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씨 행장기
1
편집ㄷ씨는 오늘도 회색 두루마기에 꾀죄죄한 동정, 원래는 깜장이었던 뿌우연진회색 모자에 코는 벌름하고, 뒤축은 짚신처럼 찌그러진 구두―라는 30년 전 그대로의 그 초라한 행색으로, 이 또한 30년 가까이나 살고 있는 청파 연화봉 마루턱에 다 쓰러져가는 함석집을 나오면서 기침이라기보다는 너 이놈들 오늘은 어디 한번 견디어봐라, 하고 빼무는 듯싶은 앙칼진 애햄! 소리를 치고 한길로 나서는 것이었다. 실상 이 되바라진 기침만 해도 이미 30년이나 된,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세월, 아마 40년 가까이나 된 버릇일 것이, ㄷ씨는 열다섯 되던 해부터 이 사회에 대하여 꽁한 생각을 품은 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남산골 샌님의 외아들로 태어난 ㄷ씨였고 보니 열다섯 이전이라고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언제 한번 딛고 일어서 보리라는 바람〔希望[희망]〕이란 것을 갖고 살아왔었으나 아이들 칼장난처럼 위태롭게 만 보여지던 당파싸움이 급기야 을사조약을 맺게 만들고, 그래도 무슨 도리가 있겠거니 막연한 희망을 붙이고 있는 때 한일합방이란 청천에 벽력이 내린 후로부터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되고 말았었다. 합방이 발표되자 ㄷ씨의 아버지 ㄷ생원은 머리를 풀어헤뜨리고 머리를 벽에다 꽝꽝 들이받아가며 울었었다. 머리가 터졌는지 방안에는 선혈이 흥건했었다. ㄷ씨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진정시키려 들었으나 그것은 헛된 노력이었다.
아버지는 피를 확확 품어가며 온 방안을 뒹굴었었다. 아버지의 몸부림은 샐녘에 가서야 진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이 아니라 종말이었다.
ㄷ생원은 그날 새벽에 자결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네 이놈들, 어디 보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정신을 차리면서 ㄷ씨가 처음 입밖에 낸 말이 이것이었다.
“네 이 죽일 놈들! 당파싸움에 나라마저 팔아먹어?”
나이 열다섯 살에 무엇을 알았을까만 사내자식이 열두 살이면 호패를 찬다던 시절이었고 또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일컫던 ㄷ씨이기도 했다. 아니 어려서부터 권세를 잡지 못한 불우한 남산골 샌님들이 모여앉아서 비분의 눈물 흘리는 광경만을 보면서 커온 ㄷ씨인지라 그 자신도 ‘권세’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위대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들, 권셀 잡았다구 저희들 끼리끼리만 해먹어? 인잴 등용해야지. 저의 놈은 사둔의 팔촌까지두 감사다 원이다 해먹으면서 옛친구의 의리를 저바리구― 어디 들 보자, 이놈들!―”
“암, 두고 봐야지! 화무십일홍이구 달두 차면 기우는 법이지! 언제나 저의 놈들 세상일 줄 알지?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음지두 양지 될 때가 있다는 천리를 알아야지! 천리를!”
“먼저 민가 놈들을 죽여야 해!”
“이가 놈두 죽여야지!”
“백가두 그냥 둬선 안 되지! 그놈들을 한 올가미에다 꽁꽁 등돌려 묶어다가 마포강에다 한꺼번에 집어 처넣어야만 해!”
“아니지, 작두에다 놓구서 목을 댕겅 잘라야지! 그리구 그놈들의 가족을 멸해서 다시는 맥을 못 쓰게 절종을 시켜놔야만 나라가 태령이지!”
“가만들 두시오. 두고 봅시다. 제놈들이 얼마나 해먹는가 좀 두고 보라지! 내 눈으루 보구야 말걸!”
ㄷ씨의 아버지 ㄷ 생원과 그의 친구들은 집에서 빚은 술에 김치 한 그릇을 안주랍시고 갖다놓고는 이렇게 밤들을 세웠던 것이다. ㄷ씨가 권세란 얼마나 좋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안 것도 이때문이었지만 그가 걸핏하면,
“이놈들, 어디 좀 보자!”
하고 벼르는 버릇도 기실은 이 남산골 샌님들한테서 전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문간에 나서면서, “애햄!”하는 기침이 이 세상에 대한 도전처럼 된 것도 그의 아버지 ㄷ 생원한테서 배운 것이요, 세상 매사에 아랫입술을 밑으로 말고 입을 약간 밀죽하니 움직이며 한쪽 눈을 찡긋이 감고서 좋이 못마땅하니 보는 버릇이 생긴 것도 기실 말하자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습성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적이라기보다 지금은 거의 무의식이 되어버렸지만 일체의 권력 앞에 아부를 할 줄 모르는 그 꼬장꼬장한 성격도, 모르는 사람들은 순 서울 태생의 양반인 탓이라고 오해를 하지만 근본을 따지고 보면 아버지 ㄷ생원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은 때문인 것이다.
“거 ㄷ의 아들녀석, 고놈 참 되양되양하던걸―고런 괘씸한 녀석!”
“쥐뿔두 없는 사람이 까치 뱃바닥처럼 흰 체하지―”
“거 ㄷ이란 사람 참 몹시두 깐족이더군! 어떤 땐 딱한 생각이 들다가두 얄미워져서 내밀었던 손두 되굽어든다니까.”이런 것들이 대체로 ㄷ씨에 대한 측근자들의 정평이다.
이런 세평으로만 본다면 ㄷ씨가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도움이라든가 원조 같은 것을 안 받았는가? 실은 그렇지만도 못한 것이 열다섯 살에 일본 세력 앞에서는 단 한푼의 가치도 없는 양반 족보와 아비의 상채와 맞 비길 수 있을 정도의 오막살이 초가 한 채만을 유산이랍시고 물려받은 ㄷ씨가 60이 가깝도록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40년을 살아오고 보니 친구들한테 개개치 않았달 수도 없다. 거기다가 물려받지 않아도 좋을 아버지 ㄷ 생원의 주량까지 물려받은 셈이 되어 아닌 말로 술 한 말을 들고는 못 가도 먹고는 갈 수 있는 대주객이요, 또 사실 열여덟엔가 아홉 때에 취한 풋술에서 60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깨지를 못하고 있으니 평생을 통해서 옛날 돈으로는 십원, 지금 돈으로도 단돈 만원을 한꺼번에 쥐어본 적이 별로 없는 ㄷ씨가 남의 신세를 안졌다는 말도 우스운 이야기다.
그러면 유산도 없고 일평생 직업도 없는 ㄷ씨가 술만은 남의 술을 얻어먹고 살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곰처럼 발바닥이나 핥고 살았느냐 하겠지만 유산은커녕 빚만을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직업이란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드러내놓고 이것이 ㄷ씨의 직업이었더니라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되었다는 것뿐이다.
“조선어 선생!”
이것이 지난 30년간의 그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이 조선어 선생이란 직업도 실상은 그의 가족을 먹여살릴 만한 수입이 안 되었으니 거개가 어엿한 학교선생이 아니라 강습소 아니면 월급도 제날 주지 못하는 학교랄 값에도 못 가는 것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ㄷ씨가 고만한 실력이 없어 그런 건 아니다. 실력으로 친다면 우리 한글을 바로잡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주치강 선생의 수제자로 손을 꼽아도 좋을 만한 학자이면서도 보통학교도 다니지를 않았으니 첫째 인가 있는 고등 보통학교에서는 쓰려야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ㄷ씨의 실력을 인정하는 C와 W고보에서는 교장이 나서서 인가를 맡아 주려고 애도 무진 쓰고 돈도 수월찮게 쓴 일이 있었으나 총독부 학무과의 말이, 아무리 조선어 선생이라 하지만 국어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고보 교유로 인정을 하겠느냐는 것이었고 거기다가 ㄷ씨가 자신이,
“그까짓 왜말만 배우는 학교면 오래두 안 간다!”
이렇게 버티었던 것이다.
“첫째 그 시학관 놈들이 미친놈들인 게 우리 조선말과 조선글을 왜말과 왜글로 가르치라는 건가? 시러베아들 놈들! 즈 말대루 하자면야 사람을 왜글 가나루 써야겠는데 뭐라구 쓴담? 사라무―이렇게 쓴다 치구 즈놈들 얼치기 글룬 쓸 수도 없는 말은 어떡한다누? 닭, 솥, 할―이런 건 어떡한다지?
닭은 다르구, 솥은 솟도, 할은 하루로 이렇게 쓰나? 그럼 그건 또 그렇게 쓴다 치구서 ‘해’같은 건 어떻게 쓸라노? 하이 이렇게 쓰나? 그럼 그건 파리나 재가 되게? 아아니, 대답도 되는군그랴! 기는 것두 되구! 시러베 아들 놈들!”
ㄷ씨는 술 한잔만 들고 나면 벌써 이렇게 깐족깐족 되뇌이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ㄷ씨가 일본말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 성싶은데, 한번은 ‘아 나가찌’란 일어를 가지고 몇 선생들이 문득이 옳으니 일테면이 맞느니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ㄷ씨가,
“거 우리말루 하자면 모름지기란 뜻이 아닐까요?”
이렇게 일러준 일이 있은 후로는 ㄷ씨가 일어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뿐이란 소문이 한동안 돌았었다. 바로 아나가찌를 일러주던 그날이다.
“ㄷ 선생, 그러질 마시구 정식으루 시험을 한번 쳐보시지?”
영어선생 ㄹ씨가 이렇게 권한 것은 정녕코 ㄷ씨의 간궁한 생활을 걱정하고 그의 놀라운 지식을 살리고 싶다는 호의에서였는데 ㄷ씨는 뙤약볕의 콩처럼 튀었던 것이다.
“ㄹ 선생, 뭣이 어째구 어쨌다죠? 네, 한번 더 말씀해주시죠. 잘 못 들었소이다.”
“ㄷ 선생, 노하셨습니까, 난 절대로 다른 의민 아닙니다.”
“아아니, 노엽구 반갑군 말을 알아듣구 난 다음 이야기죠. 난 ㄹ 선생 말씀을 채 못 알아들었쇠다. 자, 한번만 다시 말씀해주시죠.”
“자, 그만두십시다, ㄷ 선생. 다른 의민 아니었으니까요.”
한번 말을 내면 끝장을 내고야 마는 ㄷ씨였다.
“허, 그래두 그러시거든. 노엽긴요. 천만에 말씀. 뜻을 알아듣고 봐야 노엽든지 반갑든지 할 것 아닙니까. 하신 말씀을 미처 못 알아들었으니까 한 번만 더 말씀해주십산 게죠. 자, 뭐라구 하셨지?”
확 달은 인두를 턱밑에다 버쩍버쩍 들이밀듯이 바작바작 달라붙는 통에 ㄹ 선생은 진땀을 쭉 뺐었다.
“자, 뭐라구 하셨던가요?”
영어선생은 기어코 한 말을 그대로 하고야 견디었었다.
2
편집“아이, 내 그렇게 깐족거리는 양반―아주 진땀을 쭉 뺐어!”
ㄹ 선생은 그날을 회상하고서 늘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ㄷ씨가 일평생 강습소 선생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두 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다. 이 3년간이 ㄷ씨의 일생을 통해서 가장 황금시대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니, 두 학교에서 받는 월급이 50원은 되었고 동간에 있는 ㄷ야간중학교에서 10원, 그럭저럭 60원 돈이나 되었던지라 부인의 바늘질 품삯 하나에다 일곱 식구의 목을 매고 살던 시절보다는 이웃집 말마따나 용이 된 셈이었다.
물론 이 3년간의 정식 교원생활이란 것도 ㅎ고보의 교장인 ㄱ씨가 우리 한글에 대해서 지조가 깊을뿐더러 ㅂ씨가 그때 한창 한글의 쌍시옷을 쓸 것이 아니라 ㅅ으로 쌍시옷을 쓰는 것이 옳다, 글이란 말의 기호(記號)이니 얼만 찾을 것이 아니라 발음 나는 대로를 그대로 기록하면 그만이라는 궤변을 주장하면서 ‘구락부’란 간판을 걸고서 문하생도 모집하고 경제계, 재계 그리고 일본 정치 기관인 총독부의 조선 사람 고관들까지 꼬여가지고 시체
‘한글 운동’을 일으키어서 총독부 학무과로 하여금 손뼉을 치게 하였었다. 그래서 총독부에서는 막대한 기밀비가 나왔고 ㅂ씨는 그 돈으로 조선어 학회의 한글 바로잡기 운동을 조장시키기 위한 기관지까지 내었었다. 기밀비의 대부분이 ㅂ씨의 술값과 기생 외입비에 충당된 것을 안 것은 그후 이야기였지만 하여튼 막대한 돈이 뿌려졌던 것이다.
