의 표지(標識)를 남겨 둔다. 나는 군이 잠들어 있는 침대에도 검은 별을 붙여 둔다. 그러니까 이 검은 별의 위대한 힘을 군은 승인해야만 될 것인 동시에 과연 나를 체포할 수 있다면 한 번 발벗고 나서 보는 것이 어떤가?

× 검은 별

검은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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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이 편지를 좀 읽어 봐.”

다 읽고 난 바베크는 편지를 막스에게 던져 주며,

“검은 별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 온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 그놈을 붙들면 경찰에서도 무척 기뻐할 것이 아니냐. 자아, 막스! 이 선생님을 잘 모시고 있어요. 내 옆방으로 가서 옷을 바꾸어 입고 나올께. 그리고 어디 한 번 여흥(餘興)을 해 보세.”

그는 침실로 들어가서 침대를 살펴 보았다. 과연 자기가 자고 있던 침대에는 검은 별이 하나 붙어 있었다.

옷을 갈아 입은 바베크는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자아, 막스도 옷을 갈아 입고 나와. 그 동안 내가 이 손님을 모시고 있을 테니까.”

그러면서 그는 입가에 의미 깊은 미소를 지으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였다. 바베크가 미소를 지은 때는 언제든지, 그의 가슴 속에는 그 어떤 깊은 계획이 있을 때였다. 그리고 이러한 미소는 충복 막스에게도 암암리에 잘 통하고 있는 것이다. 막스는 지금 바베크가 옷을 갈아 입으려 들어가서 침실에 써 놓은 간단한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명령대로 행동을 할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래 군이 그 영리한 악당인 검은 별이란 말인가?”

바베크는 미소를 띄우면서 물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사나이는 기분 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 침대에 별을 붙여 놓은 것은 군의 장난인 줄로 아는데……”

“좋을 대로 생각해라.”

“흥, 대단히 기분이 상하신 모양인 걸.”

“빨리 경찰에 인도해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다.”

“흥, 위협을 하는 셈인가?”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말어. 나를 경찰에 인도만 해 봐. 무서운 복수가 네 머리 위에 올 것이다.”

그러나 바베크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그는 검은 별의 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편지에 씌어져 있는 것과 같이, 바베크는 어제 밤 어떤 연회 석상에서 분명히 그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벌써 검은 별의 귀로 들어갔는지,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 밤, 그는 친구 다섯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하였으나, 그들 친구로 말하면 모두가 다 바베크가 신용할 만한 사람이 아닌가. 바베크와 약혼을 한 포오스티나 양과 그의 남동생인 하워어드 군을 비롯하여 모두가 친밀한 사이에 있는 친구들이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바베크는 그저 공연히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검은 별을 체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충복 막스와 함께 세계 각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실로 수 많은 모험생활을 해 온 경험이 있는 몸이다. 그리고 지금 자기 눈 앞에 있는 이 사나이가 검은 별이라고는 물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이 사나이를 경찰에 인도할 생각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수령인 검은 별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기 위하여 일단 사나이를 놓아 주고 그 뒤를 따라 가서 수령을 체포하는 길이 좀 더 영리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모험을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밤의 이 사건은 참으로 두 번도 없을 좋은 모험의 기회가 아닌가. 그뿐만인가. 검은 별은 벌써 자기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느냐.

(걸어 온 싸움이라면 응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막스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바베크는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한 번 껌벅해 보였다. 주인의 글을 읽고 나온 막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막스, 이 놈의 손목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 번 잘 조사해 보게.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을 치면 나무아미타불이니까.”

“네.”

막스는 사나이의 뒤로 돌아가서 손목에 매인 끈을 만져 보았다. 만져 보면서 끈을 한 절반쯤 끌러 놓은 다음에 허리를 펴면서,

“선생님, 염려 없읍니다. 꼭 매어져 있읍니다.”

하고 눈을 한 번 껌벅해 보였다.

“아, 그럼 자네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파아트의 지배인을 불러오게. 나는 옆 방으로 가서 경찰에 전화를 걸테니까.”

“네, 네.”

막스는 곧 복도로 나갔다. 바베크는 침실로 들어가면서,

“손님, 전화를 걸고 올 테니 조용히 앉아 계셔야 합니다. 걸상을 업은 채 도망칠 수는 없을 테니까.”

“으, 음—”

사나이는 이를 갈며 신음을 하였다.

바베크는 침실로 들어가자 전화를 거는 흉내를 일부러 커다란 목소리로 냈다.

“아, 여보세요. 경찰 본붑니까?”

도둑이 서재에서 듣고 있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아, 경찰입니까? 나는 바베크입니다. 빨리 좀 와 주십시오. 검은 별을 잡았읍니다! 네네, 주소는 전과 같은 그 아파트예요. 그럼 곧……”

커다란 목소리로 흉내를 내면서 그는 침실을 살그머니 빠져 나가 복도 층층대를 쏜살같이 뛰어 내려갔다.

그즈음 서재에 있던 사나이는 열심히 노끈을 풀려고 발버둥을 쳤다. 노끈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나이는 한층 더 용기를 내어 힘을 주었더니 손목이 탁 풀려 버렸다.

이리하여 도둑은 들창을 열고 밖으로 넘어 나가자 비상용 층층대로 비조처럼 뛰어 내려갔다.

한편 바베크는 아파아트 맞은 편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막스를 만났다.

“녀석이 지금 막 내려왔읍니다. 아, 저기 지금 뛰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음, 잘 따라 가야만 한다. 놓쳤다가는 큰 일이니까.”

둘이는 도둑의 뒤를 따라 갔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저 골목에서 또 다른 골목으로 사나이는 부리나케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사나이는 드높은 빌딩 사이를 달려서 넓은 네거리 어름으로 나서는 몸이 되었다.

눈보라 치는 추운 밤이었다. 사나이는 전차 길을 건너 저편 쪽으로 걸어 갔다. 둘이는 그와 반대 쪽 길을 걸어 사나이의 뒤를 어디까지나 따라갔다. 사나이는 걸음걸이를 늦추며 담배를 붙여 물었다. 이 편에서도 천천히 걸어 갔다. 들키면 큰 일이니까, 될 수 있는 한 어두운 데를 골라서 걸었다.

“아, 저 놈이 전차를 탔읍니다.”

그것은 교외로 나가는 종전차였다.

“우리는 택시를 타자.”

“네.”

“아, 저기 한 대 온다.”

“스톱!”

택시는 멎었다.

“저기 가는 저 전차를 따라 갑시다.”

“네네.”

운전수는 두 사람을 싣고 전차를 따라갔다.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네. 경찰에 계시는 나리십니까?”

“아……”

택시는 꽁꽁 얼어 붙은 차도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전차가 멎으면 택시도 멎었다. 전차가 가면 택시도 갔다.

“이대로 그냥 가면 시외로 나갑니다.”

막스의 말이다.

“음—”

“그러나 저는 어쩐지, 그 녀석을 경찰에 인도해 버렸던 편이 나을 것 같이 생각이 돼요.”

“어째서?”

“이유는 없어도 말이지요.”

“그러나 내 계획을 자네도 알 것이 아닌가?”

“그거야 물론 알지만요. 검은 별을 붙들어서 경찰에 인도할 수만 있으면 그야 물론 좋지만요. 그러나 검은 별은 좀체로 쉽사리 잡힐 놈은 아니니까요.”

“막스, 무서운가?”

이 한 마디가 막스의 자존심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보신다면…… 가는 데까지 가 봅시다. 저는 선생님과 함께라면 지옥에도 가지요. 그러나 약간 마음에 걸리는 걸요.”

택시가 또 멎었다. 바베크가 전차를 바라보다가,

“아, 저 녀석이 내렸다!”

하고 중얼거렸다.

“자아, 우리도 내리자.”

요금을 지불하고 둘이는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사나이는 어떤 골목으로 획 들어갔다. 둘이도 놓치지 않고 따라 들어갔다. 여기 저기 비인 집과 비인 터전이 있었다. 수풀도 있고 무성한 나무도 서 있었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면서 살을 베이는 것 같은 찬 바람을 헤치듯이 하며 사나이는 자꾸만 앞으로 걸어 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빈 터전 하나를 끼고 어떤 낡아 빠진 커다란 구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구옥은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이어 있었다.

“음, 검은 별이 여기 숨어 있는가?”

바베크는 중얼거렸다.

사나이는 그 집 담장을 삥 돌아 문간 앞으로 걸어 갔다. 문간 앞에는 무슨 상자 같은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가만히 어둠속을 바라보니, 사나이는 그 상자 뚜껑을 열고 그 속에서 무슨 시꺼먼 물건 하나를 끄집어냈다.

“저 녀석이 무얼 몸에다 걸치고 있읍니다.”

잘은 보이지 않았으나 무슨 시꺼먼 외투인지 까운인지, 그런 것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쓰는 것이다.

“아, 얼굴에도 검은 마스크를 썼읍니다.”

“음, 수상한 걸!”

“대체 무엇을 할려는 건고?”

“음, 점점 재미가 나는 걸.”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슨 포대 같은 것을 츠렁츠렁 입은 사나이는 이윽고 문간에 붙어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랬더니 문이 덜컹하고 열리며 사나이는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문은 다시금 굳게 닫혀졌다.

바베크와 막스는 곧 뛰쳐 나가 문간으로 달려갔다. 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창이 하나 붙어 있었다. 막스는 어느새 들창을 방싯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둘이는 이윽고 들창을 넘어 들어가는 몸이 되었다. 텅 비인 방이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둘이는 방을 건너 맞은 편 담벽에 붙은 문을 가만히 열어 보았다. 그 때, 그들은 옆에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가느다란 불빛을 발견하였다.

검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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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는 이 집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집은 사오 년 전부터 비어 있었다. 말하자면 이 집은 소송(訴訟)에 걸려 있는 부동산의 일부로서 팔 수도 없고 누구가 빌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손질 한 번 하는 법 없이 지금까지 내버려 두었던 집이다. 그러한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수상하였다. 생각컨대 검은 별의 일당이 집 임자에게는 아무런 승락도 받지 않고 제 멋대로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하옇든, 문 틈 사이로 옆 방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는 깜짝 놀랐다. 아무런 가구도 없을 줄 알았던 이집,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차 있을 줄 알았던 이 집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만히 들여다보니, 방에 훌륭한 가구가 놓여 있었고 방 바닥에는 값비싼 우단 깔개가 깔리어 있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사무용 테이블이 있었고 그 앞에는 팔걸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방 한쪽 벽에는 조그만 칠판이 하나 걸려 있었고 분필과 지우개가 놓여 있었다. 이 칠판 바로 앞에 그 사나이가 가만히 서 있었다. 전신을 검은 까운으로 감추고 머리에도 검은 두건을 쓰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나이는 군인처럼 부동 자세로 딱 서 있었다.

그 때, 저편 쪽 문이 슬그머니 열리면서 다른 사나이가 하나 방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그 사나이도 꼭 같은 검은 복장으로 전신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 별이 한 개 이마에 붙어 있었다.

“아, 저게 소위 검은 별이로구나!”

둘이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바베크는 막스의 팔을 꽉 붙잡고 숨 소리를 죽이라고 경계를 시켰다. 그리고 그들 눈 앞에는 실로 괴상한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마에 별이 번쩍이는 검은 별은 칠판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사나이를 향하여 머리를 끄덕이면서 반대 쪽 벽으로 걸어 갔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도 조그만 칠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 칠판 앞에서 검은 별은 사나이를 향하여 또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랬더니 사나이는 분필을 쥐고 자기 앞에 걸린 칠판에다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절대로 말은 하지 않고 서로 칠판에다 글을 써서 회화를 하는 것이다. 이윽고 사나이는 맨 처음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제6호……”

그랬더니 이번에는 검은 별이 자기 칠판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암호는?”

사나이는 또 대답을 썼다.

“푸로리다……”

검은 별은 다시 썼다.

“보고를 하여라.”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명령대로 실행을 했읍니다만 바베크와 그의 충복 때문에 그만 붙들리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찰에 전화를 거는 동안에 도망을 해왔읍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검은 별은 화를 내는 모양인지, 허리를 쭉 폈다. 마스크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검은 별의 두 눈초리가 번쩍 빛났다. 금방이라도 팩! 하고 소리를 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조용히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너는 실패하였다. 우리는 그런 실패를 하는 인간은 소용이 없다.”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하고 사나이는 분주스레 글을 쓴다.

“나는 그의 침대에 검은 별을 붙여 놓고 서재에도 붙여 놓았읍니다. 그리고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 놓는데 그만 붙잡히고 말았읍니다.”

“그리고는 곧장 이리로 왔는가?”

“아닙니다. 나는 그들이 쫓아 오기 전에 도망을 쳤읍니다. 그리고 전차를 타고 오다가 두 정류장 앞에서 내려 언덕을 넘어 왔읍니다.”

그러나 검은 별은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천천히 테이블 앞으로 걸어 갔다. 테이블 위에는 한 뭉치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중 한 개를 뽑아 들고 읽는다. 그리고는 머리를 한 번 흔들면서 편지를 까운 포켓에 쓸어 넣었다. 그는 테이블 한 모퉁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설합이 탁 열리면서 절반쯤 나왔다. 그 속에는 금은 보석이 가득차 있었다.

검은 별은 그 중에서 얼마간의 돈을 집어 테이블 위에 던졌다. 그리고는 설합을 다시 잠그고 칠판 앞으로 걸어 가서 분필을 들었다.

“너는 당분간 이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하다. 바베크와 그의 충복은 네 얼굴을 보았다. 그 돈을 가지고 곧 시카고로 가라. 한 달 후, 재밤중에 다시 이리로 오라.”

사나이는 그것을 읽고 머리를 숙였다. 그의 태도에는 조그만 반항도 없었다. 검은 별의 명령을 복종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돈을 집어 주머니에 쓸어 넣은 후에 문까지 뒷걸음질을 해 가서 한 손을 들어 수령에게 경례를 하였다. 검은 별은 묵묵히 끄떡이었다. 사나이는 이윽고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보자 막스는 곧 들창으로 넘어 나가서 그 사나이의 행동을 감시하였다. 바베크는 여전히 문 틈으로 검은 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검은 별은 팔걸이 의자에 걸터앉아서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를 이것 저것 조사하고 있었다.

얼마 후에 막스가 돌아와서 주인에게 보고를 하였다.

“그 사나이는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벗어서 문 밖 상자 속에 도로 쓸어 넣고 사라져 버렸읍니다.”

“음……”

바베크는 여전히 문 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별은 여전히 테이블 앞에 앉은 채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검은 별의 얼굴을 한 번 보아 둘려던 바베크는 다소 낙망을 하였으나 오늘 밤의 이러한 모험이 그의 마음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그는 당장에 검은 별을 체포하고자 결심을 하였다.

“막스, 너는 여기서 지키고 있어라.”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그가 하고자 하는 계획을 막스의 귀에다 가만히 속삭이었다.

“네.”

막스는 대답을 하였으나 어딘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데가 없지 않아 있었다.

이윽고 바베크는 들창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아까 그 사나이가 하듯이 상자에서 검은 까운을 끄집어 내어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썼다. 그리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달았다. 그의 손은 까운 속에서 피스톨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문간에 달린 단추를 눌렀다.

“째르릉— 째르릉—”

집 안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눈 앞에는 긴 복도가 뻗어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고 공기는 곰팡이 냄새로 충만해 있었다. 아까 그 한 방만이 호화롭게 꾸며진 모양으로 다른 방들은 모두 그대로 내버려 둔 것에 틀림이 없다.

바베크는 긴 복도를 걸어가다가 불빛이 가늘게 새어 나오는 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윽고 그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안으로 선뜻 들어섰다. 그러나 방 안에는 이미 검은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까 그 사나이가 하듯이 한 쪽 칠판 앞으로 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검은 별이 나타나기를 열심히 기다렸다. 막스가 숨어 있는 등 뒤의 문은 될 수 있는 대로 돌아 보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검은 별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그러는데 문이 열리면서 이마에 별을 번쩍이면서 수령인 검은 별이 나타났다. 검은 별은 머리를 한 번 끄떡이면서 반대 쪽 칠판 앞으로 천천히 걸어 가서 또 한 번 끄떡이어 보였다.

바베크는 분필을 들고 칠판을 향하였다. 그는 실로 위험 천만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자기의 정체가 탄로 날는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 집 안에는 검은 별 이외에 그들의 일당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또 등 뒤 문 밖에는 완력에 자신이 있는 충복 막스가 숨어 있지 않는가.

이윽고 바베크는 칠판에 썼다.

“제4호……”

“암호는?”

“푸로리다……?”

그 순간 어쩐지, 검은 별의 눈초리가 자기를 무섭게 쏘아보기 시작하였다. 이마에 달린 번쩍번쩍 빛나는 별은 바베크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바베크는 과연 무슨 실책을 했는고? 그러나 그 실책이 무엇인지, 다음 순간, 바베크는 곧 알았다.

검은 별이 분필을 들고 칠판에 써 놓은 글은 다음과 같았다.

“제4호는 여자다. 그리고 그 여자의 암호는 푸로리다가 아니다.”

무서운 함정

편집

제4호는 남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암호는 푸로리다가 아니다. 검은 별의 이 한 마디는 바베크를 무척 놀라게 하였다. 아아 그랬던가? 위기는 얘기했던 것보다도 빨리 왔다. 검은 별은 단 한 방에 바베크를 쓰러뜨릴는지 몰랐다.

그러나 검은 별이 손을 쓰기 전에 바베크 편에서 한 걸음 먼저 손을 썼다. 권총을 잡은 바베크의 손이 검은 까운을 헤치면서 쑥 나타났다.

“걸터앉아라! 그리고 두 손을 책상 위에 단정히 올려 놔라!”

바베크는 명령을 하였다.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 별의 두 눈초리가 바베크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으나 결국은 하라는 대로 걸상에 걸터 앉았다. 바베크는 테이블 옆에 우뚝 검은 별과 마주 서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자기 자신 알 수가 없다. 검은 별은 말이 없었으나 타는 듯이 번쩍이는 그 흉악한 눈초리에는 놀람과 증오와 위협이 충만해 있었다.

“흥, 그대가 검은 별인가? 연극이 가관인 걸.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입대신 칠판을 쓰고, 아주 영리한 악당이야. 그러나 나는 확실히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를 체포할 수가 있다고 말을 했다. 아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말해도 좋아. 그대는 나에게 도전을 해 왔다. 그리고 나는 여기까지 찾아 왔다. 그대의 부하는 잘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를 만나면 이렇게 좀 전해 주게. 우리가 뒤를 밟기 위하여 일부러 포승을 풀어놔 준 것이라고…… 아, 참 처음 보는데 인사나 해야지. 내가 바로 그 바베클세!”

거기서 바베크는 자기의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그리고 아주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면서 결코 상대방에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자기 눈 앞에 있는 이 사나이가 간계(奸計)에 능하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검은 별은 입을 열었다. 낮으면서도 잘 들리는 억양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자기의 본바탕 목소리는 아니었다.

“너는 너 자신을 대단히 영리하다고 믿는 모양 같은데……”

하고 검은 별은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영리하다고 광고하고 나서 나중에 이르러 창피를 보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다.”

바베크의 대답이다.

“음, 너는 지금까지 우리 단원 이외에는 아무도 하지 못한 노릇을 하였다. 너는 우리들 검은 별의 사무소를 직접 보았다. 그것은 대단히 기특한 일이다. 그리고 너는 멀지 않아 그 보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흥, 군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너는 아마도 나를 저 무능한 경찰에 인도할 셈으로 활동을 개시한 모양이지만, 그리고 가장 곤란한 것은 내가 숨어 있는 이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너의 할 일은 이제부터다.”

“그럴까?”

“유죄의 판결을 내리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음, 알아 듣겠어. 그렇지만 지금 금방 그대를 경찰로 보내면 될 것이 아니냐? 그대가 쓰고 있는 그 까운과 마스크, 그 별, 저 칠판, 그리고 경찰이나 신문사에서 받은 것과 똑같은 고무 판의 편지 등등, 증거는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절도나 강도의 증거가 있느냐 말이다.”

“어떤 악당의 단체라도 공소(公訴)의 증인이 될 놈은 있는 것이다.”

검은 별은 쿡쿡 웃었다. 마스크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그의 눈이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이거 봐, 바베크! 나는 많은 부하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 나의 부하는 단 한 사람도 나의 얼굴을 봤다든가 말 소리를 들은 자는 없다.”

“거짓말이다.”

“참말이다. 나는 네가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 네 운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검은 별의 비밀을 알으켜 주어도 무방한 것이다. 지금도 말한 것과 같이 나의 단원들은 누구 한 사람 내 얼굴을 보았다든가, 내 목소리를 들은 자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시 단원들의 얼굴도 본적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물론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신분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디서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 있어서도 누구가 범인인지 나는 모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나? 공소를 한 편에 증인이 되려고 해도, 바베크 선생, 그들은 자기들이 손을 댄 사건 이외에는 무어 하나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야.”

“흥!”

“정말이다. 내 말을 잘 듣는 것이 좋아. 나는 네 입으로부터 비밀이 누설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방법을 네게 알으켜 줘도 무방해. 내가 일을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나에게는 한 사람의 협력자가 있는데, 그 사나이는 지금 이 도시에는 없다. 내가 이 도시를 침략할 것을 결심했을 때, 그 사나이는 이 도시로 와서 이 빈 집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들의 단체다. 그것도 그 사나이가 나를 위하여 단원을 모집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다 그 방면에 있어서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내 부하로서 일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나는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성공적으로 줄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단원 조직은 군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범위가 넓다. 그들은 전부 여기에 와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서 나의 명령을 받고 나에게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모든 대화는 칠판으로 교환되고 얼굴에는 언제든지 마스크를 쓴다.”

거기서 검은 별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잇는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 하나씩 암호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그 암호와 번호를 써서 보고를 한다. 그러니까 가령 내가 공판정(公判廷)에 증인으로 서게 되어 부하를 배반하려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나는 다만 어떤 범죄를 저질은 자는 암호 제 몇 호라는 사실밖에 진술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단원 전부가 내 눈 앞에 가지런히 서 있다고 치더라도 나는 그들이 과연 우리 단원이라고 선언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모르니까 말이다. 바베크 군, 내 말을 인제는 알아 듣겠나? 우리들은 같이 손을 잡고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만일 거리에서 서로 마주쳤다 하더라도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다. 실로 완전 무결한 방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야. 그러니까 군이 제공하는 그러한 증거로써는 어떠한 재판관도 나를 유죄로 판결할 수는 없어. 그뿐만 아니라, 우리 단원들은 모든 방법을 다하여 나를 구조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부하는 단 한 사람도 네 얼굴을 본 자는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나에게는 두 종류의 부하가 있다. 그 하나는 직접 일을 하는 종류고, 다른 하나는 여기 저기서 정보를 제공하는 종류다. 그리고 이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에 속한 남자와 여자는 나에게 충성을 다 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자도 있나?”

“그렇다. 여자도 많이 있다. 사회의 온갖 고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정보 제공자들에 한해서만 나는 그들의 얼굴과 신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나를 해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어제 밤 군이 배앝은 말을 죄다 알고 있지 않았느냐 말이야.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안 줄 아는가? 그래도 군이 나의 힘을 의심한다면 군의 화장실에 있는 금고의 암호를 말해 볼까? 나는 현재 그 금고 안에 무엇 하나 우리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다. 그 금고에는 오른쪽 선반에 주권(株券)과 증서(證書)가 한 뭉치 있고 아래 서랍에는 낡은 화폐가 2, 30개 들어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다 아는 법이 있다. 바베크 군!”

“그러나 만일 너의 부하가 나쁜 짓을 하는 현장에서 잡히는 경우에 있어서 자기 죄를 모면하려고 경찰관을 너 있는데 데리고 오면 어떡헐 셈인가?”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어째 그러냐 하면 그들은 우리가 반드시 자기를 구해 줄 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자백을 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그들이 자백을 해서 우리를 배반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단체는 그들을 구해 내다가 무서운 제재를 준다. 우리의 단원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우리의 단원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쨌든 군은 나와 지혜 내기를 하여서 제 일단은 성공하였다. 군은 나의 본거지를 발견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군은 이제부터 어떻걸 작정인가?”

“경찰에 넘기면 어떡헐 테야?”

“가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군은 결국에 있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밖에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군을 상대로 막대한 손해 배상 청구의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우리 단원의 증언이 없이 나를 유죄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뭐냐?”

“나의 일을 방해하는 군은 곧 무서운 보복을 당할 것이다.”

“협박인가?”

“협박이 아니다. 군은 지금 권총을 들고 테이블 옆에 서 있다. 나는 이처럼 걸상에 앉아서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있다. 너는 내가 무기를 꺼내기 전에 그 권총으로 나를 쏘아 죽일 것이다. 그러나 잘 알아 두어라. 지금 내 왼편 발 밑에는 조그만 단추 하나가 있다. 그 단추만 누르면 군은 열 두 피이트나 되는 깊은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군이 권총을 발사하기 전에 내 발은 단추를 누르는 것이다. —자아! 어때?…… 그처럼 군은 함정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문은 다시금 닫혀지고…… 군은 캄캄한 함정 속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하, 하, 핫……”

그것은 실로 일찰나의 일이었다. 방 바닥의 일부가 탁 떨어져 내리면서 바베크의 몸뚱이는 밑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바베크가 쏜 탄환은 천장을 뚫었다. 뚜껑은 다시 닫혀졌다. 검은 별은 얼굴을 쳐들고,

“하, 하, 핫……”

하고 유쾌히 웃어댔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웃음 소리가 목구멍 속으로 되돌아 사라지면서 검은 별은 방 바닥에 탁 쓰러졌다. 바베크의 총 소리가 들리기가 바쁘게 충복 막스가 옆방으로부터 뛰어 나와 검은 별의 대가리를 권총 자루로 힘껏 내갈겼던 것이다.

가짜 검은 별

편집

막스는 본디 빈민굴의 태생이었다. 그는 감옥의 내부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오년 전, 바베크는 그를 파리에서 구해 주었다. 당시 막스는 비참과 범죄와 영양 부족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비관하고 세에느 강에서 투신 자살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바베크는 그 때 사람의 지혜라는 것은 나쁜 데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데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집 한 채를 제공해 주었다. 거기 대한 감사의 념으로 막스는 성심성의 바베크에게 충성을 다해 왔다. 그는 은인 바베크를 위해서는 목숨의 아까움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막스가 검은 별에게 준 일격은 상당히 세기 때문에 이 괴수는 당분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곧 테이블 밑으로 발을 쓸어 넣어 단추를 찾았다. 우단 깔개 밑에서 조그만 단추를 그는 마침내 찾았다.

그는 손을 뻗쳐 단추를 눌렀다. 그랬더니 테이블 옆 방 바닥 한 모퉁이가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겼다. 캄캄한 구멍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그는 고함을 친다.

“아, 막슨가? 다친 데는 조금도 없으니 걱정을 말어. 빨리 나를 끌어 올려 주게.”

막스는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깊이 열 두 피이트의 구멍 속까지 닿을만한 사다리도 새끼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 소파에 씌웠던 긴 씨이트를 벗겨 그것을 구멍 속으로 쓸어 넣었다.

“여기에 매달려 나오시오. 제가 이 편 쪽을 쥐고 있을 테니.”

“옳지, 됐어!”

그것을 붙잡고 바베크는 간신히 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뚜껑은 다시금 저절로 덮여졌다.

“아, 이 놈을 죽여 버렸는가?”

바베크는 방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검은 별을 보자 외쳤다.

“에헤헷, 그만 단번에 치워 버릴까고 생각두 했지만 아직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뒤통수를 약간……”

“음.”

“빨리 경찰에 넘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자네는 아까 이 작자가 하던 말을 들었을 텐데…… 이 놈을 경찰로 넘기는 날이면 그의 단원들은 모두 도망을 쳐 버릴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만 도대체 어제 밤 내가 친구의 집에서 한 이야기를 이 놈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수상하지 않은가? 그 친구 가운데 단원이 있을 리는 만무한데…… 그뿐 아니라 어떻게 우리 집 금고 속에 들어 있는 물건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금고의 암호까지 알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바베크는 까운을 벗어서 마스크와 함께 막스에게 주었다.

“이것을 도루 밖의 상자에다 넣어 두고 오게.”

막스가 나가 버린 후에 바베크는 허리를 굽혀 검은 별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겼다. 그랬더니 연세가 약 사십 오륙 세쯤 되어 보이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바베크는 검은 별의 까운을 벗기면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이 도시의 상당한 인물로서 소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악한과 신사의 이중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윽고 막스가 돌아왔다. 막스는 커어튼을 찢어서 만든 헝겊으로 검은 별을 비끄러매고 입에는 자갈을 물렸다.

“자아, 그러면……”

바베크의 그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 위 담벼락에서 초인종 소리가 찌르릉 났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순간, 그들 두 사람의 머리에는 똑 같은 생각이 후딱 떠올랐다.

“검은 별의 단원이 아니요?”

막스가 중얼거렸다.

“음—”

“어떡할깝쇼?”

바베크는 잠시 주저하다가,

“막스, 이것 참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내가 한 번 검은 별이 되 볼까? 자아, 빨리 이 녀석을 옆방으로 메고 가서 문을 닫아라. 그리고 아까처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돼.”

