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벅 할퀴는 소리가 있다. 문득 보니 교실문이 벙싯하였고, 개의 발이 방금 문을 할퀴는 중이었다. 검은 털 속으로 뿌하게 나온 발톱이란 칼끝보다도 더 예리해 보인다. 이스근해 문이 열리고 귀가 덥수룩히 늘어진 검정개 한 마리가 덥씬 들어온다. 구슬구슬한 털이랑 기름한 눈 하고 쀼죽히 튀어나온 주둥이며 뚱뚱하고도 늘씬한 허리가 일견 위풍이 느름하였다. 학생들은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고 그 중에는 웃는 이까지 있었다.

칠판에 썼던 글을 지우던 K선생이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귀가 띄어 머리를 돌리니 검둥이가 꼬리를 치며 달려온다. 선뜻 반가운 맘이 드는 동시에 별안간 일어나는 분노는 자기로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있는 채찍을 들어 개의 머리를 힘껏 쳐버렸다. 개는 껑충 뛰어오르면서도 피하려 하지 않고 여전히 K선생의 앞으로 달려든다. 설레설레 젓는 꼬리 끝에 잠깐 발린 흰 털이란 박꽃처럼 희다. 그러나 끝내 개는 껑껑 울면서 뛰어나갔다.

"자, 그럼 내일 연습들 잘해 오시우."

K선생의 말소리는 약간 떨리는 것 같고, 핏빛이 얼굴에 좍 내돋는다. 눈 아래 포르스름한 근육이 발랑발랑 뛴다.

"그 개가 교장선생님네 개지?"

"아니다. 김선생님네 개다."

"교장선생 댁에 있던데……"

책보를 꾸리는 학생들은 이리 소근거린다. 귓결에 이 말을 들은 K선생은 아차 내가 또 감정적 행동을 했나 보구나 하니, 어쩐지 자신은 끝까지 소인이요, 평생 요 모양으로 남의 눈에 거친 짓만 할 듯싶어 슬픈 맘이 들었다. 하나 대인인들 부럽지 않다! 이러한 한 부르짖음이 가슴에 울컥 끼쳐진다.

학생들의 예를 받고 나오는 K선생은 머리가 우쩍거리고 다리가 허청 거려진다. 그럴 것이, 이틀이나 오롯이 굶었기 때문이다. 새로 페인트칠한 으리으리한 이 복도에 골이 메여서 학생들은 밀려나간다. 뽀한 먼지속에 구두냄새 같은 게 흘흘 풍기고, ant 신발소리가 북을 울리듯 쿵쿵한다. 창 밖에 단풍진 포플러 가지가 바람에 팽그르 돌고, 먼 하늘이 갸웃이 들여다본다. 무척 낯익다.

"선생님 어디 편치 않으십니까?"

K선생이 머리를 돌릴 때 별안간 앞이 아뜩해지므로 잠깐 정신을 수습하려 눈을 감았다 뜨니, 곁에 서서 당황히 쳐다보는 학생은 언제인가 모종의 혐의가 잇다 하여 순사에게 끌리어가던 그였다. 왼편 눈과 볼에 그때 표정이 안개같이 스러지는 것이다.

"너냐!"

K선생은 이리 말하고 다시 보니 그는 아니고 현재 재학생 중의 한 사람이다. 학생의 팔에 의지하여 사무실까지 오는 K선생은 소리쳐 누구를 부르고 싶어진다.

"마차 불러다우."

K선생은 정신이 버쩍 들어 학생에게 이리 부탁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담뱃내 자욱하고, 싫은 시선의 눈을 뜨고 싶지 않다. 머리를 약간 숙인 그는 잠잠히 그의 책상으로 와서 머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어디 아프시오."

음악선생의 헤설핀 음성이다. 문득 최 교장의 얼굴이 보이고, 이리 몸이 허약해지기까지 아무 단안을 짓지 못한 자신이 슬프다 못해서 일종의 분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저들은 온갖 야비한 짓을 그에게 감행하지 않았나. 그는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이 핑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을 주어 가지고 교장실로 건너갔다. 최 교장은 방금 퇴근할 준비를 차리다가 K선생을 보고 우뚝 선다. 그의 수염은 먹같이 짙은 빛이고, 입술이 함박만큼 커 보인다.

"무슨 의논할 일이 생겼소?"

누런 안경알에 누런 웃음이 핑그르르 돌아간다.

"네, 있습니다."