이 ㅂ씨의 한글 혼란책에 팔을 걷고 일어난 것이 ㅎ고보와 ㅈ고보의 두 교장이었다. ㄷ씨가 인가 있는 이 두 고보에 강사로 취임한 것도 기실 그 3년 전부터였고, 정말 ㅂ씨의 한글 혼란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져서 조선어학회의 ㄷ씨와 물맞침을 하게 되었을 때는 학무과에서 ‘묵인’을 취소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ㅈ,ㅎ 두 고보의 교장이 ㄷ씨의 학설을 지지했기 때문에 ㄷ씨의 황금시대는 종막을 고한 폭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우리 총독 각하가 고마운 어른이셔, 내게 또 자유를 주시었거든!”
학무과의 지시로 ㄷ씨를 파면하게 되던 날 교장은 자기 집에다 조그만 술잔치를 베풀어 송별의 뜻을 전했었다. 그 석상에서 ㄷ씨는 이렇게 파안대소를 했다.
사실 이것은 ㄷ씨의 허세가 아니었다. 고보의 3년간은 경제적으로는 ㄷ씨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마는 정신적으로는 또 큰 괴로움을 주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첫째 ㄷ씨는 다른 선생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이 책임은 대부분을 ㄷ씨 자신이 져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체수도 그렇거니와 얼굴도 올망졸망하게 생긴 ㄷ씨는 어떤 편이냐 하면 딴기 적다고 하고 싶을 만큼 안찼다. 같은 말도 팩 쏘아붙였고 조금만 비위에 틀릴라치면 그 사암한 눈을 이등변삼각형으로 모를 지으면서,
“거 뭐라구 그러셨죠?”
하고 따지려 들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진땀을 빼고야 만다.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죠. 난 잘 듣질 못했쇠다!”
이 3년 동안에 ㄷ씨는 학교 안의 그 어떤 선생과도 안 싸운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이놈 저놈 소리까지 나게 한 것은 ㄷ씨의 한결같이 꾀죄죄한 두루마기 때문이다. ㄷ씨는 일평생 양복을 입은 일이 없다. 중처럼 회색 두루마기에 회색 바지저고리에다 신발도 친구 집에서 헌 것을 얻어 신으니 자연 코가 벌름 들리고 뒤축이 짜부라진 것일 뿐더러 언제 보나 다 떨어진 것일 밖에 없었다. 옷이 그렇거든 좀 깔끔하니 몸단속을 했으면 좋으련만 천성은 고양이처럼 깔끔한 ㄷ씨이면서도 그놈의 술이 늘 해어진 걸레처럼 ㄷ씨의 깔끔한 성질을 후줄근하게 만드는 것이다. ㄷ씨는 시학이 온다는 날 이외에는 학교에서도 절대로 술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 정신도 맨송맨송하거니와 말쑥하니 양복을 차린 다른 선생들의 눈에 들 리가 없다.
“아이, 저 ㄷ 선생한테 양복 한 벌 사주는 사람 없나?”
말은 않지만 이렇게 바라기는 ㅈ,ㅎ 두 학교의 모든 선생들의 공통된 감정이었다.
못난 계집이 상 찡그린다는 격으로 이 ㄷ씨는 또 다른 선생들이 업신여기는 데는 질색이었다. 총독부에 이력서를 제출해서 인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난 일본말 할 줄 압니다. 일본글두 쓸 줄 알구요. 어디 그뿐입니까. 일본 가서 일본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거든 이 졸업 증명서를 보아주시지요―이렇게 썼으렷다?―또 사상이 온건하고 품행이 방정할 뿐더러 일평생 단 한 번도 감옥엘 간 일이 없사옵고 금치산을 당한 일도 없사오며…”
아무리 취중이라고는 하지마는 이런 비웃음에 좋다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 내가 한복을 입었기로니 그게 당신들께 그리 큰 불명예가 될 게 뭐란 말이오, 응? 우리 이야기나 좀 해봅시다.”
이런 트집만 나오면 선생들은 모두 들구빼었다.
사실 ㄷ씨의 후줄근한 회색 두루마기에도 다른 선생들의 막대한 창피를 느끼는 터였고 보니 ㄷ씨한테도 고보의 분위기가 유리할 리는 만무였다. ㄷ씨는 시궁에서 발을 뺀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선생들은 또 앓던 이 뺀 것 같다고들 했다.
그러나 ㄷ씨의 두루마기를 성화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얼마 안 있어 오고야 말았었다. 일본의 식민지 국책상 중학교에서 물론 보통학교에까지 ‘조선어’학과를 일체 폐지하고 만 것이다. ㄷ씨는 완전히 이 세상에서는 소용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었다.
“남처럼 자식이나 좀 일찍 둘 것이지 웬놈의 계집애들은―”
ㄷ씨 부인이 이렇게 한탄을 하면 ㄷ씨의 눈은 벌써 모가 진다.
“자식 있으면 자식 턱만 쳐다보구 살까?”
“어이구 참, 기가 막혀서―세상 벙어리가 다 말을 해두 당신일랑 잠자코 있어요. 남편을 하두 잘 얻었으니 자식덕을 안 바라지―사리원 아이가 아들이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아.”
사리원 아이란 출가한 첫딸이다. 그 딸 밑으로 계집애가 하나 죽고 셋째가 아들 태운이었다. 그러나 태운이는 이제 겨우 중학 3년이고 태운이 밑으로도 딸애가 둘이나 있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태만 꾹 참으시면 제가 취직해서 고생 않으시게 할게요.”
그런 말만 들어도 ㄷ씨 부인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조선어 과목이 없어진 후로 ㄷ씨가 맨 처음 구한 직업은 사법 대서소 서사였다. 그러나 자신이 얻은 이 직업도 ㄷ씨는 단 하루를 나갔을 뿐이었다.
일본 가나 쓰기가 죽기보다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얻은 직업이 그때 오직 하나밖에 없던 총독부 기관지 신문의 교정이었다. 세 사람이나 칠념을 넣어서 석 달 만에 겨우 얻은 직업이었고 또 대우도 나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도 ㄷ씨는 보름 만에 팽개치고 말았다. 천황이나 황국 신민이니 하는 글자를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세번째 얻은 직업이 복덕방집 주인의 서사였다.
복덕방 취직은 이렇다 할 수입은 없었다. 마침 집이 더러 팔리기는 했으나 몇 푼 안 되는 법정 수수료를 네댓이 나누고 나면 외상 술값도 채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맨 마지막으로 얻은 지업이 소위 필생(筆生)이란 것이었다. 필생 모집이란 광고만 보고 갔더니만 약방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봉투 겉봉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한창 볶아치는 판이어서 약재가 없어 못 파는 터라 대부분은 봉투도 붙이고 약도 썰고 신역이 고된 데 비해서 보수란 시답잖기 짝이 없었다. 간신히 한 달을 채우고서 다시 복덕방으로 기어들었던 것이다. 일거리가 없어 그렇지 그가 가져본 직업 중에서는 그래도 마음만은 가장 편한것 같았다.
그 해 태운이는 중학을 마치었다. 그러나 이 믿었던 아들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전문에를 뛰어들어가고 말았다. 가정 교사를 해서 고학을 하겠다는 아들을 말릴 도리가 없었다.
“오오냐, 부디 공부나 잘해라.”
이렇게 말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허지만 지금은 그까짓 중학쯤 나와가지구는 도리가 없어요.”
“오냐, 잘했다.”
아들도 집을 나갔다. 중학에를 못 가서 영옥이와 영희의 월사금은 없어졌다지만 태운이의 용채, 쌀값에, 나무에, 하루도 먹지 않고는 못견디는 남편 ㄷ씨의 술값이 ㄷ씨 부인의 두 어깨에 내려덮이었다.
“제발 술이나 좀 끊었으면…”
이렇게 바라고 핀잔을 주고 어떤 때는 윽박지르기도 하는 부인이었지만 초 올초 올하게 앉아서 손만 싸악싸악 비비고 있는 ㄷ씨를 보면 주전자를 들고 일어서는 부인이기도 했다.
“약줄 잡수시면 그 대신 진질 안 잡수시니까 마찬가지지. 진지 대신이니까―”
이렇게 스스로 위안을 하는 부인이기도 했었다.
3
편집생에 대한 권리까지를 박탈당한 한글학자 ㄷ씨에게는 또 한 재난이 덮치었다.
일본이 태평양에서 개 몰리듯 하게 되자 조선 동포한테도 군문을 열어준다는 구실로 전문 대학생을 모조리 잡아가게 된 것이었다. ㄷ씨 부인이 졸업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태운이가 학병이라는 이름으로 빨간 쪽지를 받았던 것이다. ㄷ씨 부인은 미쳐서 날뛰었다. 종일 울었다. 울다가 지치면 얼빠진 사람처럼 머엉하니 앉아만 있었다. ㄷ씨는 또 다른 의미로 펄펄 뛰고 있었다. ㄷ씨는 아들을 불러앉히고 다짐을 받았었다.
“너 죽어도 나가선 안 된다, 죽어도― 만일에 나가면 내 자식이 아니다.
안 나가지?”
“네.”
“그래야지! 그래야 내 자식이지! 학병이라니? 사내자식으루 태어나서 놈들한테 총은 못 겨눌지언정 놈들을 위해서 총을 메고 쌈터로 나가? 죽음터로 ? 이놈들이 지게 되니까 우리 젊은 애들이나 갖다 죽이잔 수작이지! 죽일 놈들! 튀어라! 튀어! 튀어!”
“튀다니! 튀긴 어디루 튀어요? 바늘이라구 옷깃으루 들어가겠수, 귀뚜라미라구 벽틈으루 들어가겠수?”
“튀어! 튀어! 어디루든지 튀어!”
ㄷ씨는 거품을 부걱대며 서둘렀다.
“그렇잖건 칼을 물구서 엎드려서 죽어라! 사내자식으로 태어났다가 원술 위해서 죽다니!”
태운이는 튈 요량이었다. ㄷ씨 부인은 벌벌 떨면서도 아들의 탈출 준비를 갖추었다. 입영 이틀을 앞둔 몹시 추운 날 밤이었다. 태운은 노잣돈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위해서는 술 한 병과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기 한 근을 어떻게 구해가지고 들어와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권하고 있었다. 왼종일을 촐촐하니 지낸 ㄷ씨건만 술잔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두 번 세 번 아들이 권하자 ㄷ씨도 잔을 들었다. 마시는데 눈물이 좍좍 흐르고 있었다. 울면서 ㄷ씨는 또 마시고 또 마시었다.
“잔 받아라. 아비가 처음 주는 이 술이다. 어쩌면 이 술잔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술이다. 아니, 이 술 한 잔이 네 목숨을 구해줄지도 모르지.
자, 받아라.”
태운은 느끼며 받아 마시었다. 어머니도 울고 아버지도 울었다. 누이들도 울었다.
술병이 드러난 때 태운이는 일어섰다.
“갑니다, 아버지.”
태운은 아버지 앞에 절을 했다.
“어머니, 갑니다.”
어머니는 절을 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뒹굴었다.
“가다니, 태운아! 얘야, 태운아!”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아들이었다.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였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목숨만은 살아 있거라.”
이렇게 아들은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태운이가 간 곳은 군문이었다. 피신을 단념하고 웃으며 소집에 응했던 것이다. ㄷ씨 부처는 태운의 동무가 전해준 편지를 보고서야 처음 알았었다. “아버님의 영을 어긴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이 자식이 못나서는 아니옵니다. 비겁해서도 아니옵니다. 첫째는 저의 실종으로 아버님께 큰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고, 둘째는 전지에 가면 정말 도망할 기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옵나이다. 아버지는 슬퍼하실 줄 아옵니다. 그러나 후에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저를 칭찬해주실 줄 믿삽고 있사옵니다!”
이런 뜻이었다.
“내버려둬라. 저두 생각이 있겠지. ㄷ의 자식이란 생각이야 없을라구.
자, 인저 생각을 다신 말자구!”
태운은 달포 만에 산해관으로 떠났다. 엽서가 석 장,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바로 뒤미처서 모 방면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서신이 딱 끊기었었다. 헌병대에서 여러 번 수사를 온 것으로써 탈출에 성공한 줄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ㄷ씨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아니, 그 어려움이 날로 심해가고만 있었다. 머슴 애들을 잡아가더니만 이번에는 계집애들을 잡아간다. 정신대란 명목이었다. 굶주림과 불안과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겨울이 갔고 봄이 왔고 또 여름이 왔다가 가려고 할 무렵이었다. 1945년 8월 15일과 함께 해방의 종소리는 삼천리 방방곡곡에 우렁차게 울렸던 것이다.