막스는 하라는 대로 했다. 한편 바베크는 검은 별의 까운과 마스크를 썼다. 초인종은 다시금 울렸다. 그 초인종 밑에 조그만 단추가 하나 달려 있었다. 바베크는 그 단추를 눌렀다. 그와 동시에 바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삐걱삐걱 들렸다. 바베크는 이내 아까 검은 별이 온 문으로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그것은 먼지가 가득찬 텅 빈 방이었다.

이윽고 그는 다른 문으로 누구가 들어 오는 기척을 느꼈다. 그는 검은 별과 마찬가지로 잠시 그대로 기다리다가 마침내 문을 열고 대담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 까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나이를 향하여 눈 인사를 하면서 검은 별의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제8호—”

사나이는 그렇게 칠판에 썼다.

“암호는?”

“하아바아봐아드—”

바베크는 그 암호가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몰랐으나 될 대로 되라고 그냥 대화를 진행시켰다.

“보고를 하라.”

하고 바베크는 또 썼다.

사나이는 칠판에서 물러나와 까운 밑으로 한 통의 편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칠판 앞으로 가서 부동의 자세를 취했다.

바베크는 테이블로 가서 편지를 집었다. 그는 상대방을 주의해 보면서 봉함을 뜯고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 ×

그라이스트만 부인은 자선 무도회(慈善舞蹈會)에 다이어먼드와 진주의 목걸이를 하고 갈 예정—. 그것은 당일 오후 안전 보관 창고(安保管倉庫)로부터 꺼낼 예정—. 무도회가 필한 후에는 그라이스트만 씨 집 서재 금고에 넣어 둘 예정—. 금고는 구식, 서재는 이층, 문 하나는 복도로 통함—. 들창은 세 개, 그 중 하나는 빨코니로, 다른 둘은 집 옆으로 났는데 칡넝쿨과 수목으로 가리워져 있다—. 하인들은 전부 삼층 후면에서 취침, 그라이스트만 부처와 영양의 침실은 같은 삼층 전면에 있음—. 영양의 침실은 한길에서 보면 복도 왼쪽, 부처의 침실 오른쪽에 있음—. 영양은 불면증의 징조가 있어 특히 사교적 회합이 있은 후에는 심하여 수면제를 복용함—.

×

이 편지에는 검은 별이 그라이스트만 씨 부인의 패물을 훔쳐낼 계획에 대한 정보가 씌어 있었다. 편지는 타이프로 찍은 것이고 봉투에는 아무런 기호도 없었다.

조금만 영리한 악당이면 그라이스트만 씨 가족들의 침실의 위치라든가 금고의 위치라든가 또는 서재의 들창과 문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쯤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패물은 언제 안전 창고에서 꺼내는지 그리고 그것을 그날 밤 어디다 넣어 두는지? 그런 사람들은 그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사리 알아낼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어디서 이 정보를 손에 넣었느냐?”

하고 바베크는 썼다.

“명령하신 대로의 방법으로—”

사나이는 그렇게 썼다.

바베크는 그 이상 더 질문할 수가 없었다. 자기의 정체가 상대방에게 탄로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나이가 누군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자기에게 의심을 품지 않도록 행동하지 않아서는 아니 되었다.

“좋아.”

그는 썼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냥 그 곳에 서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용건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무슨 다른 명령은?”

사나이는 칠판에 그렇게 썼다.

바베크는 테이블 위에 있는 한 뭉치의 편지를 더듬어 보았다. 그것은 검은 별이 부하에게 주는 명령서 같았다. 봉투에는 일일이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는 〈제8호〉라고 찍힌 봉투를 발견하고 편지를 꺼내 보았다. 거기에는 검은 별이 이 사나이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여 놓은 명령이 기재되어 있었다.

× ×

내일 오후 세 시, 국민 호텔 삼층 객실에서 부로오닝 구락부의 위원회가 개최되어 푸리이다•부레크란드 양도 출석할 예정—. 회가 끝날 무렵 호텔 휴계실에서 부레크란드 양과 우연히 만난 것 같이 접근하여 자선 무도회의 이야기를 하면서 저 유명한 부레크란드 집안의 패물을 걸치고 출석하는지 어쩐지를 알아 보라—. 오후 열 시, 전과 같은 방법으로 보고를 하라. 실패에 대한 변명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것.

×

검은 별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이것으로도 그 일단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그는 그냥 그대로 좀 더 검은 별이 되어 그의 계획의 전반을 알 필요를 느꼈다.

그렇게만 되면 이 대규모의 보석 약탈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검은 별이 자선 무도회를 기회로 삼아 여러 가지 범죄를 획책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 사나이는 내일 밤 다시 보고하러 올 것이니까, 그 때까지는 이 사나이에게 의심을 받아서는 아니되었다.

새로운 명령

편집

바베크는 될 수만 있으면 사나이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저 유명한 푸리이다•부레크란드 양과 이야기를 하여도 조금도 의심을 받지 않을 이 사나이는 과연 누구인고? 그것은 틀림 없이 도시의 사교계에서도 상당히 안면이 넓은 사나이가 아닐 것인가! 부레크란드 양은 사교계의 젊은 부인들 사이에서도 손꼽는 명성으로서 웬만한 사나이는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바베크로서는 좀 더 정확한 증거를 잡기 전에는 경찰에 알릴 것을 중지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바베크에게 한 가지 계획이 머리에 떠 올랐다. 그는 명령서를 상대편에 던져 주고 나서 다시금 칠판에다가 다음과 같은 보충적인 명령을 썼다.

× ×

호텔로 가는 도중 오후 두시 정각에 제일 아베뉴우와 아메리칸 거리가 형성하는 모퉁이를 통하여라. 그 모퉁이에 서서 모자를 벗고 모자의 먼지를 터는 척 하여라. 만일 명령이 변경 되는 경우에는 봉투 하나가 몰래 그대의 손으로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대로 명령을 수행하라.

×

그것을 보자 상대편의 사나이는 대단히 놀란 모양으로 어깨를 세우고 머리를 재꼈다. 일순 바베크는 무엇을 실수했나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나이는 알았다는 듯이 수긍을 하고 거수의 경례를 한 후에 밖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막스가 들어오면서 사나이는 까운과 마스크를 도로 상자에 넣어 두고 사라졌다는 보고를 하였다.

“나는 저 놈을 붙잡을 테다!”

바베크는 힘있게 말하며,

“녀석은 내일 오후 두 시 정각에 그 거리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추고 모자를 터는 신호를 할 것이니까, 그 놈을 따라가면 된다. 그 놈이 누구냐, 그 놈이 누구기에 검은 별을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자아, 일이 이처럼 되고 보면 갈 데까지 갈 수 밖에 없다.”

“그럼 한시바삐 경찰에 알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직 빠르다. 나는 어디까지나 독력으로 해 볼 작정이다. 검은 별은 나에게 싸움을 걸어 오지 않았는가! 경찰에 알리는 것은 확고부동한 증거를 잡았을 때의 일이다.”

“그것은 그런데, 저 방에 있는 검은 별은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인젠 정신을 차렸읍니다.”

바베크는 머리를 숙이고 방 안을 이리 저리 걸어 다니다가,

“아, 그렇다. 좋은 수가 있다!”

하고 외쳤다.

“좋은 수라니요?”

“자네는 차고로 가서 자동차를 갖고 오게. 그리고 내 방에 들어가서 책상 서랍에 있는 열쇠를 갖고 오게.”

“아, 그럼 아파아트가 아니고 저 본댁 말씀입니까?”

“그렇다. 막스, 검은 별은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자, 빨리! 밤이 밝기 전에 갖다 와야 해. 저놈을 그리로 데리고 가서 자네가 지키면 제일 안심이거든. 그 사이에 나는 여기서 검은 별의 대리인이 되면 그만이야.”

“잘 알았읍니다.”

막스가 사라진 후 바베크는 옆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검은 별이 아주 갑갑해서 못 견디겠다는 태도로 방 바닥에 길게 쓰러져 있었다.

벌써 아침 세 시 경이었다. 바베크는 두꺼운 커어튼을 벗기어 검은 별에게 덮어 주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감사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바베크는 처음 방으로 다시 되돌아와 선반에서 양초를 꺼내 불을 켜 가지고 집 안을 돌아가면서 세밀히 조사하여 보았다. 그러나 가구가 놓여 있는 것은 그 한 방뿐이고 부엌에도 광에도 식료품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보니 검은 별은 여기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단원들과 만나는 장소로서 이 집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몇 통의 봉투를 뜯고 검은 별의 명령서를 조사하였다. 거기에 있는 것으로서는 〈제9호〉라는 것이 최고의 번호였다. 명령의 내용은 모두가 다 놀라운 것이었다.

그 중 하나는 정보 수집에 관한 것이었지만 다른 것은 모두 범죄 계획에 관한 명령서였다. 훔쳐 낼 물건, 장소, 위험의 유무 등이었다. 그는 만일 다른 단원이 또 오는 경우에 있어서 이 명령서를 줄 것인가 어떤가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검은 별의 대리가 되는 것과 범죄를 방조(幇助)하는 것과는 별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명령서를 발하여 단원에게 나쁜 짓을 못 하도록 해야겠다.)

그와 동시에 그들과 접촉을 피하면서 일망타진으로 체포해 버리려고 생각하였다.

바베크는 거기서 얼마 동안 테이블을 이리 저리 조사해 본 결과 조그만 단추를 누르면 서랍이 열리게 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속에는 아까 막스도 본 것처럼 많은 지폐가 들어 있었다. 다이어 반지가 여나믄 개, 진주 목걸이가 한 개, 그 밖에도 여러가지 패물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고무 활자가 들어 있는 상자와 잉크, 배트, 비망록(備忘錄)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그 비망록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최근에 기입된 페이지에서 대단히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맨 위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날짜였다. 번호가 쭉 씌어 있고 번호 옆에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단원들이 보고하러 오는 시간이었다.

검은 별은 실로 무서운 타격을 이 도시에 주려고 계획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의 단원들은 자선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안전 보장 창고에서 꺼낸 많은 패물들을 일제히 약탈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막스가 가 버린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다. 폭풍도 지나가고 눈도 우박도 이젠 완전히 멎었다. 그러나 아직 추위는 덜어지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렸다. 바베크는 마스크에 손질을 하며 단추를 눌렀다. 이윽고 막스가 들어왔다.

“열쇠를 가지고 왔읍니다. 선생님! 그리고 자동차를 문 밖에 세워 놨읍니다.”

“음—”

둘이는 옆 방으로 들어가서 검은 별을 어깨에 메고 나왔다. 바베크는 마스크와 까운을 벗어 버리고 불을 끈 뒤에 밖으로 나왔다.

이윽고 검은 별을 자동차에 싣고 새벽에 가까운 밤 거리를 무섭게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바베크의 본댁은 이 도시에서는 손을 꼽는 광대한 저택이었으나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바베크의 아버지 대까지 거기에 살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돌아간 후, 바베크는 그 집이 싫어져서 아파아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바베크는 멀지 않아 포오스티나•웬델 양과 결혼을 하게 되면 낡은 저택을 허물어서 다시 신축하려고 하던 판이었다.

자동차는 먼 거리를 달리다가 이윽고 바베크의 낡은 저택으로 들이닿았다. 드넓은 정원과 무성한 수목이 있는 텅 비인 집이다.

둘이는 검은 별을 메고 방으로 들어가 소파에 뉘었다. 그리고 난로에 불을 피우고 검은 별의 자갈을 끌러 주었다. 그러나 뒷짐을 지운 박승을 풀지는 않았다.

“어때? 검은 별! 너는 부하를 시켜 나의 아파아트로 들여 보냈다. 나는 또 나대로 너의 사무실을 습격하여 너를 체포하였다. 너는 여기가 어딘지, 좀체로 알아볼 수가 없을 거야. 당분간 너는 내 계획을 실행할 때까지 여기에 좀 있어야 할 거다. 물론 감기를 들리게 한다든가 음식물에 부자유를 느끼게 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막스가 너를 잘 간호하고 있을 테니까—”

“흥, 대단한 수완인 걸! 그러나 너는 지금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인젠 너는 불에 델 것이 분명해.”

“그건 이미 각오하고 있는 바다.”

“잊어 버리지 말아요. 우리의 단체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네게는 반드시 인사를 할 것이다.”

“고마운 말이야.”

그리고 이번에는 막스를 향하여,

“그런데 막스, 어떤 방법으로 간호를 하겠나?”

“뭘요, 손만 비끄러매 두면 문제 없지요. 밧줄을 다시 잘 동여매 놉시다. 옴짝달싹만 하면 한 방 탕— 하하하…… 문제 없읍니다. 제게 맡겨 두시오.”

바베크는 막스의 말을 듣고 안심하였다.

“흥, 바베크 군! 안심하는 건 아직 좀 빠를 걸!”

검은 별은 자신을 가지고 바베크를 코웃음쳤다.

똑 같은 명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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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날은 밝았다.

막스가 권총을 들고 검은 별을 감시하고 있는 동안 바베크는 아파아트로 가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왔다.

“자아, 막스! 내일 아침까지는 못 올 것 같은데…… 오후는 대단히 바쁘고 밤은 또 밤대로 검은 별의 본거지로 가서 계획을 실행할 작정이다.”

“몸 조심하셔야 하십니다.”

“괜찮어, 그런데 이 녀석을 창고 안에다 잡아 넣고 문을 잠거 두어라. 그래야 자네도 한잠 잘 것이 아닌가.”

“네.”

바베크는 그날 오후 두 시 이십분 전에, 어제 밤 검은 별의 부하에게 명령한 아메리칸 네거리 모퉁이까지 왔다. 거기서 모자를 벗어 들고 먼지를 터는 척하는 놈의 정체를 붙잡을 셈이다. 이 네거리가 이처럼 복잡할 줄을 바베크는 깜빡 잊어 먹었던 것이다. 그는 번화한 네거리를 건너 어떤 상점 진렬장 앞에 우두머니 서서 모자를 벗는 놈이 누구인지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약속의 시간 정각 두 시가 되었다.

바베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바라다 보았다. 오 분이 지났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그의 명령대로 모자를 벗어 드는 이가 없다.

그 때 그는 그의 약혼자의 남동생인 하워어드•웬델이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을 천천히 걸어 오는 자태를 문득 보았다. 그는 얼른 전선주 뒤에 몸을 감추었다. 만일 하워어드•웬델이 자기를 발견하면 다가와서 이야기를 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바베크는 지금 그 누구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웬델은 바베크가 숨어 있는 전선주 앞을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그는 네길 어름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고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모자의 먼지를 터는 흉내를 하였다.

바베크는 눈이 동그래졌다. 다음 순간 그는 혼자서 쿡쿡 웃었다. 참으로 신통한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자기 처남이 될 하워어드•웬델이 검은 별의 단원일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그는 참으로 우연히도 바베크의 명령과 꼭 같은 행동을 취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하였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이러한 평범한 신호를 명령한 것이 다소 후회도 났다.

하워어드•웬델은 저편으로 가 버렸다. 바베크는 그냥 주위를 살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모자 신호를 하는 이는 없다. 바베크의 마음 속에 점점 의혹이 도사려지기 시작하였다.

(저 번 날 밤, 내가 검은 별을 체포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 하워어드•웬델은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별은 곧 그런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오늘 내 눈 앞에서 나의 명령대로 모자를 벗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바베크는 그러나 다음 순간 머리를 홱홱 흔들면서,

(그럴 리가 있을라구! 하워어드•웬델이 그러한 악당의 단원일 리는 만무하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세 시 십 오 분이다. 그는 악당이 푸리이다•부레크란드 양과 이야기 하기로 약속이 된 호텔의 휴계실로 가 보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악당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바베크가 들어갔을 때, 호텔의 휴계실은 대단히 복잡하였다. 아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일의 방해가 될 듯 싶어 일부러 피했다. 그러는데 그의 약혼자인 포오스티나•웬델 양을 만났다.

“아, 바베크!”

포오스티나는 깜짝 놀라며,

“이런 델 다 오시네요? 이런 휴계실은 싫으시다면서……”

“좀더 싫어져 볼까 하고요. 그래 어떻게 왔소?”

“부로오닝 구락부의 회합이 있었어요.”

“벌써 마쳤읍니까?”

“네, 십 오 분 전에 마쳤어요. 내일 열리는 자선 무도회 때문에 연기를 하려고 모였어요.”

“아, 그래요?”

바베크는 그만 악당의 신분을 발견할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별일 없으면 같이 가요. 자동차가 있어요.”

그래서 바베크는 약혼자를 따라 차에 올랐다. 포오스티나는 제 손으로 운전을 하여 번잡한 거리를 달렸다. 그러나 어째 그런지 약혼자의 얼굴이 무척 어둡다. 본시는 무척 명랑한 성격인데, 무슨 대단한 걱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포오스티나의 집안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구가(舊家)이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몰락은 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지위는 훌륭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포오스티나 무슨 걱정이 있소?”

“별로 걱정은 없지만……, 약간 신경질이 됐나 봐요.”

이윽고 차는 포오스티나의 문전에 도착하였다. 둘이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도 있었다.

“그래 뭘 그리 걱정을 하는 거요? 말을 해 봐요.”

“염려 마세요.”

포오스티나는 끝끝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안의 무슨 경제적인 문제 같아서 바베크도 그 이상 더 캐묻지는 않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극히 바쁘고도 위험한 하루 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여덟 시에 바베크는 검은 별의 본거지인 빈 집으로 갔다. 그는 전날 밤과 같이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쓰고 테이블 옆에 앉아서 조그만 고무 도장으로 명령서를 만들고 있었다. 명령서는 전부가 다 똑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신 책상 위에 있던 검은 별의 명령서는 모두 찢어 버리고 말았다.

정각 아홉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바베크는 까운 밑으로 피스톨을 겨누면서 단추를 눌러 신호를 하였다. 그리고 잠시 옆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렸다. 조금 후 그가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칠판 앞에 역시 마스크와 까운을 쓴 사나이 하나가 서 있었다. 번호와 암호에 대한 문답을 한 후에 바베크는 설합에 든 돈 이십 불과 조금 전에 만들어 놓은 명령서를 주었다. 사나이는 절을 하고 나가 버렸다.

아홉시 반이 되었을 때 다른 단원이 들어왔다. 바베크는 또 아까와 마찬가지로 명령서와 돈을 주었다. 열 시가 되었을 때, 어제밤 바베크가 모자로 신호를 하라고 명령을 한 사나이가 왔다. 번호와 암호의 문답을 하고 나서 바베크는 칠판에 썼다.

“보고는?”

거기 대하여 사나이도 썼다.

“명령대로 실행했읍니다.”

“좀 더 자세히 보고하라.”

“오늘 오후 세시, 국민 호텔 삼층 휴계실에서 부로오닝 구락부 위원회가 열린 직후, 푸리이다•부레크란드 양을 만나 내일 열릴 자선 무도회에 저 유명한 보석 목걸이를 걸고 나간다는 확실한 말을 들었읍니다.”

오늘 바베크가 시간에 약간 늦었기 때문에 부레크란드 양과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보지 못한 것을 마음으로 적지 않게 뉘우치면서,

“그 뿐인가?”

“그리고 명령대로 오후 두시 아메리칸 네거리에서 모자를 벗어 먼지를 털었읍니다만, 아무런 새로운 명령이 없기에 그대로 지나갔읍니다.”

바베크는 그 때 하워어드•웬델 이외의 다른 또 한 사람이 모자를 벗고 먼지를 터는 것을 그만 하워어드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 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바베크는 돈과 명령서를 내주었다. 사나이는 절을 하고 나갔다.

열시 반에는 여자 단원이 들어 왔다. 얼굴을 가리워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손과 발이 여자의 것이었다.

“보고는?”

그랬더니 여자는 다음과 같이 칠판에 썼다.

“준비는 충분히 되었읍니다. 문제 없읍니다. 나는 세 시까지는 목걸이를 손에 넣어 명령한 장소에 감출 테니까, 네 시 이후에는 언제든지 거기에 있읍니다.”

이것은 검은 별이 내린 명령으로서 바베크는 내용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약간 당황하였다. 그래서,

“이전의 명령은 모두 취소한다. 새로이 명령을 할 테니, 어김없이 실행하라.”

“네.”

바베크는 여자 앞에 봉투를 던져 주었다. 여자는 명령서를 읽었다. 그리고는 당황한 솜씨로 다음과 같이 썼다.

“위험하지 않겠읍니까?”

“암말 말고 명령을 실행하라. 그대는 나의 계획의 전부를 모르고 있으니까.”

“잘 알아 모셨읍니다. 명령대로 하겠읍니다.”

여자는 사라졌다.

열한 시에 또 여자 단원이 한 사람 들어왔다. 그러나 먼저 여자와는 반대로 무엇인가 대단히 겁을 집어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칠판에 번호를 쓰고 있는 손이 떨린다. 여자는 암호를 쓴 후에는 가만히 서 있었다.

생각컨대 여자는 오늘 밤 처음으로 이 곳에 들어선 것 같았다. 어째 그러냐 하면 여자의 번호는 검은 별의 수첩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무슨 명령을 받으려고 온 것 같았다.

바베크는 역시 다른 단원에게 준 것과 마찬가지의 명령서를 던져 주며 읽으라는 시늉을 하였다. 여자는 바베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섰다가 봉함을 뜯고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여자는,

“앗!”

하고 소리를 치면서 비틀비틀 쓰러지다가 바베크가 부축을 하기 전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똑 바로 섰다. 명령서가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

바베크는 그것을 집어 다시 여자에게 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어쩐 셈인지 명령서는 받을 생각도 않고 바베크의 손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가 곧 몸을 돌이켜 칠판에 썼다.

“당신은 어디서 그 반지를 손에 넣었읍니까?”

바베크는 자기 손을 들여다보면서 썼다.

“왜? 이 반지가 마음에 드는가?”

“어디서 손에 넣었읍니까?”

“그것은 그대에게는 관계 없는 일이다.”

바베크는 이 반지를 수년 전 구라파에서 샀다. 대단히 진기로운 청옥(靑玉)이 박힌 반지였다.

여자는 분필을 떨어뜨렸다. 여자의 놀란 눈이 마스크 사이로 바베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 어떤 극심한 고통과 절망에 찬 부르짖음을 남겨 놓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도대체 어찌 된 셈인가! 저 여자는 정말로 놀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연극인가? 검은 별이 여자를 너무 학대했기 때문에 그처럼 무서워 하는 것일까? 내 반지에 대단한 흥미를 느낀 모양인데…… 지금까지는 검은 별의 손에 없던 것이기 때문일까? 만일 여자가 나를 의심한다면?)

그리고도 단원은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뒤를 이어 들어왔다. 그러나 여자는 또 없었다. 아침 세 시쯤 되니까 인젠 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날 밤 바베크가 만나 본 것은 여자 두 명과 남자 여덟 명이었다. 도합 열 명의 단원이 지금 바베크의 함정에 빠지려는 것이다. 그리고 24 시간 이내에 검은 별과 그의 단원은 경찰의 손으로 넘어 가는 것이다. 바베크는 회심의 웃음을 얼굴에 지었다.

세 시 반에 그는 그 곳을 떠나 전차를 타고 자기 아파아트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아파아트 층층대로 올라서면서 문득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랬더니 어떤 사나이 하나가 조금 떨어진 전선주 뒤로 후딱 몸을 감추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누구가 나를 감시하고 있구나!”

바베크는 분명히 그것을 느꼈다.

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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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는 그날 정오에 눈을 떴다. 오늘은 그의 계획이 실현되는 날이다. 그는 세수를 하면서 몇 시간 전에 본 그 수상한 사나이의 그림자를 후딱 생각했다. 검은 별의 단원 가운데 그 어느 하나가 바베크에게 의혹의 념을 품고 뒤를 따른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 본집 창고 안에 갇히어 있는 검은 별이 무슨 방법으로서든지 외부의 단원과 연락을 하여 구조를 청하는 비밀 통신을 발한 것이 아닐까?…… 그는 곧 자동차를 몰아 자기 본집으로 달려갔다.

“검은 별은 어떡허고 있는가?”

그는 곧 막스에게 물었다.

“창고 안에서 뻗대고 있읍니다.”

“이리로 데리고 와.”

막스는 창고로 들어가서 불평 만만한 검은 별을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수염은 자라고 눈 언저리가 꺼떻게 되어 있었다. 검은 별은 소파에 털썩 걸터 앉으면서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막스와 바베크를 쏘아보았다.

“언제까지 나를 가두어 둘 테냐?”

“모르긴 모르지만 오늘 밤까지다. 그러나 인젠 창고에 안 들어가 있어도 좋아. 여기면 따뜻도 하지만 다소 편할 테니까. 밤까지는 될 수 있는 한 자유를 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는 어떡할 테냐?”

“그리고는 경찰로 인도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몇 년 동안 잘 갇히어 있어야 할 걸.”

“흥! 잘 안 될 걸!”

“두고 보면 알아.”

바베크는 웃었다.

“나는 너에게 이미 경고를 해 두었지만 우리 단체는……”

“음, 실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을 테지,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법률도 역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야. 미스터•뿔랙•스타! 지혜 있는 선량한 사람은 언제든지 지혜 있는 악당을 정복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잘 안 될 걸.”

“몇 시간만 더 참아 봐. 경찰서에서 너를 모시려 올 것이니까― 그리고 너희들의 단원도 전부……”

그리고는 막스를 향하여,

“막스, 저 녀석을 잘 감시해야만 돼. 더구나 저 녀석이 전화통 옆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야.”

“염려 마세요.”

바베크는 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는 어떤 약방에 들려서 경찰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 집에서 걸면 바베크의 신분이 이내 드러날 것이 싫었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경찰 부장, 나는 같은 말을 결코 두 번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 처음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두시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 만일 이제부터 하는 내 말이 무시를 당하는 날에는 꼭 후에 이르러 후회를 합니다. 비서를 옆에 불러 놓고 내 말을 속기(速記)하도록 연락을 취해 두시오.”

그리고는 한참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자아, 똑똑히 들으시오. 나는 지금 검은 별의 본거지를 발견했읍니다. 나는 지금 검은 별을 감금해 놓았읍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곧 그 놈을 경찰에 인도할 수 없지요. 만일 인도를 해서 그런 사실이 세상에 퍼지는 날에는 그들의 단원을 전부 놓치게 될 것이니까 말이요.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단원을 체포하지 못 하고서는 단장인 검은 별을 유죄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요.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니까 그리 아시오.”

잘 알겠다는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나는 검은 별의 단원 전부를 일정한 시각에 일정한 장소로 집합하도록 수배하여 놓았으니 일망 타진으로 그들을 검거하면 되지요. 아니, 그렇게 너무 흥분하지 말고요. 부장, 질문은 필요가 없읍니다. 단원은 남자가 여덟명, 여자가 두 명 도합 열명이니까. 그쯤 알고 필요한 수의 경관을 파견하여 체포해 달라는 것이요. 내가 말한 시간에 내가 말하는 장소에서 그들을 체포해야만 되오. 만일 그들 중에서 단 한 놈이라도 놓치면 아니 되지요. 어째 그러냐 하면 그들은 하나처럼 다 훔친 물건을 몸에 지니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단원들을 전부 체포했을 때, 나는 괴수인 검은 별을 경찰에 인도할 것이요.”

전화 통에서는 뭐라고 서로 떠드는 소리가 귀가 아프게 들려 왔다.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겠다고 나는 이미 말해 두었소. 알았읍니까? 알았으면 됐읍니다. 아 내가 누군지 나의 신분은 말할 수가 없소! 내 말을 믿지 않아도 좋소. 자아, 그러면 후에 다시 전화를 걸 테니까 그 때는 그들을 체포할 장소를 말해 드리겠소. 굳바이!”

바베크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그리고 또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즈음 경찰 본부에서는 별둥지를 터뜨린 것처럼 웅성거리고 있었다. 검은 별의 단원 하나가 변심을 하여 단체를 파괴하려고 밀고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바베크가 약혼자인 포오스티나의 집으로 달려 갔을 때, 포오스티나의 얼굴에는 깊은 우수의 빛을 넘어선 일종 헤아릴 수 없는 공포의 빛이 떠돌고 있었다.

“포오스티나 무도회에는 안 가요?”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가 봐야겠어요.”

“동생도?”

“예, 하워어드도 가요.”

“그래 먼저 가 있어요. 나도 가겠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좀 늦어질 것 같아요.”

그 때 포오스티나는 바베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그리 자세히 쳐다 봐요?”

바베크는 약간 놀랐다.

“아아, 로오쟈! (바베크의 이름) 아무 것도 아냐, 아무 것도 아냐요!”

바베크는 포오스티나의 손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포오스티나는 가만히 손을 비키며, 어쩐지 약혼자를 멀리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포오스티나 어디 몸이 편치 않어요?”

바베크는 근심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아 아뇨. 자꾸만 신경질이 나서……”

“어제부터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는 모양인데…… 이야기를 해 줘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못 하겠소?”

“이야길 해도…… 당신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왜 그런 말을 하오?”

“묻지 말아 주세요. 로오쟈! 저녁까지는 괜찮을 거야요. 좀 누웠다가 하워어드와 함께 무도회엘 잘 테야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야요.”

“너무 걱정 말아요..

그러면서 바베크는 가만히 손을 쥐어 주었다.

“저더러 걱정을 말라고요?”

“그럼요,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지만 오늘 밤에 내 죄다 이야기를 하리다.”

