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같이 따스하고 털자리같이 푸근한 기분을 주던 이른 겨울 어떤 날 오후이었다. 일주일 전에 우리 집에서 떠나간 어멈의 엽서를 받았다.

이날 오후에 사에서 나오니 문간에 배달부가 금방 뿌리고 간 듯한 편지 석 장이 놓였는데 두 장은 봉서이었고 한 장은 엽서이었다. 봉서 중 한 장은 동경 있는 어떤 친구의 글씨였고 한 장은 내 손을 거쳐서 어떤 친구에게 전하라는 가서(家書)이었다. 나머지 엽서 한 장은 내 눈에 대단히 서투른 글씨였다. 수인란에 ‘경성 화동 백 번지 박춘식씨(京城花洞 百番地朴春植氏)’이라고 내 이름과 주소 쓴 것을 보아서는 내게 온 것이 분명한데 끝이 무딘 모필에 잘 갈지도 않은 수묵을 찍어서 겨우 성자(成字)한 글씨는 보도록 새 서툴었다. 나, 이 순간 묵은 기억을 밟다가 문득 머리를 지나는 어떤 생각에 나로도 알 수 없는 냉소와 같이 엷은 불쾌한 감정을 느끼면서 발신인란을 다시 자세 보았다. 그것은 벌써 일 년이나 끌어 오면서 한달에 한두 장씨 받는 어떤 빚장이의 독촉 엽서 글씨가 지금 이 엽서 글씨와 같이 서투른 솜씨인 까닭이었다.

‘함북 ××읍내 김씨 방 홍성녀(咸北 ××邑內 金氏方洪姓女)’ 이것이 발신인의 주소와 성명이었다. 이것을 본 나는 즉각적으로 그 누구에게서 온 편지인 것을 느끼는 동시에, 이 편지와는 사촌 격도 안 되는 편지를 생각하고 불쾌를 느끼면서 혼자 말초신경 쓰던 것을 내 스스로 입술을 살근히 물면서 찬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시골 간 어멈이 편지했구려!”

나는 좀 반가운 음성으로 곁에 선 아내를 보면서 뇌고 다시 엽서에 눈을 주었다. 내 손에 쥐인 엽서는 어느새 뒤집히었었다.

“응, 어멈이 편지했소!”

아내의 목소리는 의외의 사람에게서 의외의 반가운 소식이나 받은 듯이 기쁘게 가늘게 떨렸다.나는 그 말 대답은 하지 않고 편지 사연을 읽었다. 아내도 부드러운 시선을 고요히 편지에 던졌다. 이래서 두 사람의 네 눈은 소리 없이 편지를 읽었다. 사연은 극히 간단하였다.

‘서방님, 기체 안녕하십니까. 아씨도 안녕하신지요. 어린 애기는 소녀가 떠날 때에 몹시 앓더니 지금은 다 나았는지 알고자 합니다. 소녀는 서방님이 지도하신 덕택으로 무사히 와서 잘 있읍니다. 이곳 댁도 다 안녕하십니다. 소녀의 손으로 쓰지 못하는 글이되와 이렇게 문안이 늦었사오니 용서하옵시고 내내 서방님 내외분 기체 안강하옵소서. 끝으로 대단 황송하오나 어린 애기의 병이 어떤지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그 사연의 전부이었다 . 역시 무렁 붓에 수묵을 찍어 쓴 서투른 글씨였다. 그것도 잘게 쓰느라고 어떤 자는 획과 획이 어울어져서 ‘사’자인 지 ‘자’자인지 알기 어려운 자도 있었다. 토는 물론 틀린 것이 많았다.

이것을 읽은 내 가슴에는 엷은 애수의 안개 같은 구름이 가볍게 돌았다. 거칠은 겨울이언만 이날은 아침부터 봄같이 따스해서 설면자(雪綿子) 같은 기분이 사람의 혈관을 찌르는 탓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 엽서 한 장이 내게 던지는 기분은 부드럽고 가볍고 불쾌가 없는 엷은 동정의 애수이었다.

그는 나와 무슨 인연이 있었던가? 그는 ‘어멈,’ 나는 ‘상전’으로 이생에서 다만 며칠이나마 부리고 부리지 않으면 안 될 무슨 업원이 전생에 얽히었던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지어 놓고 그에 대한 찬사랄까 그에 대한 허물이랄까를 업원이니 인연이니 하여 전생 후생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보낸 뒤에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은 전부가 어멈의 이야기를 두어 번 하였으나, 그것은 한 지나치는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에게서 편지가 오리라고는 물론 꿈도 꾸지 않았던 바이다. 그렇던 어멈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와 나와 아주 관계를 끊어 버린 오늘까지도 그는 역시 내게 보내는 글을 상전에게 올리는 글이나 마찬가지로 황송스럽게 공손히 썼다, 더구나 어린것의 병을 끝까지 물은 것을 읽을 때 또 읽고 나서 생각하는 때 내 가슴에 피어오르던 엷은 안개는 맑은 물에 떨어진 쌀뜨물같이 점점 무게를 더하여 피부에 스며들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어멈에게 대해서 일종의 동정적 측은한 정을 느꼈다. 호랑이도 제 새끼를 귀엽다면 물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나도 내 아들을 귀여워하고 내 몸을 상전같이 받들어 주는 까닭에 미웁던 어멈이 불시로 고와지고 측은히 여겨지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이때의 내 심리를 ─중산 계급에서 방황하는 내 심리를 예리한 해부도로써 쪼갠다면 그 속에는 자기 찬사에 대한 기쁨 또는 그 기쁨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찬사 드린 이에게 보내어지는 동정이 다소 있을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지금의 내 맘을 지배하는 바 그 동정, 그 측은은 그의 질소한 성격, 순박한 마음에 대한 그것이요 그 성격이 그 마음, 그 성격과는 아주 반대되는 환경의 거칠은 물결에 찢기고 찢겨서 아름답고 부드러운 그 성격의 올올은 나날이 거칠어 가건만 그것을 의식치 못하고 오히려 모든 것을 믿고 받드는 어린 양 같은 철없는 어멈에 대해서 사람으로서 누구나 가지게 되는 동정이요 측은지심일 것이다. 만일 그와 처지를 같이한 이가 이 모든 것을 보았다면 그에게는 동정과 측은 외에 계급적 의분까지 끓었을 것이다.

“서방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에게 자리를 잡아 주고 차에서 뛰어내리는 내 등뒤에서 마지막 지르는 그의 떨리던 가는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것 같다. 그 서투른 글씨조차 순박한 그가 조심조심 쓴 것같이 느껴져서 깨끗한 시골 처녀의 글씨에서 받은 듯한 따뜻하고 부드럽고 경건한 감촉이 내 손가락 끝을 통해서 내 온몸에 미약한 전력같이 퍼지었다.

나는 저녁 연기가 어리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황혼 빛이 내리덮이는 마루에 걸터앉은 채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나간 날의 기억을 한 가지 두 가지 고요한 속에서 뒤졌다.


그 어멈이 우리 집에서 떠나간 것은 바로 전 주일 금요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어멈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금년 늦은 가을부터이었다. 처음 혼인하고 두 양주만 살 때에는 어멈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생각한대야 그때는 지금보다 수입이 적은 때이라 소용도 없는 일이지만, 예산이 넉넉하다 하더라도 어멈이란 듣도 보도 못하던 곳에서 잔뼈가 굵은 나로서는 어멈부리기가 거북스러웠다. 내게 아무러한 의식이 없더라도 이십여 년이나 무젖은 인습과 관념을 벗으려면 힘이 들 터인데, 나는 행이든지 불행이든지 자연주의의 개인 사상에 감염이 되어서 내 팔과 내 다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은 남의 힘을 빌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도 어느새 나의 한 철학이 되어서 내 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드러내놓고 말이지 나는 오늘까지도 제가 씻은 세숫물까지 남의 손을 빌어서 하수구 구멍에 버리려는 귀족적 자제들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내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으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의 행동과 언어에서 그러한 귀족적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내가 맡는다는 것보다도 맡아진다. 이 냄새가 내 코에 맡아지는 그 순간 나는 내 자신까지 얄미웁게 생각된다. 이렇게 나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는 여지없이 보면서도 주관적으로는 나로도 모르게 삼십 년 가까이 무젖어 오는 내 계급의 인습과 관념에 끌린다. 내가 처음 어멈을 부리지 않은 것은 이러한 내 생활의 모순과 갈등도 그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철저치는 못하나마…….