“아!”
ㄷ씨는 눈물을 쏟았다.
“긴 36년이었다. 오늘까지 살기를 잘했다. 인제는 내일 죽어도 한은 없다!”
ㄷ씨의 새로운 생의 설계는 시작되었다. 태운이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다섯이 같이 탈출하다가 둘은 불행히 죽고 셋만이 중공군으로 갔다가 만주를 거치어 나왔다는 것이다. 꼭 두 달 만이었다.
ㄷ씨는 십 년 동안 돌보지도 않았던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그립던 한글을 대하니 첫날은 자꾸만 울어졌다. 두 달 만에 책이 하나 이루어졌다.
「한글 독본」이란 것이었다. 일생 처음으로 큰돈이 ㄷ씨의 손에 쥐어졌었다. 그 돈으로 고기를 사고 술을 받고 했었다.
“자, 우리 ㄷ씨 부인, 오랜동안 고생만 시키었소. 인저야 밥 굶기겠소.
자, 고기 좀 드오!”
ㄷ씨 부인은 눈물을 좌르르 쏟으면서 또 웃고 있었다. 웃으며 먹으며 울고 있었다. ㄷ씨도 눈물이 글썽해졌었다. 술 때문만도 아니었다. 영희는 볼을 깨물었다고 법석이었다. 피까지 나온 모양이건만 역시 웃고 있었다. 그러나 ㄷ씨 가족의 오늘의 웃음이란 통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웃는 줄로만 알고 보면 언젠가 울고 있었다. 우는 줄 알았는데 울음이 아니다. 꽃송이처럼 웃고 있다. 입은 웃고 눈은 울고 그런 주책없는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ㄷ씨 가정의 이 기쁨은 그다지 긴 것이 못 되었다. 몇 가지의 불행이 함께 덮치고 말았던 것이다. 첫째의 불행은 사리원으로 출가한 맏딸네 네 식구가 그야말로 발간 몸으로 겨울에 들이닥치었던 것이요, 두번째 생긴 불행은 태운이가 어느 사이에 좌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론상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언제나 무기가 떠나지 않았고, 제 방에는 언제나 두셋씩 모여서 밤을 새워가며 숙덕대었다. 가끔은 등사를 하는 눈치였다. 무슨 위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태운아, 거기 앉거라. 너 이번 굉장한 벼슬을 했다며? 거 벼슬 이름이 뭐라는 거냐?”
태운은 잠자코만 있었다.
“말 좀 해봐. 그 벼슬 이름이 뭐라지?”
“……”
“거 왜 말을 못하나? 자식이 벼슬을 했는데 아비가 자식의 벼슬 이름두 몰라서야 되겠느냐? 거 뭐라지? 허, 그 자식이란―그래, 아비 친구가 자식의 벼슬 이름을 묻는데 모른다구야 말할 수 있느냐, 그렇잖아? 거 뭐라지?
아비두 좀 알자꾸나.”
“……”
한 시간 동안 문초가 계속되었었다. 그런 뒤에 마지막 선고가 내리었다.
“공산당이 우익 집에 있어서야 되겠느냐. 자, 네 물건을 챙길 시간두 필요할 게니 한 시간 여유는 주마. 지금이 여덟시 반, 아홉시 반 정각까지 내 집 문밖에 나서지 않는다면 난 널 죽일지도 몰라―”
세번째의 불행은 인제는 최소한도의 생명 연장은 되리라고 믿었던 꿈이 정말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었다. ㄷ씨는 책 두 권에서 4,5만원 만져보았을 뿐 다시는 도리가 없어진 것이 웬만한 기관에는 영어 하는 사람으로 채워졌었고 영어 못하는 어학자의 저서는 두 겹 봉투가 다 해지도록 들고 다녀야 거들떠보는 출판사도 없었다. 일생을 어학에 바쳐온 ㄷ씨를 위해서는 중학 선생 자리가 준비되어 있을 뿐이었다.
반년 동안 ㄷ씨는 자가품이 나게 쫓아다니다가 벌떡 나가자빠지고 말았다.
ㄷ씨는 결심을 하고 다시 백묵을 잡았다. 그러나 반년 동안에 물가는 등차 급수로 뛰어올랐다. 1전 하던 성냥이 10전이 되고 1원이 되고 2원이 되었다. 4년 동안에 천배로부터 5만 배까지로 뛰어오른 물가에 ㄷ씨의 하품하는입은 미처 다물어질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장차 쓰일 때가 한 번은 있으리라 싶어 30년간 그 즐기는 술을 줄여가며 한 권 한 권 사모았던 책들은 정말 쓰일 날을 당하고서 헐값으로 빠져나갔다. 오늘은 기둥, 내일은 서까래, 모레는 구들장, 이렇게 오막살이집조차 벌써 ㄷ씨의 소유가 아닌 셈이었다.
4
편집“애햄…”
기는 꺾였을망정 그의 기침은 역시 다구지다. 아니, 날로 더 앙끼가 들어 왔다. ㄷ씨는 30년래의 버릇으로 대문간을 나서서는 자기 집을 한 번 쓰윽 쳐다본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여느 때보다도 그 쳐다보는 시간도 길었거니와 얼굴에 나타난 걱정도 전에 없이 심각한 것이다.
그런 일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그러나 ㄷ씨가 자기 집 대문간을 쳐다보고 그렇게 언짢아하는 까닭을 알아차리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을 요하지는 않았다 ― ㄷ씨는 이번에는 약간 풀이 죽은 세번째의 기침을 하고는 이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흥, 어쩌면 오늘은 너하구두 이별이 되구 말려나보다…”
집을 팔기로 한 것이었다.
ㄷ씨가 30년이나 살던 이 집을 팔기로 한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다. 복잡하대도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성질이고 보니 복잡 운운할 것도 못 되겠지만 ㄷ씨로 본다면 실로 마음 어지러운 경우다. 금융조합의 일 번 저당은 돈값이 떨어지는 통에 겨우 벗겨놓았지만 나무전하는 박 노인한테 5만 원, 복덕방 채 영감한테 10만원, 반찬가게 정 과댁한테서 3만 원―이렇게 무더기돈이 세 곳인데다가 아내가 바느질품 단골집에서 만원, 5천원, 천원, 또 천원, 이루 주어 칠 수도 없을 만큼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해놓았으니 이자를 따지기만도 숫자하고는 통 인연이 없이 살아온 ㄷ씨에게는 머릿골치 아픈 일이다.
아내와 딸들은 다 쓰러진 오막살이나마 이 집을 팔고는 어디로 가느냐고 날이면 날마다 걱정이지만 ㄷ씨한테는 그런 것은 나중 걱정이고 우선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그 많은 빚을 어떻게 찢어발기느냐는 것이요, 또 그보다도 앞서는 걱정이 할부부터 1할, 1할 5부, 보름에 1할이며 한 달에는 2할이 되는 폭인 그 많은 빚의 이자를 따질 일이 한 걱정인 것이다. 그것도 원금 얼마에 한 달에 1할이면 1할, 2할이면 2할, 이렇게 똠방 똠방 따진다면 아무리 산술을 배우지 않은 ㄷ씨라기로니 그만 것쯤 못 따질 것도 없겠지마는매달의 밀린 이자가 원금으로 가산이 되니 새끼가 또 새끼를 치고 손자가 또 손자를 본 빚들이어서 생각만 해도 정신이 헛갈린다. 그렇다고 내어버려 둘 수만도 없는 것이 이대로 두었다가는 종손의 몇 대 손이 이자를 물지도 모르니 집을 팔자는 아내를 윽박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원래 먼저 집을 팔자고 개구를 한 것은 아내가 아니라 ㄷ씨였다. ㄷ씨로 본다면 이자가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또 손자를 치고 하는 빚 감당보다도 당장 문간에를 나갈 수가 없이 빚쟁이들이 길에서 붙들고 없는 놈의 돈을 강파듯이 내어놓으라고 진을 빼는 데 성이 가시어서였다. 아내만 해도 남편이 그렇게 졸리는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요 ㄷ씨가 나가고 없을 때면 나이 50이 지난 처지라 내외도 없어진 세상이 되어 쓰윽 마루 끝에까지 영감쟁이들이 들어와서 버티고 있기도 할뿐더러, 자잘구레한 빚들은 모두가 그 자신이 끌어다 댄 것이고 보니 자연 안돈이 될밖에 없고 2천원 머리와 1천5백 원짜리 두 머리는 동네 여편네들이 재미삼아 취리를 하는 곗돈이 되어 놓으니 처음에는 계의 회계라는 솜틀집 여편네가 몇 번 드나들더니만 받기 힘들겠다는 눈치를 채인 후로는 여편네들이 셋씩 넷씩 몰려와서는 악머구리 끓듯 단간방에 들어와서 버티는 것이다. 그래서 ㄷ씨 아내도 몇 번이나 집을 팔아치우고 툭툭 터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을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팔고 나서 말만큼씩한 두 계집애들을 끌고 어디로 가느냐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힌다. 그래서 남편의 입에서 집을 팔자는 말만 나오면 펄쩍 뛰어 보이었던 것이다.
“글쎄, 그 분수 좀 그만 떨어요. 이 답답한 양반아, 이 엄동설한에 집을 팔구 어디루 나앉는단 말씀예요. 설마 집에 든 놈 끌어내지야 못하겠지.”
“그럼 어떡헌다? 사람이 배겨날 재간이 있는가, 첫째 창피해서―”
“창피? 이름은 어서 잘 얻어들으셨소. 창피란 다 어디 당한 말이에요. 그래, 나이찬 계집애들을 데리구 길바닥에 나앉는 게 창피요, 집에서 빚 졸리는 게 창피요―창피란 글잔 부잣집 옥편엔 있나봅니다만 난 그게 무슨 뜻인지 두 몰라요. 창피한 줄을 알거든 약줄 조곰만 덜 자시지.”
“허, 그놈의 술 소리 또 하거든―뭐 우리가 술 때문에 안 된 것 있나?”
“흥, 술의 덕본 것두 있는 것 같지 않으우.”
“글쎄, 그런 게 아니래두 그러거든…”
돈에 몰리면 언제나 늘 하는 소리다.
“임잔 걸핏하면 내가 술루 패가망신이나 한 것처럼 말하지만, 술을 먹었으면 내 돈으로 먹었소? 세상 놈들이 술은 싫대도 먹으라지만 동전 한푼 둘러주진 않으니까 그렇지. 그놈들 심사가 술 천원어치 살 것 5백원어치만 사구 5백원만 뀌이래두 돈이 없다구 안 주면서도 술은 2,3천원어치씩 사거든.
먹은 술을 토해서 팔아오란 말요?”
“왜, 누가 영감보고 돈 꾸어들이랍디까? 뭐든지 생활해서 벌어오랬지.”
“허, 누가 날 써줘야 말이 되잖나.”
언제나 해결도 없고 보람도 없는 말다툼이 수효도 모르게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자는 자꾸 새끼를 치고 빚쟁이들은 솥이라도 떼어갈 듯이 달구치는 통에 ㄷ씨 부인도 견디다 못해서 집을 내어놓기로 한 것이다. 볶이다 볶이다 못해서 복덕방에 들러 상의를 했더니만 잘하면 6십만원은 받겠다는 바람에, 그러면 빚을 벗고도 2십만원은 떨어질 성도 싶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으로 어디 사랑채 같은 데 전세라도 얻어 나가는 것이 약은 수지 뭄짓뭄짓 하다가는 그나마도 이자가 다 집어먹고 말면 그때는 정말 옴치고 펼 수도 없으리라 싶었던 것이다. 그래 막상 팔기로 하고 나니까 이번에는 또 ㄷ씨가 좀더 보자는 것이다.
“글씨, 두구 보긴, 분수 적은 양반이 또 이러신다냐? 두구 보면 밥이 금알 낳아준답니까요? 건너다봐야 절턴데 두구 보긴 뭘 두구 봐! 인제 영감은 가만히 앉아서 내 하는 것만 보구 계셔요.”
“해방두 됐구 세상두 뒤집히어 여자두 대신을 하는 세상이 됐으니 여편네 말두 좀 세워봅시다그려. 그까짓 되지두 않은 책 믿구 있다간 게두 구럭 두 놓치겠수?”
“남녀 동권이로군.”