“네, 오늘 밤 이야기를 해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바베크는 곧 작별을 하고 밖으로 나와 또 자동차를 몰았다. 포오스티나의 행동과 태도가 적지 않게 마음에 걸렸으나 그의 마음은 지금 검은 별에 관한 사건으로 가득차 있었다. 검은 별과 그의 일당을 경찰로 넘긴 후에야 포오스티나를 돌보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번잡한 거리를 지나 어떤 호텔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한길가 공중 전화통으로 들어가서 다시금 경찰 본부에 전화를 걸어 경찰 부장을 찾았다.

“경찰 부장, 내 말을 잠자코 들어 보시오. 결코 농담이 아니니까, 이제부터 하는 나의 보고로써 활동을 개시하시오.”

그러면서 그는 검은 별의 일당을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체포하면 된다는 말을 자세히 하였다.

무서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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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도 바람은 셋다. 눈도 왔다. 그리고 자선 무도회가 열리는 커다란 회관에는 수 많은 전등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회관은 수백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가 있었다. 사교계에서도 이름이 높은 부인들과, 영양이 안전 보장 창고에서 꺼내 가지고 온 귀중한 보석들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오오케스트라의 유창한 음악, 찬연히 빛나는 전등불, 그리고 밖에는 수백 대의 자가용차가 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아 인제는 완전히 수배가 되었다!”

바베크는 차를 타고 본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에서 단원들을 체포한 후에야 검은 별을 당국으로 넘길 작정이다. 그 일이 끝나기만 하면 자기도 회관으로 달려가서 약혼자와 즐거운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검은 별은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있었고 막스는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아무 일도 없읍니다.”

막스는 보고를 하였다.

“아, 그러면 됐어. 담배를 한 대 피우라고 손목을 좀 풀어 놓아 주게. 조금만 있으면 경찰로 넘어갈 사람이니까—”

막스는 하라는 대로 손을 풀어 주었다. 검은 별은 곧 담배 한 꼬치를 집어 맛나게 피워 물었다.

“언제 경찰로 넘깁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이 사건은 이미 끝장이 났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경찰이 활동해 주면 되는 것이니까—”

바베크가 담배를 피워 물며 검은 별을 향하여,

“자아, 지금이 열시 반이다. 검은 별! 이제부터 한 시간 반 후에는 너의 일당은 경찰에 붙들리는 것이다. 남자가 여덟 명, 여자가 두 명, 도합 열 명이다.”

“그래?”

검은 별은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절대로 틀림이 없다!”

바베크는 자신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흥, 어떻게 우리 단원을 붙든다는 말인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신용이 잘 안 되는 걸.”

“나는 어제 밤, 네 마스크와 까운을 이용하여 검은 별이 되었다. 나는 네가 준비하여 둔 명령서를 모조리 찢어 버리고 나의 새로운 명령서를 그들에게 주었다. 누구 한 사람 나를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그 말에 검은 별은 점점 흥미를 느끼는 모양으로 물었다.

“그래, 그 명령이라는 게 대관절 무어야?”

“응, 이야기를 해 주마— 명령은 전부가 똑 같은 것이었다. 그 명령의 결과로써 경찰은 전 단원을 일망타진으로 검속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검은 별의 얼굴에는 공포의 표정이 후딱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태연한 어조로 물었다.

“어떤 방법으로 체포를 하는지, 설명을 좀 해다오.”

“듣고 싶거든 이야기 하지. 도대체 너희들 조직에는 빈 틈이 있는 것이다. 너는 단원들에게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여 반대 질문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를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나는 때때로 위험천만인 명령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나의 계획을 믿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랬을 거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다소 위험한 명령을 했을 때도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하여 그들을 체포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고 했다. 자아, 이것이 나의 명령서다. 읽을 테니 들어 봐.”

그러면서 바베크는 주머니에서 명령서를 꺼내 읽기 시작하였다.

×

그대는 될 수 있는 한 성장을 하고 자선 무도회에 출석을 하라. 입장권과 그밖에 필요한 돈은 내가 주마. 그대는 춤추는 군중 속에 섞여서 단독으로 보물을 훔쳐라. 활동에 가장 좋은 시각은 열 시에서부터 열 두 시 사이다.

정각 열 두 시에 그대는 양복 저고리 깃에 빨간 〈리봉〉을 달고 휴계실 맨 남쪽 모퉁이로 가라. 〈리봉〉을 단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말을 건네서는 아니 된다. 모르는 척 하라. 이 명령을 어김 없이 수행하라. 그러므로써 우리들의 계획은 성공하는 것이다.

×

바베크는 명령서를 읽고 검은 별을 바라보았다.

“이만 했으면 알겠나? 그들은 나의 계획을 잘 모르지만 명령대로 하기만 하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나는 테이블 서랍 속에 들어 있던 돈을 얼마씩 집어 주었다. 그리고 여자 단원에게는 어깨에다 빨간 리봉을 달도록 명령하였다. 그 휴계실에는 삼십 명의 사복 형사가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각 열 두 시를 신호로 빨간 리본을 단 놈들을 일제히 검거를 하기로 되어 있다. 몸을 뒤지면 훔친 물건 등이 나올 것이다. 어때? 이것으로 너희들의 조직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다. 검은 별! 어떠한가? 너를 신용하고 있던 단원들은 너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도 그들과 함께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흠, 나는 네 계획이 아무런 효력도 내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검은 별은 태연한 태도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그것쯤으로써 너는 나의 단원을 감옥으로 보낼 줄 알고 있는가? 흥,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너 자신에게 무서운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런 잔소리는 듣기 싫다.”

“잔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단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정보를 수집하는 단원과 범죄를 수행하는 단원과— 그런데 그것을 너는 혼동하는 큰 실책을 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에게 있어서는 실로 불유쾌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무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면 이렇다. 너는 언젠가 친구 집에서 나를 손쉽게 체포할 수 있다는 소리를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이 나의 귀로 곧 들어왔다. 도대체 어떤 경로를 밟아 들어 왔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네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우리 단체에 가입해 있는 탓이다.”

“내 친구 가운데 그런 인물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자진해서 가입하는 자는 없을지 모르지만 할 수 없이 가입하는 자는 있을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그렇다. 한 예를 들면, 이 거리의 어떤 청년 하나가 대단한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그 청년을 도와 주었다. 그 대신 그 청년은 우리 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청년의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라, 우리는 그 청년을 통하여 그의 약혼자인 여자까지도 단원에 잡아 넣었다.”

“누가 그런 말을 곧이 들을 줄 아는가?”

“증거가 필요하다면 가르쳐 주마. 그 청년은— 즉 나를 붙들겠다고 큰 소리를 한 네 말을 내게다 알려 준 것은 하워어드•웬델이다! 네가 지금 결혼을 하려는 약혼자의 동생이다.”

“거짓말 말아!”

바베크는 걸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나는 거짓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하워어드는 삼촌의 용건으로 시카고에 가 있었다. 그 때 우리의 부하 하나가 하워드를 유혹하여 도박장으로 끌고 갔다. 하워어드는 아직 어린애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삼촌의 돈을 삼천 불이나 뺏겨 버렸을 때였다. 나에게는 한 사람의 진실한 협력자가 있다. 나의 부하는 하워어드를 데리고 그 협력자한테로 가서 돈를 돌려 주었다. 그 협력자란 알고 보면 그 도박장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돌려 준 삼천 불은 현금이 아니고 위조 수표였다. 이리하여 하워어드는 위조 수표의 사용자로서 체포된다고 협박을 받아 하는 수 없이 우리 단체에 가입하였다.”

“이 악마 같은 놈아!”

바베크는 고함을 쳤다. 그 때 검은 별은 조소하는 얼굴로,

“그것뿐이 아니다. 네가 명령을 한 사나이의 번호는 무엇이냐?”

바베크는 극도의 불안을 품으며 번호를 냈다.

“그렇겠지, 하워어드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밤, 경관에게 검거를 당하는 단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그러한 명령을 받고 놀랐을 것이다. 그는 정보를 수집하는 이 외의 일은 하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베크는 검은 별의 이야기가 참말인 줄을 깨달았다. 하워어드는 그 명령에 대하여 불공평하다고 항의를 하지 않았던가. 그이라면 푸리이다•부레크란드 양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 바베크의 눈 앞에서 모자를 벗고 신호를 하지 않았는가. 아아, 사랑하는 약혼자의 동생인 하워어드가 훔친 물건을 주머니에 넣은 채 경관에게 붙잡힐 것이다. 거기서 검은 별은 또 물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번호는 무엇이냐?”

바베크는 여자의 번호를 알으켜 주었다.

“음, 맨 처음의 여자는 우리 단원 중에서도 상당한 활동력을 가진 여자다. 그러나 둘째 번 여자는 그 여자는 내 수첩에도 적히지 않은 새로운 단원으로서 그날 밤 처음으로 온 여자다. 여자는 자기 육친에 대한 애정에 끌려 할 수 없이 단원이 된 것이다. 그래 그 여자도 오늘 밤에 붙잡힌다는 말이지? 음, 좋아! 그러나 너는 그 여자의 신분을 아는가? 아마도 잘 모를 것 같으니까, 내가 친절을 베풀어 알려 주마! 포오스티나•웬델 양— 너의 약혼자다!”

“오오—”

바베크는 눈 앞이 아찔해졌다.

검은 별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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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의 그 한 마디야말로 청천의 벽력이었다. 바베크는 눈 앞이 아찔해졌다.

검은 별의 어조, 태도, 표정으로 보아서 그것은 틀림 없는 사실 같았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약혼자 포오스티나의 태도에는 실로 수상한 점이 많았다. 검은 별의 여단원으로서 두 번째 나타났던 여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 여자는 바베크의 명령서를 읽는 순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그 여자는 바베크의 반지를 어디서 손에 넣었는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약혼자를 방문했을 때, 약혼자의 태도라든가 이야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 했으면 모든 것을 알아차렸겠지.”

검은 별은 승리자처럼 의기가 양양하였다.

“너는 약혼자와 그의 동생을 구하고 싶지는 않는가? 구하고 싶거든 나를 석방하라. 나는 너와 협력을 할 테다. 나는 나의 단원들을 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너의 약혼자와 그의 동생은 다른 단원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바베크, 대답을 해 봐라. 너의 약혼자인 포오스티나•웬델과 그의 동생 하워어드•웬델이, 거리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그 두 사람이 보석을 훔치는 현장에서 체포를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이 검은 별의 단원이라는 증거물은 나의 본거지인 그 빈 집에서 발견될 것이다. 포오스티나가 쓴 편지라든가 그 밖에……”

검은 별의 얼굴에는 쾌심의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베크는 눈 앞이 캄캄하였다. 바베크의 반지를 보고 그 여단원은 극도로 놀랐다. 아아, 포오스티나는 자기의 약혼자인 바베크를 검은 별로 생각할 것이 아닌가! 동생에 대한 애정을 이용하여 약혼자를 무서운 절도단에 가입시킨 자가 바로 바베크인 줄로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그의 동생 하워어드도 그 반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밤, 아파아트로 돌아가는 바베크의 뒤를 따라온 것은 틀림없는 하워어드일 것이다.

바베크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쏜살같이 자동차를 몰았다. 자선 무도회가 열리는 것은 정각 열 두 시다. 지금은 열 한시! 약 한 시간 동안의 여유가 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약혼자와 그의 동생을 무도회의 회장에서 데려 나와 빨간 리봉을 떼 버리도록만 손쓰면 만사는 오케다.

그 때 바베크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알고 검은 별의 본부에 남아 있다는 약혼자의 편지를 우선 지워 버릴 생각을 문득 하였다. 검거된 다른 단원이 자기네들 본부를 자백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포오스티나 남매에 관한 증거물이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무도회로 곧장 가기 전에 예의 그 빈 집으로 자동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그는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찬 그 컴컴한 빈 집에서 무슨 증거물이나 없을까 하고, 무턱 대고 찾아 보았으나 좀처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발뿌리로 단추를 눌러 캄캄한 함정 속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증거물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무척 당황하였다. 시간이 자꾸만 가기 때문이다.

그 때 그는 테이블 한 모퉁이에 달린 조그만 단추 하나를 발견하고 힘있게 눌렀다. 순간, 설합이 확 튀어 나왔다. 무슨 서류가 하나 가득차 있었다. 포오스티나 남매의 필적이 분명한 편지가 있었다. 그는 거기 있는 서류 전부를 불에 태워 버렸다. 증거물이 될 것 같은 서류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태웠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시간은 상당히 지났다.

바베크는 부리나케 문을 향하여 뛰쳐 나갔다. 뛰쳐 나가다가 그는 깜짝 놀라며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어찌 된 셈일까?”

담장 옆에 사나이가 두 사람 서 있었다. 왼편에도 두 사람, 바른 편에도 두 사람— 가로등 불에 비쳐지는 그들의 모습은 분명히 경관이었다.

“경관이 이 집을 포위했다!”

순간, 바베크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잘못하다가는 검은 별로 체포를 당할는지도 모를 일이 아니냐! 자기가 가짜 검은 별의 행세를 하고 있을 때, 자기 손에 낀 반지를 단원들은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검은 별의 얼굴을 전혀 모르는 그들은 이 반지를 증거 삼아 바베크를 자기들의 수령이라고 증언을 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그것은 하여튼, 그보다 조금 전 바베크가 허둥지둥 뛰어 나간 후, 막스는 혼자서 검은 별을 지키고 있었다.

“이 놈아! 너같은 악당이 우리 선생님을 그처럼 괴롭힌다는 말인가? 너같은 놈은 사형도 아깝다. 종신 징역을 보낼 테다!”

충실한 막스는 바베크를 그처럼 괴롭히고 있는 검은 별이 밉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검은 별은 담배를 피우면서 두 팔꿈치에다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엎디어 있었다. 우는 것 같았다.

“잘 생각했다. 너도 양심이 있으면 뉘우쳐야 할 거다! 그러나 뉘우칠 때는 이미 늦었다! 자식, 꼴 보기 사납다!”

그러나 검은 별은 정말로 과거를 뉘우치는 모양인지, 머리는 한층 더 자꾸만 숙어 갔다. 기운을 탁 잃고 가만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실 검은 별은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러 울고 있는 것 같은 태도를 취했을 따름이다. 그가 얼굴을 죽였을 때, 일에 피어 문 담뱃불이 손목을 동여맨 밧줄을 조금씩 조금씩 태우고 있었다. 밧줄은 차츰차츰 가늘어져 갔다. 그 동안 막스는 방 안을 뺑뺑 돌아다니면서 욕질을 무수히 퍼붓고 있었다.

“너같은 놈이 주제넘게도 이 거리의 훌륭한 분들을 괴롭히다니 천벌을 맞을 놈이다!”

그러면서 검은 별의 옆을 지나가는 순간, 검은 별은 화닥닥 일어서면서 막스를 독수리처럼 덮쳐 버렸다. 권총을 빼앗겼다. 권총 자루가 무서운 힘을 가지고 막스의 뒤통수를 내려갈겼다. 막스는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 미련한 놈아, 어때? 나를 감옥에 넣겠어? 잘 안 될 걸! 흐, 흐, 흥! 나에게는 수 많은 돈이 있다. 시카고로 도망을 치면 그만이야. 우리 사무소에서 돈과 단원들의 편지를 가지고 시카고로 내빼면 되는 거야. 그 편지를 검사국으로 보내기만 하면 바베크의 약혼자와 그의 동생은 꼼짝달싹도 못 하고 감옥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허, 허, 허……”

그리고 쓰러진 막스를 한 번 발길로 툭 차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나 막스는 정신을 아주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검은 별의 이야기를 희미하게나마 죄다 듣고 있었다. 그는 뒤통수를 비비면서 일어나 앉았다.

“가만 있자! 검은 별은 뭐라고 그랬지? 돈과 편지를 가지고 시카고로 도망을 친다고!”

막스는 정신이 펄떡 들었다. 그는 쑤시는 뒤통수를 비비면서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여보시요, 경찰 본붑니까? …… 검은 별이 도망을 쳤읍니다! 다른 단원들은 무도회에서 체포할 수 있지만, 이 놈은…… 검은 별은 그의 본부인 빈 집으로 가야 잡읍니다.”

그리고는 그 빈 집에 대한 지리를 상세히 알으켜 주었다.

“빨리 가야 합니다. 나도 가겠읍니다! 내가 가야만 그 놈의 얼굴을 압니다!”

막스는 전화를 끊고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지나가는 택시를 한 대 불러 탔다. 택시는 전 속력을 내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경찰 본부에서는 막스의 정보에 접하자 즉시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막스는 경찰대보다 한 걸음 먼저 그 빈 집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막스는 거기서 저 밉살스런 검은 별을 발견하는 대신 바베크를 만났다. 캄캄한 방 안이다. 바베크는 촛불을 켜 가지고 복도로 뛰쳐 나오는 바로 그 순간 막스를 만난 것이다.

“아, 선생님! 큰일났읍니다. 자식이 도망을 했읍니다!”

막스는 간단히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나서,

“선생님, 경관이 밖에 왔읍니다. 어물어물하다가 선생님이 검은 별의 수령으로서 체포 당할는지 모릅니다. 빨리 도망을 칩시다!”

바베크도 이 일을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무도회에서 포오스티나 남매가 붙들리게 되는 날에는 바베크의 반지가 유일한 증거물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검은 별로서 체포를 당할 것이다.

“경관은 몇 명이나 되는가?”

“열 댓명은 확실합니다.”

“앗, 문을 두드린다!”

캄캄한 방 안이다.

“선생님, 이리 오시오.”

막스는 바베크의 손을 끌고 뒷문으로 가만히 빠져 나갔다.

“여기는 한 사람도 없읍니다. 모두 앞 문으로 몰린 모양입니다.”

그러는데 앞문이 열리면서 경관대가 뛰어 들었다.

“빨리 저를 따라 오시오!”

둘이는 정원으로 해서 담장을 넘었다. 그러나 둘이가 바베크의 자동차를 타고 엔징을 넣었을 때, 탕, 탕, 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경관들이 이 편으로 달려왔다. 위잉— 위잉— 총알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바베크의 자동차는 저만큼서 달리고 있었다. 경관들도 자동차로 따라왔다.

“자아, 막스. 너는 이 차를 몰고 그냥 내 달려라. 나는 저 집 모퉁이로 돌아서면서 내릴 테다. 나는 무도회로 가야만 한다. 너도 나중에 무도회로 오너라.”

“네, 염려 마십쇼. 경관들을 꽁무니에 달고 거리를 한 바퀴 산보하고 가지요.”

이리하여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바베크는 차에서 살짝 뛰어 내리고 막스는 그냥 차를 몰았다. 바베크가 한길가 재목더미 뒤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경관의 차가 눈 앞을 획 지나갔다.

무도회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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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가 무도회에 도착한 것은 정각 열 두 시 오 분 전이었다.

“오 분밖에 남지 않았다!”

“오 분 후에는 가슴에 빨간 리봉을 단 검은 별의 단원들이 경찰에 체포를 당하는 것이다.”

휴계실 서남 한 모퉁이에 세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나이고 한 사람은 여자였다. 그들은 모두 다 양복 깃에 빨간 리봉을 달고 있었다. 여자는 어깨에다 달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바베크는 사복을 한 형사대가 여기 저기 모여 서서 수근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때때로 수상한 눈초리로 빨간 리봉을 단 신사 숙녀를 힐끔힐끔 바라다 보는 것이었다.

그는 그 때, 약혼자인 포오스티나와 그의 동생인 하워어드가 각각 빨간 리봉을 달고 이리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형사대에게 눈치채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약혼자 앞으로 걸어갔다.

“빨리, 빨리!”

그는 낮은 목소리로,

“아무 말도 묻지 말고…… 나 하라는 대로만 해요! 그 리봉을 떼요! 빨리! 그리고는 곧 저편 무도실로 가서 적당한 곳에 숨어라.”

바베크는 빠른 말씨로 그렇게 속삭이면서 약혼자의 리봉을 떼 주었다. 하워어드는 제 손으로 떼 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무도실로 들어가서 약혼자와 함께 왈츠를 추면서 군중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 때, 무도실에 걸린 커다란 시계가 땡— 땡— 땡— 열 두 시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휴계실 한 쪽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사대가 일제히 들어서서 검은 별의 일당을 검거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포오스티나는 바베크의 품 안에서 거의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은……?”

포오스티나는 그 이상의 말을 입에 담지 못 했다.

“아무 말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소. 염려 마시오. 나는 당신과 하워어드의 편지를 전부 불에 태워 버렸소.”

하워어드도 옆으로 슬금슬금 걸어와 있었다.

“그러나……”

“마침 잘 됐소! 하마터면 나는 당신을 구하지 못할 뻔했지요.”

“당신이 나를 구하신다고요?”

“쉬이!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좀 더 가까이! 하워어드, 이리 좀 가까이 와요. 실은 나도 검은 별의 독수에 걸릴 뻔했지요. 나는 놈이 숨어 있는 곳을 습격하여 놈을 포박했지요. 그리고는……”

거기서 바베크는 지금까지 취해 온 자기의 계획을 쭉 이야기하였다.

“당신이……?”

포오스티나는 눈이 둥그래졌다. 하워어드는 놀랐다.

“나는 이미 증거물이 될 편지를 불살러 버렸다. 조금도 걱정 말고 이제부터는 하워어드도 정신을 차리고 그런 인간들과는 교제하지 말어.”

“고맙네!”

하워어드는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오, 당신이! 나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을 꼭 그 검은 별인 줄로만 알고…… 아, 그 반지! 그리고 하워어드도 당신의 아파아트까지 뒤를 따랐섰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소.

“당신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 반지가 너무 수상해서…… 그러나 동생과 나는 서로 의논을 하고 여기에 오긴 왔지만, 보석은 훔치지 말기로 약속을 하고 왔어요. 죽어도 그 짓은 못 하겠어요.”

“오오!”

바베크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 즈음, 휴계실 쪽에서는 아직도 떠드는 소리가 멎지 않았다. 춤추던 사람들도 기웃기웃 거기로 가 본다. 바베크도 두 사람을 데리고 태연한 얼굴을 하고 휴계실로 걸어갔다.

검은 별의 일당은 손목에 모두들 수갑을 차고 있었다. 형사들은 그들이 훔친 보석류를 일일이 뒤져 냈다. 그들 중에는 벌써부터 자가들의 수령을 원망하는 자도 있었다. 자기들을 배반한 수령을 원망하는 자도 있었다. 자기들을 배반한 수령을 저주하였다. 바베크는 마음 속으로 편지를 불사르고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남자가 여덟 명, 여자가 두 명이라야 맞는데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부족이다!”

형사대를 지휘하던 경부가 의심적은 얼굴을 하였다. 그 때 형사 하나가,

“또 한 사람, 빨간 리봉을 단 여자를 보았는데요, 얼굴을 보면 알지만요.”

하고 대답하였다.

“음, 그렇다면 출입구를 경계해라.”

경부는 곧 명령을 하였다.

“안 됐소,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야겠소!”

바베크는 포오스티나의 팔 소매를 가만히 잡아 당기며,

“저 사나이는 당신의 얼굴을 알고 있을는지 모르오. 빨리 나갑시다! 거리에서 만났댔자 적어도 포오스티나•웬델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 얼굴을 보였다가는 아니 되오.”

“그럼 어떡험 좋아요?”

포오스티나는 겁이났다.

“조용히! 될 수 있는 대로 태연한 태도로! 나하구 함께 나갑시다. 자동차로 왔소?”

“네.”

“자아, 하워드도 이리 따라 나와. 자연스럽게! 태연하게!”

세 사람은 출입구로 걸어갔다.

“잠깐 기다리시오!”

세 사람을 부른 것은 경부 자신이었다.

“얼굴을 좀 보이시오— 아, 바베크 씨가 아니시오? 그리고 이 분은 웬델 남매시구. 아, 실례했읍니다. 실은 두 놈의 악당을 체포하려구요……”

“수고 하십니다.”

바베크는 모자에 손을 한 번 대 보이며 밖으로 나와서 자동차를 타려는데 저편으로부터 막스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선생님, 잠깐 이야기가 있는데요.”

바베크는 두 사람의 옆을 잠간 떠나 막스를 따라갔다.

“선생님, 검은 별을 붙들었읍니다!”

“응……?”

바베크는 놀랐다.

“저기 저 자동차 안에 틀어 넣어 두었읍니다. 대가리를 보기 좋게 한 대 내려갈겼더니, 하 하 하…… 외투를 씌워 두었지요.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릴지 모릅니다.”

“아니, 어떻게 그 놈을……?”

“하여튼 선생님, 이번엔 어물어물하지 말고 빨리 경찰로 넘기세요. 어쩐지 도무지 마음이 뇌질 않아요.”

“그러지!”

바베크는 막스와 함께 저편으로 걸어가서 외투를 쓰고 자빠져 있는 검은 별을 보았다. 그리고는 곧 경관을 불렀다.

“검은 별을 붙잡았읍니다. 그렇습니다. 아까 경찰 본부로 전화를 건 것도 실인즉 나였읍니다.”

“헤에……?”

경부와 경찰들은 이 뜻하지 않은 보고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는 저 부인을 모셔다 주고 곧 경찰 본부로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여 드리겠읍니다. 이 놈은 굉장한 놈이니까,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경찰 일행과 헤어진 바베크는 막스를 향하여,

“막스, 대체 어떻게 된 셈이라는 말이냐?”

“경찰대의 추격의 손에서 간신히 빠져 나와 중앙역 뒤를 지나 가는데, 아, 저 강도가 곧잘 나타나는 어숙한 골목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를 지나는데, 저 고약한 검은 별이 구두를 손에 들고 어정어정 걸어오지 않겠어요? 그래 차를 멈추고 쇠망치를 들고 가만히 내려가서 뒤통수를 한 대 딱 하고…… 그뿐이지요, 이야기는—”

“막스, 용하다! 그러면 후에 다시……”

막스와 헤어져 바베크는 약혼자와 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데로 달려왔다.

“검은 별을 붙들었소!”

“어마나!”

“자아, 나는 이제부터 당신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곧 경찰 본부로 가야겠소.”

그러면서 바베크는 약혼자의 손을 한번 꼭 쥐어 주었다.

검은 별의 편지

편집

포오스티나와 그의 동생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바베크와 막스가 경찰 본부로 달려갔을 때, 본부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형사들과 순경들이 꾸중을 듣는 어린애처럼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경부는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서 담배만 푹푹 피우고 있었다. 경찰 부장은 넓은 방 안을 성난 사자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부하들의 무능을 욕질하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을 전부 파면을 시킨다. 나는 내일 아침 시장한테 사표를 제출할 테다! 아, 바베크 군!”

“부장, 왜 그러십니까?”

“자아, 너희들, 이분을 좀 자세히 보아 두어라. 이 분이 바로 바베크 군이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 검은 별을 붙잡은 사람이다! 너희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봉급을 받고 있다는 말이냐. 이 분은 자기 운전수 한 사람과 용감하게도 저 검은 별을 체포하였다. 경찰의 손을 빌리지 않고…… 그리하여 우리들 경찰을 한 번 놀라게 할 셈으로……”

“부장,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베크는 겸손히 말했다.

“아니오, 나는 우리 경찰에 있는 명탐정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유능한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오. 그래 너희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느냐 말이다! 손목에 수갑을 채워서 호송차까지 태워 준 검은 별을 그래 놓쳤어?…… 응? 놓쳤다는 말이야?”

그 말에 바베크는 깜짝 놀랐다.

“뭐, 놓쳤다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오. 바로 이 경찰 본부 앞에서…… 벌써 한 시간 전 일이오. 이놈들아, 내, 내 앞에서 빨랑빨랑 나가 버려라! 검은 별의 얼굴을 보았지만 눈이 하난지 둘인지도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빨리 나가라! 나가서 검은 별을 다시 못 붙잡어 올 테냐? 너희들은 오늘부터 면직이다!”

형사들과 순경들이 무안한 얼굴로 스름스름 다 나가 버렸다. 부장은 바베크와 막스를 자기 방으로 불러 들였다.

“대체 어떻게 도망을 했읍니까?”

“입이 써서 말이 안 나오. 호송차가 그 전처럼 미결 감방(未決監房) 앞에서 멎었지요. 여덟 명의 단원과 검은 별이 호송차에서 내리려 했을 때, 단원들이 형사를 탁 밀쳐 버렸다는 거요. 그러는 틈에 검은 별이 골목으로 도망을 쳤지요. 바보 같은 자식들이 권총을 발사했으나 총알은 맞은 편 집 유리만 깨뜨려 놓았답니다. 검은 별은 수갑을 찬 채로 도망을 쳤지요. 바보 같은 자식들은 검은 별이 기절을 하고 쓰러져 있을 줄로만 알았다는 거요.”

“음—”

“이런 경찰 이야기가 어디 있다는 말이요? 신문은 또 내일부터 나를 가혹하게 공격해 올 것이요. 나는 사직을 할 수 밖에……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검은 별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요!”

“형사들은 지금 검은 별의 행방을 조사하고 있읍니까?”

“그렇읍니다. 벌써 사 개월 동안이나 수사를 하고 있지만 티끌 하나 증거를 붙잡지 못 하고 있지요. 그것은 하옇든, 바베크 군. 어떻게 검은 별을 붙잡았읍니까?”

거기서 바베크는 지나간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였을 때, 부장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치면서,

“참으로 훌륭한 조직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완전히 파괴되고 만 셈이 아니요! 검은 별은 먼 데로 도망을 치고 단원들은 검거를 당하고…… 그러나 주의하시오. 그놈들은 바베크 군에게 복수를 할는지도 모르니까요. 민완한 형사 두 사람을 시켜 아파아트를 경호하도록 수배를 해 드리지요.”