숨이 막힐 듯 K선생의 가슴은 벅차다. 푸른 테이블에 놓인 투실한 최 교장의 손은 그의 얼굴과 달리 희고, 젊은이의 손같이 근육이 팽팽하였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최 교장이 빤히 건너다본다. 안경 뒤에 번들거리는 눈은 몹시도 깊어 보인다.

"어제도 댁에 갔는데 안 계셔서……"

"응 그래 무슨 일이오?"

최 교장은 바쁜 듯이 묻는다. K선생은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숨을 가만히 들여 쉬고 나서,

"저 강연은 못하겠습니다. 몸이 아파서."

"아퍼? 어디가 아푸?"

최 교장은 의외란 듯이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언짢은 기색을 띄운다. 분화같이 터지려는 그의 입술을 지긋이 깨무니, 머리가 띵해지면서 귀가 우썩우썩 울기 시작한다. 극도에 달했던 분이 이제사 툭 꺾여 슬픔으로 흐르려고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 속, 촛불이 노란빛을 퍼치고 있던 흙내 가득한 그 속에서 밤을 낮 삼아 일하다가 피곤에 지쳐 잠깐 눈을 감았다가 놀라 깨니

"어서 좀 쉬우."

빙긋이 웃으며 저고리를 벗어 그의 어깨에 걸쳐주던 저. 벽에서 떨어진 얼굴의 흙보라를 조심히 씻어주던 어머니의 손처럼 따뜻하던 저 손!

생사를 헤아리지 않고 일하던 그때로부터 불과 십년 남짓한 오늘에 저다지도 변하였는가 하니 와락 달려 울고 싶어졌던 것이다. 물론 최 교장이 기어코 그에게 강연을 시키려는, 한 가닥의 이유를 그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그의 이러한 고민까지 모른 체하려는 저의 박절한 태도가, 뜻을 같이한 벗이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리가 자린지라 그런지도 모르지, 속 깊은 저라 저리 내색을 않는지 모르지, 보다도 저의 지나친 용심 때문이니 설마한들 그 양심까지야……그렇다면 얼마든지 양보할 각오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 그래서 교무주임의 지위도 순순히 내놓은 것이 아니냐. 부딪힐 곳을 잃어버린 K선생은 스스로 고민을 어루만져 자위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그만큼 외롭고 적적함이 그의 목덜미를 꽉 누르는 것이다.

"강연을 못하겠다…… 헐 수 없지."

최 교장은 넌지시 웃는 것이다. 머리를 치는 듯한 저 웃음! 그러나 K선생은 진정을 고하여 그를 설복시키고 싶은 충동이 불길같이 내달린다. 눈물이 핑 돌았다. 최 교장의 얼굴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목을 끌어매어 호흡조차 임의로 할 수 없는 듯한 이 현실에서 그나마 뜻을 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들이거니, 조그만 이해문제 때문에 이렇게 소홀이 할 것이랴!

"글세, 선생님이나 저야 차마 그럴 수야 있습니까. 저들이 기어코 내 보내라니, 양심의 고통이 없을 선생들 중에서 한분 택하여 내세우는 것이 수수하지 않습니까. 저라야 합니다!"

"내 오직 잘 알고 처리하겠지 그러우. 금 선생은 그 말로 실패니."

최 교장은 정색을 하면서 벌떡 일어난다.

"선생님!"

K선생은 최 교장을 붙잡을 듯이 일어나며 불렀다. 최 교장은 스틱을 집어들면서,

"그만해도 다 알았소 그럼 다른 선생을 내보내 봅시다."

말을 마친 최 교장은 문을 쾅 열고 나가버린다. 이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K선생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들었다. 그는 테이블에 방울진 눈물을 훔쳐 내리면서 최 교장과의 사소한 감정은 풀어버리리라,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가 교장실에서 나오니 마차가 문전에서 기다리므로, 교원들에게 아픈 뜻을 고하고 마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마음 쑤었소?"

젖 비린 내 확 피우는 아내를 쳐다보고 K선생은 펴 놓은 자리에 누워버렸다. 가시방석 같은 이 자리가 이다지도 평안할까, 그는 맥을 탁 풀어 해치고 물끄러미 천정을 바라본다. 양심을 꺾는 일이란 그렇게도 힘든 것일까, 그는 다시금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미음을 쑤느라 부산하고 어린애들의 울음소리가 쌍으로 일어난다.

"이리 온, 경희야."