또 어떤 때에는 어멈을 부려 볼까 하는 생각이 나다가도 주인집의 궂은 소리 좋은 소리를 함부로 밖에 내는 그네의 입이 내외 생활의 저해물같이 느껴져서 그만 주춤해 버리고 만 적도 많다. 제 허물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내외간 살림에 무슨 비밀이 있으랴 생각하겠지만, 밥은 굶어도 양복은 입어야 하고 의복을 전당에 넣어서라도 극장의 위층을 잡고 앉아야 궁둥이가 편한 듯이 실상은 편한 것도 ( 아니지만) 거드름피우는 빤질빤질한 우리네 생활 속에 어찌 추태가 없기를 보증하랴. 이런 일 저런 일에 거리껴서 어멈을 부리지 않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 내외는 때로는 어멈 아범이 되어서 아범이 불을 때면 어멈이 밥을 안치었고 때로는 상전이 되어 유난히 빛나는 전깃불 아래 밥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젓가락질을 하였다. 이렇게 일 년 동안이나 끌어오는 때 도리어 그 속에서 일종의 쾌락을 느꼈다.

“여보, 인제 겨울도 되고 김장도 해야 할 텐데 우리도 어멈 하나 부려 볼까?”

이것은 작년 늦은 가을 어떤 날 내가 아내를 보고 한 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름보다 바빠서 조금도 거들어 주지 못하고 빨래, 밥, 바느질, 다듬이, 심지어 쌀 팔아들이는 것까지 아내가 도맡아 하게 되니 약한 몸에 병이나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아내의 동의만 있으면 어멈 하나 둘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고, 설령 못 두게 된 대도 아씨에게 대한 서방님의 위로로 그저 있을 수 없어서 한 말이었다.

“별말씀 다 하시우, 그럭저럭 지내지! 그런 돈 있으면 나 주시오, 따로 쓰게! 지금 바쁘지도 않은데…….”

아내의 대답은 아주 그럴 듯하였다. 나는 정색으로 하는 이 대답을 믿었다. 어느 때나 변치 않으리라고…….

그러나 모든 결심과 믿음은 머리를 숙이고야 말았다. 믿기가 어렵고 안 믿기도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몽글린다면 강철 덩어리보다 더 굳세게 몽글리지만, 한 번 풀리기 시작하면 계집애의 정조와 같은 것이다. 계집애의 정조란 처음 헐리기 어려운 것이지 한번 헐리면 뒤가 물러지는 것이다.

더구나 모든 생활 조건이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야 마는 데야 어쩌랴. 처음은 어멈이라면 누대 업원을 등에 짊어진 요마나 같이 싫어하던 우리의 마음은 어떤 아른한, 확실히 무어라고 집어서 말 못 할 기분과 또 바쁜 주위에 정복되고 말았다. 작년 겨울부터 금년 봄까지 우리 집에는 식구가 셋이나 더 불었다. 한 분은 팔을 못 쓰는 늙은이요, 하나는 중학교 다니는 계집애요, 또 하나는 남산같이 불어올랐던 아내의 배가 김빠진 풋볼같이 스러지는 때에 빽빽 울고 나타난 ‘발가숭이’였다. 이렇게 되는 식소사번으로 손이 그립게 되었다. 그런 대로 찌긋찌긋 참다가 금년 가을부터 어멈을 두자는 어머니의 동의와 아내의 재청에 나도 이의가 없었다.


결의가 끝난 이튿날부터 아내는 그물을 늘이고 어멈을 골랐다.

“너무 젊으면 까불고 얄밉고 너무 늙으면 몸을 아끼고 부리기가 곤란하니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늙은이가 좋을 것이다.”

이것이 이웃집 여편네들 이야기인 동시에 아내의 어멈 고르는 표준이었다.

우리 일갓집에 사람 “ 하나 있는데 음식질도 얌전하고 사람도 무던하죠.

한 번 불러다 보시죠.”

하는 이웃집 아씨, 혹은 침모, 혹은 어멈의 구두 공천이 있는 때마다 보기를 원하면 그날 저녁 때나 그 이튿날 아침 때쯤 해서 어멈 당선에 응모자들은 소개인에게 끌려서 그 초췌한 모양을 우리 집 문간에 나타낸다. 모두 뿌연 머리에 땟국이 흐르는 치마저고리였다. 거개 법정에 선 죄수나 시험장에 들은 어린 학생과 같이 장차 내릴 심판을 아심아심 죄여 기다리는 듯이 불안한…… 그리고 죄송스러우면서도 자기를 ‘써 줍시사’하는 듯한 으슥한 구름이 그 낯에 흐르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시 같은 상전의 눈앞에서 닳을 대로 닳은 것은 문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부엌, 안방을 슬금슬금 디밀어보며, 콧잔등에 파리나 기어오르는 듯이 듣기에도 간지러울 만큼 주인 아씨 칭찬, 애기 칭찬에다가 자화자찬까지 늘어놓으면서 천덕스러운 웃음을 아첨 비슷이 벙긋벙긋한다. 좀 수줍은 편은 명령 내리기만 기다리고 부끄러운지 몸을 가누지 못해 애쓰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또 어떤 이는 주인 아씨나 서방님이 뜰로 내려가면 마루 아래 섰다가도 가장 영리한 체 신발을 돌려놓기도 하고 가까이 끄집어 오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는 때마다 이마를 찌푸리지 아니치 못하였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흔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나는 저리다고 할까 아프다고 할까 무어라 꼭 집어 형용할 수 없는 쓰라림이 폐부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몰인격적이요, 굴종적이요, 아유적인 그네의 행동, 언어, 표정, 웃음은 그네 외의 다른 사람으로서는 누가 보든지 상스럽고 얄밉게 보일 것이다. 하나 그네의 자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도리어 그네의 실낱 같은 목숨의 줄을 이어가는 유일한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네의 무기를 상스럽게 보는 것은 우리의 웃계급의 사람들이 우리의 무기를 비열히 보는 것이나 마찬가질 것이다. 나는 때때로 이 구구한 목숨을 보전하려고 도야지 목덜미같이 피둥피둥한 목덜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음에 없는 웃음을 웃고 마음에 없는 붓을 휘두르는 우리들의 그림자를 늘 본다. 그 속에는 내 자신의 그림자도 보이거니와 나는 그런 것을 느끼는 때마다 스스로 부끄럼과 분노에 끓어오르는 피를 억제치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 분노와 치욕을 씻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까지 얄밉고 더럽다. 또 그러면서도 찌긋찌긋 의연히 그러한 무기를 부려 마지 않듯이 그네들도 그 행동, 언어, 표정이 그네의 ‘삶’을 옹호하는 무기일 것이다. 그 무기는 그네가 의식적으로 금시에 배운 것이 아니라 그 계급의 환경이 자연 그네를 그렇게 지배하였을 것이다 . 그밖에 다른 도리는 그네의 환경이 허락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우리의 웃계급의 눈 밖에 나듯이 그네는 우리의 눈 밖에 났다. 그것은 우리나 그네나 다 같이 비열한 놈들이라는 조건하에서…….

생각하면 같은 처지언만 어찌하여 그네와 우리 사이에는 금이 그어졌는가.

우리는 어찌하여 그네를 괄시하는가. 오히려 우리네는 지식 계급이라는 간판 아래서 갖은 화장과 장식으로써 세상을 속이지만 그네들은 표리를 꼭 같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보담도 귀할는지 모른다. 나는 이러한 미적지근한 검은 구름에 머리를 쓰고 가슴을 만지면서도 모아 들고나는 그 꼴을 그대로 보았다. 보지 않으면 금시로 어찌 하랴? 이 금시로 어찌 하랴 하는 것도 우리네의 일종 변명이거니 느끼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된 지 사흘 뒤였다.

“오늘도 셋이나 왔겠지!”

요 이삼 일간은 저녁상을 받는 때나 잠자리에 든 때에나 으례 어멈 응모의 경과 보고가 아내의 입을 거쳐서 내 귀에 들어온다. 이 날도 사에서 늦게 나와 저녁상을 받았는데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여보, 그 어디 귀찮아 견디겠읍디까?”

나는 밥을 씹으면서 괴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낼부터는 오지 말라구 했어요. 오면 그저나 가오? 밥까지 얻어먹고 가려고 드니…….”

아내는 종알거렸다.

“그게사 배 고프면 체면이 있니! 자식도 팔아먹는데……. 그런데 어멈 그릇을 하자는 게 어쩐 게 그리도 많으냐?”

경험 없는 며느리의 철모르는 말을 나무람 비슷이 사투리섞인 말로 뇌던 어머니의 말은 끝에 가서 모여드는 사람의 수효가 뜻밖이라는 탄식으로 마치었다.

‘어멈’이란 어떤 것인지 듣도 보도 못하고 사람을 부리자면 구하고 구해야 며칠에 겨우 하나 구하나 마나 하고 부리면 적어도 한달에 입 먹이고 옷 입히고 돈 십 원 주어야 하는, 시골서 육십 평생을 보낸 어머니가 입이나 겨우 풀칠을 시키고 한 달에 삼 원이나 사 원 준다는데 하루에도 이삼 명은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도 실직이란 게을러서 되는 줄로만 아는 그(어머니)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변을 처음 보시니 그러세요…….”