“그럴 필요는 없읍니다. 형사 두 사람쯤 있으나 없으나지요. 나는 나 자신과 막스를 믿으면 되니까요.”

“훌륭한 말이요.”

“검은 별은 새로이 단원을 모집하고 본부를 설치할 때까지는 아무 일도 못할 것이요. 그뿐 아니라, 내가 보건대 검은 별은 사람을 해칠 그런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는 결코 아니오.”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놈은 폭력보다도 머리로써 일하는 것을 자랑하고 있지요. 금고를 교묘하게 열기는 하지만 금고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음, 그리고는 검은 별 한 개를 살짝 붙여 놓고…… 자아, 그러면 또 봅시다. 날이 거지반 밝게 되었소.”

바베크는 막스와 함께 경찰 본부를 나와 자동차를 탔다.

“대체 어찌 됐다는 말이오?”

막스는 불만이 만만하다.

“검은 별은 참으로 영리한 인간이다.”

“단원들이 도망을 시켰다는 말이지요?”

“그렇다. 수령만 놓아 주면 언젠가 한 번은 자기네를 구해 주러 올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까.”

“검은 별은 먼 데로 도망을 쳤을까요?”

“아니다. 검은 별은 이 거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는 검은 별을 체포할 것을 말했다. 내 말에 대하여 그 놈은 붙잡으려면 붙잡어 보아라! 하는 뱃장을 가질 수 있는 사나이다.”

“저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이윽고 아파아트로 돌아왔다. 막스는 서재의 불을 켰다. 바베크는 모자와 외투를 벗어 던지며 파이프에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네 시 오분 전이다.

그러나 그 순간, 바베크는 깜짝 놀랐다. 시계 유리 판 위에 조그만 검은 별이 하나 붙어 있지 않은가.

“어제 밤에는 분명히 없었던 별이다! 경찰 본부에서 도망을 하는 길에 여기에 먼저 들러서 간 것이 분명하다.”

그 때 막스가 침실로부터 뛰어들어왔다.

“선생님! 이 편지를 보십시오! 선생님의 베개 위에 핀으로 꽂아 놓아 둔 것입니다.”

봉투에는 조그만 검은 별이 붙어 있었다.

“음, 참으로 빠르다!”

바베크는 혀를 차면서 봉함을 뜯었다.

× ×

바베크! 너는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위기 일발의 순간에서 도망을 쳤다. 너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경관과 나의 단원들도 보았다. 그러나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네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많다. 너는 나를 체포한다고 커다란 말을 탕 탕 하였다. 바라건대 제발 좀 체포해 보아라! 설사 네가 나를 철창 속에 쓸어 넣는다 치더라도 승리는 언제든지 나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경찰 당국을 조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를 조소한다. 나는 결단코 먼 데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준 괴로움에 대하여 나는 반드시 네게 복수를 할 것이다. 나는 너의 생명에 대해서 위험을 주는 것과 같은 그러한 야만적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네게 무서운 타격을 주고야 말 것이다. 나는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하여 너를 공격하고 너를 파멸의 구렁지에 몰아 넣고, 너로 하여금 세상의 웃음거리를 만들고 한 걸음 나아가서는 네가 검은 별의 이름을 귀에 담은 그 날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들의 싸움은 네가 쓰러지든지, 내가 쓰러지든지 해야만 끝이 날 것이다. 오늘 밤은 편안히 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에게 안식이 필요하다. 네가 눈을 다시 뜨는 순간에 우리들의 싸움은 다시금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편히 쉬라.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사람이여! 검은 별

×

바베크는 태연하게 편지를 읽고 있었으나 맨 마지막의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사람이여!〉…… 라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자아, 막스! 우리는 지금까지도 많은 고난을 겪어 왔지만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은 그 몇 배나 더 가혹한 것이 될지 모른다. 자아, 준비를 톡톡히 해야만 한다. 검은 별이 유죄의 판결을 받고 감옥소 철창 속에 갇힐 때까지 우리는 한 걸음도 물러 서서는 아니 된다!”

“선생님, 염려 마십쇼. 준비는 되어 있읍니다!”

“됐어! 우리들은 될 수 있는 한 우리의 독력으로 하고 싶다.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다. 경관, 친구…… 그들 중에도 검은 별의 단체에 가입한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스, 너와 나와는 서로 신뢰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구 말굽쇼!”

막스는 단호한 대답을 하였다.

이튿날 아침 열한 시에 눈을 떠 보니, 침대 옆에 막스가 서 있었다.

“선생님, 이 신문을 좀 보십쇼. 검은 별의 성명서가 실리어 있읍니다. 선생님과 저를 극구 칭찬을 하고 경찰 당국을 여지 없이 때려 부쉈읍니다. 저 뚱뚱보 경찰 부장이 이 기사를 보면 아마두 미쳐 날 것입니다.”

“음, 벌써 서너 시간 전에 미쳐 버렸는지 모르지. 아, 배가 고프다.”

검은 별은 참으로 기민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베크는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신문에는 바베크의 사진이 커다랗게 게재 되어 있었다. 생각컨대검은 별은 특별 배달을 시켜 신문에다 편지를 낸 것이었다. 그는 경찰 당국의 무능을 비웃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멀지 않아 무시무시하게 큰 범죄를 수행할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리고 바베크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고 하였다. 이제 그 편지의 최후의 한 귀절을 소개해 보면,

× ×

경찰 당국의 제군에게 고함一.

나와 나에게 많은 괴로움을 준 바베크와의 사이에는 대적 행동(對敵行動)이 개시되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경고를 한다. 나의 원수인 바베크에게 대하여 어떤 사람이든지 원조와 조력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바베크에 대하여는 주택의 제공, 식료품의 제공, 그리고 의복의 제공 등을 일체 거절하고 그와의 이야기를 피하고 기타 온갖 장사 거래를 거절하라! 만일 나의 이 경고에 위반하는 자는 나의 단호한 처벌을 받을 줄로 알라!

검은 별

×

바베크는 맨 마지막의 이 한 귀절을 읽고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분명 검은 별의 유우모어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베크는 이 거리에서도 명망 있는 집안의 아들이요, 사회적 지위와 거액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바베크에게 있어서 과연 검은 별의 이러한 경고가 무슨 효과를 내겠느냐 말이다.

“흥! 사랑스런 검은 별!”

그렇게 코웃음을 치기는 했으나 역시 생각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집도 쫓겨 나가고 식사도 마음대로 못 하고 옷도 쉽사리 사들이지 못해 쩔쩔 매는 바베크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검은 별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바라볼 심산인 것이다. 그리하여 바베크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려는 것이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그러나 내가 먼저 검은 별을 체포해 버릴 것이다!”

바베크는 자신이 만만하였다.

검은 별의 예고

편집

아침을 먹은 후 바베크와 막스는 경찰 본부로 달려갔다.

수면 부족인 경찰부장은 화를 풀풀 내고 있었다. 부하들이 검은 별을 놓쳐 버린 데 대한 화풀이였다.

“괘씸한 검은 별이다. 나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 음.”

“아, 부장께도 편지가 왔읍니까?”

바베크는 물었다.

“왔읍니다. 나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하하. 내게도 그런 편지가 왔답니다. 오늘 아침 아파아트에 가 보았더니, 온 방에 검은 별이 붙어 있고 베개 옆에 편지가 놓여 있었지요. 이것입니다.”

바베크는 부장에게 편지를 내주었다. 부장은 편지를 읽고 나더니, 이윽고 형사 한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것은 거의 50에 가까운 타이리라는 늙은 형사였다. 담력이 있고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재주가 있는 노련한 형사였다.

“자아, 타이리 군은 여기 있는 바베크 탐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랬더니 늙은 타이리 형사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잘 알아 모시고 있읍지요. 저는 이 분의 아버지의 소개로 경찰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 분이 어렸을 때, 팽이 돌리는 법을 가르쳐 드렸읍니다.”

“음, 군은 이 거리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드물게 보는 정직한 사람이다. 자아, 거기 앉아 내 말을 잘 들어요. 오늘부터 군은 검은 별의 수사 주임이 된 것이다. 네가 검은 별을 체포만 한다면 나는 군을 경찰 서장으로 추천을 할 테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특별한 임무인가요?”

“그렇다. 특별 임무다. 군은 오늘부터 바베크 탐정과 같이 행동을 하면서 바베크 탐정의 신변을 보호해야만 되는 특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만 된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바베크가 굳이 사양하였으나, 부장은 그것을 막으며,

“아니오. 당신은 검은 별에게 항상 위협을 받고 있으니까, 신변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타이리 군을 파견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일을 해 주시오. 일일이 경찰과 연락할 필요는 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타이리 군에게 말을 하시오. 그러면 경관대를 파견할 터이요.”

“잘 알았읍니다.”

부장의 친절을 어디까지나 거절할 수도 없어서 바베크는 마침내 그것을 승낙하였다.

“그러니까 경찰 본부와는 단독으로 행동을 취해 주시오.”

이리하여 바베크와 막스는 타이리 형사를 동반하고 경찰 본부를 등졌다.

그날 밤, 세 사람은 바베크의 아파아트에서 검은 별을 체포하는 데 대하여 상세한 작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네 시경에 돌연 전화의 벨이 세 사람의 잠을 깨웠다. 바베크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수화기를 들었다.

“바베크 씨의 아파아트입니까?”

상대자의 물음이다.

“그렇습니다.”

바베크는 대답하였다.

“당신은 누구요?”

하고 저편 목소리가 또 물어 왔다.

“나는 바베크요.”

그랬더니, 저편에서는 어딘가 비웃는 것 같은 목소리로,

“아, 그렇습니까! 나는 또 저 바보 같은 타이리 형산가 하고, 그런데 타이리가 당분간 군의 집에서 식객(食客) 노릇을 한다지요?”

“당신은 대체 누구요?”

바베크는 약간 이상해서 물었다.

“아, 참 실례, 실례! 나는 검은 별이요.”

“옛?……”

바베크는 놀랐다.

“뭘 그처럼 놀라는 거야? 그런데 아직도 군을 이 아파아트에서 내쫓지 않는 아파아트의 지배인에게 제재를 가할 필요가 약간 있어서……”

“흐흥!”

바베크는 이미 놀라지 않았다.

“바베크 군, 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나는 나의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너는 오늘 밤까지는 다른 데로 이사를 해야만 할 것이다. 자아 그럼 전화를 끊네. 나는 지금 이 아파아트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럼 또 보세!”

바베크는 수화기를 던지고 아래 층으로 뛰쳐 내려갔다. 막스와 타이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사무실로 달려 내려왔을 때, 밖에서는 자동차의 발동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세 사람은 밖으로 다시 뛰쳐 나갔다. 검은 별은 이미 바베크의 자동차를 타고 큰 거리로 달아나고 있다. 달아나면서 검은 별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탕, 탕, 탕—”

타이리 형사는 자동차를 향하여 권총을 되는 대로 발사하였다. 그러나 단 한 방도 들어맞지 않는 것을 보고 형사는 발을 동동 굴렸다.

바베크는 다시금 사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숙직을 하던 사무원은 어딜 갔나?”

바베크는 고함을 쳤다. 그 고함 소리에 대답이나 하듯이 저편 책상 밑에서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바베크는 그리로 달려가 보았다. 손발을 동여매이고 입에는 자갈을 물린 젊은 사무원의 이마에 조그만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지배인에게 고함.— 이것은 바베크를 이 아파아트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하나의 조그만 경고문이다. 만일 그를 내쫓지 못 하는 경우에는 좀 더 위험한 제 2의 행동이 머지 않아서 취해 질 것이다. —검은 별—〉

이와 같은 의미의 협박장이었다.

“음—”

바베크는 가벼운 신음 소리를 냈다.

타이리 형사는 곧 경찰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후에 바베크의 자동차가 큰 거리 네길 어름에서 경관들에게 발견이 되었다. 그러나 검은 별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한편 숙직 사무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극히 간단한 노릇이었다. 한 사람의 사나이가 들어오면서 스으톤이라는 사람이 아파아트에 살고 있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더니, 사나이는 돌연 권총을 겨누고 손을 들라고 했다. 그러더니 손발을 동여매고 자갈을 물린 후에,

“소리를 지르면 마지막이다!”

하고 협박을 하면서 편지를 써서 가슴에 붙이고 또 검은 별 한 개를 이마에 붙여 놓은 후에 바베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아파아트의 투숙자는 이 사무원의 말을 듣고 모두들 부들부들 떨었다. 모두가 다 바베크가 한시바삐 다른 데로 옮아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바베크는 불안에 찬 그들의 얼굴에서 그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러나 지배인은 잠자코 있었다. 바베크는 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좋은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 한 마디를 지배인에게 남겨 놓고 세 사람은 자기 방으로 올라왔다.

“암만 생각해도 숙소를 옮겨야겠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손님들이 먼저 다른 데로 옮겨 갈 것이요. 모두들 검은 별이 이 아파아트를 폭파할는지도 모를 것이라고들 믿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바베크의 의견이었다.

“어디로 옮깁니까? 어디를 가든지 마찬가지 방법으로 그 높은 우리들을 또 내쫓게 할 것이 아닙니까?”

타이리 형사였다.

“내 본집으로 갑시다. 집은 좀 헐었지만 정원이 넓고 수목도 있고……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다시 신축을 할 생각으로 있었지만…… 식료품을 많이 사 들여다가 거기서 자유롭게 지내도록 합시다. 우리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검은 별의 스파이가 숨어 들 염려도 없고 또 전화도 있고…… 저번 검은 별을 감금해 두었던 바로 그 집이지요.”

“그럽시다!”

타이리 노 형사는 곧 찬성이다.

그 날 오후, 세 사람은 아파아트에서 이사를 하여 바베크의 본집으로 왔다. 그들은 이 넓은 집 안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면서 잘 살핀 후에 막스가 만들어 온 런치를 먹었다.

오후 네 시경, 사복한 순경 열 명과 순사 부장 한 사람이 찾아왔다.

“어떻게 된 노릇이요?”

바베크가 묻는 말에,

“경찰부장의 명령으로 왔읍니다. 이 집을 엄중히 경비하도록 명령을 받았읍니다.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소.”

“그러나 경찰부장의 명령입니다. 이것은 검은 별의 편지인데, 두 시간 전에 경찰 본부로 온 것입니다.”

그것은 검은 별이 경찰부장에게 보낸 것이었다.

× ×

경찰부장께 아뢰옴— 우리는 오늘부터 나흘 동안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굉장한 범죄를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나흘 동안에 나는 바베크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 것이다. 그가 제아무리 숙소를 옮겨도 우리의 제재를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나흘 동안에! 검은 별

×

보석마(寶石魔)

편집

바베크는 편지를 타이리에게 주고 순사부장을 향하여,

“경찰부장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이렇게까지 경찰의 보호를 받을 필요는 없소.”

“그러나 저희들은 명령을 받고 왔읍니다.”

그 때 타이리 형사는 바베크에게,

“그럼 경찰부장에게 한 번 전화를 걸어 보시지요.”

그래서 바베크는 전화로 경찰부장에게,

“그처럼 많은 경관을 보내 주시면 도리어 우리들에게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의 직접 명령이니까, 어떡헐 수가 없소. 더구나 검은 별의 협박을 무시해서는 아니 되지요. 당신의 일신에 만일의 경우라도 생기면 큰 일이니까. 당국의 책임 문제지요.”

“그렇지만……”

그러는데 찌르륵 찌르륵, 전화가 혼선이 되었다. 경찰 부장이 아닌, 또 다른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부장은 화를 벌컥 내며,

“방해하지 마라! 이야기 중이다!”

하고 소리를 쳤다.

“아, 이야기 중인 줄은 잘 알지만……”

다른 목소리의 사나이었다.

“나는 검은 별이다. 그리고 멀지 않아서 경관이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까, 이왕 보내온 경관들이니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바베크 군에게 하고 싶어서…… 하하하…….”

”무엇이? 검은 별이라고?……”

경찰부장이 고함을 쳤다.

“그렇다. 나는 검은 별이다! 하하하…… 나는 너희들이 하는 일을 죄다 알고 있는 것이다. 경관을 수백 명 동원시켜도 소용이 없어! 공연히 피곤만 할 테니까—”

“응, 검은 별?……”

“부장 나리, 너무 지나치게 흥분할 필요는 없구…… 그리고 바베크 군, 만일 군에게 경관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부장께 말을 해서 한 백 명쯤 보내 달라게. 그러나 그것도 결국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 전화에 연락이 됐다는 말이야? 대체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부장은 미친 듯이 외쳤다.

“그건 약간 무리야.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그건 댈 수가 없어. 너희들의 힘으로 한 번 찾아내 보면 되는 것이 아니야?”

“음, 이 악당아!”

부장은 또 고함을 쳤다.

“악당! 아,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요! 그럼 또 보세!”

찰깍하고 전화를 끊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깜깜 소식인 검은 별의 목소리였다.

바베크도 전화를 끊고 여러 경관들과 막스와 타이리에게 전화의 내용을 쭉 이야기해 주었다.

“그 놈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인가 봅니다.”

순사부장이 혀를 찼다.

“아니다. 역시 사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놈을 붙잡아야 한다.”

타이리 형사가 말을 받으며,

“그 놈은 우리들을 놀림감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음—”

이윽고 열 명의 경관대가 순사 부장의 지휘로 각각 적당히 배치되었다. 바베크는 막스와 타이리를 향하여,

“이처럼 검은 별이 나타나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것을 기다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나타나기만 하면 이번에야말로 꼼짝 못 하게 붙잡아 버릴 테요.”

막스는 기가 차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될 수 있는 대로 유쾌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막스 군은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라.”

“네.”

막스는 부엌으로 나갔다. 타이리는 우울한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서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바베크는 들창을 열고 순경들이 집을 뻥 둘러싸고 서 있는 것을 내다보았다.

이윽고 타이리는 벌떡 일어서서 방 안을 뺑뺑 돌아다녔다. 이 나흘 동안에 무슨 커다란 범죄를 수행하겠다는 검은 별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바베크는 그 동안에 약혼자인 포오스티나•웬델에게 전화를 걸고 약 10분 동안 이야기를 하였다. 포오스티나는 바베크의 신변을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타이리는 안타까운 듯이,

“음, 이 나흘 동안에! 도대체 검은 별은 어디를 습격할 셈인고?”

그 말을 받아 바베크도,

“음, 알 수 없는 일이야. 놈은 엉뚱한 짓을 대담하게 해 치우는 재주를 가졌으니까—”

“놈은 이 거리가 생긴 이후 최대의 어마어마한 범죄를 수행한다고 했는데…… 대체 무엇을 할 셈인고?”

“제일 국민 은행 금고를 파괴할는지도 모르지.”

“그건 잘 안 될 걸요. 그 금고는 제일 견고한 금고니까요.”

“그렇지 않다. 검은 별에게는 그것쯤은 문제가 아닐 거야. 그 놈은 언젠가 국민 신탁 은행의 안전 보관고(安全保管庫)를 습격한 적이 있으니까. 결국은 검은 별의 목적은 돈이다. 아니, 돈보다도 보석이다. 그 놈은 일종의 보석마(寶石魔)이다. 아, 참 좋은 수가 한 가지 있다!”

하고 바베크는 갑자기 고함을 쳤다.

“좋은 수라니요?”

두 사람은 일제히 물어 보았다.

“검은 별을 체포할 좋은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는 말이야. 그 놈이 나타나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도 이 편에서 그 놈이 나타나도록 꾀어 내자는 거야. 실로 간단한 방법이다!”

“무엇입니까? 빨리 좀 말해 주시오.”

“아다 시피 나는 멀지 않아서 포오스티나 양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결혼식 때 나는 신부에게 유명한 보석을 한 개 선물로 보내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보석으로 말하면 우리 바베크 집안의 선조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유명한 목걸이다. 그 목걸이는 목하 어떤 안전 보관고에 넣어 두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검은 별을 꾀어 내는 함정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 목걸이는 나의 아버지가 손수 나의 어머니의 목에 걸어 준 것이다. 그러나 약간 구식이어서 이번에 그것을 다시 보석상에 맡겨서 고쳐야 하는데……”

“그래서요?”

“그 목걸이는 보석 만으로도 25만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보석마 검은 별이 탐을 낼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그 목걸이를 안전 보관고에서 꺼내어 보석상에 맡겼다는 소문을 낸다. 신문은 틀림없이 그런 사실을 세상에 보도할 것이 아닌가.”

“알 것 같습니다.”

“이 소문을 주어 들은 검은 별은 무엇을 생각할 것 같은가? 더구나 나에게 원한을 품은 그는……”

“그 목걸이를 빼앗는 동시에 탐정 바베크에게 원한을 풀겠지요.”

“그렇다. 그는 보석상의 금고에서 목걸이를 탈취하여 나로 하여금 세상의 웃음거리를 만들려고 들 것이 분명하다.”

“아주 명안입니다. 그러다 잘 못 하면 25만 불 짜리 목걸이를 빼앗길 염려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문제 없어. 벌써 도난을 염려하여 유리로 모조품을 하나 만들어 두었으니까, 그것을 보석상으로 보내면 되는 것이다. 보석상과 경찰관은 미리 잘 연락을 해 두었다가 검은 별이 나타나면 즉시 체포해 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다!”

타이리는 무릎을 쳤다.

“그러나 잘 될까요?”

“잘 되지. 내일 보석을 꺼내 올 테다. 오늘 밤에 무슨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내일 아침 경찰과 연락하여 완전히 수배를 해 놓을 테니까—”

그러는데 막스가 부엌에서 수상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얼굴에 붙은 검은 별

편집

“선생님, 이상한 일두 다 있읍니다.”

“응?”

바베크와 타이리가 얼굴을 돌렸다.

“선생님이 사오신 빵에 검은 별이 하나 붙어 있읍니다.”

“뭐? 빵에 검은 별이?”

탐정과 형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두 사람은 막스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달려왔다. 막스는 손가락으로 빵을 가리켰다. 과연 바베크가 아까 거리에서 사 갖고 온 식빵 한가운데 조그마한 검은 별이 한 개 또렷이 붙어 있었다.

“도대체 어찌 된 셈인가?”

타이리 노 형사가 혀를 차며 부르짖었다.

“가게서 빵을 살 때에는 이런 일은 분명 없었는데……”

바베크의 말을 받듯이 막스도,

“내가 맨 처음 포장을 풀었을 때에두 검은 별은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런데 아까 내가 잠깐 방으로 들어왔다 나간 틈에 이 별이……”

“응? 그렇다면 저 흉악한 검은 별이나 혹은 그의 부하가 이 집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다는 말이지?”

노형사는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부엌 안을 일일이 돌아가면서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이 집으로 들어온 후로는 들창은 한 번도 연 적이 없었다. 뒷문도 잠겨 있었다. 타이리 형사는 뒷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길 위에는 사람의 발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 그리로 드나든 이는 없은 셈이 된다. 그는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인기척은 없다.

“흥!”

타이리 형사는 이상한 표정으로 막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확실히 막스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이 늙은 형사는 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럴 리가!”

바베크는 코웃음을 쳤다. 그 때 타이리는,

“나는 그대를 검은 별의 단원이라고는 물론 믿지 않지만…… 그러나 그대가 혹시 농으로 이런 장난을 한 것이 아닌가?”

“천만의 말씀을!”

막스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겼다.

“정말 그렇다면 참으로 괴상한 일이다! 검은 별이 저 혼자 껑충껑충 걸어 와서 빵에 붙을 리도 없지 않은가?”

타이리 형사는 다시 한 번 부엌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뒷문으로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테이블이 아궁이 옆에 놓여 있었고 아궁이 바로 위에는 커다란 굴뚝으로 통하는 역시 커다란 삿갓이 씌워져 있었다. 타이리는 그 삿갓 속을 들여다보았다. 안은 캄캄하다.

그는 성냥불을 켰다.

삿갓 안에는 먼지와 그을음이 가득차 있었다.

“이 굴뚝은 어디로 통합니까?”

그는 바베크에게 그것을 물었다.

“지붕 위로 통하지요.”

“그럼 이층을 한 번 살펴 봅시다. 막스 자네는 여기서 부엌을 지키고 있어야 하네.”

“염려 맙소.”

이리하여 막스는 부엌에 혼자 남아 있는 몸이 되고, 타이리는 권총을 꺼내 잡으며 바베크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먼지, 거미줄, 그을음이 층층대에 가득차 있었다. 그는 이층을 구석구석 조사하였다. 그러나 방 바닥 위에 희엽스레 깔려 있는 먼지에는 사람의 발자국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위는 또 무엇입니까?”

“지붕 밑 골방입니다.”

“어디 그리로 올라가 봅시다.”

그들은 좁은 층계로 올라갔다. 그러나 거기도 사람이 걸어 다닌 발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응, 실로 수상한 일이다! 역시 막스가……”

타이리 형사는 어디까지나 막스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리 형사, 나는 막스의 성품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는 절대로 그러한 장난을 할 사람이 아니지요.”

“참으로 괴상합니다. 식빵에다 검은 별을 붙여 놓고 간 그놈은 부엌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들창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읍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층 난로 구멍으로 해서 부엌으로 내려온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멀리서 막스의 신음하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그 어떤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는 무서운 신음 소리였다.

“선생님! 선생님!”

그 소리를 듣자, 두 사람은 부리나케 층층대를 뛰쳐 내려왔다. 보니, 막스가 테이블에 몸을 간신히 의지하며 버틀거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테이블을 짚고 한 손으로 뒤통수를 꽉 누르고 있었다.

“막스, 어찌 됐나?”

바베크는 충복의 팔을 잡아 흔들면서 당황한 어조로 부르짖다가,

“앗! 피다! 머리가 깨져 나갔다!”

그 때 타이리 형사가 손가락으로 막스의 이마를 가리키며,

“앗, 검은 별이다! 이마에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다!”

그렇다. 막스의 이마에는 조그만 검은 별 하나가 뚜렷이 붙어 있지 않은가!

“이게 대체 어찌 된 노릇이냐?”

둘이는 그 어떤 헤아릴 수 없는 공포를 한 아름 느끼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막스는 기력을 잃고 비틀비틀 바베크의 품 안에 쓰러졌다. 타이리 형사는 냉수를 막스의 얼굴에다 짝 끼얹어 주었다. 그래서 막스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인젠…… 인젠 괜찮읍니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이냐?”

“네, 두 분이 이층으로 올라간 후에 솥 뚜껑을 열려고 삿갓 밑으로 미리를 들여 밀었읍지요. 그랬더니 무슨 무거운 물건이 딱하고 머리 뒤통수에…… 그리고는 정신이 희미해져서 아무것도 모릅지요. 내가 앞으로 꼬꾸라지려는데 누군가가 내 등살 머리를 독수리처럼 부여잡고 이마에다…… 그리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요.”

“그것뿐인가?”

“네.”

타이리 형사는 뒷문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하얗게 쌓인 눈위에는 역시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부리나케 호각을 꺼내 날쌔게 불어댔다.

순사부장이 한 명의 사복 경관을 데리고 뛰어왔다.

“이 집 안에 검은 별이 있다! 경계를 엄중히 해라! 그리고 지붕 위와 굴뚝을 자세히 감시해라! 알겠나?”

“네잇!”

부장은 다시 저리로 뛰어갔다.

타이리 노 형사는 곧 아궁이 앞으로 돌아와서,

“바베크 탐정, 권총을 꺼내 들고 저편 방으로 가서 층층대를 지켜 주시오! 범인은 분명히 굴뚝 속에 숨어 있읍니다.”

그러면서 노형사는 부엌에 널려 있던 너저분한 포장지들을 모아서 아궁이에 쓸어 넣어 불을 사르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장작을 지폈다. 불은 순식간에 활활 붙어 올라왔다. 무서운 불길이 검은 연기와 함께 굴뚝 속으로 맹렬한 기세로 몰려 들어갔다.

“막스, 종이를 좀 더 쓸어 넣어라! 피스톨이 필요하니 꺼내 들고……”

“네, 네—”

타이리 노형사는 쏜살같이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층 난로 구멍으로 검은 별이 쫓겨 나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층에도 검은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지붕 밑 골방으로 또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거기도 먼지와 거미줄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달린 조그마한 문은 또 무엇입니까?”

타이리는 물었다.

“아, 그건 내가 어렸을 때, 장난감을 넣어 두던 조그만 방이었는데, 그 후 통 쓴 적이 없지요.”

“그래도 어디……”

그러다가 형사는 손잡이에 거미줄이 잔뜩 쓴 사실을 발견하자 열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자아, 빨리 밑으로 내려가 봅시다.”

그들은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경비하던 경관의 말을 들으면 누구 하나 드나든 사람도 없었고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만이 뭉게 뭉게 솟아 나오고 있었다.

“만일 검은 별이 굴뚝 속에 숨어 있었다면 지금쯤은 벌써 죽어 떨어졌을 것이다.”

노 형사는 그러면서 이번에는 컴컴한 지하실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거기도 거미줄뿐이요, 인기척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스가 수상합니다.”

노 형사는 여전히 막스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리는 전연 없지요! 막스는 나의 둘도 없는 충복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이요? 이 집 안에는 우리들 세 사람밖에는 없소. 우리 세 사람 가운데 그 누구 한 사람이 검은 별의 단원일는지도 모르오. 누구든지 일단은 의심적은 눈으로 보는 것이 나의 직업이요. 만일 우리 세 사람이…… 나는 당신을 신용하오. 그러나 막스는 신용할 수가 없소. 검은 별은 무서운 놈이요. 막스 하나쯤 손에 넣는 건 문제가 아니지요.”

