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김유신이 한창 들랄리던 신라말단이다. 가을볕이 째듯이 비추인 마당에는 벼낫가리, 콩낫가리, 메밀낫가리들이 우뚝우뚝 섰다. 마당 한쪽에는 겨우내 때일 통나무덤이가 있다. 그나무덤이 밑에 어떤 열 일곱 살 된 어여쁘고 튼튼한 처녀가 통나무에 걸터 앉어서 남쪽 행길을 바라보고 울고 있다. 이때에 어떤 젊은 농군 하나이 큰 도끼를 메고 마당을 들어오다가 처녀가 앉어 우는 것을 보고 우뚝 서서,

“아기 웨 울어요?”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처녀는 행길을 바라보던 눈물고인 눈으로 젊은 농군을 쳐다보고 가만히,

“나라에서 아버지를 부르신개야요.”하고 눈물고인 자기의 얼굴을 감추려는 듯이 외면하고 돌아서니 길게 따아느린 머리가 치렁치렁하다.

“나라에서 부르셔요?”

“네, 내일 아침에 골로 모이라고 분부가 내렸어요.” 이 말을 들은 젊은 농군은 무엇을 생각하는것 같더니,

“고구려, 군사가 북한산성을 쳐들어온다더니 그 말이 옳군.”하고 달음질처서, 집에를 갔가다 오더니,

“여러 사람 불렀다는데요. 제길할 것, 큰일 났군. 젊은 사람은 다 죽고 이제는 늙은이까지 내다 죽이랴나. 언제나 마음 놓고 살 세상이 온담.”하고 처녀의 느껴 우는 어깨를 바라본다. 처녀는 고개도 아니 돌리고,

“가실시는 안 뽑혔나요?”하고 묻는다. 가실은 그 젊은 농군에 이름이다.

“명년 봄에야 나도 부르겠지요. 아직은 나이 한살 부족하니까 남겨놓는 게지요.”하고 팔장을 끼고 한참 생각하더니,

“아버지는 어디 가셨오?”한다.

“골 들어가셨어요. 원님한테 말이나 해본다고. 늙기도 하고 몸에 병도 있고 또 어린 딸자식밖에 없으니 안가게 해달라고 발괄이나 한다고 그리고 아까 가셨어요. 이제는 오실 때가 되었는데……?하고 또 행길을 바라본다.

“말하면 되나요! 나라에서 사정을 볼줄아나요!?하고 도끼를 들고 나무덤이에서 통나무를 내려 장작 패기를 시작한다.

처녀는 놀란 듯이 눈물이 젖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장작은 웨 패세요?”하고 가실의 곁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간다.

“우리 장작 막 다 패고 왔어요. 영감님이 힘이 드시겠기에 좀 패들일양으로.”하고 뚝 부르거드니 싯뻘건 두 팔을 머리위에 잔뜩 높이 들었다가 ?췌?소리를 치며 나려치니 쩍쩍 소리가 나며 나무가 쪼개져서 장작깨비가 가로세로 뛴다.

처녀는 우둑 허니 서서 가실의 볕에 거른 허리가 굽혔다 폈다 하는 양과 싯뻘건 두 팔뚝이 오르락 나리락 하는 것과 순식간에 자기 앞에 허연 장작덤이가 쌓이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이난 듯이 섰던니 싸립문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윽고 처녀는 큰 사발에 뽀얀 막걸리를 걸너 가지고 나와서 가실이 패던 토막을 다 패기를 기다려,

“술 한 잔 잡수셔요.”하고 사발을 두 손으로 받들어 가실에게 준다. 가실은 도끼를 나무통에 턱 박아놓고 한편 팔구비로 이마에 맺인 구슬땀을 씻으면서 한편 팔로 사발을 받아든다.

“웬 술이 있어요?”하고 그 힘 있고도 유순한 눈으로 술을 물끄럼이 들여다본다.

“콩 걷는 날 했던 술이 항아리 밑에 좀 남았기에 새로 물을 길어다가 걸넜어요. 아버지 잡수실 것 좀 남겨놓고……?하고 치마자락에 젖은 두 손을 씻으며 처녀는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는다.

가실은 사발을 입에 대고 꿀꺽 꿀꺽 단숨에 들이켜더니 주먹으로 입을 씻으면서 사발을 처녀에게 준다. 처녀는 사발을 받아들고 가실을 물끄럼이 보더니 돌아서 달음박질 뛰어가 부엌으로 들어간다. 가실은 처녀의 뛰어가는 양을 보고 들어가는 뒷모양이 안보일 때까지 보더니 다시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팬다. 얼마 만에 처녀가 치마자락을 손에 움켜쥐고 뛰어 나와서 가실의 곁에 선다. 가실이,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를 타서,

“밤 잡수셔요. 내가 아람 주워 다가 묻어 두었던 것이야요.”하고 적은 손으로 한줌 집어 가실을 주며 ?왕밤이야요!?한다. 가실은 도끼를 자기 다리에 기대어 세워놓고 잇발로 밤 껍데기를 베낀다. 처녀도 입으로 껍데기를 베껴 먹는다.

“아버지 오시네!?하고 처녀가 치마에 쌓던 밤을 땅에 내버리고 행길로 마주나간다. 가실은 고개를 돌려 행길을 내다보았다. 늙은 수양버들 그늘로 수염이 허옇게 세인 설영감이 기운 없이 걸어온다. 영감은 마당에 들어와 가실을 보고,

“장작 패주었나?”하고 감사한 빛을 보인다.

“네. 우리 것 다 패고……?하고 수집은 듯 하면서도 만족한듯한 웃음을 띠운다. 영감은 장작개비 하나를 깔고 앉어서 휘유 긴 한숨을 쉰다. 처녀는 어느새 부엌에 들어가서 술 사발을 들고 나와서,

“아버지 술 잡수.”하고 아버지를 준다.