“흥!”

아내의 말에 나도 코웃음을 쳤다.

“야 불쌍하더라. 행여나 해서 왔다가도 이담에 쓰게 되면 알릴 테니 가 있으라구 하면 서글퍼하구 나가는 것이 세연한 데(꼭 그렇다는 형용사) …….”

어머니는 물었던 장죽을 입술에 대고 낮의 광경이 보인다는 듯이 말하였다. 내 눈앞에는 그 스러지지 않는 그림자들이 또 떠올랐다. 이제나 저제나 죄이고 죄이는 가슴을 남몰래 마음의 손으로 내리쓸면서 아내의 입술을 바라보다가도, “가서 있수! 쓰게 되면 일후에 알릴께” 하는 아내의 소리를 어떻게 들었을까. 물론 아내는 부드럽게 말하였으리라. 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자 흙빛이 되어 머리를 떨어뜨리고 천근 철퇴같이 들렸을 것이다. 어느 때나 한때는, 꼭 한때는 그 철퇴에 대항할 힘이 그네의 혈관에 흐르련만 지금의 그네들은 어찌 하는 수 없다. 나는 그런 말을 감히 한 아내가 미웠다.

아내의 그 입술을─내가 사랑하여 키스를 주던 그 입술을 이 순간의 나의 감정은 찢고 싶었다. 그 입술은 내 눈앞에 험상한 탄환을 뿜는 총 아가리처럼 떠오른 까닭이었다. 나는 나로도 모를 기분에 싸여 급한 호흡에 온몸을 떨면서 그 환상을 노렸다.

“여보 무엇을 그렇게 보우 응?”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환상의 꿈을 번쩍 깨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흐흥.”

나는 끝을 웃음으로 막으면서 다시 젓가락질을 하였다. 얼없는 내 상상이 나로도 우스웠다.

“왜 그러시우 응?”

아내의 목소리는 응석이랄까 원망이랄까 그 비슷하게 떨렸다. 그의 낯에는 무슨 불안을 예감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표정이 흘렀다.

“왜 누가 뭐랬소? 허허.”

나는 역시 밥을 먹으면서 웃었다. 어린애같이 철없는 아내의 입술을 그렇게 상상한 것이 아내에게 대해서 미안하였다.

“왜 눈을 크게 뜨고 숨을 그렇게 쉬시우? 오늘은 약주도 안 잡수셨는데 왜 그러시우 응?”

아내는 지난 봄일을 연상하였나 보다. 나는 지난 봄 어떤 연회에 갔다가 술을 양에 넘도록 마시고 집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머리가 헹하고 가슴이 울렁거려서 인력거꾼에게 부축이 되어 방에 들어와 앉은 채 두 눈을 성난 놈처럼 치떠서 아내를 뚫어지게 보면서 씨근덕씨근덕 숨을 괴롭게 쉬었더니, 어린 아내는 놀라고 겁나서

“여보, 왜 이러시우 응? 여보! 글쎄 왜 이러시우?”

하고 울 듯이 날뛰었다. 지금 아내는 그 생각을 하였는가? 나도 그 일이 생각나서 복받치는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왜 또 봄 모양을 할까 봐 겁나요? 하하하.”

나는 밥상을 물리고 나 앉아 담배를 붙여 연기를 뿜으면서 커다랗게 웃었다.

“호호호─.”

아내도 웃었다.

잠깐 사이 웃음이 지나간 방안은 고요하였다.

깊어 가는 겨울 밤 북악산을 스쳐 내리는 찬바람은 북창을 처량히 치고 지나갔다.


사흘 뒤였다.

나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떤 친구들에게 붙잡혀서 어떤 요리집으로 갔었다. 휘황한 전등불 아래 분내 나는 기생의 웃음 속에서 술이 얼근한 나는 요리집 문을 나서면서 새벽 세시 치는 소리를 들었다. 쌀쌀한 하늘 서편에 기울어진 그믐달은 차고 푸른 빛을 새벽 꿈에 묻힌 쓸쓸한 만호장안에 던지었다. 나는 호화로운 꿈 뒤에 밀려드는 엷은 환멸을 느끼면서 안동 네거리를 향하여 취한 다리를 옮겨 놓았다. 술김에도 으리으리하여 무심히 보이지 않는 식산은행 사택 골목을 헤저어 화동골로 들어섰다. 집에 이른 나는 대문을 두드리면서 아내를 불렀더니 아내의 대답과 같이 미닫이 소리가 들리면서 신 소리가 난다. 나는 예와 같이 대답하고 나오는 아내가 대문을 열면 술이 몹시 취한 체할 양으로 나오는 웃음을 참고 대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나오던 아내는 문간에 와서 걸음을 멈추는 자취가 들리자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아무 소리도 없이 빗장을 덜컥 뽑으면서 대문을 삐걱 열었다. 나는 열리는 대문을 따라 어지러운 걸음으로 일부러 쓰러질 듯이 어둑한 문간에 쏠려들면서,

“엑 퉤……휴……엑치, 취해……으우……우우리 마누라가 오늘은 얌전한 데 잔소리도 없이……엑, 퉤……취취…….”

나는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눈을 거불거리면서 강주정을 펴다가 눈결에 히슥한 그림자가 이상스러워서 다시 힐끗 쳐다보았다. 대문 빗장을 잡고 선 사람은 여자는 여자이나 옷모양이라거나 체격이 아내는 아니었다. 나는 어둠에 흐린 그 낯을 보려다가, 아침에 아내에게서 들은 어멈!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서 주정은 쑥 들어가고 두 발은 어느새 문간을 지나 마당에 나섰다. 나서자 마자,

“지금 오시오?”

하고 앞에 다가서는 것은 아내였다. 이건 확실히 아내였다.

“응.”

나는 모르는 사람을 아는 친구로 믿고 쫓아가다가 그의 낯을 보는 때처럼 무안스럽고 어이없어 더 주정부릴 용기조차 없이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뛰어들어간 나는 어린것의 고요히 든 잠을 깨일까 보아 배를 틀어 잡고 허리가 끊어지게 들이웃었다. 따라 들어온 아내는 눈이 동그래서 영문을 물었다.

“저……하학……흐흐 저……저게 허허허…….”

나는 입만 벌리면 웃음이 홍수처럼 터져나올 판이라 입을 벌리다가는 말고 벌리다가는 말고 하다가 겨우 웃음을 진정하고 문간에 선 것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어멈이야요!”

“어멈! 하하하.”

나는 어멈이라는 소리에 눈을 크게 뜨다가 다시 웃었다. 아내는 내가 웃는 것도 불계하고 장사동 어떤 친구가 소개해서 데려왔는데 나이도 알맞고 퍽 지긋해 보인다고 설명을 하고 나서 왜 웃느냐고 또 졸랐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가 끝나기 전부터 킥킥 하던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어린애가 깨거나 울거나 홍수같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좁은 방안에 흩어 놓았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나는 좀 늦게 일어나서 마루로 나갔다.

“할멈, 세수 놓우!”

부엌 앞에 섰던 아내가 부엌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새벽 일이 생각나서 벙긋했더니 그것을 본 아내는 엊저녁같이 깔깔대었다. 세숫물을 떠들고 나온 ‘어멈’은 이젠 ‘할멈’ 소리를 들을 나이였다. 말없이 웃는 우리 내외를 어색하고도 아첨하는 듯한 웃음을 벙긋하면서 쳐다보는 낯에 굵게 잡힌 주름이라거나 머리가 히뜩히뜩한 것은 누구든지 사십 넘게 볼 것이다. 쑥 내민 광대뼈, 하늘을 쳐다보게 된 콧구멍, 경련적으로 움직이는 두툼한 입술, 크고 거칠은 손은 어디로 보든지 호강스럽게 늙은 이는 아니었다. 더구나 몸에 잘 어울리지 않는 의복은 퍽 서툴러 보이는데 배까지 부른 것은 가관이었다. 그몸집, 그 배, 그 동글동글한 머리가 호강스러운 환경에서 그 항아리를 지고 소 타는 것 같은 목소리로 간간이 호령깨나 뽑으면서 늙었더면 거틀이 있고 위엄이 있어 보였을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할멈’이 되고 보니 도리어 비둔하고 둔팍해서 상스럽게 보였다. 그러나저러나 사십 넘은 사람이 아들딸 같은 젊은이들에게 갖은 괄시를 받으면서도 그 입을 속일 수 없어서 머리 숙이는 것을 보니 가긍스럽기도 하고 부리기도 미안하였다. 나는 우리 어머니도 의지가지 없으면 저 모양이 되려니 하는 생각에 잠깐 사이 가슴이 스르르하였다.