ㄷ씨는 픽 웃고 물러나앉고 말았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해방이 되자 이제 우리글도 쓰일 때가 왔느니라 싶어 부랴부랴 만든 「한글 독본」과 「우리 글과 우리말」이 재판이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두 권만 다 재판이 된다면 한 5십만원은 될 성싶었고 그렇게만 된다면 우선 빚을 벗고서도 쌀가마니나 팔 수 있으리라 싶어 3일에 한 번씩 책사에를 들러보는 것이나 종이값이 뛰었느니 인쇄료가 올랐느니 교과서가 밀려서 째이느니, 말하느니 어려운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이유는 딴데 있는 것을 ㄷ씨는 발견 못했던 것이다. 물론 출판사에도 그런 애로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재판이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종이니 인쇄비니보다 과외 독본으로서의 인정이 잘 안 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ㄷ 선생! 혹 ㅍ씨 모르시나요? 그분이 들면 인정이 될 텐데요. 인정이 안 된 건 지금 참 팔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만 된다면 낼이라두 무슨 돈을 끌어서든지 시작해보겠습니다만!”
그것은 종이니 인쇄비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ㅍ씨란 그의 제자이기는하지만 ㅍ 자신이 만든 「한글 풀이」가 있었고 ㄷ씨의 책을 인정한다면 ㅍ씨 자신의 책에 큰 영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단념을 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인세를 7부에만 해 준다면 손이 가더라도 재판을 찍어볼 의향이 있는 듯이 말을 비친 것이다.
“7부에?”
“네, 요샌 종이값하며 인쇄비에 또 세금이 있구 그렇게 해두 통 수지가 맞지를 않습니다.”
“7부란 말이지?”
“네.”
출판사 주인도 양심에 가책이 되는지 외면을 하며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만두시오.”
하고 ㄷ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운 생각을 하면야 7부 아니라 단 5부에라도 몇 천부 찍었으면 싶소만 나 때문에 다른 저자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니까 난 응할 수가 없소.”
“미안합니다.”
“나쁜 자식!”
ㄷ씨는 출판사를 나와서 칵 가래를 뱉었었다.
“인세가 1부까지 떨어질 때까지 출판업을 해먹어라! 괘씸한 놈들!”
이렇게 출판사에 속은 ㄷ씨는 또 한번 헛물을 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지형을 적당한 값에 인계만 해준다면 한 2천 부쯤 찍겠다는 것이었다.
인세도 1할 2부는 주겠다고 하니 한 10만원은 되겠고 둘 다라면 2십만 원 돈이었다. 그러나 이 꿈도 헛꿈이었다. 먼저 출판사에서 기회 보아 자기가 하겠다고 강경히 거절을 할뿐더러 그 시기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판을 하겠다는 출판사에 새로 재판을 하도록 교섭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뉴월 소불알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다.
“그럼 어디 팔기루 해봅시다. 집은 볼 게 없지만 터가 40평이나 되니 한 7십만 원 받았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30년이나 살던 집을 팔기로 ㄷ씨 부처는 결정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팔려고 드니까 통 작자가 나서지를 않는다. 뻔질나게 드나들기는 하나 보고 가서는 그만이다. 나중에 복덩방에 가서 들어보면 집이 다 쓰러져가느니 방이 좁으니 칸살만 컸지 벽이 나자빠졌느니 트집뿐이었다.
사실 그것은 또 다 옳은 이야기였다. 칸살이 큰 것이야 흠이 될 게 없지만서까래도 중깃을 들었는지 벽은 제멋대로 안고 자빠졌고, 산비탈이라 습하지도 않으련만 아궁이에서는 첫여름부터 물이 났고, 문새가 맞나, 방이 밝은가, 팔고 싶은 ㄷ씨 자신도 집자랑을 할 재료는 하나도 없었다.
이 집을 사자는 사람이 나선 것이다. 처음 사내가 우선 보고 이튿날 부인이 와서 보고 가더니 며칠 뜨음해서 또 흥정이 뻐개지나 했더니만 어제는 내외가 다시 와서 보고서 값만 맞으면 내일이라도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값을 맞추자는 것은 이쪽에서는 매칸 7십만원을 달라 했고 저쪽에서는 6십5만 원에 하라는 것이다. 집주름은 5만원을 반씩 갈라붙이어서 2만 5천 원만 깎도록 해볼 테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입은 삐뚤어두 말은 바루 하랬다구 따지고 보면 이게 집값에나 갑니까?
집을 얼른 팔아야 나두 돈을 받겠기에 바가질 씌우는 거지요. 그러구 이 사람은 터가 양광스러우니 올봄에 다 헐어치우구 새뜻하니 짓자구 하는 노릇입니다. 터 보구 사는 게지 집에 들자구 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작잔 꼭 작잡니다. 더 버티다간 아주 놓치리다.”
집주름 말도 제 욕심만 차리는 말로만 들을 것은 아니었다.
“2만 5천원쯤은 깎아주지.”
ㄷ씨의 배짱은 벌써 정해져 있는 세음이었다.
채광이 좋건 나쁘건 아궁이에서 건수가 나건 말건 스물여섯 해 동안 우리의 ㄷ씨가 몸을 담아 있던 연화봉의 함석집은 세계 정신의 상징인 유엔 감시하에 역사적인 남한만의 5 ․ 10선거가 거행되던 5월 중순에 날아갔다. 시시각각으로 늘어가는 빚도 빚이었지만 한번 팔기로 마음을 작정하고 난 후부터는 지금까지는 몰랐던 집의 흠이 자꾸 눈에 뜨이었고 몸담아 있을 때는 그렇게 눈에 뜨이지 않던 사소한 주택으로서의 결점도 자꾸 돋보이기만 해서 온 집안이 집을 팔지 못해서 성화를 대었지만 막상 떡 팔리고 나니 장차 집을 내어놓고 어디로 갈 것이냐는, 일찍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집 없는 설움이 괴물처럼 엄습해오는 것이었다. 돈 갖구 집 못 구할까 하던 막연하던 위안도 돈을 막상 손에 쥐고 보니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일평생 생각해 본 일조차 없던 6십7만 5천원이란 천문학적 숫자에서 받던 흐뭇한 감회도 3분지 2 이상이 그 자리에서 없어질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3만원 원금에 열한 달이면 1할만이라도 3만 3천이니 6만 3천원하고, 정과 댁의 원금이…”
딸들을 앞에 앉혀놓고 ㄷ씨가 이렇게 계산을 하려니까 아내가 시름없이 쪼그리고 앉았다가 핀잔을 준다.
“아아니 그래, 그 사람네가 1할 이자만 쳐 받겠답니까?”“우선 1할만 따져보잔 말이지!”
“건 뭣하러 그래요. 언제 주면 안 주나? 따질 건 따져주구 사글셀 구해 보든지 전셀 구해보든지 짐작이 나설 거 아녜요? 문구멍으로 보느니 열어젖히 구 보지, 두구 보면 내것 된답니까?”
“허, 인저 그만해 둬.”
“그만해 두긴, 얘들아, 비켜라, 내 부를게 놔봐.”
이런 싸움 끝에 모조리 주어 치고 나니 4십만원이면 될 줄 안 것이 4십8만 원 각수다. 끽 남아야 2십만원이 채 못 되는 푼수다.
“그래도 그것이나마 남기가 다행이오.”
ㄷ씨는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는 술 한잔에 5십원 치면 그만해도 4백 잔 값이나 대포로 계산한대도 2백 잔은 되느니라 속셈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ㄷ씨가 이 집 판 돈으로 술을 먹어치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숫자와 관련이 없이 살아온 ㄷ씨인지라 술값으로 돈을 계산하는 것이 편했을 뿐이다.
“2십만원이면 몇 잔 값이나 되겠수?”
아내가 ㄷ씨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이렇게 말을 하는 통에 ㄷ씨는 얼굴이 붉어지며 머리를 긁는다.
“만자가 들었으니까 아주 큰돈 같은가보구려. 집 한 칸에 문 밖으로 나가서 10만원이에요! 시내선 한 칸에 얼만 줄 아시우? 이불 한 채엔 얼만 줄 알아요? 목으루 해도 10만원이에요―언제 비단 이불 해줘보게!”
언제나 ㄷ씨 부인의 신세 한탄은 이렇게 딸 치울 걱정에서 시작이 된다.
그러면 그 끝에는 반드시 아들 태운이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상례임을 아는 ㄷ씨는 딸의 시집 타령이 나오자 꽁무니를 뺄 양으로 궁둥이를 들먹거린다.
“공산당이든 무슨 당이든 그것이라두 눈앞에 있었으면!”
하고 시초를 하고서,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더구면서도 다 늙게 자식을 따라가질 않구서 이 백사지 땅에서 뭘 얻어먹자구 남았는지 모르지. 소두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뭘 믿구서 이 도깨비 다락 같은 데서 살아보겠다구―”
넋두리가 시작이다. 태운이를 찾아 이북으로 가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는 소리다.
해방 직후 태운이는 정치운동을 한다고 통 집을 비우고 다니며 아버지 ㄷ씨와 물맞침도 여러 번 했다. 태운은 제가 좌익에 가담하는 데 그치지만 않고 아버지 ㄷ씨까지 끌어넣으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형세가 이롭지 못하자이북으로 뛰고 말았던 것이다. ㄷ씨 부인은 좌익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러면서도 남편한테 그래도 늙어 자식을 따라가야지 이 백사지 땅에서 자식도 없이 두 늙은이가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이북 가기를 권했었다.
그럴 때마다 ㄷ씨는 그 깐깐한 말소리로,
“아아니, 어딜 가자구? 응, 어디를?”
“이북으로 걜 따라가잔 말예요!”
“그래, 이북이란 데가 어디 붙은 나란가? 인도 남쪽이던가 불란서 동쪽이던가, 어느 쪽이오?”
이런 식으로 깐족깐족 되뇌일 뿐 나중에는 자식이 들어와도 통 대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나 기어코 부자는 물맞침을 하고야 말았다. ㄷ씨는 아들을 경찰에 넘기겠다고까지 서둘렀고 아들은 또 아들대로 ㄷ씨를 반동 학자라고까지 나댄 끝에 정말 이북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5
편집ㄷ씨는 무능하고 보수적―아니 사상적으로 너무도 무색(無色)한 아버지를 버리고 이북으로 탈출했던 아들 태운이가 집에서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설사 알았다 한대도 지금의 ㄷ씨한테는 몰랐던 것이나 진배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ㄷ씨는 취해 있었다.
ㄷ씨가 자기 집(아니 이미 남의 집이 되어 있는―)에 다다른 것은 새벽 한 시가 훨씬 지나서다. 평시 같으면 십분 내외밖에 걸리지 않을 연화봉 고개를 올라오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비는 그때까지도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우비도 없으니 노다지로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데다가 오줌까지 절절 싸대었으니 당목 겹바지저고리가 천 근인 양 휘감길밖에는 없다. 대님이나 풀어졌으면 하련만, 발목에 자국이 나도록 야무지게 매는 것이 ㄷ씨의 버릇이다. 버릇이라기보다는 그의 성미다. 그러니 겉에서 배어든 빗물에 팅팅 불은 옷에서 흘러내리는 물에다 오줌까지 싸대었으니 바짓가랑이에 물이 고일밖에는 없다.
“에이, 빌어먹을―다리는 왜 이리 무겁담! 무슨 놈의 가을비가 장마철처럼 쏟아지는구…”
ㄷ씨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연화봉 마루턱까지 올라섰다. 이 군소리 끝에는 반드시 남의 가랑이 속에다 오줌을 싼다고 욕설을 했으련만 그런 말이 없는 것을 보면 벌써 오줌사건은 잊어버리고 만 모양이다. 정말 ㄷ씨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취중이라도 많은 가솔이 우로를피할 수 있는 오직 한 채의 집을 팔아서 마지막으로 술을 먹어치웠다는 의식이 전혀 없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러나 ㄷ씨는 조금도 그것을 뉘우치지도 않았고 생각해보려고도 않았다. 내일부터는 전 가솔이 거리에 나앉지 않으면 안 된다. 가솔뿐이 아니다. ㄷ씨 자신 내일부터는 가마짝을 덮고 남의 집 추녀 끝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ㄷ씨는 오직 유쾌하기만 했다. 어제까지도 자기가 들어가서 살던 집이 오늘부터는 내 뱃속에 들어갔거니 생각하니 통쾌하기만 하다. 지금처럼 막걸리만 먹는다면 아직도 달포는 댈 수 있을 술밑천을 불과 두어 시간에 툭툭 털린 생각을 하면 분하기도 하련만 ㄷ씨는 그런 생각은 해볼 염량도 않는다. 아니, 술이 깨어 정신을 차렸더라도 ㄷ씨는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ㄷ씨는 잃었던 청춘을 다시 찾은 것처럼 기쁜 모양이었다. 집 한 채가 통째 날랐건, 바지저고리가 물투성이가 되었건, 오줌을 쌌건 말건 그는 오직 기쁘기만 한 모양이었다.