“응 술이 남았든?”하고 딸에게서 술 사발을 받으며,

“이 사람 한잔주지.”

“한 사발 들었어요. 아버지 잡술 것 남겨놓고.”하면서 처녀는 가실을 본다. 가실은,

“저는 잘 먹었습니다. 어서 잡수시우. 아직도 무엇을 하려면 더운데요.”하고 영감의 피곤한 듯한 얼굴을 본다. 영감은 쉬엄쉬엄 한 사발을 들이키고 아랫입술로 윗수염 끝에 묻은 술을 빨아들이면서 마당에 떨어진 밤을 집어 베낀다. 처녀는 아버지가 오늘 골 갔던 결과를 듣고 싶으나 남의 앞이 되어서 묻지도 못하고 가실이가 물어 주었으면 하고 기다린다. 가실도 그 눈치를 알고, 자기도 영감 곁에 쭈그리고 앉으며,

“그래 골 갔던 일은 잘되셨어요.””하고 묻는다.

“안된대 내일 아침에는 떠나야 하겠네.”한참 말이 없다.

처녀는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여 치마자락으로 얼굴을 싸고 돌아선다. 가실도 고개를 푹 숙으린다. 영감도 고개를 숙으렸다가 번쩍 들어 울고 돌아섰는 딸을 보며 가실더러,

“그렇지 않아도 내가 자네를 찾아 보려했네.”하고 물끄럼이 가실을 보더니,

“자네도 알거니와 내가 떠나면 저 어린 것 혼자 남네그려. 저것이 불상해! 제 어멈은 어려서 죽고……. 오라범들 다 전장에 나가 죽고…… 내가 이제 나가면 어떻게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리. 싸워 죽지 않으면 병들어 죽겠고 병들어 죽지 아니하면 늙어서 죽지 않겠나. 나도 스므살 때에 군사에 뽑혀서 설흔살에야 집에 돌아오니 부모 다 돌아가시고―그런 말은 해서 무엇 하나. 아무러나 내가 이번 가면 살아 돌아 올리는 만무하고……. 저것이 내 혈육 이라고는 저것 하나밖에 안남었네 그려. 저것을 두고가니 내 마음이 어떻겠나.”하고 그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다. 처녀는 그만 장작덤이에 쓸어져 운다. 가실도 운다. 노인은 다시 소리를 가다듬어,

“그러나 다 팔자니 어쩌나……. 내가 보니 자네가 사람이 좋아! 그러니 내 딸을 부탁하네, 아내를 삼게, 그리고 이집 가지고 벌어 먹고살게. 논하고 밭하고 나무판하고 자네 두 식구가 잘 벌면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것이니 그러게.”하고 일어나 장작덤이에 엎드려 우는 딸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아가 들어가 저녁 지어라. 닭 한 마리 잡고 반찬도 좀 많이 하고 술도 걸너라. 가실이도 함께 저녁 먹고 마지막으로 이야기나 하게하자.”한다. 처녀는 일어나 두 손으로 눈물을 씻어가며 안으로 들어간다. 노인은 딸에 들어가는 양을 보고 돌아서서 다시 가실에 곁에 앉으며,

“가실이 내 말대로 하려나?”하고 손으로 가실에 땀에 젖은 등을 두드린다. 가실은 고새를 들어 노인을 쳐다보며 말하기 어려운 듯이 머뭇머뭇 하더니, 간단하고 힘 있게

“너무 황송합니다!?할뿐이다.

노인은 일어나 가실에 곁에 놓인 도끼를 들어 통나무 한 토막을 패기 시작한다. 가실이가,

“제가 패겠습니다.”하는 것을,

“가만있게, 이게 다 마지막 해 보는 것일세.”하고 ?쒸?, ?쒸?하면서 팬다. 비록 늙었으나 이전 하던 솜씨가 남었다. 가실이 만큼 힘 있게는 못하여도 그 보다 더 익숙하게 한다. 그 토막을 다 패어 놓고 도끼를 가실에게 주면서,

“에, 한참 장작을 패었더니 기운이 나네.”하고 땀을 씻으면서,

“저 고개 넘어 논 두말지기 않있나. 그게 다 내 손으로 만든걸세. 내가 이 가을에는 거기 세흙을 좀 들여 펴고 또 그 곁에 한말지기 더 풀려고 했더니 못하게 되었으니 자네가 내일부터라도 하게. 그리고 저 소 오양깐은 저쪽으로 옴기게.”하고 아무 근심없는듯이 벙글벙글 웃더니 문득 무슨 근심이 생기는 모양으로,

“내가 혼인 하는 것을 못보고 가서 않되었네마는 이 벼나 다 타작을 하거든 동네 사람들이나 청해서 좋은날 받아서 잔치나 잘하게.”하고는 퍽 언짢은 빛을 보인다. 가실은 다만 들을 따름이오 아무 대답이 없다.

이튿날 새벽 첫닭우리에 일어나서 처녀는 절구에 쌀을 쓸고 물을 길어오고 닭을 잡아 밥을 지었다. 지난밤에는 아버지의 솜옷 한 벌을 짓느라고 늦도록 바느질을 하다가 아버지 곁에 누워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첫 닭의 소리에 깬 것이다. 아버지는 수없이 곁에 누워 자는 딸을 만지면서 거의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늙은 아버지와 어린 딸이 마주 앉어서 닭국에 말아 밥을 먹을 때에는 벌써 훤하게 동이텃다. 해뜨기 전에 말 탄 관인이 활을 메고 칼을 번쩍 어리며, ?군사들 나오라.”고 웨치며 돌아갔다. 처녀는 밥상도 안치우고 아버지의 옷 보퉁이를 싸고 해진 버선 구멍을 막아 놓는 등 길치장 하기에 울새도 없었다. 아버지는 딸이 짐싸는 동안에 소 물을 먹인다, 마당을 쓴다, 아침마다 하는 일을 하고 농사하던 연장과 소와 닭장과 곡식가리를 다 돌아보고 딸이 늘 물 길러 다니는 우물길에 풀까지 비어 버렸다.