“야, 그 어멈이 음식질을 얌전히 하더라. 모양과는 다르던데……, 저 육회 두 칼질하는 것부터 제법이더라.”

아침밥 먹던 때에 어머니는 어멈 칭찬을 하였다.

“모양과는 딴판으로 퍽 깨끗이 합디다.”

아내도 거기 맞장구를 쳤다. 두 고부의 낯에는 만족한 미소가 사르르 스치었다.

이날부터 아내의 손이 들게 되어 어린애의 울음 소리도 덜 나게 되고 그 덕에 나도 신문장이나 편하게 보았다. 나는 이때 사람을 부림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편한 쾌락을 다소간 느꼈다. 내가 이럴 제는 아내야 더 일러 무엇하랴? 어린것 때문에 밤잠을 바로 못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찬물에 손 넣던 고역이 없어졌으니 그의 편한 쾌감은 나의 갑절이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버릇이 되고 그 버릇이 게으름이 되는 것을 뒤에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나 그때에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할멈이 들온 사흘 뒤였다. 사에서 편집에 분주히 지내는데,

“할멈이 나가니 돈 오십 전만 보내 줘요.”

하는 아내의 전화가 왔다. 나는 무슨 변이나 났나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할멈의 고모가 병나서 어떤 온천으로 가는데 집을 보아 달란다나요. 이틀이나 와 있었으니 한 오십 전 줘야지요.”

하는 것이 아내의 이유 설명이었다. 나는 사의 급사에게 돈 오십 전을 주어 보내었다.

“참 겨우 하나 얻었더니 그 모양이구려. 돈 오십 전 줬더니 백배사례를 하겠지…….”

아내는 많은 돈이나 준 듯이 다소 자랑 비슷이 말하였다. 이 순간 나도 일종의 쾌감을 받았다. 거지에게 한푼이나 두푼 주고 그끼는 것 같은 쾌감을……. 하다가 사흘에 오십 전 하고 다시 생각하는 때 내 가슴은 공연히 무거웠다.

사람 없을 때에는 “ 모르겠더니 있다 나가니 못 견디겠는데……. 아앗 추워…… 호호.”

추운 날 아침 솥에 불을 지피고 방에 들어온 아내는 내 자리 속에 젖은 손을 넣으면서 말하였다.

“삐종 먹다 마꼬 먹기 괴롭다는 셈이로구려! 흥.”

나는 일전 사에서 “사람의 입이란 버릇하게 가는 거야!” 하고 어떤 친구가 하던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아내는,

“호호─ 어서 하나 또 얻어 와야 할 텐데…….”

하고 혼잣말처럼 뇌었다.

그 이튿날 식전이었다. 나는 동창에 비친 아침 햇발을 보면서 그저 자리에 누웠는데,

“날래(어서) 들오!”

사투리 쓰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당에서 들렸다.

“오늘부터 오겠소?”

그것도 어머니의 목소리.

“오죠. 어디 댕겨 와야겠으니 이때 저녁 때에 오죠.”

서울 여편네의 바라진 목소리.

“칩은데 방으로 들오! 들어와 담배르 자시오.”

어머니의 목소리.

“괜찮어요. 이제 여기 앉죠.”

하고 그는 마루에 앉는 듯하더니,

“댁에는 식구가 적으니깐두루 오죠. 한 달에 사 원 오 원 준다는 데도 있긴 있지만요……. 적게 받고 몸 편한 데가 제일이지요.”

하는 말에 나는 그것이 어멈 후보자인 줄 알았다. 말소리는 상스럽지 않으나 사원 오 원 하고 자기는 이렇게 값 있다는 듯이 은연중 드러내는 자랑이 얄밉게 생각났다. 눈을 감고 듣던 나는 혼자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햇빛에 붉은 동창을 보았다.

“들오! 들어왔다가 아침을 자시구 가우.”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마루를 밟는 자취 소리와 같이 안방 미닫이가 열렸다 닫혔다.

그날부터 그는 우리 집 부엌에서 드나들게 되었다. 삼십이 훨씬 넘었으나 아직 삼십 전후로밖에 뵈지 않고 갸름한 몸에 태 있게 입은 옷은 비록 검기는 할망정 서투르지는 않았다. 그 이죽얘죽하는 말 솜씨라든지 빤질빤질한 이마는 어찌 보면 계집 하인이나 부리던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밀가룻집’에서 닳은 사람 같기도 한데, 이웃집 어멈이 오면 꼭 하게! 를 하면서 자기는 우리 집 주인 비슷한 태도와 표정을 짓는 것이 처음부터 얄궂었다.

“여보, 어멈인지 무엔지 공연히 빼기만 하고 트집만 써서 큰일인데…….

그 후 일주일이 되나 마나 해서 아내는 뇌면서 전등을 쳐다보았다.

“왜?”

“몰라, 왜 그러는지, 가게에 가서 뭘 가져오라니까 창피스러워서 누가 들고 댕기느냐고 하겠지! 위하니까 제야 제로라고…… 흥.”

아내는 분개했다. 하긴 우리 집에서는 어멈을 어멈같이 취급지 않고 한집 식구같이 음식도 같이 먹고 잠도 어머니와 같이 자고 반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야 뺄 수야 있을라구 하다가, 어멈을 추어 주니 도리어 상놈의 자식으로 믿고 반말을 하던 실례가 생각나서 혼자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 대루 더 두어 봅시다. 그런데 어멈이 양반인가? 흥…….”

하고 나는 조롱 비슷한 미소를 띄웠다.

“양반이라오! 양반인데 저 꼴이라나? 어젯밤에도 옛날 잘 살 때에는 집만 해도 백 평이 넘었죠, 옷도 벌벌이 해 두고 자개 장롱, 화류 장롱에……, 언제 그런 세상이 또 올는지 하면서, 참 희고 싱거워서…….”

아내는 어멈의 말을 옮길 때 어멈 비슷한 표정에 목소리까지 그렇게 지었다. 나는 코웃음을 흥 쳤다. 알 수 없는 증오의 염이 스르르 떠 올랐다.

그 뒤로 어멈의 평판은 사방에서 들렸다. 더구나 이웃집 어멈들께 어떻게 교만을 부렸는지 “누가 아나, 시골 상놈으로 서울 와서 머리 깎고 있으니 서방님이지 그 따위가 무슨 서방님이야? 아씨두 그렇지”하고 우리를 욕하더라는 말까지 이웃집 어멈의 입을 거쳐서 들어왔다. 그런 말이 들리는 때마다,

“여보, 그걸 내쫓읍시다. 그걸 그저 둬요?”

하고 뛰었다. 옳다, 그를 들이는 것도 우리의 자유인 것만큼 그를 내쫓는 것도 우리의 자유이다. 하나 나는 그를 얼른 쫓고는 싶지 않았다. 물론 나를 욕하는 것이 싫기는 하지만……. 이렇게 내 가슴에는 막연한 생각이 솟았다. 들앉아서 사내의 손만 바라는 행세하는 집 여자들께서 사내라는 생활 보장의 큰 조건을 없애 보라 ! 그가 취할 길은 매음녀? 뚜장이? 공장 직공?

어멈? …… 그네들께 어찌 잘 살던 때의 회상이 없으랴? 하지만 자기가 되는 꼴은 생각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집 어멈을 천대하고 혼자 내로라 하니 그런 심보가 잘 산다면 누가 그 앞에서 얼씬이나 하랴? 이렇게 생각하면 가긍하던 어멈이 몰락하는 중산 계급의 최후까지 부리는 얄미운 근성의 표본같이 느껴졌다 . 나는 이런 느낌을 받으면 그 계급의 몰락이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체험으로라도 한 번 그렇게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쓰나? 더 두어 보지.”

나는 속으로 미우면서도 가장 점잖은 체 아내를 타일렀다. 그러다가 내 눈에도 아니꼬운 어멈의 행동과 말대답이 여러 번 뜨인 뒤로는 내보낸다는 아내의 말에 찬성까지는 하지 않아도 ‘생각대로 하구려’의 묵인은 하였다.

했더니 한 달이 못 돼서 아내는 시계를 잡혀 월급 삼 원을 주어서 어멈을 내보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시계를 잡혀서 월급을 주면서도 어멈을 부리려는 내 생활에 코웃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나간 이튿날 아침 우리 집에서는 아내와 어머니가 실색을 하였다. 그것은 어제까지 있던 어머니의 가락지와 아내의 귀이개가 없어진 까닭이었다.

“어멈이 가져간 게지? 내가 그년을 찾아가 볼 테야!”

아내의 목소리는 분노와 절망에 떨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보지도 못하고 남을 의심해서 쓰나?”

나는 아내를 꾸짖었다. 내 마음에도 그 어멈이 의심스럽긴 했지만 나는 애써 그 의심을 풀려고 하였다. 그를 따라갔다가 나오지 않으면 우리만 고얀 놈이 될 것이요, 또 그것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때의 그 어멈의 낯빛이 어찌 될까? 또 그것에 우리의 생명이 달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었다. 그러는 것이 내 마음에도 좀 유쾌하였다.