“흥, 뭣이 어쩌구 어째? 뭐 집도 없다구? 없으니 어쩌란 말이지?”
취중이라고 해서 깐족대는 습관이 없어졌을 리 만무다. ㄷ씨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의 고기잡이 불처럼 몇 개의 전등만이 껌벅이는 장안을 내려다본다.
“아니 그래, 내가 집이 없으면 제놈들이 사줄 테니 걱정인가 말야. 집이 없어두 내가 없구 술을 먹었어두 내가 먹었구, 늙은 놈이 젊은 계집애들 돈푼 좀 주기로니, 아니 어떤 놈이 시비야, 응. 시비할 조건이 안 되잖아? 집을 팔아 술을 먹으면 가솔은 어쩌느냐구? 웬 걱정야, 웬 걱정이냐 말야. 내 처가 제놈들 처란 말인가. 남이야 집이 있건 없건 도시 참견할 조건이 안 닿는단 말이거든!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
ㄷ씨는 눈병 앓는 사람의 상판처럼 지저분한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고는 이런 소리를 투덜댄다.
비는 아직도 여전하다.
그래도 우리 ㄷ씨는 집만은 제대로 찾아갔다.
집에 이르니 일각문이 꽉 닫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30년간 정든 집이었다. 문전에 서니 문득 정신이 든다. 내일부터는 어느 집 문전에 가서 서야 옳으냐는 생각에 ㄷ씨는 잠시 멍청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헛헛헛헛…”
ㄷ씨는 어이가 없어 웃어본다.
“방공호도 한 개 마련해놓지 않구서 홀딱 마셔버렸단 말이지? 흐흐흐흐―, 격에두 안 맞게시리 카페란 델 다 가구? 아이들은 떡 한 갤 못 얻어먹어 껄떡하는데 백원짜릴 막 뿌렸단 말야, 흐흐흐흐…”
일각 대문 고리를 붙들고 ㄷ씨는 허들겁스럽게 웃고 있다. 눈물은 울 때만 나는 것이 아닌가보다. 분명히 통쾌해하고 흥겨워하는 ㄷ씨의 양 볼에는 눈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ㄷ씨는 문을 두드리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양철지붕인지라 빗소리가 집어삼킨다. 세번째서야 대문이 열렸다. 물론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말소리는 분명히 아들의 음성이었다. 이북에 가 있어야 할 아들 태운의―
“네가 누구냐?”
“접니다. 태운입니다, 아버지.”
“태운이? 어, 네가 돌아왔구나! 네가―”
ㄷ씨는 팔을 내민다는 것이 몸까지 기울여버렸다. 술기운으로만 버티다가 술이 깨니 되레 기운이 폭 죽는 모양이다. 술로만 일생을 살아온 ㄷ씨다.
취해 있는 동안만이 오히려 몸과 마음의 중심이 잡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ㄷ씨는 아들의 팔이 닿기도 전에 일각문을 짚고서 나동그라졌다. 문짝이 안으로 열리면서 문지방에 허리를 걸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우중에 우비도 없으시구서―”
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일으키며 하는 소리다
“울도 없이 사는 인생한테 우비쯤 있단들 뭐 그리 신통할까부냐.”
침을 뱉듯 ㄷ씨의 하는 말이다. ㄷ씨 자신은 휙 해 내던진 말이었지만, 아버지의 일생을 보아온 아들한테는 가슴이 아픈 말이었다. 해방 전의 ㄷ씨의 생을 치욕의 생이었다고 한다면 해방 후의 그의 생은 굴욕 그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ㄷ씨는 적치 동안 깨끗이 살겠노라 갖은 애를 써왔었다.
아니, 이렇게 말한다면 오히려 ㄷ씨를 모욕하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ㄷ씨가 그런 것을 의식하고 살아왔던 것도 기실은 아니다. 생리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왔을 뿐이었다. 일인한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치욕의 녹을 먹지 않고 산다는 것, 그것은 그의 생리였다. 이 개인의 생리가 민족의 생리와 우연히 합치되었을 따름이었다. 8․15는 민족을 해방시켜주었을 뿐 ㄷ씨를 굴욕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했었다. 아들은 이 고명한 어학자가 해방 후 생활을 지탱할 길이 없어 군밤장사를 할 계획에 몰두했던 일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군밤 장사가 불여의하자, 국어 독본이나 만들겠다고 갖은 애를 쓰고 다니는 것도 보았었다. 그러나 둘 다 여의치 않았다. 군밤장사는 수지를 맞추자면 3,4십리 밖에 가서 밤을 사와야만 하기도 했거니와 그때의 ㄷ씨에게는 힘에 겨운 자본이었다. 교과서는 구식 어학자란 이유인 모양이었다. “요새 팔팔 뛰는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요…”
두 출판사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유는 딴데 있었다. 교과서는 군정 문교부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 이 허가는 책의 가치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교제’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또 아버지 ㄷ씨가 군정청에 드나든 것도 알고 있었다. 국장, 과장은 모두가 ㄷ씨의 제자들이었다. 나이 새파란 젊은 아이들이 회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한담을 하면서도 한 시간이나 ㄷ씨를 밖에 세워두었다. 만나야 대우는 신통치 않았다. 일정시대에는 ‘언문’을 알고 있다는 것조차 치욕으로 여기던 패들이 일조일석에 어학자가 되어 ㄷ씨를 설교하는 것이었다. ㄷ씨의 교과서 원고는 아무데서도 사주지 않았다. 일체의 교과서는 문교부 관리의 지시 밑에서 집필자도 발행자도 결정이 되고 있었다. 해방 전의 치욕은 이 민족(異民族)한테 받은 치욕이었고 지금의 굴욕은 같은 민족에게서 받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주는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받는 사람에게는 ‘굴욕’이 예외가 ‘될 수’없는 일이었다.
“울 없는 생―울 없는 국민―울 없는 민족―”
ㄷ씨의 아들은 밤이 늦도록 이 한 말을 외우고 외우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든 것은 비지장수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정말 아들이 돌아왔다는 것을 ㄷ씨가 깨달은 것은 이튿날 아침이라 할 수 있다. ㄷ씨는 잠이 깨더니만 문턱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새삼스럽게 놀라 보였던 것이다. 취한 동안이란 그 사람의 생애에서 제외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ㄷ씨는 간밤 늦도록 묻고 묻고 한 이야기를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또한 이상했다.
당자는 몰라서나 그렇다지만 대답하는 사람도 그랬고 옆에서 듣는 사람 귀에도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었다. 사실 부자는 전날 밤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날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자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ㄷ씨의 노처다.
개인 날의 나막신짝처럼 남편한테 천대를 받아가며 살아오고 있는 어머니한테는 아들의 출현은 태양과 같은 희망이었다. ㄷ씨가 구박을 주어 입 밖에 말은 못 내었지만, 아들이 돌아오기를 비는 마음은 정말 간절했었다. 아들이 있을 때도 별도리는 없었지만 아들만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었다. 도저한 학식이 있는 아들도 아니었다. 투철히 인물이 잘난 아들도 못 되었다. 차 치고 포 치고 필요만 있으면 포가 포를 뛰어넘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그런 주변성있는 아들도 못 되었다. 몸이 실해서 노동판에라도 벗어부치고 나가서 땅땅 벌어다 어미 아비를 먹여살릴 체질도 기실은 못 되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었건만, 늙은 어머니한테는 빛이요 힘이었다. 무능한 남편과 돌보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바느질품으로만 연명을 해가는 늙은 어머니한테
‘아들’이란 어감만으로도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아들’이란 말 그 자체가 행복인 양 싶었다. 아들 소리를 해보는 순간만도 늙은 어머니는 기뻤고 행복스러웠다. 아들 말을 입에 낼 때는 벌써 눈물부터 흐른다. 그 아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 아들이 어머니 옆에서 살겠노라 돌아온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았을까보냐.
그러나 늙은 어머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운이는 분명히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아들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이 아닌 또 하나의 태운이었다.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바라던 아들은 아니었다. 어머니를 위해줄 아들도 아니었다. 어머니를 찾아서 돌아온 아들도 아니었다.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어도 이 아들은, 제게 필요하다면 언제나 어머니를 배반할 아들임을 무식한 어머니였지만 눈치챌 수 있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뿐이었다. 아들 이야기에 어머니는 놀랐고 아버지는 노했었다.
“전 아버지가 무슨 미련으로 이 추잡한 땅에 남아 계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북에서는 모든 학자가 최대의 우대를 받고 있습니다. 국가는 학자를 우대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학자는 정부의 우대를 받을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무한대한 권력이 학자한테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ㄷ씨는, 아들이 이 말에 정색을 하고 반문했던 것이다.
“그러면 내게는 무슨 권한을 줄 수 있는 겐고?”
“아버지가 요구하시는 서재와 연구 자료를 무제한으로 드릴 수 있을 겝니다. 필요한 생활은 정부가 보장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정부 최고의 의학 기술자의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동생들은 또 한푼의 학비도 내지 않고 지망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겝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필요하시다고만 하신다면 이 이외에도 무엇이나 드릴 수 있을 겝니다.”
아들의 이 말에 ㄷ씨는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던 것이다.
“철창―아니 교화소랬지? 거기 들어갈 권리두 주겠구나?”
이 말소리는 그지없이 은근하였다. 그러나 그 은근한 맛은 맨 끝엣말에서 홱 뒤집히었다. ‘주겠구나’의 주자부터 시작된 ㄷ씨 특유의 앙칼진 음성은 맨 끝자 ‘나’에서 노골하게 나타났다. 쇠갈고리로 긁어 잡아채는 듯싶은 살기띤 음향이 고요한 방안에 쩌르렁 울리었다. ㄷ씨 특유의 금속성인 음성은 긴 여음을 남기었다. 방안―아니 온 집안의 공기를 두고두고 이 여음이 지배를 했었다.
아들 태운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그 어떤 목적이 있는 눈치였다. 아침에 나가면 통금시간이 일쑤요, 저녁거리가 없는 것을 보고 나간 사람이 4, 5일씩 얼굴도 안 비친다. 분명히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를 돌보아주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늙은 어머니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남편 복이 있어야 자식 덕도 보는 법이야. 즈 아버지 닮지 않은 자식이 있다던가?…”
여인네의 마지막 무기인 체념이다. 이제는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길이란 남편도 믿지 말고 아들에게 기대도 말고 오직 자기 힘으로써 다섯 가족의 목숨을 이어가야만 한다는 것뿐이었다. ㄷ씨의 아내는 자기 몸뚱어리 그 어느 부분이 이 무거운 부담을 감당하는 데 이용이 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술만 먹는 남편과 공산당에 미친 아들과 중학교도 다니다 만 딸과 체면도 없이 먹어지라고만 하는 상태, 그리고 걸핏하면 다리가 쑤시는 병객인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는 데는, 자기 육신의 그 어느 부분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여인은 자기의 학식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겨우 국문만을 아는 학문이었다. 학식이 없다면 배운 기능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무엇인가, 또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바느질과 빨래, 밥짓기와 서름질이 그가 배운 기능의 전부였다.
“밥먹고 똥눌 줄 아는 사람이면 다 가진 재주가 아닌가? 이것으로 어찌 이 식구를 먹여살린단 말인가.”
여인은 이번에는 자기의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노동을 궁리해보는 것이다. 날만 궂어도 쑤시는 다리였다. 힘찬 노동에는 엄두도 나지 낳는다. 두붓집 생각이 퍼뜩 머리에 떠오른다. 두붓집은 지금의 ㄷ씨 가족에게는 군정청 보다도 고마운 존재였다. 찢어진 백원짜리 두 장만 가져가도 비지를 한 냄비 주는 고마운 집이어서 ㄷ씨 부인은 매일 한두 번은 꼭 들르는 집이다.
그 집에서 맷돌질할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이웃집 삼돌이 어머니한테 세탁소의 빨래를 갈라 맡는 것이다. 이밖에 ㄷ씨 부인이 아는 돈벌이란 봉투를 붙이는 일이었다. 부인은―아니 ㄷ씨까지를 포함한 온 가족이 이 봉투 풀칠로 입에 풀칠을 한 경험이 한동안 있었던 것이다. 해방 전에도 있었지만, 해방 후에도 보름 동안은 이 방법을 연명을 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의 방법은 딸년의 취직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한 가지만으로서는 도저히 다섯 식구가 연명할 도리가 없다. 결국은 부인이 지능을 짜낸 모든 방법이 활용되었다. 맷돌질이 주무였지만, 빨래도 했고 삯바느질도 했고 틈이 나면 봉투도 붙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집주인한테 볶이는 판이었다. ㄷ씨한테 대한 불평은 잘 시간을 갈라서 행해졌다.