그는 샛문을 방싯이 열고 불렀다. 아내는 경희의 손을 이끌어 보내며 근심스레 쳐다본다. 솥김에 아내의 얼굴은 뽀해 보이나, 그의 까만 머리카락은 우아해 보인다. 눈물을 쪼르르 흘린 경희가 그의 팔에 안기므로 샛문을 닫고 꼭 안았다. 고소한 냄새가 경희의 머리카락에서 오르고 육친의 정이 가슴에 혼혼히 느껴지는 것이다. 문득 내 꼴이 저렇게 최 교장에게 비쳐졌는지 모르지 하는 생각이 경희의 우는 얼굴에서 뚝 떨어진다. 최 교장 앞에 어린애 같은 자신이 한껏 보잘것없었다. 그는 경희를 안은 채 누우니 부엌에서 나무 꺾이는 소리 물 다루는 소리가 뻔하다.

언제나 느끼지마는 그에게는 이렇다 할 만한 장점이 없다. 억지로 들자면 거짓말 못하는 것, 한번 옳다고 보면 끝까지 믿으려는 것, 이것이 처세로는 가장 큰 단점이 아닐 수가 없다. 최 교장과 같이 욕심이라도 컸으면, 하고 때로는 생각도 나나 그것은 잠깐이고 이것이 그의 비위에 거슬리고 교장과의 의견충돌이 여기에 기인된다.

가다가 학교에서 쓰렴직한 물건이 집에 생기면 잡담 제하고 학교에 가져가게 되고, 고로 아내는 불만을 품을 뿐만 아니라 쌈까지 하려고 드나, 그는 못 들은 체 피해버린다. 제각기 제 것을 만들려고 눈이 뻘개서 날치는 직원들 틈에 끼어, 이러한 자신을 발견할 때 혹시는 가련할 만큼 위로움을 느끼나, 그러나 다만 하나의 장점이라 스스로 자위한다. 히자만 동료들은 속없는 사내라 치는 것 같다. 지금은 사회조직 내에서는 그럴는지도 모른다고 쓸쓸히 깨닫곤 한다. 이래서 한 가지의 장점조차 뿌리깊게 붙들지 못한 그였던 것이다.

문이 열리며, 김이 뭉기뭉기 흐르는 미움 그릇을 든 아내가 올라온다. 이때 자는가 싶던 경희가 냉큼 일어나 아내에게 매어달린다. 그 반들반들한 눈이란 꼭 자신의 눈을 닮았다고 본다. 아내의 긴 치맛자락에서 싫지 않은 음식내가 소르르 흘러내린다. 요새 그가 볶아댄 탓일까, 아내의 눈허리에 파란 힘줄이 드러났고, 눈까풀이 푹 졌다. 그는 미음그릇을 받으면서 졸한 사내를 만나 아내가 가엾어 보였다.

"까불지 말어."

아내는 경희의 손을 끌어 앉힌 담에

"어서 좀 마셔요."

눈썹 끝에 걱정이 포르르 깃들이는 것이다. 아침 아내가 받들어주던 미음그릇을 탁 펴서 왱강 엎질러놓던 것을 생각하며 K선생은 미음을 쭉 마셨다.

"한 그릇 더 주. 그러고 저녁 먹겠으니 얼른 밥 짓소. 숙주나물 사온 것 있겠지. 그놈 무치고 해서."

지나치게 큰 듯한 아내의 눈에 맑은 바람결과 같은 웃음이 서늘히 일어난다. 아내는 미음그릇을 받아들고 나간다. 버선코를 뚫고 나온 발가락이 무척 사랑스럽다. 경희도 쪼르르 미쳐나가면서 엄마 엄마 잘게 부른다.

"여보, 검둥이 왔수."

아내의 말에 K선생은 공중 일어나, 자리를 밀어던지고 문을 탁 열어 제치니, 씽 하고 비린내가 푹 피우면서 검둥이가 달려 들어온다. 초가을의 산뜻한 공기를 가오루내같이 털 끝에 피우면서, 그 긴 주둥이를 내밀어 닥치는 대로 핥아 넘긴다.

"아까 아펐니, 검둥아."

K선생은 검둥의 허리를 어우러져 안고 돌려다보았다. 사람 같으면 원망을 품고 발길하지 않으련만 이리 다정히 핥고 있다. 긴 눈썹과 수염끝에서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듯하고, 무슨 사색에 잠긴 듯한 그 긴 눈이며 턱없이 나온 주둥이가 여간 그의 맘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얼굴 전체가 둥글어 드러난 특징이 없는 자신의 얼굴에 비하여 훨씬 비범하다고 본다. 믿는 고장의 청에 어려워 한번 승낙한 것이다. 이리 검둥이를 내어놓았지만 아직도 아쉬운 맘에 가슴 한쪽이 이다지도 짤짤하다. 그럴 것이 강아지적부터 재주를 배워주기에 온갖 힘이 다 들었고 그래서 지금엔 고기, 담배 사오고 편지 전하는 것 등은 엉뚱나게 하였던 것이다.