“여보, 인젠 그놈의 어멈 그만둡시다.”

나는 명령이나 하는 듯이 아내에게 말하면서 ‘그도(어멈) 환경이 만들어 낸 병신이로구나’하고 생각하다가, ‘무릇 사람의 의사는 생활 조건의 지배를 받는다.’ 하던 어떤 학자의 말을 나도 모르게 뇌었다.


그후로는 일주일이 넘도록 어멈을 두지 않았다. 그러저럭 가을도 지나고 초겨울도 지났다. 아침 저녁 쌀쌀한 바람에 창을 치던 이웃집 포플라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빈 가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게 되었다.

금년 겨울은 일기가 퍽 더워서 어디서는 배꽃이 피었고 어디서는 개나리가 피었다고 신문의 보도까지 있도록 더우면서도 추운 날은 추웠다. 가을에 밀린 빨래도 이때 해 둬야 할 것이요 김장도 흉내는 내야 할 판이다. 어멈 문제는 또 일어났다.

어떤 날 나는 내가 임원으로 있는 ‘×× 문화협회’의 월례회에 갔다가 좀 늦어서 돌아오니,

“여보, 어멈 하나 말했는데 낼부텀 오기로 했소!”

하고 아내는 내 눈치만 본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늘 느끼는 바이어니와 밖에 나와 사회적으로 어떠니 어떠니 하는 때면 바로 이십 세기의 사람이나 집으로 돌아가면 십 칠팔 세기 사람의 기분과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그것도 또 그 모양이면 어떡하오?”

“아녜요, 이번 것은 삼청동 있는 숙경이 어머니의 주선으로 된 것인데 나이가 좀 젊어서 그렇지 퍽 수줍어 보이던데…….”

아내는 아무쪼록 나의 동의를 얻으려는 수작이었다.

“나이 젊으면 왜 안 됐어? 누가 둴 하나?”

나는 의미 있는 듯이 물으면서 벙긋 웃었다.

“응, 실없는 소리!”

아내는 눈을 흘기고 그러나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나는 앞집의 젊은 어멈이 밤중마다 출입이 잦다는 것을 생각하고 웃었더니 아내는 딴 생각을 하였는가?

‘실없긴! 여보, 그래 이쁩디까? 당신보담 어때? 허허.”

나는 아내를 놀리면서 웃다가 누가 찾는 바람에 문간으로 나가 버렸다.

이튿날부터 그 어멈은 왔다.

그것이 지금 편지 보낸 홍성녀였다. 이름은 무언지 성은 홍가인데 금년에 스물 셋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어멈 계급은 아니었다. 구차한 집안에 나서 열 넷인가 열 셋에 역시 넉넉지 못한 가정으로 시집을 갔다가 열 아홉에 과부가 되고 스물 한 살에 홀로 계시던 시어머니마저 죽은 뒤로 남의 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여자 키로는 중키가 되나 마나 한 키에 좀 똥똥한 몸집은 어울렸다. 살결이 부드럽게 보이고 흰 것이라거나 앉음앉음 걸음걸이의 고요한 것은 간구한 가정에서 기르기는 하였으나 교훈 있게 기른 사람으로 보였다. 어떤 때는 응석 비슷한 목소리하며 아직도 솜털이 남은 이마하며 귀 밑에는 어린애다운 수줍음이 흘렀다. 퍽 숫스럽게 귀여운 맛이 났다. 그리 크지 않은 좀 둥근 눈과 조금 앞이 들려서 웃을 때면 윗잇몸이 보이는 입술 가장자리며 병적으로 흰 콧잔등과 뺨새에는 고적한 침묵이 사르르 흐르는 것만은 보는 사람에게 고적한 느낌을 주었다.

“이번 어멈은 어때?”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좋아요, 무슨 일이든지 시키지 않아두 저절로 할 줄 알고……. 그리고 사람도 퍽 재밌어요. 말도 잘 듣고.”

아내는 입에 침없이 칭찬이다. 사람이란 남보담도 내게 잘하면 좋다고 하니까……. 그 어멈은 아내의 말동무도 되었다. 아내는 저녁이면 그와 같이 다듬이 바느질을 하면서 재미있게 속삭이고는 웃었다. 어머니는 어디 나갔던 딸이나 돌아온 듯이 그것을 기쁘게 보았다.

그 어멈이 들은 지도 보름이 넘어서 어떤 추운 날 밤이었다. 나는 신문을 보는데 곁에서 어린애를 재우던 아내는,

“여보, 어멈이 앨 뱄대! 흐흐.”

하고 무슨 허물된 일이나 본 듯이 나직이 웃었다.

“응, 앨 뱄다니?”

나도 미상블 호기심이 났다. 열 아홉에 과부가 돼서 홀로 있다는 어멈이 애 뱄다는 말을 듣는 내 머리에는 이상한 그림자가 언뜻하였다.

“지금 다섯 달 머리를 잡는다나? 그래서 낯빛이 그렇던 거야! 밥도 잘 먹지 않고…….”

아내는 모든 의심을 인제야 풀었다는 어조였다. 아내의 말을 들으면 그가 금년 봄 어성정(御成町) 어떤 여관집 어멈으로 있을 때 그 여관에서 심부름하던 사십 가까운 사내가 있었다. 그(사내)는 그 어멈이 들어가던 날부터 퍽 고맙게 하였다. 그(어멈)는 옛날에 돌아간 아버지 생각까지 났었다. 그러다가 한 달 뒤에 주인 마님이 들여다보게도 못 하던 자기 방으로 부르더니, 김 서방(사십 가까운 심부름군)하고 같이 지내라고 하기에 어멈은 대답도 못 하고 낯이 발개서 군성대는 가슴으로 나와 버렸다. 그 뒤부터 김 서방은 마나님과 같이 못 견디게 졸랐다.

그것도 처음에는 부끄럽더니 나중은 그리 부끄러운 줄도 모르겠고 또 김서방이 고맙게 구는 것을 생각한다거나 주인 마나님이 “네가 그렇게만 되면 너는 편하다. 김 서방은 저금한 돈도 몇 백 원 있는 사람이니 어서 내 말을 들어라” 하는 바람에 쏠리다가도 옛날 서방님 생각을 하면 그만 슬프기만 해서 주저거렸다. 며칠 뒤 어떤 날 밤 어멈은 바윗돌에나 눌리는 듯한 감각에 곤한 잠을 깨어 보니 그것은 김 서방이었다. 그 뒤로는 한방에서 잠자게 되었다. 이렇게 된 뒤로는 김 서방의 태도는 일변하였다. 이전은 어멈이 부엌에서 무거운 일을 하면 김 서방이 쫓아와서 도와주었는데 부부가 된 뒤부터 저(김 서방)는 상전이나 된 듯이 제 할일까지 여편네(어멈)를 시켰다. 여편네가 뭐라고 하면 때리기 일쑤였고, 여편네가 한 달에 ‘삼 원 받는 월급까지 빼앗아 술을 먹고 곤드레만드레 하더니 늦은 여름 어떤 날 그 여관 손님의 돈 사십 원인가를 훔쳐가지고 도망질했다. 그리하여 애꿎은 여편네까지 주인 마나님에게 공모자로 걸려들어 경찰서까지 구경하고 여관에서 쫓겨나서 다른 집에 있다가 우리 집으로 왔는데, 김 서방과 같이 있는 동안에 그의 핏덩어리가 뱃속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예까지 설명한 아내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옛날 서방님이 살아 계셨더면’하면서 울겠지!

참 가엾어서…….”

하고 한숨짓는 아내의 낯은 흐리었다. 듣고 보니 어멈의 신상은 내 일같이 가엾었다. 이 순간 나는 여관 마나님과 김 서방이 미웠다. 내 가슴에서는 일종의 의분이 끓었다. 노력을 빼앗다가 피까지 빨려는 계급, 정조까지 유린을 하고도 부족이 되어서 매까지 대는 그러한 계급에 대한 반항적 의분에 내 가슴은 찌르르 전기를 받는 듯하였다.

“그래두 김 서방을 생각하던데…… 그 못된 놈을…….”

아내는 혼잣말처럼 뇌었다.

“뭐라구? 보고 싶다구?”

떨려 나오는 내 말 속에서 ‘그깟놈이 뭘 보구퍼!’ 하는 뜻이 품어 있었다.

“아니, 보구는 안 싶대! 생각하면 분해 죽겠대요……. 그러면서도 그가 어디가 붙잡혀서 악형이나 받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저두 모르게 가끔 나서 가슴이 뜨끔뜨끔하대요, 인정이란…….”

아내의 목소리는 잠기었다.