“마음대로 생각하시요.”

바베크는 마침내 노형사와 논쟁하기를 단념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인가, 귀신인가? 그 이튿날 아침, 시내 각 신문에는 경찰과 바베크를 비웃는 검은 별의 대담무쌍한 가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디 있나?

편집

식사가 끝난 후, 바베크는 타이리 형사와 막스를 상대로 하여 검은 별을 붙잡을 계획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의논한 결과 내일 아침 바베크가 거리로 나가서 적당한 보석상과 잘 짜 놓은 후에 그 길로 곧 신문사로 가서, 저 유명한 바베크 일가의 다이어 목걸이를 약간 고칠 셈으로 목하 이번 보석상에게 맡겨 두었다는 사실을 통지해 둔다. 그리고는 한편 경찰부장에게 자기의 계획을 말하고 그 보석상을 엄중히 경계하도록 지시를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목걸이를 훔치러 왔던 검은 별이 경찰의 손에 꼼짝도 못 하고 체포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물샐 틈 없는 작전 계획을 세워 놓고 그날 밤을 폭 쉬었다. 그러나 집 주위에 경계하는 경관대는 밤을 새워 가면서 엄중히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바베크 탐정, 아침 신문을 가져 왔읍니다.”

이튿날 아침, 경비대 순사부장이 신문 한 장을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별다른 기사는 없는가?”

“신문마다 선생님의 이름이 씌어 있읍니다.

“내 이름이?”

“네, 선생님이 검은 별을 끌어 내서 공교롭게 체포하려는 어제 밤의 계획이 죄다 탄로되고 말았읍니다.”

“뭐, 뭣이??……”

바베크는 깜짝 놀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신문을 움켜 잡으며 부리나케 펴 들었다. 검은 별에 대한 기사가 커다랗게 실리어 있었다. 아파아트를 쫓겨 나간 바베크 탐정이 자기 본집으로 옮겨간 기사, 그리고 그 본질은 밤낮의 구별이 없이 경관들에게 호위되어 있다는 기사, 그리고 검은 별과 함께 체포되었던 여덟 명의 남녀 단원이 보석금 오천 불씩을 내고 보석되어 나왔다는 기사, 유명한 형사, 전문의 변호사 두 사람이 도합 사만 불의 현금을 바치고 그들을 보석시켰다는 기사, 그러나 그 두 사람의 변호사는 누구의 의뢰(依賴)를 받아서 그렇게 하였는지는 통 말하지 않았다고—.

“음—”

바베크는 그냥 신문을 쭉 읽어 갔다. 신문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리어 있었다.— 그날 새벽, 시내판(市內版)이 찍히기 직전에 〈멧선져•보이〉 하나가 검은 별의 편지를 가지고 신문사로 왔다. 그래서 신문사에서는 부랴부랴 판을 짜서 다음과 같은 검은 별의 편지를 실었다. 편지를 가지고 온 소년의 말을 들으면 어떤 커다란 호텔에서 전화가 왔기에 가 본즉 한 사람의 훌륭한 신사가 나와서 편지를 내주며 신문사로 갖다 주라고 명령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말하는 신사의 풍채는 검은 별의 그것과는 전연 달랐다고 했다. 그것은 하옇든 신문에 게재된 검은 별의 편지는 이러하였다.

× ×

이 사흘 안에!

이 사흘 안에 나는 이 도시로 온 이후 가장 어마어마한 범죄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 사흘 안에 나는 불순하게도 나와 지혜 내기를 하려는 바베크로 하여금 만천하의 웃음거리를 만들 것이다.

나는 그대들의 행동을 죄다 알고 있다. 무엇이든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를 꿈에도 상상 못 할 것이다. 그 좋은 하나의 증거로 어제 오후와 어제 밤 사이에 바베크가 자기 본집에서 타이리와 막스를 상대로 나를 교묘히 체포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이미 그 계획을 알고 있다.

바베크는 그가 가진 유명한 다이어 목걸이에 가공을 한답시고 마음껏 널리 세상에 공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석상의 주위를 엄중히 경계하고 있는 경찰대로 하여금 마음껏 나를 체포시키도록 하기 바란다. 그러나 그대들의 그 교묘한 계획은 마침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나에게는 바베크 일가의 목걸이를 훔치는 것보다도 좀 더 어마어마한 계획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굉장한 놀라움이 머지 않아 그대들의 눈 앞에 닥쳐 올 것이다. 검은 별

×

신문을 읽고 난 바베크는 얼빠진 사람 모양 멍하니 드넓은 정원 안을 바라다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이냐?”

검은 별이 이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정말 꿈 밖이었다. 검은 별이나 혹은 그의 부하가 이 집안 어느 구석에 박쥐처럼 숨어 있었다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집 안은 어저께 이 잡듯이 뒤져 보지 않았던가! 그러면…… 그러면…… 어제 밤의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 사람밖에는 없다. 바베크 자신, 타이리 형사, 그리고 충복 막스— 그렇다면 타이리나 혹은 막스가 검은 별의 부하였던가?

“그럴 리는 만무하다! 도저히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바베크는 머리를 획획 두어 번 흔들었다. 무슨 귀신이나 도깨비한테 홀린 사람처럼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막스가 나를 배반했나? 그럴 리는 없다! 타이리 형사가 검은 별과 손을 잡았나? 그럴 리는 없다!”

그러나 신문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윽고 막스와 타이리 형사도 신문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야말로 바베크보다 한층 더 깜짝 놀라는 그 표정이 아무리 보아도 거짓말 같지는 분명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 셋밖에는 없읍니다!”

타이리 형사가 막스를 흘겨 보면서 하는 말이다.

“그렇읍니다. 선생님, 우리들 세 사람 밖에는 없읍니다!”

막스는 또 막스대로 타이리 형사를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를 의심한다는 말이지?”

타이리가 대들었다.

“나를 의심한 건 누군데?”

막스도 녹녹지 않다. 그 때 바베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군들, 조용히 생각해야만 될 때가 왔다. 떠들지 말고 생각하는 것이 빠르다. 나는 군 두 사람을 다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선 아침 식사나 하고 보세.”

세 사람은 이윽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스와 타이리는 푸르럭거리는 얼굴을 개와 원숭이 모양으로 하고 서로의 얼굴을 무섭게 흘겨 볼 따름이었다.

찌르릉— 찌르릉— 찌르릉—.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바베크는 냉큼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그것은 경찰 본부에서 걸려 온 경찰부장의 목소리였다.

“바베크 탐정, 오늘 아침 신문은 보았소?”

부장의 음성은 적이 흥분하여 있었다.

“보았읍니다.”

“그래 다이어 목걸이로 검은 별을 붙잡으려는 계획은 참말이었소?”

“참말입니다.”

“허어! 그런데 그 계획이 어떻게 벌써 탄로가 났다는 말이오?”

“그건 나도 모를 일이오. 어딘가 비밀이 누설될 무슨…… 하옇든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은 지금 석간 신문사 주간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래서요?”

“주간이 검은 별에게서 편지를 하나 받았다고 하는데……”

“편지를?”

“그 편지에는 말이요. 지금부터 24시간 이내에 그가 미리부터 예언해 온 어마어마한 범죄를 단행하겠다는 것이 적혀 있답니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알고 준비를 해 두시오! 내 생각 같아서는 아마 오늘 밤쯤 단행할는지도 모르니까요.”

“잘 알았소. 그래 당국의 계획은?”

“자아, 그것이 말이지요. 검은 별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통 예측을 할 수없으니까, 어쨌든 큰 은행과 신탁 회사의 주위를 엄중히 경비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경보(警報)를 기다려서 활동을 개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소. 그 때는 서로 잘 연락을 하여 ……”

그러나 바로 그 때였다. 전번과 마찬가지로 또 전화통에서 짤칵 짤칵하는 소리가 들리며 혼선이 되었다. 부장의 것과는 다른 굵다란 목소리가 겹쳐져 들려왔다. 부장도 바베크도 그 수상한 목소리를 들을 셈으로 가만히 귀를 기우렸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그 수상한 목소리는 그렇게 말해 왔다.

“나는 검은 별이요. 지금 약간 바빠서 길게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까, 잘 들어 두시오. 그리고 경찰부장께서는 저번처럼 전화통에다 화를 내지 마시기를 바라오. 나는 지금 그대들의 흥미로운 대화를 들었소. 제발 엄중한 경비를 게을리하지 마시도록! 그러나 부장,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보아도 소용 없소. 내일 아침까지는 눈이 뒤집혀질만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말이요. 그리고 명탐정 바베크군, 군은 내일 아침 이 거리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미리부터 잘 각오를 해요.”

“그래 어서 말을 해 봐!”

바베크도 침착한 대답을 하였다.

“또 한 가지 바베크 군, 나는 조금 전에 그대들이 식사를 하면서 주고 받은 이야기를 죄다 알고 있다는 말이야. 그러나 군이 타이리와 막스를 의심하는 것은 잘못이야. 나는 군에게 어디선가 전화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왜냐고? 그래야 내가 그 전화에 한 몫 껴묻혀서 그 사실을 군에게 보고할 수가 있지 않겠나? 만일 내가 제 손으로 군에게 전화를 걸면 군은 곧 내가 있는 장소를 찾아 낼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군, 타이리와 막스는 군에게는 충실한 부하다. 그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까 의심을 말아라. 나는 군에게 그것을 충고한다. 나는 나 혼자의 힘으로써 그대들의 이야기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알겠나? 알겠으면 굳빠이! 나는 어디 있나? 나는 여기 있다! 빠이…… 빠이!”

이윽고 짤칵짤칵, 찌르럭찌르럭 하는 소리를 내며 검은 별의 목소리는 사라져 갔다. 부장은 성난 짐승처럼 무어라고 소리, 소리를 치더니 다시 걸겠다는 말을 남겨 놓고 전화를 끊었다.

전선이 끝나는 곳

편집

바베크는 수화기를 놓고 성큼성큼 걸어가서 막스와 타이리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미안하다! 단 일 초라도 그대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 내가 미안하기 짝이 없다. 검은 별은 그대들의 결백을 나에게 증명해 주었다.”

“자식이 또 전화에 나왔읍니까?”

“그렇다. 경찰부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또 불쑥 나와서…… 그 놈의 검은 별은 조금 전에 한 우리들의 이야기까지 죄다 알고 있다. 지금부터 오 분 전에 한 이야기다.”

“그러면 그 놈은 어떻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문제다!”

“우리는 이 집을 이 잡듯이 뒤지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음, 그런데 검은 별은 석간 신문사에 편지를 내서, 24시간 이내에 큰 범죄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24 시간?”

타이리와 막스는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었다.

“그렇다.”

“됐읍니다! 그 놈이 어디서든지 나오기만 하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야 맙니다. 음, 검은 별! 밉살스런 검은 별!”

타이리 형사는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면서,

“24 시간!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어디 나타났는지 경보만 오면 됩니다. 10분 후에 올는지도 모른다. 재밤 중에 올는지도 모른다. 아아, 이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숨이 막힐 일이다.”

시간은 쉬지 않고 자꾸만 갔다.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십년처럼 길게 여겨졌다. 점심 때가 왔다. 그래도 검은 별이 나타났다는 경보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막스는 전화통만 쳐다 보았고 타이리는 짐승처럼 하루 종일 방 안을 왔다 갔다 하였다. 바베크는 연달아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아홉 시가 지났다. 열 시— 열 한 시, 마침내 밤 열 두 시가 되었을 때,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려 왔다.

“아, 왔다! 기다리던 경보가 왔다!”

타이리와 막스가 일시에 펄쩍 뛰며 몸을 일으키는 사이에 바베크는 벌써 수화기를 귀에다 대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바베크 탐정 계세요?”

뜻밖에도 그것은 기다리고 있던 경관이 아니고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무엇엔가 대단히 흥분한 목소리다.

“누구십니까? 내가 바베크입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제 말을 잘 들어 주세요. 다시는 말씀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까요.”

여자는 대단히 당황해 있었다.

“어서 말을 하시오!”

바베크는 초조한 듯이 재촉을 하였다.

“바베크 탐정, 당신은 검은 별이 자기의 약속한 범죄를 수행하기 전에 그가 숨어 있는 장소를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검은 별이 어떠한 수단으로써 당신네 이야기를 죄다 듣고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누구요?”

바베크는 초초한 마음을 억제하며 될 수 있는 대로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그것은 제발 물어 주시지 마세요. 나에게는 이만한 일을 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것 보다도 시간이 없으니까 당신네들은 지금 곧 활동을 개시하지 않으면 아니 될 거야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모아 가지고... 경비대가 있을 테니까 그들을 전부 데리고 가셔야 할 거예요!”

“잘 알았읍니다! 그러나 대체 그 곳이 어딘데요?”

“잠자코 제 말을 듣고 계세요! 다시는 전화 걸 기회가 없을거야요. 우선 당신이 지금 있는 방을 잘 찾아 보세요. 테이블 맨 가운데 다리를…… 그리고 전선을 따라 가세요!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을 데리고…… 신속히 활동을 개시하세요. 그리고 전선을 곧장 따라가 보세요!”

거기서 그 아지 못할 여자의 전화는 끊어지고 말았다.

“막스? 그리고 타이리!”

두 사람의 이름을 불러 대면서 바베크는 테이블을 향하여 비조처럼 달려갔다.

“테이블 밑을 자세히 찾아 보아라!”

세 사람은 엎디어 테이블 맨가운데 다리를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조그만 쇠붙이를 발견한 것은 타이리 형사였다.

“아, 이 조그만 납작한 쇠붙이! 아아, 바보다! 우리들은 바보다! 이건 어데든지 있는 조그만 전음기(傳音器)가 아닌가! 그걸 지금껏 모르고 있었구나!”

커다란 테이블 맨가운데 다리— 그것은 세 개의 서랍이 층층으로 달린 다리였다. 그 아래 밑 서랍 밑이 다소 궁글어 있는 틈 바귀 속에 조그만 철편(鐵片)으로 된 전음기가 장치되어 있지 않는가! 그 조그만 전음기는 그들의 이야기를 죄다 검은 별에게 전하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전선을 따라가시오!”

그 미지의 여자의 목소리가 그 순간, 바베크의 머리 속에서 다시금 알알이 떠 올랐다.

“자아, 빨리 결정을 지어야 한다. 저 전음기에 딸린 전선을 따라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여기서 정보를 기다리느냐?……”

“전선을 따라갑시다!”

타이리 형사는 단호한 대답을 하였다.

“그 여자는 그 어떤 사정에서 검은 별을 배반한 자다. 복수를 하기 위하여 검은 별을 우리에게 팔아먹는 것입니다! 여자의 말대로 합시다! 아직 열 두시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요. 전음기! 음—”

“그러면 우리 셋이서 가는가? 경관을 데리고 가는가?”

바베크가 묻는 말에 타이리 형사는,

“데리고 가야지요. 그 전선줄만 따라가면 검은 별의 소굴을 알 수 있으니까요. 그 대신 여기는 한 사람만 남겨 둡시다. 혹시 정보가 오면 연락을 하도록”

타이리는 들창 밖을 향하여 호르라기를 불었다. 경찰부장이 뛰어왔다. 타이리가 부장에게 명령을 하고 있는 동안에 바베크와 막스는 무거운 테이블을 옆으로 옮겨 놓았다. 전음기에 딸린 가는 전선이 방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통해 있었다.

바베크는 앞장을 서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전선은 지하실 담벼락을 뚫고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여러 경관들은 다시금 바베크를 따라 밖으로 뛰어 나갔다. 전선은 바깥 담벼락에 붙어 있는 물 내려오는 관을 따라 기어 올라가다가 이윽고 그 옆에 서 있는 나무로 옮아갔다.

“전선을 따라가라! 빨리, 빨리!”

타이리 노 형사는 경관 일동에게 벽력같은 명령을 하였다. 그들은 회중전 등으로 나무 위를 비추어 보았다. 경관 한 사람이 재빨리 나무로 올라갔다. 그러나 전선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저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드넓은 정원 한 모퉁이에까지 왔다.

“이렇게 긴 전음기의 줄은 처음이다.”

타이리 형사는 혀를 찼다. 검은 별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윽고 전선은 나무가지에서 전선대로 올라갔다. 거기서 다시 담을 넘어 바깥 한길 저편 전주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다시금 넓다란 공지로 가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길게 뻗쳐 있었다. 공지에는 한 길이나 넘는 수풀이 있었다. 젖은 눈 길이다. 회중전등으로 숲새를 비추며 일동은 전선을 따라 어디까지나 따라갔다. 전선은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가 다시금 저편으로 빠져 나왔다.

“벌써 삼십 분 이상 걸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뻗쳤는가?”

타이리는 혼자서 푸푸 불평을 퍼부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거기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그저 묵묵히 전선만 따라갔다. 그들은 마침내 공지에서 빠져 나와 한길로 나섰다. 전선은 다시 전선대로 기어 올라가자 건너편 전주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조그만 공원 옆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어떤 낮은 집 처마 끝에 이어져 있었다.

“자아, 정신들을 차려야 한다! 이 집에서 전선은 끝이 난다!”

전선이 끝나는 그 장소에 저 무서운 검은 별의 전화통이 달려 있을 것이다. 일동은 긴장을 하며 캄캄한 주위를 가만히 살펴 보았다. 언제 어디서 그 전선이 끝나는지, 모르는 일이다. 검은 별의 소굴을 잘못 밟았다가는 이 편이 도리어 위험하다.

골목 막바지까지 전선은 왔다. 그러나 거기서 다시 줄은 저편 길 네거리에 섰는 전주로 삐쳐 있었다. 지붕을 넘을 수가 없어서 일동은 큰 거리를 삥 돌아서 네거리까지 도는 동안에 거의 삼십 분이나 걸렸다.

경찰 본부에서는 아직도 경보도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러나 이 전선은 과연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전선은 거기서 한길로 한참 빼치다가 다시 나무가지로, 나무가지에서 다시 높다란 지붕으로, 거기서 다시 좁은 골목으로, 낮은 처마 끝으로, 거기서 다시 어떤 차고(車庫) 옆을 지나 마침내 땅 위로 내려왔다. 한 경관이 손으로 눈을 파 헤쳤다. 널빤지가 나왔다. 전선은 그 널빤지 속으로 꿰뚫고 들어갔다. 철판을 들춰보니 그 밑은 캄캄하고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앗, 하수도 구멍이다!”

일동은 회중전등으로 하수도 속을 비추어 보았다.

“전선이 보인다!”

하수도 뚜껑을 열었다. 그 때 바베크가 말했다.

“옛날은 하수도였지만 지금은 까스나 전등선이 통해 있다. 그러니까 물은 없다.”

그 말에 일동은 안심하고 하수도 구멍으로 우루루 내려갔다.

“피스톨을 준비해라! 검은 별이 중도에서 기다릴지 모른다!”

그들은 권총을 들고 꾸부정하니 허리를 굽히며 땅 속 하수도 구멍을 자꾸만 걸어 나갔다. 시멘트담에는 고드름이 맺혀 있었고 냉장고 속 처럼 공기가 차겁다. 회중전등을 높이 쳐들고 검은 별의 불의의 공격에 항상 대비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혹시 이것은 검은 별의 계략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 놈의 함정에 빠져 땅 속의 포로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그 놈의 손에 빠져 굉장한 위험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이 불쑥 일동의 머리에 떠 올랐다.

하수도가 왼편으로 꺾여져 있었다. 일동은 그냥 행진을 계속하였다. 손이 떨리고 잇발이 딱딱 딱딱 마주쳤다. 이윽고 전선은 머리 위에 있는 조그만 뚜껑 속으로 기어 올라갔다.

“자아, 뚜껑이다. 열어라!”

힘을 합하여 쇠 뚜껑을 위로 떠밀었다. 거기서 전선은 다시금 눈 속을 기어 땅 위로 빠져 나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일동은 비로소 하수도 속에서 빠져 나오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잠자코들 있어!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전선을 따라왔을 뿐이다!”

타이리의 한 말이다. 일동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일동의 가슴 속에는 그 어떤 커다란 불안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떠올랐다.

전선은 나무에서 나무로, 거기서 다시 건물 뒷 담벼락으로 해서 들창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떡할까요?”

타이리가 불안에 찬 얼굴로 물었다.

“전선을 따라갈 수 밖에!”

바베크 역시 불안한 대답이다.

“어디선가는 전선이 끝날 것이다.”

경관대는 그대로 밖에서 경비를 시키고 바베크는 타이리와 막스만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전선은 다시 머리 위 지붕 밑 골방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은 손에 손에 권총을 잡고 층계를 올라갔다. 그 골방에는 바베크가 어렸을 무렵에 장난감을 넣어 두던 조그만 벽장이 하나 있었다. 세 사람은 가만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저번에도 이 방을 열어 보았지만……”

그러나 그 때는 전선을 발견하지 못 했었다. 그처럼 가는 전선이 담벼락 틈으로 끼어 벽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아, 발자국을 자세히 보시오. 자세히 보면 허연 먼지를 발자국에다 뿌려서 모르게 해 놓은 것이 분명하지요. 저번에는 그것을 그만 발견하지 못 했읍니다.”

“음—”

그러자마자 바베크는 획 하고 벽장 문을 열어 젖혔다. 손에 손에 권총을 겨누고— 회중전등에 비추인 좁다란 벽장 안— 세 사람은 그 순간,

“앗!”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검은 별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 기나긴 가는 전선이 거기서 끝이 났을 따름이었다.

예고 범죄(豫告犯罪)

편집

“속았다! 감쪽같이 속았다! 검은 별은 마침내 나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바베크의 이 한 마디 외침을 듣자 일동은 흑하고 놀랐다.

벽장 안에는 털담요 한 장과 약간의 식료품과 전화통이 놓여 있었다. 그 전화통은 조사할 필요도 없이 아랫층 바베크의 방으로 통해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전음기의 말단은 여기서 끝이 난 것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저 무서운 검은 별은 여태껏 이 벽장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검은 별을 잡겠다고 큰 소리를 탕탕 하던 명탐정 바베크, 그 사람의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전화통에는 몇 장의 편지가 비끄러매져 있었다. 회중전등의 불빛으로 바베크는 검은 별의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 ×

바베크 군— 나는 군이 저 미지의 여자의 전화대로 전선을 따라갔을 줄로 믿고 있다. 내가 전선을 가설했을 때보다는 약간 눈이 많이 내려서 다소 욕을 보았을 줄로 믿는다. 나는 군이 그 좁고 춥고 어둡고 캄캄한 하수도 구멍을 이리 저리 싸돌아 다니는 꼬락서니를 상상하고 대단히 대단히 유쾌하게 여기는 바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를 군의 삼층 벽장 속에 당분간 하숙을 시켜준데 대하여 감사의 념을 금치 못 하는 바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그 뿐만인가. 나는 경찰부장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 어째 그러냐? 하면 나의 몸에 위험이 없도록 경비대를 파견하여 잘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

“음.”

늙은 타이리 형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끝까지 읽도록 좀 잠자코 있게! 분한 건 군만이 아닐쎄.”

바베크는 그러면서 다시금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 ×

나는 군을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기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것에 성공하였다. 나는 오늘 밤, 시내 각 신문사에 편지를 내서 내가 군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전음기로써 군의 계획을 죄다 알고 군의 전화선에다 비밀의 접속선(接續線)을 설치해 놓은 사실을 공포할 것이다. 알겠느냐? 군이 나와 더불어 인간의 지혜를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노릇이다.

이야기를 하면 모든 것은 간단하였다. 군의 손에서 도망을 해 나온 나는 군의 아파아트로 가서 편지를 발송한 후, 곧 이 곳, 즉 너의 본집으로 왔다. 왜? 나는 머지 않아 군이 아파아트를 쫓겨나 이리로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리로 오자 나는 곧 전기와 전선을 설비하고 전화선에는 비밀의 접속선을 연결해 놓았다. 그리고는 약간의 식료품을 준비해 놓은 후에 다시 아파아트로 가서 숙직을 하던 사무원을 협박하였던 것이다.

나의 생각이 들어맞아 군은 과연 아파아트를 쫒겨나 이리로 옮겨 왔다. 나는 삼 층 벽장 속에 편히 누워서 먹고 자고 그리고 그대들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있었다. 나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들창을 열고 촛불을 이용하여 한길 가에 서 있는 나의 단원 한 사람에게 신호하였다. 그리하여 각 신문사와 경찰부장에게 나의 〈멧세이지〉를 전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거처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의 단원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몇 시간 전 군에게 전화를 하여 전선을 따르라던 어여쁜 아가씨이다.

바베크 군! 군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지붕 밑 벽장의 구조를 잘 모를 것이다. 군이 만일 이 벽장 안을 자세히 조사해 보면 담벼락의 일부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만들어 놓은 장치이다. 이 움직이는 담벼락으로 들어가면 옛날에 사용하던 낡은 굴뚝으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집에는 굴뚝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낡은 굴뚝이요, 하나는 새로 만든 굴뚝이다. 이 낡은 굴뚝으로 해서 새 굴뚝으로 통하게 된 조그만 출입구가 중간에 있는 줄을 군은 물론 모를 것이다. 그 낡은 굴뚝에는 노끈으로 만든 사다리가 있다. 나는 그리로 해서 새 굴뚝으로 들어가 밑으로 내려갔다. 그 곳이 곧 부엌 난로 위이다.

그대들이 방 안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손을 뻐쳐 빵에다 검은 별을 붙여 놓았다. 이것은 적지 않게 그대들을 놀라게 한 모양이다. 나는 역시 똑 같은 방법으로 막스가 솥 위에 머리를 숙이고 있을 때 그의 뒤통수를 보기 좋게 한 번 내갈겨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목덜미를 꺾어 잡고 이마에다 별 한 개를 다시 선물로 붙여 주었던 것이다. 타이리 늙은이가 아궁지에 불을 살려 넣었을 때는 이미 나는 낡은 굴뚝으로 옮아 와 출입구를 닫아 버린 후였다.

그런데 바베크군! 나는 오늘 밤 전대 미문의 범죄를 수행하지 않으면 아니되기 때문에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의 위대한 사업을 지휘하기 위하여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떠나면서 나의 단원인 어여쁜 아가씨를 시켜 군에게 전화로 전선을 따라가라고 했다. 군들이 전선을 끝까지 따라다니느라면 적어도 두 시간을 허비해야만 되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리하여 그대들이 눈이 벌개서 전선을 따라 밖으로 나간 후에 나는 굴뚝으로 내려가 뒷 문으로 유유히 빠져 나가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편지를 써 놓은 후에 그렇게 할 작정이다.

그런데 끝으로 바베크 군, 이 벽장 안을 면밀히 조사해 보기를 나는 군에게 충고한다. 그러면 군은 내가 오늘 밤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말하는 조그만 쪽지 한 장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군들이 전선의 말단을 발견하려고 헐레벌떡 따라 다니는 그 시간 동안에 나는 오늘 밤의 나의 어마어마한 범죄를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수행할 것이다. 검은 별

×

“뭐? 그 두 시간 동안에?……”

바베크의 얼굴 빛이 새파랗게 핏기를 잃어 버리기 시작하였다.

“빨리, 그 쪽지를 찾아라!”

바베크의 벼락같은 한 마디에 타이리와 막스는 후닥닥 놀라며 방 안을 번개같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검은 별이 바로 나의 집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경관대가 보호하고 있었다. 아아, 세상의 웃음거리가 마침내 되어 버린 나다! 바베크다!”

바베크는 태연자약, 방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서 지긋이 눈을 감아 버렸다.

“이 불명예를 씻어 버리기 위해서는 검은 별이 범죄를 수행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보기좋게 붙들어야만 한다! 그 밖에는 도리가 없다!”

정신을 벌떡 차리며 바베크도 쪽지를 찾기 위하여 몸을 돌이키었다. 그는 그 때 검은 별의 통로가 되어 있던 움직이는 담벼락의 한 모퉁이를 손으로 힘껏 밀었다. 과연 담벼락 한 모퉁이가 쑥 밀리면서 컴컴한 굴뚝 속이 눈 앞에 뻥하니 나타났다.

“앗, 이것이다!”

밑으로 내려가는 노끈 사다리 맨 윗끝에 종이 쪽지 하나가 핀으로 꽂히어 있었다.

“빨리 읽어 보시오. 선생님!”

막스가 기가 차서 재촉을 하였다.

“내 머리를 갈긴 검은 별에게 나는 꼭 보답을 해야겠읍니다!”

“음—”

바베크는 쪽지를 펼쳐 들었다.

× ×

바베크 군! 나는 군이 말한 것처럼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다이어먼드를 나는 좋아한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군의 가보(家寶)인 그 유명한 목걸이 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보석이 선편으로 입하(入荷)하였다. 세상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오늘 밤 나는 국민 삘딩 삼 층에 있는 무역상 존쓰 상회의 지하실 대금고를 습격할 작정이다. 검은 별

×

“앗, 큰일이다!”

늙은 타이리 형사가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밖으로 뛰어갔다. 막스와 바베크도 형사의 뒤로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빨리, 빨리!”

타이리 형사는 허겁지겁 순사부장을 불렀다.

“경찰 본부의 비밀 번호를 불러 내라! 그리고 국민 삘딩을 포위하도록 대지급으로 전달하라! 검은 별이 존쓰 상회를 습격한다!”