해가 떴다. 지붕에는 은가루 같은 서리가 왔다. 동네에서 닭우는 소리가 난다. 닭들은 아침 햇빛을 맞노라고 사방에서 울고 개들이 쿵쿵 짖는다. 마침내 떠날 때가 되어서 아버지는 보찜을 지고 마당에 내려서면서 우는 딸이 머리를 쓰다듬고 빰을 만저주었다. 그리고,

“아무 걱정말어라 가실이가 좋은 사람이니 그 사람한테 시집가서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아라, 남편 말 잘 듣고 일 잘하고 그래야 내 딸이다.”

하고 대문을 나선다. 딸은 아버지의 소매에 매어달려 운다.

이때에 앞고개로 금빛 같은 햇빛을 등에 지고 어떤 커다란 사람이 뛰어 넘어온다. 가실이다. 가실은 집세기 감발에 바지를 흘족하게 치켜 입고 조고마한 짐을 젖다. 대문 앞에 와서 노인께 절을 하면서,

“제가 대신 가겠읍니다. 일년이면 돌아온답니다.”한다. 그 얼굴에서는 김이 오른다.

“자네가 어떻게 가냐?”하고 노인이 놀래어 묻는다.

“이제 늙으신 이가 어떻게 전장에를 가십니까. 그래 어저께부터 내가 대신 가리라고 작정을 했읍니다.”하고는 또 절을 하고 뛰어가려한다. 처녀는 가실의 손을 잡으며,

“아버지 대신 전장에 가셔요?”한다.

“네.”하고 가실은 처녀의 쳐든 얼굴을 나려다 본다. 처녀는 눈물 묻은 얼굴을 가실의 가슴에 묻으며,

“그러면 가 주십시오. 그 은혜는 내 몸이 죽기까지 갚겠읍니다. 그러면 가 주십시오!?하고 한 번 더 가실의 얼굴을 본다. 노인은 가실의 결심을 휘지 못할 줄을 알고 자기가 젖던 옷짐을 가실에게 주며,

“자네 은혜는 내가 죽어도 못 잊겠네. 그러면 갔다가 속히 돌아오게. 나를 자네의 장인으로, 믿게 부디 잘 다녀오게.”

이리하여 가실은 전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골에 들어가서 여러 백 명 군사로 뽑힌 사람들과 함께 마병 수십 명에 끌리어 서울로 갔다. 가는 길에 여러 골에서 군사로 뽑혀오는 사람들을 만나 치술령을 넘어올 때에는 해가 반이나 넘었다. 산비탈에는 늙은이 부인네 아이들이 함께 늘어섰다가 자기네 남편이나 아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가리키고 부르며 발을 구르고 울었다.

가실이가 서울 동문을 들어설 때에는 벌써 해가 서형산 마루에 있었다. 어려 절에서는 저녁 쇠북소리가 둥둥 울려온다. 군사로 뽑혀가는 사람들의 들어오는 것을 보려고 장안 사람들은 모두 길가에 나섰다. 먼데 사람이 안보일만할 무렵에 겨우 분황사 앞 영문에 다달았다.

가실은 상관의 점고를 맞고 방에 들어갔다. 열간통이나 되는 큰 방안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콩나물 모양으로 앉어서 혹은 같은 고향에서 온 아는 사람들끼리 혹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들을 한다. 가실은 방 한편 구석에 우뚝 허니 앉어서 전장에 나가는 것이 무서운 듯한 생각과 그러나 명년 이때에 돌아오면 오래 그리워하던 사람을 안해를 삼아 재미있게 살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기뻐한다.

이윽고 어디서 풍류소리가 울려온다. 사람들은 일어서서 창으로 내다본다. 서남편으로 환한 불빛이 보인다. 창에 붙어서 바라보던 사람 하나이,

“저게 대궐이야, 상감님 계신데야.”하는 소리를 듣고 대궐 대궐 하는 말만 듣고 보지는 못한 사람들은 일제히 그리로 밀려,

“응, 어느개 대궐이야?”하고 사람들 틈으로 고개를 내어 밀고 발을 벗되듼다.

“저기 저 등불 많이 켜놓은데가 대궐이야, 림해궁이야.”하고 누가 잘 아는 듯이 설명한다.

가실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내다보았다. 몇 천인지 모를 등불이 반듸불 모양으로 공중에 걸리고 그 한가운데쯤 해서 커단 횃불빛 같은 것도 보인다.

“저렇게 환하게 불을 켜놓고 타작을 했으면 좋겠네.”하는 이도 있고,

“거기다가 씨름을 한판 차려 놓았으면 좋겠네.”하는 이도 있다.

그중에 서울서 오래 병정 노릇하던 사람 하나이 이 사람들의 무식한 소리를 비웃는 듯이,

“이 사람들 그게 무슨 소린가. 지금 상감님이 만조백성을 모으시고 연략을 배설한 것이야. 내일 룡춘장군 유신장군이 우리들을 거느리고 랑비성으로 간다고 가서 승전해 가지고 오라고 자치하는 것이라네.”한다.