돈은 그 아름다운 인정까지 빼앗는다. 돈? 돈! 돈! 천하를 움직일 만한 돈으로도 못 살, 사서는 안 될 인정이언만 오늘날은 돈에 빼앗기고야 만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멈이 더욱 가긍스러웠다. 나는 어멈이라는 경계선을 뛰어넘어서 내 아내나 내 누이처럼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지었다.

이렇게 되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나는 내 앞에 어멈이 있으면 그를 껴안아 대고 위로해 줄 만큼 흥분이 되었었다.

끓어올랐던 흥분이 고요히 갈앉은 뒤 비판에 눈뜨는 내 이성은 지식 계급인 체하고 가만히 앉아서 그 모든 것을 정관하는 내 태도가 얄미운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런 사람(어멈)을 부리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나는 어찌하여 이런 것 저런 것 다 집어치우고 그런 무리에 뛰어들어가서 그네들과 함께 울고 웃지 못하는가? 나는 이 갈등에 마음이 괴로왔다.

아내의 말을 들은 뒤로부터 매일 눈앞에 얼씬거리는 어멈이 무심하게 보이지 않았다. 핼쓱한 그 낯에 그윽히 어리인 고독한 침묵은 속절없이 보낸 청춘을 물끄러미 돌아다보는 듯도 하고 아직도 먼 앞길을 두려워하는 듯도 하였다.

알고 보니 똥똥해서 그런 듯이 느껴지는 그 뱃속에서 나날이 팔딱거리는 생명 그 새로운 생명은 ! 장차 어떠한 운명을 짊어지고 파란 많은 이 세상으로 뛰어나오려나?


며칠 뒤였다.

도서관으로 돌아나온 나는 식구들과 함께 저녁상을 대하였다.

“장조림은 고양이[猫]가 먹은 줄 알았더니 어멈이 집어서 먹었어…….”

아내는 장조림을 집어 입에 넣으면서 말하였다.

“입버릇은 덜 좋더라.”

어머니도 어멈의 무슨 허물을 보았던가?

“왜? 입버릇이 어때?”

나는 아내를 보았다.

“맛있는 것은 제가 먼저 맛을 보니까 말이지요! 허는 수 없이……, 오늘 아침에 조리던 장조림 한 개가 없기에 물어 보았더니 머뭇거리겠지……. 그래 ‘자네 그게 무슨 짓인가? 나으리도 아직 잡숫지 않은 것을’하고 말했더니 낯이 빨개서…….”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그뿐 아니라 맛난 것은 그리 먹지두 않으면서 다 맛보더라. 못된 버르장머리지!”

하면서 불쾌한 듯이 낯빛을 흐리었다.

“허물 없는 사람이 있나? 다 한 가지 허물은 가지고 있지.”

나는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어조로 말하였다. 어쩐지 그 어멈에게 허물 있다는 것이 듣기에 그리 좋지 않았다.

“그야 그렇지만 음식에 그러니까 그러지!”

아내의 어조는 아무리 해도 수긍할 수 없다는 듯이 울렸다.

“먹구프니까 그렇지, 여보! 당신 생각을 해 보구려! 지금 애 배서 다섯 달 머리니까 먹구픈 것이 퍽 많을 거요. 게다가 철까지 없으니 당신 같으면 지금 살구가 먹구 싶네 뭐 귤이 먹구 싶네 하구 야단일 텐데…… 하하하.”

“먹구 싶구 말구……. 지금 한창 그런 때다.”

어머니도 내 말에 공명이었다.

“누가 그렇잖다나? 도적질해 먹으니 그렇지!”

아내는 그저 흰 깃발을 들 수 없다는 어조였다.

나는 이 순간 이 말 하는 아내가 얄미웠다.

그래두 저만 옳다지 “ ! 흥 사람이란 제 생각을 하고 남의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그래 그것(도적하는 것)이 옳단 말이요?”

아내의 말은 좀 격하였다.

“물론 몰래 먹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것 하나를 가지고 못된 것이니 고약한 것이니 해서 쓰나?”

내 말은 가장적(家長的)인 훈계같이 나왔다.

“그래 누가 뭘 했소? 내가 어멈을 욕했소? 흥, 욕했드면 큰일날 뻔했네!

별꼴 다 보겠다.”

아내의 말에 나는 아내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내의 붉은 뺨은 흥분에 더욱 붉었다.

“뭐 어쩌고 어째? 별꼴? 왜 사람이 점점 버르쟁이가 저 모양이야? 그 꼴 보기 싫으면 갈 일이지…….”

“가라면 가지, 흥 시…….”

아내의 가는 눈에 스르르 돌던 이슬이 드디어 눈물이 되어 한 방울 두 방울, 그 무릎에서 엄마의 젖을 만지던 어린것도 입을 벌룩벌룩.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휙 던지고 마루로 뛰어나왔다. 황혼빛이 흐르는 마루로 뛰어나온 나는 마루 기둥에 기대어 서서 별들이 하나 둘 눈뜨는 차디찬 하늘을 쳐다보았다. 일없는 일에 감정을 일으켜서 이러니저러니 한 것을 생각하면 나로도 우스웠고, 여자 해방론자(女子解放論者)로는 남에게 빠지지 않을 만큼 떠드는 나로서 때로는 가장적(家長的) 관념에 지배되어 아내에게 몰인격적 언사 쓰는 것을 생각하면 일종 환멸 비슷한 공허와 같이 치미는 부끄러움을 억제치 못하였다. 언제나 이 갈등에서 완전히 풀리나?

이렇게 내외간을 가리었던 검은 구름은 그 밤이 깊기 전에 어린것의 웃음에 밀려 버리고 내외는 다시 웃는 낯으로 대하였다.

“여보, 참말 어멈 보고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타이르고 몹시 말 마우 응.”

강화 조약이 체결되자 마자 그 자리에서 나는 인정 있이 말했다.

“그럼요! 우리끼리 이야기지 어멈 보고야 뭘 하오!”

아내도 좋게 대답하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해요. 누가 말리면 더 하구 싶은 것인데……. 어멈만 하더라도 그게 배고파서 장조림을 먹었겠소? 그게 우리가 먹으니까 별것 같이 보여서 더 먹구 싶었을 거요. 맛없는 것이라도 먹지 말아라 먹지 말아라 하고 주지 않으면 먹는 사람은 늘 먹으니 평범하지만 못 먹는 사람은 더구나 그것이 신비롭고 맛있게 보이는 걸 어떡하오……. 허허.”

나는 설교나 하는 듯이 늘어놓았다.

“그러나저러나 큰일이다. 저울(겨울)은 되고 몸은 점점 무거울 텐데 몹시 부릴 수도 없고…….”

어머니는 곁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다가 혼자 걱정처럼 말하였다.

“글쎄요 그것도 걱정인데……. 저게 집에서 애까지 낳을 일이 아니요?”

아내도 따라 걱정이다.

“내 생각 같애서는 또 내보내는 게 상책이겠다.”

어머니의 의견이다. 의견은 옳은 의견이다. 약한 몸에 배만 불러도 걱정이겠는데 게다가 날은 점점 추워 오지 일은 심하지, 그러다가 병이나 나면 우리가 부리기는커녕 도리어 우리가 부리이게 될 것이요, 그렇다고 우리가 뜨뜻한 구들에 앉아서 추운 겨울에 그것을 내쫓을 수도 없는 일이라 나는 이 순간 산전 산후의 아내의 그림자가 언뜻 생각났었다.

“그렇지만 내보내면 어디로 가나? 이 추운 겨울에 뉘 집에서 그런 몸을 받을 리가 있나?”

이렇게 말한 나는 ‘내 아내도 내가 없고 보면 저 지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서 아내를 다시 쳐다보았다.

“글쎄요 딱한데……. 그런 줄(애 밴 줄) 알면서는 나가랄 수 없고…….”

아내도 난처한 모양이었다.

“암, 몸 비지 않은 것을 어떻게 쫓나? 어디 그대로 둬 봅시다. 차츰 어떡하든지!”

천연스럽게 하는 내 말은 귀치않게 더 생각지 말자는 말이었다. 아주 두자는 동의는 아니었다. 사실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내 가슴에는 어멈 처지의 문제가 간간이 떠올랐으나 그 때문에 어멈에게 대한 호감은 스러지지 않았다. 어느 점으로 보아 몸 용납할 곳이 없는 그가 더욱 측은하였다. 제 몸 위에 어떤 구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의연히 부엌에서 들락날락하는 그의 운명이 때론 한심하게 느껴지었다.

이러구러 지내는데 십이월 중순이 되었다. 고향 있는 이모(어머니의 아우)에게서 어머니에게 편지가 왔는데 사연인 즉, ‘가을부터 여관을 하는데 부릴 만한 사람이 마땅찮아서 걱정이 되는 중들은즉 서울은 남의 집 사는 사람이 많다 하니 착실한 여자 하나를 얻어 보내라.’ 하는 것이었다.