검둥이가 최 교장네 뜰에서 쇠줄에 매어 있을 적 어쩌다가 K선생이 그 앞을 지나만 가도, 검둥이는 펄펄 뛰고 사람같이 노상 어이어이 울어서 K 선생은 흉격이 막히어 갈 길을 잊고 우두커니 섰곤 했다. 그리고 그의 가벼운 언행에 모멸을 품게스리 분하여지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꿈에도 달라고 한 최 교장을 어떻다고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둬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뭘 주어서 자꾸만 개가 간다고 저번 교장댁이 좋지 않은 기색을 하던데요."

아내는 키승키승 보채는 경선이를 떨쳐 업으면서 말하였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경선의 넓은 이마는 아내의 거을 똑 땄다고 본다.

"늘 오니까, 그럴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오늘만은 줘야겠어. 아까 이놈이 교실에 들어왔단말야. 그런 걸 막 때려줬지."

그의 말에 검둥이의 심장 뛰는 것이 후둑후둑 느껴진다.

"고실에요? 저거 봐!"

아네는 놀라 과자봉지를 갖다가 입에 물려준다. 검둥이는 턱 누워서 과자를 우쩍우쩍 씹는다. 날카로운 이가 한뼘이나 되어 보인다.

안 가겠다는 검둥이를 때려 보낸 뒤 K선생은 잠든 경선이를 앞에 누이고 자리에 눴다. 호저므시 졸음이 오려고 한다. '직접 나가 싸우지 못한들 그 어찌 양심에 없는 일이야.' 코가 맥맥히 막히는 듯해서 눈을 번쩍 떴다. 이마에 땀이 버쩍 내솟았다. 어제 그제 밤새워 고민하던 것이 아직도 머리에 꽉 발혀 이리 되풀이하게 된 것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고 입술이 촐촐 마른다. 그는 아내에게 냉수를 가져오라 하여 마신 뒤 멍하니 천정을 노려본다. 방안은 연기 같은 어둠에 푹 잠기고, 오직 앞문 위쪽이 석양볕을 달처럼 띄우고 발가스름할 뿐이다. 간혹 그릇 부시는 소리가 재그륵거리고 경선의 숨소리가 아늑히 흐른다.

교장이 그쯤 말했으니까 다른 이를 나가게 하겠지, 오 선생을 내보낼텐가, 내일만 지나면 되겠지, 그러나 이번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그들은 좀 주목할는지 모르지, 내가 교장이 나가서야 만족해 할 터인데, 뭐 별일이야 있겠냐, 대표로 나가는 이가 있는데……

요새 직원들의 눈치를 보나 일반의 여론을 들으나 교장보다 자기가 더 저게 주목을 받고 있음을 뻔히 안다. 그래서 학교로서 받는 타격이 적지않게 있음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까닭에 학교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으나, 우선 당장에 생활문제가 막연하고 이때까지 붙들어온 것을 쉽사리 내어놓기란 그리 용이한 것이 아니다. 그저 눈 딱 감고 있노라니 이해 없는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믿던 교장까지도 완연히 내색을 하는 것이다.

칠년 전 서대문 형무소에 나온 K선생은 어떤 친구의 소개로 이곳 X학교 교원으로 오게 되었다. 때는 제2간도출병의 종소리가 간도 천지를 울렸으니, 오래 있던 교원들도 슬금슬금 꼬리를 빼어 달아나버리고 모든 일에 생소한 K선생 혼자 오뚝 남게 되었다. 날마다 검거사건이 일어 학생들은 잡혀가고 혹은 무서워 도망가고 나중엔 십여 명 남짓하였다. 하루에 한 끼 먹기도 바쁜 수임을 가지고 K 선생은 완강히 버티어 2, 3년을 훌씬 지나버린 것이다. 시국의 안정을 따라 차차 학생수가 많아졌고 여기에 이르러 교원들도 늘게 되었으니, 지금의 최 교장도 그때 K선생이 불러들였고 또한 교장으로 올려 세웠으며 이래 꾸준히 운전시켜 온 그였다.