“네엣!”

순사부장이 기침을 하며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자아, 막스! 자동차다! 바베크 탐정, 빨리 타시오!”

그러는데 전화통에 달려 붙었던 순사부장이 허둥지둥 되돌아왔다.

“전화는 불통입니다! 전선을 끊어 놓았읍니다!”

“음—”

타이리 형사는 이를 갈았다.

“하는 수 없다! 빨리 나가서 제일 가까운 전화를 빌려라!”

그 벽력같은 한 마디를 남겨 놓고 늙은 형사는 차에 올라 탔다. 핸들을 잡고 자동차를 무섭게 몰아 대는 막스! 팔짱을 끼고 눈을 지긋히 감은채 타이리 형사 옆에 고슴도치인 양 움직일 줄 모르는 탐정 바베크!

죽은듯이 고요한 심야의 거리를 달린다. 비조처럼 차는 달린다.

독안에 든 새양쥐

편집

꽁꽁 얼어붙은 새벽 두 시 경의 한밤 거리를 비조처럼 자동차는 날아갔다. 타이리 형사는 입을 악물고 바베크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막스는 묵묵히 핸들을 붙들고 앉았다. 그들은 모두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그들의 가슴은 오직 범죄자에 대한 증오의 념으로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전선의 끄트머리를 공연히 찾아 다니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저 검은 별은 이미 그가 하고자 하는 범죄를 수행하지나 않았을까?…… 그렇지 않으면 죤쓰 상회의 대금고가 열리어 보석은 벌써 도난되어 있지나 않을까?……

“경적을 멈추어라! 그리고 자동차도 멈추어라!”

타이리 노 형사는 막스의 귀에 속삭이었다. 자동차는 멎었다. 세 사람은 이윽고 차에서 내려 커다란 건물 입구를 향하여 뛰어갔다.

그들은 회중전등과 피스톨을 제 가끔 쥐고 있었다. 입구에는 야경(夜警)이 보이지 않는다.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대리석 층층대를 끝까지 올라가니, 바로 그들 눈 앞에 존쓰 상회로 통하는 육중한 유리문이 있었다.

“앗, 야경이 쓰러졌다!”

유리문 앞에 손과 발을 동여매고 입에 재갈을 물린 야경 한사람이 쓰러져 있지 않은가. 야경의 이마에 검은 별이 하나 붙어 있었다. 타이리 형사는 뛰어 가서 재갈을 풀고 박승을 끌러 주었다.

“그 놈은 지금 이 안에 있읍니다.”

야경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혼자서?……”

“혼잡니다. 그 놈은 갑자기 내 뒤통수를 갈기고 재갈을 물렸읍니다. 그리고는 박승을 지우고…… 확실히 혼잡니다. 그 놈은 열쇠로 문을 열었읍니다.”

“그것이 언제쯤이냐?”

“한 30분 전입니다.”

“30분?…… 뭐, 그러면 그 놈은 벌써 다른 데로 빠져 나갔을 것이다.”

타이리 형사는 그러면서 바베크를 향하여,

“30분 동안이나 우물쭈물하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읍니까? 그런데 도대체 경찰본부는 어떻게 된 셈일까……? 경적 소리가 아직도 들리지 않는데…… 아, 야경, 너는 밑으로 내려가서 경관대가 오면 이 근방을 포위하라고 전달해라. 그리고 경관을 너댓 명 응원대로 올려 보내라. 우리는 이 안으로 들어가 볼테다.”

야경은 알았다는 듯이 곧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타이리는 바베크와 막스를 향하여,

“불을 켜면 안됩니다. 검은 별은 아직도 안에 남아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불을 켰다가는 한 방 얻어 맞을지 몰라요. 이 안은 층층대의 불빛을 받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는 캄캄하지가 않읍니다. 나는 이 건물을 잘 알고 있지만 출입구는 여기 한 곳밖에는 없지요. 후면에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는데 나갔다면 그리로 밖에…… 자아, 준비를 하시오!”

타이리는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유리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면서 그들은 이윽고 몰래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바닥에는 두꺼운 우단이 깔리어 있었다. 층층대로부터 들어 오는 희미한 불빛이 상점 안을 훤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거기는 소위 존쓰 보석상의 소매부로서, 진열장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의자와 소파가 있었다. 그들은 각각 회중전등과 피스톨을 하나씩 쥐고 진열장 위로 몸을 감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윽고 이 매점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소매장 맨 끝에 있는 응접실 앞까지 다달았다. 이 응접실에는 귀중한 손님에게 보석을 꺼내 보이는 테이블이 있었고 커다란 체경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 응접실 맨 저편에 소위 존쓰 상회의 큰 금고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는 것이다. 그 금고야말로 일 년 내내 막대한 가격의 보석류를 간직해 두고 있었다.

타이리는 응접실을 가만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도 그 뒤를 따를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방바닥에 납작 엎디어 사방을 가만히 돌아다 보았다. 순간 바베크는 〈흙!〉하는 숨을 들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대 금고의 문은 열려져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금고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석을 만지고 있는 사나 이— 두 말도 할 필요가 없이 그것은 검은 별 그 놈이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바라다 보고 있으려니까, 검은 별은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서 쿡쿡 웃으면서 완전히 금고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젠 포대에 든 새쥐다.”

바베크는 속삭이었다.

그리고 대 금고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금고 속은 캄캄하다. 불빛 한줄기 흘러 나오지 않는다. 검은 별은 암흑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인제는 거의 금고 문 앞까지 왔다. 검은 별이 획 하고 뛰어 나올 것 같아서 무섭기 짝이 없다. 그들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등 뒤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고 귀를 기울였다. 발자국 소리는 경관대의 도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금고에서 한 간 길이의 사이까지 도달하였다.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괴물인 양, 금고 속은 캄캄하다. 그들의 가슴은 무섭게 뛴다. 얼마 후…… 타이리 노 형사의 한 마디가 총알처럼 튀어 나왔다.

“나오너라! 검은 별!”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다.

“나오너라! 독 안에 든 쥐새끼다!”

역시 대답은 없다. 타이리는 손을 빼쳐 바베크와 막스를 만져 보았다. 무언의 명령이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금방이라도 금고 속에서 탕, 탕—하고 총성이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나오너라!”

타이리는 다시 한 번 고함을 쳤다.

“나오너라— 나오지 않으면 이 편에서 갈테다!”

그대로 대답이 없다. 그 순간, 타이리는 번쩍하고 회중전등을 켜면서 금고 속을 비추었다. 깊숙한 금고 안이다. 불빛이 통로를 따라 쑥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탕, 탕—하는 총성이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불빛은 금고 속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나 맨 구석진 한 모퉁이는 캄캄하다.

그 순간, 막스는 그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획하고 뛰어나가면서 금고 문을 탁 닫쳐 버렸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돌려 금고문을 꽉 잠궈 버렸다.

“잡았다! 검은 별을 잡았다!”

막스는 고함을 쳤다.

“빨리 방에 불을 켜라! 곧 경관대가 온다!”

타이리는 스윗치를 눌렀다. 방 안이 갑자기 화안해졌다.

그러나 타이리와 바베크의 생각은 좀 달랐다. 경관대가 오기까지는 검은 별을 완전히 체포해 놓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잡기는 잡았다.”

바베크는 흥분한 어조로,

“검은 별은 금고 속으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읍니다. 그리고 빨리 금고를 열 줄 아는 사람이 와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검은 별은 이 속에서 뻗어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어디 전화는 없을까?—”

타이리는 그러면서 전화통으로 달려가서 경찰본부의 비밀 번호를 불러냈다.

“경찰부장입니까? 여기는 타이립니다. 응원대를 보냈읍니까? 네, 인제야 떠났다구요? 그런데 부장, 사람을 시켜 존쓰 상회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십시오. 대 지급으로 오라구요. 검은 별을 금고 속에 집어 넣었으니까 빨리 와서 금고를 좀 열어 달라구요. 네네, 그렇읍니다. 그럼 후에 다시—.”

그는 전화를 끊고 바베크를 향하여,

“경찰대는 지금 오는 중입니다. 순사부장이 본부에 전화를 걸려도 전선이 끊기워서 이제야 간신히 걸었다구요. 검은 별이면 그만한 노릇은 쾌히 했겠지만……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 놈을 잡았읍니다.”

그 때 아랫층에서 경관대의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나며 뛰어 올라왔다.

“검은 별을 붙잡았다!”

타이리는 희색이 만면이다.

“범행의 현장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금고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니까 지배인이 와서 금고를 열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검은 별은 지금 쯤은 이 캄캄한 금고 속에서 후회를 할 것이다. 바베크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던 자기의 주제넘은 계획을 뉘우칠 것이다.”

일동은 지배인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적이 흥분한 어조로, 검은 별은 금고의 문이 열릴 때 저항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다.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측도 있었다.

그러는데 경찰부장의 벙긋벙긋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벌써 신문사가 경찰 당국을 칭송하는 광경을 가슴 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베크와 굳은 악수를 하고 막스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는 타이리 형사의 공로를 칭찬하였다.

“신문사에는 아직 알리지 않았다. 조간에는 이미 늦었으니까 정오판(正午版)에는 대대적으로 나겠지. 흥, 경찰당국을 공격한다는 건 괘씸한 일이야. 이제부터는 하고 싶어도 못 할 테니까 약간 서운할 게야. 하하하……”

경찰부장이 유쾌히 웃고 있는데 존쓰 상희의 지배인이 들어왔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그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금고 앞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고 암호로 된 다이알을 이리저리 돌렸다. 손이 떨려서 무척 시간이 걸렸다. 가까스로 그는 암호 숫자를 맞추어 놓고는 경관들을 향하여 됐다는 신호를 눈으로 하였다. 그것으로써 금고의 문은 손잡이를 잡아 돌리기만 하면 열리는 것이다.

지배인은 진열장 뒤로 돌아가서 총알을 피하기 위하여 몸을 웅크러뜨렸다.

“자아, 검은 별! 순순히 나오는 것이 좋을 거야!”

타이리 형사는 권총을 겨누고 고함을 쳤다.

“스무 명의 경관이 총부리를 대고 있다. 문을 여는 순간, 조금이라도 대항을 하면 그대의 몸뚱이는 벌둥지다!”

그는 그러면서 경관대에게 눈짓을 하고 획 문을 열어 젖혔다. 금고 안은 전등 불에 화안하니 들여다 보였다. 타이리를 선봉으로 사 오 명의 경관이 앞으로 뛰쳐 나갔다.

“앗—”

일동의 입으로부터 놀람의 부르짖음이 일제히 튀어 나왔다.

“없다!”

금고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보석을 넣어 두었던 상자는 모두가 다 비어 있었다. 가죽 포대도 비어 있었다. 그러나 검은 별의 자태는 보이지 않는다. 연기처럼 사라진 검은 별이었다.

“없을 리가 있나?”

타이리는 정신이 뒤집혀져서 고함을 쳤다.

“금고 안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보았다.”

그러나 없는 검은 별은 아무리 찾아도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동은 절망의 외침을 외치면서 금고 안을 샅샅이 살펴 보기 시작하였다.

“앗, 검은 별이다!”

경관 한 사람이 고함을 쳤다.

“어디가……?”

일동은 화닥닥 놀라면서 피스톨을 겨누었다.

“저 보석 상자에!”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 보니 조그만 검은 별이 보석 상자에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아이구, 깜짝 놀랐다! 난 정말로 살아 있는 검은 별인 줄로만 알았다.”

“앗, 여기 검은 별의 편지가 있다!”

이번에는 막스가 고함을 쳤다.

“이리 줘.”

바베크와 타이리는 편지를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글월이 적혀 있었다.

× ×

어리석은 바베크 군. 그대들이 전선의 끄트머리를 찾아 다니는 어리석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나의 계획대로의 행동을 정확히 수행하였다. 그러니까 그대는 결국에 있어서 또 한 번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셈이다. 그대들이 독 안에 든 새양쥐로만 생각한 검은 별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

어리석은 자여, 알으켜 주마. 이 죤쓰 상회의 금고에는 비밀의 통로가 있는 것이다. 그 비밀의 통로는 누가 만들어 놓았느냐?…… 물론 우리가 만들어 놓았다. 이 금고 구석에 놓인 보석상자를 쳐들어 보라. 그러면 거기에 사람이 하나 드나들만한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어디로 통했는가? 아래층 K 운송점으로 통했다. 그리고 그 K 운송점은 나의 부하들이 임시로 경영을 시작한 의장(衣裝)의 상점이다.

그러면 바베크, 그대들에게 또 한 가지 경고해 두노니, 우리들은 머지않아 바베크와 막스를 유괴하여 우리들의 새로운 본부로 모셔올 작정이다. 그리고 그대들을 다음에 수행할 그 어떤 커다란 범죄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들의 하는 일을 직접 보여 줄 테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들이 항상 사용하는 까스•피스톨로 그대들을 쓰러뜨려 다시 한 번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 작정이니 그리 알길 바란다. 검은 별

×

“음—”

바베크와 타이리는 깊은 신음소리를 내며,

“아래층 운송점을 뒤져라!”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경찰 일동이 아랫층으로 부리나케 달려 내려갔을 때는 이미 운송점 안은 몇 개의 의자를 남겨 두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아, 저것이 비밀의 통로다!”

가마니와 새끼를 높다랗게 쌓아 올린 한편 구석 천장에는 네모난 구멍이 하나 뚫려져 있었다.

그것이 보통 때에는 가마니와 새끼뭉치로 가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아, 또 검은 별에게 속았다!”

그것은 타이리 형사의 비참한 비명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시내 각 신문에는 바베크와 경찰부장을 비웃는 검은 별의 성명서가 대대적으로 실리어 있었다. 그리고 편지에 씌어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의 글 바베크와 막스를 유괴하겠다는 대담한 글이 동시에 실리어 있었다. 이리하여 바베크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검은 별은 의기양양하게 자기의 실력을 세상에 자랑하였다.

수수께끼의 사나이

편집

그런 일이 있은지 벌써 세 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바베크와 막스는 아직도 유괴는 당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서 검은 별은 또다시 각 신문사에 성명서를 내어, 그것은 결코 유괴할 기회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다음에 수행할 큰 범죄의 준비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바베크의 자동차가 혹시 네거리에서 교통 순경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경우 같은 때, 그 자동차의 주인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들은 바베크에게 차디찬 비웃음을 노골적으로 던지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지금도 바로 그것이었다. 교통 순경의 신호가 있어 바베크를 태운 막스는 사람들의 비웃는 눈초리에 대항이나 하듯이 한번 무섭게 흘겨주며 네거리를 건넜다. 바베크는 지금 그의 약혼자를 방문하려고 집을 떠난 것이다. 바베크는 자기의 우울을 약혼자의 품안에서나 위로 받아 볼 쓸쓸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수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베크의 자동차 뒤를 따르고 있는 오오토바이가 한 대 있었다. 그 오오토바이의 사나이가 앞 차에는 아주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사실은 일 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런데 그 오오토바이의 뒤로 소형 자동차 한 대가 또 따르고 있었다. 그 운전수는 바베크의 차와 오오토바이를 유심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또 한 대의 화물차가 그 소형 자동차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운전수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 쓰고 잠바를 입고 있었다.

이 괴상한 네 대의 행렬은 큰 거리를 한참동안 달리고 있다가 이윽고 맨 앞선 바베크의 차가 커다란 아파아트 앞에서 멈췄다. 거기가 바로 바베크의 약혼자가 사는 곳이다. 바베크는 뛰어 내려 안으로 들어가고 막스는 그냥 운전대에 앉아서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오토바이의 사나이는 반대 쪽에서 차를 멈추고 차체에 손질을 하고 있었다. 소형 자동차는 그 때 그 오오토바이의 옆을 스름스름 지나면서 무엇인지 한 두 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오오토바이의 사나이는 머리를 끄떡끄떡하였다. 소형 자동차의 사나이는 그것을 보자 조금 지나쳐 가서 차를 멈추고 한길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되돌아 서서 스름스름 걸어 왔다.

화물차의 사나이는 골목 밖에서 차를 내려 소형 자동차와 오오토바이의 사나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 사나이는 서로 무슨 신호 같은 것을 바꾸어가며 바베크의 차 옆으로 어물어물 다가 갔다. 그것을 보자 화물차의 잠바는 쿡 하고 웃음을 깨물면서 골목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막스는 운전대에서 등을 꼬부리고 빗방울을 피하고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사나이가 자기 옆으로 다가 오는 것을 보았다. 그 사나이는 집을 찾는 것처럼 이집 저 집을 쳐다 보면서 걸어 왔다.

“아파아트는 어디쯤 됩니까?”

사나이는 막스에게 길을 물었다.

“자아, 좀 더 가야만 될 걸요. 흰 기와를 이은 커다란 건물인데……”

막스는 대답을 하였다.

“고맙습니다.”

사나이가 일단 돌아섰던 몸을 획하고 돌이키는 순간, 손에 잡힌 권총이 맹렬한 〈까스〉를 발산하며 막스의 면상을 쏘았다. 막스는 숨이 막히는 것을 의식(意識)하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나이는 곧 뛰어 올라, 기절한 막스를 운전대에서 뒷 좌석으로 끌어 옮긴 다음, 외투를 씌워 놓고 자기는 지금까지 막스가 앉았던 운전대에 앉아서 꾸부정하니 허리를 굽혔다. 밤거리라 가로등이 희미할 뿐이다.

그 때 오오토바이의 사나이가 가까이 왔다.

“잘 됐나?”

“음, 문제있나! 막스는 지금 뒤에서 한잠 골아 떨어졌네.”

“음, 이번엔 바베크 차례다. 그 자식은 재밤중까지 약혼자와 이야기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고 또 삼분 후에 나올는지도 모르는 일이야. 어쨌든 기다릴 수 밖에…… 잘 해야 돼. 실패만 해봐. 대장의 주먹이 여간한가.”

“염려말어.”

이윽고 오오토바이의 사나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물차의 사나이는 막스가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했으나 별로 뛰어 나와 간섭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때 아파아트의 문이 열리면서 바베크가 나왔다. 그는 문간까지 전송 나온 약혼자를 도로 들여 보내고 내려와 운전수 옆에 올라왔다.

“막스, 돌아가자.”

그러나 그 순간 까스•피스톨이 씩하고 맹렬한 연기를 내뿜는다. 바베크는 어린애처럼 쓰러졌다. 오오토바이의 사나이가 그때 뛰어와서 바베크를 뒷간에다 옮겨 싣고,

“자아, 됐다! 출발!”

차는 움직이었다. 차는 무서운 속력을 냈다. 그 뒤를 화물차가 따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화물차의 잠바 사나이는 쿡쿡 두어 번 웃음을 깨물면서 앞 차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이리하여 두 대의 자동차는 점점 도심지대를 벗어나 쓸쓸한 교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길은 기차 선로로 가로 막혀 있었고, 그 선로를 기나긴 열차가 천천히 그들의 눈 앞을 통과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두 대의 자동차는 정거를 하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었다.

거기서 뒤를 따르던 화물차는 앞차 꽁무니까지 바싹 갖다 대고 멈추었다. 잠바의 사나이는 화물차에서 뛰어 내려 모퉁이에 있는 담배가게로 들어가서 담배 한 갑을 사 갖고 나왔다. 그는 화물차 옆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피우며 기차가 통과하기를 기다리었다.

이윽고 기차는 지나가고 내리웠던 가름대도 올라갔다. 앞차는 천천히 선로를 건넜다. 그 때였다. 화물차의 운전수인 잠바의 사나이는 앞차 뒷 꽁무니에 훌쩍 매달렸다. 예비로 달고 다니는 다이야가 하나 좋은 발받침이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바베크와 막스를 실은 차는 빈민굴을 지나 강변으로 내달렸다. 차는 굉장한 스피이트를 내며 무섭게 달렸다.

캄캄한 밤, 험한 시골 길, 게다가 비까지 천둥천둥 내리고 있었다. 차는 다리를 건너 진흙 길을 스름스름 달렸다.

“거의 다 왔다. 헷드•라이트를 꺼라.”

운전대에 앉은 사나이 하나가 중얼거렸다. 불은 껐다. 캄캄한 길을 또 한참 가다가 어떤 낡은 집 앞에서 차는 마침내 멈췄다. 그 집 들창 하나에 불빛이 화안하다.

뒷꽁무니에 붙어 있던 잠바의 사나이는 차가 멎자마자 곧 뛰어내려 컴컴한 담장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두 사나이는 기절을 한 바베크와 막스를 어깨에 하나씩 메고 안으로 들어가서 마중나온 사람에게 인도하여 버렸다.

그것을 보자 담장 밑에 숨어 있던 잠바의 사나이는 원숭이처럼 나무에 기어 올라가자 담장을 손쉽게 넘어 들어 갔다. 그리고는 또 나무 밑등에 납작 엎디어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었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와 물줄기 소리와 나무 잎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들창가로 가만가만 걸어 갔다. 그러나 들창은 모두 잠겨져 있었다. 그는 몸체를 더듬어가며 뒤안으로 돌아갔다. 뒤안 들창이 하나 열려 있었다. 그는 그리로 사뿐 넘어 들어갔다. 그는 회중전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은 사용하지 않았다.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손더듬이로 층층대를 기어 올라갔다. 어디선지 멀리서 사람의 말소리가 중얼중얼 들려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이상하게 생긴 열쇠 하나를 꺼내 눈 앞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 방을 건너 그는 다음 방으로 또 들어 갔다. 거기서 다시금 컴컴한 복도로 나섰다. 그는 손에 까스•피스톨과 회중전등을 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다시금 말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대담하게 회중전등 을 켰다. 그는 다시금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 때 한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말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바로 그 옆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텅 빈 방이다. 그는 발자국 소리를 죽이면서 자물쇠 구멍으로 다음 방을 들여다보았다.

“준비는 됐다. 저 두 놈을 깨워라. 이제부터 재미있는 연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굵다란 목소리는 다시 뒤를 이어,

“제 10호 방으로 가서 준비가 됐는지 어쨌는지 보고 오라. 지금이 바로 아홉시다. 열한 시에는 출발해야만 된다.”

그것은 틀림없는 저 흉악한 검은 별이었다. 다른 방과는 비교도 안되는 호화로운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앞에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쓰고 검은 별은 우뚝 서 있었다. 이마에는 검은 별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 바로 등 뒤에는 명령을 내리는 칠판이 걸려 있었고, 한 편 구석에는 역시 검은 마스크와 까운을 입은 여섯 명의 부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바베크와 막스는 그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아직 손발은 비끄러매인채 재갈은 풀리어 있었다.

“막스, 인제야 정신이 들었나?”

검은 별의 목소리였다.

“음—음—”

막스는 신음을 하며,

“어디 두고 보자! 이 주먹으로 너희놈들을……”

“또 잠꼬대가 시작됐다. 아, 바베크 군도 정신을 차렸다!”

막스는 머리를 돌려 자기 주인을 바라다 보고 나서,

“음, 너희 놈들은 우리 선생님을 이처럼 박대 한다는 말인가!”

“흥, 막스 너는 목하 사람을 위협할만한 입장에 서 있지는 못해. 알겠나?”

그리고는 바베크를 향하여,

“바베크, 여기가 검은 별의 새로운 본부다. 잘 보아 두어라. 너는 아직도 검은 별과 지혜 내기를 해 볼 셈인가? 나는 예고대로 너희들을 이곳에 유괴하여 왔다. 오늘 밤 우리들은 너희들을 범죄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기절을 시켜 놓을 작정이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너희들을 다시 한 번 비웃게 하기 위해서…… 어때? 그만 했으면 항복을 해 보지?”

“절대로!”

바베크는 단호한 대답을 하였다.

“고집만 세워도 소용이 없어. 그러나 너의 목소리는 공포에 떨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군의 얼굴이 약간 여읜 것 같애. 약간 고달픈 모양이지?”

“우리 선생님은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 게지, 네가 무서워서 그러시는 건 아니다.”

막스가 외쳤다.

“흥, 어쨌든 좋아. 네가 나를 붙잡겠다고 큰 소리를 한 것이 벌 써 육 개월 전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검은 별은 이처럼 건강하다.”

“이야기가 있으면 빨리 그것을 해라. 쓸데 없는 자랑은 그만 두고……”

“성미가 대단히 급하신 걸. 하하하…… 그럼 내 말을 잘 들어 둬라. 오늘 밤, 나는 약 삼십만불의 현금과 유가증권(有價證券)을 훔쳐 내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큰 사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국민 신탁 은행의 대 금고 속에 있다. 그 금고는 절대로 안전하다고들 하지만 천만에, 천만에! 그런 금고쯤 열기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넥타이 한 개를 푸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다.”

“흥, 커다란 소리는 말아라.”

막스는 대들었다.

“떠들지 말고 내 말을 조용히 들어 봐—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에 이 거리 상업구(商業區)에는 만전교(萬全敎)라는 새로운 결사(結社)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그 회원은 엄중한 제한이 있어서 전부가 우리 단원들 뿐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그 악당의 두목이라는 말이지?”

“입을 못 닫치겠나?……까스•피스톨을 또 한 방 먹어 보려는가? 바베크, 막스더러 잠자코 있으라고 명령을 해 주게.”

그 말에 바베크는 흥미를 느끼면서 잠자코 있으라는 눈짓을 했다. 막스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 만전교의 회합에 출석하기는 대단히 힘이 든다. 자격 심사가 무척 엄격했기 때문이다. 이 만전교의 회원은 지금 〈아메리칸•삘딩〉 삼 층으로서 바루 국민 신탁 은행 옆방이다. 우리는 미리부터 공사를 해 놓았기 때문에 비밀의 통로로 은행 금고에 무난히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의 부하는 은행 야경의 제복을 입고 경비를 하고 있다. 누구도 우리의 일을 방해할 자는 없다. 금고 문은 손잡이를 너덧 번 돌리면 문제없이 열리는 거야. 지금 그 금고 안에는 유가증권을 비롯하여 커다란 금덩어리가 태산처럼 들어 있다. 현금도 굉장하다. 알겠나?”

그리고는 부하들을 향하여,

“인제 삼십 분만 있으면 출발이다. 제6호, 강으로 가서 곧 출발할 수 있도록 제3호에게 전달하고 오라.”

그는 다시 또 바베크를 향하여,

“어때? 이 새로운 본부는 기분이 좋을 거야. 다른 방은 텅 비었지만 몇 방만은 아주 호화판으로 꾸며 놓았거든.”

그리고는 한참 동안 부하들과 무엇을 수근거리고 있는데 아까 나갔던 사나이가 돌아왔다.

“수령, 준비는 다 되었읍니다.”

“음, …… 제4호, 5882번에 전화를 걸고— 〈스튜와아트 씨는 내일 계란 네 궤짝이 필요하다〉—고 전달하라. 그 말만 전하면 우리가 출발한다는 사실을 저편에서 알 것이다.”

부하는 명령대로 전화를 걸었다. 검은 별은 그 때 다른 부하에게 무엇을 또 명령했다. 그 부하는 곧 까스•피스톨을 갖고 와서 막스와 바베크의 코 앞에다 대고 두 방 발사하였다. 둘이는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하하…… 어린애 같은 녀석들!”

검은 별은 한 바탕 유쾌히 웃고 다시,

“자아, 출발이다!”

명령이라, 부하들은 까운과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모자들을 썼다. 그러나 검은 별은 까운만은 벗고 마스크는 벗지 않았다. 그 대신 검은 별이 입은 외투의 넓고 높은 것이 그의 얼굴의 대부분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 썼기 때문에 마스크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바베크와 막스를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가면서 방의 불을 껐다.

이상과 같은 광경을 이 방에서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 보고 서 있던 잠바의 사나이는 그 때 쿡하고 한 번 웃음을 웃으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갔다. 그는 한참 동안 방 한가운데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이윽고 담벼락에 걸린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그는 곧 수화기를 들고 전화 번호를 불렀다. 그것은 경찰 본부의 비밀 번호였다.

그 보다 조금 후, 캄캄한 강 한가운데를 한 척의 모오타•보오트가 거리의 중심지를 향하여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아 정신을 채렸나?”

검은 별은 바베크와 막스를 돌아다 보았다. 까스의 효력이 없어진 것이다.

“바베크, 오늘 밤의 군의 태도는 약간 수상해. 군은 풀이 죽었어. 나와의 투쟁을 포기했는지 몰라. 내가 군의 약혼자를 유괴할까 봐 그것이 걱정이 되나?”

막스는 재갈을 물린채,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검은 별을 노려보았다.

“막스, 자네도 오늘 밤은 원기가 없어보여 하하하……”

검은 별은 조용히 웃었다.

“자아, 거지반 거리로 들어섰는데 바베크와 막스에게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씌워 주어라. 상업구로 들어서서 혹시 사람들에게 들키면 만전교 신입회원(新入會員)의 입회식에 가는 도중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부하들은 검은 별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앗, 경찰 런치다!”

그 때 기관사의 외침이 들리며 보오트는 갑자기 멎고 불이 홱 꺼졌다.

“뭐, 경찰 런치?”

상류로부터 경찰의 경비선(警備船)이 물결을 헤치며 맞받아 달려오지 않는가! 그 경비선의 탐조등(探照燈)이 수면을 휘익 비치어 왔다. 검은 별은 부하에게 벼락같이 명령을 하였다. 부하들은 모두 배 밑창에 납작 엎디었다. 기관사는 그 위에다 검은 포장을 덮어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불을 켜고 천천히 달려갔다.