낮에 편지 “ 읽는 것을 어멈이 듣더니 제가 가겠다구 하는구나!”

어머니는 내 동의를 얻으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 몸을 가지고 거기 가서 어떻게 할라구?’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곁에 있던 아내가,

“응, 제가 벌써 그 말까지 하던데……. 거기(시골)는 물가두 싸구 집세두 싸다니 애를 낳게 되면 제게 있는 돈으로 집을 얻어 가지고 낳겠노라구……. 여보, 보냅시다.”

하고 말하였다.

“어멈이 웬 돈 있나?”

“모아 둔 것이 한 십여 원 된다니! 남 꾸어준 것까지 받으면 십 오 원은 넘는대요, 흥…… 그거면 시골서 한 달은 더 살 텐데…….”

나는 푼푼이 얻은 돈을 그렇게 모은 어멈이 착실하게도 생각되고, 우리네에게는 한때 술값도 못 되는 것을 그렇게 하늘같이 믿는 그네가 불쌍도 하고 방종한 우리네 생활이 죄송스럽기도 하였다.

“여보, 보냅시다. 거기 가면 먹기도 잘하고 다달이 돈 십원씩은 받을 텐데…….”

“그래 볼까?”

나는 아내의 말에 칠분은 승낙하였다. 이러는 것이 일거 양득이다. 어멈으로 보아서도 여기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고 나도 순후한 이모댁으로 보내는 것이 짐을 벗는 듯도 하였다. 그러나 모두 북관이라면 알지도 못하고 험악한 산골인가 해서 아범들도 질겁을 텅텅하는 곳으로 대담히 가겠다는 어멈의 심경이 가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거기(시골)선들 애 밴 줄 알면 걱정하기 쉽지?”

나는 남에게까지 짐 지이기가 미안하였다.

“글쎄! 그러면 편지나 해 볼까?”

일주일이 못 돼서 시골 이모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애를 배도 상관 없으니 오겠다고만 하면 곧 노자를 보낸다는 뜻이었다. 이 편지를 본 어머니는,

“그년(시골 이모─어머니의 아우) 제가 늘그막에 자식이 없어서 하나 얻어 키웠으면 키웠으면 하더니 어멈 애가 욕심나는 게지!”

하고 웃었다. 상반의 관념이 별로 없는 우리 시골서는 그것이 허물될 것은 없었다.

“그래 가실 테요?”

나는 어멈에게 억지로 존경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해라 하고 부려 보지 못하고 자라나서 자연 그렇게 말이 나갔다. 내 아내는 앞[南道] 사람인 것만큼 때로는 어멈에게 반말을 하는데 그것도 악의가 아니요 머슴 부리던 습관으로서였다.

“보내 주시면 가겠어요.”

어멈은 어려웁게 공손히 대답하면서 고요히 웃었다.

“그러면 가세요. 노자 보내라구 편지할 테니……. 거기 가시면 예보다는 낫죠.”

나는 곧 노자 보내라는 편지를 썼다. 웬만하면 내가 노자를 줘 보내야 이 모에게도 대접이요 어멈에게도 생각이겠는데 하는 미안한 걱정을 하면서…….


어멈 떠날 날은 다다랐다. 그것은 뜨뜻하던 전 주일 어떤 날이었다.

나는 그날 어멈의 짐을 동여 주기 위해서 사에서 좀 일찍이 나왔다. 꾸어 주었다는 돈 받으러 돌아다니던 어멈은 겨우 이십 전인가를 받아가지고 늦게야 돌아와서

“사 원 돈이나 돈 못 받게 돼요, 없다고 안 주니 어쩝니까” 하고 울 듯이 어머니에게 하소하였다. 그 돈도 떼는 사람이 있나? 모두 그 꼴이다 하면서 나는 혼자 웃었다. 아내는 과자와 과일을 사다가 어멈의 짐에 넣어 주었다.

“아이구…….”

어멈은 너무도 반갑고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가늘게 뇌더니 힘없는 두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 이제 갑시다.”

밤 아홉시가 지나서 큰 짐은 어멈이 이고 작은 짐은 내가 들고 우리 집을 나섰다.

“마님, 안녕히 계세요!”

어멈의 목소리는 떨렸다.

“응, 잘 가거라. 가서 몸 성히 잘 있거라.”

“아씨, 안녕히 계세요. 애기 병 낫거든 곧 편지해 주세요.”

어두워 보이지는 않으나 어멈의 뺨에 눈물이 스치는가? 그 목소리는 확실히 눈물에 젖었다.

컴컴한 화동 골목을 헤저어 전등이 환한 안동 네거리에 나서자 마자 내 두 어깨는 나로도 모르게 처지는 것 같았다. 지금 막 와서 트롤리를 돌려는 전차 운전대에 올라서는 때 내 눈은 내가 든 헌 보따리를 꺼렵게 보았다. 옥양목 치마저고리의 어멈! 허출한 두루막에 고무신 신은 나! 겐둥이센둥이 껄렁껄렁하게 꾸린 보따리를 이고 끼고 한 이 두 사람은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쫓겨가는 내외간 같다 . 나는 제삼자로서 이런 그림자를 보는 때는 그것이 불쌍하더니 내가 그 모양으로 남의 눈에 띄고 보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아니꼽고 내 자신이 창피나 보는 듯이 불쾌하였다.

‘뭐 별소리 다 하지, 그렇게 보이면 어떤가? 내가 못할 일인가?’ 나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버티면서도 저편에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어멈과 나는 종로 일정목에서 용산행을 갈아 타게 되었다, 전등은 한층 더 빛나고, 사람의 눈이 많은 데 나오니 어멈과 나 사이에 가리인 장벽은 내 의식 위에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나는 애써 이 감정을 제어하려 하였으나 뱃속에서부터 쓰고 나온 관념의 힘은 참으로 컸다.

신용산행 전차는 찬 거리에 처량한 음향을 일으키면서 스윽 와 닿았다. 전등이 휘황한 찻속에는 숄로 트레머리를 가린 여성들이 칠팔 인이나 탔다.

사이사이 끼인 깔끔한 신사들도 이 밤 내 눈에는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전 같으면 의주통을 탈 것도 용산행의 그 차를 탔을 것이다. 얼음 위에서도 봄날같이 보이는 것은 젊은 계집의 떼다. 전차 속에도 그네가 많으면 전차까지 부들부들이 보여서 폭신한 털자리 위에 봄날이 비치는 듯 무조건 하고 좋은 것이다. 내 이성은 이것을 비웃지만 내 감정은 이것을 승인한다.

내 가슴은 군성군성하다가 ‘어멈’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 내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 오고 난 뒤이라 벗어놓았던 검은 두루막에 고무신을 신고 어멈과 같이 오르면 누구든지 나를 어멈의 서방같이 보지나 않을까? 양복에 구두를 신었더면 하는 후회도 이 순간 없지 않았다.

전차는 어느새 걸음을 내었다. 달아나는 전차 뒤를 물끄러미 보던 나는 스스로 나오는 찬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다음 와 닿은 것은 의주통행이다. 이번은 꼭 탄다던 결심도 또 흔들렸다.

찻속은 또 색시판이다. 이날 밤은 색시가 별로 눈에 띄었다. 전차까지 빈정거리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이 바람에 또 전차를 놓쳤다.

“안 타세요?”

전차가 걸음을 내는 때 어멈은 지리한 듯이 물었다. 모든 환멸이 지나가는 때 고막을 울리는 어멈의 소리는 무슨 항의같이 들렸다.

“담 차를 탑시다. 누구를 기다리는데…….”

이렇게 거짓말을 할 때 나는 콧잔등이 간질거렸다. 종로 경찰서 시계대의 시침은 급하여 오는 찻시간을 가리켰다. 나는 이러다가 기차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않을 수 없었다.

용산행은 와 닿았다 다행히 . 여자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들만 탓으니 전 같으면 쌀쌀한 수라장같이 보였을 전차연만 이때 내게는 은신처같이 좋았다.

“탑시다.”

막 나는 뛰어올랐다. 옆에 낀 보따리를 운전대에 놓고 다시 어멈의 짐을 받아 놓은 후 어멈 앞서서 차실로 들어갔다.

칠분이나 개였던 내 기분은 다시 흐리었다.

“어 어디 가나?”

하고 내 손을 잡는 것은 어떤 신문사에 있는 김군이었다. 바로 그 옆에는 모던 걸 두 분이 앉았다.

“응, 자네 오래간 만일세! 집에 있던 어멈이 떠나는 데 전송일세…….”

어멈에게 힐끗 준 눈을 다시 모던 걸에게 흘끗 스치면서 나는 끝소리를 여럿이 들으라는 듯이 높였다.

“어멈 배행일세그려!”

김군은 웃었다.