신학기마다 퇴락한 교사를 수리해 오는 것이 칠년되는 오늘에야 겨우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별소를 짓고 회벽을 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현관을 짓고 운동장을 넓히고 올해는 울타리에 정문까지 버젓이 세우게 된 것이다. K선생도 올부터야 비로소 지까다비를 벗이 던지고 고꾸라양복을 집어 치운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싹터 오던 최 교장의 욕심은 시국을 타서 점점 드러나게 되었으니, 금년부터는 버쩍 노골화하였고, 여기에 따라 학생들도 두 패로 나누인 것이다. K선생은 하나 둘 최 교장에게 양보하였다. 물론 그의 약한 성격상으로 오는 결론이겠지만은 보다도 이러한 시국에 앉아 기운을 뿌리채 잃고만 것이다.

저녁을 먹은 뒤 K선생은 최 교장댁으로 향하였다. 다시 한번 그의 눈치를 보고자 함이다. 아까 확답으로 겨우 안심은 했으나 그러나 분명히 그 속을 알지 못하여 한 번 더 타진해 보고자 함이라.

초가을의 맑은 공기가 냉수같이 산뜻하나, 뿌듯한 머리 속에까지 그 방향이 스며들지 목하고 피부에만 알알히 스칠 뿐이다. 바라보니 초승달이 무연한 벌판 위에서 혼자 갈 길을 잊은 듯 가도 오도 못하고 물 듯한 표정이다. 밥 한술 뜬 것이 목에 꼭 매어 달려, 해란강변에나 나가서 한참 돌아갈까 했으나 몸이 어슬하여 그냥 돌아섰다. 학교 앞을 지나다가 그도 모르느 새에 발길은 학교로 들어가 버린다. 학교 정문에 손을 대었다 .산뜻한 감촉, 비린내 몰싹 피우는 페인트내. 대견한 맘에 슬슬 어루만졌다. 손에 열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두커니 섰다. 칠년을 내리 이 정문을 짓지 못해서 속이 썩을 대로 썩은 셈이다. 어디 가면 큰 문만 바라다 뵈고 우리 학교 정문은 이리이리 세워야겠다고, 정신없이 계획하던 것이 두어달 전에 바로 여기에 실현된 것이다. 안부를 대어 정문을 쌓을 때 K선생은 시간마다 뛰어나와서 잔소리를 하고 지시하므로 중국인이 하도 귀찮아서

"나 이런 일 못하겠어. 우리 사람이 일이 많이 했어두 첨 보는 사람이어."

하고 머리를 내흔들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확실히 나는 남아의 기질이 적어! 물론 시국의 탓이지만 이러한 약점으로 인해 힘들여 만든 이 학교조차 빼앗기게 되는게 싶어진 것이다. 밥 한 줄 너쩍 삭이지 못하고 깔닥깔닥하는 보잘것없는 자신을 지금 내려다본다. 그는 정문에 얼굴을 대려다가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숙직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붉은 실타래같이 찢기어지고, 휘엉청 넓은 교정이 검푸른 파도같이 움씰움씰 흔들리는 것 같다.

어둠 속에 뚜렷이 솟아 있는 저 이층 교사! 자신의 손때가 아니 묻은 곳이 그 어디랴.

오년 전 어느 봄날 구질구질히 비가 내린다. K선생이 학교에 오니 교실이란 교실에는 비가 새어 지질했고 학생들은 복도 한구석에 몰려 서서 우울해 잇다. K선생은 한참 열변을 토하여 그 우울한 학생들의 기분을 일소시키고, 마침 비가 뜸해진지라 지붕을 손질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니 학생들은 기운이 나서 발을 벗고 소매를 걷어붙인 담에 분할하여 맡은 임무를 당하였다.

―――──흙이 파지고 일변 개어지고, 긴 사다리가 처마 끝에 놓이고, 학생들이 열을 지어 올라서고, K선생과 머리 큰 학생들은 까만 지붕에 올라 섰고, 어린 학생들은 메주덩이 같은 흙덩이를 나르느라 뛰어가고 뛰어오고───

K선생은 기와 틈에 발을 붙이고 연달아 올라오는 흙덩이를 받아 기와틈에 끼우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일을 시킨다. 재기 흐르는 그 눈에 열이 호독호독 뛰고, 평생 누울 줄 모르는 머리카락은 산산히 흩어졌고 잠시도 닫힐 사이가 없이 입을 놀린다. 선생은 한 분이나 여러 분같이 생각되고 학생들의 일의 능률은 놀랄만큼 진행되어 세시나 남짓해서 질펀하게 기와를 다시 쌓고 비 속에서 교가를 부르며 운동장을 뛰던 그 시절.

지금은 양철지붕에 달빛이 굴러 쇳소리 징징 소리 날 듯 웅장한 태도다. 그는 안심의 한숨을 푹 쉬었다. 남은 아무러하더라도 그래도 저만큼 한 사업을 이루어놨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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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