북소리, 피리소리, 쇠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밝듸밝은 구월 보름달이 둥그런 어름짱 모양으로 남산위에 걸리고 반월성과 황룡사가 달빛 속에 큰 그림자 모양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씩 둘식 창에서 떨어져서 구석구석이 목침을 베고 쓸어진다. 어떤 사람은 벌써 종일 걸어온 로독에 코를 드렁드렁 군다.

나팔소리 주라 소리가 영문 안에 일어난다. 자던 군사들은 둥지를 흔들린 범 모양으로 여러 방믄에서 쏟아져 나와 마당에 모여 선다. 마당 한가운데는 활과 화살 통이 산떼미같이 쌓이고 울긋불긋한 깃발이 횃불 빛에 나부낀다.

해뜨기 전에 천여 명 군사가 제일대로 남대문을 나서서 서를 향하고 떠났다. 말 탄 군사도 있고 짐실은 수레도 있다. 군사들은 모두 활과 살통을 메고 어떤 군사는 큰 창을 메었다. 가실도 큰 활과 살통을 메고 물들인 군복을 입었다. 어제까지 호미와 낫과 장작 패는 도끼를 들고 화평하게 살던 농부들은 하루아침에 활을 메고 칼을 차고 사람을 죽이러 가는 군사로 변하였다.

“어디로 가는 모양이야?”하고 가실의 뒤에 오는 한 사람이 누구더러 인지 모르게 묻는다.

“누가 아나 끌고 가는대로 따라가지.”하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대답한다.

“백제놈들이 또 쳐들어왔나?”

“이번에는 고구려 놈들이라든가.”

“그 망할 놈들은 농사나 해먹고 자빠졌지 웨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들 수성거려서 못 견디게 굴어.”

“글쎄나 말이지. 또 그놈들은 우리네 신라 사람들이 들 수성거린다고 그러겠지.”

이러한 말도 나오고 또 어떤 이는,

“글쎄 우리는 무얼 먹겠다고 터벅거리고 가?”

“먹긴 무얼 먹어, 사우러가지.”

“글세 무얼 먹겠다고 싸워!”

한참 대답이 없더니 누가,

“누구는 갈일이 있어서 가나, 가라고 그러니까 가지.”하고 성난 듯이 픽 웃는다. 이 말이 대단이 재미나는 모양으로 누가,

“우리더러 싸우러 가라는 사람은 누구야? 아버지 말도 잘 안들으려고 드는 우리더러!?하고 더 크게 웃는다.

“참 누가 가라기에 가는 길이야?”하고 누가 또 웃는다.

“안가면 잡아다가 죽인다니 가지!”

이 말에 모두 ?참 그렇다.”하는 듯이 아무 말들이 없다. 가실은 ?나는 설영감을 대신하여 떠나가는 길이야.?하고 생각하고 혼자 기뻤다.

이 모양으로 밤이면 한둔하고 낮이면은 걸어 낯선 곳으로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실과 같이온 군사가 노돌을 건너는 날은 삼각산으로서 하늬바람이 냅다 불고 좁쌀 같은 싸락눈이 펄펄 날랐다. 날랐다. 본래 한양에 있던 군사들은 모두 노닥노닥 긴 옷에 얼굴에 핏기하나 없다. 그네들은 집에서 올 때에 가지고 온 옷도 다 입어 해어지고 까맣게 때 묻은 군복을 입고 덜덜 떨고 섰다. 새로 가실과 같이온 군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소름이 끼쳤다.

“웨 다들 저 꼴이야. 해골만 남았으니?”

“우리도 저 꼴이 될 모양인가.”

“죽지 않아야 저 꼴이라도 되지.”

이런 말들을 하며 모두 풀이 죽어서 섬거적편 영문에 들어갔다.

이날은 서울 군사들이 이십여일이나 먼 길에 새로 왔다하여 소를 여러 마리 잡고 술을 많이 내어 큰 잔치를 베풀었다. 가끔 고구려 마병이 기웃기웃 무악재를 엿보고 서울서 구원병은 오지 아니하고 그래서 이곳서 수자리 사는 군사들은 하루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밤잠도 잘 자지 못하다가 이번에 새군사 오는 것을 보고 다들 기뻐하였다. 그 판에 오래 굶주렸던 창자에 소고기를 싫건 먹고 술을 마시니 추운 것과 고향 그리운 것도 잊어버리고 모두 신이 나서 떠들고 논다. 가실도 술이 취하였다. 자기와 한방에 있게 된 늙은 군사가 자기를 퍽 귀여워해서 술도 많이 얻어 주고 고기도 많이 얻어 주었다. 그 늙은 군사는 이십년이나 병정으로 있었고 서울도 오래 있었으므로 영문 일도 잘 알고 퉁수도 불고 소리도 하고 춤도 출줄 알며 또 여러 번 전장에 나갔으므로 싸움도 우습게 여긴다. 한참 떠들다가 이 늙은 군사가 무릎장단을 치며 소리 한마디를 부른다. 그 사설은 이러하다.

“에헤야―산도 설고 물도 선데 누구를 따라 예왔는가.”

이런 소리가 끝이나니 그중에 한 오육인 늙은 군사가 역시 무릎장단을 치며,

“에헤야―요―님따라 온것도 아니로세, 구경 온 것도 아니로세, 통천검 드는 칼로 고구려놈 사냥을 온 길일세 에헤야―요―?하고 화답을 한다.

늙은 군사는 더 신이 나서 얼신 얼신 어깨춤을 추어가며,

“에헤야―요―새로운 군사야 말 물어보자 고향 산천은 어찌된고, 부모양친은 어찌된고 두고 온 처자도 잘있는냐 에헤야―요―?하면 다른 늙은 군사들도 어깨춤을 얼신 얼신 추며,

“님따라 온것도 아니로세.”하고 아까하던 후렴을 부른다.