“대체로 이 양반이 사람인가?”
ㄷ씨 부인은 저녁을 굶고서도 코만 드르렁드르렁 골아대는 남편을 바라다 보면서 생각이었다. 온 식구가 저녁을 굶고 시름이 없어하는데 한다는 소리가 막걸리 타령뿐이었다. 카페 계집들한테 집 판 돈을 툭툭 털어주고 난 뒤로는 어쩌자고 두문불출이다.
어쩌다 나갔다가는 물 한 모금 못 얻어먹고는 돌아와서 냉수만 들이키는 생각을 하면 나갈까 겁도 나지만 죽치고 들어앉아서 궁상만 떠는 꼴을 볼라치면 참자면서도 눈에 쌍심지가 돋는 것이다. 핀잔을 주어도 응대도 없다.
구박을 해도 거들떠보는 법조차 없다. 어쩔 작정이냐고 오금을 박아야 들은 체도 않는다. 그러다가 매가 좀 눅지면 끽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여보, 한잔 없소?”
“한잔은커녕 반잔두 없어요.”
“거 그러지 마오. 임자두 남의 아내로 태어났으면 남편이 죽은 담에야 막걸리 한잔쯤은 떠놓지 않겠소? 나 죽은 담엔 싫소. 내 죽은 뒤엔 바라지두 않을 테니 죽은 셈치구 한잔만 사오구려.”
“듣기 싫어요!”
“글쎄, 그러지 말래두 그러거든. 아무리 비지국이라두 내 모가치가 하루에 백원이야 안 치이겠소? 끼니 대신 먹겠다는데 머리를 싸매고 안 주겠다는 건 무슨 억하심정이야. 백원만 내라구. 어서―”
말을 내기가 무섭다. 사뭇 어린애다. 짝 달라붙어서는 진을 쪽쪽 나리운다. 나이 50에 돈 백원만 달라고 콧물을 훌쩍이며 졸라대는 남편을 놓고 보는 아내의 마음은 아프다 못하여 쓰리었다.
그러나 백원이면 비지가 두 덩이다. 두 덩이면 네 식구가 한 때 끼니는 에 우지 않는가. 아내는 또 타산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양 지는 것은 아내였다. 아내란 지기만 하게 마련된 직업인지도 모른다.
6
편집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지나간 삼동 ㄷ씨가 겪은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없겠지만 또 몇 마디로써 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삼동은 우리 ㄷ씨에게 있어서 여전히 배고픈 삼동이었고 또 술고픈 삼동이었다. 그밖의 변화란 돌아온 줄로 알았던 아들이 온다간다 말도 없이 어디로인지 또 휙 나가버린 것과 30년 동안 살던 연화봉 집을 쫓겨난 것뿐이다. 배고프고 술고프고 춥고 했던 이야기는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겠기에 작자는 ㄷ씨가 연화봉 집을 쫓겨난 후 어디서 어떻게 삼동을 났는가만 여기에 기록해 두려 한다.
ㄷ씨가 연화봉 집을 쫓겨난 것은 그 해 11월 그믐께다. 전날 저녁과 아침을 뛴 때문만 아니라 철보다는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난데없이 미군 두 사람이 달려들었다. 새벽이랄 것은 없었지만 겨울의 9시였다. 아침거리가 없었고 보니 늦잠을 잘밖에 없었다. ㄷ씨는 아직도 자리 속에 있었다. 열일곱 난 딸년이 파랗게 질려가지고는 미군 둘이 와서 집을 비우라고 한다는 것이다. ㄷ씨는 물론 짐작이 갔다. 집을 산 사람이 미군을 끌어다댔을 것이다.
집을 팔고도 두 달이나 끌었으니 산 사람을 나무랄 수도 없는 터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짐짝을 메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없다.
설왕설래에 미군 입에서는 가아뗌 소리가 연발한다. ㄷ씨는 당분간 방 하나만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통역은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미군은 노오라는 것이다.
이때 집주인이 왔다. 앙상한 어깨를 너무 으쓱대어놓으니 흡사 꼽추다. ㄷ씨는 어렸을 적 일이 생각키었다. 35,6년 전이다. ㄷ씨의 동리에 이시까와란 일인이 들어와서 박칠성이란 사람을 하인으로 썼었다. 이 박칠성이는 이 시까와의 고리대금 앞잡이 노릇을 했다. 빚도 얻어주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슬금슬금 자기 빚놀이도 했다. ㄷ씨의 사촌이 이자의 빚을 썼었다. 그 빚을 받으러 올 때 이시까와를 앞장세우고서는 지금 집주인이 하듯 어깨를 으쓱대었던 것이다.
그날도 오늘처럼 설왕설래가 있었다. 박칠성이는 ㄷ씨의 사촌을 마구 때리었었다. “빠가”“고라”“칙소”하며 치고 차고 했건만, ㄷ씨의 사촌은 대꾸도 못했다. 빚진 죄인이 되어서기도 했겠지만 왜놈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 ‘왜놈’은 나중에 ‘일인’이 되었고 ‘일인’은 다시 ‘일본 내지인’
이 되었다가 끝판에는 일본도 떼어버리고 그냥 ‘내지인’이 되었던 것이다.
‘가아뗌!’과 ‘빠가’‘고라’는 어딘지 통하는 것 같다. ㄷ씨는 완전히 착각을 일으키었다. 40년이란 세월이 완전히 단축된 느낌이었다. 집주인의 상판도 그대로 박칠성이로 변해 보인다. 집주인도 착각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그는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고는, 40년 전의 박칠성이와 똑같은 행투로 나왔던 것이다.
“에이, 망할 놈의 늙은이 새끼! 어디 한번 견디어보라지!”
하더니만 멱살을 움켜쥐고 바람벽에다 뒤통수를 짓찧는다.
ㄷ씨는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보겠노라고 버둥대었다. 그럴수록에 놈은 더 목을 졸라댄다. 숨이 콱콱 막히며 눈알이 튀어나왔다. 아내는 발을 동동 굴러가며 앙탈을 하고 있었다. 이 땅에는 사람도 없느냐고 게정을 피웠다.
사람이 20여 명이나 모여 있었건만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다.
“이놈이 사람 주―주”
말이 뚝 그치며 킥킥대기만 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도 40년 전과 똑같았다.
그때였다. 한 젊은 사나이가 나타났다. 뜻밖에 그것은 ㄷ씨를 찾아왔던 출판사 사람이었다. ‘학습사’라는 교과서 전문인 출판사다. 긴 이야기는 여기에 필요치 않을지도 몰라 약하거니와 어쨌든 ‘학습사’가 뜻밖에도 ㄷ씨를 구해주었던 것이다. 학습사 사장은 ㄷ씨를 철자법 교열 최고 고문으로 모시려고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보고서는 훨씬 헐값으로 ㄷ씨를 살 수 있다는 단정을 내리고 말았다. 교정부원이란 이름이었다.
어쨌든 ㄷ씨는 직업이 생기었고 집이 생기었다. 책사 창고 한 귀퉁이에 붙은 헛간이었지만 길바닥은 아니다. 이사 비용도 선대를 해주었다. 무슨 돈이 든 손에 쥐어졌고 보니 선술집을 그대로 지날 도리가 없다.
“꼭 한잔만 해야지.”
ㄷ씨는 종로 뒷골목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저녁쌀도 팔아야겠고 시멘트 바닥이니 요도 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쌀 살 돈이라고 술을 안 줄 리도 만무다. 쌀 살 돈이라고 술을 못 먹을 ㄷ씨도 아니었다.
“한잔만 주오.”
“무슨 잔으로 드릴깝쇼?”
“물어 뭣해, 대포지.”
ㄷ씨는 뻑뻑 얽은 주모한테서 잔을 빼앗듯이 하여 입에다 들이붓는다. 넘어간다기보다 사뭇 뱃속에서 빨아들인다. 바다처럼 넓은 ㄷ씨의 주량이다.
한잔 술은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다. 술을 먹은 기억조차도 흐리멍텅할 지경이었다. ㄷ씨는 잔을 놓았다. 차마 한잔 더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주모는 묻지도 않고 또 한잔을 그득히 따라서 썩 내어밀고 있다. 물론 ㄷ씨는 주모가 둘쨋잔 따르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날 주자는 것은 아니겠지―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주모가 따른 술이 자기 줄 술이라는 것을 물론 ㄷ씨도 알고 있다. 두 잔째 마시고 나니 인제 정말 술맛이 난다. 석 잔째도 주모가 임의로 따른 잔이었다. 술집에 와서 석 잔 술도 안 먹는다는 것은 예의에 벗어진 일이다. 석 잔도 않고 나가면 술맛 트집으로 오해받기 쉬우리라 했다.
넉 잔째부터는 물론 먹는 이의 자유 의사였다. ㄷ씨는 이 자유 의사를 발휘했을 따름이었다. ㄷ씨는 기어코 열 잔을 넘기고야 말았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었지만 ㄷ씨는 여덟시에 끌리어나가서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 틈에 끼여서 깨알 같은 사전의 교정을 보았다. 이것이 ㄷ씨가 50 평생을 통하여 세번째의 취직이었다. 넉 달이나 다니었으니 가장 긴 취직이기도 하다.
“나, 그만뒀지.”
3월 초순 어느 날이다. ㄷ씨는 거나하여 들어오면서 풀쑥 아내 앞에다 내어던지었다.
“아니, 그만두단요? 회살?”
“그럼 술을 그만둔 줄 알았습디까?”
“아아니, 아무 마련두 없이 그만두면 어쩌실 작정요?”
“흥, 언제 그까짓 것 받아가지구 살았던가? 쌀 닷 말 값!”
“그래두 없느니보다 얼마나 났다구.”
“거 쓸데없는 소리 말아. 옛말 그른 데 없느니. 산 입에 거미줄 칠까?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친 것 나이 50 평생 본 일이 없소. 당신두 못 봤겠지? 뭐 내 취직했다구 지난 넉 달 동안 더 잘산 것 있나? 해방 전이나 해방 후나, 취직을 했을 때나 안했을 때나 그저 그 식이 장식이었지 뭔가. 임잔 지난 넉 달을 내가 취직을 해서 월급으루 살았느니라 싶지만, 그럼 취직 않았을 땐 뭘루 살았는지 설명할 수 있던가? 월급 한푼 없이 임자하구 산 것두 30 년이나 되지 않소. 30년을 뭘루서 살아왔던지 암만 생각해두 모르리다. 마찬가지야.”
아내는 어이가 없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그렇기도 했다. 30년을 그 주태백이를 데리고 물려받은 유산 한푼 없이 무엇을 먹고 입고 살아왔던지 생각할수록에 희한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자기가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 그런 일도 없었다. 남의 돈을 떼어먹은 일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야 그런 적도 없는 것이 ㄷ씨를 보고서 빚을 줄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비리비리하게 남의 앞에 가서 손을 내어민 일은 있었는가 해야 그런 적도 없다. 체수는 작아도 꼬장꼬장한 것이 서서 똥을눈다. 까치 뱃바닥처럼 흰 체만 하고 살아온 남편 ㄷ씨였던 것이다. 30 년간 부부생활을 하는 동안 꼭 두 번 처가에를 간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ㄷ씨는 꼭 여관을 잡았었다. 이틀 묵는 동안에 꼭 한 끼 처갓집 밥을 먹고는 막무가내였다.
“고 성미가지군 일생 배랄먹지!”
장모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소리를 듣고 ㄷ씨는 이렇게 말했었다.
“고 주둥이에 쌀밥이 들어가니 하느님 인심이 후한 줄 가히 알겠도다.”
어쨌든 이날부터 ㄷ씨는 다시 룸펜이 되었다.
7
편집ㄷ씨가 남산 밑 해방촌 판잣집을 팔고 염천교로 옮아앉은 것은 5․10선거가 있던 그해 초가을 가로수의 낙엽이 산산하니 날리던 어느 날 오후였다. 5․10 선거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고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비록 국토의 절반을 공산당한테서 찾지는 못했을망정 세계 자유 국가들의 승인까지 받아 서울 거리는 한결 명랑해졌었지만 우리 ㄷ씨의 행색은 여전히 초라했다. 회색 두루마기에 회색 바지저고리도 여전했고 모자도 언제나 보던 그 모자다. 그래도 전에는 들창코나마 가죽 구두더니만 요새는 소학생들이 신는 검정 운동화로 전락한 것을 보면 ㄷ씨의 주머니 속은 전만도 또 못한 것 같다.