그 순간, 경비선의 탐조등이 휘익 달려왔다. 경비선도 급속도로 다가왔다.

“어딜 가는 거야?”

경비선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대를 싣고 생선 시장에 가는 길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다른 배를 못 보았나?”

저편에서 정부가 물었다.

“못 봤는데요.”

“어디서 왔나?”

“어귀에서 왔읍니다. 이 즈음은 생선이 많이 잡히지요.”

“아, 그래? 어디 검사를 해 보세.”

경비차는 머리를 천천히 돌리며 움직여 왔다. 그 순간, 이 편 기관선은 갑자기 속력을 냈다. 욱하고 보오트는 내 달렸다. 거세인 물결이 획하고 경비선을 덮어 씌웠다. 등 뒤에서 경찰관들의 아우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탕— 탕— 탕—

총탄이 무섭게 날아 들었다. 그러나 경찰 런치는 대단히 불리한 입장에 서 있었다. 검은 별의 배는 경비선보다 속력이 빨랐다. 게다가 경비선은 반대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휘익 한 바퀴 돌아 서는 동안에 검은 별의 보오트는 벌써 멀찌감치서 달아나고 있었다.

번쩍 번쩍…… 빛나는 써어취•라이트의 불빛!

탕! 탕! 계속적으로 발사되는 경관대의 총성!

검은 별과 경찰관의 추격전은 마침내 벌어졌다.

“전 속력을 내서 저편 모퉁이를 돌아라!”

포장 아래서 검은 별이 기어 나왔다.

“거기서 상륙을 하여 자동차에 타라. 저희들이 경찰 본부에 전화를 걸고 자동차를 찾고 있을 동안에 우리들은 시내로 빠져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바베크와 막스는 또다시 까스. 피스톨을 한방씩 먹었다. 상륙 예정 지점에는 그들의 부하들이 차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배는 강변에 도착하였다. 그 때 경비선이 뒤를 맹렬히 따라오고 있었다. 탐조등이 검은 별의 앞 길을 앞질러 비치었다. 그들은 바베크와 막스를 메고 쏜살같이 뭍으로 올라갔다. 두 대의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차를 탔을 때 경비선도 강변에 도착하였다.

탕! 탕! 탕! 하는 총성!

번쩍— 번쩍— 번쩍— 하는 탐조등!

검은 별의 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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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과 경관대 사이에는 한참 동안 어둠 속의 사격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검은 별이 그의 부하 일동과 함께 자동차 두 대에 분승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자 경관대는 따라갈 것을 단념하고 도로 강 기슭으로 뛰어 내려와 경비선에 탔다.

그러는 동안에 검은 별의 자동차 두 대는 바베크와 막스를 실은채 강가의 신작로를 무섭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경관대의 추격에서 간신히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무슨 방법으로든지, 경찰 본부에 연락을 취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만일 검은 별의 자동차가 시내로 접어 들어가기 전에 경관대가 앞질러 오면 큰 일이다. 목적지인 만전교 회관까지는 어쨌든 무사히 도착해야만 하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검은 별은 경찰을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경찰 경비선을 만난 것은 말하자면 우연한 일일 뿐, 자기들을 체포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다릿목이 됩니다.”

운전수가 수령에게 보고를 하였다..

“다릿목 좀 못 미쳐서 길이 커어부를 한다. 거기서 속력을 멈추고 불을 꺼라. 다릿목에는 검문소가 있으니 형편을 좀 살펴 보자.”

검은 별은 명령을 하였다. 길이 꾸부러지는 곳에서 두 대의 자동차는 불을 끄고 이윽고 멎어버렸다.

여기는 길이 강 가에 접근해 있었다. 검은 별은 차에서 내리자 부하 하나를 거느리고 다릿목 가까이까지 몰래 다가가 보았다.

바로 다리가 열릴 무렵이었다(부산 영도 다리와 같이). 경비선이 다리 밑으로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빤히 바라다 보였다. 그들은 탐조등을 휘두르고 있었다. 경적이 뚜우뚜우— 울렸다. 이윽고 경비선은 다릿목 기슭에 도착하였다. 경관대는 배에서 뛰어 내려 동쪽으로 기어 올라왔다. 검은 별은 그들이 다릿목 검문소를 뛰어 들어가는 광경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는 경관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다릿목이나 다리 밑 컴컴한 곳으로 자태를 감추는 것이었다.

“흥, 잘들 논다! 길은 하나 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다리는 틀렸다. 전 속력으로 달려온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차를 멈출 수 밖에! 거기서 경관대가 뛰쳐나와 우리들을 깜쪽같이 붙잡아 버린다는 수작이겠다! 흥, 그러나 잘 안될 걸!”

“아까 우리가 내린, 배 있는 데로 다시 되돌아 가면 어떨까요.”

부하가 가만히 수령에게 속삭이었다.

“위험, 위험! 첫째, 시간이 낭비될 뿐 아니라, 배를 타면 또다시 경비선을 만난다—”

검은 별은 그리고 나서 잠시 생각하다가,

“차 있는 데로 가서 일동을 이리로 데리고 와, 바베크와 막스도 메고 와야 한다.”

“네—”

명령대로 부하는 되돌아갔다. 이윽고 차에서 내린 일동은 검은 별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기절해 있는 바베크와 막스를 땅에 내려 놓았다. 거기서 검은 별은 일동에게 절박한 형세를 간단히 설명한 후에,

“운전수는 차로 돌아가서 불을 켜고 다릿목으로 곧장 달려가라. 만일 검문소에 붙들리어 총소리를 들었느냐고 묻거든 들었다고 대답을 하고, 사나이들이 수풀 사이로 도망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대답하라. 강도인 줄만 알고 급히 시내로 들어가던 길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오랫 동안 경관과 이야기를 하여 시간을 끌어라. 그 틈에 우리는 우리대로 행동을 개시할 터이다.”

운전수들은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도로 차 있는 데로 돌아갔다.

이쯤 되고 보면 그들도 어느 정도의 모험은 각오해야만 하였다. 운전수를 경찰로 데리고 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식 면허장이 있는 터이라, 그들의 이야기가 거짓 증언이라고는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 가령 구류를 당한다고 치더라도, 검은 별의 힘으로 보석이 되면 그만인 것이다.

“자아, 그러면 우리는 저리로 내려가서 지금 방금 경관대가 내린 저 경비선을 타고 들려진 다리 밑으로 해서 시내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경비선에는 기관사 한 사람 밖에 없을 테니까, 염려 없다.”

검은 별은 선봉을 서서 우거진 숲 새를 헤치며 기슭으로 내려갔다. 이리하여 그들이 경비선에서 약 백 미터까지 다달았을 무렵에, 두 대의 자동차가 다릿목 검문소 앞에서 스톱을 당하고 있는 광경을 멀리 바라보았다.

검은 별은 실로 교묘한 작전가이다. 그는 부하 한 사람을 시켜서 먼저 경비선으로 향하여 공공연히 걸어가게 하였다. 어둠 속이라 경비선의 기관사는 사복 순사가 무슨 명령이라도 갖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부하 하나가 절벅절벅 물소리를 내면서 경비선으로 다가가니까, 탐조등을 만지고 있던 기관사가 후딱 뒤를 돌아다 보고, 누구냐?— 하고 입을 벌리려는데 까스•피스톨이 벼락같이 발사되었다. 기관사는 뱃전에 머리를 치면서 쓰러졌다.

부하는 탐조등을 다리 위로 한 번 휘익 비치었다. 그것은 일이 성공하였다는 것을 수령에게 알리는 신호였다.

동뚝 수풀을 헤치고 검은 별의 일동은 두 개의 포로를 메고 내려왔다. 경비선의 기관사는 기슭에 내던지고 검은 별의 기관사가 대신 올라탔다.

한편 경관대를 지휘하는 경부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나이였다. 두 대의 비인 자동차가 다릿목 검문소 앞에 먹었을 때, 그는 경관대의 약 반수를 다시금 경비선으로 내려 보내 상류를 탐색하라는 명령을 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뚝 숲 새를 뛰어 내려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경비선의 기관사가 기슭으로 내던져졌던 것이다.

탕, 탕, 탕— 탕, 탕, 탕—

그들은 되는대로 권총을 발사하여 다릿목의 동료들에게 경보를 전하였다. 경비선에 총알이 비오듯이 내려왔다. 실로 검은 별 일동에게 있어서는 위기 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배 밑에 납짝 업디어 총알을 피했다.

그때 검은 별은 돌연 벌떡 일어서면서 탐조등이 설치되어 있는 데로 뛰어가자, 그 눈부신 강력한 불빛을 휘익하고 돌려, 몰려 섰는 경관대에게 비추었다. 순간, 비오듯이 퍼부어 오던 총알이 다른 데로 삐뚜루 날아갔다. 눈이 부시어 조준을 맞출 수가 없을 뿐더러, 그들 자신이 도리어 다시 없는 목표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대부분 숲 새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으와, 핫, 핫, 핫……”

검은 별의 유쾌한 웃음이 돌연 어둠을 뚫고 터져 나왔다. 그러는 동안에 경비선은 이윽고, 강 한가운데로 빠져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기관사는 전력을 다하여 다리 아래를 총알처럼 통과하여 시내로 빠져 들어갔다.

“이 두 분 선생님이 기절을 하고 계셔서 이 재미있는 진경을 못 보신 게 약간 섭섭한 걸.”

검은 별은 만족한 듯이 이번에는 쿡쿡 웃었다.

“경찰의 배를 타고 도망치는 재미도 그럴 듯한 걸.”

이리하여 약 십오분 동안을 그들은 침묵과 함께 배를 몰아댔다.

“내셔날 거리와 워싱톤 거리 사이에서 배를 멈춰라. 불을 끄고 배가 먹거든 곧 바베크와 막스를 메고 내려라. 시간 없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그는 이미 웃지는 않았다. 그의 머리는 국민 식탁 은행의 대 금고 속에서 수많은 현금과 유가증권(有價證券)을 약탈하여 그의 본부로 모조리 운반할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일만 끝나면 단원들은 다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경찰 당국은 비로소 〈만전교〉라는 결사의 회관이 검은 별의 일터였던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것이다.

경관들은 회관 여기 저기에 조그만 검은 별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만전교의 회원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린 때이다.

경비선의 불은 꺼졌다. 이윽고 배는 기듯이 소리를 죽이고 커다란 창고 옆에서 멎었다. 계획대로 두 대의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따로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차였다.

일동은 택시를 타고 들창에 커어튼을 내렸다. 창고 옆 골목으로 서서히 빠져 나와 거리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상업구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 두 대의 택시는 조금도 의심스런 점은 없었다. 극장이나 주막에서 몰려 나오는 손님 사이에 끼어서 여러 번 운전을 멈춘적도 있었다. 그러나 운전수는 태연히 담배를 피워 물고 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들은 만전교 회관 옆 골목에서 내렸다. 부하 하나가 뒷문으로 걸어가서 녹크를 하고 그들의 암호를 말했다. 문은 열리고 일동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다시 닫치고 택시는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두 번이나 삼층으로 오르내려 일동을 운반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목적지인 〈만전교회관〉으로 들어가고 출입구는 굳건히 닫쳤다. 들창에는 두꺼운 커어튼이 늘어져 있었다.

“자아, 제군. 얼굴에 마스크를 써라. 그리고 우리들의 귀중한 손님을 꿈나라로부터 깨워라. 그러면 그들은 국민 신탁 은행 금고를 여는 것이 얼마나 수월한 일인가를 깨달을 것이니까—”

그의 명령을 부하들이 복종하고 있는 동안에, 수령 검은별은 한 편쪽 벽으로 걸어가서, 그 어떤 한 부분을 손으로 눌렀다. 그랬더니 담벼락의 한 부분이 홱 열리면서 저편에 역시 마스크를 쓴 사나이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일은 어찌 되었나?”

검은 별은 물었다.

“준비는 충분합니다, 수령!”

사나이는 대답하였다.

“은행의 야경(夜警)은?”

“염려없읍니다. 지금 기절을 하고 자빠져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의 동료 한 사람이 대신 번을 서고 있읍니다. 벌써 네 번씩이나 규정대로 본부에 보고를 했읍니다만 본부에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읍니다.”

“음, 만족, 만족!”

검은 별은 정말로 만족한 듯이 손을 비볐다.

비밀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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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은 방 한 구석으로 되돌아 왔다. 기절을 했던 두 사람의 포로가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 커어튼이 늘어진 저편 들창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 바베크 군과 막스 군!”

검은 별은 기미적은 웃음을 띄우며,

“정신을 차린 모양이지? 경찰과 우리들 사이에 벌어진 흥미로운 진행을 그대들이 보지 못한 것이 적지 않게 유감이야. 나는 그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지만 지금 시간이 없어서…… 내일 아침 신문을 보면 알 것이지만…… 지금 그대들은 소위 〈만전교회관〉 안에 있는 것이다. 저 담벼락에 뚫린 구멍을 바라보라. 우리들의 기사는 이 두 건물의 담벼락과 담벼락 사이에 비밀의 통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신탁 은행과 〈만전교회관〉 사이에……그러나 나는 지금 절대로 못 들어간다는, 그 금고 속에 그러면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을 그대들에게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만일 나의 방법이 세상에 알려지면 금고 제조업자는, 그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발견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은 별은 획 돌아 서서 중앙으로 걸어가자 여러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였다. 두 사람의 부하는 곧 그 명령대로 벙싯하니 뚫어진 그 구멍 속으로 자태를 감추어 버렸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다시 그 구멍에서 나타났다.

“준비가 다 되었읍니다.”

“금고는 열었는가?”

“열었읍니다. 보석 상자도 열었읍니다.”

“가방도 준비했는가?”

“네.”

“아, 그러면……”

검은 별은 바베크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너희 두 사람은 저 바베크를 자동 승강기(自動昇降機)에 갖다 실어라. 나도 따라갈 테니까—”

그리고는 다시 막스를 향하여,

“너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다. 승강기가 좁아서…… 그러나 이따 나중에는 너도 데리고 가 줄테니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

검은 별은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부하가 꽁꽁 동여맨 바베크를 쳐들었을 때, 검은 별은 또 한 번 웃었다. 그리고 또 막스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그는 세 번째 웃었다. 이리하여 검은 별과 바베크와 두 사람의 부하는 이윽고 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구멍은 다시금 닫쳐졌다.

남은 몇 부하는 막스를 놀려먹는 데도 인젠 흥미를 잃었는지, 저희끼리 중앙에 모여 앉아서 수근수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들 등 뒤에 홀로 앉아서 막스는 동여맨 손목의 노끈을 풀려고 가 진애를 다써 보았으나 모두가 다 허사였다.

지금 옆집인 신탁 은행에서는 검은 별과 그 부하가 약탈 행위를 마음 놓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막스는 이처럼 수족을 동여매여 꼼짝도 못 하는 자기 자신의 무력함이 그지없이 슬펐다.

막스는 그 때 자기 바로 등 뒤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으나 그 소리는 곧 멎어 버리고 말았다. 만일 막스의 뒤통수에 눈이 붙었던들, 등 뒤 커어튼 사이로 날카로운 손끝이 비쭉 나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손 끝은 커어튼을 조금씩 조금씩 내려 째고 있었다.

그 때 막스는 다음과 같은 속삭임을 자기 귀밑에 들었던 것이다—

“이거 봐. 막스! 우리는 응원을 왔지만 심중히 행동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인젠 네 손목을 풀어 주고 피스톨을 쥐워 줄테니……”

만일 막스가 재갈을 물지 않았던들 그는 불현 듯 환희의 부르짖음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는 목소리의 사나이가 누군지를 알지 못했다. 아니 그것이 우리의 편이라면 누군지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베크나 또는 타이리 형사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전연 들어보지 못 하던 음성이었다.

막스는 뒷짐 지워진 손목의 박승이 조금씩 끊어져 나가는 것을 불현 듯 느꼈다.

“자아, 피스톨을 쥐워 줄 테니, 이걸루 저 놈들을 위협하라. 그 틈에 우리가 덤벼들테니까. 실패를 했다가는 큰 일이다. 검은 별은 지금 아랫층에 있으니까.”

막스의 손에 피스톨이 쥐워졌다.

“자아!”

목소리는 재촉을 하며 물러갔다.

누구 한 사람 막스 쪽을 돌아다 보는 사람은 없다. 기지개를 하는 놈, 손발을 주무르는 놈…… 그러다가 후닥닥……

“손을 들어라!”

실로 청천벽력과 같은 막스의 외침이었다. 그들은 마치 공이 튀 듯이 걸상에서 튀어났다. 어떤 놈은 자기의 권총을 빼 들려고 손을 가져가는 놈도 있었다. 그러나 막스는 그런 놈의 대가리 위에다 한 방씩 먹여대곤 하였다.

그 때 등 뒤에서는 들창을 깨치고 경부보를 선봉으로 한 경관대가 육칠 명 뛰쳐들었다. 모두들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꼼짝달싹들 말라!”

경부보는 고함을 쳤다.

한 녀석이 권총을 빼려고 했을 때,

“탕—”

하고 경관 하나가 그 녀석을 쏘아 쓰러뜨렸다. 그러는데 다른 한 놈이 담벼락으로 뛰어 가서 전등의 스윗치를 눌렀다.

“탕—”

캄캄한 방 안이다.

양쪽이 거의 같은 인수였다. 그리고 검은 별의 신뢰를 얻고 있는 단원들은 자기의 단장을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이다.

방안의 불이 꺼지는 순간,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막스와 경관대는 납작 방바닥에 엎드려 버렸다. 섬광과 섬광— 암흑 속에서 사격전은 다시금 벌어졌다. 탕, 탕, 탕……

“들창과 출입문을 경비하라!”

경부보는 고함을 쳤다.

이윽고 총성은 멎었다. 어느 것이 편이고 어느 것이 적인지, 구별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지러운 발자국소리만이 들렸다. 검은 별의 부하들은 복도를 향하여 뛰어 나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경관대가 무기를 겨누고 기다리고 있었다. 탕, 탕, 탕…… 두 놈의 악당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나머지는 들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그들이 나갈 길은 없었다. 삼 층에서 땅까지는 수십 길이나 되기 때문이다.

진퇴유곡—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된 그들의 최후였다. 총알에 쓰러지는 것보다는 감옥으로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없다!”

경부보는 부르짖었다. 그 중 대장격인 한 놈이 권총을 버리고 손을 들었다. 그것을 본 다른 놈들도 각기 무기를 던지고 손들을 번쩍 쳐들고 말았다. 대관절 경찰이 어떻게 알고 이처럼 신속히 활동을 개시하였는지, 그들로서는 틍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물에 걸렸구나!”

경부보는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섰는 악당들을 바라보며,

“다시는 너희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약간 지리하리만큼 감옥살이를 해야 할 걸!”

“우리는 다만 만전교회관의 모임을 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한 놈이 항의를 하였다.

“모임?……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검은 별과 그의 부하가 옆집 은행에 있다. 막스는 박승을 지워서 동여매 놓고도 모임이야?…… 잔말 말고 밖으로 나가서 호송차를 타라! 그리고는 미결감(未決監)이다!”

라고 하는 한 편 막스는 아마 검은 별이 비밀의 단추를 눌러, 담벼락 일부를 열어 놓았던 장소로 뛰어가서 그 비밀의 단추를 열심히 찾았다. 그러나 단추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데나 마구 벽을 두드리고 눌러 보았다. 그러나 구멍은 통 뚫리지 않는다.

“막스, 쓸데없는 노릇을 그만 둬.”

경관 한 사람이 그러면서,

“무슨 다른 장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검은 별이 돈을 훔쳐 가지고 나오는 현장을 붙들 테다. 하여튼 이 근방은 전부 수배를 해 놓았으니, 이번만은 검은 별도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들 알고 응원을 왔는가?”

“나도 잘 모른다. 경찰부장에게 밀고가 들어왔다. 확실한 방면에서— 그런데 자네나 바베크가 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약간 유감이네.”

“무엇이?”

막스는 푸르덕 푸르덕 화를 냈다.

“할 수 없는 일이지, 뭐야? 재갈을 물리고 꽁꽁 박승을 지우고야 무슨 공을 세우겠나? 이번에도 역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수 밖에! 하, 하, 하, 핫……”

경관은 유쾌히 비웃어댔다.

“옹, 두고 봐라!”

막스는 괘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까운을 벗어 던지고 복도로 나가자 층층대를 비조처럼 뛰어 내려갔다. 그는 옆집 신탁 은행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밖으로 나서자 그는 옆집 텔딩으로 뛰어갔다. 거기가 곧 국민 신탁 은행 앞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대여섯 명의 경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안으로 들어가지 않느냐?”

막스는 기가 차서 물었다.

“급하게 굴지 않아도 돼. 우리는 지금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호?…… 그러나 나는……?”

“기다려, 막스! 검은 별이 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수배는 다 됐으니까—”

“안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그 놈을 놓친다! 나는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는데 호루루기 소리가 호르락 호르락—하고 났다. 경관 대가 곧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은행 안으로 밀물처럼 뛰쳐 들어갔다.

은행 안은 캄캄하다. 가로등 불빛이 들창으로 희미하게 비쳐 들어왔다. 경관들은 회중전등을 휘두르며 넓은 방을 거쳐 금고가 있는 데로 달려갔다. 이보다 먼저, 검은 별이 행동을 개시하기 전부터 배치하여 두었던 경관들도 각각 숨어 있던 장소로부터 뛰어나왔다. 호루루기를 분 것은 경찰부장 자신이었다. 그것은 검은 별을 현장에서 체포할 셈이었다.

이윽고 의자가 쓰러지고 테이블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별! 항복을 하여라!”

하고 고함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것과 동시에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폭발소리와 함께 까스 연기가 코를 찔렀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마시고 쓰러졌다. 어떤 사람은 숨을 죽였다. 까스 연기로 말미암아 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쓰리고 눈물이 자꾸만 났다.

“으아, 하, 하, 핫……”

이러한 혼란과 어지러운 속에서 돌연 검은 별의 비웃는 소리가 기미적게 흘러 나왔다. 검은 별은 포박을 당한 바베크를 방패로 하고 도망을 친다. 부하 세 사람이 두 개의 빈 가방을 들고 달아난다.

탕, 탕, 탕—

경관들이 따라 나갔다. 검은 별이 복도로 뛰어 나가자 담벼락에 구멍이 하나 뚫렸다. 일행이 그리로 들어갔다. 구멍은 다시금 닫혀졌다.

“인제는 잡았다!”

경찰부장이 부르짖었다.

“저 담벼락과 담벼락 사이에 만들어 놓은 승강기 꼭대기에는 경관대가 지키고 있다. 밑에도 지키고 있다. 항복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이다.”

“그러나 바베크 선생이 잡혀갔읍니다.”

막스가 외쳤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검은 별은 바베크에게 위험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바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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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조금 전, 검은 별은 회관 담벼락 구멍으로 들어가 비밀의 문을 잠근 후, 회중전등을 비치었다.

“바베크, 우리들의 지혜를 인제는 인정해야 할 거야.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 두 개의 삘딩 담벼락 사이에 자동 승강기를 설치하였다. 상당히 시일도 걸렸지만 이 승강기로 온갖 자재가 사람들 몰래 운반되고 있는 줄을, 저 무능한 경찰에서 통 모르고 있는 것이다.”

검은 별은 조금 후 다시 계속하여,

“자아, 바베크 군, 주의해서 보아 두라. 이 끈을 잡아 당기면 승강기는 밑으로 내려간다.”

사람들이 탄 조그만 상자가 밑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검은 별은 만족한 이 웃었다.

“자아, 다 내려왔다!”

검은 별은 그리고,

“여기에 조그만 단추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장치해 놓은 전기 신호기에 연락이 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일정한 회수를 누르면 은행에 있는 우리 부하에게 신호가 간다. 조그만 전등이 교묘히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는 손을 빼쳐 단추를 눌렀다. 그랬더니 조금 후, 사람들이 탄 상자 꼭대기에 파란 불이 켜졌다.

“자아, 우리는 이 거리에서 제일 유력한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현금과 유가증권을 약탈하는 것이다.”

검은 별은 또 한 번 쿡쿡 웃으면서 담벼락의 어떤 한 부분을 손으로 눌렀다. 그랬더니 거기에 구멍이 하나 뻥 뚫려졌다. 마스크를 쓴 사나이 하나가 그 곳에 서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읍니다. 가방은 금고 문 앞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읍니다.”

하고 사나이는 보고하였다.

“야경은 여전히 근무하고 있는가?”

“그렇읍니다.”

“복도를 경계해라. 금고에는 세 명만 데리고 갈 테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뒷문으로 나가라.”

검은 별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부하들도 바베크를 메고 따라 들어갔다. 이윽고 그들은 비좁은 복도에 서는 몸이 되었다.

일동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금고실까지 다달았다.

“바베크 군을 테이블 앞에 앉히어라. 우리들의 하는 일을 잘 구경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일이 끝나면 바베크의 가슴에다 편지를 핀으로 찔러 놔 두고 잠을 깨워라. 저 어리석은 경찰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세상의 웃음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부하들은 명령대로 실행하였다.

한편 검은 별은 금고로 향하였다. 그는 손을 빼쳐 무거운 금고 문을 열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는 이윽고 바베크를 돌아다보고 조소하는 듯이 손짓을 하면서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단한 수확이다.”

이윽고 그는 지폐 뭉치를 한 아름 끄내 가지고 나와서 가방에 쓸어 넣었다. 그는 여러 차례 금고 안으로 들락날락하면서 현금과 유가증권을 끄내다가 가방에 가득 채워 넣었다.

“바베크, 구경하는 재미가 어때? 다른 사람이 일생을 걸려서도 벌지 못 하는 것을 나는 단 하루 밤에 손에 넣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아니, 이 뿐인가, 굉장히 훌륭한 다이어 목걸이가 또 수두룩하니……”

그러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총성과 함께 유리가 깨지는 소리,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별은 금고로부터 뛰쳐 나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의 얼굴에 갑자기 불안의 표정이 떠올랐다. 야경의 한 사람이 복도로부터 뛰어왔다.

“빨간 신홉니다! 회관으로부터 위험 신홉니다!”

하고 야경은 허겁지겁이다.

“조용히, 조용히! 떠들면 안된다. 신호를 하고 뒷문으로 퇴각을 하라!”

“그러면 수령은?”

“나는 걱정 말고 빨리 퇴각하라!”

회관 윗층으로부터 총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무슨 고장이 생겼나? 하여튼 먼저 저 가방을 운반해라. 그리고 바베크의 가슴에다 편지를 한 장……”

그러면서 검은 별은 주머니에서 미리 써 넣었던 편지 한 장을 끄집어 내어 바베크의 가슴에다 바늘로 꽂아 놓았다.

호르락, 호르락—

경찰부장의 호각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은행 문으로 뛰어 들어오는 경관대의 발자국 소리에 검은 별의 태도는 홱 달라졌다. 그는 바베크의 어깨를 집고 사무실 쪽으로 끌고 갔다. 그 순간 경관대가 사무실로 뛰어 들었던 것이다.

검은 별은 주머니에서 공 만한 폭탄 한 알을 끄내, 다가드는 경관대를 향하여 내던졌다.

콰앙— 굉장한 폭음이 일어났다. 씩씩씩, 씩씩씩 하고 까스가 발산하는 소리가 나며 뒤를 이어 검은 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베크를 총알막이로 삼고 뒤로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리 하여 그는 다시금 눈 앞에 뻥 뚫려진 구멍 속으로 해서 상자같이 된 자동 승강기를 탔던 것이다.

“바베크 군, 재미가 어때?”

검은 별은 그리고 나서,

“그런데 경찰에서 어떻게 알고 습격을 왔을까?…… 단원 한사람이 배반을 하지 않았나?”

상자는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흥, 경관이 담벼락을 두드리고 있는 군! 흥, 그러나 비밀의 문을 어떻게 여는지 너희들은 알 리가 없을 거야. 바베크 군, 군은 내가 비밀의 문을 열 때, 손으로 담벼락을 누르던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사람의 눈을 속이는 수단이고, 실은 손으로 담벼락을 누르는 흉내를 하면서 발로 진짜 단추를 밟았던 것이다!”

그러자마자 검은 별은 돌연 바베크의 면상을 향하여 까스•피스톨을 한 방 쏘았다.

“자아, 빨리, 빨리!”

검은 별은 재촉을 하며,

“경찰에게 완전히 포위를 당한 모양이다. 위로 올라갈 수도 없 고, 밑으로 내려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으니 중간에서 내리자!”

그는 노끈을 잡아당겨 상자를 멈추었다. 그것은 일 층과 삼 층 사이 쯤의 거리였다. 그는 담벼락의 일부를 눌렀다. 새로운 구멍이 눈 앞에 나타났다.

“자아, 빨리 들어가라! 가방을 잊지 말고……”

세 사람의 부하가 바베크를 메고 들어갔다. 검은 별도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끈을 잡아당겨 빈 상자를 위로 다시 올려 보냈다.

그것은 대단히 조그만 방이었다. 벽과 벽 사이에 장치한 방이었다.

“큰 소리만 내지 않으면 문제 없다.”

한편 경관대는 비밀의 문을 발견하기 위하여 아래 위에서 담벼락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은행 안에서는 막스가 극도로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부장은,

“포대 안에 든 쥐다. 걱정말아!”

하고 대단히 흥분해 있었다.

“천만에! 검은 별은 무서운 녀석입니다.”