다른 방에서 얼굴 붉은 군사들이 소리를 듣고 모여든다. 방이 터지게 뫃이고도 싸락눈을 마지면서 문밖에 섰다. 소리하던 군사들은 더욱 흥이나서 일어나 춤을 추는 이도 있고 입으로 부르거던 다리를 쳐서 장단을 맞추는 이도 있다. 늙은 군사가 한마듸를 먹일 때마다 받는 사람이 늘어간다. 가실도 가만가만히 숭내를 내다가 나중에는 노래를 배워 후렴하는 패에 참예하게 되었다.

늙은 군사는 일단 소리를 높여,

“에헤야요, 사냥을 가자 사냥을 가, 날이 새거던 사냥을 가자. 무악재 넘어 고구려 군사 사냥을 가자.”

“에헤야요―님따라 온것도 아니로세 구경온것도 아니로세 룡천검 드는 칼로 고구려왕의 머리를 버혀 대왕께 바치러 온 길일세.”

“에헤야요, 인생백년이 꿈이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가. 오늘은 살아서 놀더라도 내일 일은 누라 아나. 아마도 북한산 석비례판에 살마자 죽은 혼이로고나.”

“에헤야요.”하고 모두 슬픈 듯한 목소리로 후렴을 부른다. 후렴이 끝나면 일동은 깜짝 아니하고 늙은 군사의 입만 바라본다. 늙은 군사의 주름잡힌 얼굴에 흐트러진 백발이 천줄기 만 줄기 함부로 늘어졌다. 여전히 얼신 얼신 춤을 추며,

“에헤야요. 북한산 석비례 파지를 말아. 흩어진 백골을 건들일라. 어즈버 우리네도 한번 아차 죽어지면 흩어진 백골이 되리로고나.”할 때에 볕에 걸은 늙은 군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번쩍번쩍한다. 후렴 받던 군사들은 후렴을 부르려다가 모두 목이 메어 울었다. 가실은 복바쳐 오르는 울음을 참다못하여 목을 놓아 울었다.

이때에 갑자기 영문 마당으로서 취군나팔 소리가 울려온다. 군사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알았다. 고구려 군사가 밤을 타서 한양성으로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가실도 남들이 하는 모양으로 활과 살통을 메고 칼 하나를 들고 나섰다. 영문 마당에는 수천 명 군사가 길게 길게 열을 지어 늘어섰는데 앞에는 어떤 말 타고 가든 장수가 기를 둘러가며 군사들에게 호령을 한다.

“지금 고구려 군사가 무악재로 쳐 넘어오니 너희는 마주나가 싸오되 만일 고구려 군사가 쫓기거든 북악산 끝까지 따라가라.”고 한다. 이때에 난데없는 화살 하나이 그 장수의 탄 말귀를 스치고 날아온다. 수천명 군사는 일제히 고함을 치고 인왕산 모퉁이를 돌아 무악재를 향하고 달려갔다.

새벽이 되어 촌가에 닭이 울 때에 군사들은 북한산 끝에 다달았다. 고구려 군사는 죽은 사람과 말과 살마자 업더진 군사를 내버리고 랑비성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신라군사 중에도 이백여명이 죽었고 소리 메기던 늙은 군사도 어디간지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가실은 그 이튿날 여기저기 찾아도 보고 물어도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에 진치고 있는지 십여 일후에 룡춘장군과 유신장군이 거늘인 팔천대군이 행진하기를 시작하였다. 신라 군사들은 모두 기운이 나서 이번 길에는 평양까지 쳐 밀어 버리리라고 팔을 뽐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아니 하였다. 한 삼십리 나가다는 한 오십리 후퇴도 하고 다시 한 칠십리 나가기도 하여 한강과 임진강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에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왔다 가고 여름이 왔다 가기를 여러번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늙어 죽고 병나서 죽고 활마자 칼마자 죽고 도망하고 도망하다가 붙들려 죽어 군사는 점점 줄고 군사가 줄면 몇 십리 물러가서 새군사 오기를 기다리고 새군사가 오면 또 평양까지 쫓아 들어 가고야 만다고 한 백리나 가다가 또 군사가 줄면 물러오고 밤낮 이 모양으로 오르락내리락 되풀이를 하여 언제 싸움이 끝날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일 년 만에 돌아간다고 떠나온 가실은 벌써 삼년을 지내어도 돌아갈 길이 망연하였다. 새로 오는 군사들 편에 혹 고향 소식을 듣기는 하건마는 고향으로 소식을 전할 길이 없었다. 오는 사람은 있으되 가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소식을 전하랴.

설씨집 소식을 듣기는 삼년째 되던 해 봄이었다. 노인은 여전히 건강하다는 말과 그 딸은 아직도 시집을 아니 가고 자기를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새로운 군사의 전하는 말을 듣건대 그곳 어느 양반과 혼인을 하게 되어 가을에 성례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가실은 이 말을 들을 때에 몹시 슬펐다. 그러나 돌아갈 길이 망연하니 어찌하랴. 삼 년 전에 서울서 같이 떠난 군사중에 하나씩 둘씩 없어지고 이제는 옛 얼굴을 볼수가 없으니 자기 생명도 풀 잎에 이슬이 언제 슬어질는지 믿을 수가 없다. 더욱이 이 가을에는 신라에서도 있는 힘을 다하고 고구려에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운다는데 그때 통에는 암만해도 살아 남을 것 같지도 아니하다. 군사들의 말이 고구려에는 나는 장수가 있어 눈에 보이지 아니하게 다닌다 하며 이번에는 그 장수가 나온다 하니 더욱 명년 봄을 살아서 구경할 것 같지도 아니하다.