“아니 ㄷ 선생, 그 쏟아져 나오는 구호 물자두 한 가지 차지가 못 되셨소? ㄷ씨, 요새 구두다 양복이다 굉장히 들어왔다나봅디다. 우리반은 뭐 생활이 부유하다나? 그래, 겨우 아이들 양복 한 벌 차지가 와서 제비를 뽑는다는 걸 귀찮구 해서 그냥뒀지라우.”
해방 전 대서소 시대부터 알던 권 노인이 길에서 붙들고 하는 소리였다.
ㄷ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듣고만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몹시 부러워하는 눈치 같기도 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지금까지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ㄷ씨는 밑도끝도없이,
“아, 지금 뭐랬지요? 그만뒀지라우? 임자 고향이 어디 전라도요?”
권 노인의 고향이 담양인 것을 모르는 ㄷ씨는 아니다. 대서소에서 같이 있을 때 귀가 젖도록 들은 담양 이야기였다. 권 노인이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니, 왜 갑자기 고향은 물으시오? 내 고향이 담양인 것을 잊었단 말씀이오?” “아니 그래, 임자가 담양 사람이면 담양 사람이었지 내게다 그 미국놈들이 내어버린 헌옷을 주워입으란 건 뭐냐 말야. 그래, 어떻게 보니 내가 꼭 구호 물자를 얻어입어야 할 사람이란 게지요? 코가 그렇게 생겼단 말요, 입이 그렇게 생겼단 말요? 내 발이 어디가 어떻게 생겼기에 꼭 구호 물자로 나오는 구두 켤레를 얻어신어야만 한다는 게요? 응, 말 좀 해보오.”
권 노인은 아차 했다. 겪어보아서도 잘 알면서도 쓸데없이 터뜨린 눈치다.
“아니, 뭐 그런 뜻도 아니구.”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인구? 그런 말은 무슨 사전을 찾아봐야만 본뜻을 알 수 있지요? 또 임자의 말이 우리 나라 말인 줄만 알았더니만 아마 그게 불란서 말이었던 모양이죠.”
“영감, 그만두십시다. 내 잘못했나보오.”
“아니, 그건 또 어느 나라 말이지?”
진이 쭉쭉 내리는 모양이었다. 권 노인은 섣불리 말 한마디 내었다가 학질을 떼고 말았었다. 권 노인은 속으로,
‘되잖은 자식 같으니, 쥐뿔도 없으면서 까치 뱃바닥처럼 흰 체는 하지.
입으룬 저러지만 속심은 안 그럴걸.’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죽으면 죽었고 발가벗고서 신문지쪽을 뒤집어쓰고 안방에 누워 살기로니 미국 사람들이 입다가 내어던지 구호 물자 양복에 침을 삼킬 ㄷ씨는 아니다. 교해서도 아니요 끌끌한 체하는 것도 아니다. 생리적으로 ㄷ씨의 성질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ㄷ씨는 뿌리치고 달아나는 권 노인을 향하여 침을 여남은 번이나 퉤퉤 배앝았다. 목 안이 다 근지럽다. 못 먹을 것을 먹은 때 같았다.
그러나 ㄷ씨는 마음을 돌이켰다. 잊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지 했다. 잘난 놈도 있지만 잘난 놈만 이 세상에 있어서야 되겠느냐 했다. 잘난 놈만 있어서 세상이 한꺼번에 다 잘되어버린다면 세상은 바로잡을 사람이 필요치 않게 되지 않는가? 이렇게 ㄷ씨는 슬쩍 돌리었었다.
그날 ㄷ씨는 권 노인으로 해서 정말 불쾌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권노인도 우리 ㄷ씨를 온종일 불쾌하게만은 만들지 않았었다. 불쾌하게 한 대신 무한한 즐거움―권 노인은 촐촐해하는 우리 ㄷ씨한테 술대접을 해주었던 것이다. 마침 그날 ㄷ씨의 주머니 속에는 3만원 돈이 들어 있었다. ‘한림’이라는 고서를 파는 서점의 「백사집」(白沙集) 한 질을 소개해서 팔아준 일이 있었다. 물론 구문을 먹기 위해서 한 노릇은 아니었다. ㄷ씨의 친구요 ㄷ씨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M이라는 한학자가 「백사집」을 구하지못해서 애를 쓰던 길이요, 우연히 말끝에 ‘한림’서점의 주인이 「백사 집」을 사고는 싶으나 구매자가 나설 것 같지 않아서 선뜻 사오지를 못한다는 말이 났던 것이다. 원매자만 있으면 10만원 하나는 문제없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뒤는 다 짜놓고서 한 일이었는데 서점 주인은 돈을 다 받고도 시치밀 뚝 땄던 것이다. 알고 보니 사기는 싸게 샀고 값도 비싸게 받았었다.
「백사집」에서만 15만원이 하루 사이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2,3일 내로 한번 들르십시오. 돈은 받았지만 급전이 몰려서 우선 틀어막느라고 다 썼습니다. 그런 걸 바라신 건 아니시지만 애기들 과자나 사다 주시지요.”
물론 처음에는 그런 돈을 받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갖지 않았었다. 그날 돈을 내준대도 받지 않았을 ㄷ씨였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땜쟁이 영감쟁이한테서 이잣조로 해서 늙은 아내가 욕을 당한 것을 보고는 그래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사집」이야기를 하고 2,3일만 참으라 한 것이었다. 물론 그 2,3일이 열흘이나 지나서지만 일금 3만원을 받았던 것이다. 그 3만 원이 지금 ㄷ씨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어둡기까지는 않았지만, 점심 요기조차 못한 ㄷ씨에게는 역시 촐촐한 회로였다. 그는 몇 번이나 술집 앞에서 망설이었었다. 그러나 역시 써서는 안 될 돈이었다. ㄷ씨는 목 안이 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밥티가 동실동실 뜨는 뽀오얀 동동주를 한사발 쭉 들이킬 때의 흥겨움을 억제한다는 것은 ㄷ씨에게 있어서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러나 일시 목을 축이고 밤늦도록 늙은 땜쟁이한테 들볶일 생각을 하면 역시 술이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꿀꺽 참고 가던 길이었다.
“에잇, 고연 놈의 늙은 녀석. 날보구서 구호 물자 구두를 얻어신으라구?
구호 물자 양복때기를 얻어걸치라구? 추한 놈, 비루한 놈. 그래, 내가 제놈 눈엔 끽 그밖에 안 보이더란 말이지? 구호 물자로 온 헌 양복때기나 구두짝에 눈이 어두운 괘씸한 놈! 제 나라 옷 입고 거지노릇하기도 원통한데 미국 거지가 되란 말이지? 그래, 그놈이 날 어떻게 보구서 하는 말일까? 나를!
에잇, 방정맞은 놈!”
ㄷ씨는 이렇게 분개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에라, 불쾌한데 술이나 한잔 하리라. 그 권가놈만 안 만났더면 그대로 가잖는가? 허지만 그런 소릴 듣고서야 어디 비위가 뒤놀아서―에이, 불쾌해.”
ㄷ씨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발을 멈추는데 마침 술집 앞이었다. 술집 앞이라서 더 분이 터졌었던지도 모르기는 한 일이다. ㄷ씨는 간판을 쳐다보았다. 만생옥이었다. 안주는 없어도 술만은 진국을 주는 집이었다.
“에잇, 괘씸한 놈. 그놈 권가놈이 기어코 남의 비위를 뒤집어놓구야 말았 거든! 에이, 퉤퉤퉤.”
ㄷ씨는 만생옥 베폭을 들치고 쑤욱 들어갔었고, 또 그곳에서 권 노인과 같이 어울리었었다.
ㄷ씨가 염천교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 3만원 조건 때문이었다. 그 돈조로 해서 늙은 땜쟁이와 ㄷ씨 아내와의 사이에 대판 싸움이 벌어졌고 그 싸움의 여독이 기어코 ㄷ씨한테 미치고 말았던 것이다. 땜장이와 싸움을 한 지 열흘째나 서로 말도 않고 있을 무렵의 어느 날 새벽에 난데없는 젊은 사람들이 와서 ㄷ씨를 앞뒤로 결박을 지워 어디론지 끌고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젊은 사람들이 형사요 그가 가는 곳이 경찰서라는 것을 안 것도 유치장에 들어가서였다.
8
편집“선생님, 사실대로 이야기하십시오. 우리는 선생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저는 안 배웠지만 제 형두 선생님한테 한글을 배운 제자입니다. 선생님을 어떻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 아드님만 찾아 주시면 노인께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아드님이 지금 어디 있나요?”
취조관은 극진한 대우를 ㄷ씨에게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극진히 해도 모르는 것은 역시 모를 일이었다.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이북으로 달아나버린 자식의 주소가 알아질 것도 아니었다. ㄷ씨는 아들과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형, 내 말을 믿겠소?”
ㄷ씨는 우선 이렇게 말을 건넸다.
“믿게 해주시면 믿겠습니다.”
“아니오, 믿지 않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믿게 할 수가 있소. 믿고자 해야 믿어지는 것이오. 어떻소? 믿겠다면 이야기하겠고 그렇지 않다면 나도 이야기 않겠소.”
“믿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하리다.”
ㄷ씨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긴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사실 그대로였다. 월북을 하자고 왔던 이야기도 했었다.
“물론 떳떳치는 못하오. 남의 자식과 달라 조국에 화살을 겨누는 그런 자식을 둔 것은 정녕 아비의 죄이겠지요. 그러나 품에서 벗어난 자식이라 이제는 손이 안 닿는 구려.”
“선생님이 지금도 연락이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요 달포 전에도 하룻밤 자고 간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아, 그 일 말이오?”
하고 ㄷ씨는 그제서야 이것이 모두 땜장이의 무고인 것을 깨달았었다. ㄷ씨 집에서는 싸고 싸고 해왔었지만 땜장이네 할머니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말은 그렇지만 사이가 좋았었으니 늙은 할멈들끼리 주고받고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땜장이네가 ㄷ씨한테 월북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왔다 갔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아들이 왔다 간 것이 아니라 아들의 동지라는 젊은 아이가 하룻밤 찾아와서 아들의 전갈이라면서 기어코 찾아뵙고 오래서 들렀다고 하며,
“선생님, 저를 따라서 가시지요.”
이렇게 권해주기도 했었다.
“바닷물 생선이 민물에서도 살던가 말이야. 제놈이나 좋은 데서 잘살라고 그러오.”
그 박 뭣이라는 청년이 한 시간 가량 들러 간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땜장이 영감이 이렇게 무고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밝혀지기까지에는 만 2주일이나 걸렸었다.
ㄷ씨는 그날 새벽 석방이 되어 남산 밑 해방촌 판잣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구리개 어귀에서 권 노인을 만났었다. 구호 물자 사건 이후로 처음 만나는 권 노인이었다. 원래 깊은 감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사람을 그리우다 나온 터라 ㄷ씨도 마음으로 반기었다.
“아니, 무슨 볼일이 있기에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하고 ㄷ씨가 말도 마치기 전에 덮어놓고,
“갑시다.”
한다.
“어디 급한 일이나 계시오?”
“지금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지.”
“그럼 됐소이다. 오늘 아침이 내 아우 진갑인데 영감 꼭 뫼시구 오라고 그럽디다만 어디 댁을 알아야지. 참 발은 기시오, 마침 이렇게 공교롭게 마 난다니.” 집에서 궁금해할 것을 생각하면 곧장 뿌리치고 가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뭐 좋은 이야기라고 하랴도 싶었고 주객이 끄는데 뿌리치며 곧 구호 물자 이야기를 계집처럼 속에 넣고 있느니 오해를 살 것도 같다.
“가볼까? 계씨도 오랫만이구.”
마음에 싫지도 않다.
“가십시다. 내 아운 요새 괜치않아요, 미군 부대의 쓰레기를 도맡아서 하지라우요. 쓰레기 속에서 별것이 다 나온답디다. 수지 톡톡히 맞는 모양이에요. 갑시다.”
“아니야. 역시 가보아야 되겠소. 기실 나 아들 조건으로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이오.”
“저런!”
“나 가오, 또 만납시다.”
ㄷ씨는 벌써 저만큼 걷고 있었다. 두부 비지쯤으로 때우면 때웠지 미국 사람들 쓰레기속에서 나오는 술이야 체면상 먹을 수 있을까보냐 하는 심사에서다.