“그렇다네! 흥.”

뇌고 보니 내 소리는 처음부터 나로도 모르게 일종의 변명이었다. 또 자랑이었다. 빈정대는 듯이 크게 지른 내 소리 속에 ‘나는 이렇게 관후하노라,’ ‘나는 상전이요 저는 어멈이니 오해를 말라’하는 변명의 냄새가 물씬 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나는 어째 그렇게 대답하였을까. 어멈이 어멈이 아니요, 탁 자른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 오똑한 구두에 양장을 지르르한 미인이었더면 내 태도는 어떠하였을까? 오오, 나는 또 망령을 부렸구나! 어멈과 같이 탄 것이 무슨 치명상이 되는가? 방약무인의 태도로 버티고 앉은 저 양장 미인이며 모든 사람의 눈을 어려운 듯이 피하여 한 귀퉁이에 황송스럽게 선 저 어멈과 사람으로서야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가 교육을 받았다면 그럼 교육은 무엇에 쓰는 것이다? 활동사진과 소설에서 배운 가지각색의 웃음과 몸짓으로 정조를 팔아 한 세상의 영화를 누리려는 부르조아 지식 계급의 여성보다 제 힘을 끝까지 쟁기삼는 어멈이 오히려 사람의 사람이 아닌가? 또 내 자신은 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뜨뜻한 방에서 배불리 먹으면서 어멈 제도 철폐를 부르면서도 어멈을 부리지 않는가? 허위이다.

가면이다. 내가 그를 동정하고 그를 측은히 보고 그의 짐을 들고 그를 전송한다는 것은 모두 허위이요 탈이 아니었던가? 만일 그것이 허위가 아니요 탈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동정 그 측은은 내가 그와 같은 처지에서 제일같이 받은 것이 아니요 인력거 위에서 요리에 부른 배를 만지면서 전차에 치인 거지를 보는 때 일으키는 것 같은 동정이요 측은이 아니었던가? 꼭 그렇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에게 대한 동정이니 측은이니 한 것은 미적지근하였던 것일시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면 너는 저런 어멈이라도 아내 삼기를 사양치 않을 테냐?’ 나는 다시 속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또 대답에 궁하였다. 궁하였다는 것보다 얄밉게도 그 질문을 벗을 만한 변명을 생각하였다.

나는 전차가 정류장에 닿을 때까지 내 가슴속에 새로 움이 트는 새 사상과 아직도 봉건적 관념의 지배를 받는 감정과의 갈등을 풀려면서도 못 풀었다.

정거장으로 들어갔다.

삼등 대합실 벤치 한 머리에 어멈을 앉혀 놓고 나는 차표도 사고 짐을 부친 후 이리저리 거닐면서 군성대는 군중을 보았다. 온 세계의 축도를 보는 것 같다. 잘 입은 이, 못 입은 이, 우는 이, 웃는 이, 흰 사람, 붉은 사람, 각인 각양의 모양은 한입으로 다 말할 수 없을이만큼 복잡하였다.

한 귀퉁이 벤치에 거취 없이 앉은 ‘어멈’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고, 힘없는 눈으로 이 모든 인생극을 고요히 보고 있다. 찬란한 전깃불 아래 핼쑥한 그 낯에는 슬픈 빛도 보이지 않고 기쁜 빛도 어리지 않았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빛─마치 자기의 운명을 이미 달관한 후에 공허를 느끼는 사람의 낯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구름이 엷게 건너갔다. 축 처진 어깨, 힘없는 두 눈, 두 무릎에 던진 손, 소곳한 머리는 어디로 보든지 활기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의 거미줄이 얽히었는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편지 한 장에 몸을 맡기려는 한낱 젊은 여자! 그의 눈앞에는 그가 밟을 산 설고 물 설은 곳이 어떤 그림자로 떠올랐는가? 그가 평생 잊지 못할 남편, 열 네살부터 열 아홉까지 하늘인가 땅인가 믿고 그 품에 안겨서 온갖 괴롬을 하소하던 그 남편, 고생이 닥치면 닥칠수록 생각나는 남편의 무덤을 뒤에 두고 가는 가슴이 어찌 고요한 물결 같으랴? 끓고 끓어서 이제는 모든 감정이 마비되었는가? 남의 눈이 어려워서 몸부림을 못 하는가? 서리 아래 꽃 같은 그의 앞길을 생각하니 컴컴한 청루 홍등의 푸른 입술이 떠오르고 장마 때 본 한강의 시체도 떠오른다. 이 순간 그를 보내는 것이 꺼림하였다. 나는 내 이익만을 위해서 그를 보내는 것이 꺼림하였다. 그렇다고 그를 둘 수도 없는 사정이다. 오오, 세상은 어찌 이러한가? 남을 살리려면 내가 희생해야 하고 내가 살려면 남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 밟을 바른 길인가? 시간이 되자 나는 입장권을 사 가지고 개찰구를 벗어나서 어멈을 차에 태웠다.

“서방님, 안녕히 계십시오.”

내가 차에서 뛰어내릴 때 어멈은 차창으로 내다보면서 떨리는 소리로 공손히 말하였다.

“네, 원산에 내려서 아침 먹구 배를 타시우.”

나는 다시금 당부를 하면서 그를 보다가 그가 치맛자락으로 눈 가리는 것을 보니 가슴이 스르르 풀려서 더 돌아다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며칠 뒤에 또 다른 어멈이 얻어 왔다. 다른 어멈을 얻기 전에는 떠나간 어멈의 이야기가 종종 있었다. 아내가 손수 부엌일을 하는 때에는 반드시 떠나간 어멈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다른 어멈이 들어온 뒤로는 떠나간 그 어멈의 이야기가 없다시피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은연중 우리의 이익으로서 생각한 것이었다. 아내가 손수 부엌일을 할 때에만 떠나간 어멈을 생각하였으니 말이다.

그런 판에 이 엽서를 받았다.

소리 없이 스며드는 황혼빛은 모든 것을 흐리는데, 나는 전등 스위치 틀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나간 모든 생각의 층계를 한 층계 두 층계 밟아 올랐다. 밟으면 밟을수록 그 어멈의 신상이 가긍하였고 내 태도가 너무나 몰인정한 것같이 느껴졌다. 더구나 오늘날까지도 그에게 상전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퍽 불안하였다. 나로서는 분에 넘치는 일 같았다.

그렇게 모든 기억을 밟아오르다가 막다른 페이지─그 어멈을 차에 앉히고 내가 뛰어내리던 막다른 기억에 이르러서는 내 감정은 더욱 흔들렸다.

“차가 떠나가는 때 어멈은 울던데…….”

나는 혼잣말처럼 뇌었다. 이때 옥양목 치맛자락으로 눈을 가리던 그 그림자 ─ 혈혈단신 여자의 몸으로 머나먼 길을 값없이 밟는 어멈의 그림자가 내 눈앞에 떠올랐다.

“예서도 울던데…….”

곁에서 내 낯을 보던 아내는 말하였다.

“예서도 울었나?”

“그럼요, ‘아씨, 안녕히 계세요’하고 내 손을 꼭 잡는 때 목이 메어서 다시 말을 못 하던데…….”

아내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나 보다. 그의 목소리는 떠오르는 꿈을 꾸면서 뇌는 잠꼬대같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나는 아내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내의 운명! 내 운명! 아니 모든 우리의 운명도 그 어멈의 운명과 같은 길을 밟을 것같이 느껴졌다. 그와 같은 운명의 길을 밟는 때 지금의 나와 같은 중간 계급 이상 계급의 발길에 짓밟히는 나를 그려 본다는 것보다는 그려 보여졌다. 나는 은연중 주먹이 쥐어졌다.

‘오오, 그네(어멈)의 세상이 되어야 일 만 사람의 고통이 한 사람의 영화와 바뀌일 것이다.’ 하고 나는 혼자 분개했다. 동시에 나는 그런 것을 느끼면서도 그 이상을 실행하도록 힘을 쓰는 체하면서도 머릿속에 주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계급의 말로가―그 자개 장롱 화류 장롱의 살림을 하다가 어멈이 되었다던 그 어멈의 말같이 느껴져서 얄밉고 또 어서 그렇게 되어서 오늘의 ‘어멈 계급’으로 바뀌게 되어 갖은 설움을 맛보게 될 것이 유쾌하게도 생각되었다.

“진지 잡수셔요!”

어멈의 소리에 나는 일어서면서,

“진지 잡수셔요.”

하는 어멈을 다시 보았다.

‘오오,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세상을 낙관하라! 삶을 사랑하라! 겨울은 지나간다. 봄빛이 이제 찾으려니 한강의 얼음과 북한산의 눈이 녹는 것을 반드시 볼 것이다.’ 어멈을 보는 내 가슴에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나로도 모를 굳센 힘을 느꼈다.

라이선스

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