삼년째되는 구월보름게 랑비성을 쳐들어가자는 군령이 내렸다. 군사들은 모두 지리하고 집생각이 나서 싸울 생각이 없으나 이번만 싸우고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바람에 죽으나 사나 마지막으로 싸워보자고 술과 고기를 잔뜩 먹고 나팔을 불고 북을 치고 먼지를 날리며 랑비성을 향하고 달려 들어갔다. 가실은 정신없이 일변 활을 쏘며 일변 창을 두르며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랑비성에서는 화살이 빗발같이 쏟아져 달려가던 군사가 모두 뒤로 쫓겼다. 쫓기다가는 활에마저 쓸어진다. 이리하여 가실의 군사는 거의 다 죽다 싶이 하였다. 이때에 가실은 몇아니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이러는 동안에 어느 사이에 군사는 다 죽고 가실이 하나만 남았다.

“이놈아 너의 군사가 다 죽었는데 그래도 항복 아니할터이야.”하고 활을 당겨서 가실을 향하여 쏘았다.

“이 활을 받아라.”하고 외칠 때에 가실은 교묘히 몸을 돌려 화살을 피하였지마는 다리에 화살을 맞었다. 군사들이 우― 몰려왔을 때에 가실은,

“안 죽었다.”하고 그 군사들을 쳐다보며 대답한다. 다른 군사가 들고 있는 칼로 가실의 가슴을 겨누면서,

“이놈 이 신라놈! 벌써 네 군사는 다 우리 손에 죽고 몇 놈만 살아서 달아났다. 요놈 너도 이렇게 푹 찔러 죽일 테야.”하고 가실의 가슴을 찌르려한다. 가실은 잠간 기다리라는 듯이 손질을 하며,

“얘 너와 나와 무슨 원수 있니! 내가 네 애비를 때렸단 말이냐, 네 소를 훔쳤단 말이냐, 피차에 초면에 무슨 원수로 나를 죽이려드니? 나도 늙은 부모와 젊은 안해가 있다. 내가 죽으면 그것들은 어쩌잔 말이냐.”하는 말에 군사 하나같이 칼든 군사의 팔을 붙들어 잠간 참으라는 뜻을 보이며,

“이놈아 그럼 웨 활을 메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어? 맨 몸으로 왔으면 닭 잡고 밥이라도 해먹이지! 이놈아 웨 활을 메고 와서 우리 사람들을 죽여! 너희 신라놈들은 죄다 죽일놈들이야. 괜히 가만히 있는 고구려를 들수성 거려서 우리도 이렇게 전장에 나오게 만들고……”

가실은 의심스러운 듯이,

“고구려 놈들이 괜이 가만히 있는 신라를 들수성거린다는데!”

“누가 그러던?”하고 칼든 군사가 성을 내며

“우리 상감님 말씀이 신라 놈들이 먼저 혼란을 일으킨다는데”

가실은,

“우리 상간님 말씀에는 고구려 놈들이 가만이 안 있고 괜이 남을 들수성 거린다던데.”한다.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 물끄럼이 보고 섰다. 가실은 힘을 써서 일어나 앉었다. 목이 몹시 마르다. 그래 칼든 군사더러,

“내가 목이 말라 죽겠으니 물을 한잔다오.”한즉 그 군사는 어쩔 줄 모르고 한참 어릿어릿 하더니 칼을 칼집에 꼿고 가서 개천 물을 떠다준다. 가실은 꿀떡꿀떡 다 들이켰다. 그리고는 두 군사더러,

“너희들 나를 죽이지 말어라. 나도 오늘 종일 활을 쏘았으니 너희 사람도 상당히 죽었겠다마는 내가 죽일 마음이 있어서 죽였니? 활을 주면서 쏘라니 쏘았지. 그렇치 너흰들 무슨 까닭으로 괜이 사람을 푹푹 찔러 죽여?”하고 곁에 놓인 활을 들어 꺾어버리며,

“자 이러면 활 없이 맨 몸으로 너희 나라에 들어온 사람 아니냐.”하였다.

두 군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더니,

“어떻게 이놈을 살려?”

“글세 죄다 죽이라고 그러는데……”

“살려주자…… 이놈의 말이 옳구나.”

“글쎄 사로 잡아왔다고 그럴가.”

“응 우리 이놈을 잡아다가 영문에 바치자. 죽이지 말고.”

이리하여 두 군사는 가실을 부축하여 영문으로 잡아 들여다가 장수에게 바쳤다.

장수는 가실의 손과 얼굴이 무식한 농군인 것과 미미한 졸병에 지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구래 죽일 필요도 없다하여 장에 내다가 종으로 팔았다.

마침 어떤 늙은 농부가 가실을 사서 소 등에 올려 앉혀 어떤 시골 촌으로 다려갔다.

얼마 만에 살마진 자리도 나아 가실은 도끼를 메고 나무도 찍으러 다니고 장작도 패고 밤에는 색기를 꼬고 신을 삼았다. 처음에는 신라놈 잡아 왔다고 모두 구경을 오고 아이들도 따라다니며 ?신라놈!? ?당나라 개!?하고 놀려먹더니 차차 가실도 자기네와 똑같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어 일꾼들끼리도 서로 친구가 되고 말았다.

봄이 오면 거름을 져내고 밭을 갈았다. 가실은 신라 사람이라 논농사를 잘하므로 주인집 밭으로 논을 만들어 둘째 해에는 벼를 많이 거두어 맛난 쌀밥을 먹게 하였다 하여 주인 노인도 가실을 종으로 대접하지 아니하고 가족같이 대우하게 되고 동네 사람들도 모두 가실을 청하여다가 논농사하는 법을 배웠다. 고구려에서는 거의 전장이 끝일 날이 없어 농사를 힘쓰지 아니하므로 논밭이 다 황무하고 또 그때까지는 논농사하는 이는 평양근방 밖에는 없었다.