“염려 없어. 바베크가 다소 걱정이 되지만 그러나 놈은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니까—”

이윽고 담벼락은 파괴되어 구멍이 뻥 뚫려졌다. 그러나 검은 별은 보이지 않는다. 삼 층과 일 층이 아래 위에서 서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상자는 여기 올라와 있었읍니다. 그러나 놈은 보이지 않았읍니다.”

경관 하나가 위에서 고함을 쳤다.

“없다?—”

경찰부장은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아무도 없읍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그 상자를 타고 밑으로 내려오면서 중간벽을 세밀히 조사해 보라. 그 놈은 중간 어디에 교묘히 숨어 있을 것이다.”

이윽고 상자가 움직이면서 천천히 밑으로 내려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읍니다.”

순사부장과 경관 두 사람이 상자에서 내렸다.

“이 어리석은 자식들!”

경찰부장은 화를 내며 자기 자신이 상자를 타고 한 번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과연 수상하였다. 이 건물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은가! 구름처럼, 바람처럼 사라진 검은 별의 일행이었다.

바로 그 지음, 검은 별은 쿡쿡 웃고 있었다. 담벼락 밖으로 경관들이 오르내리는 꼬락서니가 우스웠던 것이다.

“이 방이야말로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러나 날이 밝기 전에 여기를 빠져나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우둔한 경관들이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통로를 메워 버리면 큰 일이니까.”

그러면서 그는 벽으로 가서 그 일부를 눌렀다. 그랬더니 방바닥에 조그만 틈 사이가 나면서 아랫층 광경이 빤히 내려다 보였다. 경관들이 회중전등을 휘둘으며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손을 뻗쳐 노끈을 잡아 당겼다. 상자가 천천히 올라오다가 검은 별의 숨어 있는 중간에서 멎었다. 그것을 보자 경찰부장은 모든 것을 짐작하며,

“상자를 밑으로 내려 보내라!”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중간에서 검은 별이 노끈을 꽉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아래와 위에서 아무리 노끈을 잡아 당겨도 상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검은 별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띄우면서 주머니에서 연필을 끄내, 종이 조각에 몇 글자 써서 그것을 기절한 바베크의 가슴에다 핀으로 꽂아 놓은 후에 상자에다 바베크를 실었다.

“바베크 군, 군의 친구인 경찰부장한테 내려가서 그들을 좀 놀라게 하라. 군은 오늘 저녁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부장은 네 손을 풀어 놓아 줄 테니까, 정신을 차리거든 다시 나를 잡으러 따라오라!”

그러면서 검은 별은 노끈을 당겨 상자를 밑으로 내려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금 벽을 눌러 틈 사이를 닫아 버렸다.

“자아, 그러면 우리들도 여기를 빠져나가야만 한다. 네 시 반이면 날이 밝으니까, 그 때까지는 우리도 본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어떻게 빠져나갑니까?”

“걱정 말어, 걱정을 하면 머리털이 센다. 자아, 저 소리를 들어봐!”

아랫층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상자가 밑으로 내려가자 바베크의 몸둥이가 경관에게 끌리어 나왔다.

“앗, 바베크다! 마취제를 쏘였다!”

경찰부장이 부르짖었다.

“아니다. 까스•피스톨이다!”

막스가 고함을 쳤다.

“그런데 대관절 어디서 내려왔는고?……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요, 중턱 벽에 납짝 붙어 있던 것도 아닐 것이고…… 빨리 박승을 풀고 자갈을 벗기라. 아, 이건 편지?”

경찰부장은 부하가 내 주는 종이 조각을 회중전 등으로 읽어 보 았다.

× ×

친애하는 경찰부장— 바베크는 보시는 바와 같이 건재하다. 그리고 군은 나에게 대해서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한시 바삐 바베크를 깨워 이 경주에 참가하도록 희망한다. 오늘 밤 나는 그이에게 활동을 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를 하늘로부터 군의 머리 위에 내려 보낸다. 그러나 군은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은행의 막대한 금액은 완전 무결하게 내 손으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군의 노력은 언제든지 웃음거리인 헛수고일 따름이다.

검은 별

경찰부장

편집

“검은 별을 붙잡기만 하면 공판 때까지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검은 별의 편지를 읽고난 경찰부장은 악이 치받쳐 부르짖었다.

“바베크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가? 이건 정말 수상한 일이다. 검은 별은 이 삘딩 안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럴 리는 없읍니다.”

순경 한 사람이 말을 받으며,

“이 양쪽 건물 담벼락에는 상자에서 나와 숨어 들어갈 만한 장소는 절대 없읍니다.”

“그러나—”

“아, 바베크가 정신을 차렸읍니다.”

하고 그 때 순경 한 사람이 부르짖었다. 그들은 지금 쓰러져 있는 바베크를 안아 일으켜 가지고 설명을 구했으나 바베크는 그저 피곤한 듯이 손을 흔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바베크, 그 놈들이 군을 어디로 데리고 갔는가?”

경찰부장이 물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정신을 잃고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상자가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까스•피스톨을…… 그리고는 쭉 정신이 없었읍니다.”

“그 놈들은 분명히 담벼락 어느 한 구석에 숨어있다. 내가 한 번 더 올라가서 조사를 할 테다!”

경찰부장은 외쳤다.

구경군들이 벌써 새까맣게 모여 있었다. 저 너무나 유명한 검은 별과 그의 부하들이 경찰대에 쫓기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신문 기자들이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진상을 붙잡으려고 활약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경찰부장은 적지 않게 흥분해 있었다. 그래서 검은 별을 체포해야 하겠다는 부장의 결심은 한층 더 굳어졌다. 그는 부하를 시켜서 경찰관 이외에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은행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는 네 사람의 경관을 밑에서 지키게 하고 두 사람의 순경과 함께 그는 상자를 타고 위로 올라 갔다.

한편 검은 별은 그의 비밀실에서 경찰부장의 명령을 죄다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경찰부장을 실은 상자가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음, 일은 잘 됐다. 밑에는 네 명의 경관 밖에 없다. 우리는 조만간 이 비밀실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 빨리 복도로 해서 후면 층계로 올라가자!”

하고 검은 별은 명령하였다.

“그러나 수령—”

부하 하나가 말을 하려는데,

“쉬! 떠들지 말아! 상자는 바로 이 비밀실 앞에까지 올라왔다!”

경찰부장과 두 명의 경관은 상자와 함께 천천히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회중전등을 켜가지고 양쪽 딩 담벼락을 세밀히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단 비밀실이 뚫어진 담벼락 앞에 서 있었으나 다음 순간, 별반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 했는지, 상자는 다시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상자는 마침내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경찰부장은 부하들과 함께 의론을 하였다. 그리고는 회관의 담벼락을 조사하였다. 그 회관 담벼락 속에서 지키고 있던 경찰관에게 질문을 하여 검은 별과 그의 일당이 경관의 눈을 속이고 도망할 수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한 조사가 끝난 후, 경찰부장은 한층 더 푸르럭거리면서 상자를 타고 다시금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검은 별은 상자가 아래로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곧 부하에게 명령을 하였다. 그는 담벼락 한 모퉁이를 가만히 떠밀어 약 삼인치 가량되는 틈서리로 밖을 내다보면서 상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한 손으로는 까스 피스톨을 겨누고 한 손으로는 곧 틈서리를 잠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하 하나는 방바닥에 엎디어 수령의 명령만 내리면 상자의 줄을 잡아 비밀실 안으로 끌어 들일 준비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상자는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 이상 더 담벼락을 조사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말을 경찰부장이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경관을 배로 늘리어 날이 밝기를 기다려 삘딩 안을 이 잡 듯이 뒤져서 검은 별을 체포한다고 하였다.

“자아, 빨리!”

검은 별은 방바닥에 엎디어 있는 부하에게 명령을 하였다. 상자는 바로 문 틈서리 앞에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엎디어 있던 사나이는 재빠르게 손을 내밀어 끈을 잡고 상자를 멈추었다. 그 순간, 검은 별의 손아귀에 잡혔던 까스 피스톨이 발사되였다. 그는 연달아 두 서너 번 방아쇠를 당겼다. 상자 안은 독까스로 가득찼다. 먼저 경찰부장이 쓰러졌다. 그 다음 부하들이 둘이 쓰러졌다.

검은 별과 그의 부하들은 콧구멍에 제가끔 해면을 틀어막고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까스가 없어지자 검은 별은 문을 활짝 열고 경찰부장과 두 명의 순경을 비밀실로 끌어 넣었다.

“자아, 빨리 빨리!”

검은 별은 빠른 말로,

“밑에는 네 명의 경관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 편은 셋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즉시로 내가 까스 폭탄을 던질 테니 너희들은 피스톨을 겨누고 있어야 한다. 큰 가방은 내가 하나 간수할테니 남은 한 개는 제 10호, 네가 들라. 그리고 제 6호, 너는 밑에 있는 네 놈 중에 두 녀석만 맡아라.”

“네.”

이리하여 그들은 경찰부장 대신 자기네가 상자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한 자 한 자 밑으로 내려가던 상자는 이윽고 땅 위에 닿아 멎었다. 그 순간, 대여섯간 떨어져서 서 있던 네 명의 경관 옆에서 까스 폭탄이 쾅하고 터져나갔다.

검은 별과 그의 부하가 상자에서 뛰쳐 나왔을 때, 까스 연기는 경찰들을 뒤덮고 있었다. 까스•피스톨이 또 발사되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악당은 비좁은 복도를 뒷 층계로 줄달음질쳐 갔다.

그들은 조금도 위험 없이 빠져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연 네 사람 중의 둘이가 쓰러지면서 고함을 쳤기 때문에 은행 앞에서 파수하고 있던 다른 경관들이 뛰쳐왔다. 그들은 동료가 쓰러지는 광경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 개의 괴상한 그림자가 복도를 달리는 것을 보았다.

탕— 탕— 탕—

경관들의 피스톨이 불을 내뿜었다.

검은 별과 그의 부하는 하는 수 없이 총탄의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들이 층계 위까지 다달았을 때, 부하 하나가 부상을 당하고 쓰러졌다.

그렇다고 쓰러진 부하를 거느리고 갈 시간의 여유는 없다. 자기 일을 자기가 처리하는 것이 이 단체의 목표이었다. 약탈품을 가지고 뛰면 그만인 것이다. 붙잡힌 동료는 보석금으로 출옥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탈옥을 시킬 적도 있다.

검은 별의 일행은 이 층으로, 이 층에서 다시 삼층으로 뛰어올랐다. 경관들의 맹렬한 추격이 검은 별의 발꿈치를 따르고 있었다. 밖에서 경비를 하던 경관이 제각기 무기를 잡고 검은 별이 나오기를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 별은 또다시 까스 폭탄을 던져 추격해 오는 경관대를 일시나마 막아내곤 하였다.

그들은 사 층으로 쫓겨 올라왔다. 그러나 앞질러 저편 넓은 층계를 뛰어 올라오는 경관대의 발자취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이윽고 오 층으로 올랐다. 대여섯 명의 순경이 복도 저 편에서 달려왔다.

탕— 탕— 탕—

총탄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검은 별의 부하 하나가 또 쓰러졌다.

콰앙— 콰앙—

두 개의 까스 폭탄을 또 던지면서 검은 별은 맨 윗층인 육 층으로 올라왔다. 거기서 복도를 뺑돌아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하여 옥상으로 통하는 꾸불꾸불한 소라형으로 된 층층대를 나섰다. 그는 날아오는 총탄을 무릅쓰고 그 꾸불꾸불한 층층대를 기가 차서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콰앙—

거기서 검은 별은 최후의 폭탄을 던졌다. 그리고 넓은 옥상(屋 上)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문을 완강(頑强)히 닫고 가름대를 찔렀다. 그 문은 철판(鐵板)으로 된 문이기 때문에 총알 쯤은 어림도 없었다.

경관들은 밑으로 내려가서 도끼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러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는 문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대단히 곤란한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검은 별이 옥상으로 쫓겨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이 건물 안의 경 관들에게 쭉 퍼졌다. 체포냐, 그렇지 않으면 총살이다.

이윽고 문은 보기 좋게 쪼개져 나갔다. 경관들은 무기를 들고 옥상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머리 위에서 돌연 폭음이 났다. 모진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덮었다. 연달아 검은 별의 조소하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앗, 비행기다!”

순사부장이 부르짖었다.

“어디냐?”

그 때 또 검은 별의 웃음소리가 기미적게 들려왔다.

경관들은 머리 위를 향하여 권총을 무수히 발사하였다. 그러나 검은 별을 실은 비행기는 이미 경관들의 착탄거리 밖으로 빠져 올라가고 있었다.

“앗, 검은 별의 편지다!”

순사부장이 옥상 한 모퉁이에 세워 놓은 깃발 대에 비끄러매어 놓은 종이 조각 하나를 발견하고 고함을 쳤다. 그들은 당황히 그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 ×

잘 있거라, 제군! 제군은 오늘 밤, 나를 너무나 괴롭혔다. 나의 부하 하나를 부상시키고 다른 하나를 포로로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내가 승리자다.

제군은 어째서 비행기가 이 건물 옥상에 있었던가를 괴상히 생각할 것이다. 도저히 내려 앉을 수 없는 이 옥상에 비행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제군은 놀랄 것이다. 그러나 이 비행기는 오늘 밤, 나의 부하들이 부분부분을 해체(解體)하여 하나씩 하나씩 옥상으로 올려다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문적인 기술자의 손으로 다시금 붙이고 맞추어서 비행기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준비한 노릇이지만 나는 지금 하는 수 없이 이 비행기를 사용하는 바이다.

곁 붙이로 말해 두지만 나는 지금 대단한 금액을 가지고 간다. 수십 명의 경관대가 은행을 지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거액을 가지고 간다. 이 위대한 사실을 신문사에 전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바베크와 그의 충실한 조수 막스에게도 전해 주라.

검은 별

×

“도망을 쳤다! 검은 별은 또다시 도망을 쳤다! 아아, 세상에는 경찰 당국을 또 뭐라고 비웃을 것인가!”

순사부장은 입을 쩍 벌리고 한탄을 하였다.

괴상한 사나이

편집

검은 별은 비행기로 약 삼천 피이트의 높이까지 올라가서는 거리의 상공을 한 번 삥 돈 후에 강 하류를 향하였다. 그는 비행기 조종에 일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사나이는 돌보지도 않았다. 멀리 눈 아래에 거리의 등불이 있었다. 그가 이 여섯 달 동안, 대단한 현금과 보석을 훔친 거리, 그가 시민을 공포 속에 몰아 넣고 경찰 당국의 무능을 비웃던 거리, 그리고 검은 별의 체포를 맹서한 청년 탐정 로오쟈•바베크가 탄생한 거리이다.

바베크는 검은 별을 붙잡지 못했다. 검은 별은 이 청년을 두번 세 번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검은 별은 바베크의 노력이 그 얼마나 어린애 장난 같으며 또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폭로하였다. 검은 별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검은 별은 이제 이 거리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가 가장 신뢰하고 있던 부하를 대부분 잃어 버렸다. 그가 절대로 신뢰할 수 있는 부하는 지금 그의 옆에 혼자 남아 있는 사나이 하나 뿐이다.

그는 당분간 어디론가 가서 세상으로부터 은퇴하고 싶었다. 돈 걱정은 물론 없었다. 이삼일 내로 새로운 본부를 설치하여 남아 있는 단원들을 모아 놓고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을 나눠 주리라 생각하였다.

구주 대전에 피폐한 유럽에는 그리 흥미를 갖지 않았으나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고 남양도 있다. 한 일 년 동안 세계를 유람하고 돌아오자. 안일한 생활 속에서 온갖 쾌락을 맛보자.

이리하여 세상이 검은 별의 이름을 완전히 잊어 버렸을 지음에 어떤 다른 도시에 나타나서 다시 단체를 조직하고 사업을 시작하자. 검은 별은 그렇게 결정하였다.

검은 별이 이러한 결심을 하기까지는 단 오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는 강을 내려다 보았다.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본부로 가련다. 군은 비행기를 전과 같이 수풀 사이에 감추어 두고 거리로 나오라. 이 삼 일 사이에 집합 장소를 아르켜 주마. 나는 현재의 본부는 포기할 작정이다. 위험하니까. 나는 내일 점심 때까지는 짐을 꾸려 가지고 그 곳을 떠날 작정이다.”

“바베크의 자동차가 정문 밖에 있을 겁니다.”

옆에 앉은 사나이가 말하였다.

“음— 군은 우선 비행기를 처치하고 오게. 나는 자동차를 적당히 처치할 테니까—”

그는 비행기를 드넓은 벌판에서 천천히 내리웠다. 그는 기체가 착륙을 하자 가방을 가지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잘 감추고 오게.”

“네.”

비행기는 다시금 폭음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검은 별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거리를 향하여 터벅터벅 걸어갔다.

“당분간 이 위험한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검은 별의 마음이 약해진 탓이라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상 오늘 밤 일은 적지 않게 그의 용기를 꺾어 버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로 공포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였다. 그는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재물을 획득했다. 그는 인젠 안전하다.

그는 이 거리를 떠날 때, 최후로 가장 심각한 조소의 편지를 신문사와 경찰 당국과 그리고 바베크에게 보내리라 결심하였다. 바베크를 생각하면 미소가 흘렀다. 바베크는 종시 오늘 밤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다.

“내가 종내 도망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바베크는 얼마나 분통 이 터질 것인가?…… 막스는 또 얼마나 이를 갈텐고?…… 저 뚱뚱보 경찰부장은 또 얼마나 화를 낼 것인고……”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검은 별은 그들의 본부로 돌아왔다. 두 개의 돈 가방을 들고 열쇠를 끄내 현관 문을 연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캄캄하였다. 람프에 불을 켜고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사람이 드나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방 한 복판에 우뚝 서서 귀를 기울이고 주위의 공기를 살폈다. 그리고는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검은 별은 거기서 비로소 얼굴의 마스크와 까운과 모자를 벗어던진 후에 가방을 열어 보았다. 그의 눈 앞에는 지폐의 산더미와 두 주머니의 금화와 유가증권이 수두룩했다. 막대한 금액이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찬장을 열고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식기를 치우고 다시 가방을 잠궜다. 그리고는 우단 깔개를 들치고 방바닥에 장치되어 있는 비밀 상자 속에다 가방을 넣어 두고 시계를 보았다. 이제 반 시간만 지나면 날은 밝을 것이지만 그는 수면이 필요했다. 네 시간 동안만 자고 정오에는 가방을 가지고 시내로 숨어들어가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 날카로운 눈초리 하나가 옆방 열쇠 구멍으로 검은 별의 일거 일동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니, 그것은 어제 밤 초저녁 때부터 그들을 따르던 괴상한 사나이었다. 그는 실로 오랫 동안 이 검은 별의 소굴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검은 별에서 일 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검은 별이 혼자서 돌아온 것을 알자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검은 별은 이윽고 저고리와 조끼를 벗었다. 그리고 구두를 벗어 버리고 스리퍼를 신는 것을 보았다. 검은 별은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괴상한 사나이도 발자취 소리를 죽이고 복도로 나가자 소파가 놓여 있는 방의 반대편 문을 열고 가만히 들어갔다.

검은 별은 옷을 벗고 화려한 파자마로 갈아 입은 후에 불을 끄고 소파가 놓여 있는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앗!”

그 순간 검은 별은 공포와 놀람으로 말미암아 고함을 쳤다. 그는 비틀비틀 쓰러졌다. 말 한 마디 변변히 못 하고 그 자신이 항상 사용하던 까스•피스톨의 희생이 된 것이었다.

“하하핫……”

검은 별을 쓰러뜨린 괴상한 사나이는 유쾌히 웃어대면서 람프에 불을 켰다. 그는 방 한 구석에서 밧줄을 가져다가 기절해 쓰러진 검은 별을 등여매고 입에는 자갈을 물리었다. 그리고는 검은 별을 일으켜 걸상에 앉인 후에 몸둥이를 걸상에다 엄중히 비끄러매어 놓았다.

거기서 사나이는 우단 깔개를 들치고 비밀 상자 속에서 돈가방과 함께 다른 귀중품을 끄집어 냈다.

“현금과 유가증권과 보석과……”

사나이는 회심의 웃음을 웃으면서,

“미스터•뿔랙•스타! 이건 당분간 내가 보관해 두마!”

그는 안심과 기쁨이 절반씩 섞인 웃음을 입가에 지으며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그는 경찰본부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검은 별을 체포했으니 곧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였다.

붙잡힌 검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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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이상한 사나이 하나가 자기의 가슴 앞에서 권총을 겨누고 섰는 것을 보았다. 그 사나이는 기름 묻은 작업복에다 잠바를 입고 중절모자를 깊숙히 눌러쓰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잠바의 깃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눈 아래는 잘 보이지 않았다. 권총을 잡은 사나이의 손은 대단히 더럽혀져 있었다. 머리털은 검었으나 약간 길게 자랐었다.

“어때? 마침내 너를 붙잡았다!”

사나이는 거세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

“그리고 저기 있는 저 굉장한 보물! 내가 그것을 당분간 보관해 둘테다!”

그는 허리를 굽혀 검은 별의 입에서 자갈을 풀어 주었다.

“자아, 말을 해도 좋다. 뭣이, 검은 별이라고? 네가 악당의 두목이라는 말이지?”

“누구냐, 너는?—”

검은 별이 물었다.

“누구든 무슨 상관이냐?”

“아니다. 나를 체포할 수 있는 인간은 나에게는 대단히 흥미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는 검은 별을 적으로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노릇인지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무섭지는 않다.”

“나로서는 잘 모를 말이다. 어쨌든 이 포승을 풀어 다오. 그리고 천천히 협상을 하자. 네가 돈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주마.”

“돈은 지금 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으니까, 일부러 네 손을 거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럼 대관절 나를 어떡할 셈이냐?”

“너를 한 번 깜짝 놀래 주고 싶을 따름이다.”

그 때 검은 별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나이가 갑자기 몸을 가다듬는 것을 보았다. 그는 획하고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머리에 썼던 가발(假髮)을 벗어 던졌다.

“앗, 너는 바베크!”

검은 별이 후닥닥 놀라며 고함을 쳤다. 바베크는 미소를 띄우며,

“악당, 검은 별 각하! 나는 너를 체포하겠다고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완전 무결하게 체포하였다!”

“그러나, 너는 어떻게 이처럼 빨리 이 곳에 올 수가 있었다는 말이냐? 내가 비행기로 은행 옥상을 떠날 때, 너는 분명히 그곳에 있지 않았던가?”

“아, 약간 실례지만 검은 별 그대의 관찰은 다소 피상적이다. 그대는 대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나를 보았느냐 말이야?”

“대여섯 번—”

“그렇다. 그러나 나를 주의해서 관찰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기회가 없었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언제든지 흥분해 있을 때였다.”

“그것이 그대의 일대 실책이었다! 그대는 나의 얼굴을 분명히 보아 두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잘 안다. 그것은 하여튼 너는 무슨 방법으로 이처럼 빨리 이곳에 왔는가 말이다. 더구나 혼자서, 어떻게 우리의 본부를 찾아냈다는 말인가?”

“나는 너를 붙잡을 때 활약한 사람이니까, 그만한 것 쯤이야……”

“우리 단원 중에 누구가 변심을 한 놈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이다. 검은 별, 지금으로부터 육 개월 전에 나는 그대를 체포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거기서 그대는 나에게 도전해 왔지. 그 후 그대는 여러가지로 대담한 범죄를 감행하여 나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대는 결코 실책을 하지 안했다. 그러나 어떠한 범죄자라도 그리고 아무리 머리가 좋은 범죄자라도 영원히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꼭 실패를 하리라고 생각하였지. 그리고 오늘 밤 그대는 과연 실패를 한 것이다. 그대는 그 보복을 받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너는 이제부터 감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검은 별, 나는 재판정에 서게 될 너를 한 번 구경해 볼 작정이다. 그리고 너를 감옥 문 밖에서 전송해 줄 것이다. 너는 지금까지 한 여러가지 범죄에 대하여 법의 제재를 받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일시는 성공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꼭 보복을 받는 것이다.”

“나는 아직 감옥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알겠나, 바베크 군?”

“인제 들어가게 될 것이니 안심하라. 그리고 너는 지금 발 끝으로 방바닥에 달린 단추를 찾고 있는 것 같지만…… 쓸데 없는 노릇은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거야. 그 단추는 벌써 몇 시간 전에 내 손으로 파괴해 놨으니까 말이야.”

“몇 시간 전이라고? 모를 일이다.”

“너는 실책을 한 것이다. 그것 뿐이다. 커다란 실책—”

“그것을 좀 들려다오.”

“인제 들려 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까. 막스를 비롯한 경관대를……”

“음, 경찰에 알렸다는 말이지?”

“그렇다. 너를 인도하기 위하여……그런데 너는 또 오늘 밤 무슨 방법으로 은행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는가? 네가 하고자 한 일을 나는 이미 경찰 당국에 알려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 그래서 그 놈들이 알고 따라왔었군그래! 그런데 어떻게 너는 우리의 행동의 코오스를 경찰에 알릴 수가 있었느냐 말이다. 우리는 너를 이곳으로 유괴하여 단 일 분 동안도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었는데…… 설명을 해다오.”

“네가 큰 실책을 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설명이다.”

그 때 밖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바베크는 유유히 걸어 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진흙을 튕기며 다가왔다.

“아, 바베크 군인가?”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그렇다. 들어들 오라!”

바베크는 다시 돌아와 검은 별 앞에 우뚝 마주 섰다.

“빨리, 바베크 군, 나를 좀 놓아 주게!”

검은 별은 애원을 하였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 테다. 돈은 모두 은행에 반환할 테다! 용서해다오! 한 번만—”

“쓸데 없는 말은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그러는데 경관대가 저벅저벅 뛰어 들어왔다. 경찰부장과 막스를 선봉으로 모두들 어마어마한 무기를 들고 뒤따라 들어섰다.

“아, 바베크가?—”

경찰부장은 바베크의 자태를 그 곳에 발견하자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베크는 웃으면서,

“바로 여기 검은 별이 있읍니다. 부장, 그리고 돈과 보물도 그 테이블 위에 있읍니다. 이번엔 정말로 놓쳐서는 아니 되오. 내가 체포했읍니다. 그리고 그 사나이는 어디 있읍니까? …… 아 아—”

그러는데 사나이 하나가 걸어 들어와서 바베크 옆에 가만히 섰다.

“오오—”

일동의 입으로부터 감탄의 한 마디가 부지중 흘러나왔다. 막스 혼자만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바베크가 이 세상에는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한편이 약간 키가 작고 얼굴이 다소 여위었을 따름이었다.

“이것이 설명이다. 제군!”

바베크는 다음 말을 다시금 이어,

“나는 검은 별의 부하 한 사람이 항상 나의 뒤를 감시하며 따라다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거기서 나는 나대로 생각하였읍니다. 만일 그 누구가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반대로 그 부하의 뒤를 따름으로써 검은 별의 본부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부터 삼 주일 전에 검은 별은 나를 유괴하여다가 오늘 밤의 범죄를 구경시키겠다고 위협을 하였을 때, 이것이야말로 절호의 챤쓰라고 믿었지요. 자아, 제군, 그러면 나를 대신하였던 나의 사촌 동생을 소개하겠읍니다. 나의 어머니와 그의 어머니는 형제였읍니다. 우리들은 서로 놀랄만큼 꼭 같이 생겼지요.”

“사촌 동생?”

경찰부장은 부르짖었다.

“동생은 서부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편지를 하여 내려왔읍니다. 나는 동생을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여 몰래 집에 데려다 두었다가 나의 대리로 세웠읍니다. 동생은 막스와 함께 외출도 하고 약혼자의 집도 방문하고 때로는 구락부에도 나갔읍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막스 뿐이지요. 그러는 한편 나는 나대로 행동을 하여 동생을 미행하는 검은 별의 부하의 뒤를 따라 다녔읍니다. 그러던 중 종시 오늘 밤 동생을 유괴해 갔읍니다. 검은 별! 나는 내 동생이 유괴 당해 가는 자동차 뒤에 매달려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때까지 쭉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의 계획을 엿듣고 너희들이 나간 후에 곧 경찰본부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알겠나? 너는 너무나 커다란 범죄 수행에 흥분하여 하나의 실책을 한 것이다. 검은 별, 너는 너 자신의 눈을 사용할 것을 망각하였던 것이다. 주의 깊이 관찰할 것을 잊어 버렸던 것이다. 너는 나의 사촌 동생을 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랬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 보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과거에 있어서 네가 나한테 한 것처럼 나도 이번에는 너한테 한 장 써서 네 가슴에다 붙여 놓을 작정이다.”

그러면서 바베크는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 하나를 끄내 푸르럭거리고 있는 검은 별의 가슴에다 꽂아 놓았다. 그 종이 조각에는,

× ×

검은 별, 결코 다른 사람의 눈을 신용하지 말라. 자기의 눈을 사용하라. 막스가 나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나의 사촌 동생이 나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너의 부하는 그를 나라고 믿었다. 그리고 너도 그것을 믿었다. 그것이 너의 일대 실책이었다는 말이다.

바베크로부터

×

“자아, 경찰부장 이 놈을 데리고 가시오. 그럼 이번에 또다시 놓쳤다가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막스, 군은 자동차를 준비하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부장, 이 쾌보를 신문에 보도하시고 싶으시거든 저기에 전화가 있읍니다.”

막스는 복도로 걸어나갔다. 이것으로서 모험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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