ㄷ씨가 집에 돌아와보니 이삿짐을 꾸리느라고 법석들이다. 빨갱이 아들을 둔 집이라고 하도 뒷공론이 많기도 하려니와 누구보다도 반장이 우리반의 명예 손상을 시킨다고 술이 취해 와서는 등쌀을 피는 통에 배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 어디로 간다는 게요?”
ㄷ씨는 어이가 없었다. 유치장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주먹밥일망정 제 끼니는 찾아주었고 좁고 빈대는 있을 값에 어엿한 방도 있었다. 때가 되니 끼니 걱정이 있을까, 누가 자기보고 쌀, 나무 걱정을 하나, ㄷ씨는 유치장 안에서 차라리 온 집안이 빨갱이가 되어서 다 들어와버렸더라면 집걱정도 없을 것이요, 먹고 입을 걱정을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문득문득 생각킨 일이 있었지만 지금 또 그런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빨갱이는 일조일석에 되어 볼 길도 없으니 차라리 온 집이 도적질을 하고서 보따리를 싸들고 감옥으로 갈까?
“당신두 걱정은 좀 되시나보구려.”
하고 늙은 아내가 되레 어이없어한다.
“그럼, 되지 않구.”
“고마우, 말씀만 들어두 감사하우. 뭐 집 속에 살라고 마련인데 이까짓 집 아니면 집 없겠소. 어서 벗으시고 세수나 하세요. 내 저 아래 좀 내려갔다 올 게니.”세수를 하고 있으려니 아내가 술 한 병을 사들고 들어온다. 아내는 늙어도 역시 고마운 존재다 싶었다.
ㄷ씨는 반주를 해서 늦조반을 마치고 짐 싸는 것을 거들어 구루마 뒤를 밀고 나섰다. 아내와 딸년은 남이 본다고 주장질을 한다.
“보겠으며 보라지. 왜 대순가?”
ㄷ씨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이사할 집이라고 당도해 보니 이것은 사뭇 난가게다. 밤 우동을 파는 구루마보다 크대야 얼마 커보이지 않는 판자때기를 얽은 집이다. 다다미 서너 쪽이나 깔릴까말까 한 방 한 칸이 있고 조그만 토방에 긴 책상 한 개와 역시 긴 걸상 한 틀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형편이다. 판자에 빈대떡이라고 붙은 품이 음식을 팔던 집인 모양이다.
“아니―뭐 장사할 예정이오?”
“그럼 어떻게 해요. 빈대떡이라도 구워 팔아 식구와 연명이나 해야지 않겠어요?”
“말만한 계집애는 어쩐다오?”
“걘 노량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노량이라면 외육촌 집이었다. ㄷ씨는 발 근접도 않은 채 10년을 살아왔건만 같은 나이 또래가 있어 딸년과는 왕래가 잦기도 했었다. 이사도 그렇고 빈대떡 장사도 그렇고 계집애를 내어보낸다는 것도 ㄷ씨한테는 어느 것 한 가지 달가운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흰 체만 할 수도 없었다.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들어주지 않는 아내다.
이사를 끝마치고 나도 아직 해가 있었다. 아내는 구공탄을 피운다, 맷돌을 씻는다 법석이다.
“아니, 지금 그걸 갈아가지고 언제 뭘한다구 그러우?”
“걱정 마시구 가서 돼지 기름하고 고기가 한 근 사다 주어요. 새벽부터 갈아논 것도 있고. 옳지, 참 치자도 몇 개 사다 주시고.”
ㄷ씨는 신세가 따분해졌느니라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아내한테서 돈을 받아들고 남문 안으로 들어섰다. 남대문 안 로터리를 건너서 장안으로 들어서려 할 즈음이다. 깍듯이 인사를 하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이라기보다 장년에 든 나이였다.
“노형이 뉘시지?”
“저, 선생님께 배운 제자입니다.”
“내게서 뭐 술 먹는 법 배웠나?”
“원, 천만에요.”“아, 옳지, 언문을 배웠겠군그랴?”
상대가 누구든 장소가 어떻든 한번 꼬집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ㄷ씨이기도 하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나고 말은 해야 맛이라 하지만 ㄷ씨는 말도 씹지 않으면 맛이 안 나는 모양이다.
“그래, 노형이 내게 무엇을 배웠기로서니 지나치면 그만이겠지. 5․10선거도 끝났것다, 뭔가?”
“네?”
“5․10선거는 끝나지 않았는가?”
“아, 끝나기만 합니까, 벌써―”
“아 글쎄, 그렇기에 말야.”
난데없는 5․10선거 이야기가 이 청년한테 통할 리가 만무한 일이다.
“뭐 내게 할 이야기가 있소? 없으면 가겠고―”
ㄷ씨가 한 발자국 옮기는데 청년은 가로막듯이 ㄷ씨를 붙들어,
“지금 뵈었대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계신 곳을 무척 찾았습니다 ―학교로 물어보아도 모른다 하고 신문사로 수소문을 해보아도 모르겠다는군요. 그래, 단념을 하고 있던 길입니다.”
“단념이란 게, 뭘?”
“아 참, 저 방송국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잊으셨겠지만, 저 윤화 수올시다. 보성을 나왔습니다.”
“그래?”
“길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고 어디 여기 찻집 같은 것이 없나, 원―”
“없겠군, 여긴.”
윤 청년은 망설이다가 ㄷ씨를 남일옥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청년시대부터는 교수 시간에 약이라면서 소주나 배갈를 물 대신 따라 마시던 ㄷ씨다. 듣기 좋게 꾸미어댄 말이 아니라 윤 제자는 정말 스승의 행방을 찾았던 모양이다. 뜻밖에 용건이란 두 가지나 된다. 두 가지가 다 ㄷ씨한테는 바라던 일이었다. 용건의 하나는 윤 군이 맡아보고 있는 취미 방송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중학생을 표준한 어려운 우리말을 풀어서 국어 사전을 만들어달라는 것―방송 이야기는 공적인 부탁이요, 사전은 자기의 장인이 출판사를 하고 있어 그런 계획을 세우고 필자를 구하던 중이라는 것―
“첫째는 난 않겠소. 그러나 둘째 것은 맡아도 좋겠지.”
“공무상 제겐 첫째가 더 중요합니다만―”
“그럼 둘 다 그만두기로 합시다. 술밖에 모르는 사람이 무슨 취미 강좌를 하겠소? 술주정한 이야기나 하라면 모르되―”“취미가 아닙니다. 학술 강좌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너무나 몰라놓으니까 그것을 강의식이 아니라 통속적으로 알려주자는 착안점입니다. 그래서 전 과원이 모여서 인선을 한 결과 선생님께서 최적임자라는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래, 벌써 달포째나 각 방면으로 연락중에 있었습니다. 여기 연락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윤 청년은 편지를 내어보인다. 사실이었다. 술기도 있었지만 한 번이 아니고 1주일에 한 번씩 십회를 연다는 것이다. 보수도 생각더니보다는 많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ㄷ씨도 승낙을 하고 말았다.
“윤 군 덕분에 해방 후 처음으로 내가 가장 노릇을 해보나보이. 기실은 오늘 빈대떡이나 구워 팔까 하고 치자를 사러 나온 길이야, 치자를―허…”
그날은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만취가 되게 술을 마시고 돼기고기 값으로 ㄷ씨는 윤 군한테 술 한 병을 내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니 열한시다. 아내는 앉은 채 자고 있었다.
9
편집ㄷ씨가 첫 방송을 하던 날은 때아닌 가을비가 쏟아졌다. 바람까지 세차다.
방송국에서는 시간 맞추어 차를 보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방송 시간 5분 전에야 차가 돌아 왔으나 ㄷ씨가 안 계시더라는 것이었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혀졌다. 정각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알아볼 길도 없었다.
“레코드 한 장 틀어놓지.”
그러기로 했다. 레코드가 끝이 나도 ㄷ씨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잊었을까 싶어서 오늘 아침에도 연락을 해두었던 것이다. 아침에는 윤 군이 직접 ㄷ씨 집을 찾아가서 전달을 했고 보니 틀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 시각에 ㄷ씨는 역시 술집에 있었다. 한림 서점 주인과 어울린 것이었다. ㄷ씨가 ‘한림’을 찾아간 것은 세시가 지나서였다. 잡담을 하고 있노라니 주태배기 시인 유성수가 덜렁덜렁 들어왔었다. 역시 초올초올한 것이 두 어깨가 축 늘어졌다.
“초올초올하군.”
주태배기가 말을 꺼내자 모두 회들이 동했다. 비빌 데라고는 역시 ‘한림’밖에 없었다. 사오느니 마느니 하다가 상술집으로 몰려갔다. 상점에서 한두 병 받아다 먹었으면 부비도 덜 나련만 ‘한림’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파리가 꼬이어 술집보다도 더 비싸게 치일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꼭 석 잔씩만 하자구.”
한림의 말이었다.
“석 잔이면 꼬옥 좋지. 난 오늘 방송국엘 가얄 일이 있어. 석 잔이면 똑 차암하니.”
그러나 석 잔은 넉 잔이 되었다. 한 되가 두 되가 되고 석 되가 되었다.
이야기도 벌어졌고 날도 저물어오고 있었다. 정말 이제부터 술을 먹을 시간이었다.
“난 그만해, 오늘 방송이 있어. 다섯시에는 무슨 일이 있든지 일어나야 해.”
그러나 손을 먼저 내어미는 것도 ㄷ씨다. 시간 생활을 해본 지도 오랜 ㄷ씨다.
“지금 몇 시나 됐지?”
“아직 한 시간이나 있소.”
한림이 철도국용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술을 또 권한다. 한 시간이란 거짓말이다. ㄷ씨도 술을 남기고는 일어나기 싫었다.
“좀 늦으면 대순가. 다른 것 먼저 하겠지.”
이 ㄷ씨가 그래도 시간 후 5분 만에 방송국에 닿았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국에서는 아니 오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다음 프로까지의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겠노라 선언을 한 바로 직후였다.
“아니, 좀더 일찍 오시죠!”
윤 군이 땀을 뻘뻘 흘리다가 핀잔을 주었다. 은사도 학자도 없었다. 쥐어박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윤 군은 참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참지 않을 수 없는 계제이었다. 윤 군은 다시 스위치를 넣었다.
“죄송합니다. 차 관계로 ㄷ씨께서 지금 막 당도하셨습니다. 선생님, 5분 단축시켜 주십시오.”
ㄷ씨는 의자에 앉았다. 벌써 20년 전 꼭 한 번 마이크를 앞에 놓고 이야기 해본 일이 있었다. 어색하나 술기운이 잘 보충해주었다. 첫 강좌의 제목은
「삼국 시대의 역주들」이란 것이었다. 혀가 잘 돌지는 않았으나 20분간이야 어찌 못 채유랴 한 것은 ㄷ씨뿐이 아니었다. 방송국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믿었었다.
처음 5분 동안을 들어보니 구수하다. 이만하면―하고 윤 군은 가슴을 내리 문지르고 긴급 회의가 열리고 있는 국장실로 들어갔다. 오늘의 회의는 이북 공산군이 남침을 할 위험성이 많으니 그런 때에 대비할 수 있는 시설의 분산을 토의키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장을 비롯한 각 과장들이 전원 참석해 있었다.
진지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방송 시설이란 단서가 모처에서 통보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시 퇴각을 하는 때라도 방송 시설을 상실치 않도록 만전의 준비를 갖추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에―”
그때였다. 한 사람이 뛰어들어와서,
“마이크가 코를 코를…”
하고 법석이다.
윤 군이 잽싸게 스위치를 넣었다. 코고는 소리가 제법 흥겨웁지 않은가!
ㄷ씨가 방송을 하다가 코를 골고 있는 것이다.
“꺼라! 꺼라!”
국장이 발을 동동 구르고, 윤 군은 화살처럼 문을 빠져나갔다. 그동안에 ㄷ씨는 깜빡 깬 모양이었다.
“아, 여기가 어디여? 여보게, 아 참,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스위치가 뚝 끊어지고, 과장 회의도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모처럼 경륜된 ㄷ씨의 방송은 이 꼴이 되어버렸고 사전 문제가 똑같은 운명을 밟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ㄷ씨는 태연했다.
“아아니 그래,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된단 말야? 실없는 친구들. 내가 오막살이를 판 돈을 하룻밤에 카페에 가서 다 날린 얘길 하면 모두 놀라자빠질 것 아냐? 실책은 무슨 실책! 히틀러보다도 더 큰 실책이란 말야? 쓸데없는 소리!”