이리하여 가실은 이 동네에만 이름이 날 뿐 아니라 이웃 동네에서까지 이름이 났다. 사람 좋고 힘써 일 잘하고 그중에도 논을 만드는데는 선생이라하여 칭찬들이었다.

이렁구렁 또 삼년이 지내었다. 가실은 해마다 가을이 되면 주인 노인더러 놓아 보내주기를 청하였으나 주인은 본국에 돌아가면 도리어 생명이 위태하리라는 것을 핑계로 놓아주지 아니하고 또 지금 열 여섯 살 되는 딸의 사위를 삼으려는 뜻을 가졌다. 원래 이 노인은 아들 형제를 다 전장에 보내고 농사할 사람이 없어 가실을 종으로 사온 것인데 가실이 있기 때문에 농사를 잘하여 집이 부유해졌고 또 가실의 사람됨이 극히 진실하고 부지런하여 족히 자기의 만년의 일생을 부탁할만 하다고 믿으므로 아무리 하여서라도 사위를 삼아 본국에 돌아갈 생각을 끊게하려 한 것이다. 또 이 노인의 딸도 가실을 사모하였다. 그가 큰 도끼를 두러메어 젖은 통나무를 패는 것과 소에게 한바리나 되고도 남을만한 나무 짐이나 곡식 짐을 지는 것을 볼 때에 처녀는 가실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실은 다만 힘만 쓰는 사람이 아니요 여러 가지 지혜와 재주도 있었다.

톱과 대패를 만들어다 주고 기타 여러 가지 기구도 만들고 자기가 유숙할 사랑채도 자기 손으로 중창하고 처녀의 나막신도 파 주었다. 그 나막신이 아주 모양이 좋고 발이 편하다 하여 노인은 처녀는 시켜서 들기름을 발라 터지지 않게 하였다. 또 농사하는 여가에는 쑥대로 밭을 만들고 멈통을 만들어 붕어와 잔고기와 궤를 잡아 오면 처녀가 앞 개천의 나가 말끔이 세말을 하여다가 풋고추를 두고 조려 먹었다. 노인은 이것을 썩 좋아하였다.

가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아니하고 무엇이나 일을 하였다. 그래서 그 집은 늘 깨끗하고 없는 것이 없었다. 눈이 오기 전에 벌서 산덤이 같이 나무가 쌓이고 집에기와 메투리도 항상 쌓아두고 신었다. 지난겨울에는 처녀가 처음 질삼을 한다하여 가실이 종일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좋은 재목을 구하여 다가 물레같은것과 베틀을 만들었다. 이것은 질삼 많이 하는 신라본이라 고구려것 보다 훨씬 보기도 좋고 편리하였다. 이 밖에도 가실이가 한 일이 많거니와 그의 지혜와 재주는 동네 사람들도 다 탄복하였다. 그래서 가실은 웬 동네에 없을 수 없는 사람이디어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인네나 아이들까지도 ?가실이 더러 좀 해달래야.”하게 되었다.

가실이가 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도 새잡는 기계와 고기잡이 기계도 만드는 것이 한 재미가 되었다. 또 가실이가 부지런한 것이 동네사람의 모범이 되었고 말이 적으나 한번 말하면 그것은 꼭 참말이요 꼭 그 말대로 하는 것을 볼 때에 동네 사람들은 가실을 믿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가실에게는 슬픔이 있다. 백년을 약속한 사람의 소식을 알 수 없고 또 만날 기약이 망연하다. 그래서 주인더러 보내달라고만 졸랐다. 허나 일년 일이 다 끝난 가을이 아니면 보내달란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봄이되어 농사를 시작할때가되면 다시는 결코 간단 말을 아니하였다. 그러나 금년―고향을 떠난 지 육년이 되는 금년―열아홉 살의 떠나가 스물다섯살이된 금년에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돌아가리라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저녁을 먹고 나서 노인을 대하여,

“저를 금년에는 보내 줍시오.”하였다.

노인은 깜짝 놀라는 듯이 돌아앉으며,

“웨 또 간다고 그러나! 내가 지금 자네를 믿고사네. 내 나이 벌써 칠십이야. 자네가 가면 내가 어떻게 사나.”하는 노인의 말소리는 간절하고 떨린다. 곁에서 노파가 역시 떨리는 소리로,

“그러고 말고. 영감이나 내가 장성한 아들 다 전장에 나가 죽고 자네를 우연히 만나서 아들같이 믿고 사는데, 자네가 다면 이 늙은 것들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애어 그런 소리 말어요. 우리 양주가 죽거던 다 묻어놓고.”하고 곁에 앉은 딸의 머리를 쓸면서,

“얘 다리고 아무 자네 마음대로 가게 그려 이 딸자식도 자네에게만 맡기면 자네가 아무 데를 데리고 가더라도 마음이 놓여!?한다.

처녀는 부끄러운 듯이 슬며시 빠져 부엌으로 나가더니 큰 바가지에 삶은 밤을 퍼가지고 들어와서 방 한가운데 놓고 어머니 등 뒤에 간다. 노파는,

“자 가실이 밤이나 먹게. 이제 안 좋은가. 자네도 부모도 없다니 우리를 부모로 알고, 가족도 없다니 이 애를 안해로 삼고 그리고 벌어먹고 지나면 안 좋은가.”하고 밤을 집어 가실을 주며,

“자 어서어서 먹어요 이 애가 자네 준다고 삶은 것일세.”하고 딸을 등 뒤에서 끌어낸다.

“아니야요 어머니도,?하고 딸은 고개를 숙인다. 가실은 밤을 베껴 위선 노인 양주를 들이고 자기도 먹었다. 밤 껍질을 베끼는 가실의 손은 떨렸다. 진실로 가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만일 노인이 강제로 자기를 못하게 한다면 벌써 빠져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뿔상한 세식구가 자기를 믿고 사랑으로 매어달릴때에 그것은 참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가실은 힘이 센 것과 같이 정도 세다. 그러나 정이 센 것과 같이 의리도 세다. 정이 센지라 주인을 참아 뿌리치지도 못하거니와 의리도 센지라 설씨의 딸에게 한번 맺은 약속을 깨트리지 못한다. 가실이 연해 밤만 베끼고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노인은,

“가실이가 우리 두 늙은이의 소원을 일러주게! 다시는 늙은 것의 가슴을 조리게 하지 말게.”하고 노인은 손으로 가실의 등을 어루만진다. 노파의 딸은 근심스러운 눈으로 가실만 바라보고 있다.

가실은 굳은 결심을 얻은 듯이 고개를 번쩍 들어 노인을 보며,

“저도 두 어름을 부모로 알고 있읍니다. 부모처럼 저를 사랑해 주시니 부모가 아님니까.”하는 가실의 말소리는 깊은 감동으로 떨린다. 가실은 눈물 먹음는 어조로,

“그러나 저는 육 년 전 고향을 떠날 때에.”하고 말을 뚝 끊더니 다시 말을이어,

“제 자랑 같아서 아직 말씀을 아니했읍니다마는.”하고 자기가 설영감이라는 노인 대신으로 전장에 나왔다는 말과 일 년 후에 전장에서 돌아오면 그의 딸과 혼인하기를 약속 하였다는 말을 다하고 나중에,

“제가 무엇이 그리워 고향에를 가고 싶겠읍니까. 백년을 맹세한 사람이 밤낮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는 것이 올시다.”하고 말을 끊을 때에 가실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노인양주는 가실이 하는 말을 들을 때에 더욱 가실의 심정이 착하고 아름다운 것을 찬탄하고 가실의 눈물을 볼 때에는 노인양주도 같이 울었다. 딸도 어머니의 등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노인은 한 번 더 가실의 등을 어루만지며,

“자네는 하늘이낸 사람일세 과연 큰 사람일세. 어쩌면 남을 대신하여 죽을 자리로 나간단 말인가. 옛말로는 우리 조상 적에 그런 사람이 있었단 말도 들었지마는 오늘날 자네와 같이 큰 사람은 칠십 평생에 처음보네.”하고 칭찬하기를 말지 아니 하다가,

“내 어째 자네가 웃는 낯이 없고 늘 수심기가 있어 보이기에 그저 고향 생각이나서 그러나 했더니 자네 말을 듣고야 알겠네.”하고 혀를 챈다. 노파도 눈물을 씻고 목메인 소리로,

“내 어째 자네가 차차 수척해 가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그래서 그랬네 그려.”하고 혀를 챈다. 딸은 슬며시 일어나 나가더니 건넌방에서 흑흑 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튿날 아침을 일찍 지어먹고 가실은 고국을 향하여 떠나기로 하였다.

노인양주에게 세 번 절하여 하직하고 삼년동안 정들인 동네의 동구로 나올 때에는 노인은 손수 노자할 돈을 가실의 짐에 넣어주고 노파는 의복과 삶은 닭을 싸서 들어다 주며 동네 사람들도 여러 가지 물건과 먹을 것을 싸다가 가실의 집에 넣어주며, ?부디 잘가라?고, ?죽기 전 한번 만나자.”고 언잖은 얼굴로 작별하는 인사를 하며 동구 밖 강까지 나온다. 가실은 ?동네 어른들께 신세 많이 졌노라.?고 ?그러나 천여리 먼 나라에 다시 올 길이 망연하다.?고 손을 잡고는 작별의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는 또 작별의 인사를 하였다.

나루 배에 오를 때에 노인은 뱃머리에 서서 가실의 손을 잡고,

“부디 잘 가게, 잘 가서 잘살게. 이 늙은 것이 다시 보기야 어찌 바라겠나 마는 가 보아서 설씨의 딸이 다른 집에 시집을 갔거던 내게로 돌아오게. 이제부터 이태동안을 딸을 시집보내지 아니하고 날마다 자네 돌아오기만 기다리겠네.”하며 눈물을 흘린다.

가실도 눈물을 흘리며 다만,

“네…아버지!?할 따름이었다.

참아 손을 놓지 못하여 한참 서로 잡고 울다가 마침내 배가 떠났다. 사공이 ?어야 어야?하고 젓는 서슬에 파랗게 맑은 가을 강물에 잔물결이 일어 배가 저쪽 언덕을 향하고 비스듬이 건너간다. 가실은 뒤를 돌아보며 떠나온 언덕에 모여선 수십 명 남녀를 향하고 손질을 하였다. 그 사람들도 잘가라고 하면서 손을 두른다. 노인은 아직도 배 떠나던 자리에 서서 멀거니 가실을 바라보고 이따금 한마디씩 무슨 소리를 친다.

가실은 배를 나려 한 번 더 저편에 선 사람들을 향하여 손질을 하고 짐을 짊어지고 짚팽이를 끌면서 서리마저 마른 풀 사이로 길을 찾아 동으로 동으로 향하고 간다. 가끔 뒤를 돌아보고 손을 둘렀다. 저쪽에서도 손을 두른다. 가실은 조그마한 산구비를 돌아설 때에 마지막으로 두 팔을 높이 들며 소리를 높여,

“잘 있으오!?를 서너 번이나 웨첬다. 저편에서도 팔을 들고, ?잘가오!?하는 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들린다. 가실은 마음으로 그 노인을 생각하면서 동으로 동으로 신라를 향하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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